퇴근길 전철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디파티드>에 대한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리뷰를 읽었다. 알다시피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들에 대한 반론을 겸하고 있었다('비열함'을 내세운 영화에서 '비장함'을 찾지 말라는 것). 나로선 두 영화 모두 아직 보지 못했지만 내주쯤에는 시간을 낼 수도 있을 듯하다. 더불어 생각난 것이 얼마전 2006 한국영화를 결산한 기사였다. 역시나 '조폭영화'가 올해도 대세였다는 것인데, 겸하여 읽어보면서 한해를 결산하기로 한다. 조폭영화의 원조인 홍콩/헐리우드 영화 두 편의 코드를 빌려서 말하자면, '무간도' 혹은 '디파티드'의 세상이 한국사회의 체감 현주소일까? 비장하거나 혹은 비열하거나...

 

 

 

 

경향신문(06. 12. 01) 2006 한국영화 ‘조폭’ 올해도 스크린 ‘접수’

2006년 한국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11월30일 ‘그해 여름’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아주 특별한 손님’이 개봉함으로써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편수가 101편에 이르렀다. 경향신문 영화팀이 이들 101편의 키워드를 분석, 집계한 결과 올해 한국영화는 ‘조폭’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키워드로 나타났다. ‘코믹’ ‘경찰’ ‘가족’ ‘살인’ 코드가 순서대로 그 뒤를 이어 ‘조폭·코미디’로 대표되는 충무로의 편식성이 통계로 확인됐다.(표 참조) 키워드 분석 결과가 우리 사회의 비루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사회 모순 비추는 조폭 코드=올해 한국영화 중 ‘조폭’이 등장한 작품은 ‘야수’ ‘짝패’ ‘투사부일체’ 등 23편. 조직폭력배는 등장하지 않지만 ‘학원폭력’ ‘싸움’ 등의 키워드를 내재한 ‘방과후 옥상’ ‘플라이 대디’ 등을 포함시키면 28편으로 늘어난다. 전체의 30%에 가까운 영화들에서 폭력배와 싸움이 등장한 것이다. 본격 누아르영화인 ‘사생결단’ 같은 작품뿐 아니라 실향민의 아픔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폐쇄성을 묘사한 ‘비단구두’에도 조폭이 나왔다.

2위를 차지한 키워드는 19편에 걸쳐 나타난 ‘코믹’. 역시 ‘조폭코미디’ ‘학원코미디’로 구분되는 영화들이 다수였다(‘학교’ 키워드 14편으로 7위). 18편에 등장한 ‘경찰’과 15개 영화에 나온 ‘살인’ 키워드 역시 ‘조폭’과 맞물려 우위를 점했다. 이들 중에는 ‘비열한 거리’ ‘폭력써클’ 등 장르를 스스로 비틀면서 폭력을 반성하고 사회 불안을 성찰하려는 노력을 통해 한국누아르의 장르적 성장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도 여러편 포진해있다.

반면 2001년 ‘친구’와 ‘두사부일체’의 흥행 이후 그 소재만을 빌려 재생산하려는 상업적 시도도 계속됐다. ‘투사부일체’와 ‘가문의 부활’ 등 조폭코미디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흥행세를 이었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수단으로 기능하든,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상업전략이든 한국영화들이 여전히 ‘조폭’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 없고 빈부차 심한 사회 모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채업자’와 ‘부동산개발’이 상징하는 것=이같은 현상은 올해 한국영화들의 내부로 들어가보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101편 중 ‘사채업자’가 주요인물로 등장한 영화가 10편(‘잔혹한 출근’ ‘예의없는 것들’ 등)이고 ‘부동산 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영화가 6편(‘짝패’ ‘비열한 거리’ ‘해바라기’ 등)에 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과거 영화속 조폭들이 영역 다툼, 업소관리 과정에서 암투를 벌이며 일반 시민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지하세계를 묘사하는 데 동원됐다면 최근 들어서는 채무에 시달리고 집값에 눈물 짓는 서민들의 삶을 헤집는 인물들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철거촌 주민들과 용역깡패의 충돌이 영화에 종종 등장했지만 최근 영화 속 부동산 문제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둘러싼 잔혹한 이권다툼에 초점이 있다. 불황일수록 대출업이 호황을 누리고 평생 일해 벌어봐야 부동산투자 한번 제대로 하는 것에 못미친다는 현실의 상실감, 그리고 현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인 문제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되고 영화에 대한 관객의 공감대로 이어질 것으로 충무로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을 반영하는 키워드들=이전에 보기 드물었던 ‘인터넷(커뮤니티)’(5편) ‘뮤지컬’(4편) ‘동성애’(4편) 코드가 늘어난 것도 흥미로운 현상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자살 커뮤니티가 극의 발단이 되는 ‘무도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아랑’, 인터넷 야설·야동을 사극에 편입시킨 ‘음란서생’ 등이 화제를 모았다.

동성애가 부담스럽지 않은 소재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를 직접적으로 다룬 ‘후회하지 않아’가 현재 흥행에 성공하고 있고 ‘천하장사 마돈나’ 등 퀴어 코드 영화도 호평받았다.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 쇼비즈니스가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소재 삼은 영화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박정희 정권기 중 1960년대 말~70년대 초에 집중한 시대배경의 영화가 ‘아이스케키’ ‘잘살아보세’ ‘길’ ‘그해 여름’ 등 4편으로, 80년대 등 다른 과거를 배경삼은 영화보다 많았던 점은 해석의 여지가 많지만 현재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이밖에 ‘달콤, 살벌한 연인’ ‘내 청춘에게 고함’ 등 5편에 걸쳐 등장한 키워드 ‘어설픈 지식인’과 ‘괴물’ ‘모두들, 괜찮아요?’ 등에서 나타난 ‘백수’ 키워드도 같은 맥락에서 현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화일보(06. 12. 05) 오동진의 동시상영관 - 디파티드

마틴 스코세이지가 생애 처음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디파티드’를 두고 평단 일부에서는 원작이 되는 홍콩의 ‘무간도’ 시리즈와 비교하며 ‘주인공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연기가 양차오웨이의 눈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좀 잘못된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두 영화를 굳이 주연배우의 연기를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는 것도 수준이 좀 뭣하다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작품은 아예 비교대상이 되는 영화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리메이크이기는 하지만 ‘디파티드’는 ‘무간도’ 시리즈와 다른 선상에 서있는 작품이다.

‘무간도’ 시리즈는 홍콩 누아르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작품인 만큼 한마디로 비정함과 비장함으로 가득차 있는 영화다. 갱단인 삼합회와 홍콩 경찰조직에서 각각 10년 넘게 언더커버로 살아가고 있는 두 남자 진영인(양차오웨이)과 유건명(유더화)을 중심으로 역시 이들의 존재를 각각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갱단 두목 한침(쩡즈웨이)과 경찰국장 황 국장(황추성)의 기묘한 심리전의 파노라마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진영인, 유건명 두 남자 모두 오랜 세월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감으로써 극도의 혼란에 빠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비극과 통한의 사정을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는 동일시의 관계로 빠져든다. 삼합회 두목과 경착국장은 이들의 정신적 아버지로서 모두의 비극을 조종하고 동참한다. 네 사람은 마치 각각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피할 수 없는 두 가문의 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비정도시’의 이미지를 스타일리시하게 펼쳐 놓았던 ‘무간도’ 시리즈에 비해 마틴 스코세이지의 ‘디파티드’는 비정함이나 비장함 같은 분위기는 거의 삭제해 버렸다. 대신 스코세이지는 자신이 지금껏 만들어 왔던 갱스터 영화들 -‘비열한 거리’나 ‘좋은 친구들’‘카지노’-의 특유함 그대로, 인물 모두에게 ‘비열함’을 가득 부여한다. ‘디파티드’의 모든 캐릭터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각자의 생존만을 유일한 목표로 살아가는, 비열한 거리의 비열한 인물들로 그려질 뿐이다. 삼합회에서 언더커버 생활을 하는 디캐프리오 역시 공황에 가까울 만큼 정신적 공포에 시달리는 캐릭터가 강조되는 쪽으로 묘사되고 있다. 경찰조직에 들어 간 갱단원 맷 데이먼의 비열함은 ‘무간도’의 유더화와 가장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디캐프리오를 사지로 내몬 경찰국장 마틴 쉰이나 맷 데이먼을 조종하는 조직의 두목 잭 니컬슨에게서 홍콩영화에서의 파더 피규어(아버지상)를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한 사람은 상사로서의 카리스마를 잃고 우유부단하게 굴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수십년간 자식처럼 키운 인물을 스스럼없이 FBI에 넘기려고 할 정도다. ‘디파티드’에선 아버지와 아들 간, 혹은 적이지만 가장 가까운 남자 두 사람 간의 기묘한 우정 따위란, 그래서 더욱 비장하고 비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비열하고 남루한, 3류인생의 끝자락들만이 펼쳐질 뿐이다.



비장한 매력이 철철 넘치던 ‘무간도’에 비해 새로 만들어진 ‘디파티드’는 그 매력이 다소 반감됐을지언정 보다 현실의 삶에 가까워진 느낌을 준다. 실제로 우리들 삶의 방식은 비장함보다는 비겁함 쪽에 더 가까운 법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역시 그 점을 가장 많이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디파티드’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우리들 삶의 치졸함이 느껴진다. 새삼 이 세상이 비열한 거리로 가득 차 있음이 느껴진다. 그 더럽고 스산한 풍경이 오히려 옆에 앉은 사람에게 몸을 더 가깝게 붙이도록 만든다. 진정한 리메이크는 이런 것이다. ‘디파티드’를 ‘무간도’와 같으면서도 다른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06.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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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2-06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동진 기자가 잘못 안 듯해요. <케이프 피어>는 62년 로버츠 미첨과 그레고리 팩이 나왔던 동명 흑백 영화의 리메이크판이라고 하네요.

로쟈 2006-12-0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억이 나네요. '생애 처음으로 리메이크한 홍콩영화'라고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