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교수신문의 기획기사를 옮겨놓는다. '기억연구의 르네상스'란 특집기사인데, 최근에 유사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쓸 기회가 있어서 관심을 가져보았던 주제이기도 하다. 시의적절한 학술동향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의 변은 이렇다:

"기억연구가 붐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기억 연구는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연구의 커다란 지류를 형성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 호흡 멈춘 상태에서 국내외의 기억연구 동향과 한계를 내밀하게 점검해 보는 작업은 아직 미흡해 보인다. ‘극단의 시대’, 무너진 역사의 이념적 권위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겨난 기억연구의 흐름을 국내와 국외를 넘나들며 짚어봤다."

한데, 그냥 '기억연구의 르네상스'라고 하면 심리학쪽 테마로 오인될 소지도 있어서 페이퍼의 제목은 '기억과 재현의 정치학'으로 바꿔달았다. 그때의 '기억'은 '역사적 기억'이고 또  이는 항상 재현의 정치학과 연루되기 때문이다. 참고할 만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덧대놓도록 한다.

기억연구의 르네상스(1)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기억에 대한 강박증적인 몰두"는 전적으로 서구적인 현상이다. 문화비평가 호이센(Andreas Huyssen)은 그의 저서 ‘황혼의 기억들’에서 근간에 만연되고 있는 기억 담론이 시간 질서의 와해로 말미암은 일반적 위기의 증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질성과 비공시성, 과도한 정보”로 넘치는 혼잡한 세계에서 각 개인은 더 이상 외부의 시간 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고자한다. 사회학자 벡(Ulrich Beck)이 역설적으로 표현했듯이, “자기 고유의 삶을 위한 일상적 투쟁이야말로 서구 세계의 집단체험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한국의 기억 담론은 그 성격과 위상이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강고한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다. 과거의 ‘진실’을 억압하는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방법적 객관성에 고착된 기존의 역사학으로는 충분치 않으므로 기억이 진실 규명의 과업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기억 담론은 역사에 대한 전면적 거부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는 성격을 띤다.

서구에서는 역사적 진실이 근본적 회의에 직면한 반면, 한국에서는 반대로 역사적 진실이 더욱 강력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 문제 의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소통가능성은 열려 있다. 기억은 어떠한 차원에서 제기되었든 역사적 진실의 본성에 대해 검토하도록 촉구한다. 역사는 객관성, 주체성, 일체성 등을 근본원리로 삼아왔다. 그것은 학문으로부터 정치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근대적 활동영역에 결코 고갈되지 않을 이념적 원천을 제공했다.

그러나 확고부동해 보이던 역사의 이념적 권위도 파란 많은 20세기를 거치며 점차 와해되는 양상을 빚었다. 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트 등과 같은 미증유의 경험으로 인해 종래의 ‘진보사관’이 의심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가 불편부당하기는커녕 특정한 민족들, 더구나 그중에서도 일부 지배세력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자기정체성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각기 맥락은 다르지만 서구와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억 담론의 성행은 바로 이러한 경향의 일부이다.

기억은 근대성의 자기확실성을 뒷받침해오던 진리와 주체의 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체가 진리를 독점하는 권력으로, 또는 한 발 더 나아가 ‘진리의 효과’로 강등됨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대한 소유권도 다양한 주체들에게로 이전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제 과거는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일원화되기 힘들어지며 갖가지 과거, 즉 편향적이고 분산적이며,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과거들 나름의 권리가 인정받게 된다.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지식-권력’으로서의 역사는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과거가 ‘재현’되는 방식, 즉 ‘진리의 효과’가 산출되고 발휘되는 근본 형식보다는 과거의 진실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갈등에 논의의 초점이 두어졌다. 물론 과거의 재현에 개입되는 권력의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사적 진실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의 기억 담론 형성에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과거청산’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다. 시급한 정치적 요청에 의해 촉발된 만큼 이른바 ‘기억의 정치학’이 한국의 기억 담론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기억의 정치학은 억눌리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대항기억(countermemory)’을 발굴하여 이를 ‘억압’해왔던 기득권 세력의 주류 기억을 비판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기억투쟁에 실천적으로 복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실천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겠지만, 이분법적 대립구도에 경도된 점은 지적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적 기억 담론의 한계는 한 특징적 번역어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난다. ‘기억의 정치학’을 설파한 대표적 논자 김영범은 기억이론의 선구자 알박스(Maurice Halbwachs)를 소개하면서 그의 대표적 용어인 ‘collective memory’를 ‘집합기억’으로 번역했고 이는 이후 널리 통용되었는데, 필자의 소견으로는 개별 기억을 수렴하여 집단정체성을 구축하는 알박스식 기억은 ‘집단기억’으로 번역되어야 마땅하며 ‘집합기억(collected memory)’과는 구별되어야한다.

한 사회의 기억이 개별 기억들의 느슨한 ‘집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관점이 배제된 채 지배기억과 대항기억의 단선적 대결구도에 치우친 한국식 ‘기억의 정치학’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매체’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관심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다른 지면에서 이를 ‘기억의 정치학에서 기억의 문화사로의 패러다임 교체’라고 진단한 바 있는데, ‘패러다임 교체’라는 단정적인 용어 사용 때문에 필자의 관점이 자칫 ‘문화(환원)주의(culturalism)’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된다. 그러나 필자가 지향하는 이른바 ‘신문화사(new cultural history)’의 문제의식은 흔히 오해되고 있듯이, 단순히 문화적 소재에 대한 탐닉이나 또는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전환으로 오인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역사방법론상의 퇴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재현에 대한 신문화사적 연구는 오히려 기억대상과 기억주체들 간의 모순, 갈등, 착종, 전이에 주목함으로써 기억을 고정된 실체로 ‘물화’하거나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저항하고자 한다. 문화란 본래 주관적 의미의 영역과 객관적 대상세계의 간극을 표상하는 개념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기억의 신문화사 연구는 단지 새로운 분야의 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관점’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 연구는 진리의 절대성을 깨뜨리고 다양한 재현 방식과 정체성들을 인정하는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본연의 문제의식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자칫 기억을 재현의 ‘체계’안에 폐쇄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정연한 내러티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어떤 미지의 목소리, 라깡(Jacques Lacan)이 말한 이른바 “대상-원인”의 (비)존재는 섣부른 기억의 재현에 제동을 가한다. 포스트구조주의적 재현 이론은 과거의 경험이 ‘지시’하는 고통의 심연에 직면할 때, 무력해지고 만다. 재현은 타자를 전유하여 자신의 체계 내에 배치시키는데 익숙하지만, 타자의 낯설음이 정도를 넘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타자의 ‘他異性’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trauma)이다.

그렇다면 트라우마적 증상에서 울려나오는 타자의 외침을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가. 그것은 과연 재현되어야 마땅한가. 라깡은 트라우마가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의 (비)존재는 우리가 과거를 단지 인식의 대상으로만 ‘전유’할 수는 없음을 일깨워준다. 트라우마가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윤리적 정언명령이다. 단순한 앎이 아니라 긴급한 책임의 문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억 연구의 실천적 의의를 거론할 수 있게 된다. 기억 연구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차원의 내러티브들이 경쟁하고 공존할 수 있게 함으로써 특정한 기억이 여타의 힘없는 기억들을 ‘억압’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반사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내러티브의 바깥에서 울려나오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는 윤리적 가치를 갖기도 한다. 결국 기억 연구가 갖는 실천적 의의는 너무나 소박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전복적인 다음과 같은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기억인가.(전진성 / 부산교대·서양사)

 

 

 

 

기억연구의 르네상스(2) 한국 기억연구의 흐름과 과제

인간의 기억은 개별적 사실이 퇴적되어 보존된 결과가 아니다. 기억의 주체가 처한 상황과 현재적 관심 등에 따라 그 편차는 천양지차다. 기억은 다층적 차원의 현재, 심지어 기억주체가 과거를 회상하는 그 순간의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성·변화한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기억은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점차 국가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의 출현을 계기로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한 이미지 체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흔히 이를 공식기억이라고 말하며, 교과서는 공식기억을 담아내는 가장 상징적인 기억물이다. 

한국에서 공식기억 내지는 교과서적 기억에 대항하는 기억의 본격적인 구성작업은 1987년 6.10 민주화 운동 전후부터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좌파와 사회주의운동처럼 지난 시기 소외되었던 역사를 규명하고, 4.3과 5.18처럼 강요된 침묵으로 인해 탄식만을 내뱉어 왔던 역사에 대한 사실을 복원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냉전의 그늘에 가려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북한을 실사구시 차원에서 바로 알려는 학문적 접근도 본격화되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고, 이듬해 사회주의권의 맹주 소련이 몰락함으로써 냉전은 해체되었다.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자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미쳤다. 1990년 김학순 할머니의 자기고백으로 본격화한 일본군 ‘성노예’문제 등 전후 보상 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안팎에서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원인과 전개과정 등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부터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작업까지 공식기억을 생산하는 작업방식과 동일하였다. 문헌자료에 근거한 진실규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접근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동춘의 표현대로 오랜 세월 동안 ‘조직적 은폐와 강요된 망각’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전쟁과 사회’).

이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구술이었다. 드러난 한국역사의 새로운 이면을 파헤치려는 구술 작업이 집단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여자에 대한 구술 채록 작업부터였다. 뒤를 이어 4.3과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구술 작업이 이루어졌다. 최근 들어서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2004년부터 구술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과거청산 관련 각종 위원회에서도 구술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구술 작업은 면담자와 증언자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구술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하고 싶은 말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 인생 선배로부터의 삶을 배우려는 자세를 포기한 채 ‘약탈적 수집방법’을 반복해 왔다. 때문에 구술자가 면담자의 질문에 따라 단순히 과거경험을 말하는 것을 넘어 이를 해석하면서 재생산해내는 과정에서 기억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민중의 기억을 재현하여 민중사를 쓰겠다는 연구에서조차 이 한계는 극복되지 않았다. 기억의 민주화를 가로막는데 구술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구술사 연구는 소개된 서구의 이론을 섭취하면서 10여년 이상 발로 뛴 경험의 결과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농경사회이자 역동적인 한국사회의 특징에 맞는 한국적 구술사 방법론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이산가족’, ‘구술사 : 방법과 사례’).

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과거의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에서부터 진보대 보수의 구도로까지 이어지는 태생적인 제한성 때문에 현재적 정치투쟁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각종 위원회가 주도하는 과거청산작업이 지속되고 있어 기억투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런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억연구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데서 여전히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의 기억연구는 사실 규명 못지않게 과거가 기억되고 그 기억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며 개개인의 일상으로까지 이월되는 전승체계 또는 재현체계를 연구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어 희망적이다(‘항쟁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

 

 

 

 

전진성의 표현대로 한국의 기억연구는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 나아가고 있다. 이항대립적인 기억연구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의 문화사 연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사 연구에서까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기억의 주체로 내세우려는 증언자 중심주의도 더욱 뿌리를 내려 한다(정혜경, 이용기, 양현아). 기념물과 문화매체, ‘임시적 정체성’과 관련된 기억연구처럼 다양한 연구영역을 개발하고 있으며(‘전쟁과 기억’), 더 나아가 근현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간성, 남한을 벗어난 공간성을 확보하는 비교연구쪽으로 나아가고 있다.(‘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과거’, ‘분단의 두 얼굴’,‘8·15기억과 동아시아적 지평’).(신주백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기억연구의 르네상스(3) 서구 기역연구 동향

기억 연구는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영역에 국한시켜볼 때, 기억 연구의 호황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기억의 터” 연구의 등장이었다.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에 걸쳐 총 7권으로 출간된 대작 ‘기억의 터’는 좁은 의미의 ‘기억의 장소’를 넘어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적 행위와 기호, 그리고 기억을 구축하고 보존하는 기능적 기제들을 총 망라하여 프랑스 민족의 기억을 집대성했다.

노라의 ‘기억의 터’는 사회심리학자 모리스 알박스의 선구적 업적으로부터 영향 받았다. 알박스는 1925년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을 출간한 이래 특유의 “집단 기억” 이론을 펼치며 기억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구조 그리고 기능방식을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지녔던 알박스는 기존의 ‘역사’ 이데올로기가 은폐해 온,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폭로하는데 주된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집단기억에 ‘수렴’되지 않는 개별 기억들을 간과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집단기억이 특정한 ‘공간’을 매개로 구축된다는 그의 학설은 후대의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박스와 노라의 선행 연구를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킨 것은 독일의 문화과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가 정립한 “문화적 기억” 이론이었다. 그것은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위해 문학 작품을 비롯한 각종 텍스트, 신화와 종교적 제의, 기념물 및 기념 장소, 문서보관소 등 다양한 재현의 ‘매체’를 통해 기억이 제도적으로 공고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국역된 알라이다 아스만의 저서 ‘기억의 공간’(경북대학교출판부, 2003)은 기억 연구의 문화과학적 확장을 위해서는 필독서다. 여기에 사이먼 샤마(Simon Schama)의 미술사 연구서 ‘풍경과 기억’(New York, 1995)과 제임스 영(James E. Young)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연구서 ‘기억의 직물’(New Haven, 1993) 까지 곁들이면 기억과 예술적 재현의 문제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얻을 수 있다.

기억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 기억의 윤리적 차원에 대한 연구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 특히 ‘트라우마’ 증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재현의 체계 내에 쉽게 편입될 수 없는 고통의 심연에 대한 진지한 공감과 책임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트라우마적 기억에 관한 논의는 주로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관련해 이루어졌는데, 이중 미국 역사 이론가 라카프라(Dominick LaCapra)의 저서 ‘역사 쓰기, 트라우마 쓰기’(New  (Baltimore and London, 2001)는 그 문제 의식의 깊이로 인해 돋보인다. 기억 연구의 ‘윤리적 전환’은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식민주의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데 있다. 국역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저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갈무리, 2005)은 이러한 문제 의식의 보고이다.(전진성 / 부산교대 · 서양사) 

06.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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