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동문선, 2007)에 대한 리뷰를 옮겨온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6&title_down_code=002&article_num=8585). 요즘은 출판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이재원씨의 리뷰이다(낮에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글쓰기의 영도>에 대해서는 '바르트-글쓰기의 영도-진중권'이란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1501205)에서 출간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나로선 쌓아두기만 한 책을 이렇듯 미리 읽고 리뷰를 쓰는 이도 세상엔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책인지라 아마도 가장 자세한 리뷰가 될 듯싶다(필자와 나는 취향이 아무래도 비슷한 모양이다).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최근 다시 번역돼 나온 <지식인이란 무엇인가>까지 덩달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컬처뉴스(07. 11. 02) 바르트를 '바르게' 읽는 한 가지 방법

어느 사상가의 사유를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흔하게는 ‘주요 저작’을 징검다리 뛰듯이 읽는 방법도 있고, 해당 사상가에 대한 입문서에서부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내가 선호하는 방법은 ‘전작’(全作) 읽기인데, 그것도 발간 연도별로 읽기이다. 이 방식의 단점은 전작이 모두 국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흔하고, 그럴 경우 원서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바르게’는 ‘옳게’(right)가 아니라 ‘정당하게’(just)에 가깝다. 즉, 내 식으로 사상가를 읽는 것도 정당한 방법이다, 혹은 그렇게 읽는 것이 한 사상가를 사상가로서 대접해 주는 정당한 방법이다.

어쨌거나 내 식으로 보면 우리는 이제야 롤랑 바르트(1915~1980)를 사상가로서 맞이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바르트의 데뷔작 『글쓰기의 영도』(1953)가 ‘드디어’ 국역됐기 때문이다(사실 이 책은 지난 1994년 『영도(零度)의 에크리뛰르: 기호학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국역된 바 있다. 정확히 말하면 국역이라기보다는 ‘외계어’역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

바르트는 20세기의 주요 사상을 다 넘나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맑스주의, 실존주의, 기호학,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탈구조주의 등 바르트는 단 한 번도 특정한 사조에 오래 매여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바르트를 단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일체의 수식어를 뺀, 말 그대로의) ‘비평가’일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영도』는 바로 그 ‘비평가’로서의 바르트가 지닌 사유의 맹아를 담고 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이 책 이후에 발표된 바르트의 모든 책은 이 책의 기본 논지에 대한 확장이나 수정, 혹은 거기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가깝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식이 됐듯이 『글쓰기의 영도』는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의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에 대한 응답으로 씌어졌다. 당시의 젊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사르트르를 비켜가기란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바르트와 사르트르의 이론적 조우, 혹은 대결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글쓰기의 영도』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신속한’ 반박이었다. 『글쓰기의 영도』가 출간된 것은 1953년이나, 이 책은 원래 알베르 카뮈(1913~1960)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일간지 『콩바』의 1947년 8월 1일자에 동명으로 연재를 시작한 기사들이 기반이 된 책이다. 사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자체도 사르트르가 창간한 잡지 『레탕모데른』 17~22호(1947년 2월~7월)에 연재된 기사들이 기반이 된 책이니, 바르트는 사르트르의 연재가 끝나자마자 당시 시간감각으로서는 실시간으로 사르트르를 비판한 셈이다. 가령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비판 중 무게감 있는 또 다른 글로서는 모리스 블랑쇼(1907~2003)의 「문학과 죽음에의 권리」가 있는데, 이 글은 1948년 1월에야 발표됐다(이 글은 조르주 바타이유[1897~1962]가 편집장으로 있던 『크리티크』 제20호에 발표됐다).

게다가 바르트의 비판은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그 도발성은 『글쓰기의 영도』 제1장의 제목이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점에서도 쉽게 확인되는데(『문학이란 무엇인가?』 제1장의 제목도 「글쓰기란 무엇인가?」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사르트르의 야심찬 프로그램, 즉 ‘참여문학’(littérature engagée)이라는 프로그램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점에서 그 도발성은 근본적이기까지 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참여문학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전후의 냉전시기를 살아가는 작가로서는 당대의 지배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즉, 혁명의 가능성)를 대중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 지유에 직접 몸담기 위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는 것. 그래서 사르트르는 혁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언어’(langue)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style)로 전달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르트르가 시(여기서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아니라 산문(여기서 사르트르는 『레땅모데른』 식의 저널리즘을 염두에 두고 있다)을 특권화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바르트가 보기에 스타일은 언어를 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혹은 바르트가 보기에 사르트르는 스타일과 ‘형식’(form), 더 나아가 ‘장르’(genre)를 혼동하고 있었다. 바르트에게는 스타일 자체도 언어처럼 “하나의 고유한 자연과 같은 것”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언어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반해 스타일은 ‘개인사적’으로 형성된다는 점뿐이다. 즉, 대문자 역사(Histoire)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듯이, 소문자 역사(histoire) 역시 우리의 선택 밖에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주장대로 스타일 역시 우리의 선택 밖에 있다면 우리는 사르트르처럼 특정한 스타일, 더 나아가 특정한 장르(즉, 산문)를 특권화할 수 없게 된다. 요컨대 바르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특정한 스타일을 낳은 ‘역사’를 비판해야지, 그 스타일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혹은, 다르게 말하면 이미 스타일 자체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지배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특정한 ‘글쓰기’(écriture)만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바르트가 말하는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작품이 지닌 내적인 속성 일체, 예컨대 어조, 에토스, 리듬, 분위기 등의 총체를 말한다.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언어와 스타일은 대상들이다. 반면에 글쓰기는 하나의 기능이다.” 즉, 작가는 이미 자신에게 자연처럼 주어져 있는 언어와 스타일을 버릴 수는 없고, 단지 그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목적에 따라 글쓰기라는 방식으로 그것을 변모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르트에 따르면 글쓰기 자체도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글쓰기조차 “대문자 역사와 전통의 압력을 받아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압력 속에서 글쓰기조차 “점진적인 응결의 모든 상태들”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로서는 자유로운 언어를 창조하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는데, 언제나 그것은 규격화된 형태로 작가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궁지가 있으며, 그것은 사회 자체의 궁지이다.”



예컨대 바르트가 자기 저서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칭찬해마지 않았던 (특히 『이방인』에서의) 카뮈의 글쓰기, 즉 ‘영도’(Degré zéro)의 글쓰기조차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타일의 이상적 부재 상태”를 보여준 글쓰기, 그래서 일체의 이데올로기 혹은 “한 언어의 사회적‧신화적 특징들”에서 벗어난 “중립적인 글쓰기”이자 “무색의 글쓰기”(l’écriture blanche)였던 카뮈의 혁명적인 글쓰기마저 오늘날에는 부르주아 문인들에 의해서 ‘좋은’ 프랑스 문학의 전범으로 제시되지 않는가?

『글쓰기의 영도』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향한 직격탄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르트의 주장은 영원히 혁명적일 수 있는 글쓰기(혹은 사르트르의 스타일)는 없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런 점에서 참여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르트르가 너무나 간단히 치유하려 했던 “현대 작가들의 상황”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밝혔던 것이다(사르트르는 이듬해인 1948년과 13년 뒤인 1965년, 각각 「검은 오르페우스」라는 글과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강의를 통해서 바르트의 비판에 대해 신속하게/때늦게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바르트는 현대 작가들의 임무에 대해 사르트르처럼 명쾌하지 말하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오히려 사르트르보다 현대 작가들의 상황을 더 정확히 짚어낸다. “문학적 글쓰기는 역사의 소외와 역사의 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필연성으로서 그것[즉, 문학적 글쓰기]은 언어들의 찢김, 계급들의 찢김과 분리할 수 없는 찢김을 증언한다. 자유로서 그것은 이런 찢김의 의식이고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노력 자체이다.” 소외와 꿈 사이에서 진동하는 ‘시시포스’, 그도 아니면 소외될 것을 알면서도 꿈꾸기를 그치지 않는 ‘시시포스’, 그것이 바로 바르트가 보는 작가들의 형상이다.



바르트는 『글쓰기의 영도』를 쓰던 당시 카뮈를 필두로 한 프랑스 현대 작가들의 글쓰기를 “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고유한 수난극에서 마지막 에피소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때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에피소드가 ‘마지막’(last)으로 끝날지 그도 아니면 ‘최근’(latest)의 것이 될지는 오늘날의 작가들이 새로운 에피소드를 일으킬 수 있을지 없을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어쨌든 비평가 바르트는 그때 이후로 30여 권 분량의 책을 집필하며 그 시시포스로서의 운명을 당당히 헤쳐 나가다가 1980년 2월 25일 차에 치었다. 이는 카뮈가 자동차 사고로 죽은 지 약 20년하고도 52일 뒤의 일이었다. 영국의 문예이론가 테리 이글턴(1943~  )의 말을 살짝 비틀어 말해보자면, “신은 실존주의자도, 구조주의자도 아니었다.”(이재원_출판기획자)

07.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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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7-11-02 23:15   좋아요 0 | URL
아, 흥미롭군요. 비교해가면서 봐야겠어요.

로쟈 2007-11-03 11:00   좋아요 0 | URL
좋은 독서법이십니다.^^

열매 2007-11-03 02:10   좋아요 0 | URL
이 서평을 읽고 이재원씨가 이번에 번역된 책을 꼼꼼히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교보에서 이 책을 사서 한 챕터 정도 영역본과 비교해 본 결과 이 번역본에 대해서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 저로서는 , 이 서평이 번역서평으로서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이 책의 가치 평가를 하는 의미 정도는 있을지 모르겠으나--서평자가 번역본으로 읽었는지, 바르트에 관심이 있어 다른 판본으로 읽었는지도 이 글로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개인적으론 국역본으로 읽은 것 같진 않다는 판단을 합니다.제가 읽은 번역본과 영역본(그 불어 원본)과 판본상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을 제시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말이지요 -- 국역본의 가치를 평가해 주는 서평은 아닌 것이지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읽은 이후에 김웅권 번역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번역 역시 꼼꼼히 체크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lefebvre 2007-11-04 10:39   좋아요 0 | URL
열매/ 위 글을 쓴 이재원입니다. ^^;; 예, 사실을 말하면 이번에 번역된 <글쓰기의 영도>는 읽기가 좀 어려운 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일례로 제가 인용한“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고유한 수난극에서 마지막 에피소드”라는 구절 중 제가 "수난극"이라고 쓴 부분을, 김웅권 씨는 "열정"이라고 옮겼죠. 그러나 불어본도 그렇고 영어본도 그렇고 대문자 Passion을 써서 (그리고 맥락상으로도) 저는 "수난극"이라고 정정해 인용했습니다(이런 사실까지 적기에는 제게 주어진 지면이 너무 짧아서......). 그런 점에서 확실히 위 서평은 반쪽만 "번역서평"이죠. ^^;; 그러나 <영도(零度)의 에크리뛰르>보다는 확실히 읽기가 편합니다. 그리고 책을 증정받은 출판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돈 주고 샀다면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ㅠ.ㅠ 저는 국역본을 읽다가 어색한 부분을 영어본을 참조해 이해(?)했고, 국역본과 영어본이 너무나 많이 차이나는 부분은 불어본을 참조했습니다. 언제쯤 좋은 책들을 국역본으로 안심하고 읽을 수 있을지...... ^^;;

부리 2007-11-03 09:00   좋아요 0 | URL
맘 잡고 읽었는데 스타일과 쟝르...여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 특정한 글쓰기밖에 선택할 수 없다에서는 그냥 외웠답니다^^ 전 바르트가 구조주의자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샤르트르와 바르트가 서로 대화를 했다는 점 등이 새로 깨달은 점입니다 역시 이런 글은 줄치면서 읽어야....^^

로쟈 2007-11-03 11:03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을 올려야 부리님의 댓글을 접할 수 있군요.^^ 바르트는 구조주의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 맞습니다.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사르트르에게 한방 먹이는. 다만, 구조주의 이전과 이후(포스트구조주의)를 두루 보여준다고 생각되네요...

열매 2007-11-03 15:54   좋아요 0 | URL
워낙 국역본을 안 읽고 서평을 쓰는 학자분들을 많이 보아서인지 흥분한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이 탄생하게된 그땅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에 못지 않게 그 책이 이 땅에서 가지게 될 의미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서평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사상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 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 책은 김웅권씨의 상당수 번역이 그러한 것처럼, 국역본 외 다른 판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판본임에 틀림없습니다. 도대체 이 출판사는 자신들도 읽지 못하는 책들을 지치지도 않고 꾸역꾸역 왜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김웅권씨는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저작들을 왜 번번히 망치는 것일까요? 신성대사장님께서는 <전교조의 정체>같은 책은 잘 만들어내시면서, 십팔기十八技에만 너무 매진하시지 마시고 자신들이 만든 책에도 신경 좀 써주시길 하는 자그마한 바램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목숨이 날아가는 <무덕武德>을 아신다면 말이지요.

로쟈 2007-11-03 16:11   좋아요 0 | URL
번역/오역에 대한 문제제기는 저도 많이 해온 것인데, 김웅권씨의 번역이 모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라마톨로지> 같은 경우에도 이전에 나온 민음사본이 더 낫다고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전공자라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번역서를 내는 건 아니라는 게 제 경험적 판단입니다. 이건 단칼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깜냥있는 역자들이 나서주길 기다리기만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아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번역에 관한 사회적 피드백입니다. 서로 읽고 지적하고 고쳐나가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좋은 번역들이 걸러지거나 산출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열매 2007-11-04 00:51   좋아요 0 | URL
김웅권씨의 번역에 대한 개인적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안쓰러운 번역'입니다. 나름 고민하며 정말 애쓴 것도 같은데, 글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는.
그이의 번역은 저자의 문체를 휘발시켜 버립니다. 아무리 좋은 문장도 그저 전달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밖에 얻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김웅권씨의 번역은 일단 믿지 못하는 편인데, 근래 나온 고전들에 대한 그의 번역들은 별로 신뢰할만하지 않습니다. 그의 과욕이 불러온 것인 만큼 오역에 대한 오욕은 그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그라마톨로지>는 비전공자가 오랜 전공 공부의 내력이 필요한 책을 맘대로 번역하면 어떤 꼴이 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을 토막내서 풀기는 했는데, 어김없이 저자의 개념어에서는 엉뚱한 오역을 합니다.
선생님과 그 책을 한줄한줄 짚어가며 읽으면서 전공서적을 왜 전공자가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해여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로쟈 2007-11-04 00:45   좋아요 0 | URL
오역에 대한 지적도 구체적으로 해주시면 좋겠네요(열매님의 활동을 기대합니다.^^). 굳이 번거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 게 한국 학계의 풍토이지만 덕분에 발전이 없는 것도 한국 인문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써 번역하지 않고, 애써 지적하지 않고, 애써 '진탕'에 발을 빠뜨리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냉소(주의)밖에 없지요...
 

현재 러시아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알렉산더(알렉산드르) 소쿠로프 영화제가 현재 열리고 있다(10월 30일에 시작되었고 11월 4일까지다). 한두 편 정도는 보려는 계획이었지만 역시나 여러 가지 밀린 일들 때문에 관람일정을 불투명해졌다. 씨네21에 이 특별전에 관한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영화에 대한 기사를 읽는 것보다는 물론 직접 관람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겠으나 그런 행복은 골고루 나뉘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지들은 내가 따로 덧붙인 것이다.

씨네21(07. 10. 24) 미술, 죽음, 그리고 데카당스의 미학, 소쿠로프 특별전

지금 활동 중인 감독 중 데카당스 미학의 계승자를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돋보인다. 죽은 비스콘티가 부활한 듯 그는 퇴폐적이고 타락한 질병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의 정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몽상과 유령, 질병과 죽음의 검은 세상에서 그의 미학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모아 상영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특별전이 10월30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문의: www.cinemathequeseoul.org).

러시아의 무명감독이었던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서방에 이름을 알리게 된 데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이 컸다. 타르코프스키는 소쿠로프가 70년대에 국립영화학교(VGIK)에 다닐 때 그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소쿠로프라는 젊은 감독이 있다. 거장이 될 재목이다. 정부의 탄압을 받아 정상적인 활동을 못한다. 서방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르코프스키의 입을 통해 재목으로 지목된 젊은 감독 소쿠로프(1951~)는 서방 영화인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며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와 소쿠로프

당시 타르코프스키는 서유럽에서 <향수>(1983), <희생>(1986)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러시아영화의 품격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다. 그가 아끼는 제자 소쿠로프도 서방세계로 데려와야 한다는 움직임이 당연히 제기됐다. 그런데 1986년 타르코프스키가 갑자기 죽고, 소쿠로프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했다.

소련 정부가 무너지자 소쿠로프는 다시 기억됐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됐으니 그도 스승처럼 서구로 옮겨 활발한 작업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소쿠로프는 서구로 이주하는 대신 러시아에 남아 자신의 영화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세기의 역사가 뒤바뀌는 숨막히는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만든 다큐멘터리가 <러시아 엘레지>(1993)이다. 죽어가는 조국에 대한 감독의 애가(哀歌)다. 그는 에세이풍의 다큐멘터리에 모두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여 작업했는데, <러시아 엘레지>는 그중 하나이자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볼 수 있었던 그의 첫 작품이었다.

영화는 시커먼 화면으로 시작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만 들린다. 소쿠로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은 알겠지만 이는 감독의 클리셰 중 하나다. 그의 영화는 모든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명상에 다름 아니고, 그래서 죽는 자의 단말마는 그의 영화에서 자주 듣게 되는 소리다. 죽어가는 존재 러시아, 감독은 조국의 광활한 대지에 안타까움의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엘레지>가 공개된 뒤 유럽 영화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소쿠로프 열풍이 불었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4)에서 본 듯한 광대한 들판과 바람에 몸을 눕히는 풀밭 등 러시아영화 특유의 풍경화도 매력적이었다. 유럽의 시네마테크들에서 소쿠로프가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엘레지’들이 속속 소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 자연과 죽음의 대조

소쿠로프의 명성이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1997)이다. <러시아 엘레지>에서도 나타났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얼마나 서양미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의 화면이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와 닮았는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좀 과장하자면 영화의 장면은 모두 서양미술의 간접적인 인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러시아의 바다가 보이는 어느 시골에서 아들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이것뿐이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로 비극의 고통을 전달하는 것은 숭고의 경지에 이른 영화의 풍경화 덕분이다. 프리드리히처럼 소쿠로프의 영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는 죽음에 대한 명상인데, 그 명상은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들의 고통을 자연이 대신 묘사한다. 감독 특유의 길고 긴 롱테이크의 화면에서 아들은 깃털처럼 가벼워진 어머니를 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어 애간장을 태운다. 영국 화가 존 에버릿 밀레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소녀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눈 먼 소녀>(1856)처럼 대지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아들의 가슴에 안긴 어머니는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며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과 죽음의 대조가 비극의 슬픔을 더욱 배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발표된 뒤 소쿠로프는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로, 또는 예술영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소개되며 칸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된다. 20세기 정치가 4인을 선정, 4부작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됐고, 히틀러를 대상으로 한 첫 작품 <몰로흐>(1999)가 공개되며 감독의 영화세계는 더욱 폭넓게 소통됐다. 그가 히틀러의 삶을 다룬다고 해서 논란의 대상이 된 <몰로흐>에서 다시 확인됐지만, 감독이 관심을 두는 것은 권력가 히틀러가 아니라 ‘죽음 앞의 인간’ 히틀러였다. 영화는 정치가 아니라, 여전히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후 레닌을 다룬 <황소자리>(2000),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2004)까지 3부작이 발표됐는데(*<태양> 대신에 영화계에서 <더 선>이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세 작품 모두 감독의 오래된 주제인 ‘죽음’을 명상하는 에세이들이다.

 

2001년 그는 <여행 엘레지>를 발표하며 자신의 예술창작의 뿌리가 미술에 있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몽유하는 듯한 어느 여행자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꿈같은 내용이다. 방랑자는 자기가 꿈속에 있는지 현실에 있는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며, 벚꽃이 휘날리는 밤을 배경으로 취한 듯 걷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계속 미술관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방랑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단지 그의 1인칭 독백만 들을 수 있다. 이러니 방랑자는 영락없는 유령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육신이 없는 목소리는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에서 어느 풍경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죽은 공간 미술관에서, 죽은 자의 목소리가, 죽음의 세계인 그림 속으로 들어가겠다니, 이는 바로 소쿠로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데카당스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죽음은 실존의 고통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미학의 대상으로만 위치짓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어머니와 아들>은 물론이고, 이의 후속편 격인 <아버지와 아들>(2003)에서도 반복된다.

<러시아 방주>, ‘One Single Tracking Shot’의 놀라운 테크닉

미술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최고치에 이른 작품이 <러시아 방주>(2002)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감독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도 가장 성공했다. 형식은 <여행 엘레지>와 비슷하다. 1인칭 독백이 들리고,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한다. 단 한 사람 이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18세기 초에 활약했던 프랑스 귀족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이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들어서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는 이 궁전에 온갖 복장과 가면으로 치장한 화려한 귀족들이 함께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궁전 내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고, 우리는 당시의 공연예술의 한 단면과 이를 즐기는 러시아 귀족들의 태도를 볼 수 있는 것이다(*유튜브에서 거의 전장면을 차례로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dHG5Zk_EDEg).

여기까지가 대략 15분쯤 되는데, 이 모든 도입부의 시퀀스가 단 하나의 숏으로 구성돼 있다. 소쿠로프의 영화에 워낙 롱테이크가 많아, ‘이 정도는 보통이지’라고 생각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방주>는 99분 전체가 단 하나의 컷으로 구성된, 원숏 원신(One Shot One Scene) 영화다. 덧붙여 끝없이 트래킹 장면이 이어진다. 원숏 트래킹이라는 전무후무한 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소개될 때, 이런 기술적인 부분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One Single Tracking Shot’,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이 떡 벌어지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겨울궁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귀족과 목소리’는 계속 돌아다니며 그림을 구경하고 품평하는데, 이 모든 액션이 단 한번의 컷도 없이 진행된다. 이들은 무려 33개의 방을 이동하며 그림을 본다. 또 중간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3번 듣는다. 물론 라이브다. 수천명의 배우들이 주인공들의 주위를 지나친다. 이런 휘황찬란한 기술을 보기에 관객은 그만 넋이 빠지는 것이다.

사실 기술적인 면이 지나치다보니 역설적이게도 <러시아 방주>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감이 있다. 이 영화도 소쿠로프 특유의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그런데 그런 명상에 빠지기 이전에 몽타주없이 굴러가는 필름의 마력에 휘둘리다보니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중심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러시아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

시간과 공간의 통일을 의도적으로 깨는 것도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이다. 영화는 18세기 말로 시작했지만, 곧바로 현대의 에르미타주와 뒤섞인다. ‘귀족과 목소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러시아의 역사를 여행한다. 이들이 ‘이탈리아 화가의 방’에서 그림 품평을 할 때면 러시아의 현대인들이 나타나 함께 토론을 벌이는 식이다. 그러고보니 주위는 어느덧 현대의 관광객들이 걸작들 앞에서 그림 구경하기에 바쁘다. 루벤스, 반다이크, 엘 그레코,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그림들은 물론이고, 카노바의 우윳빛 조각들, 그리고 이름없는 장인들이 만든 가구와 그릇들까지, 겨울궁전의 그 모든 유품들이 감탄의 대상으로 눈앞에 전개된다.

소쿠로프에게 겨울궁전은 노아가 살아가기 위해 만든 방주에 다름 아니다. 인류의 생존을 건 방주, 곧 겨울궁전이 있기에 인류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역설이다. 그 궁전에는 모든 죽음의 흔적들이 보존돼 있는데, 바로 그런 죽음들을 보존함으로써 인류는 생존해간다는 것이다. 그 복판에 에르미타주가 있다는 러시아의 자부심이 내재돼 있음은 물론이다.(한창호_영화평론가)

07.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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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1-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제만큼은 저도 갈려고 마음먹고있습니다 그래봤자 일요일 오전일텐데 말이지요...

로쟈 2007-11-03 10:58   좋아요 0 | URL
생각 같아서는 저도 3-4편 보고 싶지만(제가 전에 본 건 두 편입니다)사정이 여의치가 않네요.--;

섬나무 2007-11-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이런 부러운 순간들에 중심부에서 밀려나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폐기처분될 위기에 있던 광주영화제가 간신히 숨을 잇게 되었다는 사실에 흔감해하는 중입니다. 처음엔 미비하거나 허술한 점만 눈에 들어오던데 이젠 제발 살아만 있어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보고 싶은 영화군요.

로쟈 2007-11-03 10:56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쿠로프의 회고전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소쿠로프는 대중적인 영화감독은 아닙니다. 유튜브에 그래도 여러 영화의 장면들이 올라와있네요...

섬나무 2007-11-05 11:11   좋아요 0 | URL
전주는 지리적으로 가까와서 전주영화제 2회부터 하루에서 이틀쯤 영화를 보러 가지요.영화제 덕분에 전주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소쿠로프는 대중적인 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로쟈 2007-11-05 13:11   좋아요 0 | URL
소쿠로프는 러시아에서도 대중적이지 않지만, 열렬한 지지자들(특히 평론과 이론쪽)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영화비평/이론서 하나도 소쿠로프에게 바쳐지고 있더군요...

테렌티우스 2007-11-0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 있을 때 아르테에서 영화와 메이킹 오브를 보았는데 정말 한시간 40분을 원테이크로... 정말 놀랍지요. 중간에 카메라 감독이(감독이 30 몇 킬로인가 되는 스테디 캠이던가 여하튼 그 카메라를 들고 1시간 40분을 방에서 방으로 옮겨다니는데 등장 인물도 무도회 장면부터 해서 수백명 수준입니다) 시작하고 한 20분이던가 나오는 무도회 장면 직전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파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았는데 너무도 아름다고 화려한 그 장면에서 정말 거짓말 같이 고통을 잊고 다시 촬영을 했다(사실 다시가 아니라 카메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물론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요)는 얘기를 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그게 두번째 시도일 거예요... 아마 그전 실패한 첫 시도는 시작하자 마자 5분 정도후에 어떤 이유론가 중단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확실치 않지만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영화가 너무도 훌륭하고 좋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러시아 방주>, 정말 아름답고 좋은 영화였어요.

로쟈 2007-11-03 10:54   좋아요 0 | URL
메이킹 필름은 저도 러시아에서 TV로 본 적이 있습니다. 실은 그게 더 재밌더군요.^^ 영화는 링크해놓은 유튜브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섬나무 2007-11-0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일까지 연장상영 한답니다. 서울에 계신 분들에겐 좀 더 기회가 주어졌네요. 부럽긴 하지만 광주에는 광주극장이 있지요. 자랑을 하자면 좀 길어지는데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결혼 후 살게 된 광주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광주극장 입니다. 아마 전국에서도 얼마 안남은 단일관이구요 1930년대부터 운영된 극장입니다. 현재의 소유주인 젊은 이사님이 영화를 좋아하시다보니 돈이 안되는 영화전용상영관을 운영하게 된 것이지요. 광주에서 명물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광주극장을 꼽습니다.큰 극장에 관객이 평소 댓명을 넘기지 않지만 오늘도 '영화사 걸작선'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로쟈 2007-11-03 11:31   좋아요 0 | URL
광주에도 그런 '자랑거리'가 있었군요.^^
 

미나리들에 대해 적는다.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미나리'들이 정겹고 안쓰럽다. 내가 미나리 사촌쯤 되는 처지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미나리들도 아니다. 두 편의 시에 등장하는 미나리들에 대해 적는다. 하나는 권혁웅의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민음사, 2007)에 실린 시 '저 일몰'에 나오는 미나리다(나는 순전히 미나리 덕분에, 라면 과장이지만, 이 시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당신도 마음에 들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건 나의 미나리일 뿐이니까.

그대 마음이 만만(滿滿)했다고
내가 거둬낸 건 거품일 뿐이라고
터지 미더덕에 덴 혀로
더듬거리는 저녁이 내게도 있었지
저 일몰 어디쯤
내가 앉기를 거절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을지 몰라
그래서 온통 붉었던 건지도 몰라
레인지에 올려 둔 해물탕처럼 딱 한번
끓어넘치고는
굳기름처럼 어두워졌을지 몰라
입가에 묻은 술기를 닦아내며
먼 곳의 취기거나
수위를 가늠하는 시간, 나도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
못생긴 아이 하나쯤은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풀죽은 미나리가 동서(東西)를 모르듯
여기까지 오려고 온 것은 아니라고 

일단 배경은 해물탕이다. "그대 마음이 만만"했다는 건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는 뜻이겠다. 다 끓은 해물탕처럼. 문제는 나. 하지만, '나'는 '거품'이나 거둬낸다. 고작 터진 미더덕에 혓바닥이나 데면서 실없는 소리나 더듬거렸겠다. 한마디로 '현명한 등신' 같이 처신한 그런 저녁이 있었겠다. 이런저런 계산으로 마음 복잡했을 저녁 식사 자리.

결국 "레인지에 올려둔 해물탕처럼 딱 한번/ 끓어넘치고는/ 굳기름처럼 어두워졌"던 것이 '나'의 마음이겠다. 잠시 '다른 삶'을 화끈하게 꿈꾸어보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입가에 묻은 술기를 닦아"냈을 법하다. 이젠 먼 곳으로 물러앉은 '취기'가 꿈꾸었을 다른 삶이란 어떤 삶인가? '수위를 가늠하며', 곧 냉정하게 따져본다.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 못 생긴 아이 하나쯤을 데리고 올 수 있었"을 삶이다. 그 다른 삶의 끝간데? '머리를 푼'에 상응하는 것이 '풀죽은 미나리'이다. 동서(東西)를 모르는 미나리란 앞뒤를 재지 않는 미나리이다. 그런 미나리다운 변명이 "여기까지 오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는 게 아닐까? '나'에겐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의 또다른 삶에 대한 욕망이 잠시 끓어넘쳤지만 따져보면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이 아니며 결국엔 '후회'하게 될 삶이다. '풀죽은 미나리'의 푸념만이 남을 삶이다. 그래서 '나'는 '저 일몰'의 유혹에서 비껴난다.

이 시의 '이야기'는 그렇게 읽힌다. 하지만 그 이야기와 무관하더라도 "풀죽은 미나리가 동서(東西)를 모르듯"이란 비유는 절묘하다. '동서(東西)'를 아는 것들은 이 절묘함을 모르리라...

 

 

 

 

이 '풀죽은 미나리' 때문에 떠올리게 된 또다른 미나리는 '복어탕의 미나리'이다. 시인이었던 소설가 이응준의 시 '어둠의 뿌리는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간다'에 등장하며 이 시는 <나무들이 숲을 거부했다>(고려원, 1995; 작가정신, 2004)에 수록돼 있다. 다소 길지만 전문을 인용하면 이렇다(시집을 손에 들고 있지 않기에 인용은 온라인에서 따온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 속에서 망망대해를 떠돌더라도 살아남고 싶어했던 그 아버지의
아이는 이렇게 자라나
진 자가 되었다. 나는
가끔 내 오른 손목 동맥 근처의 송충이 같은 칼자국을 바라본다. 나는
적어도 책 한 권에 인생이 변했노라고 말하는 비열한 인간은 되기 싫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원숭이들이 대충 무슨무슨 원숭이로 분류되는 것처럼 나와
내가 사랑햇던 그대의 種名은 지난날이다. 저
걸레로 닦아내고 싶은 검은 안개다. 쉽게 말해서 나는
여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반짝이는 이유가, 그들의
잎사귀 앞면과 뒷면의 푸름이 다르기 때문임을 너무 일찍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대라는 도끼가 찍고 난 뒤에 파인
떡갈나무의 바로 그 자리, 진물이 흐르는
상처가 되고 싶었다. 헐떡거리며 뭍에 오른
아가미이고 싶었다.

창밖 보름달이 홍역을 앓고 있다. 바로 그때 나는
방에 엎드려 성산문은 죽고 한명희는 정승이 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문장으로 쓰고 있던 우울이었다. 그저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기 바라던 사람들의 물살에 휩쓸려 가고 있을 뿐이었고

-바다의 금붕어
-늪의 상어
-태양 아래 두더지

라고 그들은 나를 표현햇다. 어쩌면
사랑하는 그대로 그랬는지 모른다. 치욕과 멸시가 아교의 끈적끈적한 감촉으로
내 산책에 닳은 구두 밑창을 햝던 그해, 나는
수음 직후의 뿌연 형광등 불빛 같은 생을
물 말아 먹어버렸노라고 고백했지만
도대체가 그들은 나를 복어탕의 미나리 정도로밖에는 생각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 혈관에
쥐약 1g의 치사량이라도 있었더라면 피에 물들지도
눈물에 번지지도 못했던 이 슬픈 옷깃에 묻은
안개의 굵은 입자 따윈
쉽게 털어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비로소 누군가에게 나는 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낱말들을 어려워하고 심지어는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기에 내 죄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다. 눈물이 마른 자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도,
오늘이라는 노비문서에 불을 지르는 법도, 어둠의 뿌리가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올라간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다.

한때(아직 20대였다!) 복사해서 가방에 넣어다니기도 했던 시인데(그런 시들이 좀 된다), 다른 구절들은 차치하고 요는 "도대체가 그들은 나를 복어탕의 미나리 정도로밖에는 생각해주지 않았던 것이다"란 시구에서 '복어탕의 미나리'란 은유가 얼마나 절묘한가라는 것이다. 한 서점의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나는 시인에게 이 구절이 얼마나 경탄스러운가를 말했지만 그는 뜨듯미지근하게만 답했다. 이런 구절이 정겨운 건 아무래도 나 혼자 미나리 사촌이어서가 아닐까도 싶다. 

요컨대, 미나리들에 대해 늘어놓는 나는 '복어탕의 풀죽은 미나리'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소 위안이 된다. 미나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미나리 아닌 것들은 미워하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여기저기 해물탕들이 끓고 있겠다...

07.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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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11-0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물탕이나 끓여 달라고 와이프한테 이야기하면 욕먹겠죠? -_-a
요즘 많이 다운되신것 같은데 기운내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7-11-01 23:05   좋아요 0 | URL
가을철에 좀 우울한 거야 감기만큼이나 흔한 병이죠. 저는 매운탕 대신에 라면 끓이고 있습니다.^^

2007-11-0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1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7-11-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끔찍하게도 좋아하는 야채가 바로 미나리인데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복어탕에 들어 있는 미나리는 먹어 보지를 못해서 그 미나리의 심사가 어떠한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미나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엄마가 하도 미나리 무침을 안 해줘서 국민학교 5학년때인가 미술 선생님 집앞 또랑에 해질녘까지 숨어 있다가 미나리를 서리한 기억은 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엄마가 미나리 무침을 해줬는가는 기억이 역시 안 나고, 미나리 훔치려고 또랑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지리한 시간 동안 휘영청 밝기만 했던 달빛은 기억이 나는군요. 사는 게 하긴 뭐 그렇죠.

로쟈 2007-11-02 00:29   좋아요 0 | URL
정말 '끔찍하게도' 좋아하셨군요.^^

瑚璉 2007-11-02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어탕의 미나리는 굉장히 맛내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는 좀 와닿는 것이 없는 싯구네요(^^).

로쟈 2007-11-02 01:23   좋아요 0 | URL
그게 비교대상이 '복어'입니다. 복어냐 미나리냐...

수유 2007-11-0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겨자간장에 찍어먹는겁니다. 뜨거운 해물탕 위에 고스란히 얹혀져있는 그것들을 겨자간장에 듬뿍 적셔 먹으면 아주아주 맛있답니다 향이 살아나지요. 미나리는 미나리꽝을 생각나게 하고 미나리꽝은 거머리를 떠올리게 하며 그리하여 온전히 익지 않은 미나리에선, 또는 미나리꽝에 발을 담그고 있다간 거머리의 유충들이 살아, 또는 그 유충들의 어미가 우리 살 속을 파고들지도 모릅니다..우울하십니까? 나말고 우울한 이가 또 한사람 있으니 다행한 노릇.

로쟈 2007-11-02 19:50   좋아요 0 | URL
미나리꽝은 꽝이군요.^^ 그래도 저는 토성의 영향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현대비평과 이론>(2007년, 봄-여름호)를 손에 들었다(원래는 가을-겨울호를 사려고 했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몇 권이나 팔릴까 싶은 잡지인데, 나는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일년에 두 번 나오는 게 다행이다!). '정명환의 문학과 학문'이 특집이어서 생각난 김에 '정명환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하지만 그가 대표작으로 꼽는 책들 가운데 <한국 작가와 지성>(1978), <졸라와 자연주의>(1982)는 절판된 지 오래이고 <문학을 찾아서>(1994)는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리스트가 반쪽짜리밖에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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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가 적은 말. "내가 읽은 사르트르는 정명환과 박이문이 읽은 사르트르이다."
문학을 생각하다
정명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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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환의 평론집은 몇 권 되지 않는다. 해서 다 사두면 된다.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
정명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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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갖고 있는 책.
현대의 위기와 인간
정명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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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무게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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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1-04 13:45   좋아요 0 | URL
<문학을 찾아서>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품절이라니, 저 역시나 아쉽고 안타깝군요.
 

내일자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다루고 있다. 문득 20년전 대학시절이 떠올라 기사를 옮겨놓고 몇 자 적는다. 아마도 그해 여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함께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으로 읽었던 이 시집은 <비가>와 함께 비의적인 매혹을 품고 있어서(사실 시보다도 발레리의 '정신'이 더 매혹적이었다) 이후에 발레리의 책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주섬주섬 사모았던 기억이 있다. 젊은 날 시를 쓰고 한 20년 절필을 해야지, 하고 마음 먹은 것도 내 딴엔 발레리 흉내쯤 된다(그 20년이 다 돼 간다!)...

Поль Валери Об искусстве

내가 아끼는 책은 러시아어판 <예술론>(1993). 3년전 모스크바대학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책이다.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어 발레리는 몇 권 되지 않는다. <나르시스는 말한다>(태학당, 2000)나 <발레리 선집>(을유문화사, 1999), <젊은 운명의 여신>(혜원출판사, 1987) 등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젊은 시절 옮긴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와 함께 한국어로 나온 시집들이고 산문집으론 <드가-춤-데생>(열화당, 1977), <발레리 산문선>(인폴리오, 1997), <신체의 미학>(현대미학사, 1997) 정도가 나와 있는 듯하다(그밖에 두어 권의 연구서가 있다). 개인적으론 영역본 산문집들을 몇 권의 한국어본에 보태어 갖고 있다. 여하튼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간에 모아놓기만 한 책들을 미처 읽지 못했는데, 삶의 의욕이 수시로 저하되는 요즘인지라 한번쯤 뒤적여보고 싶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릴케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발레리의 모습.  

한국일보(07. 10. 30) [오늘의 책<10월 30일>] 해변의 묘지

1871년 10월 30일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정점에 올려놓은 시인이자 20세기 최대의 산문가로 꼽히는 폴 발레리가 태어났다. 1945년 74세로 몰. 가장 잘 알려진 발레리의 시는 <해변의 묘지>다. 남불 항구도시의 수부(水夫)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지중해는 언제나 정신의 고향이었다. 죽어서 그는 고향 해변의 묘지에 묻혔다.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김현(1942~1990)은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연 첫 구를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번역했지만, 개인적으로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는 번역이 우리말로는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20세기말 한국의 한 시인은 이 구절을 이렇게 변주하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남진우의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에서).

“언어의 한쪽 끝에는 음악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대수학이 있다.” 시에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시를 지향했던 발레리의 엄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발레리에 감동한 릴케가 발레리의 평생의 지기였던 앙드레 지드에게 보낸 편지에 쓴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모든 작품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발레리를 읽었다. 그리고 내 기다림이 끝이 난 줄 알았다”는 구절은 유명하다. 경구처럼 쓰이는 문장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발레리의 시구다.(하종오기자)

07. 10. 29.

P.S. 그래, 내게 그만한 호사가 허락된다면 죽어 해변의 묘지에 묻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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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0-3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 풍경이 이쁩니다.

로쟈 2007-11-01 21: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도 고른 사진입니다...

필라멘트 2007-10-3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선생이 번역한 프랑시들을 읽으면서 자주 느끼는 거지만 교수나 비평가가 번역한 시는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시번역 만큼은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번역하는 게 좋을 듯 한데요. 물론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그리 흔하지는 않겠지만요. 황동규 시인이 번역한 엘리어트 시나 강은교 시인이 번역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번역자들이 시인들이어선지 번역이 무난하더라구요.

로쟈 2007-11-01 21:21   좋아요 0 | URL
가장 좋은 번역은 역시 전문학자나 번역자가 시인과 공역을 하는 것이죠. 러시아의 경우 한국시(조)선 번역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아흐마토바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초역은 번역자가 하고 그걸 '시'로 만드는 것이죠...

뭉실이 2007-10-3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추워진날씨에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는
싯구가 확 땡긴다는...*^^*

로쟈 2007-11-01 21:22   좋아요 0 | URL
콧등이 때리는 북서풍이 불면 사정은 또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