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교수신문에서 기사를 옮겨온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58). '영화비평 쇠퇴론'에 대한 현장 평론가의 비판을 담고 있다. 필자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평론가 유운성씨이다.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읽어보고 스크랩해둔다. 이 주제에 관해 씌어진 글들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게 아닌가 싶다(동업자들끼리는 상식일지 몰라도). 적어도 가장 깔끔하게 씌어졌다.

교수신문(07. 12. 03) "'침묵’은 적극적인 비평적 제스처다”

동시대 영화비평이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영화비평이라는 것이 (예컨대 한때의 문학비평에 맞먹을 만큼의) 대단한 영향력을 지녀본 적도 없는 이곳에서, 벌써 그것의 쇠퇴에 관한 소문이 떠도는 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기서 영화비평의 쇠퇴 운운하는 이들이 과연 어떤 이들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그들이 짐짓 취하는 애도의 제스처는 사실 그 이면의 음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은폐하기 위한 假裝(가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1990년, 영화비평은 興했는가
정작 쇠퇴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쇠퇴를 애석해하는 것은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亡者(망자) 없는 장례식장에서 목 놓아 곡을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곡이란 슬픔의 전염을 위한 감상적인 의식에 불과하며 슬픔의 최면술을 위해서라면 장시간 곡을 대신해 줄 이를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영화비평의 쇠퇴에 대해 말한다는 건 가짜 장례식장의 텅 빈 관에 눕힐 만한 시신을 찾아 헤매는 우스꽝스러운 작업이 돼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니 다시 물어보자. 장례식을 마련해 두고 시신을 찾아다니는 암살자들은 과연 누구인가를.

1990년대는 한국에서 영화문화가 급부상한 시기로 일컬어진다. 불완전하나마-특히 번역의 질이라는 측면에서-유용한 영화관련 서적들이 조금씩 출판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영화전문지들이 창간됐고, 비디오 대여점들은 호황을 누렸고, 예술영화관들이 문을 열었으며, 영화학교 및 대학 영화과엔 신입생들이 몰렸고, 학생영화 및 독립단편영화 제작의 붐이 일었으며, 지금은 아시아 제일의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바야흐로 영화적 교양이 문화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정작 그러한 교양의 범위와 역사성을 생각해보는 작업은 다소 거추장스러운 일로 여겨진 시기이기도 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형식의 실험가로 추앙받은 반면 존 포드는 오직 서부극, 그것도 <수색자>의 존 포드로만 논의됐다. 이른바 현대영화라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고전영화에 대한 반발에서 유래한 것이라기보다는 고전영화를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영화적으로 ‘번역’하려는 지난한 시도의 산물이었다는 인식 같은 건 전혀 들어설 여지조차 없었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이나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이 ‘전복적인’ 작업으로 오해되고, 레오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이 예술영화로 선전되는가 하면,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구도자적 풍모와 망명의 삶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모델을 발견하는 등,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믿음이 가능했던 것도 1990년대가 영화적 교양의 범위와 역사성을 누구도 자문해보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교사·교도관의 비평과 왜곡된 교양주의
이런 상황에서 영화비평은 크게 두 갈래의 흐름으로 나뉘어졌다. 첫 번째는 敎師(교사)의 비평이라 칭할 만한 것이다. 영화를 ‘읽기’ 위한 고유한 독법이 있으며(시네마 리터러시), 한 편의 영화 이면에는 다양한 숨은 의미들이 있다는(징후와 해독) 주장은 이들 교사들이 즐겨 설파하는 강령이었다. 교사의 비평이 1990년대 영화문화에 적잖이 기여한 것도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학도나 문학청년으로 이전 시기를 보냈던 이들이 영화교사의 길을 택하면서 성립된 것이란 점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영화를 읽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상황이 반대였더라면 우리는 영화적 서커스에 불과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엔 볼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교도관의 비평이다. 영화작품과 영화관련 서적의 수입 및 소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지금 이곳에서 당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며 그것들을 뛰어넘는 빼어난 작업들이 저기 바깥에 얼마든지 있음을 역설하는 전문가들의 존재는 쉬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마련이다. 물론 이는 한국 영화문화라는 특정한 울타리의 경계를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그것이 1990년대의 영화광들을 사로잡았던 왜곡된 교양주의-예컨대 “너, 이 영화 봤어? 그럼 이 영화는?”이라는 식의-와 조우함으로써 초래된 폐해도 적지 않다.

영화적 교양은 영화작품의 내면화와 수용의 과정을 통한 세계의 재인식이 아니라 상상적 라이브러리의 항목을 늘려가는 작업으로 그릇되게 정의됐다. 또한 영화비평의 교도관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깥의 존재를 역설하는 것이지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 문이 열린다면 그들은 서둘러 또 다른 울타리를 기어이 만들어내고야 만다. 이 왜곡된 시도는 다음과 같은 신념을 정당화한다. 한 편의 영화는 아직 그것이 소개되지 않았을 때에만 가치 있는 것이라는. 예컨대 타르코프스키 영화예술의 위대함을 역설하던 많은 이들은 정작 <희생>이 극장에서 개봉되고 나자 그에 대해 말하기를 중단했다.

여하간 이건 다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이후 한국의 영화문화는 빠르게 변모해갔다. 영화관련 문헌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우리는 영화비평계의 교사들의 한계를 깨닫게 됐고 예술영화관 및 시네마테크의 설립과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감상이 보편화되면서 교도관들의 울타리 또한 점차 무력해졌다. 영화전문지들은 점점 독자를 잃어갔고,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 대여점들은 차례로 문을 닫았으며, 예술영화를 본다는 건 더 이상 유별난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반면 영화학교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각종 영화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나는 리뷰어와 영화학자 사이에 위치한 영화비평가의 작업은 일차적으로는 통찰, 수사, 품격 그리고 나아가 취향과 윤리적 입장이 어우러질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을 낳는다고 본다. 리뷰어가 정보를 전달하는 이라면 영화비평가는 취향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는 자이다. 영화학자가 분석과 논리에 기댈 때 영화비평가는 자신의 윤리적 입장을 내세워야 한다. 하지만 취향과 윤리적 입장이 모호했던 교사와 교도관의 비평은 그 변종들에 의해 삽시간에 대체됐다.

점점 암호해독자의 작업에 가까워지던 교사의 비평은 적절히 수사를 구사해가며 ‘제법 품격을 갖춘 보도자료’에 가까운 글을 써내는 영화기자들의 글쓰기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교도관들의 울타리는 영화제 카탈로그와 예술영화관의 팜플릿, 그리고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의 정보전달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단적으로 말해 영화비평은 광고들에 의해 대체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사이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비평적 자질을 갖춘 영화비평가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들의 비평적 글쓰기는 광고성 글쓰기로 가득한 영화전문지 편집자들에게 남은 한 줌의 부채감을 위무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었다. 

암살과 자살
그리고 바로 이 때, 영화비평의 쇠퇴 운운하는 자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파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비평이 광고로 대체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비판조차도 광고로 활용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사실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영화에 영화비평가가 가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은 비판이 아니라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침묵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이 불가능할 정도로 영화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는 시대엔, 침묵은 비평적 소임의 방기가 아니라 사실 적극적인 비평적 제스처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위장된 비판의 게임에 뛰어드는 건 사이비 비평가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비평이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식의 물음에 답해야 할 것 같다. 발터 벤야민은 비평가에게 있어서 상급심은 대중이 아니라 동료들이라고 쓴 적이 있다. 한국 영화비평이 독자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대중이 비평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예술로서의 비평은 대중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이제는 영화비평가들조차 동료들의 비평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특정한 영화에 대한 찬반양론이 영화비평가들 스스로의 세계관과 윤리적 입장을 건 진검승부가 아니라 영화잡지 편집인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기획자의 머리에서 출발하는 이벤트로 전락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이건 암살자들의 추적에 자살로 대응하는 것과 같다.(유운성_영화평론가)

97. 12. 09.

P.S. 필자의 다른 글들을 찾아보다가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에 대한 짧은 리뷰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씨네21(04. 06. 11) 박진감 넘치는 키에슬로프스키 읽기

폴란드의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그의 영화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었고 이 영화는 1990년대 한국의 영화광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던 예술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뒤이은 삼색 연작은 잠깐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패로 간주되었고 곧 잊혀졌다. 물론 마땅히 걸작으로 불려야 할 <십계> 연작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다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폴란드 내에서는 한때 참여적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들을- 예컨대 <야간경비원의 시선>이나 <카메라광> 같은 영화들- 만들던 키에슬로프스키가 후기에 가서 점점 심리적이고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영화들을 만드는 것에 대해 만만찮은 비판들이 가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The Fright of Real Tears | 슬라보예 지젝 지음 | 오영숙 외 옮김| 울력 펴냄)는 이러한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무엇보다 그의 후기작들에 대한 정치한 구원비평으로도 읽힐 수 있지만(특히 3부), 지젝의 목표는 좀더 광범위하고 야심적이다. 바로 전반적인 인문학적 사유의 위기와 함께 난관에 봉착한 영화이론을 대안적인 라캉적 독해를 통해 구원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체주의/페미니즘/포스트-마르크스주의/정신분석/문화이론 등의 ‘이론’(Theory)과 데이비드 보드웰과 노엘 캐롤을 수장으로 하는 인지주의적 ‘포스트-이론’ 내지는 ‘탈-이론’(Post-Theory)의 ‘사이’에서 키에슬로프스키를 읽어내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이론과 포스트-이론 사이의 키에슬로프스키’가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확실히 지젝의 이 저서에 자극제가 되었던 것은 <소셜 텍스트>에 게재된 유명한 패러디논문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앨런 소칼의 저서 <지적 사기>와 정신분석학적 영화이론에 반기를 들고 나선 보드웰과 캐롤의 편저 <포스트-이론> 같은 책들로 인해 빚어진 좌파이론가들 내부의 위기감과 반감이었을 것이다. 지젝은 특유의 정교하고도 유머 넘치는 문장, 그리고 재해석된 헤겔적 개념들을 통해 경험주의적 이론이 가정하는 보편성의 허구를 논박하는가 하면, 이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정신분석학적 봉합(suture)이론을 새롭게 조명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언뜻 딱딱하기만 한 이론서일 것도 같지만 책에 언급된 (그리고 이제는 국내에서도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들을 함께 보면서 찬찬히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이만큼 박진감 넘치는 이론서도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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