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기사에 러시아에 관한 내용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필자는 러시아사 전공자인 한정숙 교수이다.

경향신문(07. 12. 08)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41)멀고도 가까운 러시아

글쓴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지난 11월 하순에 주한 러시아 부대사인 티모닌 박사의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한국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로 재직했던 역사학자이자,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러시아 대표단 부단장으로도 활약하는 외교관이다. 강연에서 그는 주로 한국과 러시아 학자들의 역사인식 문제를 다루었고, 역사인식에서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그는 일반적 한국인들은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의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6자 회담의 성공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티모닌 박사는 러시아는 남북한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확립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바라며, 따라서 6자회담도 성공하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그 사례로 마카오의 BDA은행에 동결되어 있던 북한 자금을 러시아가 자국 중앙은행을 통해 북한으로 송금할 수 있게 한 것을 거론했다.

그 자리에 모인 청중은 박사의 열띤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질문을 들은 순간부터 강연이 끝난 후까지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반적 한국인들은 과연 그 질문자가 말한 것처럼 러시아는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적대 세력이라고만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단지 질문을 좀 미숙하게 한 것일 뿐일까.

해방 후 소련이 북한 정권을 지원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소련에 대한 남쪽 사람들의 두려움은 컸다.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종식되고 러시아가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후에도 그 여파는 남아 있다. 제정 러시아의 제국주의 정책과 러·일전쟁의 기억까지 덧붙여져 러시아에 더 심한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다 체제전환 과정에서 보인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혼란상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중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부 인사들은 아예 한반도 평화 논의에서도 러시아를 배제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동아시아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나라인 데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대국 중에서 우리와 과거사 문제, 고대사분쟁, 영토분쟁, 군대주둔 등의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지 않은 나라다. 동아시아 자체에서 다른 요인들로 인해 대립과 갈등이 펼쳐지지 않는다면 러시아가 이를 조장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냉전시대적 편견과 불안감을 벗고 이 나라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좋은 동반자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동아시아의 만남-
동아시아와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만났다. 동아시아도 러시아도 비슷한 시기에 몽골제국의 지배와 간섭을 겪었으며, 사람과 물자의 교류 속에서 살았다. 원제국의 수도에는 러시아인 수공업자, 병사들이 끌려왔기 때문에 이미 13~14세기에 적지 않은 러시아인들과 동아시아인들은 얼굴을 맞대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몽골인이나 타타르인들 가운데 러시아에 귀화하여 러시아인과 결혼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접촉의 첫 단계에서 동아시아가 러시아로 갔던 데 비해, 다음 단계에서는 러시아가 동아시아로 왔다. 1480년에 몽골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러시아는 차츰 몽골제국의 옛 영토를 차지했고, 몽골제국의 잔여세력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동쪽으로 나아갔다. 몽골제국의 수중에 들어온 적이 없는 광대한 시베리아 지역까지 모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러시아와 국경분쟁이 일어나면서 청나라가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자 조선이 지원군을 파견했으며, 그리하여 이른바 나선정벌을 통해 조선과 청의 연합군이 러시아 군대와 맞붙기도 했다.

러시아에 동아시아는 주된 관심지역은 아니었다. 유럽 지역에 사는 러시아 지배층에 동아시아는 너무 멀었고 시베리아는 경제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제국주의 열강의 영토쟁탈전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면서 러시아는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동아시아에서도 이해관계의 충돌을 겪게 되었고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려면 이 지역에서도 입지를 굳혀야 했다. 19세기 중반, 서아시아 및 서남 아시아에서 서유럽 열강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특히 크림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앙아시아를 거의 장악한 이후에는 세력의 공백지대처럼 되어 있던 만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산업 부르주아지는 시베리아를 통해 중국에 러시아의 물품을 판매하고 태평양 함대를 지원하며, 태평양을 통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기를 원했다.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를 통해 동아시아와 북태평양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부설하였다. 이 철도의 부설은 1891년에 시작되어 1916년에 완공되었는데, 페테르부르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게 된 철도의 노선 일부는 부설 당시 러시아 영토에서 만주로 들어와 중국 동북부지역을 길게 휘감은 후 다시 연해주를 향해 나아갔다. 이러한 노선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쪽 관계자들은 청의 실력자였던 리훙장에게 300만 루블이라는 엄청난 거금을 뇌물로 약속하기도 하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러시아는 동부 시베리아와 동아시아로 밀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의 결과로 조선이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러·일전쟁이 한반도 지배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간의 싸움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러시아 제국이 조선을 직접 지배하려 계획한 증거는 별로 없다. 러시아 지배층의 주된 관심은 만주를 장악하는 것이었고 그러기에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만주로 넘어오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여겼으며, 여기에서 일본과의 충돌이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인들은 일본의 경우처럼 러시아인들과 직접 전쟁을 하거나 나라 전체가 서로 적대관계에 놓인 적은 없다. 러시아와 일본의 접촉은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림전쟁에서 대결 중이던 영국·프랑스와 러시아는 캄차카 반도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항구를 군함의 정박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러시아는 3개 일본 항구의 이용권을 보장받는 대신 쿠릴 열도 영토 일부를 넘겨주고 사할린을 양국통치 아래 두기로 약속하는 시모다 조약을 맺었다. 영토분쟁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러·일전쟁의 패배 결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 때문일까. 레닌은 그의 저서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서문에서 제국주의 지배를 받는 나라의 예로 코리아를 특별히 언급했고 러시아 혁명 후에는 한인 혁명가들이 러시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러시아 속의 아시아, 아시아 속의 러시아-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를 받은 이래, 유럽인들은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러시아를 “아시아적 사회”라고 불러 왔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블록은 이에 반기를 들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의 한 핵심적 요소로서의 아시아성을 자부심과 함께 확인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스키타이인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이다”라고 썼다. 러시아 자체 안의 아시아적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군의 논자들은 유럽에 대비되는 유라시아 사회로서의 러시아 사회의 성격을 강조하며 유라시아주의를 선포하기도 하였다.

아시아 속에도 러시아가 깊이 들어와 있다. 몽골은 러시아 혁명 후 두번째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여 유지했고,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받아들여 공식문자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어느 때보다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6년에는 중국에서 ‘러시아의 해’가 선포되었고 러시아는 2007년을 ‘중국의 해’로 선포하였다. 일본은 러시아와 영토갈등을 겪고 있지만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의 채굴권 때문에라도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그리고 한국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남북한 어느 쪽과도 적대하지 않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야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정착을 위해 소중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유럽-러시아-아시아를 잇는 매개체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철도로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보다 더 긴 철도가 둘이나 있다. 하나는 모스크바와 평양을 잇는 철도이며, 다른 하나는 키예프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철도이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 철도가 연결된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철도를 통해 모스크바를 거쳐 서유럽까지 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꿈을 꾼다. 이는 경제적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정신적 풍요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한반도 남쪽은 북쪽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반도가 아니라 섬의 상태에 있다. 대륙과 육로로 연결되지 않는 공간인 것이다. 공간적 협착성은 시야의 제한, 사고와 상상력의 한계를 낳는다. 대륙으로부터 강제로 배제당하지 않고, 대륙 어디든지 육로를 통해 다닐 수 있다면 굳이 국가의 영토로서 이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아쉬울 것이 있겠는가. 러시아가 동아시아에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한국인들의 삶의 스케일도 얼마든지 더 넓어질 수 있다.(한정숙|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07.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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