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약간 과음(?)을 한 탓에 오늘이 주말이란 걸 좀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봐야 '열심히 일한 당신, 주말엔 더 열심히!'족에 속하는지라(나름 천민이군!) 별로 득이 될 만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덕분에 주말 북리뷰들을 다소 뒤늦게 둘러보았다. 정신이 확 깨게 하는 책은, 이번주에도 없었다. 나올 만한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을 뿐이고, 덕분에 안 읽은 책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따름. 책마다 사정은 다 달라서 별로 읽을 일이 없어보이는 책이지만 그래도 리뷰는 챙겨두고 싶은 책도 있다. 이번주에는 김석수 교수의 <한국 현대 실천철학>(돌베개, 2008) 같은 책이 그렇다. 한겨레에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5808.html). 

한겨레(08. 06. 28) 우리들의 일그러진 실천철학

“우리의 철학은 우리의 현실 속에도 없었고,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철학 속에도 없었다.” 조선의 신문학사는 이식문화의 역사라는 임화의 주장이 숱한 문학연구가들을 번민케 한 것처럼, 한국 현대철학사도 그렇다. 서양철학이 한반도에 들어온 지 100여년이 지났거니와, 그 시발점이 되는 기간이 일제 강점기였다는 것은 문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통의 단절이라는 ‘사상의 크레바스’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폭압적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당위는 “혁명하는 심장과 개혁하는 두뇌”를 필요로 했으므로 현실-이론의 거리를 좁혀 치열한 성찰을 하도록 사유의 형식을 빚어냈으나, 민족주의에 과도한 부하를 얹게 됨으로써 수입된 서구 이론에다 작위적으로 당대 현실을 끼워 맞추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것은 철학의 근본 정신인 자유가 훼손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며 “현실의 한을 푸는 일에 철학이 동원되어 버리게 되면, 철학은 그 본래의 고유한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기가 십상이다.” 자유와 비판 정신을 잃은 실천철학이 철학적 실천에 나설 때 어떤 결과를 불러들이는가. 지은이가 꼽은 문제적 인물은 열암 박종홍(1903~76)이다.

박종홍은 한국 실존주의의 효시라고 평가받는바 “어중간한 철학은 현실을 떠나버리지만 완전한 철학은 현실을 인도한다”라는 카를 야스퍼스의 문장을 인용하며 현실 참여를 부르짖었다. 6·25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한국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그는 실존주의를 끌어왔다. 그는 무엇보다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홍이 내세운 ‘힘 있는 철학’은 현실의 모순을 관념적·주관적으로 극복해선 안 되며 ‘신체적 노작(勞作)’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실존철학의 주관성을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를 개념화한 것이 향내·향외(내향·외향)이며 “향내적인 자각을 통하여 무(無)에 부딪쳐 다시 향외적으로 돌아오는 창조의 길”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 실용주의, 실존주의의 한계를 긋고 이것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원전 분석을 통한 문헌학적 전문연구가 미흡했고, 학문의 본질에 대한 반성적 탐구에다 인접 학문과의 유대도 부족했다는 등의 한계가 있음에도 당대의 철학자들은 빈곤한 현실에 맞서 고군분투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박종홍이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박종홍의 철학적 행보는 자율이 아니라 억압, 활력이 아니라 권력,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앞세우는 데 다다랐다. “눈물 바가지를 부숴버리고 열등감을 벗어나, 새날을 위해 싸워야 하며, 전진해야 한다”면서 ‘유신은 민족 중흥을 실현하려는 과제’라고 서슴없이 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철학적 파탄은 그가 제출한 ‘힘 있는 철학’에서 도출된 것으로 건설·창조의 논리가 민족주의·반공주의·국가주의와 궤도를 같이한 점에 원인이 있다.

극도로 가난하고 불안에 처한 조국을 근대화하려면 힘이 필요하며 그것은 국민의 의식을 ‘개조’해야 한다는 정열은 그 자체 현실 부정의 논리이지만, 이를 추동했던 박정희 정권의 정책과 부신(符信)처럼 들어맞으면서 역설적으로 유신의 정신적 토양에 밑거름이 돼 버린 것이다. 그 극단에 국민교육헌장이 있는바, 현실의 모순을 혁파해야 한다는 부정과 창조의 정신이 “새로운 사회적 인간 형성, 새로운 민족의 창조”로 굴절되고 만다. 이를 이어받은 것이 전두환 정권 아래서 “우리에게는 저항해야 할 체제가 없고 다 함께 옹립해나가야 할 국가가 있을 뿐”이라며 국민윤리 교육론을 부르짖은 이규호와, 북한이라는 미친개를 때려잡기 위해 몽둥이(무력)를 준비해야 한다며 새마을 운동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상응혁명으로 일컬은 김형효다.

1·2부 가운데 앞부분이 이와 같은 한국 현대철학자들의 서구 실천철학 수용 양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들이다. 개인이 국가에 포섭돼 ‘자기 보존’(conatus essendi)을 위협받는 상황의 극명한 사례로 박종홍을 지목한 지은이는 그 대안으로 자율·인정·연대·자치의 개념을 제시한다. 칸트 전공자답게 그는 자신의 의지가 세운 주관적 원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하고 그 법칙을 존경하며 지키는 ‘자율’(autonomy)의 원리를 거듭 강조한다. “스스로 법칙을 세워 그 법칙을 스스로 수행하는 자율의 세계야말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 및 자립이 확보되는 사회”라는 믿음 때문이다. 박종홍이 멸사봉공을 말했다면 칸트는 개인의 사적 영역이 살아나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을 지지한 셈이다. 지은이는 이 밖에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스피노자의 재해석, 신합리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철학 사조들을 줄줄이 불러들여 80년대 이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 보는 글들을 2부에 모았다.(전진식 기자)

08. 06. 28.

P.S. 서점에서 잠깐 책의 목차를 볼 때도 든 생각인데, '한국의 실천철학'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리뷰를 읽고나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표적인 '실천철학자'들에 대한 소개/비판과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스피노자의 재해석, 신합리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철학 사조들을 줄줄이 불러들여 80년대 이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 보는" 것이 어떻게 병치될 수 있을까?(그런 대입도 '실천철학'인가?) 교재형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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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정홍수의 첫 평론집 <소설의 고독>(창비, 2008)이 신간으로 올라와 있다. 등단 이후 12만에 묶은 것이라고 하니 과작의 소산에 가깝다. 덕분에 떠올리게 된 것이 지난 봄부터 출간된 몇 권의 평론집들이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뛰어난 감식안과 유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평론집들이 출간되어도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하긴 '쇠고기' 탓으로 대부분의 문학/인문서들이 불황을 겪고 있다). 그런 탓인지 중견 비평가들의 평론집이 나오는 일도 점점 뜸해지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론에 대한 반론은 만만찮게 제시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보다 더 많이 팔린/읽힌 국내 비평서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래저래 고독은 소설만의 것이 아니다. '비평의 소외'라고도 부름직한 이러한 고독이 말년의 증상인지 신생의 진통인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몇 권의 평론집은 기억해두면서...   

P.S. 관련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5813.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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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8-06-28 10:32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경향신문 출연(?)을 축하드려요. 아는 분을 신문지면에서 만나니 반갑더라구요.

로쟈 2008-06-28 11:20   좋아요 0 | URL
무슨 기사인가 했네요.^^;
 

지난주 시사인의 칼럼이 문득 생각이 나서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0). '에세이스트' 김현진씨의 연재칼럼인데, '우리 안의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촛불 투쟁'은 승산이 없다고 주장한다. 시각 자체가 젊은 논객답지 않게 노숙(?)하다. 오래전에 읽은 칼럼마저 생각나게 한다(그래서 같이 옮겨놓는다).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고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 촛불 ‘문화제’ 때는 두세 번 참석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광우병에 대한 위협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고, 내 이웃과 가족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쓰러지게 될 거라는 상상은 SF영화처럼 낯설었다. 거리로 본격 뛰쳐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국 5월24일 이후였다. 처음에 거리로 나섰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8차선, 4차선 도로를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함께 걷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놀라워하면서도 불안해하고, 또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몰라 두려워했다. 그렇게 강제 진압이 닥쳐왔다. 바로 그날 이후부터, 퇴근 후 물먹은 솜 같은 몸을 말 그대로 질질 끌어서라도 광화문에 갖다두게 되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광우병은 멀었으나 물대포는 가까웠으므로.

처음에 구호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 “너나 먹어 미친 소”가 대부분이었지만, 폭력 진압이 거듭될수록 군중은 “이명박은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나 지도부 없이 비폭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분모는 분명히 존재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근심,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이다.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표를 주었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고해성사에 참여하듯 촛불을 켰다.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시사인(08. 05. 26) 그래도 우리는 MB와 대화해야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 겨우 3개월이지만 벌써 2~3년은 지난 것 같다. 대운하에 영어몰입교육에 0교시에 이중국적 허용에 쇠고기에…. 일 년에 한두 개 터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일을 꼽아보자는 이야기에 “투표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대답이 우스개로 나돌 정도니 국민이 느끼는 암담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을 이루는 이들이 부자라거나 아파트를 많이 가졌다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부자 정치인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정상적인 대화의 틀에 진입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을 배제한 채 쇠고기 협상을 진행한 뒤 “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라거나, 국민을 향해 손자 대하듯 “떼쓴다고 다 되는 것 아니다”라고 말할 리가 없다. 대통령의 측근도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땅 투기 의혹에 “땅을 사랑했을 뿐이다”라거나 “내 나이 11세 때 내 계좌에 있던 돈으로 아버지가 땅을 샀다”느니, 스칼렛 오하라에 워런 버핏이 따로 없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다. 시작은 고학생으로 미약했을지 모르나, 36세에 사장이 된 뒤 그의 인생은 심히 창대했다. 그는 자식을 위장 전입시켜 좋은 학교에 보냈고, 자기도 건축법 위반, 수뢰 의혹, 근로기준법 위반, 범인 도피, 사기 혐의 등으로 여러 사람 바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한 나라의 최고 공직자이자 동시에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 세를 준 건물 주인이며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세계에서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것이야 애틋한 부정일 터이며, 건축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사기 혐의를 받는 것쯤은 사업하다 보면 흔히 겪을 수 있고, 선거법 위반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일이리라.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그들’

훌륭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방법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저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실로 저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열렬히 믿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난 정말 땅을 사랑했다, 11세 때 내 계좌에는 정말로 돈이 많았다, 광우병 쇠고기가 무서우면 안 사먹으면 된다, 촛불 든 애들 공부하기 싫으니까 괜히 나와서 저런다, 집회 저거 배후 세력이 분명히 있다….

이 정권이 국민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자고로 사장과 직원 간 대화는 잘 안 된다. 사장은 직원을 끌어다 놓고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고는 “아 오늘 정말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라며 흐뭇해한다. 그런 사장 노릇을 몇 십년 한 이 대통령이 한순간에 그 습관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습관을 반드시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사원이 아니니까.

지금 상태에서 보면 그들을 정상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향한 대화를 포기할 수 없다. 희망이 안 보이면 끈질기게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대화하기를 체념하고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하며 그들을 포기해주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사인(07. 11. 26)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아버지와 대화하다 보면 과연 내가 이 사람의 직계비속이 맞는지 늘 의심하게 된다. 서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투다가 같이 핏대 세우고 있는 얼굴이 내 얼굴과 판박이인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사람 딸 맞구나 싶다. 그와 나는 이렇듯 거의 모든 면에서 취향과 견해가 다르다. 그는 공부를 사랑하고 나는 먹물을 혐오하고, 그는 분명 내가 모든 선거 때마다 민노당에 투표한 걸 알면서도 걸핏하면 나를 ‘노사모’라고 부르니 이건 뭐 어디에서부터 평행선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또 어영부영 잘 지내곤 하는 우리의 이 위태로운 평화는 최근 주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탓에 와장창 깨진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화끈하게 봉헌했을 때다. 신실한 개신교 목사로서 당시 그 발언을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평했던 아버지를 비롯해 모조리 독실한 신자인 이모들은 새벽마다 그가 대통령이 되라고 모여서 기도한다. 그런데 나는 그토록 뜨거운 기도를 받는 장로님이 하필이면 무대 위에서 성경을 찢고 생닭을 잡는 록 가수와 왜 그렇게 닮았는지 실없이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러면 또 그들은 나를 몹시 못마땅해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웃기를 그칠 수 없어서 피차 매우 곤란했다.

이명박 후보는 이번에 자녀들 유령회사 직원 등록 건으로 또다시 나를 화끈하게 웃기고 말았다. 아들딸을 본인 사업체 관리인으로 위장 취업시켜 8800만원을 탈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의 해명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딸이 결혼도 했는데 수입이 없어 집안 건물 관리나마 도우라 했고, 생활비에 보탬이 될 만큼 급료를 주었다”라는 것이다. 당신 일처럼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입을 꾹 다문 아버지 앞에 나는 그 집 자식들 부러워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 좋은 학교” 하면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좋은 학교 보내주고, “아버지 히딩크” 하면 히딩크와 사진 찍어주고, “아버지 돈이 없어요” 하면 “아버지 건물 관리나 해” 하는 아버지라니, 대통령 후보 이전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식이 바랄 수 있는 아버지의 최대치가 아닌가.

“옳지 못한 것 부러워하는 것도 죄다”

한참 웃다가 나는 문득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방금 내뱉은 말은, 100% 진심이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 때도 “아이고 우리 아버지면 얼마나 좋을까. 나한테 못되게 군 남자들은 죄다 야산에 묻혔을 텐데” 하고 농담 삼아 지껄인 것도 돌이켜보니 다 진심이었다. 정의가 실종된 부끄러운 아버지들의 제국을 만든 데 일조한 것은 뻔뻔한 자식들이었고, 그 아버지들의 힘을 더욱 강고히 만든 것은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사양하지 않으리라’ 는 자세로 그것을 바라본 나와 같은 ‘없는 집’ 자식들이었다.

옳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죄였다. 내가 이 후보의 자식 사랑을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내 아버지에게 그와 같은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버지가 너무 허약해서 기회가 없었을 뿐, 가능하기만 했다면 아버지가 먹여주는 단물을 얼마든지 빨았을 것이다. 제 가족, 제 집단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끄러운 아버지와 그것을 얼른 받아 삼키는 뻔뻔한 자식이 이루는 부정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근본에는 바로 나처럼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행여나 나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면 눈감아줄 준비가 언제라도 된 그 눈빛 역시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이란, 진보란, 좋은 날이란 이토록 호락호락한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올 리 없는 것인데도.

08.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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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6-23 08:54   좋아요 0 | URL
퍼 갈께요^^

로쟈 2008-06-23 23:33   좋아요 0 | URL
^^

BRINY 2008-06-23 10:55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인가 '속물이 뭐가 어때서? 다 그렇게 사는거야'라는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해진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그렇게 되어간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안그런 애들이 왕따 당하는 세상. 휴..

로쟈 2008-06-23 23: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IMF가 결정타였다고 봐야겠죠...

기록인 2008-06-23 10:00   좋아요 0 | URL
우리안의 이명박...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 꼭 집어 쓴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8-06-23 23:34   좋아요 0 | URL
꽤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마립간 2008-06-23 18:11   좋아요 0 | URL
http://www.newstoon.net/sub_read.html?uid=9484§ion=section2
김진호 미친소시리즈9

로쟈 2008-06-23 23:34   좋아요 0 | URL
같은 컨셉이군요...

스위스 2008-06-27 15:27   좋아요 0 | URL
중간에 있는 딩크횽아 사진 퍼갑니다.
 

한 대학원 신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자서전 특집기사의 한 꼭지로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플래닛, 2008)에 대해 적은 것이다.   

 

연세대 대학원신문(161호) 나비의 변태를 거친 기억의 아상블라주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는 제목만 따라가자면 프루스트와 함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입증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이토록 정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라는 경탄을 자아내는 ‘기억의 예술가’ 나보코프! 하지만 그의 ‘기억’은 ‘기예’가 아니다. 나보코프는 서문의 첫 문장에서 “이 작품은 개인적인 기억의 단편들을 그러모아 상호연관된 조직을 이루도록 조립해놓은 아상블라주”라고 규정해놓았다. ‘개인적인 기억의 단편들’이야 물론 작가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나보코프의 고유한 자산이겠지만 자서전은 그러한 단편적 자산들의 모음이 아니다. 그것들의 체계적인 아상블라주, 곧 배치이고 구성이다. 그리고 이 작업의 작업반장은 기억력만이 아니다.



나보코프는 한 비평가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기억력이 형편없는 열렬한 메모리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다. ‘메모리스트’는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보코프의 기억력은 ‘형편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모리스트’가 되는가? 그가 에세이집 <강한 의견>에서 털어놓는 바에 따르면 “상상력이란 기억력의 한 형식”이다.

 

 

나보코프가 보기에, 생생한 기억에 대한 예찬은 기억에 단편들을 저장해두었다가 나중에 창조적 상상력이 회상과 창작을 결합하여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 대한 예찬이다. 그가 자서전의 영국판 제목을 원래는 ‘말하라, 므네모시네’라고 지으려고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발음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기억의 여신’은 기억력과 상상력을 포괄한다. 이 둘은 서로 형제다. 그리고 기억과 상상이 하는 일이 모두 ‘시간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동업자이기도 하다 

 

 

나보코프에게서 기억과 상상이 한 통속이며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의 자서전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전체 15장으로 이루어진 이 자서전에서 프랑스어로 가장 먼저 씌어진 5장 ‘마드무아젤 오’는 나중에 영어로 번역되어 단편집에 수록되었고 7장 ‘콜레트’ 또한 ‘첫사랑’이란 제목의 단편소설로 발표되었다. 이 자서전 자체는 ‘비소설’로 분류되지만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가 나보코프에게서는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모든 사건의 객관적 존재 자체가 하나의 ‘불순한 상상’의 형식이며 창조적 상상력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은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니 ‘순수한 객관적 현실’이나 ‘순수한 기억’이란 개념이야말로 오히려 ‘픽션’일 따름이다. 따라서 진실은 언제나 기억과 상상의 창조적인 합성물이다.

 

 

 

 

나보코프가 이 자서전의 글들을 잡지에 연재하기 직전에 발표한 최초의 영어소설 <세바스챤 나잇의 참인생>(1938)에서 주인공 브이는 러시아 태생의 영국작가인 자신의 이복형 세바스챤 나잇의 전기가 결함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고 형의 ‘참인생’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혼이란 오직 존재의 방식에 불과하며, 한 영혼의 맥박을 발견하여 그대로 따라간다면 어떤 영혼도 당신의 것이 될 거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브이 자신이 곧 세바스챤 나잇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두 명의 ‘작가’가 등장하여 각각 기억과 상상을 통해서 자신의 진실을 찾아가는 <말하라, 기억이여> 또한 마찬가지의 도식을 보여준다. 이때 두 작가란 자서전의 주인공으로서의 ‘나’와 그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나’를 가리킨다. 가령, 출발점이 된 ‘마드무아젤 오’ 이야기에서 나보코프는 어린시절 늙은 여가정교사 마드무아젤 오의 매력이 ‘소설가 나보코프’가 다른 작품에서 그려낸 초상에서는 사라져버린 것을 애석해한다. 그에게 자서전은 “가련한 마드무아젤에 대한 남은 이야기를 살려보려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그 노력을 통해서 복원/창조해내고자 하는 것은 어떤 사건과 인물의 유기적 진실이다. 그것은 시인이 발견하고 창조해내는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을 정지시키는, 그리하여 무력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얻어진다 

 



나보코프의 문학관이라 할 만한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자들은 공간의 한 지점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살피는 반면에 시인들은 시간의 한 지점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느낀다. 11장의 ‘첫 시’에 나오는 이 대목을 그는 자신의 철학적 친구 비비안 블러드마크의 말이라고 인용하지만, ‘비비안 블러드마크’는 <롤리타>에 등장하는 ‘비비안 다크블룸’과 마찬가지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나그램이다. , 철자들을 재배열하여 만든 이름이다. 그러니 비비언 블러드마크는 나보코프의 철학자 분신이겠다. 이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시의 의의란 이런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시는 위치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의식으로 포용하는 세계에 관련하여 한 사람의 자리를 나타내고자 함은 태곳적부터 있어 온 충동이다.

Владимир Набоков Другие берега Conclusive Evidence

 

나보코프의 <말하라, 기억이여>는 바로 그러한 ‘태곳적 충동’에 따라 자신의 위치(자리)를 표시하려는 작가의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자서전은 그의 망명작가로서의 이력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자서전’답다. 그는 연재한 글들을 1951 <결정적 증거>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자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 증거!). 첫 번째 영어판이다. 그리고 1954년 아내의 도움을 받아 많은 단락들을 수정하고 보완한 러시아어판 <피안>을 낸다. 최종판으로서 <말하라, 기억이여>(1966)는 이 러시아어판을 다시 영어로 바꾼 ‘악마적인 작업’의 소산이다. 마치 “나비들에게 친숙한 몇 겹의 변태 과정”을 닮은 이러한 작업은 나보코프의 자부대로, 다른 어떤 인간들에 의해서도 시도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 자서전은 나보코프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08. 06. 22.

P.S. 나보코프의 <세바스챤 나잇의 참인생> 읽기는 http://blog.aladin.co.kr/mramor/190373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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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6-24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를 좋아한다더니 번역본 표지에 나비가 그려져 있군요.나비를 잡으려고 포충망을 든 사진을 아주 어렸을 때 본 적이 있습니다.

로쟈 2008-06-24 09:51   좋아요 0 | URL
좋아한 수준이 아니라 프로 연구자였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6-2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과연...
 

이번주에 나온 신간들 가운데 한권만 골라야 한다면 눈 딱 감고 <파워 오브 아트>(아트박스, 2008)를 집고 싶다. 저자인 사이먼 샤마는 저명한 미술사학자라고 하고, 책은 저자가 유럽 전역을 돌며 취재하고 만든 영국 BBC 방송 프로그램을 토대로 했다 한다. 부제는 '예술의 위대한 힘에 관한 여덟 편의 감동의 드라마'. 그 주연을 맡고 있는 여덞 명의 화가들 리스트는 이렇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교황이 사랑한 타락천사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기적을 만드는 남자
렘브란트 Rembrandt Harmenszon van Rijn 화려한 저택에 걸린 거친 그림들
다비드 Jacques Louis David 혁명보다 잔인한 아름다움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폭풍을 일으키는 그림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뜨끈하고 땀에 젖은, 화가의 다정한 악수
피카소 Pablo Picasso 예술보다 큰, 정치보다 힘이 센
로스코 Mark Rothko 말없이 그저 절절한, 색채와 감정의 드라마   

역자에 따르면, "카라바조부터 로스코까지 이 책이 소개하는 미술사의 거장 여덟 명의 작품들을 통해 지은이는 흔히 미와 쾌락이라는 예술의 본질이 결국은 피를 연상케 하는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어떤 것, 또는 피 흘리는 치열한 어떤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어떤 것, 또는 피 흘리는 치열한 어떤 것으로서의 예술' 말이다. '이번 주의 책'으로 손색이 없다. 아직 아무런 소개기사도 뜨지 않아서 그냥 리스트만을 만들어둔다(관련서가 너무 많은 렘브란트, 반 고호, 피카소 등은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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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아트- 예술의 위대한 힘에 관한 여덟 편의 감동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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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8-06-21 20:15   좋아요 0 | URL
반가운 책입니다. 비싸긴하지만.

로쟈 2008-06-21 20:43   좋아요 0 | URL
네, 좋아하실 만한 책이네요.^^

lifeisart 2008-06-22 18:43   좋아요 0 | URL
BBC 다큐 참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EBS에서 해줬었는데...
당장 사고픈 책이네요..."Art is about unleashing the floodgates of passion." 그가 했던 이 말이 기억나네요^^

로쟈 2008-06-22 20:58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여차하면 재방이라도 보고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