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리뷰기사 중 <옛사람의 눈물>(글항아리, 2008)에 대한 것을 뒤늦게 읽었다. 제목만으로는 눈물 나지 않는데, 기사를 읽다 보니 마음이 무겁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조선시대 '만시(挽詩)' 모음집이다. 만시는 종류도 다양해서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등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남을 대신해 지으면 ‘대만시’이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쓰는 건 ‘자만시’라고. '제망매가'가 만시의 '원조'쯤 되지 않을까 싶다. 삶과 죽음의 길이 멀리 있지 않다...

한겨레(08. 08. 16) 죽은 자를 애달파하는 남의 자의 토설

“통곡이 끝나도 또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 거두니 또 울음이 터지네/ 울음이 터짐에 또 무슨 말을 하랴/ 그저 애간장만 마디마디 끊어질 뿐”

조선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조태억이 둘째아들을 잃고서 남긴 오언절구 10수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한문학자 전송열(연세대 강사)씨의 <옛사람들의 눈물>은 조선 시대 만시를 종류별로 모아 엮고 작품의 배경과 미학적 특징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우리 형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던가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을 보곤 했지요/ 오늘 형이 그리운데 어디 가서 볼까 하다/ 옷매무새 바로 하고는 시냇물에 비춰봅니다”

연암 박지원의 시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호가 난 연암이지만, 산문에 주력하느라 그가 쓴 시는 15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버지와 두 형제 사이의 닮은꼴 외모를 통해 아버지와 형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솜씨는 ‘역시 연암’이라는 찬탄을 자아낸다.

만시의 대상은 가족과 친구, 또는 스승이나 제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남을 대신해 지은 ‘대만시’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자만시’도 없지 않았다. 특히 부부유별의 엄격한 유교적 법도가 중시되던 조선 사회에서 만시는 점잖은 선비들이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거침없이 표현할 통로가 되기도 했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 제주에서 아내의 죽음을 한 달여 만에 알고서 쓴 작품이다. 월모란 자식을 점지하는 삼신할미처럼 배우자의 인연을 맺게 해 준다는 전설 속의 노파를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그렇게 아내를 떠나 보낸 지아비의 아픈 심사를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사가 자기 중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살아서도 이별했는데 이제 죽어서 또 이별함을 참담히 여긴다”며 “저 푸른 바다 저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끝이 없을 뿐”이라 탄식한 산문 ‘애서문’(哀逝文)을 추사의 알리바이 삼아 읽어 볼 만하다.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기 대여섯”

조선 후기의 빈한했던 선비 이양연이 처와 둘째아들을 연이어 잃고 쓴 <슬픔을 피하려고>라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몇 달 상관으로 떠나 보낸 가장의 아픔이 은근하면서도 둔중하게 다가온다. 제목에서 보듯, 슬픔을 표나게 내세우는 대신 ‘딴청’을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슬픔과 아픔을 자극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너희 남매의 혼은/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랄까”

“해 떨어져 하늘은 칠흑과도 같고/ 산은 깊어 골짜기가 구름과 같네/ 천 년토록 지키자던 군신의 의는/ 슬프게도 외로운 무덤뿐이로구나”

앞의 것은 비운의 여성 예술가 허난설헌이 어린 남매를 차례로 잃고서 쓴 <죽은 자식을 통곡하며>라는 작품이고, 뒤엣것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죽임을 당한 기준이 사약을 받고서 자신의 죽음을 읊은 ‘자만시’다. 어느 죽음이 무겁고 어느 죽음이 가벼우며 어느 죽음이 억울하고 어느 죽음이 통쾌하다 하겠는가. 계절처럼 오고 가는 생과 사 앞에 다만 옷깃을 여밀 따름.(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8.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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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19 20:45   좋아요 0 | URL
이덕무도 슬픈 사연이 깃든 시를 썼었죠. 그의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얻은 폐병과 영양실조로 죽었고, 누이도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서 영양실조로 죽었잖습니까. 이덕무가 정조에게 발탁되어 녹봉을 받기 전까지 너무 가난해서 굶는 일을 밥 먹듯이 하며 책까지 팔아야 했다는. "어두운 흙구덩이에 차마 어찌 옥같은 너를 어찌 묻으랴"는 제문은 막막한 글이죠.

로쟈 2008-08-19 22:54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하면 막막한 죽음들입니다...

2008-08-2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0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