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시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강정과 김경주 두 시인이 각각 새로운 시집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강정 시인의 세번째 시집 <키스>(문학과지성사, 2008)와 김경주 시인의 두번째 시집 <기담>(문학과지성사, 2008)이 그 시집들이다. 최근시의 한 경향을 확인해볼 수 있다.

강정(37·사진 왼쪽) 김경주(32·오른쪽)

한겨레(08. 10. 31) '시인의 실험실’에서 발사된 4차원 언어

“시인은 그의 이미지들의 새로움으로 하여 언제나 언어의 원천이 된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 나오는 이 말은 시와 시인이 ‘새로운 언어’의 탄생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시인은 언어의 완성자이자 개척자이다. 그는 말하자면 고전음악의 완성자이자 낭만주의 음악의 개척자였던 베토벤과 비슷한 운명을 부여받는다. 그는 언어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언어의 궁극에 이르고자 하는데, 그 궁극은 일종의 임계 지점 또는 비등점과도 같아서 언제든 다음 차원으로 건너갈 수 있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최근 간행된 두 권의 시집에서 언어의 완성자이자 개척자로서 시와 시인의 속성을 만나 보자.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제353권과 354권으로 연이어 나온 강정(37·사진 왼쪽)씨의 <키스>와 김경주(32·오른쪽)씨의 <기담>이 그것이다.

“오래전 한 편의 시가 끝나고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짐승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 민둥산의 태양을 끌어내렸다”(<사후(死後)의 바람> 앞부분)

“이 오래된 바람의 내력엔 서로 피를 나눠 먹던 종족의 역사가 흐른다/(…)// 또 다른 궤를 그리며 땅속에 덮이는 하늘/ 맨발로 뛰쳐나가 생의 지도를 다시 찍으니/ 펄럭이는 파도 끝 자락에 마지막 시가 불붙는다”(<사후의 바람> 뒷부분)

<키스>는 <처형극장>과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에 이은 강정씨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을 열고 닫는 것은 제목이 같은 두 편의 <사후의 바람>이다. 인용한 시들 중 ‘한 편의 시’가 나오는 것이 시집 맨 앞에 실린 작품이고 ‘마지막 시’가 등장하는 것이 마지막 작품이다. 앞의 작품이 명백한 종말의 분위기를 풍긴다면, 뒤의 작품은 종말을 딛고 선 모종의 갱신을 꿈꾼다. 종말과 갱신의 지표로 나란히 ‘시’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키스>는 제목에서 짐작되다시피 사랑의 노래를 담은 시집이다. 시인은 사랑이 초래하는 혁명과도 같은 새로움을 시집 전편에 걸쳐 강조한다. 하나의 시가 종말을 고하고 또다른 시가 탄생하듯이, 사랑은 하나의 세계를 여의고 새로운 세계를 일구는 행위가 된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나와 당신과 무관한/ 또 다른 인격이 형성된다/ 사랑이란 하나의 소실점 속에 전 생애를 태워/ 한꺼번에 사라지는 일/ 이 우주에 더 이상 밀월은 없다”(<불탄 방-너의 사진> 부분)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 이은 김경주씨의 두 번째 시집 <기담(奇談)>은 제목처럼 기이한 이야기들의 집적과도 같다. 시집은 전체 3막에 ‘연출의 변’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구운몽(口雲夢)’ 등 희곡적 구성이 도드라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관습과 약속을 위반함으로써 빚어지는 언어의 충격적 변신이다.

“라미가 는에게 저녁에 손을 잡아주었다 귀머리가 를에게 속삭였다 손에 목을이 달렸다 라미가 을의 생존을 물었고 분홍귀가 욜을 불러냈다 아슬이 나무의 우유 방울을 약속했고 동화는 저녁에 읽지 않기로 는의 손목을 잘랐다 라미는 투명을 흔들던 기괴한 한(寒)이 되었고”(<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도 저녁은 찾아온다-베리에게> 부분)

인용한 시는 사물들의 이름을 서로 바꿔 부르는 페터 빅셀의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의 주인공을 떠오르게 한다. 빅셀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기담>의 시인 역시 남들과 다른 새로운 언어를 모색한다. 아니, 시인이 새로운 언어를 시도한다기보다는 언어가 시인을 부려서 (인간에 얽매이지 않은) 독자적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는 언어가 인간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나는 내 세계의 바깥에 너희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나를 가지고 춤을 추고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너희들의 세계는 내가 보는 너희들의 세계와 다르지 않아 우리는 모두 인형들이고 너희들이 들고 있는 인형 역시 나일 것이지만 너희들이라는 인형을 들고 있는 유령 역시 바로 나이지’”(<제1막 인형의 미로> 부분)

새로운 언어의 개척자라는 측면에서 김경주씨는 강정씨보다 더 극단적이고 근본적이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8.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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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패트릭 모디아노 등과 함께 동시대 프랑스문단의 3대 작가로 꼽히는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집 <푸른 독서노트>(현대문학, 2008)가 출간됐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민음사, 1995/2003) 외 다수의 소설이 소개돼 있지만, 그의 독서노트와 에세이도 이제 여러 권 소개된 셈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들도 없지 않았는데, 이번엔 '청소년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만큼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간단한 소개기사는 이렇다.

작가는 프랑스·독일·영국·미국·스웨덴 등에서 19~20세기에 걸쳐 출간된 ‘청소년 문학’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명작들과 그 작품의 저자에 대해 독특한 시각과 재치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폄하의 의미를 담은 ‘청소년용’ 작가로 치부되는 쥘 베른에 대한 재평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타나는 루이스 캐럴의 성적 취향, 셀마 라게를뢰프의 <닐스의 모험>에서 사실주의와 환상문학이 어떻게 행복한 만남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급된 작품들을 거장의 눈을 통해 읽으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하는 지적 즐거움이 쏠쏠하다. 언급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다면 한 번쯤 찾아 읽어보고 싶어질 듯하다.(경향신문)

그의 에세이집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아래는 <뒷모습>(현대문학, 2002)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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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푸른독서노트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10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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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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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긴 침묵- 개정판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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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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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tois 2008-11-02 01:49   좋아요 0 | URL
술김에 하는 말인데, 르 클레지오 보다는 파트릭 모디아노가 더 좋아요. 물론 노벨상 받지는 못하겠지만...

로쟈 2008-11-02 18:04   좋아요 0 | URL
술김이 아니어도 하실 수 있는 말씀인데요.^^ 짐작엔 모디아노의 독자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적어도 제 주변엔 르 클레지오보다 많았습니다)...
 

이번주 신간들 가운데 학술적인 성격의 교양서로 가장 눈길을 끄는 책 두 권은 각각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를 다루고 있다(그래서 같이 모아놓고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권은 지난 여름 유럽중심주의 역사학 비판서 <역사학의 함정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푸른숲, 2008)로 처음 소개된 제임스 블라우트(제임스 블로트)의 <식민주의자의 세계모델>(성균관대출판부, 2008)이고(http://blog.aladin.co.kr/mramor/2270833 참조. 저자명이 다르게 표기되는 바람에 알라딘에는 '제임스 블로트'와 '제임스 블라우트'가 서로 다른 인명으로 설정돼 있다), 다른 한권은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경성대출판부, 2008)이다(로버트 영의 책으론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박종철출판사, 2005)이 이미 소개된 바 있다). 둘다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8. 11. 01) 왜곡된 유럽중심 이데올로기 해부

국가와 도시, 조직화된 종교, 봉건제, 노동분업, 민주제, 관료제, 근대국가, 자본주의…. 고대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유럽이 처음 만들었거나 완성시켰다고 배워온 것들의 목록을 나열하자면 한이 없다. 유럽 어딘가에서 시작한 화살표가 동쪽(아시아)으로, 남쪽(아프리카)으로, 혹은 서쪽(아메리카)으로 퍼져 나가는 지도들까지 곁들여지면 이런 주장은 더욱 그럴듯하게 보인다.

저자는 이런 주장에 ‘유럽 중심적 확산론’이 깔려 있다면서 하나씩 기각해 나간다. 세계사에서 항상 주변으로 간주돼 온 지역들을 복권시켜 유럽 단일 중심이 아닌 여러 개의 중심을 갖는, 혹은 아무런 중심을 갖지 않는 탈근대적 세계사를 서술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존 유럽중심주의의 기본 명제는 “유럽은 스스로 진보하고 근대화한다”는 것이다. “비유럽은 정체되고, 불변하고, 전통적이고, 후진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유럽 역시 근대적인 국가를 수립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했으며 나름의 기술을 발전시켜 오지 않았는가. 유럽중심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유럽이 이식시켰거나 비유럽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확산론’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중국과 인도가 이룩한 상당한 기술적 진보들(예를 들어 제지술과 화약의 발명 등)은? 유럽중심주의자는 태연하게 답한다. “중세 중국과 인도에서 어떤 기술적 진보가 발생했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멈춰버렸다는 것”이라고. 이런 논리는 비유럽이 이룩한 진보를 뭉개버리는 도식으로 자리잡았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1492년은 비유럽 지역에 대한 대규모 식민지 시대가 열린 해이기도 하다. 저자는 1492년 이전, 즉 중세 유럽은 비유럽에 우월하다고 주장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상당부분은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돼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비유럽 사람들은 유럽인과 달리 태생적으로 미개한 종자들이고, 비유럽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 개념이 없다고 치부함으로써 노예제와 토지침탈의 강력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했다. 역사적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속속 드러남에도 유럽 중심적 확산론이 제국주의 시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신념체계가 강력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식민주의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93년 발간된 이 책의 울림이 상당한 것을 보면 식민주의자의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퇴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식민주의 이데올로기 아류들이 판치고 있지는 않은지.(김재중기자)  

한겨레(08. 11. 01) 마르크스주의도 유럽 중심주의 갇혀 있다

로버트 영(뉴욕대 영문학·비교문화학 교수·사진)은 ‘트리콘티넨털(3대륙) 탈식민주의’ 이론을 제창한 이론가다. 3대륙 탈식민주의 이론이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억압받는 서발턴(하위계급·기층민중)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서양의 주류 반체제 이론을 비판하고 그 이론들의 진보적 유산을 3대륙 현실에 맞게 번역해 소화하려는 이론이다. <백색신화>는 영의 이론활동에서 전환점이 된 책이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몰두했던 영은 이 책 집필을 계기로 하여 탈식민주의로 이동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은이 자신의 이론적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넘어 탈식민주의 이론의 출현을 알린 저작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호미 바바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탈식민주의 사유의 역사적 계보학을 수립하는 데 의미심장한 기여”를 한 저작이다. 탈식민주의의 이론적 장이 막 형성되고 있던 때 그 장의 형성을 역사적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 이 저작인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탈식민주의 이론의 장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서구의 주류 반체제 이론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이어받은 마르크스주의와 그 계승인 사르트르를 비판하고 알튀세르·푸코 같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기여와 한계를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다. 이어 이들의 사유를 극복하려 한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을 탐색한다. 이런 검토 작업에서 중심을 이루는 개념이 ‘유럽중심주의’와 ‘탈식민주의’이다. 유럽 마르크스주의가 유럽 중심주의에 갇혀 있었다면, 사이드 이후 탈식민주의는 이 유럽중심주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이론적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책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은 1990년 초판이 출간된 뒤 2004년에 재판이 나왔다. 2004년 판에서 지은이는 ‘다시 읽는 <백색신화>’라는 제목으로 긴 서문을 썼다. 한국어판은 이 재판을 옮긴 것이다. 이 책의 토대가 된 것은 사이드의 기념비적 저작 <오리엔탈리즘>(1978)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의 그 어떤 지식도 오리엔탈리즘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는데, 영은 한발 더 나아가 서양의 가장 진보적인 이론들조차 유럽중심주의적 백색신화에 갇혀 있음을 입증한다. 이때 영이 맨 먼저 공략 대상으로 삼는 것이 헤겔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타자를 흡수함으로써 주체를 더 큰 주체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주체-타자 대립을 해소한다. 지은이는 헤겔의 변증법이 19세기 제국주의 기획을 철학적으로 모방한 것이라고 말한다. 타자의 주권을 박탈해 주체에 통합시키는 변증법의 지식 구성 방식이 서구가 비서구를 지리적·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흉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의 관념론을 뒤집었을 뿐 유럽중심주의와 공모하는 개념체계의 작동양식을 뒤집지는 못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럽중심주의의 연장이었다. 지은이는 유럽의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모든 인간 현상들을 경제결정론으로 환원시켰으며, 인간의 역사적 과제를 근대성 달성에 귀속시킴으로써 유럽 역사를 모범으로 제시했고, 혁명주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수렴시켰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담론은 “여성, 인종, 다른 소수집단들, 나아가 식민화되거나 식민화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을 겪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능”을 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화한 것은 미래의 계급투쟁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기 때문에 결국 최선이었다고 한 마르크스의 진단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유럽중심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은이는 사르트르가 식민지 해방 투쟁에 동참했지만, 결국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유럽중심주의 한계를 반복했다고 비판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당시 유럽 마르크스주의는 제3세계에 대한 ‘생색내는 온정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제3세계 민중을 대신해 발언하면서 그들을 종국엔 지워버리는 유럽 마르크스주의를 지은이는 이렇게 비판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배세력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한계는 알튀세르·푸코·데리다·들뢰즈를 포함한 광의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됐다. 그리고 그런 이론적 바탕 위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현했다. 그러나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작동 시스템을 폭로하기는 했지만, 그 시스템을 획일적으로 인식함으로써 비서구 내부의 모순·갈등을 보지 못했다. 이런 한계는 다시 바바와 스피박의 비판을 받았으며, 이들이 등장함으로써 탈식민주의 사유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지은이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08.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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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스트식민주의와 문화번역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19 21:00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로 국내에는 소개된 로버트 영 교수가 학술대회 참석차 방했던 모양이다. 인터뷰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그의 책으론 <백색신화>(경성대출판부, 2008)와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박종철출판사, 2005) 두 권이 번역돼 있다. 간략한입문서 시리즈의 <포스트식민주의> 같은 책도 소개됨직하다. 교수신문(11. 06. 17)번역불가능한 것은 새로운 실천을 낳는 '씨앗' 제공" 로버트
 
 
노이에자이트 2008-11-01 18:27   좋아요 0 | URL
근대화는 서구화가 아니라고 해버리면 간단하지 않을까요.예를 들어 유럽이 예전엔 이슬람을 통해 문물을 수입하던 때도 근대화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그렇게 되면 근대화가 몇 번 씩 있게 되지요.탈근대 논의에 이런 주장은 없나요?

로쟈 2008-11-01 19:27   좋아요 0 | URL
근대화의 모델을 만들어놓은 것이고 또 그게 가장 '성공적'이었기 때문이겠죠. 월러스틴이 '유럽적 보편주의'라고 부른 '보편주의'를 세계화하고. 월러스틴은 근대 대학제도 역시 '유럽적 보편주의'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탈근대화, 탈서구화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대학제도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니까요...
 

주말에는 써야 할 원고들이 많아서 미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어느새 11월이다. 아마도 1년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달을 꼽자면 2월과 11월이 되지 않을까? 12달 가운데도 주연과 조연이 있다면, 2월이나 11월은 만년 조연에 딱 맞는 달들이다. 비록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달이긴 하나 남몰래 책을 읽기에는 더 좋은 달일 수도 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제지수들이 변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1. 문학

신경숙 작가의 추천작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 2008)이다. 이 작품을 모른다면 알라딘 마을에서는 '간첩'과도 같으니 군말은 필요 없겠다. 나는 일찌감치 지인에게서 선물을 받았지만 10월에는 읽을 여유가 없었다. 해서 대신에 '김연수 문학의 기원'(http://blog.aladin.co.kr/mramor/2333164)이란 페이퍼만 올려두었었는데, 11월에는 사정이 좀 다를 수도 있다(달라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에 보면 와다 하루키의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창비, 1995)에서 처음 민생단 이야기의 단서를 접하게 됐다고 하면서 김연수는 이후에 도움을 받은 몇 권의 책을 나열한다. 신주백의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아세아문화사, 1999)와 김성호의 <1930년대 연변 민생단 사건 연구>(백산자료원, 1999) 등이 도우미가 된 책들이다. 그의 소설의 독자라면 한번쯤 같이 뒤적여봄 직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몇 권의 일본시집도 같이 읽어보는 건 어떨까?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밤은 노래한다>를 읽은 여운으로 들춰보았다는 시집들이다(http://h21.hani.co.kr/arti/COLUMN/68/23580.html). 1886년에 태어나 26살에 요절했다는 일본의 '국민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집도 오랜만에 열어볼 수 있겠다.  

“내 친구는 낡은 가방을 열고/ 희미한 촛불이 흩어지는 마루 위에/ 여러 가지 책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이 나라에서 금지된 것들이었다.// 마침내, 내 친구는 사진 한 장을 찾아내어/ ‘이거야’ 하고 내 손에 얹어놓고는/ 조용히 또 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쁘지도 않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 ‘낡은 가방을 열고’ 전문)

마지막 행은 “그건 아리땁다고만은 할 수 없는 젊은 여자의 사진이었네.”라는 소설의 번역이 더 '시적'이긴 하다. 아무튼 '낡은 가방'을 열어보듯이 오래전 책들의 먼지를 슬며시 닦아보자. 없으면 도서관에 가서라도 닦아보도록 하자...

2. 역사

이덕일씨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이진이의 <이순신을 찾아 떠난 여행>(책과함께, 2008)이다. 어인 또 이순신인가, 싶지만, 추천의 변을 들어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이순신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고, 필자도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1969년판)>을 필두로 여러 권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책은 계속 나오고 있고, 그때마다 또 손길이 가게 된다. 그만큼 그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은 피해갈 수 없는 바위처럼 우뚝한데 과거 군사 정권의 의도에 의해 과장된 인물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고 접근하지만 그런 의도를 뛰어넘는 콘텐츠를 확인하고 매료되고만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다." 물론 저자가 그런 사람이고.

책은 “삶이 몹시 힘들다고 생각된다면…나처럼 이순신의 삶을 따라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을 담은 "인간 이순신과 함께 하는 여정"이라 한다. 그 여정에 겸사겸사 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나무, 2003)를 다시 빼들 수도 있겠다(<난중일기>는 어느 것이 '정본'인지 모르겠기에 넘어간다). 궁색한 처지인지라 새책을 살 여유도 없으니 읽은 책이나 한번 더 읽도록 하자(사실 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나는 누구인가>(21세기북스, 2008)이다(소개기사는 http://blog.aladin.co.kr/mramor/2346452 참조). "눈에 띄는 철학 입문서가 나왔다. '나는 누구인가... 이미 알고 있다고요? 그럼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계급장 떼고 전공 불문하고 한번 제대로 따져보자는 식이다. 이제껏 자기 분야에 갇혀 ‘똑같은 노선을 단조롭게 오가는 나이든 버스 기사’ 같았던 철학자가 새로운 스타일로 변신하여 대중들 곁으로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결코 지루하거나 골치 아프지 않은,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않는, 흥미진진한 사유의 테마 여행 속으로 독자의 손을 잡아끈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 루이 라벨의 <자아와 그 운명>(누멘, 2008)과 앤서니 엘리엇의 <자아란 무엇인가>(삼인, 2007)도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각각 '자아(나)'에 대해서 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어떤 해명/설명을 시도해왔는지를 간추려주는 책들이다. 나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책의 상태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수 없다. 

사라 밀즈의 푸코 입문서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앨피, 2008)이 출간된 김에 푸코와 주체/자기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볼 수 있겠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 1997)을 비롯해서 <성의 역사 3: 자기에의 배려>(나남, 2004), <주체의 해석학>(동문선, 2007) 등이 리스트에 오를 만하다. 자아 혹은 자기란 발견의 대상인지, 구성의 대상인지, 아니면 해체의 대상인지 늦가을의 고독을 씹으면서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고른 정치분야의 책은 장기표의 '17세를 위한 교실 밖 정치 교과서' <지못미, 정치!>(시대의창, 2008)이다. "저자가 기성세대로서 우리사회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정치제도와 문화를 지켜주지 못하고, 낡은 지역주의 등 잘못된 정치를 물려줘 미안하다는 자괴감에 기초해 자라나는 주인인 청소년에게라도 정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생각을 갖게 만들어주기 위해 쓴 책"이라고. 청소년을 위한 '정치(학)' 입문서라고 해야 할까.

혹 여유가 된다면 비슷한 컨셉을 가진 국외의 책들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청소년을 위한 정치 이야기>(다른우리, 2005),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웅진지식하우스, 2006)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전자는 독일 청소년들을, 후자는 스페인 청소년들을 겨냥해 씌어진 듯한데, 우리도 해외에 번역될 만한 '정치 교과서'를 가질 때도 되지 않았나? <지못미, 정치!>가 그런 기대에 부응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손교수에 따르면, "청소년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정치교양서"이다.  

'일반 국민들'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정치철학적 관심을 총족시키고 싶은 독자라면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 2007), 한나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푸른숲, 2007)을 같이 읽을 목록으로 올려둘 수도 있겠다. 내가 그런 경우인데, 최근에 <정치의 약속>의 원서를 입수함으로써 준비를 다 마쳤다. 샹탈 무페도 그렇지만, 특히 랑시에르 같은 경우는 원서나 영역본 등의 도움 없이 번역본만으로 맥락을 따라가기가 좀 어렵다(역자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한국어가 이런 철학서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사실 랑시에르가 자주 인용하는 플라톤의 <법률>도 아직 국내엔 번역돼 있지 않다. 아직도 우리는 '가장자리'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브루스 핸더슨 등의 <서브프라임 크라이시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08)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뒤흔들면서 이미 많이 언급된 책이다. 추천의 변에 따르면, "이 책을 쓴 사람들은 경제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서브프라임 위기는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사람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문제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복잡한 문제'는 '머리 아픈 문제'이기도 하고 당장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살 떨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의 아파트가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선대인 등의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한국경제신문, 2008)나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풍요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구의 풍요 또한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말을 맞이하지 않으시려면 빈곤을 준비하십시오. 빈곤이 싫다면 종말을 맞이하십시오."라고 충고하는 김재인의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서해문집, 2008) 등 최근에 나오는 경제 관련서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고 살벌하다(<부동산 대폭락의 시대가 온다>의 저자 인터뷰는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1028114010 참조). '솟아날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일독해봄 직하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도 눈에 익다.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동녘, 2008). 책은 "성장 위주의 ‘양적 사회’에서 ‘질적 사회’를 넘어 ‘품격 사회’가 대안적 발전 목표로 거론되기 시작하는 이즈음, 국가의 품격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곰곰 생각토록 하는 읽혀지기를 바라는 서적에 속한다." 현재 예수살렘의 히브리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저자의 책은 몇 권의 공저가 소개된 바 있지만 단독 저작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 서평자는 "25년 전 존 롤스의 <정의론>이 출간된 이래 사회정의 문제를 다룬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까지 평했다. 소개의 글을 읽으면 좀더 흥미로워지는데,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동물농장>, <1984>를 쓴 사회주의 작가 조지 오웰은 언젠가 자신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사상에 있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여태껏 사회주의의 부산물이었고 우리가 아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적인 형제애다.”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몸소 체험했던 오웰의 이런 생각이 ‘품위 있는 사회’에 가장 가깝다고 말한 한 학자가 있다. 바로, 2000년 공저<옥시덴탈리즘>을 통해 서양을 바라보는 적대적 편견을 이야기한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이다.

저자에 대해서 급 호감과 관심을 갖게 한다. 소개기사를 옮겨놓으려다 말았던 책인데, 챙겨두어야겠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교양과학서는 제인 구달과 루이스 리키를 다룬 진주현의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김영사, 2008)이다.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화석, 침팬지 무리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을 담은 이야기를 책에서 접했던 독자들이 고인류학, 영장류학의 선구자인 루이스 리키와 제인 구달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 사실 루이스 리키, 메리 리키 부부와 제인 구달은 사제지간이라고 한다.

"고릴라와 오랑우탄을 연구하는 다이앤 포시와 비루테 갈디카스, 제인 구달"을 루이스 리키의 '세 천사'라고 부른다는데,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의 자전적 기록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각각 제인 구달의 <제인 구달>(사이언스북스, 2005)과 다이앤 포시의 <안개 속의 고릴라>(승산, 2007)이다. 갈디카스의 책으론 <에덴의 벌거숭이들>(디자인하우스, 1996)이 소개됐었고. 세 사람에 대한 스케치로는 사이 몽고메리의 <유인원과의 산책>(다빈치, 2001; 르네상스, 2003)이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사진작가 조선희의 <네 멋대로 찍어라>(황금가지, 2008)이다. 조선희는 사진을 찍되, 어떤 대상을 어떻게 찍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는 조언을 한다. "사물마저도 그 사물들의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책 안에는 이러한 심정으로 작가가 찍은 사진들이 다양하게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솔직한 사진 찍기의 충고들이 담겨있다."고 소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별로 즐겨하는 편이 아니므로 '어떤 대상을 어떻게 찍을까'에 대해서 염려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사진을 보는 즐거움마저 마다할 이유는 없다(비록 고가의 사진집들을 소장할 여유는 아직 못 되지만).

최근에 나온 사진관련서로, 보다 정확하게는 사진과 역사의 만남을 다룬 책으로 이경민의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와 김장춘의 <세밀한 일러스트와 희귀 사진으로 본 근대 조선>(살림, 2008)이 눈길을 끈다(관련기사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022029015&spage=5 참조).  

그리고 최근에 나온 풍경 사진집으로 눈에 띄는 것은 강운구의 <저녁에>(열화당, 2008)과 정봉채의 <우포늪>(눈빛, 2008)이다. 각각 한 장의 표지 사진만으로도 사색의 공간을 그윽하게 넓혀준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를 담은 여행서,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웅진지식하우스, 2008)이다. 빌 브라이슨이 대표적이지만, 요즘은 불평꾼, 혹은 투덜이들의 여행기가 대세인 모양이다. "여행기와 문화인류학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종합한 책은 처음 보았다"고 하는 걸 보면 재미는 있는 책인 듯. 전에 읽다 만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21세기북스, 2008)과 견주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투덜이계의 왕중왕'을 뽑는다고 할 수 있을까? 와이너나 브라이슨이라면 '여행할 권리'(김연수)는 곧 '궁시렁댈 권리'이지 않을까 싶다.

10. 르 클레지오

이제 끝으로 아동서 대신에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특선'을 마련한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이미 많은 작품이 소개된 작가라 몇 권 추릴 수밖에 없는데, 나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골라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작품인 <황금물고기>(문학동네, 1998)부터가 그 계열에 속한다. 소개에 따르면, "<황금 물고기>는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어떤 이야기인가?

"이 작품은 예닐곱 살 때 유아 인신매매단에 납치돼 팔려간 한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밤’이라는 뜻의 라일라라는 이름의 소녀. 예닐곱 살에 유괴당한 그녀는 랄라 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란다. 노파의 죽음 이후 우연히 창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숱한 역경과 고난 끝에 프랑스로의 밀입국. 미국, 또 다시 프랑스로 전전하다 결국 자신의 나라 아프리카로. 그녀의 조국의 땅을 밟은 순간 본디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이어 <사막>(문학동네, 2008)과 <아프리카인>(문학동네, 2005)까지 읽으면 얼추 그 문학세계의 윤곽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08. 10. 31.

P.S. 11월의 고전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열림원, 2006)이다. 1870년작으로 '마조히즘'을 창시한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대표작이다. "마조히즘의 극단적인 감각주의를 보여주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로, 자허마조흐의 일생과 문학 전반을 지배한 피학적 성적 취향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는 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 최근에 닉 맨스필드의 <마조히즘: 권력의 예술>(동문선, 2008)이 출간되는 바람에 들뢰즈의 <매저키즘>(인간사랑, 2007)과 세트로 묶어서 읽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맨스필드는 서론에서 자신의 기본적인 입장을 이렇게 밝혀놓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의 결론은 마조히즘이 권력에 대한 특정한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 주체는 쾌락과 고통, 능동성과 수동성, 권력과 권력의 부재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꿈꾼다는 것이다."

모피를 입기에는 좀 이른 계절이지만 마조히즘에 입문(?)하기에는 오히려 적합할는지도 모른다. 축축하고 이 음산한 계절에, "자기 포기를 통해서 자신을 강화하고 자기 부정 나아가 자기 절단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그러한 권력의 모델"은 위험하면서도 충분히 유혹적이지 않을까? 곧 추운 계절이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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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0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 브라이슨도, 지금 제 앞에 있는 에릭 와이너도 왜 '불평꾼', '투덜이'로 카피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네들이 책에서 우스운 말로 불평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부정적인 단어들을 마케팅하는데 끌고 들어오는 것도 잘 이해가 안가요. 좀 심하게 말하면, '너네들은 짖어라,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줄아냐, 이 불평꾼들아' 로 들려서 기분 나빠요.

그나저나 르 클레지오는 위에 번역되어 나온 것 말고도 무지막지하게 번역되어 나오네요. 노벨문학상이 뭐길래..

로쟈 2008-11-04 22:22   좋아요 0 | URL
개그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 설정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대리만족의 순기능도 있을 법합니다. 호통개그처럼...

陳周賢 2008-11-28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알라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제 책(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읽어보시게 되면 많은 비평 부탁 드려요. 처음 쓴 책이어서 이렇게 막상 나오니 겁도 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

로쟈 2008-11-28 23:19   좋아요 0 | URL
책은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페이퍼는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기억하기 위한 용도이기도 합니다. 목차는 충분히 흥미롭고 짜임새가 있어 보이더군요...
 

이번주 시사IN에서 흥미롭게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57). 금융위기가 촉박한 현 시국에 대해서 세계 각국의 지식인들이 내놓고 있는 의견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기사다. 표제가 지젝의 말이어서 '로쟈의 지젝'으로 분류해놓는다.

시사IN(08. 10. 27) 세계 석학의 외침 “이제 행동보다 말을 할 때다”

누구는 ‘금융의 대량살상무기’ 파생금융상품이 문제라고 했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유수 언론은 파생상품 규제에 반대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을 원흉으로 지목했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아서 레빗 전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의 이름도 나왔다.

부시 행정부의 구제금융안을 놓고는 우파 일각에서 ‘사회주의적’이라거나 ‘큰 정부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동안의 정부 개입이 이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며 이참에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놓고 미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지식인들이 갖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좌파 지식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부동산 거품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아니라 그동안 금융자유화와 규제 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돼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현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일상 공간인 메인스트리트를 구제하라고 주장한다.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위기의 직접 원인이 부동산 거품의 붕괴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뿌리는 지난 30년 동안 진행된 ‘금융자유화의 승리’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자유화 조처로 막대한 이익을 본 금융기관이 이제는 국가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며 월가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촘스키는 최근의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의 종말과 연결 짓는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자본주의가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그냥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이며, 미국의 경제 역시 국가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시장 근본주의가 추동한 금융자유화는 한 시대를 마감하겠지만 국가 자본주의 자체는 전혀 위협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미국 제국 몰락의 징후인가
반면 하워드 진 미국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미국 제국의 몰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주요 중간역”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지난 10월2일 영국의 일간 가디언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2001년 9·11사태가 미국 제국 몰락의 첫 번째 징후라면 “무능과 탐욕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유명한 거대 금융기관들에 납세자들이 낸 세금 7000억 달러를 쏟아붓기로 (공화·민주) 양대 정당이 서둘러 합의한 것”이 또 다른 징후라고 지적했다.



세계체제론을 주장해온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 대학 석좌교수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단순한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 전세계적 불황(depression)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장기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해온 월러스틴은 10월15일 미국 빙햄턴 대학 페르낭브로델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을 통해 파생상품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석유 투기세력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월러스틴은 현재의 불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여러 저서에서 펴온 논리대로 장기적 수준의 헤게모니 주기와 중기적 수준의 콘트라티예프(경기 사이클) 파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먼저 장기적인 헤게모니 주기를 보면 미국은 1873년 영국에 대항하는 국가로 떠오른 뒤 1945년 헤게모니를 완전히 구축했고, 1970년대 이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월러스틴은, 미국의 헤게모니는 부시 대통령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추락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으며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수십 년 안에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질서는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콘드라티예프 파동은 이와 좀 다른데 세계경제는 1945년 이후 기록적인 호황 국면을 이어가 1967~1973년 최정점을 찍은 후 하향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 하향세는 그전과 달리 오래 지속되어왔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이사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럽과 일본의 협력자들이 주기적으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게 월러스틴의 설명이다.

1987년 주가 폭락, 1989년 저축대부조합 파산,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사태, 2001~2002년 엔론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세계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고 그 덕분(?)에 콘트라티예프 하강 국면이 길어졌을 뿐이다. 월러스틴은 하지만 이같은 개입에는 본질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지금 그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월러스틴의 전망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현재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을 대체할 새 질서는 무수한 개별 투쟁의 결과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질서인지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는 아닐 것이지만 양극화되고 위계적인 더 나쁜 것일 수도 있고,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한 더 좋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 지금 시기 지구적 차원에 벌어지는 주요 정치투쟁이다.”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먼슬리 리뷰> 편집장인 존 벨라미 포스터는 더 급진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포스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상 극심한 위기 중 하나에 직면했다.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렇게 나쁜 적이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위기는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붓거나 금리를 낮춘다고 해결될 수 있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며 ‘미국식’ ‘자유시장’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총체적인 몰락의 징조이다”라고 평가한다.

부자들 도와주는 게 사회주의?

그는 또 미국과 유럽의 은행 국유화를 사회주의나 급진주의로 혼돈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단지 “전면적인 부채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취한 임시 조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포스터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이 온전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수밖에 없으며 좌파는 “고장난 체제를 수리하려 들 게 아니라 경제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비판도 흥미롭다. 지젝은 <런던서평>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9·11 직후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민에게 한 연설에서 공통점을 끄집어낸다. 부시 대통령이 두 연설에서 모두 미국적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 그리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하고도 단호한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지젝은 또한 부시 대통령이 미국적 가치―9·11 당시에는 개인의 자유 보장, 지금은 시장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바로 그 가치들을 부분적으로 보류할 것을 미국 국민에게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구제금융안을 놓고 벌어진 ‘사회주의’ 논란에 대해 지젝은 “금융구제안이 정말로 ‘사회주의적’인 조처라면 아주 기발한 것”인데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이 아니라 부자들을, 돈을 빌리는 쪽이 아니라 빌려주는 쪽을 도와주는 것이 목적인 ‘사회주의적’ 조처이기 때문”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데 복무한다면 ‘사회주의’도 괜찮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지젝은 국가의 개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현재 금융위기마저도 사실은 국가 개입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를 내려 부동산으로 자금을 끌어들인 결과 현재의 금융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그가 든 아프리카 말리의 예는 자유시장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말리에서는 면화 재배와 축산업이 가장 규모가 컸는데 서구 열강이 자신들은 지키지 않는 규칙을 강요하는 바람에 두 산업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면화재배 농가를 보호하는 데 말리의 1년 국가예산보다 많은 돈을 지출하고, 유럽연합은 또 1년에 소 한 마리당 5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이 여기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시장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항상 정치적 결정에 의해 규제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진짜 딜레마는 ‘국가 개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국가 개입이냐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치, 즉 우리 삶을 지배하는 조건을 규정하는 투쟁이다. 지젝은 금융구제안을 놓고 벌이는 토론은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며 “이제 행동을 할 게 아니라 말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워드 진도 ‘자유시장’이라는 환상을 깨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한 번도 자유시장을 가져본 적이 없고 정부의 개입은 항상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7000억 달러를 부실 금융기관에 지원할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주는 것이 대안이다”라며 주택 소유자가 모기지론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방 고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86세인 노장 역사학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독립선언문이 약속한 것, 바로 만인의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선동하고 조직하라. 그런 과감한 접근만이 미국을, 제국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을 지킬 수 있다.”(윤재설 자유기고가)

08. 10. 30.

P.S. <런던서평>에 기고한 지젝의 글은 아래와 같다(http://www.lrb.co.uk/v00/n03/zize01_.html).

Don’t Just Do Something, Talk

Slavoj Žižek

One of the most striking things about the reaction to the current financial meltdown is that, as one of the participants put it: ‘No one really knows what to do.’ The reason is that expectations are part of the game: how the market reacts to a particular intervention depends not only on how much bankers and traders trust the interventions, but even more on how much they think others will trust them. Keynes compared the stock market to a competition in which the participants have to pick several pretty girls from a hundred photographs: ‘It is not a case of choosing those which, to the best of one’s judgment, are really the prettiest, nor even those which average opinion genuinely thinks the prettiest. We have reached the third degree where we devote our intelligence to anticipating what average opinion expects the average opinion to be.‘ We are forced to make choices without having the knowledge that would enable us to make them; or, as John Gray has put it: ‘We are forced to live as if we were free.’

Joseph Stiglitz recently wrote that, although there is a growing consensus among economists that any bailout based on Henry Paulson’s plan won’t work, ‘it is impossible for politicians to do nothing in such a crisis. So we may have to pray that an agreement crafted with the toxic mix of special interests, misguided economics and right-wing ideologies that produced the crisis can somehow produce a rescue plan that works – or whose failure doesn’t do too much damage.’ He’s right: since markets are effectively based on beliefs (even beliefs about other people’s beliefs), how the markets react to the bailout depends not only on its real consequences, but on the belief of the markets in the plan’s efficiency. The bailout may work even if it is economically wrong.

There is a close similarity between the speeches George W. Bush has given since the crisis began and his addresses to the American people after 9/11. Both times, he evoked the threat to the American way of life and the necessity of fast and decisive action to cope with the danger. Both times, he called for the partial suspension of American values (guarantees of individual freedom, market capitalism) in order to save the same values.

Faced with a disaster over which we have no real influence, people will often say, stupidly, ‘Don’t just talk, do something!’ Perhaps, lately, we have been doing too much. Maybe it is time to step back, think and say the right thing. True, we often talk about doing something instead of actually doing it – but sometimes we do things in order to avoid talking and thinking about them. Like quickly throwing $700 billion at a problem instead of reflecting on how it came about.

On 23 September, the Republican senator Jim Bunning called the US Treasury’s plan for the biggest financial bailout since the Great Depression ‘un-American’: Someone must take those losses. We can either let the people who made bad decisions bear the consequences of their actions, or we can spread that pain to others. And that is exactly what the Secretary proposes to do: take Wall Street’s pain and spread it to the taxpayers . . . This massive bailout is not the solution, it is financial socialism, and it is un-American.

Bunning was the first publicly to give the reasoning behind the GOP revolt against the bailout plan, which climaxed in its rejection on 29 September. The resistance was formulated in terms of ‘class warfare’, Wall Street against Main Street: why should we help those responsible (‘Wall Street’) and let ordinary borrowers (on ‘Main Street’) pay the price for it? Is this not a clear case of what economists call ‘moral hazard’? This is the risk that someone will behave immorally because insurance, the law or some other agency protects them against any loss that his behaviour might cause: if I am insured against fire, for example, I might take fewer fire precautions (or even burn down my premises if they are losing me money). The same goes for big banks, which are protected against big losses yet able to retain their profits.

That the criticism of the bailout plan came from conservative Republicans as well as the left should make us think. What left and right share in this case is their contempt for big speculators and corporate managers who profit from risky decisions but are protected from failures by ‘golden parachutes’. In this respect, the Enron scandal of January 2002 can be interpreted as an ironic commentary on the notion of a risk society. Thousands of employees who lost their jobs and savings were certainly exposed to risk, and had little choice in the matter. However, the top managers, who knew about the risk and also had the opportunity to intervene in the situation, minimised their exposure by cashing in their stocks and options before the bankruptcy. So while it is true that we live in a society that demands risky choices, it is one in which the powerful do the choosing, while others do the risking.

If the bailout plan really is a ‘socialist’ measure, it is a very peculiar one: a ‘socialist’ measure whose aim is to help not the poor but the rich, not those who borrow but those who lend. ‘Socialism’ is OK, it seems, when it serves to save capitalism. But what if ‘moral hazard’ is inscribed in the fundamental structure of capitalism? The problem is that there is no way to separate the welfare of Main Street from that of Wall Street. Their relationship is non-transitive: what is good for Wall Street isn’t necessarily good for Main Street, but Main Street can’t thrive if Wall Street isn’t doing well – and this asymmetry gives an a priori advantage to Wall Street.

The standard ‘trickle-down’ argument against redistribution (through progressive taxation etc) is that instead of making the poor richer, it makes the rich poorer. However, this apparently anti-interventionist attitude actually contains an argument for the current state intervention: although we all want the poor to get better, it is counter-productive to help them directly, since they are not the dynamic and productive element; the only intervention needed is to help the rich get richer, and then the profits will automatically spread down to the poor. Throw enough money at Wall Street, and it will eventually trickle down to Main Street. If you want people to have money to build, don’t give it to them directly, help those who are lending it to them. This is the only way to create genuine prosperity – otherwise, the state is merely distributing money to the needy at the expense of those who create wealth.

It is all too easy to dismiss this line of reasoning as a hypocritical defence of the rich. The problem is that as long as we are stuck with capitalism, there is a truth in it: the collapse of Wall Street really will hit ordinary workers. That is why the Democrats who supported the bailout were not being inconsistent with their leftist leanings. They would fairly be called inconsistent only if we accept the premise of Republican populists that capitalism and the free market economy are a popular, working-class affair, while state interventions are an upper-class strategy to exploit hard-working ordinary people.

There is nothing new in strong state interventions into the banking system and the economy in general. The meltdown itself is the result of such an intervention: when, in 2001, the dotcom bubble burst, it was decided to make it easier to get credit in order to redirect growth into housing. Indeed, political decisions are responsible for the texture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in general. A couple of years ago, a CNN report on Mali described the reality of the international ‘free market’. The two pillars of the Mali economy are cotton in the south and cattle in the north, and both are in trouble because of the way that Western powers violate the same rules that they impose so brutally on Third World nations. Mali produces cotton of the highest quality, but the US government spends more money to support its cotton farmers than the entire state budget of Mali, so it is small wonder that Mali can’t compete. In the north, the European Union is the culprit: the EU subsidises every single cow to the tune of five hundred euros a year. The Mali minister for the economy said: we don’t need your help or advice or lectures on the beneficial effects of abolishing excessive state regulations; just, please, stick to your own rules about the free market and our troubles will be over. Where are the Republican defenders of the free market here? Nowhere, because the collapse of Mali is the consequence of what it means for the US to put ‘our country first’.

What all this indicates is that the market is never neutral: its operations are always regulated by political decisions. The real dilemma is not ‘state intervention or not?’ but ‘what kind of state intervention?’ And this is true politics: the struggle to define the conditions that govern our lives. The debate about the bailout deals with decisions about the fundamental features of our social and economic life, even mobilising the ghost of class struggle. As with many truly political issues, this one is non-partisan. There is no ‘objective’ expert position that should simply be applied: one has to take a political decision.

On 24 September, John McCain suspended his campaign and went to Washington, proclaiming that it was time to put aside party differences. Was this gesture really a sign of his readiness to end partisan politics in order to deal with the real problems that concern us all? Definitely not: it was a ‘Mr McCain goes to Washington’ moment. Politics is precisely the struggle to define the ‘neutral’ terrain, which is why McCain’s proposal to reach across party lines was pure political posturing, a partisan politics in the guise of non-partisanship, a desperate attempt to impose his position as universal-apolitical. What is even worse than ‘partisan politics’ is a partisan politics that tries to mask itself as non-partisan: by imposing itself as the voice of the Whole, such a politics reduces its opponents by making them agents of particular interests.

This is why Obama was right to reject McCain’s call to postpone the first presidential debate and to point out that the meltdown makes a political debate about how the two candidates would handle the crisis all the more urgent. In the 1992 election, Clinton won with the motto ‘It’s the economy, stupid!’ The Democrats need to get a new message across: ‘It’s the POLITICAL economy, stupid!’ The US doesn’t need less politics, it need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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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르 2008-10-3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도 뭔가 이런 말들을 내놓는 학자들을 보고 싶어지네요.
(오마이,한겨레,프레시안등등에 글을 쓰시는 많은 학자분들이 많지만)

지젝님의 사진은 적목감소가 필요해보입니다. ^^.

로쟈 2008-10-30 23:46   좋아요 0 | URL
사진이 그렇게 찍혔네요...^^;

드팀전 2008-10-30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좀 더 긴 기획으로 썻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더랫지요.^^ 제가 진보적인 모인사와 이야기하다 '현재 한국의 경제 위기가 단순히 이명박-강만수 라인때문만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그딴 의식 가지고는...'이라는 눈흘김을 받았더랬습니다. ^^ 그래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명박-강만수를 잡아족치면 바야흐로 시작되는 대공황(?)이 우리를 멀리 피해간다.' 뭐 그렇게 가자구요. '자본'을 너무 우습게 아는 것 같아요. 이명박-강만수보다 더 얕잡아보는 태도라니. 요즘 이슈가 되는 진보적인 분을 만나고 나온 푸념입니다.^^

로쟈 2008-10-30 23:51   좋아요 0 | URL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니 그것도 가능성이 없진 않겠죠...^^;

람혼 2008-10-31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글에서 몇몇 부분이 정말 가슴에 와닿는군요(올려주신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첫째, 7번째 단락의 "What left and right share in this case is their contempt for big speculators and corporate managers who profit from risky decisions but are protected from failures by 'golden parachutes'.": 근본적으로 금융자본의 어떤 '범죄'에서 초래된 위기를 경제주체들 개개의 '일반적' 위기(원죄?)로 '환원'하여 '고통'의 분담을 요구하는('달러를 모읍시다!')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아니면 허망한 '747공약' 같은 것의 그늘 아래 묻어두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이명박 개인재산 헌납'의 공약을 확실히 지키던가요...ㅎㅎ). 얼마 전 제주도에서 열렸던 해외 한상(韓商)들의 모임에서 고국을 돕고자(?) '자발적으로' 달러 계좌 만들기 운동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씁쓸하고 절망적인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또한 '낙하산'이라는 말도 현재 국내 상황과 맞물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새겨들어야 할 말로 보입니다. 둘째, 11번째 단락의 "There is nothing new in strong state interventions into the banking system and the economy in general. The meltdown itself is the result of such an intervention:[...]": '규제완화'와 '민영화'라는 미명 아래 경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개입을 행하고 있는 현 정부(아, 너무도 '작은' 정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의 구성원들은 '돈'은 좀 알지 몰라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실로 무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국내에서 가장 '비즈니스-프렌들리'하다고 할 한 신문에서 얼마 전 '케인즈주의'의 부활과 전망을 운운하는 것을 보고는 사실 할 말을 잃었는데요, 자본주의에 대해 가장 잘 알 것 같은 언론인이 '자본'은 물론이고 '국가'조차도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또 한 번 절망감을 맛보았습니다). '경제' 대통령이 '경제' 자체로 곤란을 당한 상황에서, 거기에 덧붙여 언론 장악과 공안 정국의 형성을 통해 도달한 결과는, 아마도 말 그대로 이 정부 자체가 눈 녹듯이 '녹아 내리는(melt down)' 일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에 관해서는 나름 내심 '기대감'까지 갖고 있습니다...

드팀전 2008-10-31 08:10   좋아요 0 | URL
^^ 미국이 공적자금을 금융살리기에 쏟아 붓기로 결정했을 때 나왔던 말도 그와 같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몇 몇 뛰어난 천재들(금융전문가)이-파생금융상품의 진화는 천재적이라고 하더군요- 저질러 놓은 짓을 국민의 세금을 충당한다는 비난이 일었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미국 경제와 대미의존도가 압도적인 한국경제의 전망에 상당부분 비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분간 뭘로 막아도 힘들지도 모른다는...우석훈이 몇 년안에 남미 경제처럼 갈 수도 있다라는 예견이 비록 과장은 있더라고 완전SF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차리리 람혼님 말처럼 '녹아내리고' 새로운 모델을 기획하는 것이 살 길처럼 보입니다. 그 시간동안 -일본이 장기불황에서 벗아나는데 10년이 넘겨걸리지 않았습니까-서민들은 '죽지마 부활할거야'라는 근성으로 살아남아야 하는게 이 시대의 실존적인 비극같습니다. 이명박이 최근에 뻘짓하는 부동산 부양책등은 밀물이 이미 들어오는 상황에서 모래성 무너진다고 같은 자리에 모래를 더 붓고 있는 짓처럼 보입니다. 부으면 부을 수록 더 떠밀려갈텐데...현 대통령을 비롯해서 현 경제팀이 평생 배운것이 그것뿐이니 말려도 말을 안들을 듯 합니다. 결국 오늘의 메시지는 "죽지말고 살아서 만납시다" 가 아니런지..^^ 영화배우 람혼님.

로쟈 2008-11-01 08:43   좋아요 0 | URL
흠, 우리가 곧 녹아내리게 되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0-3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의 모순은 규제완화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한다는 겁니다.그래서 정부가 개입했는데 경제는 여전히 안 좋아지면 정부가 규제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완전히 민간주도형으로 기업에 맡겼으면 형편이 좋아졌을 것이다...뭐 이런 식이죠.그리고 대안이라고 내놓으면 역시 프리드먼과 케인즈 방식을 왔다 갔다 할 뿐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8-11-01 08:46   좋아요 0 | URL
문제는 항상 '어떤 종류의 개입이었느냐'였다는 지젝의 지적을 좀더 음미해봐야겠습니다. 공산주의가 승리할 거란 지젝의 비밀(예언)이 농담이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0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개입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규제도 개입이고 지원도 개입이니까요.

우야 2008-11-20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t’s the POLITICAL economy, stupid!’ 라니 조금 재미있네요. 정확하게 숀 호머가 지젝의 맑시즘을 비판했던 글의 제목 그대로군요...

로쟈 2008-11-20 09:26   좋아요 0 | URL
지젝의 입장에 대해서는 http://blog.aladdin.co.kr/mramor/2295099도 참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