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에 번역돼 나온 루소의 <신엘로이즈>(한길사, 2008)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관련기사가 드물어서 아쉬워하던 차였다. 사실 책은 아직 손에 들 여유가 없지만, 낭만주의 문학이 한때는 '전공'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없다. '성의 역사'와 함께 '사랑의 역사'를 더듬어볼 때도 한번쯤 둘러봐야 할 이정표이기도 하다.  

 

대학신문(09. 04. 12) 새로운 사랑의 신화, 『신엘로이즈』 

루소는 너무나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천재다. 그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학의 방법을 모색했고, 『사회계약론』을 통해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의를 천명했으며, 『에밀』을 통해 교육철학에 한 획을 그었고, 『고백록』을 통해 근대적 의미의 자서전이라는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루소가 일류 식물학자이자 『마을의 점쟁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해 프랑스 국왕의 연금을 받을 뻔했던 탁월한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신엘로이즈(Julie ou la Nouvelle Heloise)』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작가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루소의 다양한 모습들 중 일부에 편중된 번역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번에 서익원 교수(경원대 불어불문학과)의 『신엘로이즈』 완역본이 출간됨으로써 그동안 우리들에게 가려져있던 루소의 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루소는 무엇보다도 『신엘로이즈』를 통해 문학적 영광의 정점에 이른다. 루소의 다른 글들이 주로 일부 식자층에서 읽혔다면 이 소설은 매우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18세기 말까지 적어도 70판이 출판됐는데, 이는 그야말로 유례 없는 성공이었다. 그렇다면 『신엘로이즈』가 이러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 작품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왜냐하면 8백여쪽에 이를 정도로 분량이 많았고 사건들도 거의 없는데다가 결투, 대도시 파리의 풍속, 음악, 교육, 종교 등 일반적인 주제들에 대한 긴 논술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자신을 작품의 주인공들과 동일시하면서 책에 빨려들어 갔다. 거기에 담겨있는 열정은 너무나 격렬해서 당대의 한 평론가는 글이 쓰인 종이를 불태울 정도라고 외쳤고, 낭만주의를 주도했던 스탈 부인은 루소가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연애소설을 써서 미덕을 손상시키기는커녕 미덕에 상상적인 매력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열정으로 만드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찬양했다. 그러나 당대 독자들이 열광한 사랑과 미덕을 향한 열정이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감정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수 있다. 루소의 어투를 흉내 내자면 ‘진지한 사랑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소가 사랑에 부여한 새로운 의미다. 루소에게 사랑은 관능의 충족을 넘어서 미덕을 지향하는 힘이며,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미덕의 화신으로 이상화한다. 그는 사랑에서 모든 것, 가령 사랑할 때 일어나는 모든 감정 등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지만 그 환상이야말로 인간을 가치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미덕은 실천하기 어렵지만, 사랑하는 대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미덕을 실천할 때 그로 인해 받는 물질적 고통은 달콤한 사랑으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인 생 프뢰와 귀족 출신인 쥘리는 그들의 사랑이 사회 질서와 충돌하면서 미덕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되는 것을 본다. 둘의 관계를 눈치 채고 애태우던 쥘리 어머니의 죽음이 한 예인데, 어떻게 보면 쥘리는 사랑 때문에 어머니를 죽인 셈이 된다. 만약 쥘리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 프뢰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사랑을 파괴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미덕을 추구하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허락된 사랑의 형식은 그리움뿐이고, 미덕이야말로 내세에서 이 둘을 맺어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쥘리의 남편인 볼마르는 그들이 앓는 사랑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생 프뢰에게 자신의 영지인 클라랑에 와서 살라는 제의를 한다. 유물론자이자 이성의 화신인 볼마르는 과거의 쥘리와 현재의 볼마르 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두 사람에게 일깨우려고 그들에게 자기가 없는 상태에서 입맞춤을 하도록 강요한다. 볼마르의 방법은 쥘리와 생 프뢰가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의 시선을 보낼 때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하려는 것으로, 사실 이것은 ‘클라랑의 질서’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완벽한 행복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클라랑의 질서는 실상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전방위 감시체제’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하인들은 주인의 이익을 위해서 항상 서로를 감시해야만 한다. 볼마르가 감시하는 시선이 내면화될수록 이 두 사람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쥘리는 일상적인 행복에서 생겨나는 권태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클라랑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이었던 감시 체계의 효율성이 결정적으로 의문시된다. 쥘리가 느끼는 권태감은 자신이 자율적이라고 느끼지만 실상은 세밀하게 통제 받는 클라랑 사람들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가능한 결말은 쥘리가 죽는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 들어가 아이는 구하지만 자신은 죽을 병에 걸린다. 그녀는 생 프뢰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두 연인은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모든 고통을 보상받고 심원한 존재 이유를 되찾는다. 쥘리는 미덕으로 인해 받은 고통 덕분에 자신의 사랑을 부끄러움 없이 고백할 수 있었고, 생 프뢰는 지금까지의 고통을 쥘리의 사랑 고백으로 보상받았으며 또 내세에서 쥘리를 만날 희망을 갖고 앞으로 미덕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돼서 사람의 내면을 직접 느끼고 싶다는 쥘리의 희망과 미덕을 실천하는 자신의 내면을 쥘리가 그대로 느꼈으면 하고 바라는 생 프뢰의 희망은 그 강렬함으로 이미 죽음을 넘어 둘을 하나로 만든다.  

계몽주의자들이 신성을 탈신비화했다면 루소는 이렇게 세속적인 사랑을 신비화하면서, 당시 형성 중인 부르주아 사회를 위해 혹은 그 사회를 견뎌내기 위해서 새로운 사랑의 신화 혹은 종교를 창조한 것이다. 이성적이고 명석한 프랑스어를 몽상과 열정의 언어로 변형한 루소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지나친 직역 때문에 따라 읽기 힘든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공들인 번역을 내놓은 역자의 노고에 루소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이용철 교수 한국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 

09. 04. 12. 

 

P.S. 본문 중에 이름이 나오지만 스탈 부인(마담 드 스탈) 또한 낭만주의 연구자에겐 피해갈 수 없는 이름이다. 그녀의 <독일론>(나남, 2008)과 소설 <코린나 - 이탈리아 이야기>(문학과지성사, 2002)가 출간돼 있지만 이 역시 아직 손을 못대고 있다. 나의 현실이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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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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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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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3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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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3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트워크 사회, 혹은 정보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으로 잘 알려진 마뉴엘 카스텔의 3부작을 읽어볼 계획이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엄두를 내긴 어려운데, 실제로 언제나 다 읽게 될는지 장담할 수 없다(다 읽기 전에 개정판이 나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소련의 붕괴를 다룬 3권 '밀레니엄의 종언'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3부작이라고 하니 1권부터 손에 들었다. 리처드 세넷과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내가 주목하는 세 사회학자의 키워드는 각각 '네트워크 사회' '새로운 자본주의' '유동적 근대'이다. 어디서 만나고 갈라지는지는 더 읽어봐야겠다. 참고로, <밀레니엄의 종언>의 원서 표지엔 일리야 레핀의 그림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이 들어가 있다. 국역본의 밋밋한 표지는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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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바바 2009-04-14 07:38   좋아요 0 | URL
제 경험상 information age 3부작은 읽는데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사실 2권은 건너뛰엇습니다만). 워낙 정보와 자료를 꼼꼼하게 들이대다보니 질릴 정도입니다. 그게 카탈루냐 사람이라서 그렇답니다. 그 사람들이 꼼꼼하기로 유명하다는... 오히려 반대로 미디어에 관한 보다 철학적인 2개의 장 (1권 중후반부)은 너무 허술해서 의아할 정도입니다. 사실 real virtuality, space of flows, timeless time 장이 가장 유명한 챕터지만 미디어 전공자 입장에서 가장 엉성한 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근데 정말 사소한 걸로는 한국 번역판에는 왜 '마누엘 카스텔스'가 아니라 '마뉴엘 카스텔'이라고 적는지 궁금합니다. 프랑스에서 많이 활동햇으니 프랑스어식으로 읽은건가 의문스럽다가도, 그렇더라도 어쨋든 '마누엘' 아닌가 싶어 더더욱 의아합니다. 혹시 이 사람이 자기 이름은 이렇게 읽어달라고 햇는지...

로쟈 2009-04-14 23:1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닥 읽고 싶은 학자는 아닌데, '지명도'라는 것 때문에...^^;

노노바바 2009-04-15 01:49   좋아요 0 | URL
'책이 후졋다'는 얘기는 아니엇구요, 읽을 가치는 잇습니다. 두껍고 위트도 없이 꼼꼼하게 진행되는 책이니만큼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엿습니다 ^^

로쟈 2009-04-15 07:05   좋아요 0 | URL
네, 재미에 대한 기대는 접고 있습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뿐 아니라 MBC 9시 뉴스의 신경민 앵커와 라디오 진행자 김미화 씨 교체 문제로 다시 한번 현 정부의 언론'탄압'이 화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책 두 권이 눈길이 끈다, 국역본의 제목부터가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이다. 권력에 안주하는, 아니 권력 자체가 돼버린 언론과 그 하수인 정도를 자처하는 기자들에겐 언감생심이겠다. 우리의 처지가 아니어서 유감스럽지만, 미국에서도 '전설'로 회자되는 사건 아닐까. 다시 한번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한다. 최소한 리뷰 정도라도 일독해보시길.

한겨레(09. 04. 11) '망할 애송이 기자’ 대통령 무릎 꿇리다 

1972년 6월17일,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 단지 안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몰래 침투한 괴한 5명이 체포당했다. 비즈니스 정장 차림에 외과수술용 장갑을 낀 그들은 최신형 도청장치를 지니고 있었고, 일련번호가 이어지는 100달러짜리 고액권 수천 달러를 갖고 있었다. 망명 쿠바인들이 저지른 ‘3류 주거침입’ 또는 ‘절도사건’(그들 중 4명이 쿠바 출신자였다)쯤으로 치부되던,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그 사건은 불과 2년 뒤 대통령의 치욕스런 하야라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대사건으로 번져간다. 법무장관과 백악관 비서실장, 백악관 고문, 국내 수석고문 등 한때 기세등등했던 권력실세들 사십여명이 감방으로 갔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로버트 레드퍼드,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대통령의 음모>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 진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사건은 미국 사회와 역사를 바꿨고 미국과 세계 언론의 존재양식도 바꿨다. 최근 반동적 역류로 어지럽지만, 한국 저널리즘이 고난을 무릅쓰고 줄기차게 도달하려 애써온 이상향도 상당부분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쟁취한 미국 언론의 성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언론은 그 뒤 변질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미국 언론 쟁투를 통해 우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와 문제를 좀더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73년 4월 말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보좌관을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담당기자 보브 우드워드를 협박했다. “그 망할 애송이 녀석들 좀 조심하라고 해.” ‘녀석들’은 당시 30살의 우드워드와 그의 29살 취재 단짝 칼 번스틴. 하지만 이미 닉슨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며칠 뒤인 4월30일 그의 최고보좌관 해리 홀드먼 등이 사임했고 해고당한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은 옛 주인을 공격하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외엔 거의 침묵을 지키던 미국 언론들이 그 무렵엔 다시 워터게이트로 모두 몰려들고 있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들이 “정부를 전복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닉슨 재선운동본부 책임자를 지낸 전 법무장관 존 미첼은 자신의 비리에 관한 폭로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화로 번스틴을 협박했다. “만약 그 기사가 진짜로 나가게 되면 캐서린 그레이엄(워싱턴포스트 사주)의 젖꼭지를 거대한 압착기계로 비틀어 짜버릴 줄 알아.” 로널드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은 보도내용을 모조리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를 근거 없는 기사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비열한 신문이라며 국민을 선동하고 다른 언론사들을 이간질했다.  

1973년 초 워싱턴포스트 주가는 주당 38달러에서 21달러로 폭락했다. 정부가 이 신문사 소유 텔레비전 방송국 두 곳 재인가 문제를 걸고넘어졌기 때문이다. 1973년 9월15일 녹음된 닉슨의 발언은 이를 예고했다. “가장 중요한 건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일로 정말 지옥 같은, 지독한 고생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이지. 그 회사는 텔레비전 방송국들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정부로부터 허가를 갱신받아야 해. 앞으로 엄청나게 험악한 싸움이 벌어지게 될걸.” 하지만 불과 얼마 뒤 지옥에 떨어진 건 닉슨 자신이었다.

중국과 화해하고 베트남 북폭을 강화하는 등 권력의 절정에 있던 닉슨의 1972년 대선 재선이 확실한 상황(49개 주에서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을 눌렀다)에서 대다수 언론들은 침묵했다.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초기에 경쟁했던 일부 신문들마저 워터게이트에 눈감았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관청 쪽 배포기사에 대한 더러운 애착을 지닌 포로들”, “겉으로만 센 척”하고 “정보를 이리저리 분류하며 정작 할 일은 하나도 안 하는 놈들”, “정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기나 하는 약아빠진 속기사”였던 백악관 출입 고참기자들은 백악관을 화나게 하면 돈과 명예가 보장되던 백악관 출입기자 자리를 잃을까 걱정했고, 워싱턴포스트의 새파란 전담 신참기자들(우드워드는 사건 발생 당시 입사 9개월, 번스틴은 11년차였다)을 깔봤다.  

백악관 출입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수도권 담당 기자였던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기성 제약들에서 해방돼 있었다. 그 ‘애송이들’이 잠복근무와 관계자 야간취재 등 오늘날 ‘탐사보도’의 핵심기법으로 알려진 집요하고 저돌적인 취재방식을 미국 언론사상 그때 처음 도입했다. 사주와 편집인, 데스크가 똘똘 뭉친 워싱턴포스트는 외로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1971년 6월 베트남 전쟁 확전 주범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 보도와 더불어 그때가 미국 언론으로서는 권력을 견제하는 ‘제4부’로서의 존재감이 가장 선명했던 전성기였다. 워싱턴 지방신문 4개 중에서도 3위에 머물렀던 워싱턴포스트가 일약 뉴욕타임스에 버금가는 일류 전국지로 거듭난 게 그 시기였다. 워싱턴포스트 성공의 최대 공로자는 물론 우드워드와 번스틴이었으나 또 한 사람, 닉슨의 역설적 ‘공덕’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닉슨은 2기 임기 절반도 못 채운 채 1974년 8월 9일 사임했다.  

아메리칸대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는 알리샤 셰퍼드가 2007년에 낸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WOODWARD AND BERNSTEIN- Life in the Shadow of Watergte)은 바로 그 과정을 우드워드와 번스틴의 캐릭터와 활약상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예일대 졸업에 해군 중위 출신의 전형적인 백인 엘리트 우드워드와 장발에 줄담배를 피우는 삐딱한 유대인 대학중퇴자 번스틴의 전혀 상반되는 캐릭터가 워터게이트를 매개로 최상의 조합으로 변모해가는 과정, 그리고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출세 이후 그들의 인생유전이 중심을 이룬다. 마지막 장에 미국 언론 사상 최대의 미스터리였던 ‘딥 스로트’, 곧 결정적인 국면에 우드워드를 도와줬으나 33년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정부 고위 관계자(연방수사국·FBI 2인자 마크 펠트)의 커밍아웃 과정을 따로 다뤘다.(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09. 04. 11) 미 언론 키운 한마디 “오케이, 보도합시다”

<‘워싱턴포스트’ 만들기>의 원제는 <멋진 인생>(A GOOD LIFE: Newspapering and Other Adventures). 편집국장, 편집인으로 닉슨 정부에 맞서 싸우며 오늘날의 <워싱턴포스트>가 있게 만든 또 한 사람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주역 벤저민(벤) 브래들리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1971년 6월13일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폭로한 초대형 특종을 했을 때를 브래들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뉴욕타임스>는 그 연구보고서 한 부를 입수해 10여명의 민완기자와 에디터들을 석 달 동안 투입한 끝에 10여 꼭지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런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경쟁지 기사를 베껴 쓰는 창피스런 입장이었다. 우리는 문단을 바꿀 때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눈에만 보이는 피가 흘렀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법무장관 존 미첼이 보도를 전면 중단하고 랜드연구소 군사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가 빼낸 7000쪽에 달하는 자료를 모두 국방부에 넘기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주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틈에 같은 내용의 4000쪽짜리 보고서를 긴급 입수해 닷새 뒤 실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 조처를 의식한 변호사 등 일부 간부들이 보도에 강력히 반대해 일대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때 대표적 보도 강행론자가 브래들리였고 도쿄 특파원을 지낸 돈 오버도퍼도 그의 편이었다.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은 처음엔 망설였으나 마침내 “오케이, 갑시다. 보도합시다”라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브래들리는 그 한마디가 “워싱턴포스트의 사풍을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추억했다. “(그 한마디로) 새롭고 독립적이고, 단호하고, 자신있게 바꿔버린 <워싱턴포스트>를 모든 편집자와 기자들이 얼마나 각인하게 될지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대통령과 대법원과 법무장관에 단호하게 맞서게 되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든 신문은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나아갔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다음날 법원의 게재 금지 명령이 내려지기 전 한 차례 더 보도를 강행했다.

세기적인 워터게이트 특종은 그때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사내에서는 펜타곤 페이퍼의 경험으로 그레이엄 일가와 편집국의 신뢰가 견고해졌다. 또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명감을 공유하게 됐다. 펜타곤 페이퍼 이후 우리가 함께 극복하지 못할 어려운 결정은 없었다.” 하지만 군소신문이었던 <워싱턴포스트>가 미국을 대표하는 정론지로 거듭난 결정적인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워터게이트 특종.

브래들리에 따르면 워터게이트 특종은 언론을 국가적 존경을 받는 지위로 밀어올렸고, 특히 <워싱턴포스트> 기자들, 그중에서도 보브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영웅으로 비쳤다. 고교와 대학 진로를 앞두고 고민하던 학생들은 언론에 매료됐고 언론학부 등록생 수가 치솟았다. “누구보다 언론을 싫어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던 닉슨이 가장 유능하고 젊고 강인한 활동가들을 언론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였다.” 그 사건 뒤 개혁적 정치인들이 등장하게 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워런 하딩 대통령 때 권력에 빌붙다가 몰락을 자초했던 <워싱턴포스트>는 국민과 민주주의 편에서 권력에 맞붙어 싸움으로써 재생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의 전체 윤곽은 우드워드, 번스틴의 삶에 초점을 맞춘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보다는 여러 사건을 두루 다룬 <‘워싱턴포스트’ 만들기>가 간결하지만 오히려 더 잘 요약하고 있다.(한승동 선임기자) 

09.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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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4-11 23:17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벤 브래들리를 기억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요.물론 저널리스트들이야 알고 있겠지만요. 호프만과 레드포드가 나왔던 All The President's Men에서 밴 브래들리의 연기를 했던 제이슨 로바드는 정말 멋졌습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라는 전통적인 구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편집장 역할이었습니다.영화 속의 워싱턴포스트 에디터 회의는 명연기자들의 집합소였지요..이름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을 보면 알만한 훌륭한 연기자들...

로쟈 2009-04-12 12:05   좋아요 0 | URL
이미지를 찾다보니 편집부 사진이 눈에 띄더군요. <미디어 모노폴리>를 보면 현재의 미국 언론시장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은데, 워터게이트 특종 같은 건 더이상 나오기 힘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주의 경제서는 케빈 필립스의 <나쁜 돈>(다산북스, 2009)이다. 비록 책을 구입할 '나쁜 돈'은 없지만 리뷰 정도야 얼마든지 챙겨놓을 수 있다. "저자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드러난 미국의 진짜 모습을 '석유라는 세계 주요 자원의 독점', '금융 부분의 폭발적 팽창', '종교와 정치의 연합' 세 가지로 요약한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순차적으로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었던 나라들의 흥망성쇠에서 이끌어낸 공통점을 통해 미국이 앞으로 어떤 행로를 보일지 예측한다." 처음 접하는 저자이긴 하지만, 이력이 만만치 않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듯한데, '미국의 금권정치와 거대 부호들의 정치사'란 부제의 책 <부와 민주주의>(중심, 2004)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됐다. 몇 권 더 소개돼도 좋을 듯싶다.  

한국일보(09. 04. 11) 나쁜 달러, 미국을 버렸고 세계를 버렸다  

"중요한 문제는 2007~2010년 지속될 미국의 주택 및 신용 위기가 세계 위기를 일으키고 결국 경제 패권을 아시아로 넘겨줄 것이냐, 이다."(293쪽)

"악화(이 책 제목 '나쁜 돈')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16세기 금융인 그리샴의 갈파가 새삼스럽다. 미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불리는 케빈 필립스가 지적하는 위기의 본질은 결국 그 통찰의 버전업인 셈이다. '나쁜 돈'은 가치가 떨어진 달러뿐 아니라 지나치게 거대해진 금융 부문과 그 불량 상품들, 그리고 위험한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경제를 '불노믹스(Bullnomics)'라는 말로 특징짓는다. 마구 날뛰는 황소 같다는 이야기다. 그 첫번째 특징은 1980~90년대에 연금 기금, 인터넷 거래. 기업 연금 등이 등장해 조성된 여건을 기반으로 한 금융 시스템이다. 두번째는 정부 주도 하에 벌어지는 거대한 통계 왜곡이다. 1990년대 말의 정치적 흥분 속에서 소비자물가 지수가 은밀하게 사전 조율돼 일반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세번째가 경제와는 무관할 것 같아 보이는 종교 문제, 즉 기독교 원리주의다. 미국인의 편향, 왜곡된 신앙 문제를 지적하는 대목은 이 책이 경제학 서적인가 싶을 정도로 문화적 측면을 중시한다. "조지 부시 시대 보수대연합이 사용한 마취제는 복음주의, 원리주의, 오순절 기독교였으며 9ㆍ11 이후 고조된 분위기를 이용하여 테러, 악마, 이슬람에 대한 편견도 함께 주입하였다"(139쪽). <시크릿> <야베스의 기도> 등 최근 한국의 독서시장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복음주의와 부시 행정부의 '오너십 사회'는 결국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실물이 아닌 금융에 대한 과도한 의존 정책은 결국 소득과 부의 양극화, 금전 숭배, 투기의 만연 등 시장의 대혼란으로 치닫고 말았다. 저자는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이 걸었던 길을 미국도 따르고 있다며 우려한다. 농업, 제조업 등 초기 형태의 산업을 희생시키면서 돈 장사(금융)에 올인한 나라들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종교의 보수ㆍ우경화가 가세했다. 



저자는 미국이 세계의 분노를 촉발시키며 21세기를 출발했다고 날을 세운다. "판단 착오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유혈 점령한 뒤, 국제적으로 크게 신망을 잃었다"고 지적하면서 "침공 목적은 이라크에서 석유를 대량으로 생산ㆍ판매, 석유수출국기구를 무너뜨리고 유가를 낮추려는 것"이라며 전쟁의 본질을 꿰뚫는다. 이 같은 명쾌한 논리로 저자가 보는 세계 경제의 위기는 대단히 실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다. "세계 석유 공급은 지금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이며 수요를 지탱할 수 없"(41쪽)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협량한 세계관도 한몫했다. 저자는 "순진하고 애국심 강한 미국인들은 그토록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에 반대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다"(45쪽)며 '선량한' 미국인들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닉슨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출발, 2006년 미국의 기독교 유파를 비판한 <미국의 신정 정치>를 발표하는 등 쓴소리꾼을 자임하는 저자는 타임 등 매체에서 필명을 날리고 있다.(장병욱기자) 

09.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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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어제 읽은 칼럼 한 편과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의 한 문단을 나란히 읽어보려고 한다. 밤늦게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어제 올려놓으려고 했던 페이퍼로서 지난주에 올린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보충의 의미도 갖는다. 쟁점은 '문화적 저항의 의의와 한계'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먼저 결과적으로 소비문화에 투항해버린 90년대 '신세대' 문화를 비판하면서 오늘의 청년세대에게 새로운 대안문화 창출을 요구하고 있는 강내희 교수의 칼럼이다. 

  

경향신문(09. 04. 10) 청년세대와 대안문화

1993년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라는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발칙한’ 내용을 담은 책이 나온 적이 있다. 90년대 초라면 서울의 압구정동이 소비의 메카로 떠오르고 ‘오렌지족’을 위시한 소비지향적 신세대가 등장하던 때이다. 문제의 책을 펴낸 저자는 미메시스라는 그룹으로, 이들은 ‘386세대’로 통칭되는 80년대의 청년세대가 금욕주의의 운동권 문화를 신세대에게 강요한다며 나름대로 신랄한 비판을 제기했다. 

90년대후 신세대 소비문화 빠져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는 당시의 시대 변화를 감각적으로 반영했다고 생각된다. 한국말로 된 랩 음악을 처음 시도한 ‘난 알아요’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이 책이 나오기 한 해 전이다. 당시 젊은 세대는 서태지에게 열광했고, 문제의 책은 신세대 감수성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때 이미 중년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80년대 운동권 문화는 지나친 엄숙주의를 드러낸다고 보고 있었던 터라 서태지의 새로운 감수성 실험과 미메시스의 지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해방은 운동권이 강조하던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도 이루어져야 하며, 당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족쇄를 벗어던지는 것만큼이나 욕망의 분출도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신세대가 걸었던 길은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투항이었던 것 같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는 청년세대가 사회적 의제를 주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생들이 전국적 의제로 집단행동을 한 것은 통일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북으로 간다며 연세대 교정에서 농성을 벌인 96년이 마지막이다. 이후 청년세대는 자본주의 시장의 소비자로 변해버렸다. 신세대는 운동권 선배의 금욕주의, 엄숙주의를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의 해방을 위한 욕망을 상품에 대한 욕망으로 축소시켜버린 것이다.

젊은 세대가 기존의 문화에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의 성격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5년 동안의 청년세대가 보여준 문화는 소비문화였다. 이들이 비판한 80년대의 청년세대는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넘어선 대안문화를 실험하려 했는데 말이다. 이전 세대가 문제점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80년대 청년세대는 권위주의 정치에 도전하면서 스스로 권위주의로 흐른 측면이 적지 않았고, 세계 동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곧 망해버릴 소련의 사회주의를 모델로 삼은 것이 단적인 예다. 그래도 당시 청년세대는 현실을 뛰어넘는 대안문화를 추구했다.

대안문화로 ‘새 해방’ 추구 기대
80년대 대학 곳곳에서는 시국 시위와 함께 마당극이 수시로 펼쳐졌다. 강의시간이면 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러나 개인의 관찰로 판단한다면 오늘 교수들의 강의 내용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개인의 패션과 스타일, 학점, 취업 등에 대한 관심은 늘어났으나 자기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오히려 뒤로 미루는 듯하다.

오늘의 청년세대는 욕망의 표출에서 해방을 찾기 시작한 90년대 신세대의 직계 후배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해방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일까. 소비문화로부터 벗어나려고 기획하는 것일까. 청년세대가 새로운 삶을 실험하지 않는 사회는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오늘의 청년세대가 대안문화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그들은 자신의 욕망에 더 철저해야 할 것이다.(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 

  

80년대 세대의 '정치적' 청년문화에 대한 불만과 반발심에서 터져나온 '신세대 문화'가 결과적으론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투항으로 귀결됐다고 지적하면서 필자는 동시에 "오늘의 청년세대가 대안문화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그들은 자신의 욕망에 더 철저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한다. 진단은 맞지만, 주문은 모호하다. 욕망에 충실하고자 했던 '압구정동' 세대의 문화가 대안문화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정말로 자기 욕망에 충실하지 못했던 때문이라고 보는 것일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미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 아닌가?(이명박 정권만큼 어떠한 도덕적 금제도 없이 자신의 욕망과 탐욕에 노골적으로 충실한 정권이 또 있었던가?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포식자들만큼 자신의 권력욕과 성욕에 충실한 이들을 더 찾아야 할까? 이들은 모두 지 꼴리는 대로 한다!)   

'네 멋대로 해라'는 건 이미 청년세대의 구호가 아니다. 세상이 앞질러, 기성세대가 앞장서서, 자본이 노골적으로 챙기는 구호가 '네 멋대로 해라'이며(물론 그들을 '소비주체'로 호명하는 구호다. "너도 이런 거 살 수 있어!"), '세상에 너를 소리쳐!'다. 이명박 장로님도 필진으로 참여한 청소년 '처세서'의 제목도 '네 멋대로 살아라'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불온한 대안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미 문화적 '주류'의 목소리다. 차라리 '별일 없이 산다'는 구호가 오히려 더 '불온'하지 않은지? "이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라고 말하기. 혹은 "난 알아요!" 대신에 맥없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라고 주절거리기(그래도 '아무렇지 않'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다. 소심하긴 해도 '루저 문화'의 저항적 에너지는 '어'라는 한음절에 집중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저항,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시차적 관점>의 한 문단에서 암시를 얻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억압적) 체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격렬한 춤사위에서 (독일 관념론자들이) 자유의 체계(라고 부른 것으)로의 전환이다"(15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지난번에도 적은 바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체계로부터의 해방에서 자유의 체계로의 전환(from the liberation from the System to the System of Liberty)"이다.  

"이것은 폭발적인 부정성 및 '저항'과 '전복'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들과 사랑에 빠졌으나 정작 그 자신이 기존의 긍정적 질서에 기생하게 되는 일만은 극복할 수 없었던 '부정 변증법'으로서는 진정 파악하기 어려운 변증법적 전환이다." 즉, 저항과 전복의 포즈만으로는 '자유의 체계'를 만들어낼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체위를 다 시도해본다고 해서 제도가 바뀌는 건 아니다. 지젝은 '혁명적 정치학'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든다. 각각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사례다.  

"살롱에서 토론하며 자신들의 모순된 언행을 즐기던 자유론자들로부터 권력에 대해 항의함으로써 권력자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역겨운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18세기 후반 혁명 전 프랑스에서 꽃피웠던 여러 자유사상가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을 혁명적 공포의 엄격한 새로운 질서로 전도시키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번역에서 '역겨운 예술가들'은 'pathetic artists'를 옮긴 것인데, '측은한 예술가들' 정도가 아닌가 싶다. 살롱에서 토론을 즐기던 자유론자들이나 권력에 나름 애교 있게 항의하던 예술가들이나 모순적이게도 한편으론 권력에 '기생'하는 족속들이었다. 오늘날 그런 이들의 사상과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불안을 (살롱에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혁명적 공포'를 불가불 수반하는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고자 한 시도를 지지하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에도 피바람 부는 '혁명 만세'를 외칠 수 있는지.    

"유사하게 절대주의자, 미래파, 구성주의자 등이 혁명적 열정의 우위를 두고 경쟁하던 시기인 10월 혁명 이후 처음 몇 년의 열광적이고 창조적인 불안에 매료되기는 쉽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의 강요된 집단화의 공포 속에서 이러한 혁명적 열기를 새로운 긍정적 사회질서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인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첫 문장의 '혁명적 열정'이나 두번째 문장의 '혁명적 열기'나 모두 'revolutionary fervor'를 옮긴 것이다. '강요된 집단화(forced collectivization)'는 '강제 집산화'가 낫겠다. 그런 강제 집산화 과정에서 '혁명적 열기'를 새로운 실정적/긍정적 사회정치 질서로 옮기고자 했던 시도를 읽는 게 중요하다는 것. 요컨대 핵심은 '혁명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겨운 일이다.  

거기에 비하면, "혁명 이후의 현재가 짊어진 십자가에서, 그들 자신들이 자유에 대해 가진 만개하는 꿈의 진실을 인식하기 거부하는 혁명적인 아름다운 영혼들보다 윤리적으로 더욱 역겨운 것은 없다."(16쪽)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은 제시하면 "There is nothing ethically more disgusting than revolutionary Beautiful Souls who refuse to recognize, in the Cross of the postrevolutionary present, the truth of their own flowering dreams about freedom." 즉, 자유에 대한 열망을 실컷 늘어놓다가 정작 혁명적 공간이 열리자 '이런 게 아니었어'라고 부인/회피하는 태도를 지젝은 '아름다운 영혼'의 역겨운 태도라고 비판한다.   

문제는 '대안문화'가 아니다. '질서'가 바뀌지 않는다면 '대안문화'의 '대안'은 가식적인 눈속임에 불과하다. 문제는 '저항'도 '도발'도 '전복'도 아니다. 그러한 에너지가 새로운 질서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전환이 생략된다면, 모든 체제비판은 체제 기생적인 비판에 머물고 말 것이다. 여기저기서 "네 멋대로 해라"고 부추기는 시대에 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자기 개성을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그러한 조건에 구속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 멋대로 할 수 없다면, 네 멋대로 하지 마라!.. 

09.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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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4-1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영혼'이란 일종의 비꼬는 듯한 표현인가요?

로쟈 2009-04-11 15:35   좋아요 0 | URL
헤겔의 용어입니다. '순진한 주관주의' 정도일까요...

노이에자이트 2009-04-1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은 주관적 관념론자가 아니라서 순진한 주관주의를 거시기하게 보았겠군요.

로쟈 2009-04-12 12:06   좋아요 0 | URL
그냥 누가 봐도 '순진한' 태도죠...

yoonta 2009-04-1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표현들이 난삽한 편이어서..

"체계로부터의 해방에서 자유의 체계로의 전환"

이런 표현들이 의미하는 것이 불분명했었는데 로쟈님 설명을 들으니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군요.

결국 헤겔의 '부정의 부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로군요.

체계를 단순히 거부하거나 도발하는 것은 최초의 반정립적 '부정'은 될 수있을지 모르나
최초의 체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는 '부정의 부정'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


로쟈 2009-04-11 19:47   좋아요 0 | URL
지젝은 적어도 제 경우엔 헤겔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가 난삽한 건 아닌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4-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10대말에서 20대 초중반이 보기엔 6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나 70년대 초반 태어난 사람들이나 다 아줌마 아저씨들일 뿐이겠지요.

로쟈 2009-04-12 17:52   좋아요 0 | URL
각 세대마다 나름의 고민이 있겠지만, 점점 좀스러워지는 듯해서 아쉽습니다. 요즘은 각자 생각만 하기 바쁘니까요...

paul 2009-04-1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기다리신다는 "The Monstrosity of Christ" /Slavoj Zizek 이 출간된 것 같더군요.^^

로쟈 2009-04-12 17: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네요. 여름에나 읽을 수 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