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이틀 저녁수업이 있었던 지난 학기에 비하면, 일주일에 이틀 아침 아홉 시 수업이 있는 이번 학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만, 그럼에도 개강초의 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귀가 후에 글을 쓰기 위한 '또다른 일과'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못 차리고 나가떨어지기 일쑤다(오늘은 영양제를 맞아보라는 충고도 받았다). 하기야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체력이 달려서 애를 먹는다고 하는데, '빈곤한' 체력으로 8개월을 버텼으면 할 만큼 한 거란 생각도 든다(더 무리할 수도 있지만, 과로사 증후군도 이젠 고려해야 할 나이다). 그럼에도 일정은 11월까지 빼곡하다. 이러다 연말까지 찌질한 노동'으로 연명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찌질한 연애'에 관한 책에 대해 떠들려다가 잠시 말이 헛나갔다. 최근 각광받는 20대 필자군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 2009)의 한윤형과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레드박스, 2009)의 김현진이다(나는 시사IN의 칼럼으로 처음 알게 됐다). 한 책소개 프로그램에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후보로 올렸다가 한윤형의 책을 먼저 읽게 됐는데, 김현진의 책도 여유가 되는 대로 읽어볼 참이다. '연애'에 대한 관심은 한참 아랫순위이고 '88만원 세대의 글쓰기'에 대해서 분석해보고픈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싶으면 뭔가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기력을 충전하는 게 우선일 테지만. 사실 연애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기운이 생동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연애일 테니까. 최소한 맥 빠진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김현진의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9. 09) “당신만 찌질한 사랑에 아픈 건 아니랍니다”

요즘 인터넷과 진보매체에서 ‘글발’을 보여주는 잘나가는 20대 칼럼니스트가 여럿 있다. 하지만 그 중 여성은 김현진씨(27)가 유일하다. 첨예한 사회 이슈에 대해 속시원히 발언하던 그가 최근 돌연 관심사를 돌려 연애에 관한 에세이집을 냈다. 속칭 ‘찌질한 연애’의 모든 것을 모았다는 책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이다. 

 

웬 연애 칼럼집이냐는 반응에 김씨는 “몇년 전부터 연애 이야기를 좀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연애를 많이 한 편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연애는 개인과 개인이 다 벗고 충돌하고 깨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사람을 가장 많이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데 요즘 자꾸 똑똑하게 사랑하라, 손해보는 사랑은 하지마라고 이야기하는 책들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지겹더군요. 20대 여성들이 소개팅 가서, 데이트 하면서 돈을 안썼네 하면서 남자들을 이용해먹는 ‘된장녀’적인 아이콘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은 분위기도 싫었고요.”

사회가 강퍅해지면서 점차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없어지고 기회비용을 계산하고 손해 안 보고 상처 안 받으려는 태도가 야무지고 똑똑한 사랑의 방식으로 인식되는 풍토가 싫었다. 책은 ‘찌질한’ 사랑을 해서 자신을 비관하고 있는 20대 여성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물론 자신도 찌질한 연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여자들이 그렇게 따져가면서 손해 안 보는 연애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남자에게 이용당하고, 손해 보고 끙끙 앓고 심지어 맞기도 하고 임신했다가 애를 떼기도 하고…. 찌질한 연애로 주눅들어 있는 아가씨들이 책을 보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길 바랐어요.”

이 책은 벌써 김씨의 6번째 에세이집이다. 1998년 고교를 자퇴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한 뒤 자신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며 99년 발표한 에세이집 <네 멋대로 해라> 이후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등을 통해 10대와 20대들에게 조언을 건넸고 잡지와 신문 등 매체에도 시사칼럼을 쓰는 등 꾸준히 글을 썼다.  

“사실 저보다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분들은 다들 대기업 홍보실에 가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비결 같은 건 없고요, 제 글이 도움이 됐다고 e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 보면 그냥 고마울 따름이죠.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박박 긴 ‘삽질’의 기록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길 바랄 뿐, 10~20대의 멘토씩이나 될 자격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하나 그렇게 글을 써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첫 책은 무려 19쇄나 나갔는데도 말이다. 생활감각이 전무한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려가다보니 글값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씨는 웃으며 자신의 글쓰기를 ‘생계형 글쓰기’라 하고 자신을 일러 월 4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빈민’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는 조용히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실천을 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인세, 원고료의 일부를 기륭전자 비정규직 분회에 기부한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의 인세 중 10%,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는 매체 중 두어 군데의 고료는 그를 거치지 않고 분회 쪽에 입금된다. “사실 원고료가 얼만지도 몰라요. 요즘은 가난하다 보니 그 돈도 아쉽기는 하지만, 작년에 기륭전자 언니들이 싸우는 걸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기 때문에 내는 수업료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보니까 소소하게 컵라면이니 생수 등 돈 드는 게 많더라고요. 돈을 더 많이 벌면 다른 곳에도 기부하고 싶은데 저도 도시빈민이다 보니 ‘일단 한 군데만 밀자’ 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기부를 “국세청과 전혀 상관없는 제 나름의 사회에 대한 납세”라고 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까 연대를 잘 못한다고 괴로워하는데 시간이 없을 땐 ‘현금빵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신자유주의적 시각의 연대긴 하지만, 별달리 시간도 여유도 없을 땐 최선의 연대는 입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부뿐 아니다. 그는 언제나 현장에 달려나간다. 지난해 여름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륭전자 노조원들의 단식투쟁에 참여해 릴레이 단식을 하고 노조원을 위한 바자를 열었다. 올여름에는 쌍용차 평택공장 파업현장에도 갔다.

“일단 제가 가난하기도 하고, 에세이스트로서의 직업윤리 같은 게 있어요. 공돈 먹을 수는 없다, 이런 거죠. 집에서 그냥 인터넷으로 보고 글을 쓰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해서 몸으로 때우는 거죠. 가서 내 눈으로 본 걸 쓰자, 현장 분위기를 몸으로 느껴서 조금이라도 더 진짜인 글을 쓰자고 생각해요.”

냉철한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유머와 휴머니즘이 담겨 있는 그의 칼럼이 생생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현재 서울 종암동 철거구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재개발로 변화하는 서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정말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일본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걸>을 재밌게 읽었다는 그는 “원래 실없는 농담을 엄청 좋아하고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해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크고요. 한데 요즘 사회 상황이 왠지 결연한 분위기를 유도하네요. 앞으로 전공(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대학원 과정을 휴학하고 있다)을 살려서 킥킥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짬 내서 읽고 하루하루 살짝 기분 전환이라도 될 수 있는, 그 정도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윤민용기자) 

09. 09. 09.  

P.S. 날짜로만 치면 꽤 의미있는 날이로군(중국의 '구구절'이 오늘인가?). 지면에서의 인기에 비하면 실제 판매량은 두드러지지 않은 듯하다(적어도 알라딘에서는). 책 인세의 10%는 기부된다고 하므로 덩달아 '간접기부'에 참여해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듯싶다. 그래야 우리의 '언니'가 더 오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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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09 20:18   좋아요 0 | URL
제가 악착같이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이 이런 책이었는데, 인터뷰 기사와 로쟈님 P.S.를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군요^^

로쟈 2009-09-09 22: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연애서 읽을 나이는 아니지만, 젊은 세대의 감각을 엿볼 수는 있을 듯해요...

2009-09-09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09-09 22:51   좋아요 0 | URL
가야금연주자 황병기 님이,
"삼복 더위때에 무언가를 하면 큰 일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붘깡스를 즐겼던 로쟈님이나, 한 여름에 평택공장을 지켰던 작가 님이나
"무언가 큰 일"을 저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11월을 너머 빼곡히 변화하는
서울을 온 몸으로 담아 낼 것 같습니다.

책읽는 남자가 섹시하듯 신문을 읽는 여자 또한 '누구의 연인'이기를
거부하는 가을 분입니다. 연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계절에 B급 연애는
더 생생할 텐데요.

여름내 흘린 육즙으로 이젠 탈진하여 어지럽고 어깨마저 축처집니다.
가을의 숨을 몰아쉬는 야구장과 투쟁 현장과 강의실에서도 1등급 육즙을
공급 받아야만 다음 삼복에도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슴입니다.

로쟈 2009-09-09 22:58   좋아요 0 | URL
네, 여름을 잘 나지 못한 후유증 같습니다. 이제와서 물릴 수도 없구요.^^;

2009-09-09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09-09-09 23:20   좋아요 0 | URL
사실 선입견이 있었던지라 로쟈님의 이 글을 읽고나니 왠지 부끄럽네요.
푸른바다님과 같이 저도 악착같이 읽지 않는 책이 여자 뭐뭐~ 시리즈 같은 종류,
칙릿, 시덥잖은 연애학서 같은 종류의 책들인지라 이 책도 딱 제목과 표지만 보고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으니 정확히는 알수없지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고 보이면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배우고 갑니다. 글 감사합니다.^^
ps : 제가 그런 책들을 싫어하는 몇가지는 여자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해놓고 남자를 비판하는 그런 시각도 싫고 연애학서 보고 손해보지 않는 연애하려고,사랑도 결국 자신 행복하자는 거고 즐겁지 않으면 싫은거라지만...그런게 불편하더라구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런 책을 통해 당신은 '연애에는 성공할지 모르나, 사랑에는 실패할 것이다' 뭐,저만의 견해입니다.^^;;

로쟈 2009-09-09 23:49   좋아요 0 | URL
저자는 저자를 먼저 봤기 때문에 의외다 싶었는데, 소개를 보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습니다. 더불어, 저자의 나이도 생각하게 되구요...

루체오페르 2009-09-09 23:22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남기는 순간 다른분의 글과 로쟈님의 댓글이 와르륵 달려 나타나네요. 지금 같은 글을 보고 있다니 왠지 기분 재밌습니다. ㅎㅎ

다락방 2009-09-09 23:34   좋아요 0 | URL
저는 아침에 경향신문을 읽고 회사일을 시작하는데, 로쟈님이 가끔 이렇게 경향신문 기사를 올려주시면 한번 더 보게 되는거에요.

저도 위에 루체오페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계발류의 시리즈 책은 전혀 읽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이 책도 제목만 보고 그런책이거니 하고 넘기려다가 저자가 김현진이란걸 알고 오늘 부랴부랴 주문했어요. 시사인에 기고하는 그녀라면 연애에 대한 얘기도 제법 신랄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9 23:48   좋아요 0 | URL
저도 보통은 전철역에서 사서 읽는데, 오늘은 버스를 이용한 탓에 사보지 못하고 온라인에서 읽었습니다. 마땅한 기사다 싶어서 옮겨놓았는데, 반응이 좋군요...

라로 2009-09-10 03:17   좋아요 0 | URL
저도 선입견과 편견이 강한 인간이라 "저런책~?!..."이라며 들춰보지도 않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지나쳤을텐데,,,,,,,로쟈님,,,흑

라로 2009-09-10 03:24   좋아요 0 | URL
지금 책을 보관함에 담으며 보니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는 대부분 참 가혹하네요,,,

로쟈 2009-09-10 16:30   좋아요 0 | URL
'찌질한 연애담'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하는가 봅니다...

필로우북 2009-09-10 10:35   좋아요 0 | URL
저도 김현진 님 팬이에요. 예전에 '또 하나의 문화'시리즈에 글을 쓰던 십대 시절부터 글을 참 잘 썼었죠. 동시대에 같은 나이를 살면서 글로 표현해 주는 게 고맙기도 했구요. (그녀는 절 모르지만 제 중학교 1년 선배이기도 해서)그 뒤의 행보를 지켜는 보고 있었지만, 얼마 전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 라는 부제가 붙은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를 읽고 다시 팬이 되었습니다. 20대를 포함한 모두, 계발에 앞서 자기를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



로쟈 2009-09-10 16:3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세대가 달라서 자기세대에 대한 연민이나 격려에는 거리감을 느끼지만, 맛깔나는 자기 문체를 갖고 있어서 좋아합니다...

순오기 2009-09-10 10:45   좋아요 0 | URL
20대인 우리 딸이 보면 딱 좋겠다 싶은데... 대학도서관에서 경향신문을 챙겨본다니 기사는 읽었겠네요. 저는 '언니가 간다'가 더 땡기는데요.^^

로쟈 2009-09-10 16:33   좋아요 0 | URL
<언니가 간다>는 칼럼모음집인 듯해요...

2009-09-10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0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만원 지하철에서 읽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어제의 오늘' 꼭지인데, 1941년 9월 8일은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공습을 감행된 날이라 한다. 이미 6월에 독일군이 침공해들어왔을 때, 당시 소련은 히틀러와 비밀리에 체결한 불가침 협정만 믿고서 전혀 무방비상태에 있었기에 피해가 더욱 컸다(스탈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결국은 독일군을 격퇴하지만 2차 대전 중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칼럼은 레닌그라드 봉쇄의 눈물겨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09. 09. 08) [어제의 오늘]1941년 독일군에 포위당한 레닌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역사와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러시아 제2의 도시다. 18세기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가 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러시아 북서부 네바강 하구 삼각주에 건설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1924년 레닌그라드로 개명했다가 1991년 소련 해체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6월 독일이 300만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면서 대독전선 전방에 위치한 레닌그라드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파죽지세의 독일군은 개전 두달여 만에 레닌그라드 부근에까지 이르렀으나 시민들이 2만5000㎞에 달하는 참호를 파며 항전의지를 불태우자 점령 대신 포위전으로 전환한다. 히틀러도 독일군에 레닌그라드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린다. 



마침내 9월8일 독일군은 라도가 호수를 제외한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하고 공습을 시작했다. 인구 300만명의 레닌그라드에 대한 보급이 차단된 뒤 한달여 만에 시민들은 극심한 기아상태에 빠졌다. 밀가루가 떨어지자 톱밥, 목화씨는 물론 말 사료로 쓰던 귀리까지 먹어야 했다. 소련 해군함대가 보낸 곡물수송선이 라도가 호수에서 격침되자 배를 인양해 썩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9월말에는 석유와 석탄이 떨어져 공장가동이 멈췄고 11월에는 교통수단 통행이 중단됐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사자들이 속출했고, 사람들은 인육에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강원도만한 크기의 라도가 호수가 얼어붙으면서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 말이 이끄는 수송부대가 호수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물자를 실어 날랐고, 이듬해 4월까지 50만명의 시민들이 결빙상태의 호수를 건너 탈출했다. 1942년 여름에는 라도가 호수 밑바닥으로 석유 파이프라인이 건설되기도 했다.

1944년 1월27일까지 900여일 가까이 상상조차 어려운 굶주림과 추위, 폭격에 맞선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분투는 소련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줬고, 스탈린은 1945년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의 칭호를 부여했다. 포위기간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뜨거운 동지애와 전우애로 서로를 격려하고 저항을 이어갔다. 나이 많은 시민들이 “꼭 싸워 이기라”며 젊은이들에게 배급을 양보하고 희생을 자처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계적인 음악거장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투쟁과 애국심을 찬양하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독일군이 패퇴한 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트로이도 로마도 함락됐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며 만세를 불렀다. 포위전의 희생자는 소련정부의 공식발표로는 67만명이지만 최대 120만명이라는 설도 있다.(서의동기자) 

09. 09. 08. 

 

 

P.S. 찾아보니 레닌그라드 대봉쇄를 다룬 책들은 예상대로 많이 나와 있다. 어떤 책이 가장 정평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두 권은 소개됨 직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데브라 딘의 실화소설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코리아, 2007)가 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치 치하 900일동안,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켰던 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그리고 네덜란드 작가의 <레닌그라드의 기적>(다림, 2007)도 나와 있는데, 어린이용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레닌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물론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을 다룬 책들은 기본서일 텐데, 또다른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그린 안토니 비버의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문집, 2004)는 "2차 대전의 향방을 뒤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소개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다. 찾아보니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병사의 회고록과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에서의 전차전에 관한 책도 소개돼 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라 이름 붙여진 소련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로써 불붙은 독일과 소련의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시가전으로 기록될 만큼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안기며 2차 대전의 향방을 뒤집는다. 전체 전사자 중 80%를 이곳에서 잃은 독일군은 이 전투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어떻게 스탈린 체제의 비효율적인 공포정치에 익숙해진 소련이 그토록 막강한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흐루시초프는 이 전쟁에 대해 "소련은 스탈린 덕분에 독일에 이긴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있었음에도 이긴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전투의 주인공이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니라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 무명용사들이라는 것.

이 책은 이같은 입장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들여다본다. 전투 현장의 양쪽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전투에 휩쓸린 보통의 사람들이 이 전투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견뎠는지를 담아낸 한편의 다큐멘터리와 같다. 이를 위해 양측 군인의 일기와 편지, 군목들의 보고서, 개인적 메모 등 다양한 사료들을 동원했다.  

겸사겸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도 감상해본다(http://www.youtube.com/watch?v=m3G9ZqxcR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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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러시아 사람을 작년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왈 레닌그라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정확한 러시아 발음은 어떻게 되나요?^^)로 복귀했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아직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탈린그라드 대회전과 관련되어 있기에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던데, 전 사실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갑자기 내가 제대로 알았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반박을 못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1961년 이후 볼고그라드로 복귀된 걸로 되있네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을 테고, 행정적으로는 볼고그라드지만 아직 많은 러시아인 기억에는 스탈린그라드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Sati 2009-09-08 20:34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니, 러시아공산당을 중심으로 개명운동이 매년 꾸준히 펼쳐지고 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는 볼고그라드입니다. 2004년에 푸틴이 국민정서를 고려하여 모스크바 크레믈린 옆 무명용사의 묘역에 있는 '볼고그라드' 명판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꾼 일이 있었네요.

로쟈 2009-09-08 23:41   좋아요 0 | URL
'뻬쩨르부르그'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지명에 대해선 러시아인들도 모르는 수가 있군요.^^

푸른바다 2009-09-09 16: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Sati 님 감사합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있군요... 업무상 러시아 인들을 만날 일이 있는데, 소련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답을 회피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싸움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 이름을 바꾼다는 건 그 싸움의 명분이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을 상징하기에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음악 잘 들었습니다~

로쟈 2009-09-08 23:40   좋아요 0 | URL
중국엔 잘 다녀오셨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9-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오래전 번역된 것도 있고 국내 저자가 쓴 것도 있지만 레닌그라드 공방전 자체만을 다룬 것은 단행본으로 나온 게 없어요.해리슨 솔즈베리 것이 영어권에선 꽤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번역되지 않았구요.좀 오래된 것 중 윌리엄 샤이러<제3제국의 흥망>이 자세한데 60년대에 번역된 것은 일본어 중역이라 가타카나 발음으로 나와서 좀 어지럽지요.

최근 나온 것은 데이빗 글랜츠<독소전쟁사>가 군사전문가 쪽에서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오버리는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글랜츠는 러시아어를 안다는 잇점이 있지요.그리고 전투 묘사에 더 치중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8 23:39   좋아요 0 | URL
언젠가 서점에서 본 듯한 책이군요. 덕분에 챙겨둡니다.^^

목동 2009-09-0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소피아로렌 주연 "해바라기(sunflower)"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전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군인의 얘기가 아닌가요?
*'독소전쟁사' : '독소(toxin)전쟁사'로 오인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10 23:02   좋아요 0 | URL
마츠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독일군의 동맹군으로 소련에서 전투 중 낙오되어 현지여인과 결혼한 이탈리아 남자로 나오지요.그 소련 배우가 미녀로 유명한 루드밀라 샤벨리에라입니다.배경은 우크라이나입니다.현지에서 직접 찍었지요.촬영당시는 소련 시절이라 우크라이나가 소련 내 공화국이었습니다.

목동 2009-09-12 09: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접경이군요. 주위에는 동유럽국인 '벨로루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있군요.
현재 동유럽은 '경제.금융상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1) 외부 유입된 부채에 의한 경제구조.
2) 사회복지에 대한 많은 재정적자.
3) 정치불안,'우크라이나'경우 은행개혁과 정부 예산 수정 등 각종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미미한 상태로 201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쟁으로 인해 혼돈 심화.(조선,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2009-09-1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1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명한 탈식민주의 이론가 호미 바바 교수가 내한하여 강연을 가졌다 한다. 동정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또 한주일이 시작되는군...  

한국일보(09. 09. 07) 호미 바바 미하버드대 인문학연구소장 방한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누가 소외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세계화는 경제적인 프로젝트인 동시에,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프로젝트로도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호미 바바(60) 미국 하버드대 인문학연구소장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3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바바 교수는 자크 라캉, 에드워드 사이드 등과 함께 탈구조주의 문화이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시카고, 런던대 등을 거쳐 2001년부터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뉴스위크에 의해 '차세대 미국인 100인'에 뽑힐 정도로 정교한 학문체계뿐 아니라 왕성한 사회적 발언도 평가받는다.

그는 4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과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연구단이 각각 주최한 세미나에 잇달아 참석, 지구촌이 당면한 현실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 사유의 결과를 선보였다. 세계화와 극단적 폭력, 다문화적 혼융 등 현대 사회의 혼란을 헤쳐갈 방편으로 바바 교수는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성찰과 변혁을 추구하는 인문학적 사고"를 제시했다.

바바 교수는 난해한 탈구조주의 이론보다는 세계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는 세계화를 "로마로부터 21세기까지, 역사의 과정 속에 되풀이되는 흐름의 하나"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윤리'라는 부분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얼마나 많이 수출하고 수입하느냐, 얼마나 많은 NGO의 네트워크를 갖느냐보다 각국에서 온 외국인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척도가 "세계화의 수준과 윤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바바 교수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지속가능성, 그리고 평등과 함께 추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세계화의 역기능에 시달리는 신생 개도국들은 탈식민지 과정과 냉전 상황을 거치며, 발전이 덜 된 상태에서 세계화의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초의 식민의 유산을 간직"한 상태에서 "IT 혁명을 찬양하고 글로벌 마켓의 유연화를 찬양하는 흐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바바 교수는 그러나 "지구가 평평하고 공평하다는 생각의 반대편에는 유례없는 차별과 고통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세계화와 함께 현대 사회의 특징을 상징하는 '다문화'에 대해서는 "평등한 입장에서의 포용적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월한 문화는 없다는 전제 하에, 문명충돌 같은 아이디어를 버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중반 조국인 인도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년기의 경험으로 설명을 보탰다. 그가 태어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의 혼란과 파키스탄의 분리 과정에서 빚은 갈등의 시기와 겹친다.

바바 교수는 "그 시절은 긍정적 감정과 적대감을 동시에 일으키던 시기였다. 탈식민지운동의 반대편에서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화를 흡수했다. 한편으로는 굉장한 소속감을 느끼면서, 또 한편에선 나 자신의 존재 근원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러니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역사의 문은 열려 있지도 닫혀 있지도 않고,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며 "무엇을 들여보내고, 내보낼지를 결정하며, 민주주주의 취약한 점을 보완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리주의의 관념으로 구성된 현대 정치에 내러티브, 혹은 감성의 언어를 가미할 것도 제안했다. "세계화, 문화 정체성 등과 관련해 너무 단순화·도식화한 개념들은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형식의 올가미와 차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바 교수는 "모든 유전자, 모든 문화는 고유한 이야기와 역사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주체가 될 수도 객체가 될 수도 있다는, '세계적 회의'(global doubt)로부터 출발하는 인문학의 필요"를 강조하며 강연을 끝맺었다.(유상호기자) 

09. 09. 07.  

 

P.S. 강연인 만큼 대체로 '좋은 말씀'으로만 채워져 있어서 건질 게 별로 없지만, 마지막 문단의 내용은 흥미를 끈다. "합리주의의 관념으로 구성된 현대 정치에 내러티브, 혹은 감성의 언어를 가미할 것도 제안했다"는 대목. 사실 '제안' 수준을 넘어서는 뭔가를 기대하게 하지만, 더이상은 확인하기 어렵다. 국내엔 <문화의 위치>(소명, 2002)만 출간돼 있으나 그의 또다른 주저는 <민족과 서사(Nation and Narration)>이고,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도 거기에 닿아 있다(이 책은 번역된다는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기사에서 "자크 라캉, 에드워드 사이드 등과 함께 탈구조주의 문화이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소개됐는데, 자크 라캉의 이름이 포함된 건 의외이다. 바바는 '탈구조주의 문화이론가'라기보다는 보통 가야트리 스피박까지 포함하여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탈식민주의 '3총사'로 불린다. 사이드의 서거로 이제 두 사람이 남은 셈이지만.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좋은 입문서로는 보통 바트 무어-길버트의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한길사, 2001)와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경성대출판부, 2008)가 꼽힌다. 호미 바바만을 단독으로 다룬 소개서들도 영어권서에는 서서히 나오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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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9-07 14:15   좋아요 0 | URL
^^ 호미 바바 사진을 신문에서 얼핏 보더니 예찬이 왈...
"아빠 저 할아버지가 수염을 뽑아요. 어...왜 자기 수염을 뽑아요?"
..
원근법을 무시하고 보면 수염 뽑는 것 같아요 .

새학기가 시작되서 더 바쁘시겠습니다. 지난 주에 인디고서원에 가서 로쟈님 책이 얼마나 팔리나 봤더니 4쇄판이 나와 있더군요..잘된건가요? ^^

2009-09-07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09-08 18:40   좋아요 0 | URL
소크라테스 같습니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문화DNA에 대한 평등성을 주장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경제력을 업은 과학이 '우수DNA' 획득을 위한
'형질변환'로드를 무한질주하는 시대입니다.

로쟈 2009-09-08 23:51   좋아요 0 | URL
평등은 당위적인 가치죠...
 

지난달에 '8월의 읽을 만한 책' 목록에 올려놓기도 한 아냐 울리니치의 소설 <페트로폴리스>(마티, 2009)에 대한 서평기사가 뒤늦게 떴기에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과 미국으로의 불법이민을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쿨’하게 그렸다"고 하기에 관심을 갖게 된 작품이고 구입은 해놓았지만 아직 손에 들지는 못했다.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해놓는다.  

경향신문(09. 09. 05) 혼혈·임신·불법 이민… 상처 뿐인 나의 소녀시절 

어느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버린 아버지, 인텔리겐치아 집안이라는 알량한 자존심만 남은 어머니, 그리고 흑인의 외모를 가진 러시아 소녀 사샤. 이 소설은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과 미국으로의 불법이민을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쿨’하게 그렸다. 주인공 사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구 소련의 역사가 남긴 상처가 어떤 식으로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사샤는 러시아에서 보기 드문 흑인 혼혈이다. 그의 아버지 빅토르가 ‘축전 아기’이기 때문인데 이는 흐루시초프 시절, 스탈린주의로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겠다면서 제6회 국제청소년축전을 개최했을 때 외국인을 처음 본 소련 소녀들이 분별없이 하룻밤을 보낸 뒤 태어난 사생아를 뜻한다. 그중 덜 까만 편이었던 빅토르는 부유한 과학자 부부에게 입양되지만 교통사고로 양부모마저 잃는다. 그런 아빠와 결혼한 엄마 류보프는 공산정권을 비판하다가 숙청된 ‘인민의 적’의 딸로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한다. 사샤가 10살 되던 해 아빠는 누군가의 초청을 받아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

모든 것이 불만스러운 사샤는 15살 때 친구 오빠 알렉세이와 쓰레기매립장에서 사랑을 나누고 나디아라는 아기를 낳는다. 엄마는 나디아를 자신이 맡아 기르는 대신 미술에 재능이 있던 사샤를 레핀아카데미에 보내지만 사샤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정열적인 검은 미녀’라는 홍보문구를 달고 미국의 38살짜리 대머리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그후 사샤는 남편에게서 도망쳐 부잣집의 가정부로 들어가고 그집 아들 제이크의 도움으로 아빠 빅토르를 찾게 된다. 치기공사가 된 빅토르는 하이디란 대학강사와 결혼했는데 하이디는 빅토르의 양아버지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빅토르를 미국으로 초청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갈래들 사이에서 반항적인 소녀였던 사샤는 어느덧 험난한 삶을 헤쳐가는 여성이 된다. 500달러를 모은 뒤 고향의 엄마를 찾아가 나디아의 양육비로 내놓고 다시 엄마가 실종되자 나디아를 데려온다. 아버지와 나디아의 아빠인 알렉세이를 보면서 무책임한 러시아 남자들에게 절망하지만 자신을 도와준 제이크에 대해, 그가 불구자인데도 사랑을 품게 된다. 사실 러시아 남자의 무능조차 사회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군대에서 살아남더라도 대개 중년이 되면서 보드카, 질병, 이혼, 산업재해에 무릎을 꿇는다.

이 소설은 러시아 출신 불법이민자의 현실을 아기자기하면서도 입체적으로 풀어놓았다. 우울한 사연이지만 나름대로 발랄하고 한순간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과 달리, 3인칭 시점을 취한 것도 한몫한다. 단 사샤가 자신의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딸 나디아에게 보낸 독백에 가까운 편지들은 사샤의 그늘진 내면과 진정성을 보여준다. 

Anya Ullinich   

작가(36)는 사샤와 비슷하게 17살 때 가족과 함께 관광비자로 미국에 눌러앉은 불법이민자 출신으로, <코냑으로 공무원을 매수하는 법> <지하도 전체에 풍기는 썩은 냄새를 오래 참는 법> 등 과거 러시아에서의 시시콜콜한 기억을 소설로 옮겼다. 뉴욕의 문화 전문 무가지 ‘빌리지 보이스’는 이 책을 2007년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한편 책을 번역, 출간한 도서출판 마티는 인터넷 연재가 소설의 주요 홍보수단이 된 현실을 감안해 이 책의 내용을 지난달 25일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문학속세상’ 코너와 인터넷 교보문고 북로그 코너에 무료 연재하고 있다. 소설 출간 후 연재하기는 처음이다.(한윤정기자) 

09.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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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역이 참 좋아요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09-09-10 00:49 
    다음에 올라온 부분을 천천히 읽고 있는데, 번역이 참 좋네요. 구매의사 100%
 
 
Sati 2009-09-0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도 전체에 풍기는 썩은 냄새를 오래 참는 법>이라니!.. 모스크바 하면 후각적인 인상이 참 강하게 남아 있는데... 지금은 90년대 초반에 접했던 그 냄새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그립기까지 하네요. <페트로폴리스>는 다음에 가서 첫 페이지만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는 걸요. 러시아어로는 나오지 않은 듯 하구요(ozon에 없네요).

(한국어본 사진 올려주신 것은 상품으로 직접링크가 안 되네요.^^)

로쟈 2009-09-07 16:51   좋아요 0 | URL
네, 펌글은 이미지만 제가 따다붙여서 그렇습니다. 러시아에선 반가워하지 않을 소설 같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9-0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미국에서 러시아 출신 이민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 때 이민온 이들을 그린 소설이 많았는데(버나드 맬러무드,솔 벨로우 등)이젠 소련 몰락 이후를 그린 소설도 번역되는군요.

로쟈 2009-09-07 16:52   좋아요 0 | URL
그런 유대계 작가들처럼 하나의 '흐름'을 이룰지는 미지수이지만, 사람 살았던 얘기야 다 소설거리죠...

목동 2009-09-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도 이민정책을 펴야 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산업연수생'과 '불법체류자' 등에 대한 부작용이
날로 더 합니다. 최근 뉴스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로쟈 2009-09-08 23:52   좋아요 0 | URL
인종차별방지법안이 며칠전 제출됐더군요...

털세곰 2009-12-03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소설의 작가가 저렇게 생겼군요. 왠지 덜 러시아적같은 느낌이...
그나저나 저런 사진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세요? 늘 드는 생각이지만 수색능력이 CIS 아니 CSI를 찜쪄먹으십니다 ㅋㅋㅋ
 

<고교 독서평설>(9월호)에 실은 갑론을박 꼭지를 옮겨놓는다. 헤르만 헤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데미안>을 다루고 있다. 연재도 몇 차례 남지 않았는데, 한여름에 원고를 쓰면서 피로감으로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헤르만 헤세의 몇몇 에세이집을 훑어볼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인 수확이다(<헤세로부터의 편지>로 소개된 <전쟁과 평화>가 대표적이다). 더 읽어야 할 책들의 리스트를 꼽아볼 수 있었던 것도. <데미안>을 읽을 때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창작과 수용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하다는 것이 글의 요점이다(한국에서의 <데미안> 선호는 작품 자체와는 다소 무관해보인다. 1960년대 서구의 히피운동을 타고 건너왔고, 거기에 '전혜린 현상'이 기폭제가 되었던 듯싶다).  

  

고교 독서평설(09년 9월호) 알에서 나오기 위한 투쟁을 그리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대표작 <데미안>(1919)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거나 들어 보지 못한 청소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뭔가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해 보이지 않는가? 짐작하건대, 국내에서는 저자인 헤세보다도 인지도가 높은 작품인 <데미안>의 명성은 이 구절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을 성싶다. 그런데 알 듯 모를 듯한 이 구절처럼 <데미안>을 이해하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성장 소설 가운데 하나로,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는 이 ‘정신의 자서전’은 청소년의 필독서로 세대에 걸쳐 권장되어 왔다. 하지만 인물과 상황에 대한 불명료한 묘사와 관념적인 내용, 신비주의적 모티프 등은 <데미안>을 읽는 데 장애가 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데미안』에서 모호한 상징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며, 논란을 일으키는 부분은 어떤 곳인가.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
작품 전체의 시간적 배경이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데미안>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쓰여 1919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챙겨 두어야 하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912년부터 헤세는 스위스에 체류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독일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원입대하려고 했다. 헤세는 베른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징병 신체검사에 응했지만 시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고, 그 대신 독일 대사관 부설 전쟁 포로 구호소에서 일하도록 명령받았다.  

하지만 전쟁 초기 당사국 간의 증오와 전쟁의 열기에 전혀 동조할 수 없었던 헤세는 1914년 11월, 스위스의 고급 일간지인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에 「벗들이여, 그렇게는 이제 그만!」이라는 반전(反戰)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지식인들의 편협한 국수주의와 애국주의를 비판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조국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조국의 군인에게 자신의 임무를 외면하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을 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격 명령이나 적군에 대한 증오 때문이 아니라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한, 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열망 때문에 이루어져야 한다. …(중략)… 이 불행한 세계 전쟁은 우리에게 적어도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해 준다.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 말이다. 전쟁의 유일한 유용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헤세의 이러한 호소는 그에게 소외와 증오만을 안겨 주었다. 거기에다 연이어 발표한 기고문들로 그는 독일 언론에 ‘배신자’,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1946년에 그는 “독일은 내가 애국심과 군국주의를 비판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 당시 단지 극소수의 인사들만이 그의 편이 돼 주었을 뿐이어서, 헤세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스위스에 체류 중이던 다른 독일 작가들과의 교제를 끊고, 어떠한 서클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1924년, 그는 아예 국적을 스위스로 바꾸었다. 

전쟁이 가져다준 정신적 충격과 전쟁 포로 구호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에 더하여, 헤세는 이 기간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1916년 아버지가 사망했고, 아내와 막내아들은 신경 쇠약과 발작 증세로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헤세 자신도 심한 우울증과 신경 쇠약에 빠졌다. 사실 그는 이미 10대 시절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다.  

건강 회복을 위해 몇 군데를 전전하며 요양했지만 별 효과가 없자, 헤세는 정신 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저명한 정신 분석가인 칼 융(1875~1961)의 제자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와의 대화 치료는 성공적이어서,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왔던 고뇌와 정신적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다. 그의 경우는 정신 분석 치료가 예술가의 창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 그가 1917년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 사이에 쓴 <데미안>이다. 헤세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두 세계 사이에서의 방황을 그리다
당초 헤세는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란 가명으로 발표했다. 그것은 헤세가 말하듯 “늙은 아저씨의 이름이 젊은 독자들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결의도 내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작가 싱클레어가 바로 헤세이므로 <데미안>은 누구보다도 헤세 자신의 이야기다. 

헤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과연 무엇을 찾는 구도자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제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다.”라는 것이 그 전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각자의 삶이 중요하고 신성하다는 것이 인간 운명의 보편성이라면, 에밀 싱클레어의 삶은 그런 보편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보편적 단독자’의 삶이다. 이 작품이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독자 자신의 이야기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겪는 두 세계, 곧 ‘밤과 낮’ 또는 ‘어둠과 빛’의 세계 사이에서의 혼란과 갈등,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싶다는 갈망 등은 대부분의 청소년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아버지의 집으로 표상되는 밝은 세계’와 ‘그 바깥의 낯설고 무서운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세계 인식에서 비롯된다. 

싱클레어는 인생의 목표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찍부터 악당들과 탕아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나쁜 짓거리를 자랑삼아 떠벌리는 자리에서 악동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자기도 과일을 훔친 적이 있다고 짐짓 이야기를 꾸며 댄 것은 싱클레어의 그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크로머의 형상은 사실 싱클레어의 내부에 먼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아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겐 ‘카인’의 형상 또한 깊이 박혀 있었다. 크로머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를 습격하여 살해하는 꿈은 싱클레어의 금지된 욕망이 노출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싱클레어는 카인적인 욕망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부정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욕망이다. 이 욕망과 금지 사이에서 고통받는 싱클레어를 구제해 주는 것이 데미안이다. ‘데미안(Demian)’이란 이름 자체가 ‘데몬’(demon, 고대 그리스의 다이몬(Dämon)에서 유래한 말로, 다이몬은 신에 가까운 존재 또는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를 의미함)을 연상시키듯,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이자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유혹자’이며 ‘악령’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성경>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준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월한 표식을 가진 카인과 그 자손들을 무서워했던 사람들이 후대에 꾸며 낸 내용일 뿐이며, 실제로 카인은 강하고 늠름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데미안의 ‘가르침’이 신에 대한 예배와 함께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소개한 아브락사스는 바로 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을 가리키는 신성이다.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이런 양면적이고 양성적인 세계를 동시에 구현한 형상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다. 물론 ‘에바(Eva)’란 말은 ‘이브(Eve)’에서 가져온 것이며, 궁극적인 근원이자 완전함의 모태(母胎)를 상징한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이상적인 이미지를 확인한다. 남성성과 여성성, 젊음과 성숙함, 아름다움과 근엄함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는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이자 연인”이 바로 에바 부인이었다. 데미안에게 이끌린 싱클레어의 자기 탐색이 에바 부인과의 만남과 포옹으로 일단락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한 것이며, 이제 남은 건 그 운명과 일체가 되어 삶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태어나는 건 언제나 어려워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새로운 인간성이 태어나는 곳, 전쟁
그렇지만 <데미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새의 형상’이 전쟁을 통해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머리말에서 헤세는 “만약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단 한 번뿐인 소중한 목숨이 아니라면, 우리들 하나하나를 총알 하나로 정말로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도 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가 유례없는 대량 살상이 행해진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주목할 것은 ‘종말의 시작’이란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이 전쟁은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 위한 징후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데미안은 전쟁에 장교로 참전하며 싱클레어 또한 징병 열차를 타고 전선으로 향한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전장에서의 첫 경험에 실망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상을 위해서 죽어 갔지만, 그것은 ‘개인의 이상’이 아니라 ‘공동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죽어 가는 사람들의 눈에서 ‘운명의 의지’를 보고, 전쟁의 깊은 곳에서 새로운 인간성 같은 무엇인가가 생성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는 수많은 사상자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소산은 내면의 발산이며, 새로이 태어날 수 있기 위해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죽어 버리려고 하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이었다. 그 알은 이 세계였고, 따라서 이 세계는 산산조각 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곧 싱클레어는 전쟁을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간성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인식한 것이다. 포탄에 부상을 입고 호송된 그는 병동의 매트리스에서 다시 데미안과 대면한다. 데미안은 그에게 에바 부인의 키스를 전해 준다. 그리고 이제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서 그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데미안과 완전히 닮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전주의자 헤세와 <데미안>에서 전쟁의 의미
이러한 결말은 과연 헤세의 반전 활동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헤세는 전쟁을 반대한 탓에 전쟁 옹호자들에게 욕설을 듣고 공격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른바 ‘위대한 시대’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과 다른 생각을 지닌 개인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공격당하곤 한다.”라고 냉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히틀러의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헤세의 작품들은 불온서적으로 간주되어 출판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정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병사들의 배낭 속에 한 권씩 들어 있었다는 책 또한 <데미안>이었다. 나치는 헤세의 작품 출간은 금지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병사들이 <데미안>을 탐독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아마 막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 긍정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오히려 권장할 만하지 않았을까? 

만약 전쟁에 대한 헤세의 생각과 <데미안>에서 전쟁이 갖는 의미가 상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니체(1844~1900)의 영향을 받은 헤세의 엘리트주의와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싱클레어는 작품에서 표식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데, 전자가 새로운 것과 개별화된 것 그리고 미래의 것을 지향하는 존재라면, 후자는 무엇인가를 고수하려는 의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데미안은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모든 사람은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리 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종(種)을 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것은 발전사적 과정이며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헤세적 여정 또한 마찬가지여서, 모두가 나름대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개구리나 뱀, 개미에 그치고 마는 경우도 많다. 이 여정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데미안>의 제5장에 등장하는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의 말대로, “두 발로 걸어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인간은 아니며,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물고기이거나 버러지이거나 거머리다”. 그들은 각각 인간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관점은 나치의 우생학과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다. 헤세의 ‘개인’을 나치는 ‘종족’으로 바꿔 놓았을 뿐이다. 

09. 09. 06. 

 

P.S. 헤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의외였던 것은 이 친숙한 작가에 대한 평전이 알로이스 프린츠의 <헤르만 헤세>(더북, 2002)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프린츠는 <한나 아렌트>(여성신문사, 200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나마 프린츠의 책도 원고를 쓰면서는 참고하지 못했다(소장도서이긴 하나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 '나치 시대의 헤세'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찾아볼 생각이다. 한편, '구도자' '현자'의 이미지로만 채색돼 있는 것도 헤세의 '한국적 수용'이란 생각이 들었다(톨스토이의 한국적 수용도 그러하다). 여기엔 어떤 패턴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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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장소설" 아닌 '성장소설, "순진함" 아닌 '순진함'
    from 게슴츠레의 공부터 2009-09-07 17:40 
    로쟈 님의 페이퍼를 보고 예전에 인도철학사를 수강하면서 제출했던 <데미안>서평이 생각나 찾아 업데이트해본다. 수업 레폿이라는 글의 형식은 근본적인 한계들을 가지는데 그 중 하나가 해당 수업의 내용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함께 듣지 않은 이들에게 보이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색을 맞춘답시고 어거지고 개념들을 구겨넣어야 했지만 기초적인 이해가 없어도 큰 무리는 없이 남에게 보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히려 문제는 그런 부차적인 것이
  2. '수레바퀴 밑에서'와 '데미안'의 차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07 10:42 
    <출판저널> 10월호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의 한 장면'을 다소 뒤늦게 옮겨놓는다. 새로 연재하는 코너인데, 제일 처음 다룬 책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쓰다 보니 분량제한에 걸려 애초에 구상했던 것만큼의 이야기는 늘어놓지 못했다(그래서 일부 내용은 이달 11월호에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로 번졌다). <출판저널>은 대개의 잡지들처럼 어렵게 꾸려지고 있지만
 
 
2009-09-06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6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09-09-0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데미안을 다시 읽고 있는데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많아요.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비판적이고 정치적 성향을, <데미안>에서는 치열한 내면의 응시과정을 통해 자기 발견에 이르는 과정을 다시 보고있어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내용들이 읽히는지 궁금해 하던참에 또 헤세의 평전을 찾고 있던 참에 딱 맞춰 올려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로쟈 2009-09-06 16:17   좋아요 0 | URL
헤세의 구도적 성향은 <싯다르타>에 더 잘 나타나고 서구에선 더 유명한 작품으로 보이는데, 유독 한국에선 <데미안>이 압도적입니다. 균형잡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0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은 헤세가 우리나라 정도의 인기는 없다고 하는데...아마 독일 소설가들 중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유럽 작가들을 한국인 독자들이 어떻게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흥미롭지요.

로쟈 2009-09-06 16:14   좋아요 0 | URL
국적상으론 스위스 작가이기도 하지요. 수용시의 초기 조건이 상당히 많은 걸 좌우하는 듯해요. 톨스토이도 그랬고요...

푸른바다 2009-09-06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을 들라면 카라마조프 형제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데미안 세 권을 들어야 할 것 같네요^^

로쟈 2009-09-07 14:36   좋아요 0 | URL
주제는 제각각인 듯한데요.^^

푸른바다 2009-09-07 17: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데미안의 경우 전 '두개의 세계'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내면의 세계에 대한 사색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가 되기도 했죠... 베르테르같은 경우는 진솔한 감정묘사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죠... 카라마조프는 사실 버거운 책이긴 했지만 인간 군상의 모순적인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었죠... 고등학교 때 읽었던 판본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베르테르와 데미안은 민음사 본으로 새로 장만했었죠^^ 카라마조프는 아직도 구매를 안했네요^^ 아마 다시 읽으면 굉장히 새롭겠지요...^^

목동 2009-09-07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습니다. 85세에 세상을 뜬 사람은 후광(DJ), 스웨덴보그(영국 신비주의자) 그리고 헤세 등입니다. 지인이 85세까지 살 계획이라며 들여줘었을 때 놀라웠습니다. 죽을 나이도 계획하고 목표하는구나 싶어서요.

헤세는 40세부터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자신과 세계와 전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은 자연스러운 취미였습니다.(왜 너무 슬프면 웃는 경우 처럼) 국내 소설가중에 그림 재능이 있는 작가는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님 입니다. 취재시 참고가 될 장면이나 장소를 크로키 했다고 합니다. 제가 수채화에 대한 매력을 갖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알프스 산간마을에 칩거한 헤세처럼 저도 노년에 은둔하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디서나 '아포리즘'에 해당된 문장이 남용되었습니다. 반감이었던지 헤세의 작품(데미안 외)을 읽기가 불편했습니다.(천만이상이 보는 영화를 보기 싫은 것 처럼)

2002년 전주에서 해르만 헤세전이 있었으며 뉴스('해르만헤세박물관'을 짓는다)의 뜻을 이해 못했습니다. 최근 강릉에서 이 박물관 건축에 대해 재검토중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국내에 외국 작가에 대한 박물관 건립이 우리 정서에 맞을까 싶습니다.말처럼 외국의 특정 작가들의 작품들이 우리 나라에서 인기를 누리게 된 까닦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일부는 연구되었겠지만)

로쟈 2009-09-07 14:54   좋아요 0 | URL
헤세 박물관 소식은 처음 접하는데요.^^

고티 2009-09-0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오솔길이 있다. 누구나 같은 길을 간다".. 이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군요. 20대의 꽤 오랜 기간 동안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귀절들이네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지나친 합리화를 조장하는 내용이 아닌가 싶어서 별로 달갑게 읽히지는 않더군요. 걸러서 읽었었습니다.

로쟈 2009-09-07 14:56   좋아요 0 | URL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은 구절들인데,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신 듯하네요. 하긴 대개 독서 경험이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