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서평
학술서평의 문제점을 짚은 대학신문의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지난주에 전화로 잠깐 기자의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출판대국의 면모에 걸맞은 (학술)서평문화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인데,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어려운 것이 아닐까(일단은 '학술'이 먼저 돼야 학술서평도 뒤를 따를 것이고). 그것도 '문화'라면 매일매일의 한 걸음이 그래도 먼훗날 어떤 궤적을 보여줄지도 모를 따름...

대학신문(09. 11. 09) 잃어버린 학술 서평을 찾아서
‘3·5·7’-3조원 시장 규모로 연간 5만 종의 책을 출간하는 세계 7대 출판국 한국. 늘어난 출판량이 질까지 담보하진 않는 법. 서점을 점령한 많은 책은 알맹이보다 화려한 표지와 자극적 제목으로 무장했다. 범람하는 책의 물결 속에서 여차하면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빠져나가는 ‘진국’을 잡기 위해 독자들이 애용하는 내비게이션은 서평이다. 그 중 학술 서평은 고르기도 읽기도 어려운 학술서를 설명해주며 학술 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내비게이션’ 학술 서평이 오히려 길을 잃었다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평자들과 편집자들은 한국의 학술 서평이 영 못마땅하다는 눈치다. 후마니타스 안중철 편집장은 한국의 학술 서평을 두고 “활성화되지도 전문화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택광 교수(경희대 영미어학부)는 한 술 더 떠 “학술 서평 문화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국 학술 서평은 서지정보와 출판사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신간 소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호한 성격에 인적·물적 기반마저 열악해
애초 학술 서평은 대중 서평과 구분되는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쉽지 않다.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이름난 이현우 강사(노어노문학과)는 “일반적으로 서평 대상에 따라 학술 서적에 대한 서평은 학술 서평, 일반교양서에 대한 서평은 대중 서평으로 구분 짓지만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한다. 서평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소개와 비평의 비율을 고려해 소개가 많으면 대중 서평, 비평이 많으면 학술 서평으로 가르기도 하지만 그 비율의 기준도 정의된 바 없다.
출판계와 언론계의 인적·물적 환경도 학술 서평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학계의 좁은 네트워크 안에서는 서평자를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구하더라도 저자와 한솥밥을 먹거나 적어도 안면있는 사이인 경우가 많다. 이는 서평자가 저자에 도전하기보다 인간관계를 고려한 ‘주례사 비평’을 통해 체면치레하는 결과를 낳는다. 안중철 편집장은 “최근 학술 서평은 책의 긍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출판사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싣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한국 서평의 원형 ‘서발문’을 연구 중인 심경호 교수(고려대 한문학과)는 “학계에 만연한 주례사 비평이 과거 자기 가문의 과시를 위해 낮은 수준의 글까지 엮어 무분별하게 유집(遺集)을 발간하던 세태와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학술서의 저술량이 적고, 전문 서평지가 없는 현실도 문제다. 권위를 갖고 서평 문화를 주도해야 할 매체가 없으니 학술 서평이 일간지 ‘귀퉁이’ 외에는 설 공간이 없는 실정이다. 주요한 학술서를 평하는데 정해진 매수와 마감 시간에 쫓기는 언론사의 일정은 깊이 있는 서평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낮은 위상을 반영하듯 서평은 학계에서도 주변부를 맴돈다. 하나의 완결된 논문으로도, 개인의 독창적 연구결과로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평은 한국연구재단과 대학 등의 기관에서 주관하는 연구업적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외국은 학회 발표, 외부 기고, 서평 모두 교수 개인의 연구 커리큘럼에 기록되지만 한국에서는 논문 위주의 풍토로 서평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활성화된 외국 서평, 분화시스템과 학술성 돋보여
외국 서평 매체 중에는 영미권의 『뉴욕타임스 북리뷰』 『런던 북리뷰』, 『뉴욕리뷰 오브 북스』와 프랑스의 『르몽드』지를 추천하는 이가 많다. 전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집필하며 그 길이도 길다. 종합일간지와 별도로 독립운영되는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서평 기사 하나에 두 달을 할애해 그 수준을 유지하며 서평 의뢰 전, 서평자와 저자, 출판사의 관계를 점검해 ‘주례사 비평’을 방지한다.
분화된 시스템과 탄력적 운영도 강점이다. 일간지 서평이 대중성을, 학회지와 서평전문지 서평이 학술성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택광 교수는 “영미권 대중 서적은 대중문화 전공자가 서평을 쓰고 학술 서적은 학자들이 평가하는 등 필진이 고루 배치돼 있다”며 영미권 서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영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영미권 서평전문신문 『뉴욕리뷰 오브 북스』는 6개월간 격주로 발행하다 출판계가 뜸한 계절에는 월간으로, 책이 쏟아지는 3월에는 월 3회 발행한다.
학술 담론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논쟁적 성격도 돋보인다. 미국 고등교육 전문지인 『크로니클 리뷰』는 20개 면에 5~6권의 책을 다루는데, 필자의 주제의식을 중심에 둔 학술 에세이를 강화하고 학술 신간을 많이 넣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의 격주간 서평 전문지 『런던리뷰 오브 북스』는 주제가 비슷한 서적 몇 권을 엮어 서평을 쓰고 소논문 형식의 학술 에세이로 논쟁성을 강조한다.
◇서평자의 시각이 담긴 학술 행위로서의 서평 절실해···온라인 공간도 주목
『북새통』 같은 전문 서평지가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서평을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와 어려운 글을 회피하는 대중들의 성향이 맞물려 학술 서평이 점점 소멸해갔다. 이 때문에 학술 서평의 부흥을 위해선 대중적 차원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한 실정이다.
학술 서평의 대안을 신문 지면에서 벗어나 온라인 공간에서 찾는 목소리도 있다. 안중철 편집장은 “자율적 블로그 활동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발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의 영향으로 ‘주례사 비평’이 되기 쉬운 오프라인 서평과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는 외부 영향에서 자유롭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온라인 비평 커뮤니티 ‘비평고원’의 조영일 대표는 “온라인 서평은 지면에 실린 서평보다 영향력이 없고 참여자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한계”라며 “오프라인 언론사·저널과 연계한 조직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술 서평의 위기는 그 원인이 다양한 만큼 여러 방향에서 대안이 제시된다. 서평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깊이 있는 서평을 쓸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하면서 비판을 꺼리지 않는 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읽을 만한 책을 판별해내고 저자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서평의 고유한 자기 역할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김은열기자)
09. 11.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