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 출간기념 이벤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두번째 책 <책을 읽을 자유>를 내면서는 요란하게 이벤트를 벌일 생각이 없었지만, 오늘 즐찾이 2993명이 된 걸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책을 읽을 자유> 출간기념 이벤트'라고 타이틀을 달긴 했지만, 곧 달성할 듯싶은 즐찾 3000을 기념하는 의미의 이벤트이기도 합니다(즐찾 3000은 올해의 서재활동 목표치였습니다). 겸하여 '추석맞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벤트 내용은 '책을 읽을 자유'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이름하여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을 읽을 자유'입니다. 아직 쓰이지 않은, 그래서 있지도 않은 책에 대한 리뷰(페이퍼)를 쓰셔서 먼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먼댓글이 불편하시면 댓글로 달아주셔도 됩니다). 보르헤스적 상상력을 발휘하시면 되는 일인데, 좀 난이도 있는 요구이지만 제 서재를 즐겨찾는 알라디너분들의 역량을 믿습니다. 단, 저자는 '로쟈'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로쟈가 쓴 가상의 책에 대한 리뷰형 페이퍼가 응모 요건입니다. 기한은 연휴가 끝나는 23일(목) 자정까지로 하겠습니다. 응모작 가운데, 추천이나 반응을 고려하여 2-3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 저자 사인본과 함께 현암사 책 한 권을 같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품은 조촐하지만, 많은 응모 있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즐거운 연휴 주간이 되시길!.. 

10. 09. 19. 

P.S. 흠, 하룻사이에 즐찾이 7명이 더 늘어서 드디어 3000명이 채워졌습니다.

서재지수 : 396580점
마이리뷰: 87편
마이리스트: 253편 
마이페이퍼: 3077편 
즐겨찾기등록: 3000명
오늘 1232, 총 1380158 방문 

서재를 애써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꾸벅. 

10.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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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쟈가 쓴 <로쟈의 소설>
    from YRsFNL 2010-09-21 16:39 
     일전에 로쟈님이 자신의 서재에 은근슬쩍 홍보를 해주셔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출간 소식을 듣고는 단박에 서점에서 사와 오늘 직접 읽어볼 수 있었다. 바로 로쟈님이 직접 쓴 네 편의 중단편들을 묶은 소설집 <로쟈의 소설>. 자신의 온라인 닉네임(필명)을 직접 따서 제목으로 사용한 책이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홍상수의 영화 <옥희의 영화>가 떠올랐는데 아니
  2. '책을 읽을 자유' 이벤트 결과발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23 23:38 
    <책을 읽을 자유> 출간기념 이벤트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원래는 오늘 자정까지 응모를 받기로 했는데, 30여분 남겨놓은 현재 추가 응모작은 없을 것으로 보여, 조금 당겨서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로쟈가 쓴 가상의 책에 대한 리뷰를 써주시는 이벤트였는데, 좀 어려운 요건이었는지 응모작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선작은 채울 정도는 되기에 '주최측'으로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총 네
 
 
2010-09-20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9-2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이벤트는 마태우스님이 전문이신데요. 아 어렵다^*^
전 그냥 사서 읽을까 보아요. ㅋ

로쟈 2010-09-20 11:13   좋아요 0 | URL
응모가 저조하면 40자평도 받을까 해요.^^;

라로 2010-09-20 11:19   좋아요 0 | URL
40자평보다는 한 200자정도면 어떻게 해볼 것 같은데,,,^^;;

저도 지난번처럼 그냥 사봐야 할 듯요~.^^;;

책 대박나시길 바랍니다. 이 인사가 한가위 인사보다 앞서야 할것 같아서요~.^^;
즐거운 명절되시길 바라고 푹 쉬세요~.^^

로쟈 2010-09-20 14:24   좋아요 0 | URL
네, 즐거운 연휴 되세요.^^

비로그인 2010-09-2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추석연휴는 < 책을 읽을 자유 > 를 난독증 환자처럼 조금씩 조금씩 읽는 것입니다. 보르헤스적 상상력? 저로서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러나 알라디너의 댓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로쟈님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해해도, 신뢰할 수는 없다고 하셨죠?) 그래도... 행복한... 한가위...

로쟈 2010-09-20 14:23   좋아요 0 | URL
네, 행복한 한가위가 되시길! 저는 일이 많이 밀려서 행복할진 모르겠어요.^^;

stella.K 2010-09-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쟈님다운 묵직한 이벤트로군요.
근데 저는 좀 어렵네요.
책 내신 거 늦게나마 축하드려요.^^

로쟈 2010-09-20 14:22   좋아요 0 | URL
사실 안 읽고도 쓸 수 있는 리뷰니까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yamoo 2010-09-2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군요~ 혹시나 하구 와봤는데, 과제가 넘 어려워서 전 패스해야 되것어요^^

로쟈 2010-09-20 14:22   좋아요 0 | URL
글샘님을 참고해주세요.^^

글샘 2010-09-2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러시아 단편소설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다들 귀성길에 바쁜 월요일이겠군요.
로쟈 님의 서재에 3000명의 즐겨찾는 인원이 몰려드는데, 다들 귀성길에 핸들잡고 계시느라 응모를 안하는 틈을 타서, 정상근무하는 1인으로서 응모를 합니다. ^^
로쟈 님의 신간이 많은 사람에게 ‘책을 읽을 자유’를 허하길 기원합니다.

전에 로쟈님이 ‘독서 평설’에 글을 쓰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계속 지젝에 몰빵을 주시더군요.
이참에, 이번에 출간된 ‘러시아 단편소설 읽어주는 남자’가 나오자마자 구입을 해서 밑줄을 박박 그어가며 읽은 참입니다.

‘소설 읽어주는 남자’의 나직한 목소리도 낭만적인데, 게다가 ‘러시아 단편소설’이라니요. 제목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

나는 러시아 장편 소설에 기가 죽은 독자입니다. 대학시절부터 톨스토이나 토스토예프스키의 장편들에 기가 눌렸던 기억 뿐입니다. ‘부활’이나 ‘죄와 벌’, ‘까라마조프네 형제들’ 같은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들의 헷갈리는 이름 정도일까요...

로쟈 님이 선보여주신 ‘러시아 단편’들은 유명한 것들이면서도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읽었던 것들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읽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

로쟈 님의 이번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몇몇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작가들이 살아온 러시아의 역사를 훑어주었다는 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세계사 속에는 유럽의 역사는 상세하지만, 러시아의 차르나 혁명사 이후의 역사는 허술하게 다뤄지기 쉬워서, 러시아 역사와 작가들, 작품 속의 배경에 대해서 이 책처럼 정리가 착실하게 된 책을 만나는 일은 큰 수확이자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인물들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햄릿’이라고 하면 금세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들’ 또는 ‘우유부단한 고뇌형’처럼 전형적 인물로 떠올릴 수 있지만, ‘외투 하나를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소유 앞에서 존재의 의미를 놓친 노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고골, 외투) 또는 ‘아버지와 연적이 되어버린 운명의 장난 앞에 놓인 청춘, 블라지미르’(투르게네프, 첫사랑), ‘검찰관으로 오해받아 대접받는, 부패의 줄을 타고 재주를 넘는 홀레스타코프’(고골, 검찰관), ‘귀여운 여인이자 팜므파탈, 올렌까’(체홉, 귀여운 여인) 처럼 충분히 ‘전형적인 인간상’으로 대표성을 지닐 법한 인물들을 만나러 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로쟈라는 친절한 안내자 덕분에 독자는 쉽게 많은 친구들과 친분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클래식 읽어주는 남자’, ‘그림 읽어주는 여자’ 같은 책들이 유행입니다.
뭔가 고상해 보이는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해주는 책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풍조입니다. 작가가 권력을 쥐었던 시대에서, 시대 상황이 작품성을 판가름하던 시대를 거쳐, 독자의 수용이 작품을 완성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수용에 의하여 마지막 작품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부르건, ‘현대 수용 이론’으로 부르건 상관없이 현대의 독자들은 나름대로 작품을 감상하려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는 것입니다만, 쉽게 만나지 못하는 작품들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현실에서, 유럽-미국권의 문학 작품을 접하기는 쉬웠지만, 상대적으로 러시어의 문학 작품을 접하기는 어려웠기에, 이번에 로쟈 님의 ‘러시아 소설 읽어주기’는 뜻깊은 독서 체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러시아의 단편 뿐만 아니라, ‘푸슈킨의 대위의 딸’, ‘미하일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톨스토이나 토스토예프스키 등’ 장편들도 읽어주는 기회를 만난다면 독자들은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상상 속의 리뷰였지만, 로쟈 님의 읽어주기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1인입니다. ^^
한가위, 모두들 피곤하지 않게, 의미있게 보내시길...

로쟈 2010-09-20 14:21   좋아요 0 | URL
초반 독주시네요.^^ 러시아문학에 대한 책은 안 그래도 내년에 기획돼 있습니다. 기대해주시길.^^;

글샘 2010-09-20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미리보는 프리뷰를 제대로 썼군요.
그나저나, 제발 좀 쉽게 써 주세요. 러시아...는 사람 이름 몇 개만 나오면... 대뇌 피질에 쥐가 난다는...

stella.K 2010-09-20 15:08   좋아요 0 | URL
‘러시아 단편소설 읽어주는 남자' 이 책 꼭 진짜 있을 것 같아요.^^

mira 2010-09-2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 이벤트가 아니라 숙제 같네요 ㅎㅎ

로쟈 2010-09-21 11:35   좋아요 0 | URL
평소 리뷰를 많이 써보신 분들에겐 일도 아닐 듯한데요.^^;

헌내 2010-09-20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벤트가 이벤트가 아니군요... (어렵네요)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로쟈 2010-09-21 11:34   좋아요 0 | URL
네, 연휴땐 쉬나요?^^

비로그인 2010-09-2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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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님이 두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두이노의 비가(1~10편)> 영-한본과 <결린 사람>을 주제로한 연작시집(1~10편)이다. '두이노의 비가'를 한국어로 읽는 것은,장갑(번역이 안좋을 때는 벙어리장갑)을 끼고 애무를 하는 둣하다고 했는데, 본인이 직접 나섰나 보다. 청하출판사 판 보다 느낌이 잘 전해져 온다... '결린 사람'의 경우, 주체하지 못할 애린에 젖어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로쟈 2010-09-21 11:33   좋아요 0 | URL
읽기 전 리뷰 같은데요.^^

내마음은 언제나 2010-09-2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벤트도 있네요. 읽지도 않는 책을 리뷰하라는 의미가 같네요.
그래도 읽지도 않는 책을 리뷰하는것이 더 쉽죠.
정보라도 있지만.
아직 쓰지도 않는 책을 리뷰하라고.
아마, 내가 소설가나 작가의 입장에서 느낌을 적으라고 하는것 같군요.
좋은 의도입니다.
소설가들을 소재의 궁핍으로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펜을 꺾는다고 하더군요.최인호작가는 히말리아를 찾았고. 거기에서 책을 쓸 용기를 얻더다고 하더군요

로쟈 2010-09-21 11:32   좋아요 0 | URL
적당한 상상력과 구라를 동원하시면 되는 이벤트입니다.^^

2010-09-2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1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nging 2010-09-2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와 함께 떠나는 러시아 여행'(좀 더 멋진 제목을 달고 싶긴한데... 이런...^^)

러시아 여행 안내서라면 화려한 사진이 딸린 러시아의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설명에다가
혁명에 대한 식상한 안내, 러시아의 장대함과 백야의 유혹이 먼저이지만,
이번 로쟈의 신작 '로쟈와 함께 떠나는 러시아 기행'은 여타 여행 가이드 책이나 러시아를 소개하는 책과는 달리
러시아 작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작가들을 따라서 러시아의 숨은 명소들을 섭렵하며 다녀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러시아하면 떠올리게 되는 붉은 광장이나 볼쇼이 극장 등 사진 속의 유명 장소들 말고도
우리가 알고있는 고골과 도스토예프스, 톨스토이부터 자마찐, 플라토노프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의 출생지뿐 아니라 유년의 시절을 보냈거나 소설의 배경이 된 정신적, 물리적 장소들이 펼쳐져있다.

사이사이에는 '로쟈의 역사 스프'(역사 이야기?)라는 소제목으로
작가들의 생존 당시나 작품의 배경이 된 러시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도 더해져있다.
부록처럼 사이사이 자리 잡은 이 코너는 러시아의 역사를 잘 알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작가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작품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읽었던 작품들은 아, 그래서였군. 혹은 그거였나?했고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해선 읽고픈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역사공부도 한 눈에 할 수 있고 러시아 역사를 훓어가며 러시아 작가들도 함께 떠올리게 되어 딸아이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가끔은 부록이나 덤이 더 탐나서 물건을 사는일이 있기도 하지만 이책은 모두를 만족시킨다.
작품을 읽다보면 작품의 설명을 따라 머릿 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이야기 속 그시절 그 장소가 궁금해지고 안달?이 날 때도 있었는데
로쟈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의 어느 도시 구석구석까지라도 다 보이고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도 살아나와 그 거리를 걷고, 서성대며, 뛰어다니다가
이내 내게 말이라도 걸어올 것 같다.

이 책을 실제 여행의 안내서로 삼든지, 러시아를 이해하고 러시아 작가를 이해하는 통로로 삼든지,
로쟈의 안내라면 러시아 어디든 즐겁지 않을까?


ㅎㅎ 제가 읽고픈 책이라는게 티나긴 하지만서도^^
저자가 로쟈가 아니라면 허술할 것만 같아서..
꼭!! 로쟈여야할 것 같은..
그동안 느낀건데 역사 소개를 하셔도 충분하실 것 같아서요

2010-09-21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1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어제의 저자는 중국사학자 티모시 브룩이었다. 그의 방한 강연과 관련한 기사들을 읽고는 뒤늦게 구내서점에서 <능지처참>(너무북스, 2010)과 <쾌락의혼돈>(이산, 2005)을 구입해서다(<베르메르의 모자>와 <근대 중국의 친일합작>은 서가에 없었다). 조너선 스펜스의 뒤를 잇는 학자란 평판인데,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싶다.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세계적인 중국사학자 브룩 교수는 최근 완간한 <하버드 중국사>에 대해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경향신문(10. 09. 15) “중국사 공부, 창문으로 집안 들여다보는 일” 

서구 학계에서 조너선 스펜스를 잇는 중국사학자로 명망을 얻고 있는 티모시 브룩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59)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미 하버드대에서 명대(明代) 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쾌락의 혼돈> <베르메르의 모자> <능지처참> 등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돼 한국 독자들과도 친숙하다.  

최근작 <능지처참>(박소연 옮김·너머북스)은 1905년 베이징의 한 광장에서 능지형에 처해진 살인범의 사진이 서구에 던진 충격을 시작으로 중국 고유의 형벌이 ‘잔혹하고 미개한 중국’의 이미지를 유포시키는 과정을 추적한 역작이다. 또 <쾌락의 혼돈>(이정 옮김·이산)은 사농공상의 신분제도와 소농경제를 기반으로 한 명에서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국이 동서무역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역사를 그렸다. <베르메르의 모자>(박인균 옮김·추수밭)는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17세기 중국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브룩 교수의 역사책은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고 세부가 풍성해 생생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역사학도가 되기 전 토론토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전통적인 사료 대신 지방지·공안·일기·연감 등 당대인들의 실제 삶을 알 수 있는 소소한 자료를 살펴본다. 전체를 통제하려 들거나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그 시대를 제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역사학자로서 그의 입장이다.

“대학 시절 일본 불교에 대한 책을 읽고 동양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토론토대에는 일본문화 관련 수업이 없어서 대신 중국어를 공부하다가 중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모든 문화는 전제와 판단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는 서구학자로서 중국사를 공부하는 걸 “바깥에서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비유했다. "중국인들은 자기 문화를 바라볼 때 과거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서구학자들은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선입견이 없다. 물론 한계가 있다. 우리가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내가 창문을 통해 한쪽 면밖에 볼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하자 내 중국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 보면 아예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고.” 

그는 역사연구에서 소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 서구적 시선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서구적 시선은 서구인뿐 아니라 동양인 자신에게도 내면화돼 있다. <능지처참>은 이런 노력이 엿보이는 저서다. 서구인은 능지형의 잔혹함을 비난하지만, 형벌의 이미지는 제국주의 시기인 20세기 전후 서구에서 의도적으로 생산, 소비된다.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는 1905년 중국의 능지형 사진이 조르주 바타이유의 <에로스의 눈물>에서 에로틱한 이미지로 쓰이는 데서 드러난다. 



브룩 교수는 역사를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것을 경계하는데 그런 입장은 <근대중국의 친일합작>(박영철 옮김·한울)에 피력돼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일전쟁 기간 동안 대부분의 중국인은 실제 일본에 저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편전쟁의 역사를 보면 중국 내 판매상이 없었다면 아편이 대륙 전체로 퍼질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는 우리의 친일파 단죄에서도 시사점을 갖는다.

“책을 쓸 때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그는 요즘 1610년대에 살았던 명나라 젊은이의 일기를 토대로 당시 양쯔강 삼각주의 생활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상하이 서쪽 지하싱 지역에 살았던 이 젊은이는 신사층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예술품 수집가였다. 한편 명대의 상품 가격 변화를 통해 당대의 문화적 가치를 저울질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대의 상업 발전이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즉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발전한 상업경제가 자본주의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선 당시 아시아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너무 높아서 공업화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 절대왕정과 상인들의 공조체제가 긴밀했으나 중국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브룩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케임브리지 중국사>에 맞서는 <하버드 중국사>(6권)의 총편집을 맡아 지난 6월 완간했다. 너머북스가 국내 번역 출간을 준비 중인 이 책에 대해 그는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심을 두었다”고 소개했다. 브룩 교수는 오는 17일 성균관대에서 <능지처참>을 소재로, 서울대에서 <베르메르의 모자>를 소재로 대중강연을 갖는다.(한윤정 기자) 

10.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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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 20세기의 책 20권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에서 지난 겨울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의 속편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 현대 러시아작가 7인을 만나다'를 진행한다(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10.asp?lessonidx=off_hwLee07&OVRAW=%EB%A1%9C%EC%9F%88&OVKEY=%EB%A1%9C%EC%9F%88&OVMTC=standard&OVADID=19304485042&OVKWID=221901605542&OVCAMPGID=1491679542&OVADGRPID=10063394430). 일정은 10월 4일부터 11월 22일까지 8주간이며, 시간은 매주 월요일 저녁 7:30-9:30, 장소는 홍대역 부근의 인문숲이다. 19세기 작가들을 다룬 전편에 이어서 20세기 작가들을 다룰 예정이며, 강의 커리큘럼은 국내에 소개된 작가들 위주로 짰다. '7인'이 표나게 강조될 건 없는데, 여하튼 타이틀은 그렇게 나갔다. '20세기 러시아문학으로의 여정'이란 개관 강의에 이어 다루어질 7인의 작가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1. 고리키의 <어머니>  

2. 자먀찐의 <우리들>  

3. 플라토노프, <코틀로반>(=<구덩이>) 

 

4.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5.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6.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7. 나보코프, <롤리타> 

 

10.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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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 독자들이 가장 반가워할 만한 책의 하나는 영국작가 앤드류 노먼 윌슨의 평전 <톨스토이>(책세상, 2010)이다. 나는 후기 톨스토이에 대한 강의도 진행중이어서 지난주에 바로 구입해 읽고 있는데(같이 주문한 원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리뷰기사들이 이번주에 올라오고 있다. 의무적으로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0. 09. 18) ‘여자·신·조국’ 세 키워드로 풀어낸 톨스토이

빼어난 소설가이자 명민한 전기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전기를 남겼다.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를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나병에 걸린 뒤 모든 것을 잃어 영적 고통을 당하는 성경 속 인물 욥에 비유한다. 유서깊은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는 육체가 건강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으며 13명의 자녀를 얻었고 생전 큰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겐 어떤 병도, 파산도, 실연도 닥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한순간 사물 배후의 ‘무(無)’를 통찰했을 뿐이다. 츠바이크가 탁월한 통찰을 통해 길지 않게 남긴 톨스토이 전기를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노먼 윌슨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812쪽에 걸쳐 써내려갔다. 윌슨은 90권의 톨스토이 전집을 세부적으로 분석한 뒤 그의 생애와 동시대 역사의 상관관계를 꼼꼼히 따진다. 

 
순례자와 같은 모습의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키워드는 여자, 신, 러시아다.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산 말년의 톨스토이를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젊은 날의 톨스토이는 사교계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에겐 원하는 삶을 누릴 재력과 체력이 충분했다. 19세기 러시아에선 아내를 위한 생일선물로 자신의 일기를 읽을 기회를 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선물을 받은 18세의 약혼자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는 이때 읽은 일기의 충격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고 훗날 적었다. “나는 남자들의 방종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면서, 마음속에서 질투심과 공포심으로 겪은 그 지독한 격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하녀를 건드렸고, 성병 치료약을 주기적으로 먹었고, 일기를 건네주기 전까지도 정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다. 츠바이크는 이러한 톨스토이를 ‘고백광’이라고 불렀다.

 
톨스토이의 임종 당시 초상  

<전쟁과 평화>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쓰기까지의 시간과 <크로이처 소나타>와 <부활>을 남긴 시간 사이엔 큰 강이 흐른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 이후 톨스토이는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 많은 평자들은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이후엔 진정한 걸작을 남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창조 행위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지만, 열정이 투입될 제재가 없었다. 이 시기 톨스토이는 예술가에서 현자 혹은 성자로 발전한다. 윌슨은 “러시아 작가들이 예언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날 방법은, 푸시킨이나 레르몬토프의 경우처럼 요절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썼다. 톨스토이는 성스러운 농부의 삶을 살려고 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 소피아는 이런 톨스토이를 빈정거렸다. 톨스토이가 가난한 노파의 집을 수리하거나 장작을 패주러 다니는 동안, 소피아는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해 힘겨워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남편이 ‘로빈슨 크루소 놀음’을 한다고 여겼다.

톨스토이는 당대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군에 속했다. 오랜 차르 체제가 붕괴하고 혁명의 여명이 동터오자, 톨스토이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혁명 세력에 합류하거나 정부에 협조하는 개량주의자가 되는 길. 그러나 톨스토이는 두 방법 모두 택하지 않았다. 칼을 들거나 정부를 따르는 대신, 그는 오직 사유와 글, 생활 방식이라는 무기로 정부와 싸웠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방법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82세의 톨스토이는 평생에 걸쳐 불화한 아내와 함께 살던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를 새벽에 몰래 빠져나왔다. 톨스토이가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차여행 중이라는 소식은 전 세계에 급히 타전됐다. 집을 떠난 지 채 10일이 되지 않은 11월7일, 톨스토이는 야스타포보의 역장 집에서 숨을 거뒀다. 러시아의 차르와 소련의 레닌·스탈린이 모두 불편해했으나,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존경심 때문에 재갈을 물릴 수 없던 유일한 사람은 톨스토이였다.(백승찬기자) 

10. 09. 18.  

  

P.S. 기사에서언급된 츠바이크의 전기적 스케치 외 국내에 소개된 톨스토이 전기는 얀코 라브린과 로맹 롤랑의 것이 있다. 하지만 가장 자세한 건 역시나 쉬클롭스키의 <레프 톨스토이>(나남, 2009)다. 더 소개된다면, 에이헨바움이나 앙리 트로야, 혹은 리처드 구스타프슨의 책이 좋을 듯싶다.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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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목전인 탓인지 눈에 띄는 책이 드문 주다. 개인적으론 새로 번역돼 나온 러시아소설들, 가령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열린책들, 2010)이나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민음사, 2010)에 눈길이 가는 정도. 피에르 바야르의 신작 <셜록 홈즈가 틀렸다>(여름언덕, 2010)은 챙겨두어야 할 책이었지만 저녁에 서점에 들렀을 땐 깜박했고, 약간 기대했던 책 가운데 가마타 히로키의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부키, 2010)은 들춰보지도 않고 손에 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너무 소략해서 실망스럽다(책이라기보단 칼럼집 수준). 리뷰기사를 미리 읽었더라면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후마니타스, 2010)을 대신 손에 들었을 텐데, 아쉽다. 아, 프리모 레비의 자전소설 <휴전>(돌베개, 2010)도 이주에 나온 필독서다. 일단 <한낮의 어둠>에 대한 리뷰를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해놓는다. 예전 번역본은 최승자 시인이 옮긴 <한낮의 어둠>(한길사, 1982)이었다. 저자는 '아서 케슬러'로 표기됐었다.    

한겨레(10. 09. 18) 어제의 혁명동지가 내 목을 달라는구나 

헝가리 출신 영국 작가 아서 쾨슬러(1905~1983)의 <한낮의 어둠>(1940)은 스탈린 치하 옛 소련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함께 언급되고는 한다.

소설은 주인공 루바쇼프가 감옥에 수감되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총살당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루바쇼프는 10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혁명에 몸을 던졌으며 혁명이 성공한 뒤 당 중앙위원회 회원이자 인민위원, 혁명군 사령관을 역임한 혁명 정권의 중추적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1938년 스탈린에게 숙청당한 니콜라이 부하린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쾨슬러 자신은 “루바쇼프의 삶은 이른바 모스크바 재판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종합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모스크바 재판(1936~8)이란 스탈린 개인 우상화를 위해 수천 명에 이르는 혁명 1세대를 숙청한 일을 가리킨다.

루바쇼프가 평생을 바쳐 복무했던 혁명 조국이 자신의 목숨을 요구한다는 것, 그것도 불명예스럽고 근거도 박약한 반혁명의 혐의로써 그렇게 한다는 상황은 루바쇼프에게는 절체절명의 딜레마이자 아포리아로서 다가온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그는 외국에서 혁명을 위해 싸우다가 적들의 감옥에 갇히고 잔인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적국이 아니고 자신은 혁명의 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에 있었지만, 그 조국이 적국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였던 이바노프는 이제 적이 되었다.” 이바노프는 그의 대학 친구이자 오랜 혁명의 동지였으나 지금은 그를 심문하는 자로 처지가 바뀌었다.

모스크바 재판의 배경에는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알력으로 잘 알려진 혁명 노선을 둘러싼 대립이 있었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맞서는 스탈린의 ‘1국 사회주의론’을 대변하는 소설 속 인물은 이바노프에 이어 루바쇼프의 심문을 담당하게 된 젊은 관료 글레트킨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에는 두 가지 경향이 있소. 하나는 모험자들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국외 혁명을 위해 우리가 획득한 걸 걸고 싸우려고 하오. 당신은 그들에 속하오. (…) 우린 오직 한 가지 의무를 가지고 있소. 그건 사멸하지 않는 것이오.”

루바쇼프의 딜레마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자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레트킨과 같은 논리로 주변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독일 청년 리하르트,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알로바, 그리고 벨기에 항구의 부두 노동자 조직 책임자였던 리틀 뢰비 등이 그들이다. 물론 그는 “‘혁명적 철학’으로 저지른 이 모든 사기는 그저 독재 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그는 ‘넘버원’(스탈린을 암시한다)을 두고 “그는 권력에서 결코 스스로 사임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폭력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는 견해를, 비록 사석에서이기는 하지만, 내놓기도 했고 그것이 결국 그의 몰락의 빌미가 되었다.

그가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심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은 리하르트들에 대한 죄책감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의 대의를 위해 한 개인의 양심과 자유, 윤리 같은 덕목쯤은 희생시켜야 한다는 글레트킨 쪽의 논리에 그가 적어도 반쯤은 동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판정에서의 마지막 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과 당 활동과 화해하지 못한 채 죽는다면, 죽을 수 있는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진심의 전부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혁명가로 평생을 보낸 그가 바로 그 혁명의 조국에서 다름 아닌 반혁명 혐의로 처형당하는 마당에 글레트킨의 논리에 의탁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설득하고자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도 있을 법하다.

루바쇼프 자신의 이런 혼란과 동요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초심을 잃고 괴물로 바뀌어 가는 혁명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경고가 그것이다. “그건 체제상의 과오였다. 어쩌면 그 과오는 지금까지 그가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온 원칙(그 원칙의 이름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이제는 그 자신마저 희생되고 있지만), 즉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 원칙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 원칙이 혁명의 위대한 동지들을 죽였고, 그들 모두를 미쳐 날뛰게 만들었던 것이다.”(최재봉 기자) 

10. 09. 17. 

 

P.S. <한낮의 어둠>과 같이 읽어야 할 책은 메를로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문학과지성사, 2004)과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이다. 김홍우 교수의 <현상학과 정치철학>(문학과지성사, 1999)에도 <한낮의 어둠>을 다룬 논문이 실려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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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8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9-1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남국<부하린,혁명과 반혁명 사이> (문학과 지성사)의 제6장에 부하린 재판과 이에 대한 아서 쾨슬러와 메를로 퐁티의 평가를 소개했더군요.

로쟈 2010-09-20 08:4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 책은 어디 박스에나 들어가 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