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눈에 띄는 책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주인데, 그래도 분야별로 한권씩은 꼽아볼 수 있다. 경제쪽이라면 리오 휴버먼의 <휴버먼의 자본론>(어바웃어북, 2011)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란 베스트셀러의 저자 휴버먼이다.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원제가 <자본론>으로 탈바꿈한 게 얼핏 이상해 보이지만 목차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본주의가 어째서 지속가능하지 못한가에 대한 설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명쾌한 구분의 출처가 휴버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경향신문(11. 06. 18) 먼저 이해한 후 싫어하라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미국의 진보 잡지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사회주의자 리오 휴버먼(1903~68·사진)은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제목을 ‘사회주의의 ABC’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담론이 아니라 쉬운 말과 사례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란 뜻이었다. 



책은 [The Truth about Socialism](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악마의 도구’로 여겨지던 사회주의의 참뜻을 알리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책은 첫장 ‘계급’으로 시작해 잉여가치-축적-독점-분배-공황-전쟁-국가-효율-합리성-몽상가(오언, 푸리에 등)-두 사람(마르크스와 엥겔스)-계획-자유-권력을 거쳐 ‘인간’을 다룬 마지막 장으로 이어진다. 제목 흐름만 봐도 책의 구성과 내용, 지향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큰 줄기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으로 분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일반 대중은 매우 가난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그해 펴낸 <미국의 소비역량> 중 ‘1929년 미국의 소득분포’ 표를 보면, 미국 전체 가구의 42%인 1200만 가구가 국민소득의 13%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의 0.1%인 상위 3만6000가구의 소득도 13%였다.

휴버먼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전하면서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비용을 구성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60년 전 분석이지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4대강 사업장에서 수십명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 한국 자본·권력과 노동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자본의 속성을 적확히 진단하고 있다

책의 또 다른 큰 줄기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다. 휴버먼은 로버트 오언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혹한 환경에 저항했던 이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가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다. 자본과 노동의 ‘조화’는 있을 수 없고, 두 계급 간 갈등이 필연적이라고 본 휴버먼은 “특혜와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자본계급의 주된 관심사다. 반면 노동계급의 관심사는 비하와 수모에 저항하고,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일”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휴버먼은 “사회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것이고, 공산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고 둘을 구분하면서 공산주의적 분배 원리는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주의적 분배 원리는 즉각 시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봤다. 공산주의 전 단계로 토지·원료·공장·기계 같은 생산수단을 우선 공적 재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버먼은 책의 여러 곳에서 자유와 수정헌법 같은 미국의 가치를 역설하는데, ‘노동 계급의 생산수단 소유’ 주장도 미국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증기기관이 가난한 이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파괴하는 존재로 비쳐진다면, 그들로서는 그것을 장악해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혁명적 제안이 담긴 토머스 스키드모어의 <재산에 관한 인간의 제 권리>는 마르크스가 11살 때 나온 것이다.

휴버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윤 동기가 음울한 종말을 맞을 운명이라고 진단하고, 사회주의 시스템의 목도를 예견했다. 책 출간 이후 60년 동안 벌어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감안하면, 그의 예견은 성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백년 전 ‘왕권신수설’이란 개념에 대한 도전이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그의 예견은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파탄이 목도되고 운위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모습이 그 진행형을 증거하는 것일 수 있다.(김종목 기자) 

11. 06. 18. 

 

P.S. '자본주의의 종말'을 다룬 책으로 엘마 알트파터의 <자본주의의 종말>(동녘, 2007)과 함께 김수행 교수의 <세계대공황>(돌베개, 2011)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사이'가 부제라서다. 안토니와 네그리의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그린비, 2009)까지 나란히 읽어봄직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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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6-21 06:27   좋아요 0 | URL
The truth about socialism는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인데 번역이 나왔군요.(이 블러그에서 보고 그런 책이 있는 걸 처음 알았읍니다.) Man's Worldly Goods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라는 이름으로 나온 듯 합니다. 1936년 초판인데 아직까지 미국에서 출판이 되고 있으니 거의 명저나 고전에 반열에 속한 책이라 할 수 있읍니다. 경제사 관련 있으신 분은 읽어보기를 권하고요. 70년-80년대에는 이 책 영문 해적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요즘 한국의 번역서를 보면 정말로 엄청난 양의 책이 나오는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번역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번역자의 사정들이 별도 좋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로쟈 2011-06-21 07:36   좋아요 0 | URL
네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꽤 지명도가 있는 책입니다. 번역서가 쏟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인문번역서로 먹고사는 건 굉장히 어렵고 드문 게 이곳 현실입니다. 독자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어서요. 반전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4:24   좋아요 0 | URL
겨우내 아내와 아내의 전공인 철학 영문서 번역에 매달렸습니다. 저는 영어가 짧아서 교정을 보았는데 며칠전 출간이 되었구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번역료 한 푼 못받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같은 저자의 책을 같은 출판사에서 두번째로 번역하는 건데 3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네요. 지인들은 책을 구입해 준다는데 구입비가 역자에게 오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영어 공부한 걸로 자위해야 할테죠?

로쟈 2011-06-21 15:03   좋아요 0 | URL
인세로 계약을 하신 건가요? 번역료를 못받으신다고 하시는 게 이해가 안되는데요. 인세라고 해봐야 아주 소액일 테지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9:21   좋아요 0 | URL
출판사 말은 저자가 로열티를 많이 부른탓에 그 금액을 충당하느라 번역료는 따로 없다고 한답니다...

로쟈 2011-06-21 20:21   좋아요 0 | URL
그건 말이 안되는 조건인데요. 그런 걸 알고도 맡으셨다면...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20:54   좋아요 0 | URL
5년간 미국을 다녀오면 인문학 출판계의 이런 현실이 바뀌어 있을까요? 그러길만을 바라야죠^^
 
푸른역사 아카데미 목요강좌

푸른역사 아카데미 강좌에 대해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아카데미의 설립 취지와 기획에 관한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 이 강의공간과 강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한겨레(11. 06. 15) 새로운 ‘역사 대중화’ 위해 학계·출판계 뭉쳤다

<대장금>을 비롯한 텔레비전 사극들의 높은 인기가 보여주듯, 역사는 대중들이 누리는 인문교양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분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학계나 출판계에서 활발하게 펼쳤던 ‘역사 대중화’ 작업들이 큰 구실을 했다. 반면 한껏 높아진 대중의 열기에 견줘 지금 학계·출판계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발걸음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성찰도 나오고 있다. 역사 분야의 석·박사 전공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역사 대중화를 선도해왔다고 평가받는 출판사인 푸른역사가 지난 4월부터 ‘푸른역사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시민 교육기관을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책장과 책상, 세미나실 등 공부에 필요한 공간을 갖추고, 독서모임이나 각종 강좌를 펼치고 있다. 중소 규모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사랑방 모임’이라는 세미나 모임을 통해 꾸준히 교류해왔던 박혜숙(사진 오른쪽) 푸른역사 대표와 푸른역사 아카데미 원장을 맡은 임기환(왼쪽) 서울교대 교수를 만나 아카데미의 취지와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 설립의 기본적인 취지에 대해 “역사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만남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 교수는 “이미 다듬은 생각을 전달만 하는 책이나 특정 시기와 장소에만 열리는 강좌들로서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모두 끌어안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존의 출판 방식만으로는 깊고 다양해지는 대중들의 관심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학계와 출판계 모두 새로운 시도를 위해 대중들과 직접 만나는 소통 창구를 원했다는 얘기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두드러진 특징은 역사적 사실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시민교양의 한 분야로 삼아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목요일마다 열리는 고정강좌다. 여기에선 노성두 박사의 미술사, 김수영 연세대 강사의 철학, ‘인터넷 서평꾼 로쟈’란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의 문학,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씨의 클래식 강좌가 열린다. 강좌마다 40~50명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한다.

기획강좌의 내용도 새롭다. 15일 처음 열리는 ‘논쟁-대담’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에서는 역사학자인 김영미 국민대 교수와 정치학자인 이광일씨의 발표를 중심으로, 박정희 체제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역사학자와 정치학자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견줘볼 예정이다. 지난 13일부터 열린 기획강좌 ‘역사가가 편집자에게’ 역시 새로운 시도다. 출판시장에서는 주로 대중이 어떤 역사서를 원하는가에 눈을 맞추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스스로 거둔 연구 성과를 단행본으로 만들기보다는, 대중들이 읽기 편한 주제를 중심으로 기존에 나온 학계의 성과들을 엮고 짜맞추는 출판 기획이 많다. 이에 대해 아카데미는 지식 생산자인 학자들은 어떤 책이 만들어지길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임 교수와 함께 김기봉 교수, 한명기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서, 역사대중서는 왜 팩션과 미시사에 열광하는지, 학계에서 보는 한국사의 새로운 트렌드는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아카데미는 이런 새로운 시도들 속에서 학계와 대중, 학계와 학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매개체’ 구실을 할 것이라고 한다. 박혜숙 대표는 “현재 이른바 ‘학술진흥재단(학진) 시스템’이라 불리는 연구·글쓰기 시스템에서 나오는 결과물, 즉 논문은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학계에선 대중들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학자인 임 교수는 “기본적으로 학자에겐 연구의 신뢰도를 검증받기 위한 시스템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학계와 대중 사이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기획’ 역량이 그만큼 절실하다”고 말했다.(최원형 기자) 

11.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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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기 위해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들을 모으고 있는데, 오늘은 로마사 책도 두 권을 주문했다. 사미먼 베이커의 <처음 읽는 로마의 역사>(웅진지식하우스, 2008)과 피터 히더의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다른세상, 2011)이다. 당장에 읽을 여유는 없지만, 독서의 견적 정도는 내보기 위해서이다.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필독서로 꼽아야겠지만 그건 하나마나한 얘기인 듯싶어서 나머지 책들 가운데 최근에 나온 것들을 몇 권 고르고 '로마사 읽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계기가 된 건 피터 히더 교수의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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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로마의 역사- 전설 같은 건국에서 장엄한 몰락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초강대국의 이야기
사이먼 베이커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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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우구스투스- 로마 최초의 황제
앤서니 에버렛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9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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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랭크 맥린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5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2011년 06월 15일에 저장
품절
제국을 만든 남자 카이사르
필립 프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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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의가 있었다. 중간휴식 시간에 내일자 한겨레를 들추다가 읽은 진중권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사회적 독서'로 필독할 만하다. 한진중공업 부당해고 사태를 다룬 칼럼으로 찾아보니 인터넷 한겨레의 메인기사로도 올라와 있다.   

  

한겨레(11. 06. 14) 땀에 젖은 지폐 넣지 마세요 / 진중권

“땀이나 물에 젖은 지폐를 넣지 마세요. 지폐기에 걸립니다.” 어느 트위터리언이 찍어서 올린 한진중공업의 자판기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지폐가 땀에 젖을 정도라면, 그곳의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엉뚱하게도 정리해고의 칼이었다. 이에 항의하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 크레인 농성은 그사이에 150일을 훌쩍 넘어섰다.

‘연대’의 정신은 민주사회의 초석이라 하나,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그저 운동권의 빛바랜 구호로만 여겨진다. 물론 연대는 미덕이지 의무가 아니기에, 누구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또 연대를 못하는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이유와 사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대를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사안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한 것이 낫다. 그런데 이것조차 안 하는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경제신문’이라는 제호를 달고 살포되는 전단들에서 기사와 논설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제호부터 돈 밝히고 들어가는 어느 경제신문의 기사가 나에게 특히 스트레스를 줬다. “2년 반 넘도록 수주 ‘제로’ 한진중공업에 무슨 일이?” 이런 물음으로 시작하는 기사는 “한진중공업, 실적악화에 파업몸살. 3개월 후면 일감도 ‘제로’”라며, 노동자들을 회사에 몸살이나 일으키는 바이러스 취급을 하고 있었다.

 

기사를 아무리 뜯어봐도 노동자들의 주장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다. 이해의 충돌이 일어나면 당연히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판단을 할 수 있는 일. 어떻게 취재 한 번 안 하고 기사를 쓰면서 입으로 밥이 넘어가는지 기가 막혔다. 그가 노동자에 관해 언급한 것은 딱 하나, 파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괴롭힌다는 내용뿐이었다. 이로써 그저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이들은 졸지에 조폭이 된다.

공교롭게도 그 신문을 뜯어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어느 증권사가 “상대적으로 도크 사정이 여유로운 한진중공업의 영업 마진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며 조선업종 최선호주(톱픽)로 꼽고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는 내용이다. “수주를 쉰 한진중공업이 수주를 재개한 지금은 그야말로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이어서 “더 높은 마진의 물량으로 2012~2013년의 도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 이유인즉, “조선산업에서 도크 사정은 선박 가격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도크가 비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선박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 달 전만 해도 실적 악화에 수주 제로에 파업 몸살을 겪는다고 했던 그 회사의 주식이, 파업도 안 끝나고 실적 개선도 없었는데, 한 달 만에 최선호주로 등극하는 이 심오하고 오묘한 이치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다.

아무튼 이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2008년 9월부터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수주실적이 ‘0’이라고 한다. 이 속에는 아주 귀중한 진리가 담겨 있다. 노동자들은 주머니 속의 지폐가 젖어 자판기가 고장나도록 땀 흘려 일했는데, 경영진은 결국 무려 2년 반 동안 고액의 연봉을 챙겨가며 탱자탱자 놀고 있었다는 얘기. 그렇다면 마땅히 해고를 해야 할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진이 아닌가?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한 바로 그 다음날, 경영진은 성과급으로 170억원의 주식배당 파티를 했다고 한다. 건전한 시장경제를 좀먹는 ‘모럴 해저드’의 전형이다. 2년 반 동안 수주실적이 ‘0’. 장기파업으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경영진에게 그 유명한 말을 돌려주자.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하지 않고 먹은 돈은 거위 깃털을 써서라도 토해내야 한다. 

11.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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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6-14 10:45   좋아요 0 | URL
이럴 때보면 자본주의와 화폐경제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쟈 2011-06-15 20:43   좋아요 0 | URL
카지노 자본주의라고도 하니까요...

2011-06-14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정대 시인의 시집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삶이라는 직업>(문학과지성사, 2011)과 <모든 가능성의 거리>(문예중앙, 2011). 개인적으론 데뷔 시집 <단편들>(세계사, 1997)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나온 시집들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뿔, 2007) 이후의 시들을 두 권으로 나눠서 묶은 것이다. 인터뷰기사가 있길래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6. 06) 천사와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 풍경

……저의 시적 경향이라, 글쎄요, ‘불멸의 좌파 같은 시를 썼다’고, 나중에라도 그런 말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노래했던 그 친구 이름이 닉 케이브였네요

-‘무가당 담배 클럽’ 참 재미있는 이름인데 실제로 존재하는 클럽인지요, 아니면 시적 상상 속의 이름인지요? 

‘리 마빈의 아들들 인터내셔널’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가당 담배 클럽’도 실제로 있습니다, 단순한 동인이 아니라 시인, 가수, 영화감독 등 다방면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전 방위적 모임입니다, 특이한 점은 체 게바라, 세르주 갱스부르처럼 이미 죽은 사람도 클럽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면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말 못합니다. (시 ‘닉 케이브, 천사가 노래한다’ 부분, 시집 <삶이라는 직업> 수록)  

인터뷰를 마친 다음, 그의 시집에서 이미 잘 정리된 인터뷰를 발견했다. ‘불멸의 좌파 같은 시’를 쓰고 싶은 사람, 닉 케이브가 천사였듯이 ‘시를 쓰는 자들 또한 전직 천사’였다고 주장하는 시인 박정대씨(46·사진)다. 그는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설정을 빌려와 두 신작 시집 <모든 가능성의 거리>(문예중앙)와 <삶이라는 직업>(문학과지성사)을 완성했다. 영화에서 천사는 곡마단의 소녀를 사랑해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가 천사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은 흑백, 인간이 된 이후의 세상은 천연색이다. 마찬가지로 전자의 시집은 천사의 시각, 후자의 시집은 인간의 시각으로 씌어졌다. 모든 가능성에는 왜 거리가 있는지, 삶이 어떻게 직업이 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두 군데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시집 출간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미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있었는데 이것을 두 주제로 나누고, 새 원고를 추가했습니다.”

천사의 시각? 모든 게 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에 경쾌하고 몽상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시각은? 생생하지만 고통스럽다. 그런데 천사는 이미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신의 구원을 바랄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전직 천사였던 진실한 인간들에게 고독은 숙명이다. 

시인이 볼 때 고독한 인간에게 구원은 같은 인간으로부터 주어진다. 이를테면 ‘천사가 지나간다’(<삶이라는 직업> 수록)란 시에 열거된 이름들, 가스통 바슐라르, 마르셀 뒤샹, 미셸 우엘르베크, 밥 딜런, 백석,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앤디 워홀, 에밀 쿠스트리차, 장 뤼크 고다르, 짐 자무시, 체 게바라, 칼 마르크스, 파스칼 키냐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이다. 추상의 하느님 대신 천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살 만한 곳이라는 긍정에 이른다.

박씨의 시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이국적이고 불온한 동시에 선하다. 심야 카페, 담배 연기, 맥주, 영화 속 한 장면, 블루스 음악, 유럽의 작은 도시로 독자를 데려간다. 도시와 대중문화의 매력으로 제도와 의무에 찌든 현대인을 무장해제시켜 낭만과 초월의 영역으로 이끈다. 그의 시는 한마디로 센·티·멘·털. “센티멘털과 보편, 센티멘털과 형이상학, 센티멘털과 연대와 운동과 전복을 연결시키는 것이 박정대의 본질”이라고 그의 동료인 성기완 시인은 해설에서 썼다. 

이런 시를 쓰는 그는 누구일까. 올해 20년차인 고등학교 국어교사, 퇴근 이후에는 철저히 시인이다. 일찍 잠들었다가 밤 11시쯤 다시 일어나서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을 즐기고 시를 쓴다. 첫 시집 <단편들>(1997)을 시작으로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키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등 이미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이며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런 비밀결사는 그에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시는 어떤 것일까. 시집 <삶이라는 직업>의 마지막에 실린 ‘체 게바라가 그려진 지포 라이터 관리술’처럼 아주 짧고 쉬운 시다.(한윤정기자) 

11. 06. 12. 

 

P.S. 언젠가 한번 인용한 적이 있는데, 오래전에 내가 좋아했던 시는 <단편들>에 실렸던 '물질적 황홀' 연작이었다. 이런 시.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갔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視線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輓章처럼 나부낀다 (박정대, '물질적 황홀 6'에서)

음, 이제 또 월요일이군. 다시 죽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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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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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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