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301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정위안 푸의 <법가, 절대권력의 기술>(돌베개, 2011)을 다루고 있다. 얇은 편에 속하지만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인데, 쓰다 보니 건드리지 못한 대목도 많다. 다른 기회에 보충하려고 한다.  

기획회의(11. 08. 05) 법가의 정체를 밝히다

중국의 법가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몇 년 전에 이상수의 <한비자, 권력의 기술>을 읽고서다. 한비자와 함께 법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는데, 한편으론 유가와 도가 계열 사상가들을 우리가 편독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정위안 푸의 <법가, 절대권력의 기술>은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읽은 책이다. 동양고전강의 시리즈로 나온 것인데 특이하게도 원저는 영어로 쓰였다. 저자가 베이징대학을 졸업했지만 현재는 미국대학에 몸담고 있어서이다. 원제는 ‘중국의 법가(China's Legalist)’(1996).   

그런 제목이라면 영어권 독자에게 법가 사상을 소개하는 일종의 ‘입문서’일 텐데, 보통의 입문서답지 않게 저자의 입장이 뚜렷하다. ‘절대권력의 기술’이라고 덧붙여진 제목, 그리고 ‘진시황에서 마오쩌둥까지, 지배의 철학’이란 번역본 부제가 암시해주는 대로 초점은 법가의 부정적인 면모에 맞춰져 있다. 원저의 부제는 아예 ‘최초의 전체주의자들과 그들의 통치술’로 돼 있다. 법가 사상가들을 ‘최초의 전체주의자들’로 규정하고 그들의 통치술이 중국 역사에 끼친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려는 것이 저자의 주안점이다. ‘전체주의’란 말이 유행어가 된 건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1948) 덕분일 텐데, 거기서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나치즘과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꼽았다. 정위안 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 고대의 법가를 ‘전체주의자 이전의 전체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20세기 히틀러의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비에트 러시아,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중국에 드러난 현대 전체주의의 핵심 요소는 대부분 2천여 년 전에 법가가 주장한 것이다.” 

법가 사상이라고 하니까 보통을 법치, 곧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때의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이다. 법이란 “군주가 백성을 통치하고자 이용하는 형벌 도구”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법이 형벌의 도구이고 공포가 가장 효율적인 정치 통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법가의 교의는 극단적인 독재 옹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법가는 마키아벨리즘을 한참 앞선다. “중국의 법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이탈리아 학자 마키아벨리보다 1,800여 년 앞서, 마키아벨리보다 더 마키아벨리적인 저서를, 현대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논조로 저술했다.”    

법가와 마키아벨리 모두 정치란 근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추구라고 생각하고 권력의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과는 분리시켰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법가는 마키아벨리보다 더 급진적이었다(적어도 마키아벨리를 전체주의 사상의 원조로 꼽지는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법가의 목적은 “군주와 정부가 백성의 사회생활 거의 모든 부분을 무제한의 권력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사회질서 구축”이었다. 현대 전체주의의 특징을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 단 한 명의 지도자가 이끄는 단 하나의 정당, 군대 장악, 언론 장악, 치안 통제, 경제 부분을 포함한 모든 조직의 독점 등으로 꼽는다면, 현대의 발명품인 정당만 제외하면 모두 고대 법가의 저술과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문제는 법가가 진나라의 천하통일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 발전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지만 이러한 사실이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려진 대로 한 무제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은 이후 중국의 제국들은 유교 국가를 표방한다. 그건 조선도 마찬가지여서 유교적 권위주의 국가체제였다는 게 대체적인 이해다. 하지만 ‘외유내법(外儒內法)’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외유내법이란 대다수 중국 역사학자들이 중국 제국의 정치전통을 이르는 말로, 겉으론 유가를 표방하지만 속은 법가라는 뜻이다. 즉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긴 했으나 실제로는 법가가 핵심 통치술이라면?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감춰져온 것이라면?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니 바로 떠오르는 건 청나라 말의 사상가 이종오의 ‘후흑학’이다. ‘뻔뻔함(厚)’과 ‘음흉함(黑)’이 난세의 통치학이었다는 걸 발견한 그는 세계의 진화를 세 시기로 구분했다. 첫 번째 시기인 상고시대에는 인민들이 미개하고 그야말로 천진난만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이 요순시대의 회복을 염원하며 사회풍조를 태고시대로 되돌리려고 했다. 인의를 주장하고 예치를 설파한 유가는 이 제1기의 사상이다. 제2기는 조조와 같이 음흉하고 유비처럼 뻔뻔한 인물들이 운을 거머쥔 시대다. 전국시대의 사상인 법가는 그러한 후흑을 군주의 처세술과 통치술로 권장한다는 점에서 제2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조조와 유비와 같은 자가 널려 있는 시대라고 이종오는 말한다. 그래서 제3기에는 뻔뻔하고 음흉한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 때문에 공맹의 도덕을 차용해야 한다. 속셈은 다르더라도 겉으로는 유가의 도덕을 앞세워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제3기다. 이종오는 이 3기를 자신의 시대로 잡지만 외유내법이 중국의 정치전통이라고 하면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 무제가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만든 것은 재해석될 여지가 있다.   

기원전 136년 무제는 유학자 동중서의 기안을 받아들여 유교를 국교로 정하는데, 그러한 제도화가 실상은 법가가 추진한 세뇌 정책의 결과라는 게 정위안 푸의 생각이다. 가령 백성은 군주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삼강(三綱)은 유교 윤리의 중추이다. 그리고 이 삼강은 중국에서 2000년이 넘게 공식적 기본 윤리 원칙이자 사회규범의 핵심이었다. 군주의 절대 지배를 유교적 이념으로 자연스레 정당화한 셈이니 유교를 세뇌 도구로 변형시킨 게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또 청나라 때 황제는 황실 학술원에 나가 유가 고전을 강의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유학의 가면을 쓰고 법가 사상을 장려하는 관습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20세기 후반의 <마오쩌둥 어록>조차도 “군주가 이데올로기, 교육, 대중 매체를 직접 통제하는 제국 법가 전통의 정점”이라고 평가한다. 요컨대 “법가가 중국에 끼친 영향력은 사실상 2,30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20세기까지도 그 영향력이 여전히 뚜렷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시에 “법가가 중국 사회에 끼친 지속적인 영향력은 어쩌면 중국 인민들에게 마르지 않는 불행의 원천이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정작 인민들 자신이 그러한 불행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중국인들이 언젠가 법가의 정체를 알아차리기를 바랄 뿐”이라는 게 저자의 바람이다. 겉모양만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도 예외는 아닐 터이다.  

11.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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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와 법가식 법치주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9-01 22:54 
    내일자 경향신문에 실리는 '문화와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지난달부터인가 화요일 연재에서 금요일 연재로 바뀌었다. 점심때까지 아이템을 놓고 고심하다가 '난세의 후흑학'에 대해 쓰기로 하고 서두로 '법가' 얘기를 꺼냈는데, 그걸로 그냥 분량이 차버렸다. 후흑학 얘기는꼼수로 아껴두기로 했다.경향신문(11. 09. 02) [문화와 세상]승승장구하는 ‘법가들’중국 전국시대에 나온 법가사상은 알다시피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법가에 근거
 
 
미국사람 2011-08-12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이 겉보기에는 유가로 통치한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법가로 통치했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구요. 법가 이념으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2대만에 몰락한 것을 거울삼아 한고조가 유교이념을 앞세웠다는 거구요.

개인적으로 한비자를 꽤 좋아하는데 나아진 번역이 있는지는 모르겠읍니다. 요즘 체세술책이 유행인 모양인데 그 대신 한비자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2000년전에 쓴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실랄하지요.

로쟈 2011-08-12 07:43   좋아요 0 | URL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보통은 외유내법이 신해혁명까지 이어진 것으로 봅니다. 저자는 마오 이후 사회주의 중국의 치세도 그 연장으로 본다는 게 다르구요. 저로선 '그럼 조선은?'이란 질문을 갖게 되는데, '유교국가'로만 설명들이 돼 있어서 좀 미흡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부분에 관한 연구/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