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되 교양과학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책은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고즈윈, 2006)이었다. 남성(XY)과 여성(XX) 모두에 들어있는, 그러니까 실상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성염색체가 바로 X인 것이니 남의 관심사로 미뤄둘 수 없는 거 아닌가? 아직 아무런 리뷰도 링크돼 있지 않은 듯하여, 두어 개의 리뷰 기사를 옮겨온다.

한국일보(06. 08. 19) 남과 여, 염색체 하나 다를 뿐인데… X염색체의 비밀

-1890년, 독일의 헤르만 헨킹은 현미경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추출한 염색체였다. 정소는 다음 세대를 창조할 정자를 만들기 위해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장소. 세포는 두 번의 연속 과정을 거친 분열을 통해 정자를 만드는데, 이때 정확한 지침대로 움직이고 과정 내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당시 헨킹은 그 과정에 참가하지 않은 채 한쪽에 조용히 비켜서 있는 염색체를 발견한다. 훗날 그가 X염색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는 이 염색체를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뜻에서 X염색체라 불렀는데 나중에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임이 밝혀졌다. ‘X염색체의 비밀’은 제목대로 여러 유전적 형질을 전달하는 X염색체의 비밀을 규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이자 강사(*한 서평자 왈: "베인브리지는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독자들을 X염색체의 영광으로 초대한다." A급이란 얘기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X염색체와 Y염색체를 물려받아 XX여성 혹은 XY남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X염색체가 하나인 남성과 둘 인 여성은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될까. 무엇보다도 남성은 유전적 질병에 잘 걸린다. X염색체는 응고인자 8번 또는 9번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갖고 있는데 남성은 만약 그것이 손상되면,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는 혈우병에 걸리게 된다. 힘없이 주저앉는 근이영양증이나 색맹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성은 X염색체가 둘 이어서 하나만 정상이어도 끔찍한 유전적 질병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자가면역성 질환에 훨씬 잘 걸린다. 다발성 경화증은 남성의 두 배, 남창은 열 배나 되는 등 자가면역성 질환 환자의 80%가 여성이다. 그 배경에 두 개의 X염색체가 연관돼 있다. 저자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사회적 가치 부여에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다. 단지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를 뿐이다.”(박광희 기자)

중앙일보(06. 08. 19) 볼셰비키 혁명 속에도 X염색체가 숨어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문명이란 관점에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다른 종과 별 차이가 없는 하나의 포유동물일 뿐이다. 특히 수정란 상태에서 남녀의 성(性)을 결정하는 아주 성(聖)스러운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똑같이 X와 Y의 두 염색체를 이용한다. 즉, X염색체끼리 한 쌍을 이룬 XX의 수정란은 여성이 되고 X염색체와 Y염색체가 쌍을 이룬 XY는 남성이 된다.

-그런데 이질적인 조합인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은 단 한 종류뿐인 X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달리 이를 대체하거나 수리할 '부품'이 없어 유전병을 고스란히 앓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XX 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또 다른 X염색체가 있어 그런 병을 비켜갈 수 있다. 혈액응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혈우병이나 색맹 등이 남성에게만 생기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인류사에는 갖은 굴곡이 나타났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이 앓던 혈우병이 러시아.독일.스페인의 왕가로 퍼진 이야기가 좋은 예다. 빅토리아의 딸인 알렉산드리나는 할아버지의 손상된 X 유전자를 물려받아 아들인 러시아 황태자 알렉시스에게 혈우병을 안겨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비극은 로마노프 황가의 통치 태만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결국 볼셰비키 혁명을 부른다. 스페인 왕가도 혈우병으로 타격을 입어 국가가 내전으로 가는 상황에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성캐서린 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인 지은이는 X염색체를 주인공으로 과학과 역사, 그리고 남녀의 문제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그려 나간다. 헤르만 헨킹이 1890년 X염색체를 발견한 뒤 이를 남아도는 염색체로 보고 여분(extra)을 뜻하는 X라는 이름을 붙였다든가, 태평양의 작은 섬 핀지랩의 주민 대부분이 색맹이 된 까닭,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잘 걸리는 이유, 일란성 쌍둥이는 왜 여자가 더 많은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지은이의 결론은 간단하다. 남녀의 서로 다른 염색체 배열은 다른 생물학적 기능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보다 더 잘 낳고 자신들의 유전적 특질을 계속 물려주기 위해 진화, 발달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Y염색체는 우리의 성별(性別)을 결정하고 성 정체성을 부여하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조절한다고 한다.

-즉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유전자는 서로 다를 뿐 우열은 없으며, 남녀는 서로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은 동반자 관계라는 게 지은이의 강조점이다. 재미와 정보가 잘 버무려진, 그러면서 생각거리가 있는 교양서를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채인택 기자)

동아일보(06. 08. 19) 인간생존의 비결 X파일…‘X염색체의 비밀’

-남자들은 혈우병-근이양증-색맹과 같은 유전병이 많다는데 왜? 여성보다 생존능력이 떨어진다는데 왜? 그것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희한한 구조의 한 쌍이다.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한 가지 사명에 매달리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조절한다(*아래는 서간체 서평이다. 요즘은 서평도 좀 튀어야 하니까).

-나의 전남편 ‘Y’에게.

-안녕, 땅딸보. 저예요, ‘X’. 당신의 전 부인(ex-wife).

요즘도 그렇게 숨어서 은둔의 세월을 보내고 있나요. 당신은 내게 진저리를 치겠지만 우리가 3억 년 전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포되기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기 위해 펜을 들었어요. 1890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헤르만 헨킹이 나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 내 이름을 X로 지어준 것이 내가 당신의 전 부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서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잘 알겠죠. 헨킹은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다른 염색체들은 모두 둘로 분리되는 춤을 추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남아도는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의미에서 X라고 이름을 지었잖아요. 무도회장에서 남자들에게 춤 신청도 못 받는 여성을 뜻하는 ‘벽의 꽃(wall-flower)’이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내게 붙은 것을 알고 당신이 폭소를 터뜨렸다지요.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생겼다는 성경 말씀이나, 남근이 없는 여자 아이가 좌절감 때문에 남근을 선망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남성 우월적 주장과 맞아떨어져 생긴 오해니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책임도 있잖아요. 1905년 미국의 생물학자 네티 스티븐스가 쌀벌레의 정자에 숨어 있던 당신을 발견한 뒤 당신의 몸에 새겨진 ‘SRY’(태아의 생식샘을 고환으로 전환시키는 유전자)라는 문신이 남녀의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밝혀지면서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X염색체, 활발하고 능동적인 Y염색체의 신화가 생겨났으니까요.

-물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책임은, 세포마다 X가 두 개씩 있는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X와 Y를 짝으로 지닌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남아선호 문화를 지닌 국가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던 여성들을 구제해 주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관계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어요. 성과 관련된 일부 유전정보를 제외하면 당신은 손상된 유전자 조각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고, 나야말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 정보가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남성들이 혈우병, 근이양증, 색맹과 같은 유전병에 취약하고 여성보다 생존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도 이미 알려졌지요. 인간의 유전자 중 가장 덩치가 큰 디스트로핀이라는 슈퍼 유전자를 운반하는 것도 저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반면 당신은 다른 염색체들보다 작고 못생겼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염색체계의 왕따’라는 점이 들통 났지요. 심지어 두더지 들쥐와 같은 동물들은 아예 당신을 자신의 세포에서 제거해 버렸다는 비참한 사실까지 밝혀졌어요. 그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거지요.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은 성별을 결정짓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나의 능력은 생존을 결정짓는 수천 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문제는 우리의 이런 역할 분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우리가 실은 오래전에 이혼한 사이라는 비밀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다른 염색체들처럼 평범한 커플로 시작한 우리가 오래전 파경에 이르렀음이 밝혀진 거죠. 우리는 다른 염색체 커플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소통도 어려운 남남이 됐잖아요.

 

 

 



-몇 년 전 맷 리들리라는 사람은 <게놈-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란 책을 통해 당신이 나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거나 속임수를 써 당신의 유전정보를 발현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폭로했지요. 이제 우리 관계가 그 말 많고 멍청한 할리우드까지 퍼졌나 봐요. 슈퍼 여성을 사귀다 배반한 평범한 남자의 처절한 봉변을 그린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My Super Ex-Girlfriend)>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니까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에 큰 상처 입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옛정을 생각해 기원합니다.

-지금도 세속적 평가보다는 진실한 사랑을 믿는 당신의 전 부인 ‘X’로부터.(권재현 기자)

06. 08. 21.

P.S. 이 페이퍼를 포함하여 언론 리뷰를 옮겨온 '프리뷰' 카테고리의 페이퍼들은 일주일 후에 모두 비공개로 전환할 예정이다. 저자권 침해 예방에 동참해 달라는 알라딘측의 권고에 따른 것이며, 그간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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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장모님이 아침 일찍 친구분 문병을 가신 터라 오전시간에 잠시 처갓집을 지키고 있다. 처조카 혼자 집에 남게 되었기 때문인데 농구하러 나가고 나니까 집에 남은 건 결국 나 혼자이다. 문병이라고는 하지만, 한 달전쯤 말기암을 통보받고 오늘내일 하신다고 하는지라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연을 확인하러 가신 걸음이겠다.  

 

 

 

 

'책벌레'인 나는 그러한 인연마저도 책을 통해서 떠올리게 되는데, 알다시피 제목으로 단 '죽음 앞의 인간'은 필립 아리에스의 방대한 저서명이기도 하다(아직은 서가에 죽음을 들여놓을 자리가 없어서 구입을 미뤄두고 있는 책이다).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새물결, 2004)은 <죽음의 역사>(동문선, 1998)와 짝을 이룬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 원로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궁리, 2001)가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었다. '죽음학'에 대한 본격적인 (학적)연구는 '근사체험'을 다룬 최준식 교수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동아시아, 2006)부터가 아닌가 싶다. 가벼운(?) 책으로는 '죽음의 철학적 의미'란 부제를 단 유호종 박사의 <떠남 혹은 없어짐>(책세상, 2001)과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만남, 죽음과의 만남>(궁리, 2003)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얼마전에 출간된 책으로는 시인 원재훈씨의 에세이집(유언모음집) <네가 헛되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문학동네, 2006)와 미셸 슈나이더의 <죽음을 그리다 -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아고라, 2006)은 각각 삶의 마지막 말과 순간들을 담고 있다. 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세종서적, 2003)이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궁리, 2002) 등이 있다(<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룬 책들이 이 방면으로 트렌드를 이룬다). '미학적인' 죽음에 대해선 두루 아시다시피,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세종서적, 2005)을 참조할 수 있다. 그래봐야 여기서 거명한 책들은 일부분일 뿐이다. 이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 <네가 헛되이...>에 대해선 스크랩해놓은 리뷰 기사를 읽어보도록 한다.

세계일보(06. 08. 19) "본래 나고 죽음도 오고감도 없는 것"

-시와 소설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전업문인으로 살아온 원재훈(45)씨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불태운 사람들이 지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한마디를 모은 에세이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같이 살다간 50여명의 삶과 마지막 한마디를 채록한 이 책은 권태와 짜증으로 귀한 ‘오늘’을 소모하는 이들에게 청량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은이가 찾아낸 이들은 죽음 앞에서 애통해하거나 아등바등 삶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당당하고 헛헛하다. 헝가리 출신 작가로 89세의 나이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산도르 마라이는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의 품에서 죽어가며 힘겹게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어”라고 힘겹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고흐는 죽음을 별까지 걸어가는 환상적인 여행으로 생각했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야.”

-악성 베토벤도 죽음 앞에서 당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박수를 치게, 친구들, 희극은 끝났네”였다. 그가 평소에 죽음을 향해 던졌던 도발적인 대사. “죽음이 언제 오든 기쁘게 맞으리라. 내가 가진 예술적 재능을 모두 발휘하기 전에는, 설령 운명이 아무리 나를 괴롭히더라도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 죽음이여, 용감히 너를 맞으리니 언제든지 오라.” 소크라테스는 “이제 삶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니 즐겁다”고 마지막 말을 던졌다.

-이들이 죽음 앞에서 이처럼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생을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미련 없이 살았기 때문일 터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와 맞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 싸움의 와중에 죽어갔던 영국 넬슨 제독의 말이 그 증거다.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소명을 다했습니다.” 당나라 승려 혜능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행여 말하지 말라, 내가 왔다 갔다고. 본래 나고 죽음도, 오고 감도 없는 것이다.”

-물론 죽음 앞에서 비감이 없을 수 없다. 성삼문은 죽음을 앞둔 절명시에서 “북소리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날은 저물었구나/ 황천에 주막이 없다 하니/ 오늘밤 뉘 집에 묵어갈꼬”라며 서러워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든 저렇게 죽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다만 죽음을 미리 걱정하기에 앞서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지혜가 더 절실할 따름이다. 지은이 원재훈은 “여기에 소개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스스로 죽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다간 사람들”이라며 “죽기 전에 죽는 날, 그날이 바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며 또 하나의 생일”이라고 적었다.(조용호 기자)

책에 덧붙인 '자전거 레이서' 김훈의 말: "원재훈이 모아놓은 '임종 자리의 말'들을 읽어보니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말을 해야만 죽어지는 모양이다. 원재훈의 글은 옛 고승대덕의 죽음에서부터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에 이르기까지 죽는 순간의 말들을 두루 챙겨서 장관을 이루었다. 그 마지막 말들은 대부분 죽음을 사절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데리고 죽음으로 건너갈 수는 없었고 말은 끝내 살아 있는 자들의 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좀더 빛을" 또는 "초록색으로 해줘" 또는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한들 그 빛과 초록과 매화는 산 자들의 것이다. 죽음은 인문화될 수 없는 자연현상이고, 공유할 수 없는 사생활인 것이다. 그래서 말은 산 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그 마지막 말들이 살아가는 날들의 고난을 공정하게 해주고, 이제는 잃어버린 삶에 대한 경건성을 일깨운다. 죽는 자리의 마지막 말이 시작하는 날의 말이다."

그러니 좀더 사는 수밖에...

06.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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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1 11:51   좋아요 0 | URL
오옷 역시 김훈의 필력은...

가끔 죽음에 대해 떠올립니다.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죽음에 대한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지요. 이젠 두려움이 되었어요. 내 아이들이 성장하기까지라도 열심히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은 소망과 두려움...

하이드 2006-08-21 12:14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뉴요커에 실린 존 업다이크가 쓴 ' edward Said의 “On Late Style: Music and Literature Against the Grain” 에 관한 리뷰가 생각나네요.http://www.newyorker.com/critics/content/articles/060807crat_atlarge
예술가들의 말년 작품들에 대한 책이래요. 사이드가 죽기직전까지 콜롬비아에서 강의하던 내용이라고 하는데, 업다이크.의 리뷰만으로도 다 읽은 기분.이라지요. 책찾아볼 생각은 안나지만요. 관심있으면 읽어보시길. ^^

로쟈 2006-08-21 12:22   좋아요 0 | URL
비자림님/ <강산무진>이 전부 '죽음'에 관한 책인데요, 뭐.^^
하이드님/ 저도 리뷰만 읽겠습니다. '다 읽은 기분'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침신문들이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던 수학의 난제를 풀고 홀연히 사라졌던 러시아의 한 천재 수학자의 행방을 전하고 있다. 현재 실직상태로 월 5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으며 노모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노모를 위해서도 상금을 받아서 호강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계산법에 맞는 것이지만, 이 러시아 수학자는 그런 셈에는 둔감한 모양이다(더구나 그는 유태계이다!). 이래저래 러시아는 이해하기 난감하다...

 

중앙일보(06. 08. 21) 러시아 수학 천재는 실직 상태

-100만 달러(약 10억원)의 상금이 걸린 수학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고도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러시아의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0.사진)이 실직 상태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20일 그가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의 아파트에 얹혀 살고 있다고 전했다. 모자의 한 달 수입은 어머니가 받는 약 5만4000원의 연금이 전부. 인류가 한 세기 동안 씨름해 온 수학 문제를 풀었지만 정작 자신의 빈곤 문제는 풀지 못한 것이다.

-페렐만의 은둔 생활은 2003년 러시아 수학연구소인 스테클로프에서 해고된 뒤 시작됐다. 한 지인은 "해고된 이후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을 잃었고, 수학은 물론 세상과도 단절한 채 지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아무런 수입원이 없는 상태다. 그는 이번 주 발표될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의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수상식장에 가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국제수학연합 총회가 열리는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갈 여비가 없기 때문이다(*필즈상은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안다.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이다).

-그의 친구들은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는 미국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푸앵카레의 추측'을 푸는 사람에게 내건 100만 달러의 상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나서지 않은 것은 단지 내가 주목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세상의 관심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자기 홍보는 요즘 흔한 일이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언론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쓰든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2002년 '푸앵카레의 추측' 풀이를 공개한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결정적 단서를 유명 학회지에 발표하는 대신 인터넷에 올렸던 것이다. 그는 "내 풀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조민근 기자)

한겨레(06. 08. 21) 종적 감춘 러시아 천재수학자, "노모와 월 5만원..." 

-3년 전 수학계에서 100여년 동안 풀리지 않던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하는 짧은 논문을 인터넷에 올린 뒤 종적을 감춘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0) 박사의 행방이 확인됐다. 푸앵카레 가설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선정한 ‘21세기 수학의 7대 난제’ 중 하나로,연구소는 이를 해결하는 연구자에게 100만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페렐만 박사는 지난해 12월 실직한 뒤 매월 30파운드(약 5만원)의 연금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초라한 아파트에서 노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0일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의 수학 연구기관인 슈테크로프 연구소와 사이가 나빠져 연구원으로 재임용되지 못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렐만은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연맹 총회에서 수학판 노벨상인 ‘필즈 메달’의 유력한 수상후보자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대회 참석이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렐만 박사는 지난주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주목을 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며 (100만달러를 주겠다는) 횡재에도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고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그는 자신의 실종에 대해 “숨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며 “그저 대중이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렐만 박사의 친구들은 “그가 10년 넘게 노력한 끝에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했지만 저명한 학술지에 그 결론을 싣지 않고 인터넷에 올렸다”며 “이는 그가 타고난 겸손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페렐만 박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6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았다. 박사 학위 취득 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엔 미국 유수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고도 모두 뿌리치고 1996년 러시아로 돌아갔다.(박현정 기자)

 

 

 

 

06.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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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기사 읽고 참 놀랐어요...

이네파벨 2006-08-2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수학이라는 과목이랑 수학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어마무지한 애정과 경외를 느끼는데요...

수학자들은 뭐랄까...어떤 의미에서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인거 같아요.
궁극의 어떤 것, 절실한 어떤 것 하나만 바라보고 나머지 시야를 어지럽히는 삶의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구도자와 같은 면이...있는거 같아요.

저 위에 올려주신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저 책...
제가 꼽는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책 가운데 하나랍니다.

우연히 손에 들어와 읽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해주고...미소짓게 해주었던 책으로 기억해요...
그 주인공 (폴 에어디쉬?) 역시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았죠...

제한된 용량의 인생...시간...관심..사랑..열정..등을....세상사람들이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뜬구름을 다 잡아보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해서 쏟아부은 삶의 감동....부럽고 멋지네요...

로쟈 2006-08-2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미친 겁니다>는 저도 헌책방에서 반값에 샀던 책인데, 100여쪽쯤 읽다가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네요(^^;)...

도레미쏭 2006-08-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자버젼이네요.

로쟈 2006-08-2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라면 페렐만은 스스로 때려치운 게 아니라 '해고'당했고, 막대한 재산가가 아니라 가난한 연금생활자란 것이죠...

도레미쏭 2006-08-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린스턴 대학이랑 스탠포드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수학자 상이니, 10억에 가까운 상금도 거부하고 있고요.

로쟈 2006-08-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공통점이겠지요.^^

헤르베르트 2006-08-2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생활이 어렵다고 투덜댈수도 없겠네요 일자리도 마다하고^^ 푸앙카레의 추측이랑 페렐만의 풀이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도 보도 되면 좋겠다... 퍼감니다;;

푸른괭이 2006-08-2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밤새도록 <얀덱스> 뒤져봤는데, 역시나 쥬체프 말대로 "러시아는 머리(=이성)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인 듯. 러시아신문 어디 보니까 페렐만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들고 있는 건 위험하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데, 이거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식 희극 아닌가요? ^^ ... <수학>이란 학문도 독특하고, 러시아도 독특하고, 저 인간도 참 독특(=위대)합니다...

푸른괭이 2006-08-2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들여, 페렐만의 외모는 아무래도, 키예프 역이나 리가 역에서 노숙생활하는 '봄쥐'를 닮았어요.. -_- 젊었을 때 사진은 처음 보는데, 정말 모범생처럼 생겼네 그려. 겸사겸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대가 로바쳬프스키가 러시아 사람이었다는 것도 상기할 만합니다. 그도 당대, 국내에선 별로 인정을 못받은 모양인데, 가우스가 그나마 그의 이론(?)을 높이 샀다네요. 리만이 나온 건 로바쳬프스키 이후죠, 아마? 겸사겸사, 수학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지네요... -_-

로쟈 2006-08-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들 먼저 쓰시고.^^
 

'에로영화의 거장(꼬장)' 혹은 '에로영화계의 왕가위'로 불리던 봉만대 감독의 (예기치 않은) 공포영화 <신데렐라>가 얼마전 개봉했다. 극장용 장편 데뷔작이었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 이은 두번째 영화인데, 에로영화 전문감독의 공포영화라는 점이 먼저 특이하고 (그의 전력에 견주어) '15세이상 관람가'라는 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사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비디오용 에로영화들에서 보여주던 '주변부적 정서'(그의 표현으론 '쓸쓸함' 혹은 '슬픔')를 빼먹은 채 '그림'으로만 승부하려고 했던 탓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그의 '공포영화'가 기대를 뛰어넘을 거 같지는 않다(그게 편견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면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언론의 리뷰들을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08. 16) 봉만대감독 공포영화 데뷔작 ‘신데렐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감칠맛나는 영상을 만들고, 케이블채널 OCN에서 독특한 감성의 <동상이몽>을 보여준 봉만대 감독.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서 벗어나 공포영화를 내놓았다. 봉 감독이 “쓸쓸한 영화”라고 설명한 ‘신데렐라’(제작 미니필름·17일 개봉)는 맹목적이고 어긋난 모성애를 다룬 공포물. 미리 귀띔하자면, 포스터와 예고편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섬뜩한 컨셉트 ‘성형수술’은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모성애를 드러내기 위한 강렬한 소재로 차용됐을 뿐이다.

 

 

 



-친구처럼 다정한 모녀인 성형외과 전문의 윤희(도지원)와 고등학생 딸 현수(신세경). 외모에 관심이 많은 현수의 친구들은 윤희를 찾아가 수술을 받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만, 곧 알 수 없는 환영에 시달리고 급기야 죽음으로 치닫는다. 이상한 일이 계속되자 현수는 윤희가 출입을 금지한 지하실로 찾아가고, 사진을 한 장 발견하면서 모녀 사이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특별한 반전없이 술술 전개된다. 최근 몇년간 한국 공포영화들이 보였던 ‘알고 보니 이런 거였어. 몰랐지?’식의 반전 강박증이 적어도 이 영화엔 없다. 덕분에 관객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피곤함은 덜었다. 하지만 지나친 친절은 드라마의 재미를 누리려는 관객에겐 ‘독’이다. 매사를 또박또박 설명해주려는 영화는 시종 요철없이 밋밋한 느낌으로만 일관한다. 모처럼 스크린 나들이한 도지원의 연기와 신세경의 성숙미가 돋보이지만, 그것만으로 공포영화의 재미를 보전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시청각의 지나친 자극을 부담스러워한다면 이 영화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초반 스크린에 피가 흥건하긴 하지만, 잔혹한 수준은 아니다. 소름돋는 쇳소리 음향효과, 괴상하게 몸을 꺾으며 일어서는 귀신의 모양새 등 공포영화의 유행코드에 연연해 하지 않은 대목에서 차별점을 찍는다.

-그러나 봉 감독에게 기대했던 세련된 연출장면을 찾지 못해 끝내 안타깝다.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들락거리는 장면에서나 그의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엄마 잃은 쓸쓸한 아이, 죄책감에서 아이를 살리려 희생하는 모성 등의 주요설정이 일본 공포 <검은 물 밑에서>와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한다.15세 이상 관람가.(최여경 기자)

한겨레(06. 08. 16) “난 에로의 꼬장…이번엔 슬픈 공포”

-“신음 소리만 낸다고 에로 영화가 아니듯 비명 소리만 지른다고 공포 영화는 아니다.” 성인 비디오 영화계를 주름잡다 극장용 성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과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용 에이치디(HD) 영화 <동상이몽>을 선보인 뒤 농담 반 진담 반 ‘에로 영화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봉만대(36·사진) 감독이, 이번에는 공포 영화 <신데렐라>를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신데렐라>는 성형수술과 극단적인 모성애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였음에도 애써 자극적인 비주얼과 효과음을 피해간 흔적이 역력하다. 에로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뿅점’(결정적으로 야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지 않았던 그의 취향과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듯도 하다.

-봉 감독은 <신데렐라>를 ‘봉만대식 공포 영화’라고 정의했다. “나는 에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에로보다 멜로를 중시했는데, 공포 영화에서도 공포보다 멜로쪽에 무게를 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공포 대신 슬픔을 느끼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이 ‘슬픔’을 유난히 강조하는 탓에, <신데렐라>의 주요 축을 이루는 것도 ‘성형이 불러온 참사’보다 ‘성형외과 의사인 엄마(도지원)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깊은 슬픔’이다. 공포 영화를 만들어 놓고 공포보다 슬픔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생뚱맞기도 하지만, 이는 봉 감독 나름의 공포에 대한 정의가 반영된 결과다. 봉 감독은 “귀신이 무서운 건 머리카락이 길어서도, 피를 흘려서도 아니다. 슬픔을 간직하고 죽어서 한을 품은 게 무서운 거고, 그 한을 풀 때 공포스러운 거다. 슬픔을 뺀 공포는 ‘처키’이고, <신데렐라>는 처키 식 공포 영화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시사회 뒤엔 ‘덜 공포스러움’을 아쉬워하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봉 감독은 “내가 그 정도 (비판에) 상처받을 사람이 아니다(웃음)”라며 단호했다. “사실 난 ‘에로 영화의 거장’보다 ‘에로 영화의 꼬장’이라는 별명으로 훨씬 더 유명했다. 공포 영화를 만들면서도 남들이 다 하는 뻔한 방식으로 무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잔혹한 비주얼을 되도록 피해 가고, 세지 않은 효과음으로도 공포감을 줬다는 점 등 새롭다고 평가해 줄 부분도 많지 않은가.”

-<신데렐라>는 17일 전국 200여개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에로 비디오에서 에로 영화로, 다시 공포 영화로 보폭을 넓혀온 봉 감독이기에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하지만 그는 “나는 비디오 찍을 때도 한 작품 끝낸 뒤 바로 다음 작품을 찍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생길 때 다시 영화를 찍을 예정이고, 에로가 될지 공포가 될지, 다른 어떤 장르가 될지 나도 모른다”며 끝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세계일보(06. 08. 17) 봉만대감독 "공포도 에로와 다를게 없죠"

-에로 영화로 연출에 입문했지만 개봉을 앞둔 것은 공포 영화다. 만나보니 사람은 영화 장르로 치자면 코미디다. 종잡을 수 없고 도대체 정리가 안 된다. 신작 <신데렐라>(오늘 개봉)로 돌아온 봉만대(36) 감독은 여러 이미지가 상충하고 조합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가 한데 뭉쳐 묘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궁금증이 커졌다.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감독 봉만대가 변방에서 주류를 향한 길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상충하는 이미지의 기묘한 조합
-이름과 실물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이 첫 번째다. 봉 감독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봉만대(奉萬大)라는 이름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한자로 된 쉬운 이름이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스타일이 아주 촌스럽거나 늙수그레한 아저씨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만나 본 그는 배우 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호남형이었다. “배우 한번 해보지 그랬느냐?”라는 질문에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그만뒀다”라고 농담한다. 전라도 출신인 그는 대사에서 ‘나의 생각은’을 자꾸 ‘나으 생각은’으로 발음해서 연기를 접었다는 사연이다.

-두 번째 인식의 전복은 그의 사생활이다. 느끼하거나 바람둥이일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보기 좋게 깨졌다. 6년간 같이 살다 결혼한 부인과 크랭크인 직전에 태어난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아닌가. 봉 감독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부인을 만난 후에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단다. 홀어머니와의 관계도 돈독하다. 게다가 종교까지 있단다. 상상 초월이다. 봉 감독은 고교 시절 연극학원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며 비용을 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30살에 감독 못하면 그만두기로 약속했다. 35세까지는 돈 잘 버는 상업감독이 되겠다고 손가락을 걸었다. 아마 봉 감독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데는 어머니라는 굳건한 중력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
-봉 감독은 자신을 ‘선인장’에 비유했다. 다른 식물과는 달리 물이 풍족한 안락한 상황에선 죽어버리는(*그래서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극장용 영화보다 저예산 비디오 영화들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 여기서 '영화 대 비디오'는 사회적 계급을 반영한다. 그는 주류영화를 찍을수록 자신의 세계에서 멀어질 것이다). 에로 영화를 15편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HD로 찍은 케이블 TV용 연작 영화 <동상이몽>, 이번엔 공포 영화 <신데렐라>로 변신했다. 광고계에서 촬영 부분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혼자만의 의지로 물길을 거슬러가며 경력을 쌓아왔다는 얘기다.



-봉 감독은 배우 김서형이 자신의 출연작 <어느 날 갑자기> 시사회에 초대했지만 공포 영화가 싫어 보러 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공포 영화를 연출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것은 순전히 시나리오의 서사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에로도 좋아서 했듯이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포도 에로와 다를 게 없다. 그는 “에로 영화도 보는 사람이 집중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드냐”면서 “공포 영화도 설득력 있게 오싹하게 만드는 과정과 심리적 템포 조절에서 에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익숙한 공포 영화의 공식에서 하나만 바꿔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신데렐라’는 여학생들의 예뻐지고자 하는 욕구, 성형수술, 모녀 관계 속에서 “왜, 누군가 죽는가”에 관한 담백하지만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40세에는 세계로 나가는 작품을 연출하고 45세에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봉만대 감독. 그가 변방에서 주류로, 주류 중에서도 중심으로 향하는 여정에 신작 <신데렐라>는 추진력을 배가해줄 것 같다.(신혜선 기자)

06.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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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도 있지만 날씨는 많이 누그러졌다. 바람도 가을티를 더 내는 바람이고. 가을이 오기 전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또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아무래도 더 바빠질 것이다(이제 이런 딴짓을 할 새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9월이면, 또 연례행사처럼 떠오르는 게 21세기의 화두처럼 돼 버린 9.11이다. 오늘 뉴스에서는 뉴욕경찰이 희생자들의 음성이 담긴 비상통화 테이프를 공개했다고 전한다:

"9.11 테러 5주년을 앞두고 뉴욕경찰 당국이 테러 당시 구조를 요청한 희생자들의 음성이 담긴 비상 통화테이프 1천6백여건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통화 테이프 공개는 희생자 유족들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 공개를 요구하는 재판을 벌여 이뤄졌습니다. 공개된 내용에는 애절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구조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의 소리, 생존자 구조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구조대원들의 음성 등이 생생하게 담겨있었습니다."  

이 외상적(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한 문학적 응전 혹은 애도가 문학전공자라면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출간된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민음사, 2006)은 주목할 만하다. 어제 한겨레에 실린 최재봉 기자의 리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굳히게 됐는데, 흥미로운 건 그의 아내인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또한 이번에 같이 출간됐다는 점. <사랑의 역사>(민음사, 2006)가 그것이다. 아마도 두 작가가 부부라는 걸 고려한 듯한데, '뉴욕 최고의 문학커플'이라고 하니까 관심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질투는 뭔가?). 좀 무거운 9.11 얘기는 가을에 하도록 하고, 좀 가벼운 커플 얘기에 초점을 맞춰서 두 작가와 작품에 대한 리뷰들을 따라가본다. 

중앙일보(06. 08. 19) 고독과 폭력으로 헝클어진 두 개의 '사랑 퍼즐'

-모처럼 소설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 나란히 출간됐다. 지은이들이 부부 사이란 것도 눈길을 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니콜 크라우스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다. '분더킨트(wunderkind.신동)'라 불릴 정도다. 1977년생 남편 조너선이 2002년 발표한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LA타임스가 선정한 그 해 최고의 책이 됐고 '가디언 신인작가상'과 '전미 유대인 도서상'을 받았다(*그러니까 25살에 떴다는 얘기이다. 프린스턴대 재학시 조이스 캐롤 오츠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세 살 많은 아내 니콜이 2005년 발표한 <사랑의 역사>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다.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던 명문대 재학 시절 만났고 죽어도 글을 쓰겠다는 야망도 같고 문단의 평가에서도 어느 한 쪽이 기울지 않으니 천생연분이지 싶다(*부부간에 상대방보다 더 잘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한 작품은 10대 소녀가, 다른 하나는 아홉살 소년이 이야기를 이끈다. 언어의 실험과 퍼즐식 짜맞추기에서 독자의 폭넓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두 소설은 각기 독창적이고 전혀 다른 이야기다. 부부가 발표 전까지 서로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것을 먼저 읽든지 뒤의 것이 앞의 것을 거의 완전히 지워버릴 정도로 둘이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도 다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랑의 역사>는 '사랑한다'는 말이 의미를 상실한 시대에, 절절한 사랑을 담은 한 권의 책이 돌고 도는 구조다. 그 밑에 인간의 짙은 고독과 전쟁의 폭력이 깔려 있다. 작가를 꿈꾸는 폴란드계 유대인 레오는 첫사랑 소녀 알마를 찾고 있다. 레오가 알마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 원고는 나치의 학살이 시작되자 언론인 친구 즈비에게 넘어간다. 칠레로 망명한 즈비는 현지에서 만난 로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레오의 원고를 스페인어로 베껴 전한다. 알마라는 이름만 제외하고 모든 이름이 바뀐 소설은 다시 칠레를 여행하던 미국 청년 다비드의 손에 들어간다. 그는 연인 샬럿에게 이 소설을 선물하고 둘이 낳은 딸을 알마라고 이름 짓는다. 다비드를 암으로 잃은 뒤 일에만 매달리던 샬럿은 책을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10대 소녀가 된 알마는 동생 버드와 함께 자기 이름과 같은 소설의 주인공을 찾아나선다. 한편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고 미국으로 탈출해 열쇠공이 된 레오. 그는 앞서 미국으로 이민온 첫사랑 알마(소녀 알마와는 동명이인)를 찾지만 알마는 레오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다. 책도 연인도 자식도 잃어버린 레오. 그러나 그는 삶이 아름답고 영원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믿는다. 레오의 믿음은 엄마에게 새 연인을 찾아주려는 소녀 알마의 노력과 만나게 된다.

-이 극적인 만남의 이면에 작가 니콜의 기지와 작품의 활력이 숨어 있다. 소설을 정치적 비판이 아닌 일상의 드라마로 만든 힘은, 자신이 신이라 믿는 엉뚱한 소년 버드의 풀이에 있다. "레오 거스키이며 즈비 리트미노프이며 메레민스키이며 또한 모리츠인 그 사람"을 찾아 누나와 연결하는 버드의 '오해 속 지혜'가 소설을 푸는 열쇠다. 과연 인생은 무겁지만 지혜는 가볍고, 인간은 우울하지만 신은 즐겁다.

-남편 조너선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사진, 그림,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문체 등에서 아내의 작품보다 훨씬 실험적이다. 초반부에는 책장이 다소 느리게 넘어간다. 그러나 죽음과 상실의 공포, 그리고 사랑과 표현의 한계라는 주제는'사랑의 역사'와 동일하며, 막바지에 한 줄기 햇살처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도 비슷하다. 12살 소년 오스카는 9.11 테러로 죽은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열쇠를 발견한다. 열쇠가 담긴 봉투에는 '블랙'이라고 씌어 있다.

-오스카는 뉴욕에 사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216명을 차례로 만난다. 이것이 그가 아버지를 애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을 겪은 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 두려워 자식(오스카의 아버지)마저 외면한 할아버지 역시 죽은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면서 용서를 빈다. 이들의 긴 애도는 마지막에 이르러 아주 엉뚱한데서 해결된다. 암으로 죽은 아버지의 유품인 열쇠를 찾던 블랙이라는 사람과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오스카가 만나면서 닫혔던 문이 열린다. 그런데 혹시 이 모든 '블랙씨 찾기'는 아빠를 잊은 것처럼 보이던 엄마가 창조한 플롯은 아닐까?

-열쇠 모티프, 세대 간의 대화, 복잡한 플롯을 해결하는 방식, 유대인이라는 가족사가 드러나는 방식 등 여러 면에서 두 작품은, 그리고 아내와 남편은 다르면서 닮았다. 라이벌이면서 천생연분은 가능할까? 부부가 똑같이 성공하고 싶은 우리 시대 연인들에게 두 소설은 다름과 닮음의 멋진 예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폭력의 어두움이 일상이 된 문명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권택영 교수/ 경희대 영어학부)

동아일보(06. 08. 19)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우리에게는 조숙하고 위악적이어서 매력적인 어린 화자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새의 선물>의 진희, <양철북>의 오스카,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 <자기 앞의 생>의 모모, 그리고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등장하는 크라우스 형제까지. 열 살을 채 넘지 않은 이 아이들은 그 어떤 어른들보다 성숙하게 삶의 모순을 바라보고 기록한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홉 살 소년 오스카는 혼란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서 그 어느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지금-여기’의 삶을 말한다.

-이 책은 9.11 테러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개인과 가족 그리고 그들에게 할애된 미래를 한꺼번에 앗아간 역사적 사건은 폭력에 의해 좌초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근원적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 명의 화자의 육성이다. 9·11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죽은 언니를 잊지 못한 채 유령처럼 떠도는 남편을 지켜봐야만 했던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오스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소설 사이사이에 직접 찍은 사진이나 노트를 삽입한다. 마치 ‘거기 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나 영상처럼, 작가는 기록된 모든 사유들을 그 자체로 보여 주고자 한다.

-이 책에서 일차적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삶의 비의(秘意)를 알아 버린 듯한 조숙한 아이의 위악이지만 결국 밑줄을 긋게 하는 부분들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상실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작가는 상실이란 인생의 비의가 아니라 본질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횡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상상력임을 제안한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언어의 질감, 밑줄을 긋던 손길마저 잠시 멈추게끔 하는 사유의 힘이 이 책을 관류하고 있다.

-작가의 부인 니콜 크라우스도 작가다. 크라우스의 작품 <사랑의 역사>도 이번에 함께 출간된다. 두 사람 모두 뉴욕 문단의 ‘분더킨트(신동)’로 통하며 독자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강유정 문학평론가)

 

한겨레(06. 08. 18) 9·11 그순간 잃어버린 말 ‘사랑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미국의 젊은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29)가 지난해 발표한 소설이다. 미국 문학계에서는 부인 니콜 크라우스(32)와 함께 ‘신동’으로 불린다는 작가의 두 번째 장편으로 포스트모던한 형식 실험을 적극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수십 장의 흑백사진, 한 페이지에 한 줄만 싣거나 아예 백지 상태로 비워 놓은 페이지들, 문틈으로 엿듣는 상태를 표현하느라 토막토막 끊어진 문장들, 이미 쓴 글 위에 몇 겹씩 겹쳐 써서 아예 까맣게 뭉개진 페이지, 그리고 오탈자를 골라 표시한 빨간 흔적과 글씨 연습을 한 총천연색 낙서장까지, 소설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들이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라면 이런 기법상의 특징들보다는 이 소설이 9.11 테러를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에 더 큰 관심을 보일 법하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원로 작가 존 업다이크(74)가 <테러리스트>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해 화제와 논란을 함께 낳은 바 있다. 작가들이 최초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 이 미증유의 사태를 상대로 한 문학적 대화에 나서고 있다는 뜻이겠다.

-소설은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 셸’이 이별과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아버지의 흔적을 좇는 과정을 추적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낸 수수께끼의 열쇠, 그 열쇠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블랙’이라는 성씨를 가진 이를 찾아 드넓은 뉴욕 시내를 순례하는 오스카의 여정은 얼핏 무모해 보이지만, 오스카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절박한 의미를 지닌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 테니까”(356쪽)라는 것이 그의 변명인데, 테러에 대한 어린아이다운 공포는 소설 앞부분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일 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무슨 이유에서인지 샤워를 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웠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더더욱 그랬다. 현수교, 세균, 비행기, 불꽃놀이, 지하철의 아랍인들(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닌데도),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등 공공장소의 아랍인들, 비계, 하수구, 지하철 격자창, 주인 없는 가방, 신발, 콧수염을 기른 사람들, 연기, 매듭, 높은 건물, 터번, 나를 공포에 빠뜨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59쪽)

-그런데 오스카가 이토록 아버지의 흔적 찾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사건이 있던 날, 그는 학교에서 일찍 귀가해 전화기에 남겨진 아버지의 네 개의 메시지를 듣는다. 비행기와 충돌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있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음성이었다. 네 개의 메시지를 다 듣고 난 직후 아버지의 전화가 다시 걸려오는데, 어쩐 일인지 오스카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몸이 얼어붙은 것이다. 1분 27초 동안, 사람들의 비명과 울부짖음, 유리 깨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긴박한 목소리가 메아리쳤음에도 오스카는 전화를 받지 못했고, 결국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 전화 역시 끊긴다. 그는 이 사실은 물론 마지막 순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 자체를 다른 가족, 특히 엄마에게는 비밀로 한다.

-소설은 주인공 오스카와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 사람을 화자로 삼아 진행된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 그러니까 오스카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할머니는 손자에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서전 형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1963년 5월 21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아이에게’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편지는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서 겪은 폭격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고통스럽게 증언한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던 사랑하는 여자를 폭격으로 잃고 미국으로 건너와 그 여자의 동생과 결혼한 할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하고 독일로 떠났다가 아들이 죽은 뒤에야 귀환한다. 자신의 상처를 아내와 나누려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선택은 할머니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고, 할머니는 소설 말미에서 손자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439쪽)

-결국 소설의 세 화자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소통’의 결여라 할 수 있다. 오스카는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한 마디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는 것이 이들 모두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던 것. 오스카가 할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실어증인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손자를 향해 거듭해서 ‘미안하다’는 글씨만 써 보이는 소설 말미의 눈물겨운 장면,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각자의 아버지이자 아들이 되는 사람의 텅 빈 관을 파헤쳐 그 안에 할아버지가 40년 동안 할머니에게 보냈던 내용 없는 편지를 채워 넣는 상징적인 장면은 뒤늦은 사랑의 고백에 해당된다.

-할아버지 못지않게 드레스덴의 악몽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이런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무너진 천장이 우리 머리 위에서 전부 다시 만들어졌어. 불길은 폭탄 속으로 도로 들어갔고, 폭탄은 위로 올라가 비행기들의 몸통 속으로 도로 들어갔어. 비행기 프로펠러들은 거꾸로 돌았지.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시계 초침처럼.”(428쪽) 사건과 시간을 되돌리는 할머니의 ‘마술’은 오스카에게도 전수된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오스카는 아버지에게서 ‘뉴욕의 잃어버린 여섯 번째 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으로 되돌아가며,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가 마지막 문장이 된다.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독특한 소설의 마무리는 15장의 사진이 담당한다. 9·11 당시 불 붙은 무역센터 건물 바깥으로 추락하는 남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인데,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어 책장을 빠르게 넘겨 보면 남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솟아올라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사 민음사는 이번에 포어의 부인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한은경 옮김)도 함께 번역 출간했는데(*모처럼 성공적인 기획인 듯하다), 이 소설가 부부가 배우자에게 바친 헌사가 눈길을 끈다(*소설 안에 쓰지 않은 게 다행이다). 각자 상대방을 ‘내 아름다운 여신’과 ‘내 인생’이라 지칭하며 자신의 사랑을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듯한 형국이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6.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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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12-03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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