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영화의 거장(꼬장)' 혹은 '에로영화계의 왕가위'로 불리던 봉만대 감독의 (예기치 않은) 공포영화 <신데렐라>가 얼마전 개봉했다. 극장용 장편 데뷔작이었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 이은 두번째 영화인데, 에로영화 전문감독의 공포영화라는 점이 먼저 특이하고 (그의 전력에 견주어) '15세이상 관람가'라는 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사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비디오용 에로영화들에서 보여주던 '주변부적 정서'(그의 표현으론 '쓸쓸함' 혹은 '슬픔')를 빼먹은 채 '그림'으로만 승부하려고 했던 탓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그의 '공포영화'가 기대를 뛰어넘을 거 같지는 않다(그게 편견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면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언론의 리뷰들을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08. 16) 봉만대감독 공포영화 데뷔작 ‘신데렐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감칠맛나는 영상을 만들고, 케이블채널 OCN에서 독특한 감성의 <동상이몽>을 보여준 봉만대 감독.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서 벗어나 공포영화를 내놓았다. 봉 감독이 “쓸쓸한 영화”라고 설명한 ‘신데렐라’(제작 미니필름·17일 개봉)는 맹목적이고 어긋난 모성애를 다룬 공포물. 미리 귀띔하자면, 포스터와 예고편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섬뜩한 컨셉트 ‘성형수술’은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모성애를 드러내기 위한 강렬한 소재로 차용됐을 뿐이다.




-친구처럼 다정한 모녀인 성형외과 전문의 윤희(도지원)와 고등학생 딸 현수(신세경). 외모에 관심이 많은 현수의 친구들은 윤희를 찾아가 수술을 받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만, 곧 알 수 없는 환영에 시달리고 급기야 죽음으로 치닫는다. 이상한 일이 계속되자 현수는 윤희가 출입을 금지한 지하실로 찾아가고, 사진을 한 장 발견하면서 모녀 사이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특별한 반전없이 술술 전개된다. 최근 몇년간 한국 공포영화들이 보였던 ‘알고 보니 이런 거였어. 몰랐지?’식의 반전 강박증이 적어도 이 영화엔 없다. 덕분에 관객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피곤함은 덜었다. 하지만 지나친 친절은 드라마의 재미를 누리려는 관객에겐 ‘독’이다. 매사를 또박또박 설명해주려는 영화는 시종 요철없이 밋밋한 느낌으로만 일관한다. 모처럼 스크린 나들이한 도지원의 연기와 신세경의 성숙미가 돋보이지만, 그것만으로 공포영화의 재미를 보전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시청각의 지나친 자극을 부담스러워한다면 이 영화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초반 스크린에 피가 흥건하긴 하지만, 잔혹한 수준은 아니다. 소름돋는 쇳소리 음향효과, 괴상하게 몸을 꺾으며 일어서는 귀신의 모양새 등 공포영화의 유행코드에 연연해 하지 않은 대목에서 차별점을 찍는다.
-그러나 봉 감독에게 기대했던 세련된 연출장면을 찾지 못해 끝내 안타깝다.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들락거리는 장면에서나 그의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엄마 잃은 쓸쓸한 아이, 죄책감에서 아이를 살리려 희생하는 모성 등의 주요설정이 일본 공포 <검은 물 밑에서>와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한다.15세 이상 관람가.(최여경 기자)

한겨레(06. 08. 16) “난 에로의 꼬장…이번엔 슬픈 공포”
-“신음 소리만 낸다고 에로 영화가 아니듯 비명 소리만 지른다고 공포 영화는 아니다.” 성인 비디오 영화계를 주름잡다 극장용 성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과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용 에이치디(HD) 영화 <동상이몽>을 선보인 뒤 농담 반 진담 반 ‘에로 영화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봉만대(36·사진) 감독이, 이번에는 공포 영화 <신데렐라>를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신데렐라>는 성형수술과 극단적인 모성애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였음에도 애써 자극적인 비주얼과 효과음을 피해간 흔적이 역력하다. 에로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뿅점’(결정적으로 야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지 않았던 그의 취향과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듯도 하다.
-봉 감독은 <신데렐라>를 ‘봉만대식 공포 영화’라고 정의했다. “나는 에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에로보다 멜로를 중시했는데, 공포 영화에서도 공포보다 멜로쪽에 무게를 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공포 대신 슬픔을 느끼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이 ‘슬픔’을 유난히 강조하는 탓에, <신데렐라>의 주요 축을 이루는 것도 ‘성형이 불러온 참사’보다 ‘성형외과 의사인 엄마(도지원)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깊은 슬픔’이다. 공포 영화를 만들어 놓고 공포보다 슬픔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생뚱맞기도 하지만, 이는 봉 감독 나름의 공포에 대한 정의가 반영된 결과다. 봉 감독은 “귀신이 무서운 건 머리카락이 길어서도, 피를 흘려서도 아니다. 슬픔을 간직하고 죽어서 한을 품은 게 무서운 거고, 그 한을 풀 때 공포스러운 거다. 슬픔을 뺀 공포는 ‘처키’이고, <신데렐라>는 처키 식 공포 영화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시사회 뒤엔 ‘덜 공포스러움’을 아쉬워하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봉 감독은 “내가 그 정도 (비판에) 상처받을 사람이 아니다(웃음)”라며 단호했다. “사실 난 ‘에로 영화의 거장’보다 ‘에로 영화의 꼬장’이라는 별명으로 훨씬 더 유명했다. 공포 영화를 만들면서도 남들이 다 하는 뻔한 방식으로 무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잔혹한 비주얼을 되도록 피해 가고, 세지 않은 효과음으로도 공포감을 줬다는 점 등 새롭다고 평가해 줄 부분도 많지 않은가.”
-<신데렐라>는 17일 전국 200여개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에로 비디오에서 에로 영화로, 다시 공포 영화로 보폭을 넓혀온 봉 감독이기에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하지만 그는 “나는 비디오 찍을 때도 한 작품 끝낸 뒤 바로 다음 작품을 찍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생길 때 다시 영화를 찍을 예정이고, 에로가 될지 공포가 될지, 다른 어떤 장르가 될지 나도 모른다”며 끝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세계일보(06. 08. 17) 봉만대감독 "공포도 에로와 다를게 없죠"
-에로 영화로 연출에 입문했지만 개봉을 앞둔 것은 공포 영화다. 만나보니 사람은 영화 장르로 치자면 코미디다. 종잡을 수 없고 도대체 정리가 안 된다. 신작 <신데렐라>(오늘 개봉)로 돌아온 봉만대(36) 감독은 여러 이미지가 상충하고 조합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가 한데 뭉쳐 묘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궁금증이 커졌다.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감독 봉만대가 변방에서 주류를 향한 길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상충하는 이미지의 기묘한 조합
-이름과 실물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이 첫 번째다. 봉 감독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봉만대(奉萬大)라는 이름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한자로 된 쉬운 이름이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스타일이 아주 촌스럽거나 늙수그레한 아저씨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만나 본 그는 배우 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호남형이었다. “배우 한번 해보지 그랬느냐?”라는 질문에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그만뒀다”라고 농담한다. 전라도 출신인 그는 대사에서 ‘나의 생각은’을 자꾸 ‘나으 생각은’으로 발음해서 연기를 접었다는 사연이다.
-두 번째 인식의 전복은 그의 사생활이다. 느끼하거나 바람둥이일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보기 좋게 깨졌다. 6년간 같이 살다 결혼한 부인과 크랭크인 직전에 태어난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아닌가. 봉 감독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부인을 만난 후에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단다. 홀어머니와의 관계도 돈독하다. 게다가 종교까지 있단다. 상상 초월이다. 봉 감독은 고교 시절 연극학원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며 비용을 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30살에 감독 못하면 그만두기로 약속했다. 35세까지는 돈 잘 버는 상업감독이 되겠다고 손가락을 걸었다. 아마 봉 감독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데는 어머니라는 굳건한 중력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
-봉 감독은 자신을 ‘선인장’에 비유했다. 다른 식물과는 달리 물이 풍족한 안락한 상황에선 죽어버리는(*그래서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극장용 영화보다 저예산 비디오 영화들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 여기서 '영화 대 비디오'는 사회적 계급을 반영한다. 그는 주류영화를 찍을수록 자신의 세계에서 멀어질 것이다). 에로 영화를 15편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HD로 찍은 케이블 TV용 연작 영화 <동상이몽>, 이번엔 공포 영화 <신데렐라>로 변신했다. 광고계에서 촬영 부분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혼자만의 의지로 물길을 거슬러가며 경력을 쌓아왔다는 얘기다.

-봉 감독은 배우 김서형이 자신의 출연작 <어느 날 갑자기> 시사회에 초대했지만 공포 영화가 싫어 보러 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공포 영화를 연출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것은 순전히 시나리오의 서사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에로도 좋아서 했듯이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포도 에로와 다를 게 없다. 그는 “에로 영화도 보는 사람이 집중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드냐”면서 “공포 영화도 설득력 있게 오싹하게 만드는 과정과 심리적 템포 조절에서 에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익숙한 공포 영화의 공식에서 하나만 바꿔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신데렐라’는 여학생들의 예뻐지고자 하는 욕구, 성형수술, 모녀 관계 속에서 “왜, 누군가 죽는가”에 관한 담백하지만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40세에는 세계로 나가는 작품을 연출하고 45세에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봉만대 감독. 그가 변방에서 주류로, 주류 중에서도 중심으로 향하는 여정에 신작 <신데렐라>는 추진력을 배가해줄 것 같다.(신혜선 기자)
06. 0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