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를 사고할 때 확인해 두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 근대적, 도시적 사고방식으로서 개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원시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부족들로 다가갈수록 이 개인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몇 배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누이트, 부시맨, 인도네시아나 나이지리아의 농부는가 사용하는 연장만 지니고 있다면 홀로 남겨져도 상당한 시간 동안 생존할 수가 있다. 그들은 경작지나 사냥감과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기에 스스로의 삶을 최소한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몇 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공동체들은 심지어 무한히 오랫동안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들 압도적인 다수는 한번도 곡식을 재배해본 적도, 사냥을 해본 적도, 가축을 키워본 적도, 밀가루를 빻아본 적도 없으며, 아마도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본 적조차 없을 것이다.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든가 자기 집을 짓는다든가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절망적일 만큼 훈련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자기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가 조금만 고장이 나도 우리들 공동체 내에서 자동차 수리나 수도관 수리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불러야 하는 판이다. 실로 이해하기 힘든 역설이지만, 아마도 어떤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그 평균적 거주자들이 남의 도움 없이 홀로 생존하는 능력은 확실하게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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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열화당). 바르트의 마지막 책이면서 사진에 관한 유일한 저서이기도 하다. 한국어판은 두 종이 더 나왔고 지금은 <밝은 방>(동문선)만 남았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론만 다룬 책이 얼마 전에 나왔다(벌써 두달이 더 되었군). 낸시 쇼크로스의 <롤랑 바르트의 사진>(글항아리). 존 버거의 책들과 함께 묵혀 두고 있는 책인데 문득 눈에 띄기에 적는다.

˝바르트는 사진을 혐오했지만 점차 매혹되었고, 종내에는 모든 환원적 체계에 저항하며 사진을 통해 ‘의미가 면제된 유토피아’를 본다. 이 책은 정통한 문학 비평의 방식으로 바르트의 사유의 변화를 짚어낸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영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인 저자 낸시 쇼크로스는 바르트의 텍스트를 풍부하게 인용해 바르트의 문학적 연대기와 사진론을 새로 구축한다.˝

애초에 원서도 같이 구하려 했지만 너무 비싸서 새로 나온 바르트 평전만 구입했었다. 이 또한 두달 전 일이다. 그러고서 잊어버리다니. 아무튼 바르트와 존 버거의 책을 읽을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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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 체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방식이 고독의 폭증 원인이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국가는 사회관계 체제가 지닌 통합력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이 체제에 계속해서 직접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사회관계 체제인 커플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켰다. 고독은 이 개입으로 생긴 결과라기보다는 이개입이 이루어진 방식으로 생긴 결과다. 국가는 관계를 늘리고 강화하는 대신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놓으려 했다. 개인을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로써 개인을 구원해주는 제삼자인 동시에, 사회관계를 해치거나 분열시키는 매개자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강화된 어머니-자녀 관계를 제외한 다른 모든 관계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더 위험한 일이라는 듯 말이다.
 요컨대 고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인간관계를 담당하던 사회 기관을 희생시키고 국가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국가는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위대한 존재이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온갖 억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해주는 존재로 나선다. 개인을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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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의 사회학 버전 같다...

시카고대학교의 한 연구 집단은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미국인의 40퍼센트)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빨리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독은 건강 면에서 담배만큼 중대하고 비만보다 더 심각한 위험인 것이다. 고독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관절염이나 당뇨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염증을 일으킨다. 고독은 숨은 쉬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우울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프랑스인의 비율은 21퍼센트로, 미국(19.2퍼센트)을 앞서며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고독은 자살률과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인 10만 명 중 14.7명이 자살한다(유럽 평균은 10만 명 중10.2명이다). 한편 고독은 자살하고 싶은 욕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에서 매년 22만 명이 자살을 기도한다. 더욱이 ‘지연된 자살‘의 두 형태, 즉 테러와 대량 살상 행위 -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보이는 행위 -까지 고려하면, 이미 어둡기 그지없는 상황은 더욱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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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책장에서 <사랑하면 죽는다>(세계사)를 발견하고서야 몇달 전에 중고로 구입한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는 소설가이면서(<사랑하면 죽는다>가 소설이기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연구소장이다(<커플의 종말>에 실린 프로필). 연구소장의 책이라고 하기엔 분량이 얇지만 커플과 결혼제도에 관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한다고.

저자가 가장 먼저 검토하는 건 결혼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설로 <크로이체르 소나타>(<크로이처 소나타>)에 근거를 둔 것이다. 안 그래도 지난주와 다음주에 계속해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강의가 있고, 강의에서는 자연스레 그의 결혼관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아쿱의 정리한 톨스토이의 가설은 (1)결혼은 섹스를 사랑으로 바꾸는 장치다(<안나 카레니나>), (2)결혼은 섹스를 파괴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다(<크로이처 소나타>), 이다. 이 두 가설을 검토하고 그에 응답하면서 커플의 미래 혹은 대안적 커플을 제시하려는 것이 저자의 구상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커플에 관한 사회학적·역사적 분석, 나폴레옹 시대 이후 유럽에서 연애결혼의 유행, 톨스토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결혼 제도와 연애의 의미, 빌헬름 라이히와 샤를 푸리에가 제시한 이상적 커플 모델 등이 담긴 이 책을 통해 풍부한 지적 자극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강의와 관련해서도 필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 책이 한둘이랴...

PS. 참고로 다음주 금요일(20일) <안나 카레니나> 강의는 강릉의 말글터서점에서 진행한다...

PS1. <커플의 종말>에 나오는 한 문장.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제국의 고관 알렉시스 카레니나의 아내다.˝(34쪽) 카레닌의 아내여서 ‘카레니나‘가 된 것인데(여성형으로 변화시키지 않고 ‘안나 카레닌‘으로 옮긴 경우는 있다), 남편 카레닌을 ‘카레니나‘로 부르다니! 졸지에 이 부부는 동성커플이 되었다! 이 정도 작품은 제발 읽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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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9-15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매의눈처럼 ‘카레니나’를 발견하셨군요^^

로쟈 2019-09-15 11:34   좋아요 0 | URL
참신한 오역(오타)이에요.~

2019-09-15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맘 2019-09-1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참신한 오타? 오역일듯.
아무리 생각해도 웃깁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