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TV에서 잠깐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린 두 자녀를 버리고 가출했던 어머니가 17년만에 용서를 구하며 (아들은 군대에 가 있다고 하고) 딸과 재회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그런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안사람이 묻기에(자신은 용서할 수 없을 거라며) 그래도 가족인데 다 용서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얼버무렸다. 우연히 둘러본 뉴스사이트에서 프랑스의 '익명 출산제' 유지 논란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익명 출산', 소위 'X출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프랑스와 룩셈부르크가 유일하다고 한다(여하튼 세계는 넓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출산"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얼핏 선진적인/진보적인 사회의식의 산물로도 보이지만 프랑스의 경우 신생아를 내다버리는 '역사적 전통'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하니 그저 어두운 폐습을 양성화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출산'은 어려운 문제이다... 

오마이뉴스(07. 06. 23) 낳자마자 버리는 X출산, 필요악인가?

프랑스에는 'X출산'이란 제도가 있다. 산모가 병원에서 출산할 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태어나는 아이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곧바로 다른 집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주로 남자에게 버림받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게 돼 혼자서 아이를 양육할 형편이 안 되거나 아니면 혼외 출산을 하는 경우다. X출산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산부인과에서 X출산에 동의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면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병원(결국 국가)에서 부담하게끔 돼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X출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두 나라뿐이다.

사실 프랑스에는 신생아를 버리는 역사적 전통이 깊이 남아있다. 17세기에 이미 수도원에 마련된 탑에 신생아를 집어넣고 그 옆에 설치돼 있던 종을 울리면, 수도원에서 사람이 나와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성행하던 신생아 살해나 임신중절처럼 신생아를 위험에 노출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자연주의 작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장 자크 루소도 자기 아이 5명을 이런 기관에 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 이 수치스런 탑은 1904년까지 계속 이용되다가, 같은 해 6월 '열린 사무실'로 대체된다. 산모가 신생아를 익명으로 버릴 수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탑 대신에 사무실에 버리는 점만 달라졌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비시정부는 1941년 9월 출생 비밀에 관한 법령을 마련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독일군에게 강간당한 많은 프랑스 여성이 X출산을 이용하게 된다. X출산 법령은 몇 차례 수정을 거친 후 1993년 민법에 편입된다.

X출산은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시작됐지만, 결국 모든 이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X출산으로 태어난 사람이 40만명에 이르고 있고 한 해에 평균 400건의 X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젊은 한때 책임지지 못한 행동을 한 산모는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았다는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요 당사자 외에도 아이의 생부, 그리고 생모가 새로 꾸린 가정의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까지 합하면 약 200만명의 프랑스인이 X출산이란 시스템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태다.

X출산을 한 산모는 보통 태어난 아이를 보지 못하게끔 돼있다. 태어난 아이는 즉시로 산모에게서 떨어져 며칠 동안 병원 측 보호를 받다가 이런 아이들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옮겨진다. 신생아들은 2개월 동안 이 곳에 머무는데, 산모가 만약 이 기간 동안 마음을 바꿀 경우 아이를 찾아갈 수 있다. X출산을 하는 산모는 주로 나이가 어리고 첫 출산인 경우가 많은데, 아무런 경험도 없는 이들은 처음 겪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아이와 생이별하게 된다. 그나마 조금 이성을 차린 산모라면 아이의 이름을 정하고 부모의 간단한 이력과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은 글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 신상정보는 봉투에 넣어져 굳게 봉해지며, 아이가 성년이 된 후 찾아와 친부모의 신상을 물을 경우에만 개봉된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자기 신상에 대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산모는 아이를 찾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X출산을 한 산모에겐 어떤 경우든 나중에라도 자기 아이를 찾을 권리가 없다. 유일하게 산모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나중에 아이가 자기를 찾을 때 자기 신분을 밝힐 권리와 만남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생모와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이가 성년이 돼서 생모를 찾고 그 생모가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만약 생모의 인적사항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면 생모 찾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돼 생모를 찾아나서는 것은 프랑스 텔레비전 단막극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다. 병원에서 조산원으로 일했던 한 여인이 병원 몰래 X출산을 한 산모와 아이의 사진을 수첩 하나로 묶어 보관하는 단막극을 본 기억이 난다. 드라마에서 나중에 생모를 찾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생모의 당시 주소를 가르쳐주며 인생의 보람을 찾던 노인네. 나중에 자식을 찾게 된 생모도 이 산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젊었을 때 생각이 짧아 아이를 버리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후 회환의 일생을 살다가 자기를 찾아온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를 나누는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들어간 신생아는 양부모가 나중에 비밀을 밝히는 경우 심각한 정체성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더욱이 주로 사춘기 시절에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에게 엄청난 충격이 동반되는 게 다반사다. "버림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3세대가 필요하다"는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랑소와즈 돌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들이 느낄 수치와 고통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지속적이고도 간곡한 요청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1996년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생모의 신상 찾기를 허용했다. 이후 CADCO(자기 출신 성분을 알 수 있는 권리를 위한 행동사무소)의 출현으로 이 일은 더욱 활성화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0년 12월 가족장관보이던 세골렌 루아얄(지난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은 X출산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안은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내놓지는 못했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만으로도 하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2년 후인 2002년 루아얄은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친부모의 신상을 찾는 데 도움이 되도록 'Cnaop(개인신상 정보를 구하기 위한 국가위원회)'를 창설해 이들에게 돌다리 하나를 마련해준다. 성인이 된 아이가 직접 모친에게 연락할 경우 감정적·심리적 문제가 여러 가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관이 그 중간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자는 취지였다.

올해 2월 20일자 <르 파리지앵> 신문은 Cnaop에 부모를 찾는 요구가 2453건 들어온 상태고 그 중 1388건의 서류가 처리됐다고 보도했다. 처리된 서류 중 60%가 미해결 상태로 낙착되었는데 이유는 친부모의 행방 찾기가 불가능해서(45%), 부모가 자식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서(15%) 등이다. 부모 찾기에 성공한 40% 중 12%는 부모를 찾긴 했지만 이미 사망한 경우였다.

X출산은 주로 정신적·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산모가 혼자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아이의 아버지가, 성인이 된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뒤늦게 찾아오는 일을 겪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부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X출산 폐지를 요구해왔다. 이들은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산모 혼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남자의 동의를 거치게끔 해야 한다며 수정안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의 출생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위협받는 부권의 신장을 요구하는 셈이다. 어떤 단체는 X출산을 유지하되 아이가 성년이 되면 생모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수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X출산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폐지안과 개선안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도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X출산이 필요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첫 번째 집단은 교회다. 임신중절을 살인으로 여기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신부들은 어떤 조건에서건 출산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집단은 양자알선기관이다. 프랑스는 최근 출산율 부분에서 아일랜드와 유럽 1위를 다투고 있지만 양자 수요는 여전히 많다. 양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주로 외국의 도움을 받는데, 여기에는 외국에서 데려오는 아이의 몸값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장기간을 기다려야 하는(보통 몇 년 걸린다) 불편함이 있다. 이런 면에서 X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를 프랑스 가정에 손쉽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양자알선기관은 X출산제 폐지를 반대한다.

또 한 그룹은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은 X출산을 임신중절 권리처럼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권리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임신 12주 이전까지는 중절수술이 가능한데, 이 시기를 넘겨 임신중절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경우 산모가 선택하는 방법이 X출산이다.

X출산은 부유층부터 가난한 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계층에서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자식이 성인이 돼서 친부모(주로 생모)를 찾을 때, 양쪽이 만날 확률은 생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낮다. 생모가 낮은 사회계층에 속할 경우 자식을 만날 것을 쉽게 수락하는 반면, 생모가 높은 사회계층에 속할수록 자식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부끄럽고 힘든 과거가 현재 영유하는 쾌적한 생활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다. 특히 새로 만나 함께 사는 남편의 직위가 높을수록 친자식을 보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지난 2월 10일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X출산을 폐지하라는 시위가 열렸다. 주로 X출산으로 출생한 아이들과 생모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광장에 누워 몸으로 X자를 고통스럽게 재현하기도 했다. <르 파리지앵>은 이 시위에 참가한 파니(49)라는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자신을 '자격 없는' 엄마로 지칭하는 파니는 26년 전 X출산으로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알제리 출신인 파니가 당시 아이를 임신하자, 아이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도망쳐버렸다. 당시 파니가 엄격한 부모에게 자신의 임신을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파니는 조국 알제리를 떠나 혼자 마르세이유로 향했다. 가족 중 파니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파니는 마르세이유에 있는 엄마 친구 집에서 만삭을 맞고 병원에 가서 X출산을 한다. 당시 파니는 이 방법만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다. 이 한 순간의 결정 때문에 자신의 삶이 회환으로 점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파니는 아들이 18세 성년이 되는 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자기 신분과 주소를 적은 종이를 아이를 버렸던 기관에 맡기면서 만약 아들이 생모인 자신을 찾으러 오면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아들이 반드시 자기를 찾으러 오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파니는 이 가냘픈 희망에라도 기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니는 마르세이유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아들이 자기에게 첫 번째로 물어본 것은 다른 형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왜 자기를 버렸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후 파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전화 접촉 후 파니와 아들은 양부모의 허락 아래 상봉했고, 파니는 양부모 밑에서 잘 자라난 아들을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양부모의 이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니는 이후 아들과 함께 X출산 폐지 운동에 가담했다. 젊은 세대들이 자기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회환으로 가슴을 치며 평생을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이다.(한경미 기자) 

07. 06.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풍경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한 모듬


2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풍경의 탄생- 한국시의 이미지 계보학을 위해
장석주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5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7년 07월 09일에 저장
절판
역전 풍경
김기찬 지음 / 눈빛 / 2002년 10월
20,000원 → 19,000원(5%할인) / 마일리지 570원(3% 적립)
2007년 07월 09일에 저장
구판절판
상실의 풍경
조정래 지음 / 해냄 / 1999년 4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2007년 07월 09일에 저장
구판절판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 / 말들의 풍경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07년 07월 09일에 저장
품절


2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 단신으로만 뜬 출판기사들 중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숨겨져 있었다. 독일 사회학의 거장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의 <사회체계이론>(한길사, 2007)이 드디어 번역돼 나온 것. 하지만 이 책을 담당했던 출판사 편집자의 감회(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6221338000067) 외에는 마땅히 참조할 만한 리뷰가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본격적인 리뷰들은 다음주에 나오는 것인가?).   

대신에 참고할 만한 것은 작년봄 교수신문에 '니클라스 루만의 전성시대'란 특파원 보고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860407).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는 그 기사의 말미에는 "하지만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루만의 주저로 꼽히는 <사회체계>(1984)가 박여성 제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이 루만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바로 그 책이 이번에 나온 <사회체계이론>이란 타이틀로 나온 것이다. 작년에 나온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에 이어서 이번에 루만의 주저까지 번역/소개됨으로써 비로소 이 두 거장의 이론적 대결, 가령 표도르 대 크로캅 식의 '빅매치'가 한국에서도 성사된 셈.

잠시 알라딘의 소개를 옮기면 "빌레펠트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니콜라스 루만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의 이론>과 더불어 과학을 구성하는 가정 자체의 메커니즘의 공통분모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룬 책으로 꼽힌다."

'과학을 구성하는 가정 자체의 메커니즘의 공통분모인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루만의 책을 하버마스의 책과 겹쳐 읽을 필요성은 감지할 수 있다. '루만이냐 하버마스냐'란 제목을 달았지만 사회를 보는 시각 자체는 체계이론과 비판이론으로 양분될 수 있고 두 사람은 각각의 이론적 포지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이것은 문학이론에서 '로트만이냐 바흐친이냐'로 변주될 수 있다).  

"루만은 이 책에서 일상언어를 사용해 종래 사회학에서 거의 성공하지 못했던 개념적 복합성과 상호의존관계를 서술한다. 그가 구상하는 이론적 단위는 한편으로는 사회학적 전통을 회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버네틱스, 생물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및 진화론에서 얻어진 업적들에 연계하여 수많은 개념적 결정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버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국내에 덜 소개되거나, 후기의 담론들이 주로 소개되어있던 차에, 그의 이론의 핵심을 담은 이 책의 출간은 루만의 사상에 대한 연구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줌과 동시에 사회학이라는 연장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이 사회를 볼 것인가 고민하는데 그 폭을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Social Systems (Writing Science) Covercover for Art as a Social SystemReality of the Mass Media (UK Edition) Cover

<사회체계이론>의 독어본은 1984년에 출간됐으며 영어본은 1995년에 스탠포드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됐다. 아마도 그맘때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영풍문고의 양서부에서 두툼한 하드커버의 영역본을 손에 들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다(당시 가격으로 5만원쯤 했었나?). 이후에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사회적 체계로서의 예술>(영역본 2000) 등을 구했다. 이제 비로소 이론의 지류가 아닌 본류와 대면할 수 있게 되어 반갑긴 한데 그런 만큼 여러 모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 책들을 다 언제 읽을 것이냐!..

07. 06. 23.

 

 

 

 

P.S. 루만의 책들은 앞으로 더 번역되어야 할 책들이 많은데, 이미 소개된 책으로는 <생태학적 커뮤니케이션>(유영사, 1996)를 필두로 하여 <복지국가의 정치이론>(일신사, 2001), <현대사회는 생태학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가>(백의, 2002, <생태학적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책으로 보인다), <대중매체의 현실>(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등이 있다. 루만 사회학에 대한 해제로는 발터 리제 쉐퍼의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사상>(백의, 2002)과 국내 필자들이 쓴 <사회학의 명저20>(새길, 2001)을 참조할 수 있다. 기타 아래의 책들에서도 루만과 그의 사상에 대한 해설을 읽어볼 수 있다. 특히 김덕영의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한울, 2003)에는 루만과 하버마스의 논쟁이 소개돼 있다.

 

 

 

 

P.S.2. 한편 러시아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니클라스 루만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데, 아직 <사회체계이론>은 번역되지 않았고 대신에 <권력>, <진화>, <사회체계로서의 사회>, <대중매체의 현실> 등의 타이틀이 출간돼 있다(<대중매체의 현실>은 작년에 국역본이 나왔다). 그 중 <권력>, <사회체계로서의 사회>, <대중매체의 현실> 세 권의 이미지는 차례대로 아래와 같으며(영역본의 이미지들이 시원찮아서 러시아어본의 이미지들이라도 띄워놓는다) 나는 앞의 두 권을 갖고 있다.

Власть

Общество как социальная система

Реальность массмеди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7-06-23 11:23   좋아요 0 | URL
루만은 또 처음 들어보는데요. 로쟈님 덕에 생소한 이름을 많이 접합니다. :)

로쟈 2007-06-23 11:42   좋아요 0 | URL
루만은 생소한 이름이 아닌데요.^^ 후기 저작 몇 권도 소개돼 있고...

마늘빵 2007-06-24 00:46   좋아요 0 | URL
아 제가 거기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했나봅니다.
하버마스도 사실 이름만 많이 들었고, 그의 주저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뿐, 무슨 말을 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

yoonta 2007-06-23 17:13   좋아요 0 | URL
드디어 루만의 주저가 번역되었군요. 반가운 일이긴 한데 역자가 박여성씨라.. 흠.

로쟈 2007-06-23 18:56   좋아요 0 | URL
구성주의쪽 전공인지라 역자로서는 학문적 생애가 걸린 번역이 아닐까 싶네요. 명예회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고...

드팀전 2007-06-24 12:10   좋아요 0 | URL
대학다닐때 소개하신 <사회학의 명저>를 보고 루만을 처음 알게되었는데..^^
하버마스는 저희 교수님들이 워낙 좋아라들 하셔서...맨날 들었지만 '소통의 장' 이야기만 하셔서.어쨋거나 이름으로는 친숙한 그의 대표작인 <의사소통행위이론>도 작년에야 국내 번역되었다니까 의외네요...유명했다는 <루만.하버마스 논쟁>을 <효도르 대 크로캅 대결>이라고 하니까 확 와닿습니다. 내용은 깊이 모르지만 말이죠.

로쟈 2007-06-24 12:46   좋아요 0 | URL
'고전' 번역이 더디 되는 건 우리 학계/출판계의 관행이니까요. 사실 요즘 강조/강요되는 것처럼 영어강의가 보편화되면 '번역' 자체가 불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이번주 한겨레 북리뷰에서 영국의 지성사가 퀜틴 스키너(1940- )의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푸른역사, 2007)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번역본이 저자명까지 집어넣어 제목을 만든 것은 다분히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 2006)을 의식해서일 텐데, 책 자체가 그러한 의식하에 씌어졌다고 한다. 스키너에 대해서는 연초에 출간된 <탐史>(푸른역사, 2007)에 유익한 대담이 실려 있으므로 미리 참조해보는 것도 좋겠다(http://blog.aladin.co.kr/mramor/1052446).

  

한겨레(07. 06. 23) '새장 속 자유’ 넘어 진짜 자유 꿈꾸다

1987년 민주화 이전에도 사람들은 잘 살았다. 밥 먹고 돈 벌고 놀고 여행하는 데 큰 불편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 이른바 ‘친북 좌파’가 나라를 망쳐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3공, 5공 시대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게 ‘자유’였을까? 그 시절 경찰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더욱이 감방 같은 곳은 선량한 사람들과는 무관한 범죄자의 세계로만 여긴 사람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한눈팔지 않고 산 사람들은 그때 자유로웠을까?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가치의 선전원’이었던 아이제이아 벌린(1909~1997)의 관점에 서면 그들은 자유인이었다. 벌린은 타인 또는 외부의 간섭, 강제,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을 자유라 규정했다. ‘소극적 자유’다. 그것은 권리청원, 찰스1세의 처형,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진 17세기 영국혁명을 거부했던 토머스 홉스와 18세기 미국혁명을 부정했던 제러미 벤담이 일찍이 역설했던 자유론과 일치한다. 왕당파와 절대주의 지지자들의 자유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선한 왕이 지배했던 고대왕국의 신민이 21세기 민주국가 시민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을 수 있다.

벌린이 1958년 옥스퍼드대 사회정치이론 강좌교수 취임강연에서 그런 자유론을 설파한 지 40년이 지난 1998년 케임브리지대학 근대사 왕립석좌교수가 된 퀜틴 스키너는 취임강연에서 벌린의 자유론에 도전했다. 그가 지지하는 17세기 영국혁명 때의 공화정 의회파 저술가들은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선 “부당한 간섭 없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에 대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유인이 아니어도 특정한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예컨대 옛 로마나 미국 노예들도 드물지만 좋은 주인 만나면 즐거운 놀이와 휴식, 맛난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주인의 기분이나 생각이 바뀌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지 몰랐다. 그들이 누린 자유가 이처럼 전적으로 타인의 자의적 의지, 선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한들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다. 따라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적극적 자유’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도, 복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마음대로 만날 수도,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도 없었으며,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뱉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던 빅 브러더의 세계, ‘유신’ 독재 이후 군사정권에 고개 쳐들지 않은 대가로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였을까. 스키너에 따르면 왕이나 빅 브러더는 그들이 신민을 구속하든 말든 그 존재 자체가 자유를 자유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 정치적, 절차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됐다는 지금 사람들은 자유로울까? 벌린이나 홉스의 자유론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실을 나올 수 없는 것은 자유를 누릴 힘이 없어서지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시대에 극빈자나 사회적 낙오자, 소수자에게도 얼마든지 자유는 있다. 다만 그걸 누릴 힘이 없을 뿐이다. 정말 그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무한경쟁의 우승열패식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강자는 권력을 독점하고 약자는 가속적으로 더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처지에서 평등한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선 소수 강자, 상위 20%만이 자유롭다.

18세기 공리주의 등장 이후 ‘적극적 자유’론은 쇠퇴했고 자유가 아니라 국가보호 아래 안전과 행복 추구가 최선이라던 왕당파 홉스와 벤담의 소극적 자유론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 때문에 “자유에 대한 좀더 넓고 좀더 깊이 있고 무엇보다도 좀더 민주주의적인 생각이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게 스키너의 생각이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푸른역사 펴냄)는 바로 이 ‘시야에서 사라진’ 적극적 자유론, 공화주의적 또는 신로마적, 민주주의적 자유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좌파이념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간섭의 부재라는 의미의 개인의 사적 자유를 옹호”한 벌린의 자유론,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정전’이자 ‘무기’가 됐던 그 자유론을 넘어서서, 공화주의와 시민적 자유론마저 불온시했던 이 땅에선 친숙하지 않은 스피노자, 루소, 헤겔, 마르크스, 자코뱅, 좌파들의 자유론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영국 역사상 자유론을 둘러싸고 가장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17세기 영국혁명 당시, 홉스와 벤담의 자유주의가 판치기 ‘이전의 자유’다.(한승동 선임기자) 

07. 06. 23.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자유란 아직 쟁취가 아니라 정의의 대상!
    from 쏠다의 펠트 2007-06-23 13:16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 보다도 저는 이렇게 말하고싶군요: 권리없는 자유는 부당하고 역량없는 자유는...

주말에 해야 할일은 미리 해치우기로 한다. '작가와 문학사이' 연재 23번째는 젊은 작가 한유주 편이다. 씨네21의 기사와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7. 06. 23) [작가와 문학사이](23)한유주-읊조리다, 태초의 시간을 향해

‘달로’. 한유주의 첫 소설집 제목이자 등단작 제목이기도 한 이 낯선 어휘는 한씨의 독특한 소설작법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달로, 달로, 먼 옛날이야기로, 어느 왕들의 무덤은 무수한 바위를 깎아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끝이 없는 미로와 바닥이 없는 함정이 있다는, ……그런, 비정한 고대의 시간처럼, 달의 뒷면에는 어느 바다가 있고, 그곳에 발을 담그기 위해서는 비정한 긴긴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서, ……, 그는 몸을 세워 일으켰고, 장대를 손에 쥐었다. (중략) 그의 장대는 몽상을 걷고, 백일몽을 걷고, 환영을 걷고, 기억나지 않는 꿈들과 희미한 이야기들을 걷고, ……, 허공을 한 아름 휘돌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달을 배경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이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느리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복문과 우리를 잠시 침묵과 어둠 속에 붙잡아두는 생략부호, 그리고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느껴지는 문장의 리듬감. 우리는 그저 이 문장들을 읊조리면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현실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어느덧 우리는 낯선 시간과 장소에 존재한다. 그곳은 “비정한 긴긴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야만 도달하는, 이 세계의 ‘뒤쪽’이자 ‘건너편’이다.

‘달로’는 바로 태초의 신화적 말씀의 세계를 향한 한씨 소설의 어떤 지향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지향적인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씨에게 ‘달로’ 가려는 의지란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시간, 모든 매혹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에 다름 아니다. ‘달’이 태초의 시간과 옛날이야기의 세계라면, ‘로’는 그곳으로 가고자하는 작가의 바람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한씨는 시간을 거슬러 ‘달로’ 가려고 하는 걸까. 왜냐하면 이 ‘세계의 사진첩’에는 슬픈 일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파울 첼란의 삶과 시를 쫓아가며 쓴 ‘죽음의 푸가’에서 묵시록적으로 기록된 현대사의 비극은 지금의 문명세계에 대한 작가의 환멸과 그 세계의 변화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독문학 전공자답게 독일의 과거와 현재를 두서없이 배회하는 과정을 기록한 ‘베를린·북극·꿈’에서도 이러한 문명 비판적 독백은 반복된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과 슬픔이 한씨에게 태초의 과거를 향해 움직이도록 부추긴다.

한씨 소설이 탐색담의 성격을 띠면서도 자폐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개 탐색담의 주인공은 세계를 향해 바깥으로 나아가는 반면, 한씨 소설의 화자들은 스스로를 “어두운 방 한구석” “좁다른 페이지들 안”(‘그리고 음악’)에 유폐시킨다. 그래서일까. 고통스러운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진술은 직설적이기보다는 우회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이다. 마치 통각(痛覺)을 상실한 자의 고통에 대한 진술과도 같다.

그러나 모든 고통에 대한 진술은 사실 간접적이고 매개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란 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세대에게 세계는 언제나 매개된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떠돌던 인간을 한 곳에 정착하게 하고 인간들이 가족과 사회를 이룰 수 있게 한 ‘뼈의 시대’는 지나갔다. “단단히 맞물려 있던 뼈들은 헐거워져서” 이제 “유령의 가벼운 몸, 없는 기억, 한없는 시간……(‘뼈’)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사랑하고 기억을 기억하는, 혹은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무서움을 무서워하는 유령이 된다. 그래서 마치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 비현실적으로 가늘고 긴 팔다리 때문에 무게감이 없는 듯한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이 유령들은 미디어를 통해서만 세계에 대해 경험하고 진술하는 한씨 소설에 특유한 어떤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심진경|문학평론가)

07. 06. 22.

P.S. 바흐친-모슨의 시학/산문학의 구도를 가져오자면 한유주의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로 분류되어 마땅하다('시적인 소설'이요 '산문시'이다).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시간, 모든 매혹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을 그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고통스러운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진술은 직설적이기보다는 우회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이다. 마치 통각(痛覺)을 상실한 자의 고통에 대한 진술과도 같"은 이유도 마찬가지겠다. 아름다운 모든 것이 굳이 소설일 필요는 없다...

씨네21(07. 06. 15) [신진 여성작가 3인] <달로>의 한유주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언어가 미끄러진다. 허공을 맴도는 단어들, 의미에 정박되지 않는 문장들, 응집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문단들. 한유주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불편하며, 종종 난독증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문장은 읽어내림과 동시에 기억에서 휘발되기 일쑤고, 문단과 문장, 단어를 거슬러 올라가 반복해 읽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달로>는 각각의 작품이 사실상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잠언에 가까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로, 달로, 세계는 현재를 그대로 간수하려는 오랜 습관이 있다.”(<달로>) “지구는 하나의 푸른 공이었다. 무료한 시간이면 신들은 지구를 굴리면서 공놀이를 했다.”(<죽음의 푸가>) 하나의 몸짓으로 수렴되지 않는 단어들의 윤무 속에서 그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은 행간을 떠돌며 이미지의 맥박을 느껴야 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을 하나 정도 짚어보자면 바로 자기분석이다. 예전부터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왜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생각하는지가 너무나 궁금했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쓰는 것이었다. 인과관계나 서사적인 요소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자연스레 지금의 글쓰기로 이어진 것 같다.”

그래서 한유주의 글에는 우리가 흔히 소설에 기대하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매끈한 서사의 흐름에 독자를 흡입하는 대신, 역으로 몰입 자체를 끊임없이 지연시킨다. 이인성의 평을 빌리자면, “체질적으로 이야기에서 자유로운” 한유주의 작법은 넘쳐나는 “가짜 이야기들”에 대한 반작용의 지점에 있다. 전파를 타고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수신되는 메시지들, “세계를 14인치 텔레비전 화면 하나로 축소”하는 폭력적인 이야기들. 삶을 간결하게 재단해 틀에 집어넣는 것을 그는 거부한다.

“적어도 내 삶은 기승전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것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거기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려고 하지 않나. TV에서 나오는 말들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뻔하면 쉽긴 하지만, 너무 설명을 하려 드니까.” 그래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을 채워 넣는 것은 온전히 읽는 자들의 몫이다. 예컨대 <달로>는 우주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기억과 역사, 신화를 경유한 상징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부유하는 이미지들은 각자가 가슴속에 지니고 있을 정서를 환기하고, 촉발한다.

“달은 정말 흔해 빠진 상징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딱 하나의 달을 두고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이 있고, 각자 부여한 의미가 있지 않나.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쓴 것인데, 독자들의 편지를 보니 그들도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느꼈더라. 각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고. 어쩌면 그게 나에게는 가장 기쁜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말줄임표 역시 그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빈 공간을 채워 넣을 목소리를 기다리는 것. 일방향처럼 보이던 독백은, 백지의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독자에게 수신받기보다는 끊임없이 발신할 것을 촉구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탐닉했다는 한유주이지만, 등단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문예창작론 수업을 듣던 중 기말과제로 소설을 완성하게 됐고, 친구의 권유로 문예지에 응모한 것이 바로 등단으로 이어졌다.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고 얼떨떨했다. 지금은 그래도 덜하지만,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작가라는 자의식도 거의 없었다. (웃음)” 새로운 화법을 제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지만, 스스로는 “남들이 새롭다,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그렇지 않다”고 털털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내가 10년 뒤에도 글을 쓰고 있을까”를 곰곰이 자문하는 타입이다. 의미의 굴레에 속박되지 않는 자신의 작품처럼,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보다는 글쓰기 자체가 주는 매혹에 더욱 관심이 많다.

“글을 쓰다보면 모든 생각들을 완전히 다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저 아, 내가 정말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찰나적으로 지나갈 때, 그게 너무나 좋다.” 대학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아마도 졸업 뒤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직장에 취직해 밥벌이와 글쓰기를 병행”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올 작정이고, 운이 좋다면 대륙의 공기 속에서 첫 장편이 탄생할 것이다. “대단한 걸 써야지, 하는 마음은 없다. 그냥 쓰는 것뿐이다. 10년쯤 뒤에 누군가가 한명이라도 내가 쓴 책을 읽어준다면, 그때까지 살아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joule 2007-06-23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