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단신으로만 뜬 출판기사들 중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숨겨져 있었다. 독일 사회학의 거장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의 <사회체계이론>(한길사, 2007)이 드디어 번역돼 나온 것. 하지만 이 책을 담당했던 출판사 편집자의 감회(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6221338000067) 외에는 마땅히 참조할 만한 리뷰가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본격적인 리뷰들은 다음주에 나오는 것인가?).   

대신에 참고할 만한 것은 작년봄 교수신문에 '니클라스 루만의 전성시대'란 특파원 보고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860407).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는 그 기사의 말미에는 "하지만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루만의 주저로 꼽히는 <사회체계>(1984)가 박여성 제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이 루만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바로 그 책이 이번에 나온 <사회체계이론>이란 타이틀로 나온 것이다. 작년에 나온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에 이어서 이번에 루만의 주저까지 번역/소개됨으로써 비로소 이 두 거장의 이론적 대결, 가령 표도르 대 크로캅 식의 '빅매치'가 한국에서도 성사된 셈.

잠시 알라딘의 소개를 옮기면 "빌레펠트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니콜라스 루만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의 이론>과 더불어 과학을 구성하는 가정 자체의 메커니즘의 공통분모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룬 책으로 꼽힌다."

'과학을 구성하는 가정 자체의 메커니즘의 공통분모인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루만의 책을 하버마스의 책과 겹쳐 읽을 필요성은 감지할 수 있다. '루만이냐 하버마스냐'란 제목을 달았지만 사회를 보는 시각 자체는 체계이론과 비판이론으로 양분될 수 있고 두 사람은 각각의 이론적 포지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이것은 문학이론에서 '로트만이냐 바흐친이냐'로 변주될 수 있다).  

"루만은 이 책에서 일상언어를 사용해 종래 사회학에서 거의 성공하지 못했던 개념적 복합성과 상호의존관계를 서술한다. 그가 구상하는 이론적 단위는 한편으로는 사회학적 전통을 회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버네틱스, 생물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및 진화론에서 얻어진 업적들에 연계하여 수많은 개념적 결정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버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국내에 덜 소개되거나, 후기의 담론들이 주로 소개되어있던 차에, 그의 이론의 핵심을 담은 이 책의 출간은 루만의 사상에 대한 연구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줌과 동시에 사회학이라는 연장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이 사회를 볼 것인가 고민하는데 그 폭을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Social Systems (Writing Science) Covercover for Art as a Social SystemReality of the Mass Media (UK Edition) Cover

<사회체계이론>의 독어본은 1984년에 출간됐으며 영어본은 1995년에 스탠포드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됐다. 아마도 그맘때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영풍문고의 양서부에서 두툼한 하드커버의 영역본을 손에 들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다(당시 가격으로 5만원쯤 했었나?). 이후에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사회적 체계로서의 예술>(영역본 2000) 등을 구했다. 이제 비로소 이론의 지류가 아닌 본류와 대면할 수 있게 되어 반갑긴 한데 그런 만큼 여러 모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 책들을 다 언제 읽을 것이냐!..

07. 06. 23.

 

 

 

 

P.S. 루만의 책들은 앞으로 더 번역되어야 할 책들이 많은데, 이미 소개된 책으로는 <생태학적 커뮤니케이션>(유영사, 1996)를 필두로 하여 <복지국가의 정치이론>(일신사, 2001), <현대사회는 생태학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가>(백의, 2002, <생태학적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책으로 보인다), <대중매체의 현실>(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등이 있다. 루만 사회학에 대한 해제로는 발터 리제 쉐퍼의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사상>(백의, 2002)과 국내 필자들이 쓴 <사회학의 명저20>(새길, 2001)을 참조할 수 있다. 기타 아래의 책들에서도 루만과 그의 사상에 대한 해설을 읽어볼 수 있다. 특히 김덕영의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한울, 2003)에는 루만과 하버마스의 논쟁이 소개돼 있다.

 

 

 

 

P.S.2. 한편 러시아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니클라스 루만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데, 아직 <사회체계이론>은 번역되지 않았고 대신에 <권력>, <진화>, <사회체계로서의 사회>, <대중매체의 현실> 등의 타이틀이 출간돼 있다(<대중매체의 현실>은 작년에 국역본이 나왔다). 그 중 <권력>, <사회체계로서의 사회>, <대중매체의 현실> 세 권의 이미지는 차례대로 아래와 같으며(영역본의 이미지들이 시원찮아서 러시아어본의 이미지들이라도 띄워놓는다) 나는 앞의 두 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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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23 11:23   좋아요 0 | URL
루만은 또 처음 들어보는데요. 로쟈님 덕에 생소한 이름을 많이 접합니다. :)

로쟈 2007-06-23 11:42   좋아요 0 | URL
루만은 생소한 이름이 아닌데요.^^ 후기 저작 몇 권도 소개돼 있고...

마늘빵 2007-06-24 00:46   좋아요 0 | URL
아 제가 거기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했나봅니다.
하버마스도 사실 이름만 많이 들었고, 그의 주저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뿐, 무슨 말을 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

yoonta 2007-06-23 17:13   좋아요 0 | URL
드디어 루만의 주저가 번역되었군요. 반가운 일이긴 한데 역자가 박여성씨라.. 흠.

로쟈 2007-06-23 18:56   좋아요 0 | URL
구성주의쪽 전공인지라 역자로서는 학문적 생애가 걸린 번역이 아닐까 싶네요. 명예회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고...

드팀전 2007-06-24 12:10   좋아요 0 | URL
대학다닐때 소개하신 <사회학의 명저>를 보고 루만을 처음 알게되었는데..^^
하버마스는 저희 교수님들이 워낙 좋아라들 하셔서...맨날 들었지만 '소통의 장' 이야기만 하셔서.어쨋거나 이름으로는 친숙한 그의 대표작인 <의사소통행위이론>도 작년에야 국내 번역되었다니까 의외네요...유명했다는 <루만.하버마스 논쟁>을 <효도르 대 크로캅 대결>이라고 하니까 확 와닿습니다. 내용은 깊이 모르지만 말이죠.

로쟈 2007-06-24 12:46   좋아요 0 | URL
'고전' 번역이 더디 되는 건 우리 학계/출판계의 관행이니까요. 사실 요즘 강조/강요되는 것처럼 영어강의가 보편화되면 '번역' 자체가 불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