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습성이 있다. 필요에 얽매이지 않은 경우에 그런데, 간혹 그런 필요에도 불구하고 만용을 부릴 때도 있다. 차가워진 날씨 때문에 외출을 자제한 어제오늘이 그렇다. 프로프의 <민담형태론>의 서문과 <라캉과 정치>의 서문, 그리고 <스피박 넘기>의 서두 등이 그렇게 읽은 대목들인데, 시간이 나는 대로 정리해두도록 한다. 이 페이퍼는 <라캉과 정치>의 서문에 대한 것이다.

 

 

 

 

원래 서문은 '라캉과 정치를 연관지을 수 있는 가능한 논의를 위한 몇몇 예비 질문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부제 자체는 라캉적인 것이다(<에크리>에서 정신병을 다루는 한 장의 제목이 비슷한 식이다). 그걸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을 순 없으므로 간단히 '라캉과 정치의 합류점'이라고 해둔다. 저자인 야니 스타브라카키스가 제기하고 있는 것은 '라캉과 정치적인 것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인바, 이 표제에 대한 해제가 서문의 내용을 이룬다.

저자는 먼저, '라캉과 정치'라는 타이틀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심들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그 의심이란 사회/정치적 심급을 정신분석이라는 개인심리학적 차원으로 환원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언제나 사회적인 수준 즉 '객관적인' 수준을 개인의 수준, 즉 '주관적인 수준'에서의 분석으로 환원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심은 정당한 것이기도 한데, 그간에 정신분석학적 환원주의, 곧 사회는 집합적 무의식 또는 초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며 그로 인해 사회를 정신병리적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처럼 다루는 태도는 그간에 오명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인용하고 있는 뒤르켐의 발언은 그리하여 원칙적으로 옳다: "사회현상이 심리현상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명될 때마다 우리는아마도 그 설명이 틀렸음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14쪽) 국역본에는 이 발언의 출처가 누락됐는데,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한 회의론에 맞장구를 치는 이들이 또한 다름아닌 정신분석가들이다. 라캉의 사위이자 상속자 자크 알랭-밀러(*'밀레'나 '밀레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는 이렇게 묻는다: 정신분석가들은 자신들에게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정치를 말하는 것이 남용인지 아닌지를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분석에 들어서는 것은 고도로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15쪽)

하지만, "정신분석학은 초연한 이론도 고립된 개인에 관한 심리학도 아니며(라캉은 어떠한 형태의 원자론적인 심리학에도 반대하였다), 더더욱 분석주체는 '고독한 방랑자'도 아니다. 왜냐하면 분석주체는 다른 사람과, 즉 분석적 세팅 안에서 분석가와 연결됨으로써만 이 분석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분석주체'는 'analysand'의 번역어이며, '환자' 곧 '피분석자'를 가리킨다. 분석적 세팅 안에서 피분석자가 갖는 능동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라캉주의 정신분석에서는 '분석주체(analysand)'라고 부른다. '분석가'는 물론 'analyst'를 가리킨다. 그리고 밀러 자신이 분석에서 이 양자간의 관계를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적 결속'이라고 불렀다. 프로이트 자신이 정신분석학적인 사회-정치적 분석 작업을 다양하게 남겨놓기도 했고(<환영의 미래>나 <문명 속의 불만>, <왜 전쟁인가> 등은 대표적이다).

라캉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자신의 영감과 사유방식, 그리고 자신의 기술의 무기고를 이와 같은 연구들에서 찾아내었다. 그는 또한 이것들을 정신분석학 교육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은 불필요할 정도로 과잉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16쪽)

참고로,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But he also regarded it as a necessary condition in any teaching of psychoanalysis."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것을 모든 정신분석 교육에 있어 필수적인 조건으로 간주했다"라는 '평이한' 내용 같은데, "그는 또한 이것들을 정신분석학 교육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은 불필요할 정도로 과잉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라고 불필요할 정도로 복잡하게 옮겨진 이유는 모르겠다. 인용의 출처는 쉐리단의 <에크리> 영역본인데, 설마 이후에 나온 핑크의 완역본 <에크리>를 참조한 탓일까?(역자는 후기에서 핑크의 번역본도 참조했다고 적어놓았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는 게 유익하겠다: "사회학은 심리학이 사회속에서의 사람들의 행동을 다루는 것과 같이 (...) 사람들의 행동을 다루기 때문에, 사회학은 응용심리학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엄격히 말해서 두 개의 과학만이 있을 뿐이다. 심리학, 즉 순수심리학과 응용심리학 그리고 자연과학."(17-8쪽) 재인용의 출처는 <새로운 정신분석강의>이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라면 이 심리학마저 사회생물학에 '통섭'된다고 말할 법하다.

하지만 "라캉은 정신분석학적인 사회분석의 설득력과 정당성에 관해서는 프로이트와 의견을 같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강한 '환원주의적' 접근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았다."(18쪽) 대신에 라캉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에서 존재하는 쌍방향의 운동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가 제시하게 되는 것인 새로운 주체성의 개념이다.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정치적인 주체성 개념'.(이에 대한 설명이 책의 1장을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캉의 이론이 중요한 것은 정신분석학과 사회-정치 분석 간의 진정한 함축 또는 상호함축을 허용한다는 점이다."(20쪽) 그리고 이러한 주체성 개념으로부터 객관성(객관적인 수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제안된다(이에 대한 설명이 2장이다).

잠시 덧붙이자면, 책의 1장 '라캉의 주체'에 대해서는 저자도 참조하고 있는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The Lacanian Subject)>(1995)가 필독서이다. 이 책의 국역본은 올 상반기에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안다. 스타브라카키스의 보다 중요한 기여는 따라서 2장 '라캉의 객체'에서 찾아진다(물론 이 대목도 지젝의 저작들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간취할 수 있다. 스타브라카키스는 보다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문제제기에 이어지는 내용은 소위 '애로사항'이다. 라캉과 정치적인 것의 합류점을 사고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미리 짚어보고 있는데, 첫번째 문제는 "라캉의 담론의 복잡성과 그의 바로크적인 복잡한 문체와 관련이 있다."(22쪽) 사실 라캉에 대한 많은 비난이 바로 이러한 모호한 그의 문체적 스타일에 집중되어 있기도 하며, 영화 <지젝!>에서 지젝은 이러한 수사적 제스처를 과감하게 배제하고 라캉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라캉은 "청중들 속에서 새로운 독해 문화를 배양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이 보인다 - 그의 텍스트는 바르트식으로 말하자면 쓰여지는텍스트이지, 읽혀지는 텍스트가 아니다."(23쪽). 여기서 '바르트식으로 말하자면'은 역자가 삽입한 것이다. 그것은 '쓰여지는 텍스트(writerly text)'와 '읽혀지는 텍스트(readerly text)'란 말의 출처가 롤랑 바르트라는 것을 친절하게 보충해준다(나의 친절은 22쪽에서 'Lacan in Samuels'의 's'가 탈자되었다고 보고하는 정도이다). <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앨피, 2006)에서 이 두 용어는 각각 '작가적 텍스트'와 '독자적 텍스트'로 옮겨졌는데, '작가적 텍스트'란 텍스트의 의미지평이 열려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뭔가를 계속 끄적거리고 싶도록 만드는 텍스트이다.

여하튼 이러한 어려움을 낳는 라캉의 스타일을 저자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라캉의 담론이 지닌 모호함은 사실상 모든 독자에 대한 도전이며,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도전이고, 떠맡아야만 하는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그의 담론의 비환원적인 모호함과 비결정성을 인정할 때에만 우리는 라캉의 담론을 가지고 작업할 욕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라캉이 우리에게 건네는 도전이다."(24쪽)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인문 번역서를 읽을 때 '비환원적인 모호함' 같은 표현에 주눅들면 안된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비환원적'이란 말은 'irreducible'의 번역이고 이 단어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는' '더 이상 약분할 수 없는'[수학] 등의 뜻을 갖는다. 수학에서의 의미가 여기서는 이해에 더 용이하겠다. 라캉의 담론이 (보기엔 굉장히 크고 복잡한데) 더이상 약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 즉 그 모호함이 더 이상 축소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사실이 거꾸로 우리에게 라캉을 읽고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설명하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긴다는 얘기이다.

모호함을 의도적/적극적으로 창출해내는 라캉의 수사적 전략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라캉주의 문헌 속에는 라캉 담론의 복잡함을 모방함으로써 재생산되는 몽매주의자들의 비체계주의적인 전통이 존재하며, 다른 수준에서는 라캉이 비판했던 자아-심리학의 문제가 존재한다"(25쪽)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만약 라캉의 전략이 전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입증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이 마지막 인용문도 모호한데, 우리말로는 전체부정으로 읽히지만 의미는 부분부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라캉의 전략이 전적으로 성공하못한 것으로 입증된다면" 정도가 적합하지 않나 싶다(그러니까 그것이 절반의 성공에 머문 이유는 이런 때문이다, 란 뜻이다).  

"라캉의 담론 상태와 관련된 두번째 어려움은 라캉의 개인적인 문체에서 비롯될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른 라캉 담론의 급진적인 발전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라캉의 저작에서는 '라캉에게 맞서는 라캉 Lacan contra Lacan'이라는 투쟁적 계기는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26쪽)

그러니까 라캉은 시작부터 체계적이고 완전무결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 게 아니었고, 조금씩 수정하고 대체하고 방점을 이동시키는 식으로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은 다면적 얼굴의 라캉이며, 때로 이 라캉'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라캉 vs 라캉'이란 표어가 억지가 아닌 것이다(라캉에 대한 국내의 많은 비판은 대개 이런 점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한다). 일반적으로 라캉 이론의 진화는 상상계 --> 상징계 --> 실재계로 방점이 차츰 옮겨간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라캉 자신이 이 세 등록소(register) 혹은 초점이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병행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이론가'라면 다들 그렇게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른다면, 그가 (*1940년대에) 상상계에 두었던 이론적 무게만큼 다른 차원에 동일한 무게를 두지 않았던 이유는 그 당시 청중들이 상상계 차원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27쪽) 

인용문에서 '상상계 차원'은 원문에서 그냥 대명사 'it'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역자가 '상상계 차원'이라고 바꿔놓았는데, 내 생각에 이 번역서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오역인 듯싶다. 전후맥락은 이렇다.

"Lacan argues, for instance, that references to the role of the signifier were present in his discourse and his papers from the 1940s - the same applies to the concept of the real which is already present in his first seminars. The reason he didn't invest these demensions with th same theoretical weight that he did with the imaginary is, according to his view, that his listeners were not yet ready to accept it at that time."(6-7쪽)

기표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다르게 말하면 '상징계'에 대한 강조이다. 내가 보기엔 이 두 문장엔 라캉과 스타브라카키스 두 사람의 주장이 겹쳐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나의 심증으로 "references to the role of the signifier were present in his discourse and his papers from the 1940s"라고 지적한 건 라캉이고, 같은 논리를 적용하여 "the same applies to the concept of the real which is already present in his first seminars."라고 덧붙인 건 스타브라카키스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에서 라캉의 발언을 옮긴 "his listeners were not yet ready to accept it at that time"에서 'at that time'은 1940년대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거울단계'를 핵심으로 한 '상상계'에 대한 이론정립에 골몰하던 1940년대에도 라캉은 '상징계'를 언급했지만, 더 발전시키지 않은 것은 청중들이 그것(상징계)을 수용할 준비가 안돼 있었다는 것.

스타브라카키스는 이러한 변호가 상징계-실재계에서도 반복된다고 덧붙인다. 즉, 1951년의 첫번째 세미나에서도 '실재계'란 말은 등장하지만 라캉은 더 발전시키지 않았다. 왜? 청중들이 아직 그걸 받아들일 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도 역자는 'it'가 단수이기 때문에 앞에 나오는 'the imaginary'를 받는 걸로 보았을 텐데, 내가 보기엔 의미상 'these demensions'를 받아야 한다. 라캉에게는 '상징계'만을 뜻했을 'it'이지만 두 가지 사례가 포개져서 'these demensions'(상징계와 실재계)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라캉을 읽는 어려움이야 다 말할 수도 없겠다. 그저 독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도리밖에: "라캉의 독자들 모두에게 제기되는 도전은 라캉의 사유의 복잡함을 특정한 층화작용으로 환원함 없이 그리고 재현 안에서의 실재의 흔적으로 보전되어 있는 비결정성을 봉합함 없이 자기 자신의 독해를 구성하는 것이다."(28쪽)

'특정한 층화작용'이라는 건 침전시켜서 걸러낸다는 것인데, 알맹이들만 골라낸다는/환원한다는 의미겠다. 비결정성을 봉합한다는 건 제거하거나 무시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쉽겠다. 요는 그 복잡함과 비결정성을 보존하면서 자신의 독해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방이 아니라 최종적인 라캉을 추구하지 않는 실재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 즉, 라캉적인 실재계의 구성력에 우리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원문 역시 간추리면, "Simply put, instead of imitation we need interpretation, an interpretation which is not searching for the real definitive Lacan... and chooses to concentrate on the constitutivity of the Lacanian real..."(7쪽) 

역자의 '해석'이 많이 반영된 대목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라캉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해석해야 한다. 그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해석은 라캉의 어떤 고정적인 실체를 찾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작용의 확실성을 교란시키는) 라캉적 실재(계)의 구성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표상되지도 환원되지도 축소되지도 않는 '라카니언 리얼'에 언제나 유의해야 한다는 당부이겠다.

이 서문의 마지막 대목은 라캉에 관한 '전기적 스케치'이다. 그건 그냥 읽어보면 되겠다. 그 이전에 저자는 라캉 읽기의 어려움이 어떤 보상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그게 또한 독자의 마지막 몫이어야 하겠다.

"최근의 유토피아 정치의 위기는 실망과 정치적 염세주의의 원인이 되는 대신에 조화와 환상의 윤리학이 부과한 구속으로부터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을 '해방'시킬 기회를 창조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 네오파시즘, 민족주의적 배타주의와 근본주의가 다시금 그들의 추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시대에 정치적인 상상력의 민주주의적 잠재력을 보다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라캉의 이론은 이러한 정치적 '해방'의 촉매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정치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비-근거적인(*비정초적) 윤리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34-5쪽, 강조는 나의 것) 

07. 01. 07 -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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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리다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다시 쓴다(많이 안 쓴 게 다행이다). 다른 게 아니라 올부터 경향신문에 '작가와 문학 사이'란 연재물이 실리는 모양이다. 그 첫기사는 문학평론가 심진경씨가 '유령작가' 김연수를 다루고 있다. 반가운 연재이기에 옮겨놓는다. 중간에 삽입한 이미지들은 알라딘의 방침에 따라서 상품페이지에 노출되지 않는 걸로 갖다 쓴다(그래서 사이즈가 좀 크다).

 

경향신문(07. 01. 06) [작가와 문학사이](1)김연수

한 편의 소설, 김연수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수록)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소설에서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전처와 만나 안국역 근처 일대를 걷다가 어정쩡하게 헤어진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안국동과 화동과 가회동과 재동이 나오는 북촌 근처의 지도를 산다. 그리고 그날의 행로를 지도 위에 그어나가기 시작한다. 안국동 175번지 앞에서 걷기 시작해서, 우리의 대화는 가회동 12번지 지날 즈음 끊기고, 그러다가 재동 83번지 헌법재판소를 지날 즈음 그녀는 꿈 얘기를 하고….



그러나 사실 그날의 행로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녀와 내가 걸어다닌 그 길의 행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는지, 그날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되풀이해서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자신들이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걸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나무는 박지원, 지구의, 홍영식, 갑신정변, 제중원 등과 같은 역사적 사실과 느슨하게 연결된,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된 육백년 된 백송이다. 소설에서 ‘나’는 질문한다. 과연 나무를 중심으로 그려진 그날의 동심원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백송처럼 육백년을 견디면 우리의 행로도 필연이 될까.

모든 의미는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무의미한 행로 중심에 놓인 육백년 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우연과 농담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상은 어떤 의미의 빛을 띠게 된다. 이즈음 김연수의 장편소설(‘밤은 노래한다’ ‘모두이면서 하나인’)은 이 우연의 세계에 떨어진 개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흔히 역사라고 하는 필연과 진담의 세계가 어떻게 우연과 농담의 세계와 겹쳐지면서 이어지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는 허무한 농담의 세계를 견디려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 김연수 소설의 평범한 개인들이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놓인 우연한 삶의 자리에 대해 끝까지 질문한다. 명쾌한 답은 없지만, 결국 대답 없는 그 질문은 그들을 벽 앞의 절망으로 밀어가겠지만 그래도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김연수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이자 불가지적 세계의 암호를 풀려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던지는 질문에 정답은 없으며 세계라는 수수께끼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질문과 해석을 중단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사실들을 동원한다.



그는 성균관대 동아시아 협동과정 석사과정에 있는 ‘학삐리’ 작가이자 ‘젠틀 매드니스’라는 번역서를 출간한 역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단편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탐독한다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밖에. 그러나 사실을 그러모아 허구의 탑을 쌓는다면 그것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여담이지만, 나는 도서광 열전이라 할 <젠틀 매드니스>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책에 미친 사람은 아니라는 게 입증된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아무리 많은 자료를 읽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나오면 그제서야 이 소설은 제대로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한단다. 그에게 사실에 대한 집요함은 결국 모든 사실을 동원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알 수 없음’의 세계를 향한 그의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소설가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농담 같은, 거짓말 같은, 우연 같은 우리의 삶을 진담으로, 참말로, 필연으로 만들어주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문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굳빠이, 이상’에서 삶 전체를 판돈으로 걸고 스스로를 천재작가라는 허구적 텍스트로 변형시키고자 한 ‘이상’에게서 우리는 작가 김연수의 표정을 본다. 그것은 이 시대의 마지막 문학적 낭만주의자의 표정이다. 이토록 젊은 그가.(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07. 01. 06. - 07.

P.S. 마지막 멘트는 무슨 의미일까? '이토록 젊은' 그가 '이 시대의 문학적 낭만주의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보통 낭만주의는 젊음과 잘 접속되는 것인데, 우리 시대의 '이토록 젊은' 작가들은 이 '철지난 낭만주의'에 대해서 대부분 냉소하거나 조롱한다는 얘기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특수성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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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1-0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은 당근 노땅이 지키는 건데^^... 이런 뜻 아닌가염

로쟈 2007-01-0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땅들은 다 어디가고 유령이 지키나요?^^

비로그인 2007-01-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다크아이즈 2007-01-1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문단의 젊은 작가들이 '낭만주의'를 폐기처분한지 오래되지 않았나요? 박민규나 이기호도 낭만주의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요.

i 2007-01-2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비범한 동시대 한국 작가라고 여겨집니다.

로쟈 2007-01-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다리 건너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어제 스크랩해놓은 기사인데, 몇 자 보태서 '방주'에 올려둔다. 지난주 언론의 북리뷰들에서 가장 눈에 띈 책은 프랑스의 (신)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황금부엉이, 2006)와 철학자 조중걸씨의 <열정적 고전 읽기> 완간 소식이었다. 두 권(<고전읽기>는 10권짜리이지만) 다 아직 실물을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자는 다음달 '사회적 독서'의 목록으로 올려놓을까 생각중이고(따라서 자세한 페이퍼는 2월에 쓰게 될 듯하다), 후자는 한두 권 정도 견본삼아 읽어볼 생각이다. 논술대비용 고전읽기야 차고 넘치다 못해 범람하는 수준이지만, 조중걸판의 특징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맞물린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저자는 도올 김용옥 이래의 '걸물'이라 할 만하다. 10권짜리 '액면'을 다 펴 보였으니 인터뷰에서 내비친 그의 고성이 허언만은 아니겠다(그는 말로만 떠는 게 아니라 실물을 보여준 셈이므로). 이러한 제도권 바깥의 목소리를 접하며 더불어 기대하게 되는 것은 제도권 '안'의 목소리이다. 한번 겨뤄보자고 청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한국일보(07. 01. 06) 고전을 다 읽으면 세상이 모조리 보인다

꽃자주색 띠지(책 표지에 두른 광고지)에, 그 빛깔보다 더 선정적인 문구(‘생각의 폐활량을 높여라!- 논술 달인을 위한 비밀 레시피’)를 단, 한 철학자의 고전 안내서 10권이 완간됐다. 국내에 적(籍)도 없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철학자 조중걸(50)씨가, 한 두 분야도 아니고 철학 사회 역사 예술 과학 등 서양 지성사의 돌올한 고전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썼다는 <열정적 고전읽기>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은 영국 학자 키토의 <그리스인>부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윌리스 퍼거슨의 <르네상스>,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소개하는 역사편. ‘폴리스’의 성격과 의미를 뒤지는 첫 텍스트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양대 젖줄인 ‘부르주아 혁명(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요컨대 ‘서구 정치사의 흐름’을 되밟아 가게끔 ‘기획’된 책이다. 각각의 고전들이 서구 정치사의 어떤 구비에 있으며, 또 어떤 경로로 흘러가는지 목차만으로도 감을 잡도록 짜여졌다는 의미다. ‘기획’은 개별 텍스트의 구성에서도 엿보인다.

고전이 탄생한 시대적ㆍ지성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전문과 고전 원문(주요 부분 발췌), 원문 번역문, 해설이 각 장을 구성하는데, 장의 꼬리는 다음 장의 머리에 닿아있다. 그 구성이 역사뿐 아니라 철학 사회 예술 과학으로 거미줄처럼 네트워크화한다. 고전으로 훑는 서양 지성사의 개론서이면서, (저자가 의도한 바) 고전을 건져올릴 그물이 되게 한다는, 부분과 전체의 조화로서의 ‘기획’이다. 저자는 부분(책)은 전체(세상)와의 조화로 읽혀야 한다고 말했다. “책도 시대의 소산인 만큼 그 시대의 맥락, 패러다임과 세계관의 연관과 이해 속에서 시대의 일부로 읽혀야 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인문사회계열 77학번. 재학 1년2개월 만에 입대해 82년 제대. 1개월 뒤 프랑스문화원 유학시험에 합격해 그 해 프랑스파리3대학(소르본) 유학. “스승으로 만나 친구로 헤어진”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서양예술사와 서양철학을 전공. 미국 예일대로 건너가 문학사와 수리철학으로 2개의 석사학위, 미술사 음악사 수리철학으로 3개의 박사학위를 획득. 그 해 나이 만 32세.

다수의 논문과 몇 권의 대학 교재(영문)를 썼고,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아카데미의 한계를 깨닫고 귀국, 강단과 거리를 둔 채 집필에 전념(*생계는 누가 돌보는 것인지? 독신인가?). 미 랜덤하우스와 계약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 철학 역사가 어우러질 ‘메타피지컬 인터프리테이션’ 예술사(전10권)를 집필중이다.

저자는 이런 ‘장황한’ 이력의 나열을 불편해 할 것이다. “‘Publish or Perish!(책으로 말하라, 아니면 사라져라!)’ 학위나 경력 따위는 학문 장사꾼에게나 필요한 겁니다.” 대학에 대한, 대학교수에 대한 그의 독설은 거침없다. “한 전직 교수가 ‘50년간 글을 쓴 나도 서울대 논술에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죠? 그 논술문제가 ‘데카르트 자아관과 현대사회의 자아관을 비교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걸 못 쓴다니…. 무식하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도 됐던 인문학자의 서글픈 고백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 교수들의 대체적인 수준이라는 말도 했다(*한 '전직 교수'란 이어령 선생을 말한다. 저자의 배포를 짐작하게 한다. 한데, 이어령 선생은 책으로 치자면 저자보다 20배는 더 많이 써내지 않았나?).

유학 초기,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교양에의 갈증과 소외감에 고전을 읽었고, 그 고전 읽기의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안내서만 읽으면 어떻겠느냐는 에두른 질문에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도 아마추어는 주인공의 운명(스토리)에만 관심을 쏟지만, 진정한 딜레탕트는 운명의 전개양식을 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와 ‘증오의 가지에 사랑이 싹텄다’가 같을 수 없지요.”

암벽 등반을 즐기고 플라이낚시광(狂)이라 6~8월은 캐나다에서 산다는 철학자. “인문학은 병적인 행복을 정상적인 불행으로 만드는 학문”이라며 세속의 기쁨을 멀리하라고 말하는 학자. 돈과 상을 마다하고 지적 희열과 자유 속에 침잠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수학 천재 페렐만을 연상시키는 그는, 만 40살이 된 기자에게도 “공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말했다.(최윤필 기자)

07. 01. 06. - 07.

P.S. 검색해보니까 조중걸씨는 심산 스쿨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올해 진행할 계획이며,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서양미술사 전반에 대한 그의 해석(철학적 해석)을 담은 원서를 조만간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아놀드 하우저를 넘어설 만한 대작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저자의 포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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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1-07 22:32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대단한 학력이군요. 다양하게 또 많게.

로쟈 2007-01-07 22:39   좋아요 0 | URL
세 개의 박사학위논문을 동시에 썼다는 게 믿기진 않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하긴 합니다(우리 시스템상으론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논문 등을 제출해야/혹은 시험에 통과해야 박사학위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에).

biosculp 2007-01-10 17:20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책 보았을때 뭔 또 애들 상대 논술책인가 하고 들쳐보지도 않았었는데 다시 봐야겠군요.
심산에 인터뷰한내용이 있더군요.
http://www.simsanschool.com/bbs/zboard.php?id=board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4

로쟈 2007-01-11 00:41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술' 파트만 구입했는데, 아예 참고서 매장에 가 있더군요. 번역도 안된 책들을 정말로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것인지, 컨셉은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논술교사들에게는 유익해 보이는 책입니다...
 
미셸 푸코,죽음의 빛
자네트 콜롱벨 지음 / 인간사랑 / 199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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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에 몇 자 적어둔 게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책을 완독하지 않았기에 리뷰랄 것도 없지만, 완독할 수 없는 이유는 대고 있으므로 정상은 참작될 수 있겠다...

책머리에 실린 들뢰즈의 말. "내가 사랑하는 한 저자에 관해서만 말한다는 내 이상은, 그를 슬프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며, 그가 더 이상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사람들이 그와 동일시 되지 않도록 충분히 그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대단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프롤로그인 '여정과 추억'은 아주 사적인 성격을 지닌 부분이어서 프랑스 지성사에 '과도한' 관심을 가진 독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푸코에 대한 번역 전기 중에서 가장 읽을 만한 것이라면 디디에 에리봉의 것을 꼽겠다. 그리고 읽은 것은 1장 "불확실성과 유한성". 정독해야 할 만큼 무게 있는 내용도 아니고 정확한 번역도 아니어서 대충 훑어본다. 번역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먼저 "(...) 경기장 안에 나 혼자 있음을 알았을 때 다시금 푸코가 현재해 있었다."(51) '현재[現在]하다'와 '있다'를 나란히 병치시켜 놓는 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푸코가 곁에 있었다" 정도의 뜻이지 싶다.



그리고 <말과 사물>에 나오는 벨라스케즈의 그림 '시녀들(Les Menines)'를 '귀족의 딸들'(78)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 역자가 <말과 사물> 읽지 않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니 번역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사랑'에서 나온 프랑스 철학 관련서들의 번역이 대체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 역자 선정과 교정 등에서 좀더 많은 주의가 기울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다음으로, 나에게 유의미한 부분. "어떤 말들은 생각할 수 없다. 시간성에 대하여 잘 몰랐던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란 말처럼. 각 시대는 여러 상이한 영역에서의 교응을 필요로 한다."(77) 이건 푸코와의 관련 없이도 흥미를 끄는 내용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라, 생각할 수 없는! 그리고 푸코의 말 인용. "생각하는 내가, 나의 사고의 내가 내가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려면, 또 나의 사고가 내가 아닌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90) 이건 <말과 사물>의 "코기토와 사고되지 않은 것(Le Cogito et l'impense)"에 나오는 부분이다.

또 푸코가 한 대담에서 한 말. "삶은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예술작품이어야 하며..." 이건 니체의 미학주의와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앨런 맥길의 <극단의 예언자들>(새물결)에서 푸코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야겠다. 끝으로 재미있는 건 앙겔로플로스('안젤로포울로스'로 번역 돼 있다)의 영화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Le Pas suspendu de la cigogne)>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113)

책은 반납했다. 너무도 프랑스적인 책이다. 푸코를 읽는 일도 버겁지만 그걸 '프랑스적'으로 읽을 만한 여유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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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6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놔키스트 2007-01-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엉망인 건 잘 알겠습니다만.. '프랑스적'이라는 의미는 썩 잘 모르겠군요..^^

로쟈 2007-01-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짤막하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서두의 '여정과 추억' 같은 대목이 제겐 좀 이질적이었습니다. 기억에 그 나라 사람들의 회고담 같은 식이라. '그러니까 제가 프랑스적이라고 한 건 저자가 푸코를 다루는 시각을 가리킵니다. 푸코의 생각 자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국어학을 공부하시는 어느 분이 소쉬르 관련 문헌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오셨다. 아마도 이번에 <일반언어학 강의>가 재간된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서평꾼'이 아닌 언어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구하여 마땅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정중히 마다하지 못한 것은 그간에 이런저런 아는 체를 많이 해온 탓에 무작정 발뺌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듯하기 때문이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예전에 써둔 걸 옮겨놓는다. 원래는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라캉182님이 소개한 내용에 몇 글자 더 보탠 글이기에 필자는 두 사람으로 해야겠지만('비평고원'은 어제 언론의 '직격탄'을 맞고 신입회원이 600여명 가까이 늘어났다. 나도 즐찾이 16명 늘어나긴 했지만 비할 바는 아니겠다. 한겨레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일 텐데 후유증(?)은 없으려나 걱정된다), 일단은 임의로 올려둔다.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붙인 것이다. 

 

 

 



1. 그의 저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샤를르 발리, 알베르 세쉬에 편집, 최승언 역(민음사, 1990 초판)(샤를르 발리(Bally)는 (불어식으로) '바이이'라고도 표기됩니다.) 오원교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형설출판사)도 번역돼 나왔는데, 역시나 도서관에 의존해야 할 듯싶고(*민음사판은 이번에 다시 나왔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 경악한 얘기는 제가 다른 글에서 썼습니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는 서두에 마우로 교수의 강의 주석본도 곧 번역돼 나오는 것으로 예고돼 있는데, 12년이 지나도록 아직 안 나오고 있습니다...

 

 

  




2. 입문서
조더선 컬러, <소쉬르>, 이종인 역(시공사, 1998). 조나단 컬러는 영미권에 소쉬르와 구조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로서(<구조주의 시학>이 대표작) 신뢰할 만한 비평가입니다(<바르트>와 <문학이론>도 그의 책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이 책의 증보판을 옮긴 것인데,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서는 소쉬르 입문서로서 많이들 추천하는 책입니다...

C. 샌더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김현권 역(도서출판 만남, 1996)는 말 그대로 일반언어학 강의의 주요 개념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김현권 교수의 번역. 저는 이 책으로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를 때웠었는데, 요즘 다시 소쉬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르트도 그랬지만, 저도 랑그 연구자로서의 소쉬르보다는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더 흥미를 갖게 됩니다.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 2002)입니다. 원제는 '생명과 과잉'이고, 저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소쉬를 연구자의 한 사람입니다. 1장은 그런가보다 했는데, 2장부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단행본 연구서
요하네스 페르, <소쉬르 언어학과 기호학 사이>, 최용호 역(인간사랑, 2002) 저도 아직 구입하진 않았지만(2만원!) 서점에서 몇 번 들춰보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자이면서 (퍼스와 더불어)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인 소쉬르를 다루고 있습니다(*퍼스의 기호학에 대해서는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06)을 참조할 수 있고요).

김현권 외 편역, <비판과 수용:언어학사적 관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연구 제1권)>(도서출판 역락, 2002) 마침 오늘 산 책이네요. 제목대로 소쉬르에 대한 그간의 비판(1부)과 각국의 수용(2부)에 대한 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2부에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소쉬르 수용에 관한 장들도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여구> 총서는 4권으로 기획돼 있는데, 2권은 "비교역사언어학: <논고>를 중심으로"이고, 3권은 "일반언어학: 일반어어학 이론, 문헌비판적 연구"이며 4권은 "기호학: 아나그람, 전설, 기호학, 철학 등"입니다. 제가 제일 기대하는 건 역시나 4권입니다.

프랑수와 가데, <소쉬르와 언어과학>, 김용숙 역(동문선, 2001). 라캉 182님이 "소쉬르 연구의 결정판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큰 연구서..김성도 교수가 자주 인용한 저자. 부담없는 가격과 두께! 내용은 두께에 반비례할 수도 있음!"라고 상찬하셨는데, 저로선 너무 비싸보이는 책이어서(!) 소쉬르 '쇼핑'을 나간 오늘도 사지 않았습니다...

 

 

  

  


김방한, <소쉬르>(민음사, 1998). 작고한 김방한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언어학자입니다. 제자인 김현권 교수와 방통대의 언어학 강의를 맡기도 하셨고, 그 강의를 TV에서 몇 본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반언어학 강의>를 평이하게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2차 일반언어학 강의'가 발췌지만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김방한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한 언어학자의 회상>(민음사, 1996)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김성도,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한길사, 1999). 고대 김성도 교수는 외대 최용호 교수와 함께 본토에서 소쉬르를 전공한 '전문가'입니다(*김현권 교수는 국내에서 소쉬르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국내 소쉬르 연구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한길사에 다니던 후배의 부탁으로 이 책을 절반쯤 읽고 서평을 쓴 바 있습니다...

김현권 외, <소쉬르의 현대적 이해를 위하여>(박이정, 1998). 국내 소쉬를 학자들의 논문과 번역모음입니다. 아마도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모양인데, 그 결과를 묶어낸 책입니다. 오래전에 산 책인데,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듯하군요...

로이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고석주 역(도서출판 보고사, 1999) 라캉182님에 의하면, "저자 Roy Harris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1983년 영역과 주석을 출판한 저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부담은 없어서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은 책입니다.

미셀 아리베, <언어학과 정신분석학:프로이드, 소쉬르, 옐름슬레우, 라깡을 중심으로>, 최용호 역(인간사랑, 1992) 아리베는 최용호 교수의 지도교수입니다. 최교수가 유학중에 번역한 책인데,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최교수는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라캉과 소쉬르'란 논문을 싣고 있기도 합니다.

 

 

 

 


루이 옐름슬레우, <랑가쥬 이론 서설>, 김용숙/김혜련 역(동문선, 2000) 흔히 '언어이론 서설'로 알려진 책인데, 주의할 것은 이때의 언어가 '랑그'가 아니라 '랑가주'란 것입니다. 불어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는데, 영어나 독어, 그리고 우리말에도 이 둘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냥 랑그/랑가주를 언어/언어활동 정도로 옮기고 있습니다. 크리스테바의 <언어, 그 미지의 것>(민음사, 1997)도 원제는 '랑가주, 그 미지의 것'입니다. 어쨌든 엘름슬레우의 이 책은 얇지만, 그레마스가 '이 한권의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그레마스의 책과 연구서로는 <의미에 관하여>와 <구조에서 감성으로>가 있다).

 

 

 

 


에밀 벤베니스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 2>, 황경자 역(민음사, 1993) 한불문화출판에서도 김현권 교수의 번역으로 1권이 번역돼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습니다. 적어도 구조주의에 대해서 말하려면, 소쉬르와 야콥슨 그리고 벤베니스트를 읽어야 합니다. 참고로 벤베니스트는 A. 메이예의 제자이고, 메이예는 바로 소쉬르의 제자입니다. 메이예의 책으론 <일반언어학과 역사언어학>, 김현권 역(어문학사, 1997)이 번역돼 있습니다.

벤베니스트, <인도 유럽사회의 제도 문화 어휘연구 1,2>, 김현권 역(아르케, 1999) 작년에 맘먹고(!) 산 책중의 하나입니다(*러시아어본도 구했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고 고급 교양서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 그냥 '사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군요.

앙투안 아르노/클로드 랑슬로, <일반이성문법>, 한문희 역(민음사, 2000) 얇은 책이지만, 저도 아직 사지는 않은 책입니다. 참고로 언어학 관련서 중에서 욕심이 나는 책은 훔볼트 관련서들입니다.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혹시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정보를 주시길...)

4. 영어
<초보자를 위한 소쉬르('Saussure for Beginners)>, W.Terrence Gordon, Abbe Lubell, Writers & Readers, 1996.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데리다가 한 얘기들은 실제로 소쉬르도 다 한 얘기다라는 지적이 들어 있습니다. 평이하기 때문에 번역 소개되면 좋을 거 같군요. 단, '정치적인' 소쉬르 얘기는 없습니다.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Francoise Gadet, trans. Gregory Elliott. 라캉182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군요.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책은 정말 많고도 많습니다(하지만, 없는 책들은 더 많습니다!).

 

 

 




덧붙임: 서정철 교수의 <기호에서 텍스트로>(민음사, 1998)는 평이한 구조주의/기호학 입문서이다. 소쉬르에서부터 옐름슬레우, 바르트, 그레마스 등에 이르는 언어학/기호학 사상을 해설하고 하고 있는 책이다. 서교수의 후속작으로는 <인문학과 소설텍스트의 해석>(민음사, 2002)가 있다. 여타 구조주의/기호학 참고문헌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03. 01. 30./ 07.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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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1-0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언론의 힘은 대단해요. 저는 여기 로쟈님이 올리신 글 보고 가입했습니다. 아프락사스와는 다른 제 인터넷 필명으로. ^^

승주나무 2007-01-0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소쉬르를 비공개로 수배하고 있었는데, 여기 다 있군요. 저도 아프 님과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7-01-0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색이 주저인데 일반언어학 강의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 의존해보려했으나..책이 너무 70년대스러워서...

2007-01-06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츠님/ 2006년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열매 2007-01-0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재번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민음사나 한길사가 이전에 나왔던 책들을 적절히 윤문해서 근래에 만드는 고전 시리즈에 적절히 끼워 넣고 있는데, <일반언어학 강의> 역시 그러한 듯 합니다. 재번역을 했으면 응당 재번역에 대한 역자의 노고가 담긴 '개역판 역자 서문'이 있어야 할 듯 한데, 없습니다. 민음사의 '현대사상의 모험'이 거의 '대우 학술총서'나 '이데아총서'의 윤문판이고,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의 몇몇은 '오늘의 사상신서'에서 윤문한 것입니다. 재판을 찍으며 번역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재번역 하지 않은 체 가격만 어마어마하게 부풀리는-하드커버 씌우기, 자간 벌리기, 글자크기 키우기,표지 쌈박하게 만들기 등- 메이저 인문학 출판사들의 몰염치함와 몰상식이 너무 끔찍합니다.

로쟈 2007-01-0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번역이 아닌 건 알겠는데, 제가 이전에 넌센스라고 생각했던 오역들이 교정됐는지가 궁금한 것이죠. 역자로서도 망신스러운 오역들인데...

비로그인 2007-01-0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감사합니다.. 몰랐네요 ;; 민음사 책이군요.. 발터밴야민의 문예이론 을 읽고 좀 실망한 출판사인데.. 2000년도에 쇄를 거듭해서 찍은 책인데.. 난데 없는 80년대식 '읍니다' .. 놀랐습니다.

바나나도넛 2007-01-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선택은 더욱 괴롭겠군요.

김주원 2007-01-1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서가 얼만큼 개선이 되었는지, 혹 읽어보신 분 답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별다를 게 없다면 살 이유가 없는데. 짧은 불어로 힘들게 읽어서, 읽을만한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면 좋겠는데..

로쟈 2007-01-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답글을 안 달아놓으시네요. 방학이라 저도 학교에 뜸하게 가는데, 시간이 나면 한번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새 번역본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조만간은 힘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