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스크랩해놓은 기사인데, 몇 자 보태서 '방주'에 올려둔다. 지난주 언론의 북리뷰들에서 가장 눈에 띈 책은 프랑스의 (신)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황금부엉이, 2006)와 철학자 조중걸씨의 <열정적 고전 읽기> 완간 소식이었다. 두 권(<고전읽기>는 10권짜리이지만) 다 아직 실물을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자는 다음달 '사회적 독서'의 목록으로 올려놓을까 생각중이고(따라서 자세한 페이퍼는 2월에 쓰게 될 듯하다), 후자는 한두 권 정도 견본삼아 읽어볼 생각이다. 논술대비용 고전읽기야 차고 넘치다 못해 범람하는 수준이지만, 조중걸판의 특징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맞물린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저자는 도올 김용옥 이래의 '걸물'이라 할 만하다. 10권짜리 '액면'을 다 펴 보였으니 인터뷰에서 내비친 그의 고성이 허언만은 아니겠다(그는 말로만 떠는 게 아니라 실물을 보여준 셈이므로). 이러한 제도권 바깥의 목소리를 접하며 더불어 기대하게 되는 것은 제도권 '안'의 목소리이다. 한번 겨뤄보자고 청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한국일보(07. 01. 06) 고전을 다 읽으면 세상이 모조리 보인다

꽃자주색 띠지(책 표지에 두른 광고지)에, 그 빛깔보다 더 선정적인 문구(‘생각의 폐활량을 높여라!- 논술 달인을 위한 비밀 레시피’)를 단, 한 철학자의 고전 안내서 10권이 완간됐다. 국내에 적(籍)도 없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철학자 조중걸(50)씨가, 한 두 분야도 아니고 철학 사회 역사 예술 과학 등 서양 지성사의 돌올한 고전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썼다는 <열정적 고전읽기>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은 영국 학자 키토의 <그리스인>부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윌리스 퍼거슨의 <르네상스>,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소개하는 역사편. ‘폴리스’의 성격과 의미를 뒤지는 첫 텍스트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양대 젖줄인 ‘부르주아 혁명(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요컨대 ‘서구 정치사의 흐름’을 되밟아 가게끔 ‘기획’된 책이다. 각각의 고전들이 서구 정치사의 어떤 구비에 있으며, 또 어떤 경로로 흘러가는지 목차만으로도 감을 잡도록 짜여졌다는 의미다. ‘기획’은 개별 텍스트의 구성에서도 엿보인다.

고전이 탄생한 시대적ㆍ지성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전문과 고전 원문(주요 부분 발췌), 원문 번역문, 해설이 각 장을 구성하는데, 장의 꼬리는 다음 장의 머리에 닿아있다. 그 구성이 역사뿐 아니라 철학 사회 예술 과학으로 거미줄처럼 네트워크화한다. 고전으로 훑는 서양 지성사의 개론서이면서, (저자가 의도한 바) 고전을 건져올릴 그물이 되게 한다는, 부분과 전체의 조화로서의 ‘기획’이다. 저자는 부분(책)은 전체(세상)와의 조화로 읽혀야 한다고 말했다. “책도 시대의 소산인 만큼 그 시대의 맥락, 패러다임과 세계관의 연관과 이해 속에서 시대의 일부로 읽혀야 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인문사회계열 77학번. 재학 1년2개월 만에 입대해 82년 제대. 1개월 뒤 프랑스문화원 유학시험에 합격해 그 해 프랑스파리3대학(소르본) 유학. “스승으로 만나 친구로 헤어진”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서양예술사와 서양철학을 전공. 미국 예일대로 건너가 문학사와 수리철학으로 2개의 석사학위, 미술사 음악사 수리철학으로 3개의 박사학위를 획득. 그 해 나이 만 32세.

다수의 논문과 몇 권의 대학 교재(영문)를 썼고,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아카데미의 한계를 깨닫고 귀국, 강단과 거리를 둔 채 집필에 전념(*생계는 누가 돌보는 것인지? 독신인가?). 미 랜덤하우스와 계약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 철학 역사가 어우러질 ‘메타피지컬 인터프리테이션’ 예술사(전10권)를 집필중이다.

저자는 이런 ‘장황한’ 이력의 나열을 불편해 할 것이다. “‘Publish or Perish!(책으로 말하라, 아니면 사라져라!)’ 학위나 경력 따위는 학문 장사꾼에게나 필요한 겁니다.” 대학에 대한, 대학교수에 대한 그의 독설은 거침없다. “한 전직 교수가 ‘50년간 글을 쓴 나도 서울대 논술에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죠? 그 논술문제가 ‘데카르트 자아관과 현대사회의 자아관을 비교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걸 못 쓴다니…. 무식하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도 됐던 인문학자의 서글픈 고백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 교수들의 대체적인 수준이라는 말도 했다(*한 '전직 교수'란 이어령 선생을 말한다. 저자의 배포를 짐작하게 한다. 한데, 이어령 선생은 책으로 치자면 저자보다 20배는 더 많이 써내지 않았나?).

유학 초기,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교양에의 갈증과 소외감에 고전을 읽었고, 그 고전 읽기의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안내서만 읽으면 어떻겠느냐는 에두른 질문에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도 아마추어는 주인공의 운명(스토리)에만 관심을 쏟지만, 진정한 딜레탕트는 운명의 전개양식을 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와 ‘증오의 가지에 사랑이 싹텄다’가 같을 수 없지요.”

암벽 등반을 즐기고 플라이낚시광(狂)이라 6~8월은 캐나다에서 산다는 철학자. “인문학은 병적인 행복을 정상적인 불행으로 만드는 학문”이라며 세속의 기쁨을 멀리하라고 말하는 학자. 돈과 상을 마다하고 지적 희열과 자유 속에 침잠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수학 천재 페렐만을 연상시키는 그는, 만 40살이 된 기자에게도 “공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말했다.(최윤필 기자)

07. 01. 06. - 07.

P.S. 검색해보니까 조중걸씨는 심산 스쿨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올해 진행할 계획이며,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서양미술사 전반에 대한 그의 해석(철학적 해석)을 담은 원서를 조만간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아놀드 하우저를 넘어설 만한 대작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저자의 포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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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7 22:32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대단한 학력이군요. 다양하게 또 많게.

로쟈 2007-01-07 22:39   좋아요 0 | URL
세 개의 박사학위논문을 동시에 썼다는 게 믿기진 않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하긴 합니다(우리 시스템상으론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논문 등을 제출해야/혹은 시험에 통과해야 박사학위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에).

biosculp 2007-01-10 17:20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책 보았을때 뭔 또 애들 상대 논술책인가 하고 들쳐보지도 않았었는데 다시 봐야겠군요.
심산에 인터뷰한내용이 있더군요.
http://www.simsanschool.com/bbs/zboard.php?id=board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4

로쟈 2007-01-11 00:41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술' 파트만 구입했는데, 아예 참고서 매장에 가 있더군요. 번역도 안된 책들을 정말로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것인지, 컨셉은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논술교사들에게는 유익해 보이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