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두님의 서재에 갔다가 '신간 서적'으로 띄우신 책들 가운데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중앙, 2007)이 들어 있는 걸 보았다.

만두님의 설명은 "나치의 치하에서 900여일동안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킨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과 인간, 투쟁과 역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리라."이다. 장르소설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지만, 일단 '레닌그라드'와 '에르미타주'란 말에 자동반사적인 흥미를 갖게 되는데, 알라딘의 소개는 턱없이 부족하다(출판사의 성의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작품소개는 전혀 없고, 작가 소개도 달랑 "소설을 쓰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뉴욕 시어터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 2007년 현재 작가이자 교수로 활동 중이다." 두 줄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는 수없이 손품을 팔았다.

먼저, 저자인 데브라 딘의 소설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가 그녀의 데뷔작이다. 그러니 미국내에서도 별로 알려진 인사가 아니었는데, 데뷔작으로 '붕' 떠버린 케이스이다(이 작품과 관련한 갖가지 인터뷰와 동영상까지 떠 있을 정도이니까). 그리고 알라딘에는 결정적으로 원작이 2003년에 나온 것으로 표기돼 있는데, 작년 3월에 나온 책이다. 분량은 240쪽이니까 '겸손'한 편이고. 그럼에도 반향을 불러일으킨 걸 보면 잘 씌어진 소설인 듯하다. 아래는 현지의 한 리뷰/서평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추천사들이 보이는데, 우리가 잘 아는 이사벨 아옌데와 재미작가 이창래씨의 것이다(작가의 지명도를 짐작하게 한다). 모두 찬사 일색이다.  

A wonderfully spare and elegant novel in which the 900-day siege of Leningrad during World War II is echoed by the destructive siege against the mind and memory of an elderly Russian woman suffering from Alzheimer's. The novel shifts between two settings: 1941 Leningrad, when the city was surrounded by German troops, and the present-day, as Marina, who had been a docent at Leningrad's Hermitage Museum during WWII, prepares for the wedding of her granddaughter off the coast of Seattle in the Pacific Northwest.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first and foremost an eloquent tribute to the beauty and resilience of memory, especially as contrasted to the incomparable devastation that comes with its loss to Alzheimer's.

The Hermitage houses many of Europe's greatest treasures, from Greek and Roman sculpture to masterpieces from the Renaissance and the Dutch Baroque period, to some of the greatest paintings of the impressionists. In the Fall of 1941, the collection's very existence was threatened by the looming German invasion. As German troops tightened their grip on the city, Marina and her colleagues scrambled to evacuate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priceless pieces of art from the former Tsarist Palace. As they did so, they committed the masterpieces of art to memory, creating for themselves and for future generations what they called a "Memory Palace."

The novel shifts between the present and Marina's past almost seamlessly. In the present, Marina is slowly losing her grip on reality. She has trouble deciphering between what is happening at the wedding, and events that took place decades ago during the siege of Leningrad. Scenes of starvation during the war are juxtaposed with the marriage feast, and with Marina's memories of the empty Hermitage and its absent paintings. As Marina's thoughts focus on the Siege of Leningrad through the prism of the empty Hermitage and its absent art-works, it becomes clear that the skill that once sustained her - her ability to remember what she has lost - is slowing leaving her.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a moving novel of tremendous impact, beautifully told. The concluding scene is both heartbreaking and joyful, and one you will not forget soon.

"An unforgettable story of love, survival and the power of imagination in the most tragic circumstances. Elegant and poetic, the rare kind of book that you want to keep but you have to share."
-- Isabel Allende, author of The House of the Spirits, Daughter of Fortune and My Invented Country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an extraordinary debut, a deeply lovely novel that evokes with uncommon deftness the terrible, heartbreaking beauty that is life in wartime. Like the glorious ghosts of the paintings in the Hermitage that lie at the heart of the story, Dean's exquisite prose shimmers with a haunting glow, illuminating us to the notion that art itself is perhaps our most necessary nourishment. A superbly graceful novel.
-- Chang-rae Lee, author of A Gesture Life and Native Speaker

 

 

 

 

해서, 결론은 마음놓고 주문해도 좋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창래의 소설들에도 눈길이 가게 되는군. 아마도 그는 영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작가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한국계) 작가는? 그건 퀴즈다(언젠가 페이퍼에서 다루기도 했었다). 이창래보다는 한 세대 연배가 위인 작가이다...

07. 01. 11.

P.S. 한편, 똑같은 '성모마리아'이지만 보다 대중적인 팝가수 마돈나는 레닌그라드가 아닌 모스크바에서 작년 가을에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 세계투어의 일환이었는데, 러시아정교회에서는 그녀가 신성을 모독한다고 하여 콘서트를 보이콧하기도 했다(관련 뉴스동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svEMOtvoHUc 작년 9월 12일의 공연실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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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1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1 14:43   좋아요 0 | URL
**님/ 그런 소스가 있으셨군요.^^

물만두 2007-01-11 15:00   좋아요 0 | URL
아나톨리 김아닌가요? 암튼 퍼갑니다^^

로쟈 2007-01-11 15:19   좋아요 0 | URL
너무 쉬웠나요?^^
 

얼마전 한국문학이 단편 중심에서 장편 중심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제제기를 담은 최재봉 기자의 칼럼을 옮겨온 바 있는데, 그에 호응하는 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인/비평가 남진우의 칼럼과 이번에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전경린의 인터뷰 기사를 보태놓도록 한다.

한국일보(07. 01. 10) 장편소설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7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이 작품이 유명해지자 한 친구가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고 한다. "이 긴 작품을 다 읽어내려면 결핵에 걸리거나 다리가 부러져서 침상에 오래 누워 있어야 할 것이다."(*내가 이 작품을 못 읽은 것은 아직 다리가 부러진 일이 없어서이다.)

● 단편 편향은 한국문학 발전의 장애물

요즘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해서도 차분히 소설을 읽기보다는 하루 종일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TV에 넋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일화는 역으로 현단계 한국문학이 가진 취약한 부분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즉 한국문학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음미할 수 있을 만큼의 유장한 호흡과 일정한 규모를 지닌 작품, 다시 말해 장편소설의 창작에 그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문학의 중심을 소설이 차지했다면 그 소설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장편이다. 하지만 한국문단에선 신문학 초창기부터 유독 단편소설이 강세를 보여왔고 이 현상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제도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가 존재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단편소설에 대한 정도 이상의 편향은 이제 한국문학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 최근 세계화의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한국문학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뛰어난 장편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 독자가 외국소설을 읽을 때 자연히 장편에 손이 가는 것처럼 외국 독자들도 한국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장편소설부터 찾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편소설의 진흥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범문단적으로 단편을 덜 쓰고 장편에 주력하자는 식의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까. 당연한 사실이지만 요란한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장편에 몰입하고 거기서 문학적 경제적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각종 문학상이나 정부의 지원에서 장편소설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다.

현재 우리나라엔 수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유명 문학상이 대부분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신인 공모를 제외하고는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은 극히 희소하다. 심지어 단편과 장편과 창작집을 두루 섞어 심사하는 문학상도 있는데 이는 마라톤 선수와 100미터 달리기 선수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평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아니다. 문예진흥위원회 등 관련 단체에서 창작 지원을 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 문학상, 지원도 장편에 인센티브를

지금처럼 문예지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우수작을 선정해서 지원하는 방식은 심하게 말하면 장편소설을 쓰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랜 기간 고생해서 쓴 장편소설로 받을 수 있는 초판 인세가 불과 얼마인데 단편소설 하나로 그보다 훨씬 많은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작가들이 당장 집중할 장르가 무엇일지는 자명하다.

단편소설을 열심히 잘 쓰다보면 저절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의 위기니 죽음이니 하는 추상적 주제에 매진하기보다는 한국문학을 진작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방안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남진우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ㆍ시인)

경향신문(07. 01. 11) 전경린 “단편써야 먹고사는 풍토 안타깝다”

지난해 발표한 단편 ‘천사는 여기 머문다’(‘문학동네’ 여름호 수록)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전경린씨(45)가 단편 위주로 흘러가는 현재 한국문학 풍토를 비판했다. 전씨는 지난 9일 이상문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문단 구조가 단편을 쓸 수밖에 없는데 독자들은 이야기가 풍부한 장편에 목말라하고 있다”면서 “장편이 쏟아져 나와야 한국문학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전업작가들이 단편을 선호하는 이유는 우선 문학계간지에 수록될 때 원고료를 받을 수 있고 다시 소설집으로 묶어낼 수 있는 데다 ‘연봉’ 정도의 상금을 주는 문학상 또한 단편 위주로 돼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시행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 역시 대부분 단편에 주어진다. 문예위는 지난 한해동안 계간지에 실린 우수작품 144편에 대해 각각 300만원씩 지원했는데 이중 장편은 10여편에 불과하다. 이 지원금은 한 작가가 1년에 3번까지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단편 3개만 잘쓰면 기초생활비는 건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반면 장편소설은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써봤자 전적으로 시장판매에 기대는데 현재의 수천부 판매량으로는 원고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문예지가 대중성보다 문학성 위주로 쓰여지는 단편을 주로 수록하기 때문에 장편을 발표할 지면이 없다. 작가 입장에서도 장편 연재의 경우 이미 발표된 부분을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고칠 수 없다는 부담 때문에 탈고까지 거친 뒤 한번에 발표하는 전작(全作)을 선호한다.

전씨는 “한국문학이 활성화됐던 1970년대를 돌아보면 박완서 최인호 이외수 등의 선배들이 독자와 호흡하는 장편을 쏟아냈다”면서 한국작가들은 단편에 매달리고 일본소설을 비롯한 외국소설이 장편을 장악한 현재의 문학현실을 아쉬워했다.

그는 또 남녀간의 갈등, 외도, 폭력 등을 주로 그려온 자신의 작품세계와 관련, “통속은 우리 삶과 가장 밀착돼 있는 테마”라면서 “통속에 대한 배제는 우리 문단의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자 독자와의 호흡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성과 통속성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걸어왔다”면서 “통속 범주의 테마들을 새롭게 조명, 창조하고 삶의 한 부분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면 문학의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작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유부남이었던 모경과 결혼한 뒤 의처증과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주인공 인희가 독일의 언니집을 찾은 뒤 낯선 이국땅에서 주변과 삶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줄거리다. 심사를 맡았던 권영민 서울대 교수는 “최근 소설들이 작위적인 구성에 몰두하거나 파편화된 일상을 과장적으로 그려내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통속적 소재를 인간 내면에 자리한 선과 악의 양면성에 대한 예리한 검증과 섬세한 기술로 승화시켰다”고 소개했다. 이 작품을 비롯, ‘빗속에서’(공선옥), ‘아버지와 아들’(한창훈), ‘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천운영) 등 우수작 7편이 실린 수상작품집은 이달 중순 출간된다.(한윤정 기자)

07.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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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키스트 2007-01-11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만한 장편소설이 왜 그렇게 없나 했더니만.. 글로써 먹고살기가 워낙 고달픈 땅인데, 장편 써서는 더더욱 밥 먹기가 힘든 형편이었군요...

기인 2007-01-11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도 신춘문예 같은 경우는 단편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많은 신인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요.

로쟈 2007-01-1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편부터 써서 기본기를 닦고 장편은 쓴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같은 문장으로 이루어지긴 하나 서로 종류(종자)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똑같이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그런 문학상도 있다지만, 어불성설이죠). 현재와 같은 단편중심의 문학 풍토가 한국문학의 성장을 지체시키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식이면 진작부터 판이 끝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딸기 2007-01-1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구나 +.+
다리가 부러져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는 거였군요. ^^

그냥 저는 잘 몰라서 여쭤보는 건데요,
장편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근대문학의 바탕인 근대가 끝나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이야기'가 없어져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작가적인 뇌들이 단편화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만 장편이 사라진 것인가요,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건가요?

저는 소설들 많이 읽었다고는 결코 할 수 없지만,
참 울나라 소설들이 상상력 부족하다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장길산 태백산맥 이런 장편들 보면
'서사'는 있는데 역시나 천재적인 상상력은 없다는 느낌...

제가 찾는 것은 대하소설은 아니고, '게벨라위의 아이들' 같은 소설인데
참 찾기가 힘들어요. (노벨문학상 급 작품만을 찾는 것은 욕심이 과한 걸까요)

로쟈 2007-01-1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은 특이하게도 단편 아니면 대하소설 모드입니다(짐작에 세계문학사에서 희귀한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작가들 탓은 아니며 한국 특유의 문단/문학제도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잡지 중심의 문학사(문학잡지가 이렇게 많은 나라도 거의 없구요). 근대문학은 끝났다고 하나 무게 있는 포스트모던 장편소설들도 외국에선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한국문학의 체질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우리 작가들도 쓰다 보면 또 잘 쓰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07-01-11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공개해도 좋을 만한 유익한 코멘트로군요...

stella.K 2007-01-1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딸기님처럼 상상력도 상상역이지만 소재의 빈약성도 있는 것 같아요. 소재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작가들이 감정놀음만 하려고 하거든요. 상상력이 없으면 재미라도 있던가...

나비80 2007-01-1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까지 한국 문학의 최대 장점이 단편의 융숭함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면의 문제점 때문에 염려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로쟈님은 아예 장편과 단편을 다른 종류의 문학으로 보시기까지 하시구요. 재기넘치는 작가들이 문예지에 단편들만 발표하고 '소설집'으로 묶어내 우려먹는 현실은 꽤나 아쉽습니다. 지적하신 문단 제도나 문학상 운영의 문제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형편이구요. 그런데 장편 체제로의 전환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장편분량의 플롯과 이야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뜨내기 작가들을 걸러낼 수 있는 창구가 되겠지만 실례를 보자면 되려 무절제한 사변담으로 '냄비받침' 한 권을 너끈히 써대는 소설공장장들이 마구 설쳐댈까봐 그게 걱정이지요. 또 로쟈님은 소재 자체의 빈곤으로 보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소재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깜짝 놀랄만한 재료들만 준비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재료를 장악하고 포획하는 힘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쟈 2007-01-1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그게 '세계문학'과 경쟁하려니까 성에 차지 않는 부분들도 있겠죠. 그래도 우리 것이어서 감동적인 대목들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소이부답님/ 자주 뵙네요.^^ 소재의 빈곤 같은 걸 특별히 느끼진 않구요, 저로선 작가적 상상력과 현실감각, 그리고 문장력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공장장'은 걱정하지 않는데, 단편들의 경우에도 어차피 건질 만한 작품은 많지 않거든요. 자체적으로 걸러지고 걸작들이 남게 될 거라고 봅니다...
 

출판계의 고질적인 관행/병폐를 짚어보는 기사를 옮겨온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종합/정리한다는 의미는 있겠다. '2007년 한국 출판의 현단계'라고 보아도 좋겠고. 올 연말에는 출판계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기대해보면서 짚을 건 짚고 넘어가도록 해보자.  

 
뉴스메이커(07. 01. 09) 출판계의 고질병 ‘스타마케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과 ‘마시멜로 이야기’(한국경제신문). 두 책의 공통점은 2006년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12월말 현재까지 70만 부가 팔려 2007년 하반기 100만 부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는 2006년 8월 이미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베스트셀러라는 점 외에도 두 책의 공통점은 공지영과 정지영이라는 ‘스타’가 각각 저자와 번역자라는 점이다. 물론 ‘마시멜로 이야기’는 정지영이 아닌 제3의 인물이 대리번역한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시멜로 이야기’가 밀리언셀러로 등극하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10대, 20대에 인기가 높은 정지영이라는 TV스타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정지영은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까지 ‘SBS 뉴스퍼레이드’ ‘접속 무비월드’ ‘출발 모닝와이드’ ‘TV문화지대-낭독의 발견’ 등을 진행하며 지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출판사는 이 점에 착안, 책 광고모델로도 정지영을 내세웠고 수차례에 걸쳐 팬사인회도 열었다.

공지영 소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역시 그가 지닌 스타성과 무관치 않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뿐 아니라 일본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펴낸 ‘사랑 후에 오는 것들’(소담출판사)도 2006년 28만 부가 판매됐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문학성 외에도 대중이 공지영이라는 스타작가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그의 책 판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지영은 2006년 5월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황금나침반)를 출간했다. 이 산문집에서 공지영은 늘 왕따였던 어린시절 이야기와 세 번 결혼해 세 번 이혼했고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낳은 사연 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기호 소장은 “이 산문집에 실린 공지영의 인생역정 등도 대중이 공지영이라는 스타작가를 한결 인간적으로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정지영의 대리번역 파문에 이어 최근 출판계를 발칵 뒤집은 또 다른 사건은 대필 논란이다. 유명 화가 겸 방송인 한젬마의 최근작 ‘화가의 집을 찾아서’와 ‘그 산을 넘고 싶다’(샘터)가 거의 전적으로 대필작가에 의해 완성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출판계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대필작가, 일명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그림자작가 또는 유령작가)에 대한 환기를 불러 일으켰다. 고스트라이터는 수려한 문장력과 적절한 비유로 책을 완성도 높게 만들지만 책 판권정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필자이기 때문에 그림자작가 또는 유령작가로 통한다.
 

 

 

이들의 역할은 저자가 쓴 원고를 좀더 매끄럽게 손보는 윤색 수준부터 완전 대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도움을 얻어 책 판권정보에 이름을 올린 저자는 명예와 인세(보통 판매수입의 8~10%)를 챙기는 반면 대필작가는 대부분 인세 대신 원고지 장당 얼마씩 계산하는 식의 수고비를 받는다.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는 “가령 대필자에게 원고료로 500만 원을 지불하기로 계약했고 책의 정가가 1만 원이라고 하면 초판을 5000부 찍어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대필자에게 주고 재판부터 발생하는 모든 인세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에게 준다”고 설명했다.

대필은 주로 자서전 위주로 이루어져왔다. 작가지망생들이나 배고픈 문인들이 부업으로 정치인이나 재벌총수의 자서전을 대신 써주는 것으로 이는 가장 흔한 대필의 형태이다. 출판계 풍문에 따르면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국내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손꼽히는 A씨가 2억 원을 받고 대필했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도 대필자가 따로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문인 중 대필작가 시절을 한번쯤 거치지 않은 이는 드물다. 그러나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에 딴죽을 거는 이는 없다.

문제는 이처럼 자서전 위주로 이루어지던 출판계의 관행이 이제는 자기계발서나 수필, 동화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출판관계자는 “소설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발간되는 서적의 50% 이상은 고스트라이터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는 100%, 베스트셀러 중 6~7권은 대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젬마의 두 책이 문제가 된 것도 이 지점이다. 맨 처음 한젬마의 두 책에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한젬마가 자신이 직접 쓴 초고라며 구성작가에게 준 것은 메모와 자료 더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 직후 각종 인터뷰에서 대필작가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는 “한젬마씨는 자료라도 줬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심한 경우 대필작가가 취재와 집필을 다하고, 책 판권정보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마지막 교정지만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대필관행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출판사의 도를 넘는 대필관행이 ‘스타’를 내세워 판매부수를 높이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는 점이다. 한젬마의 경우 1999년 ‘그림 읽어주는 여자’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명진출판)를 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출판계에서 명진출판은 기획출판을 통해 스타 저자를 많이 배출한 출판사로 이름이 높다. 1999년 당시 한젬마를 출판사에 소개한 출판전문가 김영수씨(김&정 기획실장)는 “한젬마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에 예쁘장한 외모여서 스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명진출판이 한젬마의 이와 같은 스타성을 더욱 부각시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명진출판이 내놓은 두 책과 이번에 문제가 된 샘터사의 두 책의 표지사진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촬영한 한젬마의 모습이다.

 


김영수씨는 “요즘엔 작가도 이미지가 따라주지 않으면 책이 안 팔린다”며 “이는 소설부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책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글이 50%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외모나 경력, 사생활 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때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신문 등 인쇄매체와 TV 등 영상매체다. 신문이나 TV를 통해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쉽게 유명인이 되고 이는 곧 책 판매와 직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책 출간과 동시에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책 성향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을 섭외해 저자를 직접 출연시키면서 스타 만들기에 힘을 쏟는다. 김영수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출판사들은 기획을 통해 스타 만들기가 가능한 사람에게 자전적 에세이를 의뢰하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아예 연예인 등 스타를 내세운 에세이도 줄을 이었다. 1998년 박원숙의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중앙M&B)부터 1999년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2004년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오래된미래) 등 많은 책이 나왔다. 이 중 서갑숙의 ‘나도 때론…’은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다.

그러나 정지영과 한젬마를 둘러싼 파문에서 보듯 부작용도 적잖다. 글솜씨는 물론 너무 바빠 원고를 직접 쓸 시간조차 없는 스타들을 내세우면서 대리번역, 대필문제가 대두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글솜씨가 없는 전문가가 글솜씨가 있는 이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전문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마담으로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고 책의 내용 대부분이 대필자의 창작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출판을 통해 스타가 된 이가 심각한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일도 있다. 1995년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언제나 한국인’(대원미디어 출간)의 주인공 에리카 김(한국명 김미혜)이 한 사례다. 문제는 그의 동생인 김경준씨가 일으켰다. 김씨는 2001년 크게 회자된 ‘옵셔널벤처스 금융사기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전 시장은 2000년 김경준씨와 함께 서로의 머리글자를 딴 ‘LK이뱅크’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김씨는 2001년 당시 코스닥 기업이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운영하다 거액의 회사 자금을 유용하고 미국으로 도망쳤다. 인터폴의 수배를 받던 김씨는 2004년 5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현재 LA 메트로폴리탄 디텐션 센터에 수감돼 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이 전 시장에게 김씨를 소개한 이는 다름아닌 베스트셀러 저자로 명성을 높인 에리카 김이었다.

출판계에서는 정지영과 한젬마를 둘러싼 파문을 ‘출판계의 황우석 사태’라며 자조한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유영준 팀장은 “국민을 상대로 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사기극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과학계 전체가 욕을 먹고 위축되지 않았느냐”며 “마찬가지로 자기가 쓰지 않은 책을 자신이 썼다며 명예와 인세 등 달콤한 과실만 먹은 이는 비난받아야 하지만 잇따른 이 두 번의 파문에 의해 출판계 전체가 위축될 수 있어 염려스럽다”고 토로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나 출판사들이 두 번에 걸친 파동으로 보조작가가 필요한 서적마저 출간을 꺼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대리번역과 대필, 사재기 등 출판계의 도덕성 시비가 당분간 봇물 터지듯 터질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출판계 스스로 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례사비평이 한국문학 죽였다”

 


출판계의 ‘스타 마케팅’은 비단 요즈음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 소설이 한창 대중적 사랑을 받던 시절, 즉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소설가를 ‘스타’로 띄우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책의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당시의 마케팅은 대리번역, 대필, 사재기 등으로 얼룩진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와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언론을 통해 띄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등 많은 독자의 아낌을 받았던 작가들이 이때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스타를 만들어낸 주역은 출판사와 평론가, 주류 언론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특정 스타 작가의 작품이라면 완성도와 상관없이 한국 최고의 문학작품인 양 소개하는 주례사 비평이 평론가와 언론의 입을 통해 잇따랐다”며 “궁극적으로 이런 문화가 한국문학을 절벽으로 내몬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례사비평이란 비평가적 양심보다 출판사, 학연·지연 등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혀 마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듯 작품과 작가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풀어놓는 비평행위를 말한다. 2002년에는 이런 잘못된 비평행위를 정면으로 비판한 ‘주례사비평을 넘어서’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비판 없는 비평이 몰고 온 비평의 타락과 문학의 위기’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이 책에서 김명인, 고명철, 이명원, 홍기돈, 김진석, 신철하, 하상일, 진중권 등은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김형중 등 스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기호 소장은 “평론가와 언론은 주례사비평을 일삼고 스타 작가들은 작품을 공들일 여유조차 없이 비슷한 성향의 작품을 연달아 성급하게 생산하면서 현재 한국문학의 자멸을 초래한 것”이라며 “요즘은 팩션이나 일본소설을 제외하면 공지영과 김훈 외에 초판 3000부 이상 팔리는 책조차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침체를 면치 못하자 지난해부터 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는 ‘힘내라, 한국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문학회생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수십억 원의 복권기금을 이용해 우수문학도서 구입과 배포,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원고료 지원, 우수 문예지 구입과 배포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학회생프로그램이 오히려 한국문학을 한층 더 고사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원하고 한국문학을 출판한 출판사의 해당 책을 사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근원적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정도의 미봉책’이라는 시각도 적잖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국가에서 한국문학의 침체를 손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자세는 좋으나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작가나 출판사에 대한 지원이 궁극적으로 한국문학을 회생시키는 방안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박주연 기자)

 

07.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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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1-11 08:08   좋아요 0 | URL
이명원이나 권성우처럼 주례사비평을 다룬 책을 쓰면 거의 안팔리더군요.... 강준만도 그렇구.... 어린 물고기를 싹 잡아서 수산자원을 말리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로쟈 2007-01-11 08:48   좋아요 0 | URL
칭찬/아부도 너무 자주하면 값이 떨어지는 게 상례이죠. 서로 쓴소리 안 하는(같은 식구들끼리는 더더욱) 미풍양속 덕분에 말의 값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비평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문학은 노벨상을 여럿 배출하고도 남을지 모릅니다(고래도 춤춘다니까). 이젠 좀 식상한 문구가 돼버렸지만, '주례사비평'에 대한 비판도 궁극적으론 다른 스타일의 비평을 제시하는 쪽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게 잘 눈에 띄지 않네요...

기인 2007-01-11 08:52   좋아요 0 | URL
아.. 서울대 미대를 나오고 예쁘장해서 스타성이 있는 '한젬마'라니...
미인은 괴로워~
이런.. 저는 요즘 열심히 단편소설 습작하고 있는데, 베스트셀러를 쓰려면 성형수술과 헬스장 가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오.. 근데 장동건 외모고 소설을 쓴다면 ㅋㅋ
내가 쓴 영화에 내가 나왔네~ (맷 데이먼 이군요 ^^; )

기인 2007-01-11 08:54   좋아요 0 | URL
한젬마 씨는 좀 특이하게 생긴 것 같은데, 정지영 아나운서는 진짜 이쁘네요. tv가 없어서 몰랐어요. 어쨌든 퍼갑니다.
이제 작가도 기획사 시대! 아니; 이미 기획사가 있는 거네요;;;

나비80 2007-01-11 23:39   좋아요 0 | URL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들 중 찬사를 받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는 형국이니 비평가들의 검증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지난 연말에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를 쓰신 이명원, 고명철, 하상일 선생님 등과 만나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류 문단의 경계를 받는 분들이시지만 한국 문학을 바로 잡으려는 열의가 대단하시더라구요. 그분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평의 지평을 열어줄 건강한 신인들이 계속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로쟈님이 걱정하셨던 새로운 비평의 시대가 좀 수월하게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비평가들의 치밀하고 정교한 비평 작업이 모든 조건앞에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더불어 독자들도 한국 문학에 대한 주체적인 관심과 질책뿐 아니라 애정도 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쟈 2007-01-12 00:42   좋아요 0 | URL
기인님/ 거의 '공익은 한가해' 수준이시네요. 소설 습작까지 하시고. 내년 신춘문예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소이부답님/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인 2007-01-14 11:25   좋아요 0 | URL
ㅋ 원래 공익은 그렇습니다. 김연수 선생도 공익 때 소설 열심히 써서 등단했다죠. ㅋ 저는 구상만 많이 해요. 얼른 '물질화'해야 하는데. ㅎㅎ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몸젠의 <원치 않은 혁명, 1848>(푸른역사, 2006)이 출간됐다. 작년말이다. '몸젠'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찾아보니까 내가 들어본 몸젠은 다른 '몸젠들'이었다. 그의 조부는 고대 로마사연구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테어도어 몸젠이고, 아버지 역시 <비스마르크>(한길사, 1997)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 빌헬름 몸젠이다. 내가 이 볼프캉과 혼동했던 역사학자 한스 몸젠은 그의 쌍둥이 형제였다. 이 만한 가계면 적어도 역사학계의 다윈가나 헉슬리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소개에 따르면 볼프강 몸젠은 "1968년부터 1996년 은퇴할 때까지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근세사 부문 정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전공은 제국주의 시대이지만, 그가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자유주의에서부터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다. 막스 베버에 관한 전문가로서 베버 전집 간행 작업을 총괄했으며, 1988년부터 4년간 독일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 간략한 이력에 출생과 작고 년도는 빠졌는데, 1930년 11월 5일에 태어나서 2004년 8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형제 한스는 아직 생존해 있다.

일단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의 저작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지만, 책은 부제대로 '1830년부터 1849년까지 유럽의 혁명운동'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러시아 지성사에서 사실 1789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가 바로 1848년이기 때문이다(얼마전에 관련 기사를 옮겨온 적이 있는 알렉산드르 게르첸 같은 경우도 1848년 혁명에 환멸을 느껴서 서구파에서 중도적인 슬라브파로 '전향'하게 된다). 그간에 이 시기는 홉스봄의 책들 정도로 카바하고 있었는데, 몸젠의 책이 '본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소개에 붙어 있는 역자의 말을 참조해보면 이렇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강조했던 것처럼, 19세기 서양의 역사는 "혁명의 시대"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부터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그리고 1871년 파리 코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역사는 정치적 소용돌이와 휴지기가 연속적으로 교차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모든 사건들 가운데서도 역사가들이 1848년 혁명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새로운 산업사회의 주축을 이루게 된 노동자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때라는 점이다. 둘째, 1848년을 계기로 유럽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움직여 온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양대 바퀴가 엄청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은 그 후에 닥쳐올 수많은 파란과 비극의 시원이 되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 '파란과 비극'의 구도 안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이면서도 세계사적으로는 1848년 체제에 속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1987년 체제 전환을 위한 개헌논의가 한창 벌이질 듯한데 거기에 덧붙여 좀 거시적으로 1848년 체제에 대한 성찰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래는 몸젠의 타계 이후에 나온 가디언지의 추모기사이다. 저자에 대한 유익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옮겨놓는다.  

Wolfgang Mommsen

A leading German historian, he brought academics together to further the understanding of his country's past

Richard J Evans
Tuesday August 17, 2004

The historian Wolfgang Mommsen, who has died of a heart attack while bathing in the Baltic Sea at the age of 73, was a leading member of a remarkable generation of liberal and left-leaning historians who championed a more critical attitude to the German past from the 1960s onwards.

He came from a famous family of scholars: his great-grandfather was Theodor Mommsen, a leading late 19th-century liberal and winner of 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 for his trilogy on the history of ancient Rome. Visitors to Wolfgang's family home in Düsseldorf, overlooking the Rhine, could not escape noticing the large gallery of photographs of the many eminent professors whom he numbered among his ancestors and relatives. His father, Wilhelm Mommsen, was also a historian.

So, too, was Wolfgang's identical twin brother Hans, whose career matched his with uncanny precision. After studying in Marburg, Wolfgang obtained his doctorate in Cologne in 1958, in the same year as his brother was awarded his PhD in Tübingen. Both were appointed to chairs in the same year, 1968: Hans in Bochum, Wolfgang a stone's throw away in Düsseldorf.

To attend a German historical conference where both were present was an uncanny experience, as each, in true professorial style, flitted from one parallel session to the next, making participants who did not know them wonder why the same historian had to make two different contributions to the same discussion within the space of a few minutes. Hans smoked and drank, while Wolfgang did not; and seeing them together was like seeing the effects of 40 years of alcohol and tobacco on the same body: Wolfgang was undoubtedly the leaner and fitter of the two, though even he perhaps was throwing caution to the winds when he plunged fatally into the cold waters of the Baltic.

While Hans eventually became an important historian of Nazi Germany, Wolfgang specialised in the Imperial period, from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to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His dissertation, on Max Weber and German politics, published in English in 1984, must surely be one of the most brilliant debuts a historian has ever made: it revolutionised our understanding of the 20th century's most influential sociologist by setting him firmly in the context of his times, and showing him to be a liberal nationalist and imperialist, much to the horror of many of his admirers. He went on to demonstrate that a knowledge of Weber's political thought and action was essential if we were to grasp accurately his theory of power. This was an outstanding achievement, and Wolfgang followed it up by playing a leading role in editing a new, comprehensive edition of Weber's works; his dynamism was essential in pushing on towards its completion.

The Mommsens were related to Weber by marriage, so there was something particularly iconoclastic in Wolfgang's book, which caused a huge storm when it first appeared. Building on this, he went on to produce a wide range of studies on German liberalism and on imperialism. But in the central period of his career, it was as an academic politician and administrator that he made his mark. A spell as a British Council scholar in Leeds at the end of the 1950s had made him into something of an Anglophile: it was a mark of his acculturation that the best gift one could take him on a visit to Germany was a packet of plain English tea - Liptons, PG Tips or Brooke Bond, not the fancy concoctions that are all one can obtain in German grocery stores. So it seemed natural that he should take over as director of the recently founded German Historical Institute in London in 1977.

Wolfgang's energy quickly made the institute into the most important centre for British historians working on Germany. He raised large sums of money, building up a well-stocked library and moving the institute into spacious and elegant new premises on the corner of Great Russell Street and Bloomsbury Square. He attracted a brilliant generation of young German historians as research fellows. And above all, perhaps, he organised a string of important conferences, of which the most influential was held in 1979, on state and society in Nazi Germany. The vehemence of the clashes between those who argued that it all came down to Hitler, and those who argued for the primacy of structural forces, took many observers aback, and still reverberates today.

In such a setting, Wolfgang was in his element. His love of controversy found another outlet in his cogent contributions to the debate that raged in Germany in the mid-1980s over whether the time had come to draw a line under the Nazi past: Wolfgang was sharply critical of those, such as the rightwing historian Ernst Nolte, who thought it had. All of this was too much for the conservative government led by Helmut Kohl that came to power in West Germany in 1982, however, and Wolfgang was effectively forced to return to his chair in Düsseldorf in 1985, leaving the institute in less energetic hands.

Wolfgang quickly found another role as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of German Historians from 1988 to 1992, and in this capacity took a lead in arguing against those who saw German reunification as the opportunity for a more nationalist view of the German past. In the mid-1990s he produced his masterwork, a huge, two-volume history of Germany from 1850 to 1918, elegantly written, comprehensive, and full of stimulating insights and material scarcely known even to specialists. On their simultaneous retirement in 1996, the Mommsen twins spoke jointly at a seminars in London and Cambridge: their mutual competitiveness had not diminished with time, and it was almost impossible for other participants to get a word in edgeways as each launched into a string of criticisms of the other's paper.

Wolfgang was not always an easy character to work with; he could seem arrogant and self-important, though those who knew him well could see through these traditional social attributes of the German professor to the real man underneath. He was particularly kind to younger British historians, and made those of us who knew him feel that we were making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explaining his country's past, whether we really were or not. His infectious, braying laughter enlivened many an academic occasion and revealed a lighter side to his nature.

His perpetual restlessness and youthful energy led him, in his 60s, after his children had grown up and left home, to leave his wife for a graduate student. However, the relationship did not last, and Wolfgang spent his final years in a bachelor apartment in Berlin, continuing to work on the Weber edition and to publish books, the most notable of which was a study of Germany's part in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He is survived by his wife Sabine and their four children. 

07.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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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10 21:22   좋아요 0 | URL
아 퍼갑니다 ^^ 최근에 하비의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 읽었는데, 1848과 1871 사이의 파리 모습들을 그리고 있어서 1848과 1871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답니다. 읽으면서 계속 전태일 열사, 광주항쟁(꼬뮌), 87대투쟁 등이 1848-1871 파리와 '동시대'로 읽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맑스 프랑스혁명 3부작과 에릭 홉스봄 다시 읽어보려고요. ^^

로쟈 2007-01-11 00:34   좋아요 0 | URL
공익을 위해서인가요?^^
 

북데일리에 실린 북리뷰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스지로>(한나래, 2001)에 관한 것이다. 진작부터 갖고 있던 책이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그건 내가 오즈의 영화들을 아직 보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를 즐겨 볼 무렵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고, 요즘처럼 DVD타이틀이 거의 다 출시돼 있기 때문에 약간의 성의와 시간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여유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마침 지난주 용산 부근에 갔다가 <동경이야기>의 DVD를 구한 김에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몇 작품을 관람해볼 생각이다. 이 기사를 챙겨두는 건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데일리(07. 01. 09) 위대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매력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말장난 같지만 특이하게도 오즈는 사후에 일본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오즈 영화가 한국 디비디 시장에 범람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신인 감독들 중 대다수가 오즈의 팬이라며 자처하고 나선다. 빔 벤더스나 허우샤오시엔, 압바스키아로스타미는 그에게 헌사 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오즈를 거론할 때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인다. 무엇이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것일까? 모두가 보는 영화이지만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던 영화가 바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동경 대학교 총장이자 영화 및 문학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정성일 영화 평론가가 자처하여 세르쥬 다네, 김현씨와 함께 스승으로 칭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구로사와 기요시, 슈오 마사유키, 아오야마 신지같은 동시대의 걸출한 감독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한나래, 2001)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비평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좋은 영화평론의 귀결은 그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연애편지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는 좋은 글쓰기의 표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오즈를 열렬히 예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즈의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책의 매혹에 빠질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를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면서 시작하고 그 해체를 부정에서 다시 긍정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첫 번째로 오즈를 예찬하는 언사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오즈의 영화에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낮은 위치의 카메라는 위치도 변하지 않는다. 이동 촬영이 거의 없다. 부감은 예외적 경우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오즈 영화를 칭송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사실은 거의 다 부정적인 언사로 이루어져있거나 결여를 지칭하는 언사로 지칭되어 있다. 이런 언사들인 오즈를 더욱더 세밀하게 바라보기를 가로 막는 장치였으며 벽으로 작용하였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그런 것을 모두 삭제하고 부정적 언사가 아니라 긍정의 언사로 다가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 이외의 점을 지적하고 그 불가시함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즈의 영화는 부정적 언사들과 함께 단조롭다거나 혹은 “가족주의”드라마로 화자되어왔다. 그래서 그 단조로움 안에서 모든 영화들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존하지 않는 오즈의 작품들을 시나리오 속에서 재발견하거나 서구 비평가들에게 무시되어왔던 오즈의 초기 무성영화와 필름 느와르 속에서 견고하게 굳어져 있는 오즈적 일관성을 탈피한다. 그리고 영화 역사서에 줄곧 등장하는 그런 비평과 평가들을 일부 부정하거나 혹은 긍정하지만 그 비밀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하스미 시게히코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영화를 해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말하거나 혹은 먹는 것을 말한다. 또는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딸이 시집을 갈 때 갈아입었던 옷의 비밀, 혹은 남성들이 갈아입었던 옷의 의미와 먹는 것을 통하여 내부와 외부를 연결짓는 오즈의 내러티브 연결법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내부와 외부를 차단 된 것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게 했던 오즈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또한 누구도 계산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중에 하나가 오즈의 딸들이 거의 비슷한 연령대에 머물러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즈의 영화가 세트로 촬영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집안 구조의 단일성과 그 단일성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세트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 세트 구조의 해체는 곧 오즈의 카메라와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알려주며 그 시선이 부딪치는 내부의 차단성에 대해서 우리가 공공연히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나 1층과 2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은 영화상에는 존재하지만 세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가시의 영역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계단은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붕 떠버린 2층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설명하고 그 1층과 2층의 공간에서 구분되는 성역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책은 후반부에 도달해서 오즈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비밀을 풀기 시작한다. 왜 오즈의 영화에서는 환기작용을 하듯이 종종 이유 없는 하늘과 공장의 굴뚝 혹은 빨래가 등장할까? 그 설명의 시작에서 하스미 시게히코는 인물들이 모두 이동할 때 나란히 서있다는 것과(이것은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장면으로 항상 걸어갈 때 인물들은 나란히 걷게 되는 특징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선의 등방향성이다. 외부로 나아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지하철역에서나 거리에서나 집단적으로 서 있을 때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한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다가오는 오즈의 가상선의 파괴는 오즈가 어떻게 영화적 규칙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영화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동시에 두 가지 시선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오즈가 알고 있었기에 구도-역구도를 이용하여 그 시선을 한 대상이 보는 것처럼 조작한다. 이것은 마치 보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 트뤼포는 오즈의 이런 법칙들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한 사람을 이쪽 카메라에서 찍었다라고 생각하면 다음에 상대를 반대편으로 되받아쳐 찍는 듯 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인상이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연출로, 보는 쪽으로서는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사실 거기에는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버립니다. 카메라가 되받아 칠 때마다 이미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여기에 덧붙인다. “오즈의 시선은 전혀 배려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눈동자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그런 것을 오즈 자신도 충분히 의식하였을 것이다.” 오즈는 그 자신이 “영화에는 문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가상의 선을 파괴하고 영화적 문법을 해체하여 시선을 통한 불안감을 주고 기묘한 공간 감각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될 난제가 도달한다. 즉 그 비어있는 공간과 사물을 쇼트가 느닷없이 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도-역구도 쇼트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두 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쇼트가 바로 그 비어버린 쇼트 혹은 이유 없는 정물들이다. 앞에서 그 실험적 쇼트들은 서로 다른 시선을 만들어 공간을 해체한다. 서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혹은 누군가 한명은 공간에서 이탈해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 정물에서 오즈는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던 사람들 혹은 전쟁 전-후세대 할 것 없이 모든 장벽을 허물고 잠시나마 그 쇼트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오즈적 ‘작품’이 선동하는 영화적 감성이 높아지는 것은 보다 추상적인 동시에 보다 직접적인, 즉 누구나 틀림없이 눈에 간직하지만 쉽게 서정과는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놓치기 쉬운 이미지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단조로운 영화라고 칭해지던 오즈의 평가에서 더 깊게 들어가서 오즈의 일상적인 것들이 어떤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준다. 그렇지만 그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쩌면 오즈 생전에 이런 평가들이 있었다면 그의 초기 영화들이 유실되지 않고 우리가 지금처럼 극장에서 그의 필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오즈가 만들어낸 영화가 전 세계를 울릴 수 있다고 자부하며 오즈의 마음은 동시대적이면서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좋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궁극적으로는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책 읽기를 통해서 경험하게 해준다.(이도훈 시민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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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09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다다미 쇼트를 보기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본 적이 있는..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어서 반갑네요.국민의 25%가 봤다는 '괴물'도 지난 일요일 비디오로 볼 정도로 아기랑 씨름하고 있으니...^^

로쟈 2007-01-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혼하니까 제일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영화더군요. 둘다 영화광이 아닌 다음에야...

2007-01-10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얼른 써주시길!^^

노부후사 2007-01-1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오이를 썰 때 칼에 오이가 많이 들러 붙으시나요?

로쟈 2007-01-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고난도'의 질문이신가요? 오이를 썰 일은 별로 없는데(간혹 냉면을 먹을 때 빼고)...

노부후사 2007-01-1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가 '만춘'에서 구사하는 유머입니다. 오이를 썰 때 칼에 오이가 많이 들러붙으면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로쟈 2007-01-1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질투할 일이 별로 없는가 봅니다(그래서 '발전'이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