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떡에 밥알이 들어가 밥알찹쌀떡
팥도 들어가고 밥알도 들어가고
왜 들어가느냐고 묻지만 않으면
팥도 편하고 밥알도 편하지
쑥은 청정지역 제주 참쑥
충청 노은 쌀에 국내산 팥
그런데 호두는 캘리포니아 호두
밥알찹쌀떡을 위한 긴 여정이구나
굳이 그렇게까지 오느냐고 묻지만 않으면
쑥도 편하고 호두도 편하지
밥알찹쌀떡으로 끼니를 때우며
나는 어떤 떡의 속일지 헤아려본다
굳이 묻지만 않으면 속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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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8-2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지 않겠습니다ㅎㅎ
선생님 스스로가 물어보실것같아
그게 탈이지만요ㅎㅎ

로쟈 2019-08-20 11:07   좋아요 0 | URL
네 서로 묻지 않는 게.~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듣는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퍽치기를 당한 남자다
머리를 감싼 붕대가 그의 알리바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이름을 잊었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결백한 남자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것뿐
과거가 없는 하늘에도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까
아마도 신원조회가 이루어지리라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다녀가고
촛불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꺼지리라
개들은 조용히 짖기로 합의하고
눈꺼풀은 준비된 자세로 안구를 덮으리라
무언의 행렬이 뒤를 따르리라
과거가 없는 남자가 과거로 돌아가는 행렬
비와 천둥이 마중나오는 길
그대는 아직 붕대를 풀지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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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냘픈 시를 생각한다
가냘픔에 대한 시
가냘프디 가냘픈 그녀를 생각한다
그럼 누구를 
그녀 말고 가냘픈
그녀보다 가냘픈
그 무엇을 떠올릴 수 없어서
수초보다 가냘픈
코스모스보다 가냘픈
가냘픈 무엇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나는 가냘픈 마음이 된다
가냘픈 그녀를 따라가지 못해
가냘픈 마음은 수시로 꺾이고 쓰러진다
세상엔 어째서 가냘픈 것들이 있는가
이빨도 발톱도 덩치도 없는
가냘프디 가냘픈 풀꽃들이 있는가
가냘픈 어린 것이 자라 드디어
가냘픈 것이 되다니
가냘프게 존재하는 것이 된다니
나는 쓰러질 것 같은 마음이다
지푸라기여 나를 부축해다오
가냘픔에 대한 시는
가냘픈 마음으로 쓸 수 없다
가냘픔에 대한 시는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가냘픈 말들은 그녀에게 이르지 못한다
가냘픈 말들은 피죽도 못 먹은 말들
어째서 세상엔 가냘픈 말들이
잘나고 으스대는 것들도 많은데
어째서 가냘픈 말들이
겨우 가냘픈 존재들을 가리키는가
겨우겨우 가리키는가
가냘프게 
가냘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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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8-20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냘픈 마음으로 자꾸 읽게 되는 시입니다 가냘픈 아름다움~

로쟈 2019-08-20 11:08   좋아요 0 | URL
저도 자주 읽어봅니다.~

브람스 2019-08-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냘픈 어린 것이 자라 드리어 가냘픈 것이 되다니‘ 이 구절이 맘에 드네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로쟈 2019-08-20 17:51   좋아요 0 | URL
땡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에 있으랴
랭보가 말했다 랭보의 상처가 거들었다
흉터투성이 영혼들이 말쑥하게 걸어간다
아침이고 태양은 빛났다
어제의 상처가 만져진다

무릎이 깨지지도 않았고 
허벅지가 멍들지도 않았지
신촌오거리에서 길을 잃지도 않았어
저녁을 건너뛰었지만 배고프지도 않았어
나는 절반 이상 말쑥했어
눈물이 나지도 않았어
아무일도 없었어
그래도 난민 
같은 

모든 일의 국적은 과거일 테니
아무일이 없어도 
과거를 잃은 난민
과거에서 쫓겨난 난민
같은

나는 아직 시력을 잃지 않았어
아직은 내 다리로 걸어다녀
아직은 손을 떨지도 않지
하지만 

모든 일은 과거가 되지
아침이고 태양은 빛날 테지
나의 태양은 아닐 테지

상처를 다시 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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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누가 대령인가 왜 아무도
편지를 보내지 않는가 내가 대령인가
나는 아무에게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대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령은 무게가 있다 그는
백번 넘게 낙하한 경험이 있다
대령은 특전사 출신이다 아무도
대령을 얕보지 않는다
나는 방에서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
스무 살, 생은 내 앞에 있었다
스물 한 살에도, 스물 두 살에도
생은 내 앞에 있었지만 아무도
뒤를 봐주지 않았다 나는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누가 감히
대령은 나중에 사단장이 되었다
나는 대령을 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대령이 아니다
아무도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나는 인생을 한번 더 살았다
이제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나는 대령에게 편지를 보낼까도 싶다
대령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스무 살때도 생은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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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1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마르케스의 작품을 읽고
쓰셨나 했더니~
헛다리 짚었네요.

로쟈 2019-08-12 12:00   좋아요 0 | URL
제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