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듣는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퍽치기를 당한 남자다
머리를 감싼 붕대가 그의 알리바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이름을 잊었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결백한 남자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것뿐
과거가 없는 하늘에도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까
아마도 신원조회가 이루어지리라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다녀가고
촛불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꺼지리라
개들은 조용히 짖기로 합의하고
눈꺼풀은 준비된 자세로 안구를 덮으리라
무언의 행렬이 뒤를 따르리라
과거가 없는 남자가 과거로 돌아가는 행렬
비와 천둥이 마중나오는 길
그대는 아직 붕대를 풀지 않는 것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