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고전 가운데 하나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가 다시 나왔다. 제목이 <여성성의 신화>(갈라파고스)로 바뀌었다. 제목이 바뀐 건 저자의 반어적인 의도를 살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통용되던 제목을 바꾼 것이어서 좀 번거롭게 되었다. 어떤 책이었나.

˝이 책은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한 확신을 훼손시키고 여성들을 집안에만 가둬두는 교활한 신념과 제도인 ‘이름 없는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해냈다. 흥미진진한 일화와 인터뷰, 통찰력 넘치는 글을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시 나온 덕분에 바뀐 표지로 읽을 수 있게 된 건 다행스럽다. 최초 번역본이 조악한 번역으로 책을 망친 경우라면 두번째 번역본은 뜨악한 표지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들고 다닐 수가 없는 종류의 표지였다). 이번에는 코르셋을 넜었는데 나름 코르셋(탈코르셋)이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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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대표하는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혁명사>(교양인)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애초에는 두권짜리 <프랑스대혁명사>(두레, 1984)로 나왔던 책이니 34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번역자 최갑수 교수는 그 사이에 20대 대학원생에서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전통적 해석‘이라고 한 것은 그에 맞서는 수정주의적 해석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해석의 대표자가 프랑수아 퓌레로 국내에도 그의 책이 번역됐었다. 이념적으로 대비하자면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혁명으로 이해하는 소불의 해석이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면 이에 반대하는 퓌레는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입장에 서 있다.

두 입장의 ‘끝장토론‘이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는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역자후기의 제목이 ‘왜 여전히 소불을 읽어야 하는가‘인 것으로 보아 전통적 해석이 여전히 수세 국면인 것도 같다. 하지만 역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소불의 견해(프랑스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동조한다. 프랑스문학 강의에서도(그리고 뒤이은 러시아혁명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취한다.

프랑스혁명사 관련서는 러시아혁명사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구해놓고는 있는데 이 주제 역시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고심하게 한다. 막연히 남은 여생을 생각하면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독서는 ‘이주의 독서‘나 ‘이달의 독서‘가 되지 않으면 물 건너 간 독서다. 아주 오랜만에 나온 <프랑스혁명사>의 묵직한 개정판을 반가워하면서도 환한 표정을 짓지 못하는 이유다. 인간의 진화가 독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한다. 그래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련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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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과 인간의 폭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주 다시 나온 책 두 권 때문에 갑작스레 엮은 물음이다. 



<중세의 가을>과 함께 하위징아의 대표작 <호모 루덴스>(연암서가)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확인해보니 연암서가판으로 2010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8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기억에 방송대의 '책을 삼킴TV'에서 테마도서로 다룬 적이 있다(김어준 총수가 사회를 맡은 독서토크 프로였다). 그게 벌써 8년 전인가. 하위징아의 대표작들이 이종인 번역가의 번역본으로 모두 대체가 되었는데, <중세의 가을>은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볼까 싶다. 그럴 여유가 있을까. 



폭력의 문제를 다시 떠올린 건 야마기와 주이치의 <인간 폭력의 기원>(곰출판)이 나와서다. 처음에는 <폭력은 어디서 왔나>의 속편인가 했더니 제목을 바꾸어 다시 나온 것이다. 저자는 교토대 총장으로 재임중인(2017년 현재) 영장류 학자다. 야생 일본원숭이와 침팬지, 고릴라가 주 전공분야. 


"세계적인 진화론의 대가이자 일본 영장류학의 기초를 세운 이마니시 긴의 대를 잇는 인물로 평가되는 저자는 40년 가까이 고릴라의 행동을 관찰하고 인간 사회와 비교 연구했다. 그는 아프리카 열대 숲을 오가며 우간다,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등에서 벌어진 내전의 상처를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적 사태에 내몰린 인간을 보며 동족상잔의 전쟁도 불사하는 잔인한 폭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폭력은 어디서 왔나>를 구입해놓고 독서 시기를 놓쳤는데, 생각난 김에 다시 찾아놓아야겠다. 새로 개정된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다...


18.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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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도서출판b)이 새 번역본으로 다시 나왔다. 초판이 나온 게 21세기 벽두였으니 햇수로는 17년 전이다. 17년만에 다시 읽으려니 감회가 없지 않다. 가라타니 고진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것도 20년은 되는 듯싶다.

서문에서 저자가 적고 있는 대로 <윤리21>은 칸트를, 칸트의 윤리학을 다시 읽으려는 시도이고 그런 점에서 <트랜스크리틱>의 짝이 되는 책이다.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강의를 기획했다가 보류하긴 했는데 칸트전집도 나오고 있는 김에 장기적으로 다시 기획해봐도 좋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해하는 칸트는 상당 부분 가라타니 고진이 읽은 칸트다.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출판사의 자세한 소개글을 참고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읽혔다고도 하니까 가라타니 고진 입문서로 읽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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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강의 일정이 남아있지만 매주 목요일 밤이면 고비를 넘겼다는 느낌이 든다. 월요일부터 나흘간의 일정만으로 진이 빠지게 하기에. 이번주만 하더라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오르한 파묵, 프란츠 카프카, 너새니얼 호손, 제임스 조이스, 파울로 코엘료, 토마스 만, 자크 데리다에 대해서 강의했다(내일은 기형도의 시에 대해 강의한다. 비공개강의다). 평균적으로 매주 8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해 강의하는데, 이 정도면 문학강사로서 최다강의자가 아닐까 싶다(물론 건강상으로는 강의를 좀 줄여야 한다).

미국문학 강의에서 호손의 단편들을 읽고 있는데 다음주에는 <주홍글자>에 이어서 쓴 또다른 로맨스로 <일곱박공의 집>을 읽는다. 국내 번역된 호손의 장편소설은 모두 세 편인데 호손은 모두 ‘로맨스‘라고 불렀다. 연애담을 뜻하는 로맨스가 아니라 사실적인 소설과 달리 비현실적인 내용도 포함한 이야기라는 뜻의 로맨스다. 이런 경우는 ‘로망스‘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호손의 단편들은 대략 1831년에서 1850년까지 쓰인다. 그 이후 호손은 <주홍글자>를 필두로 주로 장편소설에 주력한다. 공직자로서의 활동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번에 주요 단편들을 읽으며 호손 문학의 독특한 특징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이 장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게 나의 관심사다. <주홍글자>는 여러 차례 읽었기에 <일곱박공의 집>을 골랐고 다음주에는 이 작품에 대한 견해도 갖게 될 것이다. 남은 장편은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인데, 이 세 작품을 호손은 1850년대 초에 집중적으로 썼다.

<주홍글자>(1850)
<일곱박공의 집>(1851)
<블라이드데일 로맨스>(1852)

작품의 가치나 문학사적 중요성은 순서대로다. 한권만 읽는다면 <주홍글자>이고 거기에 순서대로 더할 수 있다. 강의에서는 <일곱박공의 집>만 다루지만 여력이 있다면 <블라이드데일 로맨스>까지도 이번에 읽어보려 한다. 호손을 언제 또 읽겠는가라는 생각이 이런 부담을 떠안게 한다. 호손의 전기와 함께 당대의 ‘시장혁명‘을 다룬 역사서를 주문해놓은 상태라 나중에라도 다시 다루기는 해야겠다. 주문한 책들의 면목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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