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지난주말보다는 무더위에 적응이 됐지만, 그래도 원고를 쓰기에는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니어서 잠시 머리를 식혀보려고 한다. 세 명의 저자는 미리 골라두었는데, 인터뷰하는 기분으로 한 명씩 거명해본다.

 

 

 

먼저,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 "네 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일본인 최초로 미국예술원 명예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작가"다. 예전에 <치인의 사랑>이라고 번역되던 작품이 이번에 <미친 사랑>(시공사, 2013)이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역자는 김석희 선생.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먼저 나온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문학동네, 2012)과 함께 그의 문학을 대표하게 됐다. 소개는 이렇다.

이국적인 미모를 지닌 열다섯 소녀 나오미를 집으로 들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내로 키우려 했던 주인공이 결국 그녀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예속되어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다니자키의 문학적 주제인 '여체에 대한 숭배'와 '마조히즘과 결합된 관능적 욕망'을 가장 잘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이다.  

탐미적인 일본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거슬러 올라가면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이 원조인지도). 혹은 우리가 '일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상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계였는지도 모르겠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또 다른 대표작은 <세설>(열린책들, 2007)이다. 그리고 유명한 산문집으로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가 있다. 기억엔 <미친 사랑>(<치인의 사랑>)은 예전에 현대문학전집에서 처음 제목을 본 듯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그늘에 대하여>부터다. 대표작들이 새롭게 번역된 만큼 올여름엔 '독보적인 일본 작가'와 만나봐도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미국 작가 제임스 설터다. <어젯밤>(마음산책, 2010)에 이어서 <가벼운 나날>(마음산책, 2013)이 번역됐다(표지에 일관성이 있어서 맘에 든다). 설터는 1925년생으로 아직 생존 작가.

 

 

<가벼운 나날>은 1975년작으로 브렌던 길 같은 작가가 “생존 작가 중 <가벼운 나날>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고 평한 바 있다고. 작가들이 칭송하는 작가의 소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일독해볼 만하다.

네드라와 비리 부부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이른바 '안정된' 결혼, '단란한' 가족의 빛과 그늘을 다룬다. 전원주택에서 두 자녀와 함께 부족할 것 없이 누리는 일상, 그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허무가 숨 쉬고 있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양면'이 아닌 '다면'을 지닌 것이 결혼이자 인생임을 말하며, 그래서 요약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세번째 저자는 작가가 아니라 프랑스의 사회학자, 아니 인류학자다. 마르셀 모스(1872-1950). 그가 삼촌인 에밀 뒤르켐과 같인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서울대출판문화원, 2013)이 번역돼 나왔다. <증여론> 외의 저작으론 처음 소개된 게 아닌가 싶다. 요지는 이렇다고.

기존의 이론들은 분류체계를 인간의 정신이 저절로, 그리고 자연적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설명하는 등 주로 개인의 정신 활동의 산물로 설명했다. 그것들은 표상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정신이 작동하는 원리를 규명하기는 했으나 분류 개념들이 형성되고 결합되는 방식들과 변화의 양상 및 과정들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뒤르케임과 모스는 기존의 인식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분류체계라는 집단표상이 형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작용하는 정신작용의 메커니즘을 추적해 봄으로써, 분류의 기원과 원시적 분류 형태들의 중요성을 논리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고찰해 보려 한다.

학술서에 속하는 책이지만 저자들의 명망 때문에라도 눈길이 가는 책이다...

 

13.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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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이번주에도 국내 저자로만 골랐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중견' 저자들이다.

 

 

 

먼저. <오직 독서뿐>(김영사, 2013)을 펴낸 정민 교수.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이 책의 부제다. 다산을 비롯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 관한 연구와 저서를 계속 펴내온 저자인 만큼 낯설지 않은 테마. 이 주제로 책을 쓰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뻔했다. 어떤 책인가.

허균, 이익, 양응수, 안정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 그들은 어떻게 살아 숨 쉬는 독서를 통해 책의 핵심을 꿰뚫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정립했을까? 어떻게 의표를 찌르는 글쓰기와 기적 같은 학문적 성취를 완성했을까? 마흔 권이 넘는 책을 쓴 인문학자 정민이 오늘날 독서를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옛사람들의 독서법, 내지는 독서 일반론에 관심을 가진 독자로선 필독해볼 만하다. 좀 거슬러 올라가면 베스트셀러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와 <책읽는 소리>(마음산책, 2002)에까지 가 닿을 수 있겠다. 내가 기억하는 정민 교수의 첫 책은 <한시미학산책>(솔출판사, 1996)인데, 음 벌써 17년 전이로군...

 

 

좀 올드한 비유로는 '소문난 책벌레'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책읽기와 세상읽기를 담은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황금비율, 2013)도 이번에 나온 책이다. 서평집 혹은 북칼럼집으로는 <죽도록 책만 읽는>(연암서가, 2009)과 <책과 배우며 살아가다>(해토, 2005)를 잇는 책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책읽기란 어떤 것인가.

이권우는 책읽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는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읽고 비교하며 읽고 비판적으로 읽는다. 그리고는 화내고 지근거리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흐뭇해하면서 소통한다. 이런 소통은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치유의 힘을 준다. 책읽기를 통한 소통이 그저 소통으로만 끝나길 바라지 않는다. 소통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소통을 이끌어내길 바라는 책읽기이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최성일, 표정훈과 더불어 2000년대 벽두에 '출판평론가 시대'를 열었던 '3인방' 가운데 현재로선 유일한 현역이다. '지킨다'는 의미는 그런 뜻으로도 다가온다.

 

 

보통 '철학자 탁석산'이라고 소개되는 철학자 겸 저술가 탁석산의 신작도 출간됐다. <행복 스트레스>(창비, 2013). '행복은 어떻게 현대의 신화가 되었나'가 부제. 행복론에 관한 책들이 끊이지 않고 출간돼 한번쯤 검토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저자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요지는 무엇인가.

철학자 탁석산은 <행복 스트레스>에서 맹목적으로 행복에 집착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행복 담론의 실체를 깊이있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현대인들에게 강요되는 행복 강박증을 ‘행복 스트레스’로 개념화하며, 우리가 종교처럼 떠받드는 행복이 사실 텅 빈 개념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악용될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을 헛수고로 끝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시도때도 없이 중독자처럼 남용하고 있는 '행복'이란 말의 개념사적 정리도 책으로 나온다면 <행복 스트레스>와 좋은 책이 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창비, 2008) 이후 저자의 책은 모두 창비에서 나오고 있는데, <자기만의 철학>(창비, 2011)처럼 주로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책들이다(여기서 청소년은 청년과 소년 사이층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청년과 소년을 합산한 것이다). 

 

 

<행복교과서>(주니어김영사, 2013)를 읽은 청소년이라면 <행복 스트레스>도 같이 읽어보는 게 좋겠다. <행복교과서>란 책은 <행복 스트레스>를 읽다가 알게 된 책인데, 무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펴낸 것이다. 그런 연구센터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는데, '국민행복시대'란 말이 저절로 나온 건 아닌 듯싶다. 나로선 이미 책에다 적은 애기지만, 행복이 인생의 목적인가에 대해선 언제나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생은 죽음으로 종결될 뿐더러, 그렇게 길지 않은 인생도 행복을 위해서라면 너무 길기 때문이다...

 

13.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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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지난주에 이어서 국내 저자들로만 골랐다. 분야는 제각각이다. 먼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속도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평전을 내놓고 있는 김삼웅 선생. 이번에 나온 책은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현암사, 2013)이다. '뜨겁게 점진한 위대한 얼, 도산 안창호의 혁명적 생애'가 부제.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현암사, 2012), <저항인 함석헌 평전>(현암사, 2013)을 잇고 있는 평전인데, 초점은 '신사'가 아닌 '투사' 안창호이다. "‘무실역행’ 사상과 ‘점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안창호의 실력양성론 탓에 안창호는 점잖은 신사 이미지로만 굳어진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안창호가 펼친 독립운동 업적을 올바로 살펴보고 평가했을 때,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도산은 누구보다 두려움 없는 무장독립 운동가였기 때문이다."라는 게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도산에 대한 재평가라고 할까.   

 

 

 

도산에 대한 평전으로는 이태복, <도산 안창호 평전>(흰두루, 2012; 동녘, 2006), 안병욱 등의 <안창호 평전>(청포도, 2005) 등 몇권 더 나와 있다. 그리고 올해가 흥사단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를 기념하여 이광수의 인물소설 <도산 안창호>(세시, 2013)도 새로 출간됐다.

  

 

두번째는 '소문난 자전거 라이더(rider)이자 자전거 라이터(writer)', 홍은택.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전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전력보다도 이제도 '자전거'가 더 앞선 키워드가 됐다. 그의 중국 자전거 여행기 <중국 만리장정>(문학동네, 2013)이 출간됐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한겨레출판, 2006)과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한겨레출판, 2007)를 염두에 두면 오히려 늦게 나온 듯한 감도 있는데, 중국의 덩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람의 눈높이와 가장 비슷한 자전거 안장에 앉아 겪고 바라본 중국의 어제와 오늘, 도시와 농촌,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자전거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중국 자전거 여행에 대한 안내서이자, 이 광활한 대륙을 학습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훌륭한 중국 입문서".

 

 

이번주에는 '다큐PD 왕초' 윤태옥의 중국 여행기도 나왔는데, 놀랍게도 저자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7년 넘게 매년 평균 6개월 정도 중국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한다. 그리고 "여행의 기록을 자신의 블로그에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다듬어서 다큐멘터리나 연재물 또는 단행본으로 내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건 중국 '민가기행'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미디어윌, 2013)로 '음식기행' <중국 식객>(매일경제신문사, 2012), '역사기행' <개혁군주 조조 난세의 능신 제갈량>(역사의아침, 2012)에 이어지는 것이다. 중국 여행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세번째 저자는 심보선 시인. 그러나 시집이 아니라 예술론이다. <그을린 예술>(민음사, 2013). 단독 저작으론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 두 권의 시집에 이어지는 세번째 책이다. "거리에 응집했다 사라지는 예술, 공동체 속의 예술, 평범한 노인의 시, 철거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타들어 가고 부스러지는 우리의 삶 안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그을린 예술’에 대한 사유와 증언"을 담고 있다. '그을린 예술'은 짐작에 '용산 이후의 예술'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 제목은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2010)이란 영화도 떠올려준다...

 

13.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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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는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의 책이 두 권 포함돼 있다. R. 네스와의 공저인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사이언스북스, 1999/2013)와 <진화의 미스터리>(사이언스북스, 2009)가 그 두 권이다.

 

 

 

두 권 다 재구입한 책이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는 다윈의학을 처음 소개한 책인데('진화의학'이라고도 불린다) 부제가 '다윈의학의 새로운 세계'다. 처음 출간시에 구입했으니까 1999년 1쇄본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당장 찾을 수가 없어 다시 구입했다(책은 스테디셀러로 올해 20쇄를 찍었다). 반면 <진화의 미스터리>는 원래 두산동아판(1997년)으로 먼저 나왔던 책이고 그걸 갖고 있지만 역시나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구입했다. 조지 윌리엄스의 대표작은 <적응과 자연선택>인데,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존 올콕의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 2013)를 읽다가 다시금 상기하게 된 이름인데(예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가 알게 돼 <적응과 자연선택>은 원서를 구해놓기까지 했었다), 에른스트 마이어, 존 메이너드 스미스와 함께 20세기 진화생물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학자로 평가된다.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20세기의 다윈'이라고도 불린 에른스트 마이어의 책은 <진화론 논쟁>(사이언스북스, 1998)이 처음 소개됐고(분량도 너무 얇고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다), 이후에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 2002), <생물학의 고유성은 어디에 있는가>(철학과현실사, 2005), <진화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 2008) 등이 더 번역됐다(<이것이 생물학이다>는 절판). <진화란 무엇인가>도 소장도서이긴 한데, 이 역시 어디에 두었는지는 신만이 아실 듯...

 

 

존 메이너드 스미스의 책도 국내에 세 권이 소개돼 있다. <생명의 떠오름>(이음, 2011)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고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후 50년>(지호, 2003)은 공저이며, <40억년 간의 시나리오>(전파과학사, 2001)는 나도 이번에 알게 된 책이다(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지만 번역이 좋지 않다는 귀띔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에른스트 마이어와 메이너드 스미스의 책을 둘러본 것이고, 사실 이 페이퍼는 다윈의학/진화의학 관련서가 더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는 것이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는 원저가 1994년에 나왔으니 거의 20년 전 책이다. 당연히 이 분야에서 그간에 진전된 연구가 없을 리 없다. 다윈의학 초창기의 책이기에 최근의 성과까지 다룬 책이 더 번역되면 좋겠는데, 후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 나온 <문명이 낯선 인간>(곤존, 2012)의 공저자 피터 글루크먼과 마크 핸슨이 바로 진화의학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두 사람이 공저한 <비만, 운명, 질병>(2012)과 <진화의학의 원리>(2009) 같은 책들이 우선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싶다.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있으면 좋겠다...

 

13.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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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압도적인 저자는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김영사, 2013)가 나온 재레드 다이아몬드이지만, 이미 언급한지라 좀 덜 알려진 저자들을 골랐다. 정확하게는 '덜 읽히는' 저자들이다.

 

 

 

먼저 여성으로선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1909년) 스웨덴의 국민작가 셀마 라겔뢰프(라게를뢰프)(1858-1940). 그녀의 장편소설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다산책방, 2013)가 이번에 출간됐다. <닐스의 이상한 모험>(<닐스의 신기한 모험>)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정작 작가가 1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1891)라고(작가의 데뷔작이다!). <닐스의 모험>은 스웨덴 교육계의 부탁을 받아서 초등학교 지리 수업 부교재용으로 쓴 것이라 한다(라겔뢰프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다).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는 1924년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을 맡기도 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 가르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사실주의 사조에 대항하는 신낭만주의의 대표적 작품이라는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1820년대 황량한 스웨덴의 시골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목사 예스타 베를링은 눈부시게 잘생기고 총명한 청년이지만, 외딴 시골에 발령받은 후 술독에 빠져 직무를 등한하다가 파면당한다. 걸인이 되어 죽음에 이른 이 풍운아를 교구의 세력가인 에케뷔 소령 부인이 구해내 자신의 장원으로 데려간다. 에케뷔 소령 부인은 본래 아름답고 선량한 여자였으나, 부모의 강요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후 모진 심성으로 줄곧 살아왔다. 예스타 베를링이 그녀의 휘하에서 장원의 기사로 살아가던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 그와 동료 기사들이 잔치를 벌일 때 악마가 나타나 일러주기를, 소령 부인이 해마다 기사 한 사람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겨주기로 계약을 했다고 밝힌다...

파우스트 전설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데, 주인공 예스타 베를링은 '파우스트의 운명'과 '돈 후안의 로맨스', "아서 왕의 모험'을 합쳐놓은 듯한 인물이라고. 여하튼 여러 모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 국내에 초역됐다.

 

 

 

두번째는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 에밀 시오랑(1911-1995). 그의 잠언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챕터하우스, 2013)가 출간됐다. 부제는 '폐허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 짐작엔 절판됐던 <절망의 맨끝에서>(에디터, 1994; 강, 1997)가 다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시오랑의 책은 여럿 더 나왔었지만 현재는 <독설의 팡세>(문학동네, 2004)만이 절판을 면한 상태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는 저자라 군말을 덧붙이지는 않는다(시오랑 이야기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읽을 수 있다). 오랜만에 읽게 되는 책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같다. 곧 시오랑과도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싶다.

 

 

 

끝으로 영국의 작가이자 '논픽션 스페셜리스트' 제프 다이어. 사진 에세이 <지속의 순간들>(사흘, 2013)로 처음 소개된 그의 재즈 에세이 <그러나 아름다운>(사흘, 2013)이 출간됐다. 나름 '존 다이어의 모든 책'이라고 점 찍어놓은 터라 원서도 바로 주문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존 버거와 롤랑 바르트의 독자는 제프 다이어의 독자이기도 하다. 당신이 존 버거나 롤랑 바르트를 흥미롭게 읽었다면(혹은 아끼며 읽는다면) 제프 다이어 또한 당신의 친구라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그리고 아름다운>에 대해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유려한 책"이라고 평했다. 물론 그런 책이 자주 나오는 건 아니다. 

 

 

영국 가디언지에 소개된 제프 다이어의 서재인데, 지식인의 서재라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서재 분위기다. 흠, 나도 언젠가는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유려한 책'에 도전해봐야겠다. 서재를 먼저 바꿔야 할까...

 

13.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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