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당일배송으로 주문해서 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레너드 카수토의 <하드 보일드 센티멘털리티>(뮤진트리, 2011)다. 부제는 '20세기 미국 범죄소설사'.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니라 '문학사' 책이다. 예기치 않은 분야의 책이어서 호기심과 반가움에 바로 주문을 넣었다. 비록 책이 다루고 있는 범죄소설(혹은 추리소설)의 애독자는 아니지만 '범죄소설의 사회사'라면 관심분야에서 빠지는 것도 아니다.

 

 

책은 저자의 두번째 책인데, 데뷔작은 <잔혹한 인종: 미국 문학과 문화 속의 인종적 엽기성>(1996)이다. 이 역시 흥미로운 타이틀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미국문학을 강의하는 범죄소설 평론가인데,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는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8년 로스엔젤레스 타임스가 선정한 '10대 추리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특이한 건 저자의 최근작이 (편저이긴 하지만) 야구에 대한 책이라는 점. 범죄소설 애독자이면서 동시에 야구 애호가인 듯하다.

 

 

'범죄소설의 사회사'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책은 마르크스주의 경제사가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이후, 2001)인데, 아쉽게도 절판돼 구하기 어려운 책이 돼버렸다. 추리소설에 관한 이론적 저작에는 이브 레퇴르의 <추리소설>(문학과지성사, 2000)과 토마 나르스작의 <추리소설의 논리>(예림기획, 2003) 등이 검색된다. 열혈 독자층에 비하면 이론서의 소개는 좀 빈곤해 보인다.

 

참고로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에는 범죄소설의 주요 작가와 작품 리스트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그것만으로도 꽤 요긴한 정보이지 않을까 싶다...

 

1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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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정리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천방안 중 하나가 '로쟈의 컬렉션'을 정기적으로 써두는 것인데, 가능하면 한 주에 한번씩은 '점검'을 해볼 참이다. 점검이란 게 그주에 혹은 2-3일간 입수한 책들과 안면을 터두는 일이다. 써야 할 원고가 산더미이긴 하지만 원고-기계도 아닌 이상 잠시 바람 쐬는 기분으로 몇자 적는다.   

그래봐야 몇 걸음 못간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일 먼저 꼽을 책이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부글북스, 2011)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부채'란 제목에 끌린 게 아니다. 부채(대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채'란 말에 눈이 커지진 않는다. 신간검색을 하다가 무심결에 저자를 클릭해보니 이런, 데이비드 글레이버, 아는 저자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 2009)에 대해 서평을 쓴 적이 있으니 어찌 모르는 저자랴(그레이버는 자칭 '아나키스트 인류학자'다). 다시 보니 <부채>의 부제가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다. 전작만큼 두툼한 책인데, 사실 아침에 책을 발견하고 바로 주문해 오후에 받았다(알라딘은 당일배송이 아니어서 교보에 주문했다. 어쩔 수 없게도). 일정과 분량 때문에 빨리 읽진 못하겠지만 재미있다면 이 또한 서평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부채>에서 넘어가기 전에 곁가지로 덧붙이자면, 책을 펴낸 부글북스란 출판사가 흥미롭다. 대충 훑어보니 이제까지 내가 산 책이 세 권쯤 되는데, 모두 역자가 정명진 씨다. 바로 부글북스의 대표다. 중알일보 기자출신으로 출판기획자와 전문번역가로 활동한다고 나와 있는데, 자신의 출판사에서 내는 책 대부분을 직접 번역하고 있어서 이채롭다(이건 <정의의 역사>가 나왔을 때 이미 눈치를 챈 사실이지만). 이 정도면 출판계에서 드문 '원맨쇼'가 아닐까. 아니 '1인출판'의 말 그대로 최대치? 아무려나 눈 밝게도 <부채>같은 책을 찾아서 직접 옮기고 펴내준 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독자로서는 말이다.   

 

<부채>와 같이 배송받은 책은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아카넷, 2011)다. 백종현 교수의 칸트 번역이 3대 비판서에 이어 '종교비판'에까지 이르렀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다 어디에 둔 것일까?) 3대 비판서를 구입해놓은 김에 컬렉션 차원에서 마저 구입했다. 예전 번역본으로 이대출판부판을 갖고 있었는데, 1984년에 나온 것이니 이미 한 세대 전이다. 새 번역본을 '재정의 한계 안에서' 구입해 책장에 꽂아둘 만하다.    

어제부터 당일주문으로 받아보려고 애썼던 책은 대리언 리더의 <우리는 왜 우울할까>(동녘사이언스, 2011)이다. 개인적으론 반가운 일이지만 대리언 리더의 책이 계속 소개되고 있는데, 공저인 <우리는 왜 아플까>(동녘사이언스, 2011) 외에도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문학동네, 2010), <모나리자 훔치기>(새물결, 2010) 등이 그의 책이다(<모나리자 훔치기>는 저자가 '다리안 리더'로 표기돼 같이 검색되지 않는다).  

 

우울증에 관한 책으론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 네이션>(민음인, 2011)도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신간이다. 내주에나 주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정신의학에 관심이 생겨서 어제는 <정신의학의 역사>(바다출판사, 2009)를 구입했다. 관련서들이 많지만 크리스토퍼 레인<만들어진 우울증>(한겨레출판, 2010)도 같이 읽어볼까 한다. 소장도서이긴 하지만 이 역시 어디에 있는지는 신만이 아실 듯싶다.   

오늘 배송받은 또 다른 책은 서경식의 <나의 서양음악 순례>(창비, 2011)이다. 추천사를 청탁받고 쓴 인연 때문에 편집자가 보내준 것인데 나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왜 음악에 빠지는가. 불가해한 여성과 같은 존재가 음악이라고 서경식은 말한다. 신분이 다른 연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오페라 주인공처럼 그는 음악에 매혹되어 빨려들어간다. <나의 서양음악 순례>는 순례라기보다는 치열한 연애의 기록이다. 그 기록 또한 불가해한 마력을 품고 있어서 놀랍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치명적인 사랑인가보다!

내가 저자의 책으로 처음 읽은 게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였기 때문에(어즈버 20년 전이다!) <나의 서양음악 순례>에 추천사까지 쓰게 된 건 개인적으로 영광스럽다. 클래식 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저자의 순례는 편안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볼 수 있다. 나부터도 그랬는데, 그래서 '불가해한 마력'을 품고 있다고 적었다.  

음 그리고 또 둘러보니 건축 관련 책들이 있다. 폴 골드버거의 <건축은 왜 중요한가>(미메시스, 2011)는 건축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 구입했다. 건축은 개인적으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라서 주섬주섬 사놓은 책들이 없진 않지만 열독해본 기억이 없다. <행복의 건축> 저자이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예술을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건축의 세계를 알려주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은 그중 최고의 책이다." 국내서로는 김성홍 교수의 <길모퉁이 건축>(현암사, 2011)이 눈길을 끈다. 표지만 보고 고르는 건 아니지만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책 가운데 하나다.

우연찮게도 이야기가 부채에서 시작해서 건축으로 끝났다. 사실 한국인의 부채(대출) 대부분은 집(건축) 때문에 짊어진 것이니(나도 예외가 아니고)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널찍한 서재 공간이 있어서 방바닥에 책을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면 이런 페이퍼는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책들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듯싶어서 인사치레로 적은 페이퍼이기도 하기에... 

11. 11. 19.  

P.S. 페이퍼를 쓴 다음에 배송받은 책은 미셀 옹프레의 <사회적 행복주의>(인간사랑, 2011)다. 옹프레의 '반철학사' 5권으로(전체 6권이다), 3권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인간사랑, 2011)과 4권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인간사랑, 2010)에 이어지는 책이다. 앞으로 세 권 더 남은 셈. <사회적 행복주의>는 공리주의자들과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바쿠닌까지를 다루고 있어서 특히나 관심을 끈다. 아마도 이 시리즈에서는 가장 먼저 읽게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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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1-11-20 11:09   좋아요 0 | URL
뭔가 좋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제가 제대로 이해한지는 모르겠지만 로쟈의 책 중 로쟈의 책이라는 생각이..암튼 좋은 책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11-11-20 23:18   좋아요 0 | URL
소개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책정리'입니다.^^;
 

오랜만에 '로쟈의 컬렉션'으로 분류될 만한 페이퍼를 적는다. 이건 컬렉터, 곧 도서수집가의 기록이다. 지난 몇달 동안 책을 부쩍 많이 구입하고 있는데, 급기야는 인도철학과 고전쪽에까지 손을 대게 됐다. 계기가 된 건 박효엽의 <불온한 신화읽기>(글항아리, 2011)다. '<바가바드기타>는 인도를 어떻게 신비화하였는가'가 부제. 책의 성격에 대해선 저자가 '책머리에'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바가바드기타>의 해설서이다. 해설서이긴 하되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설을 되짚어보고 또 뒤집어보려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해설서인 동시에 여러 해설서의 재해설서이기도 하다.(17쪽)   

'재해설서'라고 하니까 그간에 나온 번역본이나 해설서가 궁금했다. 그래서 세 권 정도를 구입했는데, 저자가 말미에 적은 '더 읽어볼 책들'도 참고했다.  

 

"해설 없이 <바가바드기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곧장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고 추천한 책은 길희성 역의 <바가바드기타>(현음사, 1988)인데, 이 번역본은 <범한대역 바가바드기타>(서울대출판문화원, 2010)로 다시 나와 있다. 역자는 종교학자로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 정통하다. 함석헌 선생이 주석을 붙인 <바가바드기타>(한길사, 1991/2003)도 추천본인데, "함석헌이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이현주 목사가 옮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기타>(당대, 2001)다. "마하트마 간디가 <바가바드기타>를 9개월 동안 매일 강독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인도적인 사유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고. 이 정도면 대충 <불온한 신화읽기>를 따라서 <바가바드기타>를 읽을 만한 준비는 된 게 아닌가 싶다. <바가바드기타>는 어떤 책인가.  

서양 문화를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 하듯, 인도 문화를 이해하려면 힌두교의 바이블인 '바가바드기타'를 읽어야 한다. '거룩한 이의 노래'라는 뜻의 '바가바드기타'는 인도 힌두교의 3대 경전 중 하나로 사촌끼리 왕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한 부분이다. 대학에서 인도 철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저자는 이 책을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해설서인 동시에 여러 해설서의 재해설서"라고 소개한다. 고전에 대한 신비주의와 낭만주의를 버리고 현실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라는 제언이다.(한국일보)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관심을 두다 보니 인도의 고전 <우파니샤드>에도 눈길이 갔다. 그래서 같은 저자의 <처음 읽는 우파니샤드>(웅진지식하우스, 2007)도 손에 넣게 됐는데, '우파니샤드'라는 것이 '단 한 권의 책'을 지시하는 건 아니라고. 전통적으론 108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200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게 '인도식'인 모양이다. 번역본으로 나와 있는 건 이재숙 역의 <우파니샤드1,2>(한길사, 1996)인데, 2권이 품절된 상태여서 구입은 보류했다.  

 

대신에 해설서로 이명권의 <우파니샤드>(한길사, 2011)를 구했고, 이재숙이 풀어쓴 <우파니샤드>(풀빛, 2005)나 펭귄판 영역본 등을 더 구해볼 계획이다.  

 

 

이런 수집벽의 귀결은 물론 <인도철학사>이겠다. 길희성 교수의 <인도철학사>(민음사, 2001)와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1-4>(한길사) 등이 목표점이다. 이 책들을 꽂아둘 공간과 읽어볼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언젠가 인도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아직 알 수 없는 것처럼... 

11. 11. 13.  

P.S. 인도 전공자나 가이드가 몇 명 되는데 인도 델리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이광수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인도는 무엇으로 사는가>(웅진지식하우스, 1998)부터 다수의 인도 관련 교양서와 학술서를 펴내고 있다. 최근의 책은 '인도사로 본 한국사회'를 부제로 달고 있는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이후, 2010)이다. 사실은 지난주에 나온 번역서 라나지트 구하의 <역사 없는 사람들>(삼천리, 2011) 덕분에 한번 더 상기하게 됐다. 라나지트 구하는 인도의 역사학자로 서발턴 연구의 권위자이다.  

 

<서발턴과 봉기>(박종철출판사, 2008)가 라나지트 구하의 책이며, 이 책을 옮긴 김택현 교수의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박종철출판사, 2003)이 서발턴 역사학 입문서쯤 되겠다. 서발턴과 관련하여 더 자주 언급되는 탈식민주의 이론가는 가야트리 스피박이지만, 같은 인도출신 이론가 호미 바바를 다룬 <호미 바바의 탈식민적 정체성>(앨피, 2011)도 최근에 출간됐다.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의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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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3 13:15   좋아요 0 | URL
더불어 추가하고 싶은 바가바드 키타 해설서로 <천상의 노래>(비노바 바베, 실천문학사)가 있어요. 이 책은 비노바 바베가 감옥에서 있을 때 죄수들, 간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것을 모은 거라고 합니다.

로쟈 2011-11-13 13:36   좋아요 0 | URL
네 참고하겠습니다.^^

유부만두 2011-11-13 11:50   좋아요 0 | URL
반가운 페이퍼네요.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읽고있어요.

로쟈 2011-11-13 13:3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인도 출신 작가와 지식인들이 적진 않습니다...

승주나무 2011-11-14 04:34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를 보면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이 깊게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불가촉천민에게 허락된 유일한 경전..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로쟈 2011-11-15 07:49   좋아요 0 | URL
네 서재엔 오랜만이신네요..^^

goghim 2011-11-14 12:45   좋아요 0 | URL
앗! 인도!! 인도는 자신들의 말처럼 '놀라운'나라이지요. 전에 저는 두달 정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경이로움' 투성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거룡 선생의 책들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즐겨 펴?)지요. 몇년 전에 들었던 '인도철학'강의도 저로서는 아주 유익했고, 대체불가인 이거룡 선생의 '풍모'도 '몹시' '인도 답다'(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쟈 2011-11-15 07:49   좋아요 0 | URL
인도에도 다녀오셨군요. 미지근한 태도를 갖기 어려운 나라인 것 같아요.^^

허스키 2011-11-14 17:28   좋아요 0 | URL
아버지 댁에 가면 책장에 바가바드기타 영어 판본이 꽂혀있습니다. 항상 꺼내서 뒤적이기만 하고 읽지 않았네요. 이미 지난번에 아버지 책장에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업어온 통에 이것마저 또 업어오긴 눈치가 보이고...그냥 한 번 더 뒤적거려 봐야겠네요.

로쟈 2011-11-15 07:50   좋아요 0 | URL
아버님이 인문학자이신가 봅니다.^^

허스키 2011-11-15 14:59   좋아요 0 | URL
법학이십니다. 원래 실무를 30여년 하시다가 교수도 하시고, 지금은 정년퇴임 하셔서 두어 강좌만 하시면서 텃밭 일구고 계십니다. 이번에 내려갔더니 요즘 또 논문을 하나 쓰고 계시다고 하더군요. 가끔씩 아버지 책장에서 '이런 책도 읽으시나?'하는 책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도 비가 왔지만 잠시라도 갠 어제는 고속도로가 휴가 차량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비 피해는 피해고 피서는 피서인 것.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지금은 좀 잠잠한 듯하지만) 집밖으론 한 발작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갇힌 사람' 모드로 지냈다. 도서관에 반납하려던 책이 있었지만 며칠 여유가 있길래 포기했다. 그나마 비오는 날씨를 싫어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3월 이후로 유일하게 강의가 없었던 지난주엔 단 하루만 외출했었기에 나름대로는 휴가 기분으로 지냈다. 할일이 많았지만 '할 수 없다'는 심정이 휴가 기분이다. 하지만 '나가수'도 끝나고 새로운 한주를 목전에 두려니 갑자기 두려움이 앞선다. 어쩌자고, 휴일을 다 쉬었더란 말인가!..  

 

다 쉬고자 하는 바람에 서재 포스팅도 하지 않았다. 뭔가 대범해 보이지 않은가, 혼자 속으로 흡족해하다가 떠올린 책은 스테판 하딩의 <지구의 노래>(현암사, 2011)다. 그래, '지구의 노래'를 들으며, 혹은 읽으며 주말을 보냈다고 하면 더 폼이 날듯도 싶다. 생태주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가이아' 관련서이다. 서문을 쓴 린 마굴리스가 한 말. "<지구의 노래>는 세계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학계, 기업 또는 정치적 지지자들이 아니라 이용 가능한 최선의 과학 지식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나는 하딩이 보여준 이 용감하고 성공적인, 세상을 온전하게 보존하려는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일단 한국어가 '세계 주요 언어'에 일찌감치 포함돼 다행스럽다. 그리고 '지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한번 더.   

 

그리고 떠올린 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후마니타스, 2011). 남미쪽 저자들은 이름만으론 국적을 알기 어려운데, 갈레아노는 이번에 코파컵에선 우승한 우루과이 사람이다. 이번에 나온 건 333편의 짤막한 이야기 모음이라고. 사실 <지구의 노래>에서 <시간의 목소리>로 건너뛴 건 저자들 간의 관계나 주제상의 연결고리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표지 때문이다. 제목의 타이포그라피로만 채운 표지가 왠지 친연성을 보여주지 않는지.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로 '가족유사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좀 닮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듣는 김에 '지구의 노래'도 듣고, '시간의 목소리'도 들어봄직하다. "주말에 뭐하셨습니까?" "시간의 목소리 좀 들었습니다." "..."

 

사실 <시간의 목소리>는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이니 '시간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 건 비유이거나 허세다. 갈레아노의 새 책이 나온 걸 보고 내가 구입한 건 오히려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책보세, 2010)다. 라틴아메리카의 수난사를 다룬 <수탈된 대지>(범우사, 2009)와 <불의 기억>(따님, 2005)의 저자이기도 한 갈레아노가 '핍박받은 사람들'의 역사를 600여 개의 짦은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원제가 '거울'이니까 역사를 들여다보는 600여 개의 거울을 의도한 셈이다. 나는 이걸 <시간의 목소리>보다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와 같이 주문해서 받은 책이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지구 위의 역사>(김영사, 2011)이다. 생각보다 크고 무거운 책이었다(하긴 제목을 고려하면 크고 무거운 게 당연하겠지만). 우주탄생에서 21세기까지 다루는데, 전체 4부 가운데 2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고, 3부는 문명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4부가 '서기 570년경부터 지금까지'다. 요즘 말하는 '지구사'의 교과서 같은 책. 그래, 휴가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 스케일의 책들을 읽어줘야 하는 거지...  

이후에 20분 정도 더 써내려 갔지만 갑자기 로그아웃되면서 날려먹었다(이럴 땐 임시저장 효과도 없군). 여하튼 일요일엔 장대한 스케일의 책을 읽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비가 오는 일요일이라면, 더구나 할일도 아주 많은데 공을 친 일요일이라면... 

11.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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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1-08-01 08:54   좋아요 0 | URL
로쟈님도 나가수를 보시는군요.

로쟈 2011-08-01 14:56   좋아요 0 | URL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아서요.^^

파타고니언 2011-08-05 00:14   좋아요 0 | URL
분야가 다른 두 권인데 같이 꼽으셔서 놀랐습니다. 그런데 안목이 정말 예리하세요! <지구의 노래>와 <시간의 목소리> 두 권 모두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거든요.

로쟈 2011-08-05 09:56   좋아요 0 | URL
짐작이 맞았네요. 얼핏 봐도 닮았으니 안목이랄 건 없습니다.^^
 

지난주에 교수신문 기자의 전화를 받고 지금 읽고 있는 책 몇 권을 꼽은 적이 있는데, '여름, 愛書家들 책을 권하다'란 기사의 일부로 포함됐다. 아무래도 전화상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정확하게 옮겨진 부분들이 있어서 정정해놓는다. 일단 기사는 이렇게 나갔다.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독문학, 필명 로쟈)
최근 읽고 있는 책은『한나아렌트』 자서전과『법가』다. 서평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읽고 있다. 어제까지의 관심사는『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나쓰메 소세키로 읽는 근대』(박유하 지음, 김석희 옮김, 문학동네, 2011.7)였다. 추천하는 책은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프란치 M.부케티츠 지음, 이덕임 옮김, 이가서, 2011.7)와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디어드리 배릿 지음, 김한영 옮김, 이순, 2011.7)이다. 진화심리학쪽 책에 관심을 갖고 항상 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생물학과 심리학에 대한 최신 정보는 항상 확인하는데, 심리학과 문학이 경쟁관계이면서 상호협력관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해 누가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 심리학과 문학은 서로 경쟁한다.

 

전공을 '노문학'이 아니라 '독문학'이라고 한 건 물론 오류다(하긴 '노문학'이란 말을 쓸 일이 요즘은 거의 드물어졌다). 그리고 읽고 있는 책으로 꼽은 건 '<한나 아렌트> 자서전'이 아니라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다. 아렌트에 대해서 준비하는 글이 있어서 원서와 함께 책상맡에 놓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 그리고 <법가>라고 돼 있는 건 정위안 푸의 <법가, 절대권력의 기술>(돌베개, 2011)이다. 이 역시 서평감으로 골라서 읽은 책인데, 덕분에 7-8권의 다른 책에서 '법가' 파트만 골라 연이어 읽어봤다. 어제는 아예 <한비자>(글항아리, 2010)까지 주문해서 받았는데, 완역이 아니어서 놀랐다. 전에 갖고 있던 선집과는 달리 이 책은 완역본인 줄 알았다. 32편이 수록돼 있으니까 전체(55편인가 그렇다)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다. 물론 주요 편들은 번역됐다고 하지만. 

  

그리고 '어제까지의 관심사'라고 한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문학동네, 2011)는 나쓰메 소세키 연구서라 구입한 책이다. 국내 연구자의 책으론 윤상인의 <문학과 근대와 일본>(문학과지성사, 2009)에 이어서 나온 성과다. 소세키는 물론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도서출판b, 2010)을 정독하기 위해서도 필히 거쳐가야 하는 작가다. 러시아와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문학은 개인적인 관심분야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진화심리학 책 몇권을 추천도서로 꼽았다. 프란츠 부케티츠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이가서, 2011)와 디어드리 배릿의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이순, 2011) 등. 이 분야의 책을 처음 읽는다면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08)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참고로, 어제 구입한 책은 모두 고대 중국 관련서인데, 이강수의 <중국 고대철학의 이해>(지식산업사, 2010, 11쇄), 가이즈카 시게키와 이토 미치하루의 <중국의 역사: 선진시대>(혜안, 2011), 그리고 사타케 야스히코의 <유방>(이산, 2011, 2쇄)이다. 이러다 <초한지>까지 읽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1. 07. 26.  

P.S. 근황을 적은 김에 이번주 기대작도 '곧 읽고 싶은 책'으로 꼽아본다. 일순위는 리링의 <논어, 세번 찢다>(글항아리, 2011). 저자는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 3고학의 대가라 한다. 중국의 실력자가 유가의 고전을 종횡으로 읽고 해체한다니 기대를 안 가질 수 없다. 4권으로 이루어진 '리링 저작선'의 첫번째 책. 논어에 대한 중국 학자의 독해로는 리쩌허우의 <논어금독>(북로드, 2006)도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잠깐 본 기억이 난다. 소장도서로 갖춰두려고 했으나 계속 미뤄졌는데, 목돈이 생기길 기대해봐야겠다. 도올의 <논어한글역주>(통나무,  2008)도 전3권 중 1권만 구해놓은 듯싶은데, 마저 짝을 맞추면 좋겠다. 이 정도 3인의 '논어독'이면 나름 장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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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1-07-26 09:36   좋아요 0 | URL
진화심리학을 읽고 있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빨강스포츠카를 타는 것은 부인의 갱년기로 인한 젊은 여자에게 관심끌기 위한 숫컷의 생존본능이라는 대목이 재미있었습니다.

로쟈 2011-07-27 09:48   좋아요 0 | URL
과도한 주장도 가끔씩 하지만 대체적으론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