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란 주제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있었는데(짬이 나면 관련 페이퍼를 쓰게 될 것이다) 마침 도움이 될 만한, 더불어 요 며칠 무더위를 잠시 식혀주는 책이 출간됐다. 이름도 스릴(?) 만점인 <이웃집 살인마>(사이언스북스, 2006)가 그것이고, 저자는 요즘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원래 진화심리학에서는 초창기에 '배우자 살해'가 중요한 연구테마였는데 그게 '이웃집 살해'로 좀 확장된/진전된 모양이다. 여하튼 "네 이웃을 사랑하라!"란 계명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 이웃을 경계하라!"는 경고인 듯싶다. 세상은 나이브하지 않다!..

문화일보(06. 08. 04) 살인은 본능… 네 이웃을 경계하라

-살인! 보통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국 텍사스대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7년간 5000여건의 살인 케이스, 375건의 살인자 심층 인터뷰, 그리고 다양한 역사, 인류학, 생물학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 모든 사람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고 또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조차 살인을 저지를 잠재력이 뿌리 깊게 내재돼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살인자는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1만6037명, 2002년 1만6229명, 2003년 1만6503명이 살해당했다. 여기서 전쟁과 9·11테러 희생자는 제외됐다. 이 통계로 추산하면 20세기에 미국에서만 대략 100만명 이상, 전 세계적으로는 최소 1억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쟁같이 공인된 대량학살은 제외한 추론이다. 그러나 실종자, 의학발달 등에 따른 살인미수 등을 감안하면 실제 살해 수치는 두세 배에 이를 것이다.



-통계를 분석해 보면 살인은 특별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는다. 연쇄살인, 갱단에 의한 살인, 폭도들의 충돌에 의한 살인, 유명인에 의한 살인, 야만스럽고 잔혹한 살인은 전체 살인의 5%도 안 된다. 살인의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살인은 보통 사람들이 처음 저지른 것이다.

-흔히 살인은 살인자의 감정이 이성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충동과 열정의 폭발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격렬한 분노가 이성을 앞지를 때, 판단을 잘못 내렸을 때, 깊게 뿌리박힌 원시적인 감정이 표출될 때, 논리가 열정에 압도당할 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살인은 이성적 상태에서 벌어진다.



-물론 살인이 분노, 질투, 시기와 같은 강렬한 감정들에 의해 유발되기는 하나 감정이 분별력을 흐려 놓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격정은 다분히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격정은 인간 심리를 이루는 잘 설계된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인간이 특정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살인은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계산을 통해 도달한 하나의 해결책이다. 결코 우발적이지 않다.

-액션 영화 등 폭력적인 대중문화가 살인을 부추긴다는 설명은 매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문화권에서도 여전히 살인이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아동학대, 과도한 알코올, 유전자이상에 의한 뇌손상 등 병리학적 이론도 이들 가운데 극소수만 폭력적이 된다는 점에서 일반성을 띠지 못한다.



-또 가난, 경제적 불평등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람을 범죄로 몰아넣는다는 사회학이론도,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에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절대적 증거가 없다는 데서 막히고 만다. 살인이 발생하는 환경과 동기는 외관상 매우 다양해 보임에도 불구, 그 이면에는 이를 포괄하는 숨겨진 연결고리가 있다. 이 연결고리를 잇고 있는 실들을 추적해보면 인간 진화의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살인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 경쟁에서 많은 이점을 제공했다. 살인은 자기 자신과 배우자 또는 친척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강간당하는 것을 막는다. 주요한 적대자들을 제거한다. 경쟁자의 자원이나 영토를 취득한다. 경쟁자의 배우자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다른 이성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흉포하다는 평판을 퍼뜨려 적의 침략을 단념시킨다. 유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아이들에게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보호한다. 번식 경쟁자들의 핏줄을 완전히 끊어 놓는 등 냉혹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많은 이점이 있다. 이익이 너무 실질적이어서 오히려 살인이 더 만연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군비확장경쟁처럼 진화한 살인심리가 살인의 만연을 막았다. 살인 위협이 증가하면 그 방어기제도 함께 발달한다. 살인은 위험한 전략이며 희생자들은 끔찍한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살인자를 살해하는 무자비한 방어책들이 함께 진화했다. 살인에 위험과 방해물들이 수반되기 때문에 경쟁자와 다툴 때 사람들은 살인 이외의 다른 대안들을 택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동맹해 경쟁자를 몰아내기도 하고 아예 경쟁자와 친해지기도 한다.



-저자는 “살인문제에 대해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다음과 같이 책을 끝맺고 있다. “반갑지 않은 성적인 눈길을 1초 이상으로 오래 보내는 남자를 경계하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계부모에게 주의하라. 당신의 성공을 배아파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경쟁자를 조심하라. 동료들 앞에서 당신이 준 모욕을 참을성 있게 받아넘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방금 유혹한 이성의 전 배우자를 주의하라. 거절하기 전에 당신을 ‘유일한 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낭만주의자를 경계하라. 떠나지 않으려는, 스토커로 변해버린 전 애인을 경계하라. 살인자들은 우리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 살인은 아니더라도 살인과 같은 치명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맺음이다.(김승현기자)

중앙일보(06. 08. 05) 살인, 번식을 위한 또다른 본능

-미국의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이웃을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자와 어색하게 공존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베일을 벗지 않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가 환상 속의 살인자였다면,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그것은 현실적이다.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이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현실에서 훨씬 빈번히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연쇄살인범이 살인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살인 사건 피해 여성의 과반수는 남편.애인 등에게 살해됐다. 저자가 전세계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남성의 91%, 여성의 84%가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를 살해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최근 서울에 사는 한 프랑스인의 집 냉동고에서 영아 시체 두 구가 발견된 사건은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옛날엔 영아 살해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모든 문화권에서 영아 살해의 흔적은 남아 있다. 결함을 타고나거나 자식이 많아 더 낳기 부담스러울 때 영아 살해는 종종 일어났다. 인간은 자식을 키우는 데 어떤 짐승보다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기에 진화 가능성이 없는 자손은 제거했던 것이다(*장애아의 낙태 같은 것도 같은 논리에 의한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좀더 빨리 죽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텍사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렇게 살인 심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우선 가해자의 75%가 남성이다. '번식 경쟁'이 가장 큰 이유다. 남성들은 경쟁자를 제거해 자신과 배우자를 보호하고 경쟁자가 아내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직접 아이를 낳지 않으므로 친자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남성에게 살인은 남의 씨앗에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는 일을 방지하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따라서 살인자 비율은 남성의 번식력이 왕성한 15세 무렵에 상승해 20대에 최고점을 기록하며 40대에 접어들면 크게 떨어진다.



-어떤 남성들은 배우자를 붙들어두기 위해 아내를 학대하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통제한다. 이별 후 비슷한 수준의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직자 남성의 경우 증상이 더 심하다. 폭력 남편과 간신히 헤어진 뒤라도 안심하기 이르다. 배우자 살해는 대부분 결별 1년 이내에 일어나니까.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어떤 여자들은 살인을 택한다.

-살인 사건의 검거율은 69%. 강도 사건의 검거율(14%) 등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결국은 감옥행이다. 이렇게 옛날 사회와 달리 살인으로 득 볼 일 없는 현대의 인간이 여전히 살인 본성을 품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인류가 아직 현대의 환경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살인이 피할 수 없는 본능은 아니란다. 인류는 협동.이타주의.화해.우정.동맹.희생 등의 본성도 지녔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폭력의 극단적 형태인 살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심리는 섬뜩하면서도 유용하다.(이경희 기자)

 

 

 

 

06.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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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8-05 13:55   좋아요 0 | URL
문화일보 기사를 보면, 상당히 타당해보이네요. 무서워라... 어떤 이유에서든 다들 한 번쯤은 '아비/어미 살해'를 꿈꾸어 봤을 법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군요.
 

제목 그대로 '니체와 니힐리즘'이 아니라 '니체와 알피니즘'이다. 작가 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이라는 한국일보 연재칼럼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편을 옮겨온다. 이 여름에 피서지에 들고 갈 책으로 문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아니라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한국일보(06. 08. 03) 니체의 철학사상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지 않는다. 그의 책을 즐겨 읽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가는 극단적이다. 어떤 이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논리의 비약이 심해 과격한 수필에 불과하다며 악평을 늘어놓고, 또 다른 이는 기독교 문명의 몰락과 허무주의의 도래 사이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 세기말의 대철학자라고 한껏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사상이 다름 아닌 산악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니체는 19세기를 마감하는 1900년에 죽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이 산악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과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알피니즘을 풍미했던 사조는 이른바 ‘단독 등반’이다. 당시의 젊은 산악인들은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자일조차 사용하지 않고 홀로 까마득한 바위 절벽들을 기어올랐다. 단 한번의 사소한 실수도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등반 형태다. 실제 이 시기에 홀로 산에 오르다 외롭게 죽어간 산악인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훗날 우연히 발견된 그들 시체 곁의 배낭 속에서는 니체의 책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음, 정정해야겠다. 나는 니체를 권하지 않았다!).

 

 

 



-목숨을 내걸고 단독 등반에 나선 산악인들에게서 염세주의적 경향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현세를 부정하거나 혐오했다. 그들은 인간이란 더 나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위대한 목표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야 할 그 무엇으로 여겼다. 그들은 어쩌면 ‘초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대표되는 니체의 초인사상이 과연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니체의 초인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한 것이 과연 단독 등반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었을까? 논증할 방법은 없다. 다만 시체로 발견된 단독 등반자들의 배낭 속에서 그의 책이 자주 발견되곤 했다는 것만은 에누리 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마’로 취급 받았던 니체가 더욱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게 된 것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알프스 북벽 초등 경쟁 시기였다. 이 시기의 초등 경쟁은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었다. 당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이 경쟁을 주도해 나갔던 민족은 독일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총지휘했던 히틀러가 니체의 초인사상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켜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죽어버린 니체가 만약 후대에 벌어진 이런 사태들에 대하여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본의와는 무관하게 ‘죽음을 무릅쓴 단독 등반’과 ‘국가주의적 등반 경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니체는 과연살아 생전에 등산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나 있을까? 있다. 그것도 여러 해에 걸쳐 지속적으로 등산을 즐겼다. 전문 산악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적어도 ‘등산 마니아’ 정도는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니체는 평생을 불행하게 살다 간 철학자다. 불과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만큼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갖추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1870년에 벌어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평생 편두통과 정신착란에 시달렸다. 게다가 ‘추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못 생긴 외모 탓인지 여인들과의 사랑에서도 언제나 쓰라린 상처만을 맛보곤 했다. 삶에 너무도 지친 그가 교수직에서 사퇴하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가 결국 안주한 곳이 바로 스위스 알프스 엥가딘 지역에 있는 질스-마리아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다.



-유명한 산악관광지 생모리츠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해발 1,800m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니체는 1879년부터 8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요양과 집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치료하였다. 훗날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을 넘어서>,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의 전부 혹은 핵심적인 대목들은 모두 이곳에서 쓰여진 것이다(*나는 너희에게 등산을 가르치노라!).

-그가 이곳에 머물면서 자주 올랐던 산들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코바치봉, 라그레브봉, 데 라 마그나봉 등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코바치봉(3,451m)은 그가 가장 즐겨 올랐던 산이어서 현지에서는 ‘니체의 산’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운다. 이를테면 그는 이 산을 오르내리며 ‘차라투스트라’와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를 완성하고 이곳을 떠난 니체는 그 직후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켜 토리노 광장에서 졸도한다. 이후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은 다시 처참한 불행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기간은 알프스 자락 엥가딘에 머물던 8년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좀 더 일찍 알프스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도 죽었다. 그의 책을 탐독하며 단독 등반에 나섰던 이름 없는 젊은이들도 죽었다. 그의 사상을 핑계 삼아 야만적인 전쟁에 광분하였던 나치주의자들도 죽었다. 영원한 것은 오직 산뿐이다.

● 니체의 저서에 나오는 등산 비유 문장들

“내 글의 공기를 호흡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것이 높은 곳의 공기, 기운 찬 공기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그 공기를 느낄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은 가까이 있고 홀로 있음은 처절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햇살 속에 얼마나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는가! 숨쉬기는 또 얼마나 자유로운가! 발 밑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는가! 철학은 얼음으로 뒤덮인 고산에서 자발적으로 사는 것이리라.”(<이 사람을 보라>)

“(나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이 시대에 조우하게 되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정신이 필요하다. 비유적인 의미로 높은 곳의 보다 희박한 공기에, 그리고 겨울여행과 얼음과 산에 순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도덕의 계보학>)

“진실이라는 산맥을 타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든지, 그렇지 않다면 내일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힘을 단련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06.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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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8-03 16:47   좋아요 0 | URL
헉, 차라투스트라가 '설교'를 하는 공간인 산이 메타퍼가 아니었네요? 실제로 등산을 즐겼다니, 놀라워라. 나도 산 밑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

로쟈 2006-08-03 20:58   좋아요 0 | URL
물론 이리가레(이리가라이)는 '바다의 연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프라즈나 2006-08-04 09:02   좋아요 0 | URL
음...그런데 제가 아무리 봐도 니체는 추남(?)은 아닌것 같은데요^^
그거땜에 여자들에게 쓰라린 상처만을 맛보았다고 쓴 것은 쪼끔 논리적 비약인듯...

로쟈 2006-08-04 11:12   좋아요 0 | URL
외모야 일단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중요하겠죠.^^ '니체와 여성'이란 주제만 해도 덩치가 큰데, 저도 언젠가는 좀더 다루어보고 싶긴 합니다...

parioli 2006-08-04 12:00   좋아요 0 | URL
니체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평소 그리 미남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책에선 니체가 옷을 잘 입는 멋쟁이-잘 생겼다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됨-로 유명했다고도 하고. 이 글에선 추남이라고까지 하네요...철학자와 외모 사이엔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연구해 볼만한 주제 아닌가요? ㅎㅎ

로쟈 2006-08-04 12:02   좋아요 0 | URL
그게 소크라테스부터 문제가 됐던 것이니까 거의 철학의 '기원적'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03년 3월에 씌어진 걸로 돼 있는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1)'에서 나는 이렇게 적어놓은 적이 있다.

"하여간에 이 자서전(*아시모프의 자서전)이 절판된 것은 좀 아쉽다. 그렇게 절판된 자서전들 가운데 또 기억나는 것은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동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의 <옷을 입은 원숭이>(샘터사)이다.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됐지만(원제는 '동물들과의 나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석희씨의 번역이고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모리스의 책들이 대부분 출간된 거에 견주면, 이미 번역돼 있는 그의 자서전이 '묵혀'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묵혀 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제목은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 2006)로 바뀌었고, 출판사도 한얼미디어로 옮겨갔지만, 역자는 그대로이다(역자는 <털없는 원숭이>(정신세계사, 1991)도 옮긴 바 있다). '데스몬드' '데즈몬드' '데즈먼드' 등은 다 같은 사람 '모리스'의 이름이다.

아직 언론에 아무런 책소개 떠 있지 않아서 알라딘의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털없는 원숭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자전적 에세이"이고, "유년기에 동물과 동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과정, 스승인 콘라트 로렌츠와 니코 틴베르헨과의 만남,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했던 경험, 런던동물원 포유류관장 시절에 일어난 갖가지 에피소드를 경쾌한 문체로 담았다."

로렌츠와 틴버겐 같은 그의 스승들은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옥스포드대 출신인 모리스는 니코 틴버겐의 직속 제자이다(모리스는 창가시고기를 연구했다). 근데, <동물의 사회행동>의 저자 '니코 틴버겐Nikolaas Tinbergen'의 표기가 '니코 틴베르헨'으로 바뀐 모양이다. 출생지가 네덜란드라서인가? 전공자들도 다들 관례적으로 '니코 틴버겐'이라고 쓰고 있는지라 내게도 '틴버겐'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게다가 내가 알기로 그는 반평생 이상을 영국 대학의 교수로 살았다). 같은 성의 이름으론 네덜란드인 얀 틴베르헨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군...  

소개를 마저 옮기면,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지은이가 어떻게 뛰어난 동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킨 저술가로 성장했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학문을 하는 지은이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더 진지해질 수 없다면, 즐기기나 하자" "내속에 있는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아직도 서로 싸우며 번갈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 동물학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재미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그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나도 느끼는 바인데, 굳이 자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자서전에는 기억에 그림을 그리는 침팬지 콩고 이야기도 나오는데, 작년 뉴스기사에는 이런 것도 있다(같은 종류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세계일보(05. 06. 21)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 2600만원에 팔렸다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이 20일(현지시간)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2만5620달러(약 2600만원)에 팔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영국 경매회사 본엄스는 ‘콩고’라는 침팬지가 1957년 그린 추상화 3점을 경매에 부친 결과 하워드 훙이라는 미국인이 낙찰가 외에 웃돈을 얹어 2만6352달러에 샀다고 밝혔다. 추상화들의 예상 낙찰가는 1000∼1500달러 정도였다.

-본엄스의 현대미술 담당자는 “우리는 이 그림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단지 (특이함이라는) 즐거움을 위해 경매장에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침팬지의 작품이 팔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매에는 앤디 워홀과 르누아르의 작품도 선보였지만,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의 인기에 가려 팔리지 않았다.

-콩고는 1954년 영국 동물원에서 태어나 2∼4살 무렵에 약 400점의 데생과 유화를 남긴 뒤 1964년 결핵으로 죽었다. 이 침팬지는 연필과 붓을 받아들 때 다른 침팬지들과 달리 재빨리 사용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붓과 연필 잡기를 거부해 ‘마구잡이로 그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콩고를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 1957년 콩고의 그림들을 모아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 그는 “침팬지들이 인간 예술의 몇몇 요소를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자세한 건 이 자서전을 참조하시길...

06. 07. 28.

P.S. 보다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한겨레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필자는 임종업 기자이다.

한겨레(06. 08. 04) 기어이 한마리의 동물이 되고 만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1928~ )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접촉> <맨워칭> <바디워칭> 등이 번역 소개돼 비교적 낯익다. 이번에 나온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는 지은이가 쉰한 살 때인 1979년 출간한 것으로 지은이의 관심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아간 시점까지의 역정이다. 일종의 학문적 성장기다.

-할아버지 유품인 놋쇠 현미경과 <위장과 내장의 비교해부학 입문>이란 책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매혹된 그는 집, 정원, 차고를 수집한 야생동물로 채웠다. 그는 “토끼굴로 내려간 앨리스처럼 현미경의 대롱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그 세계에 매료됐다. 그를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이는 기숙학교의 ‘버터컵’이라고 불렀던 동물학 선생님. ‘올챙이적에 배운 것은 두꺼비가 되어서도 기억될까’라는 호기심은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탐구열로 바뀌었다. 버터컵 선생님은 동물학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칠 뿐, 스스로 질문을 하는데 숙달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두번째 스승인 네덜란드 동물행동학자 틴베르헨(1907~1988)을 만난 것은 버밍엄 의대 특별강연 때. 그는 “한 시간 강연이 준 감동에서 빠져나왔을 때 과학도로서의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떤 종교적 개종도 그보다 더 적극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모리스는 옥스퍼드에서 틴베르헨을 지도교수로 가시고기의 동성애적 성향을 밝히는 박사논문을 썼다.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징집된 그는 부적응자로 부대를 전전하던 끝에 제대병한테 직업교육으로 미술을 가르친다. 이때 훗날 결혼하게 된 소녀 래모나를 만난다. 그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끝이 없어 뱀까지 좋아해 모리스와 천생연분 반려가 되었다. 모리스는 래모나가 진학한 옥스퍼드로 가기 위해 코피 터지게 공부해 버밍엄대학을 최우등 졸업한다.

-세번째 스승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 1951년 강연을 듣고 모리스는 “그는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신과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훌륭한 에스키모개를 뒤섞어놓은 인물처럼 보였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육포를 주며 낯을 익힌 갈까마귀한테 성기를 물린 로렌츠의 경험을 ‘예비동작’이라는 동물행동학 용어를 쓰며 자세히 소개한다. 틴베르헨이 그를 동물학자로 세례를 주었다면 로렌츠는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모리스는 그후 런던동물원의 영화 텔레비전 책임자가 되어 그라나다텔레비전의 ‘동물원 시간’을 진행했다. 이때 최근의 동물학적 발견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예컨대 코브라의 춤은 피리 소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리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 등. 그후 런던동물원의 포유류관장이 된 그는 인간화한 동물로 가득찬 그곳을 야생에 근접한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또 야생동물의 약탈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동물 결혼상담소를 운영했다. 죽어서 동물원 호랑이가 된다는 아내의 유언을 믿고 찾아와 마누라 내놓으라고 호통치던 영감님, 나중에 <야성의 엘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이 에덤슨이 자료와 사진을 들고와 책을 내고 싶다고 하던 일 등 일화를 소개한다.

-길들여진 침팬지 ‘콩고’한테 한개의 장을 할애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와 함께 텔레비전을 누빈 콩고는 합성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팬레터를 받는 등 인기를 끌었다. 콩고와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썼다. “나는 의사소통을 할 줄 모르고 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폐증 아이의 아버지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하고 싶어서 애가 탔다.”

잠간동안의 백수시절 아내와 함께 본 알타미라 동굴 벽화. 그림 속의 들소가 몸은 미세한 명암과 균형이 뛰어난 반면 다리가 뻣뻣한 것이 의아했다. 그는 살아있는 들소를 그려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다는 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죽은 동물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것이라고 본다. 그럴 듯하다.

“나는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 동물이 되었다. 나는 그 동물처럼 생각하려고 애썼으며 그 동물처럼 느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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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2006-07-28 11:09   좋아요 0 | URL
얀 틴베르헨과는 한 형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형제가 노벨상을 탄 영광을...^^;;

로쟈 2006-07-28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가문의 영광이네요.^^
 

진보저널, 혹은 좌파저널 '레디앙'에 가끔 들른다(유감스럽게도 '레디앙Redian'이란 신조어(?)는 진보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다. 화장품 이름 같기도 한 그 단어가 내게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은 '폼'이다). 두어 번 기사를 옮겨온 것 같기도 한데, 이번에 옮겨오고자 하는 건 윤재실 기자의 '세계의 사회주의자' 연재 중 에리히 프롬(1900-1980)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에서부터 시작된 이 연재는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에까지 이르렀는데, 기자의 품팔이에서 나온 거라고 보기엔 너무 발이 넓어서 무슨 '출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기밀사항일까?). 여하튼 읽어볼 만한 연재이다. 프롬의 책들도 한번쯤 챙겨둘 겸 읽어보기로 한다. 기사의 원타이틀은 '인간적 사회주의 꿈꾼 정신분석학자'인데, 보다 단순하게 '에리히 프롬과 사회주의'로 고쳐단다.  

레디앙(06. 07. 18) 인간적 사회주의 꿈꾼 정신분석학자

"교회는 아직도 대체로 내면의 해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진보주의자들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정당들은 외부의 해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유일하게 현실적인 목표는 총체적 해방인데, 이러한 목적을 근본적(혹은 혁명적) 휴머니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존재의 기술> 중에서)

"휴머니즘적 사회주의는…최대 이윤의 욕구를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장과 자본의 비인간적 힘의 법칙에 따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스스로 계획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사회 체제이다."(<불복종에 관하여> 중에서)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의 책으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우리에게 심리학자 혹은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다. 신프로이드 학파의 거장이었던 프롬이 마르크스의 초기사상과 프로이드의 이론을 융합해 인간주의적인 사회주의를 꿈꾼 인물이었고 미국 사회당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폴 로빈슨이 <프로이트 급진주의>에서 꼽고 있는 프로이트 좌파는 빌헬름 라이히, 게자 로하임, 허버트 마르쿠제 등이다. 신프로이드주의 혹은 프로이트 수정주의는 정신분석학의 계보에서 보자면 '프로이트 우파'에 해당한다. 프롬은 포지션은 '프로이트 우파 +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이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다).

 

 

 

 

-프롬은 1900년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보모는 독실한 유태교 신자였다(*<정신분석과 종교>가 나올 만한 배경이다). 아버지인 나프탈리 프롬은 와인상을 하는 중산계급이었다. 프롬은 1918년 프랑크프루트 대학에 입학해 2학기 동안 법학을 공부한 뒤 하이델베르크대로 옮겨 사회학을 공부했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학위논문은 "유태교의 두 종파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였다. 그때까지 유태교가 프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1926년에 그는 유태교와 작별한다. 

-그후 베를린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던 그는 1931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활동근거지이던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에 참여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예상치 못했던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중심지였던 독일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퇴조하면서 독일의 좌파지식인들은 곤경에 빠졌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돌파구 중의 하나는 "과거의 오류를 규명하고 새로운 행동을 강구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의 근본적인 토대를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좌파지식인 서클이었다.



-1923년에 정식으로 설립된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는 초기에는 사회변혁의 주도세력으로 노동계급을 상정했지만 "산업사회의 기술적 합리화가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거세했다"고 판단하고 현대사회의 문화적 상부구조를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활동의 초점을 옮긴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분석학의 도입이 요구됐다. 이에 따라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1년, 3명의 정신분석학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들은 칼 란트아우어, 하인리히 멩, 그리고 에리히 프롬이었다.

-프롬이 합류함으로써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로이드와 마르크스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1932년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의 기관지 <사회연구>지에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의 방법과 과제'를 발표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프롬은 1933년부터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 무렵 독일에서는 나치가 득세를 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많은 좌파 지식인들처럼 프롬도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먼저 스위스 제네바로 갔다가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콜럼비아대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교류를 지속했던 그는 1939년 프로이드 해석과 평가에 관한 연구소와의 의견차이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결별했다. 프롬은 이후 정통프로이드주의와도 멀어져 갔다.



-서구의 자본주의도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프롬은 이때부터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주목하며 인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소외론의 마르크스이다). 1955년 펴낸 <건전한 사회>는 이러한 그의 사회변혁의 이론과 사상이 제시된 책이다.

-프롬은 자본주의도 소비에트식의 공산주의도 인간성을 짓밟고 관료적 사회구조를 만들어 ‘소외’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데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담겨 있는 사상을 더욱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프롬의 생각이었다. 프롬의 사회변혁방법론은 '개인의 내적 변화를 통한 자기 해방과 사회변혁이 동시에 추진돼야한다'는 것과 '사회변혁운동이 정치적 영역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영역에서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의 인간개념>,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로 이어졌고,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 그는 그가 발딛고 있는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에 몸담으면서 그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프롬은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중반 미국 사회당에 가입해 활동을 했고 베트남전 시기에는 평화운동, 반전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전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당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의 예비후보 경선을 도왔던 프롬은 닉슨의 당선 이후 정치적 활동을 접었다.



-1965년 멕시코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정년 퇴직한 뒤에도 <소유냐 존재냐>, <희망의 혁명>등 7권의 책과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프롬은 1980년 3월18일 스위스에서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뒤 1981년 <불복종에 관하여>가 출간됐는데(*이 책은 번역돼 있지만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이 책에 실려있는 미국 사회당의 강령 초안은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 흥미롭다.

06. 07. 26.

P.S. 프롬의 저작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건전한 사회>가 일찌감치 세계사상전집 등에 들어가 있었을 만큼 국내에는 많이 소개되었고 많이 읽혔다(짐작에, <소유냐 존재냐>나 <사랑의 기술> 같은 책들이 그의 베스트셀러이다. 제목이 '선정적인' 만큼 가장 많은 종의 번역서들이 나와 있기도 하다. 대입논술문제로도 나오고). 그건 그의 주장이 그만큼 상식적이라는 뜻도 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롬에 관한 저작은 아주 드물다. 박홍규 교수의 <우리는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필맥, 2004)과 박찬국 교수의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철학과현실사, 2001)가 국내 저자가 쓴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길잡이로서 유일하다. 번역서로는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00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논문집을 옮긴 <에리히 프롬의 현대성>(영림카디널, 2003)이 전부이다. 그걸로 충분하다면 사실 아주 경제적인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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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06. 07. 23)에서 학술동향 기사를 옮겨온다. 이정모(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인지과학과 제3의 움직임'이 기사의 제목이고 '뇌·신체·환경의 종합…정서와 의식 넘어선 움직임'이 그 부제이다. 인지과학쪽 책들을 교양수준으로는 갖고 있고 더러 읽어본지라 '업계'의 동향에 대해서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로 여겨진다.

 

 

 

 

-마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탐구에서 등장한 인지과학이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 동안의 인지과학을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인지과학은 그동안 두 단계의 중요 패러다임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마음에 대한 컴퓨터 은유를 바탕으로 한 고전적 인지주의 또는 계산주의의 시기로, 인간 언어의 추상적 구조에 바탕하여, 심적 내용은 표상, 심적 과정은 계산으로 개념화하여 마음의 본질을 탐구한 시기였다. 둘째 시기는 이러한 고전적 인지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한 연결주의와 신경과학의 전개다. 이 시기에는 생물적 뇌의 추상적 구조(연결주의)와, 실제적 구조(신경과학)에 바탕하여 마음을 탐구하되, 언어의 통사적 구조에 바탕한 표상주의는 배격하고, 기호(상징) 이하 수준의 계산, 신경적 계산을 강조한 시기였다.

 

 

 

 

-그러나 전통적 인지주의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격하시켜 뇌의 탐구를 소홀이 하였다. 심신동일론 관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연결주의나 현재의 신경과학도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두뇌=마음’의 개념 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지과학에서 제3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심신이원론이건, ‘두뇌=마음’의 심신동일론이건 현대 과학에서 지지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은 두뇌 내부의 작용만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두뇌, 신체, 그리고 세계가 연결된 집합체 상의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제임스, 듀이, 로티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과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대륙의 철학자들이 이미 제기한 것이었지만, 현대 인지과학에서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먼저 강하게 드러내준 사람들은 철학자들보다는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연구자들 그리고 발달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이었다.

-인공지능학자인 로드니 브룩스(Rodney A. Brooks, 사진)는 1990년대 초에 그 당시를 풍미하던 내적 표상 조작 중심의 인공지능시스템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표상이 없는 지능시스템이 앞으로의 로보틱스 연구가 지향하여야 할 방향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한편 발달심리학 연구자들은 어린아이가 걷기를 학습하는 행동 등을 내적 표상 개념이 없이 동역학체계적 틀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함을 보였다. 마음이란, 특정 지식이 표상으로 뇌에 내장됨 없이,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개체가 환경에 주어진 단서구조들과의 상호작용하는 실시점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활동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자들은 뇌와의 연결이 단절된 척추체계가 통증 감각과 학습에서 일종의 인지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과, 신경계가 아닌 전신에 퍼져있는, 호르몬 관련 세포 수용기들이 정서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서적, 의식적 사건이 뇌만의 사건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음=두뇌’ 식의 단순화된 생각의 위험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인지과학 내의 경험과학에서의 이러한 논의나 연구 추세는, 철학이 개입하기 이전에는 데카르트적 틀에 대한 산발적 압력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 초, 현 시점에서 철학이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인지과학의 경험과학적 연구의 새 변화들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묶일 수 있는가 하는 개념적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이 아니며, 마음은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신체, 그리고 환경, 이 셋을 포함한 총체적인 집합체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여 인지과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자연과학적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철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틀을 이루어 내려는 이러한 작업은 마음의 문제를 협소한 주관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념화한 듀이 등의 고전적 실용주의철학자들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가 괴리되지 않은 세상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일상적 인지를 강조한 하이데거적 재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움직임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동역학체계’ 틀로의 변화를 주창하는 것을 본다면, 과거의 ‘계산의 언어’에서 ‘뇌의 언어’로, 그리고 이제 ‘동역학체계의 언어로’ 개념화하는 작업이 인지과학의 여러 분야에 앞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뇌, 신체, 환경의 총체로서 마음을 개념화 한 인지과학의 새 틀이 신경과학, 심리학 등에서 생산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려면, 앞으로도 자연과학으로서의 인지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연결하는 추가적 작업이 더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06. 07. 26.

P.S. '마음=뇌'가 아닌 뇌로부터 분리된 마음(혹은 마음으로부터 분리된 뇌)이라... 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농담만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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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지과학의 현황과 조망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8 23:47 
         교수신문(09. 04. 06) “생각 교환할 수 있는 지적 흥분의 분위기 필요해요” 한국의 인지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가 얼마 전 『인지과학』(성균관대 출판부)을 펴냈다. 종합과학이자 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이 교수는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심성을 과학을 통해 해명하자는 야심찬 취지를 바탕으로 한
 
 
2006-07-2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6 14:59   좋아요 0 | URL
**님이 AI에 저보다는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지과학이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에 제기하는 도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지젝이 <신체 없는 기관>의 한 장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구요...

2006-07-2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