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에 씌어진 걸로 돼 있는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1)'에서 나는 이렇게 적어놓은 적이 있다.
"하여간에 이 자서전(*아시모프의 자서전)이 절판된 것은 좀 아쉽다. 그렇게 절판된 자서전들 가운데 또 기억나는 것은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동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의 <옷을 입은 원숭이>(샘터사)이다.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됐지만(원제는 '동물들과의 나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석희씨의 번역이고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모리스의 책들이 대부분 출간된 거에 견주면, 이미 번역돼 있는 그의 자서전이 '묵혀'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묵혀 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제목은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 2006)로 바뀌었고, 출판사도 한얼미디어로 옮겨갔지만, 역자는 그대로이다(역자는 <털없는 원숭이>(정신세계사, 1991)도 옮긴 바 있다). '데스몬드' '데즈몬드' '데즈먼드' 등은 다 같은 사람 '모리스'의 이름이다.
아직 언론에 아무런 책소개 떠 있지 않아서 알라딘의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털없는 원숭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자전적 에세이"이고, "유년기에 동물과 동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과정, 스승인 콘라트 로렌츠와 니코 틴베르헨과의 만남,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했던 경험, 런던동물원 포유류관장 시절에 일어난 갖가지 에피소드를 경쾌한 문체로 담았다."
로렌츠와 틴버겐 같은 그의 스승들은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옥스포드대 출신인 모리스는 니코 틴버겐의 직속 제자이다(모리스는 창가시고기를 연구했다). 근데, <동물의 사회행동>의 저자 '니코 틴버겐Nikolaas Tinbergen'의 표기가 '니코 틴베르헨'으로 바뀐 모양이다. 출생지가 네덜란드라서인가? 전공자들도 다들 관례적으로 '니코 틴버겐'이라고 쓰고 있는지라 내게도 '틴버겐'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게다가 내가 알기로 그는 반평생 이상을 영국 대학의 교수로 살았다). 같은 성의 이름으론 네덜란드인 얀 틴베르헨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군...

소개를 마저 옮기면,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지은이가 어떻게 뛰어난 동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킨 저술가로 성장했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학문을 하는 지은이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더 진지해질 수 없다면, 즐기기나 하자" "내속에 있는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아직도 서로 싸우며 번갈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 동물학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한 재미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그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나도 느끼는 바인데, 굳이 자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자서전에는 기억에 그림을 그리는 침팬지 콩고 이야기도 나오는데, 작년 뉴스기사에는 이런 것도 있다(같은 종류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세계일보(05. 06. 21)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 2600만원에 팔렸다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 3점이 20일(현지시간)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2만5620달러(약 2600만원)에 팔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영국 경매회사 본엄스는 ‘콩고’라는 침팬지가 1957년 그린 추상화 3점을 경매에 부친 결과 하워드 훙이라는 미국인이 낙찰가 외에 웃돈을 얹어 2만6352달러에 샀다고 밝혔다. 추상화들의 예상 낙찰가는 1000∼1500달러 정도였다.

-본엄스의 현대미술 담당자는 “우리는 이 그림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단지 (특이함이라는) 즐거움을 위해 경매장에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침팬지의 작품이 팔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매에는 앤디 워홀과 르누아르의 작품도 선보였지만, 침팬지가 그린 추상화의 인기에 가려 팔리지 않았다.
-콩고는 1954년 영국 동물원에서 태어나 2∼4살 무렵에 약 400점의 데생과 유화를 남긴 뒤 1964년 결핵으로 죽었다. 이 침팬지는 연필과 붓을 받아들 때 다른 침팬지들과 달리 재빨리 사용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붓과 연필 잡기를 거부해 ‘마구잡이로 그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콩고를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 1957년 콩고의 그림들을 모아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 그는 “침팬지들이 인간 예술의 몇몇 요소를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자세한 건 이 자서전을 참조하시길...
06. 07. 28.
P.S. 보다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한겨레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필자는 임종업 기자이다.
한겨레(06. 08. 04) 기어이 한마리의 동물이 되고 만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1928~ )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접촉> <맨워칭> <바디워칭> 등이 번역 소개돼 비교적 낯익다. 이번에 나온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한얼미디어)는 지은이가 쉰한 살 때인 1979년 출간한 것으로 지은이의 관심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아간 시점까지의 역정이다. 일종의 학문적 성장기다.
-할아버지 유품인 놋쇠 현미경과 <위장과 내장의 비교해부학 입문>이란 책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매혹된 그는 집, 정원, 차고를 수집한 야생동물로 채웠다. 그는 “토끼굴로 내려간 앨리스처럼 현미경의 대롱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그 세계에 매료됐다. 그를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이는 기숙학교의 ‘버터컵’이라고 불렀던 동물학 선생님. ‘올챙이적에 배운 것은 두꺼비가 되어서도 기억될까’라는 호기심은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탐구열로 바뀌었다. 버터컵 선생님은 동물학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칠 뿐, 스스로 질문을 하는데 숙달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두번째 스승인 네덜란드 동물행동학자 틴베르헨(1907~1988)을 만난 것은 버밍엄 의대 특별강연 때. 그는 “한 시간 강연이 준 감동에서 빠져나왔을 때 과학도로서의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떤 종교적 개종도 그보다 더 적극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모리스는 옥스퍼드에서 틴베르헨을 지도교수로 가시고기의 동성애적 성향을 밝히는 박사논문을 썼다.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징집된 그는 부적응자로 부대를 전전하던 끝에 제대병한테 직업교육으로 미술을 가르친다. 이때 훗날 결혼하게 된 소녀 래모나를 만난다. 그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끝이 없어 뱀까지 좋아해 모리스와 천생연분 반려가 되었다. 모리스는 래모나가 진학한 옥스퍼드로 가기 위해 코피 터지게 공부해 버밍엄대학을 최우등 졸업한다.

-세번째 스승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 1951년 강연을 듣고 모리스는 “그는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신과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훌륭한 에스키모개를 뒤섞어놓은 인물처럼 보였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육포를 주며 낯을 익힌 갈까마귀한테 성기를 물린 로렌츠의 경험을 ‘예비동작’이라는 동물행동학 용어를 쓰며 자세히 소개한다. 틴베르헨이 그를 동물학자로 세례를 주었다면 로렌츠는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모리스는 그후 런던동물원의 영화 텔레비전 책임자가 되어 그라나다텔레비전의 ‘동물원 시간’을 진행했다. 이때 최근의 동물학적 발견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예컨대 코브라의 춤은 피리 소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리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 등. 그후 런던동물원의 포유류관장이 된 그는 인간화한 동물로 가득찬 그곳을 야생에 근접한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또 야생동물의 약탈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동물 결혼상담소를 운영했다. 죽어서 동물원 호랑이가 된다는 아내의 유언을 믿고 찾아와 마누라 내놓으라고 호통치던 영감님, 나중에 <야성의 엘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이 에덤슨이 자료와 사진을 들고와 책을 내고 싶다고 하던 일 등 일화를 소개한다.
-길들여진 침팬지 ‘콩고’한테 한개의 장을 할애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와 함께 텔레비전을 누빈 콩고는 합성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팬레터를 받는 등 인기를 끌었다. 콩고와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썼다. “나는 의사소통을 할 줄 모르고 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폐증 아이의 아버지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하고 싶어서 애가 탔다.”
잠간동안의 백수시절 아내와 함께 본 알타미라 동굴 벽화. 그림 속의 들소가 몸은 미세한 명암과 균형이 뛰어난 반면 다리가 뻣뻣한 것이 의아했다. 그는 살아있는 들소를 그려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다는 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죽은 동물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것이라고 본다. 그럴 듯하다.
“나는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 동물이 되었다. 나는 그 동물처럼 생각하려고 애썼으며 그 동물처럼 느끼려고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