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란 주제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있었는데(짬이 나면 관련 페이퍼를 쓰게 될 것이다) 마침 도움이 될 만한, 더불어 요 며칠 무더위를 잠시 식혀주는 책이 출간됐다. 이름도 스릴(?) 만점인 <이웃집 살인마>(사이언스북스, 2006)가 그것이고, 저자는 요즘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원래 진화심리학에서는 초창기에 '배우자 살해'가 중요한 연구테마였는데 그게 '이웃집 살해'로 좀 확장된/진전된 모양이다. 여하튼 "네 이웃을 사랑하라!"란 계명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 이웃을 경계하라!"는 경고인 듯싶다. 세상은 나이브하지 않다!..

문화일보(06. 08. 04) 살인은 본능… 네 이웃을 경계하라

-살인! 보통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국 텍사스대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7년간 5000여건의 살인 케이스, 375건의 살인자 심층 인터뷰, 그리고 다양한 역사, 인류학, 생물학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 모든 사람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고 또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조차 살인을 저지를 잠재력이 뿌리 깊게 내재돼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살인자는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1만6037명, 2002년 1만6229명, 2003년 1만6503명이 살해당했다. 여기서 전쟁과 9·11테러 희생자는 제외됐다. 이 통계로 추산하면 20세기에 미국에서만 대략 100만명 이상, 전 세계적으로는 최소 1억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쟁같이 공인된 대량학살은 제외한 추론이다. 그러나 실종자, 의학발달 등에 따른 살인미수 등을 감안하면 실제 살해 수치는 두세 배에 이를 것이다.



-통계를 분석해 보면 살인은 특별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는다. 연쇄살인, 갱단에 의한 살인, 폭도들의 충돌에 의한 살인, 유명인에 의한 살인, 야만스럽고 잔혹한 살인은 전체 살인의 5%도 안 된다. 살인의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살인은 보통 사람들이 처음 저지른 것이다.

-흔히 살인은 살인자의 감정이 이성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충동과 열정의 폭발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격렬한 분노가 이성을 앞지를 때, 판단을 잘못 내렸을 때, 깊게 뿌리박힌 원시적인 감정이 표출될 때, 논리가 열정에 압도당할 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살인은 이성적 상태에서 벌어진다.



-물론 살인이 분노, 질투, 시기와 같은 강렬한 감정들에 의해 유발되기는 하나 감정이 분별력을 흐려 놓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격정은 다분히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격정은 인간 심리를 이루는 잘 설계된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인간이 특정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살인은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계산을 통해 도달한 하나의 해결책이다. 결코 우발적이지 않다.

-액션 영화 등 폭력적인 대중문화가 살인을 부추긴다는 설명은 매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문화권에서도 여전히 살인이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아동학대, 과도한 알코올, 유전자이상에 의한 뇌손상 등 병리학적 이론도 이들 가운데 극소수만 폭력적이 된다는 점에서 일반성을 띠지 못한다.



-또 가난, 경제적 불평등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람을 범죄로 몰아넣는다는 사회학이론도,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에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절대적 증거가 없다는 데서 막히고 만다. 살인이 발생하는 환경과 동기는 외관상 매우 다양해 보임에도 불구, 그 이면에는 이를 포괄하는 숨겨진 연결고리가 있다. 이 연결고리를 잇고 있는 실들을 추적해보면 인간 진화의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살인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 경쟁에서 많은 이점을 제공했다. 살인은 자기 자신과 배우자 또는 친척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강간당하는 것을 막는다. 주요한 적대자들을 제거한다. 경쟁자의 자원이나 영토를 취득한다. 경쟁자의 배우자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다른 이성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흉포하다는 평판을 퍼뜨려 적의 침략을 단념시킨다. 유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아이들에게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보호한다. 번식 경쟁자들의 핏줄을 완전히 끊어 놓는 등 냉혹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많은 이점이 있다. 이익이 너무 실질적이어서 오히려 살인이 더 만연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군비확장경쟁처럼 진화한 살인심리가 살인의 만연을 막았다. 살인 위협이 증가하면 그 방어기제도 함께 발달한다. 살인은 위험한 전략이며 희생자들은 끔찍한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살인자를 살해하는 무자비한 방어책들이 함께 진화했다. 살인에 위험과 방해물들이 수반되기 때문에 경쟁자와 다툴 때 사람들은 살인 이외의 다른 대안들을 택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동맹해 경쟁자를 몰아내기도 하고 아예 경쟁자와 친해지기도 한다.



-저자는 “살인문제에 대해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다음과 같이 책을 끝맺고 있다. “반갑지 않은 성적인 눈길을 1초 이상으로 오래 보내는 남자를 경계하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계부모에게 주의하라. 당신의 성공을 배아파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경쟁자를 조심하라. 동료들 앞에서 당신이 준 모욕을 참을성 있게 받아넘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방금 유혹한 이성의 전 배우자를 주의하라. 거절하기 전에 당신을 ‘유일한 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낭만주의자를 경계하라. 떠나지 않으려는, 스토커로 변해버린 전 애인을 경계하라. 살인자들은 우리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 살인은 아니더라도 살인과 같은 치명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맺음이다.(김승현기자)

중앙일보(06. 08. 05) 살인, 번식을 위한 또다른 본능

-미국의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이웃을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자와 어색하게 공존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베일을 벗지 않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가 환상 속의 살인자였다면,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그것은 현실적이다.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이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현실에서 훨씬 빈번히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연쇄살인범이 살인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살인 사건 피해 여성의 과반수는 남편.애인 등에게 살해됐다. 저자가 전세계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남성의 91%, 여성의 84%가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를 살해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최근 서울에 사는 한 프랑스인의 집 냉동고에서 영아 시체 두 구가 발견된 사건은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옛날엔 영아 살해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모든 문화권에서 영아 살해의 흔적은 남아 있다. 결함을 타고나거나 자식이 많아 더 낳기 부담스러울 때 영아 살해는 종종 일어났다. 인간은 자식을 키우는 데 어떤 짐승보다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기에 진화 가능성이 없는 자손은 제거했던 것이다(*장애아의 낙태 같은 것도 같은 논리에 의한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좀더 빨리 죽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텍사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렇게 살인 심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우선 가해자의 75%가 남성이다. '번식 경쟁'이 가장 큰 이유다. 남성들은 경쟁자를 제거해 자신과 배우자를 보호하고 경쟁자가 아내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직접 아이를 낳지 않으므로 친자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남성에게 살인은 남의 씨앗에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는 일을 방지하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따라서 살인자 비율은 남성의 번식력이 왕성한 15세 무렵에 상승해 20대에 최고점을 기록하며 40대에 접어들면 크게 떨어진다.



-어떤 남성들은 배우자를 붙들어두기 위해 아내를 학대하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통제한다. 이별 후 비슷한 수준의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직자 남성의 경우 증상이 더 심하다. 폭력 남편과 간신히 헤어진 뒤라도 안심하기 이르다. 배우자 살해는 대부분 결별 1년 이내에 일어나니까.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어떤 여자들은 살인을 택한다.

-살인 사건의 검거율은 69%. 강도 사건의 검거율(14%) 등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결국은 감옥행이다. 이렇게 옛날 사회와 달리 살인으로 득 볼 일 없는 현대의 인간이 여전히 살인 본성을 품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인류가 아직 현대의 환경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살인이 피할 수 없는 본능은 아니란다. 인류는 협동.이타주의.화해.우정.동맹.희생 등의 본성도 지녔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폭력의 극단적 형태인 살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심리는 섬뜩하면서도 유용하다.(이경희 기자)

 

 

 

 

06. 08. 04.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괭이 2006-08-05 13:55   좋아요 0 | URL
문화일보 기사를 보면, 상당히 타당해보이네요. 무서워라... 어떤 이유에서든 다들 한 번쯤은 '아비/어미 살해'를 꿈꾸어 봤을 법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