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교수의 "한나 아렌트의 판단이론과 의사소통적 합리성", 사회와철학연구회, <한국사회와 모더니티>(이학사, 2001)를 (오래전에) 정리한 것이다. 참고로, 국내에서 아렌트에 관한 논문을 활발하게 쓰고 있는 연구자들은 김비환, 김석수, 김선욱, 서유경 등 4-5명 정도이다. 김선욱은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정치철학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장연구자이며 <칸트 정치철학 강의>의 역자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양서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자음과모음, 2006)을 출간한 바 있다. 참고로, 아렌트의 주저 <전체주의의 기원>(1951)은 이진우 교수 등의 번역으로 조만간 역간될 예정으로 안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정치 현상에서 이론적 논의를 시작하는 현상학적 태도를 취한다. 아렌트는 이성적 접근, 도덕적 접근 등은 정치영역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법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서 정치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정치란 인간의 존재조건으로서의 다양성 혹은 복수성(human plurality) 때문에 존재하는 공적 영역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종래의 정치철학은 이성 개념을 핵심으로 사용하여 정치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인간의 복수성을 억압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것이 아렌트의 비판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 유형, 즉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한다(<인간의 조건> 참조). 노동이란 우리의 신체의 유지를 위한 신진대사에 필요한 소비의 대상을 마련하는 활동을 말하고, 작업은 보다 항구적인 물건을 만들어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는 활동을 뜻한다. 반면에 행위란 자신의 모습을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며 자신의 개성을 알리려는 시도인데, 이러한 행위가 바로 정치행위의 핵심이다. 하지만, 플라톤 이래의 서양정치철학사에서 이러한 정치의 특성이 적절하게 고려되지 못했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차이에서 확인된다.

소크라테스는 의견들이 경쟁하는 정치 영역을 염두에 두었던 반면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은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기초 아래에서 정치적 문제들을 재단할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서양철학은 관조적 삶을 활동적 삶보다 우위에 두었고, 이 양자가 양립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플라톤식으로 철학적 이념이 정치영역에 부과되면, 언어는 더 이상 개성을 드러내는 기능을 하지 않게 되고 단지 주어진 철학적 이념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즉 언어적 행위(action)가 단순한 기능적 작업(work)의 차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아렌트의 유명한 전체주의 비판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직결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어떤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복수성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렌트가 지적한 정치영역 내에서의 철학적 태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정치문제에 있어서의 이성이나 합리성의 기능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의미한다. 이성은 정치영역에서 의견의 복수성을 파괴하는 기능을 할 것이고, 인간의 기본조건인 복수성의 파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렌트는 이렇듯 서양의 정치철학을 거부했지만, 칸트의 <판단력비판>에서 '정치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판단력 비판>에서 다루어지는 인간이 지적 존재나 인식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사회 가운데 살고 있는, 복수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자신의 독특한 정치 개념에서 중요한 개별자, 개별자를 다루는 정신능력으로서의 판단력, 사교성 등의 개념을 다루고 있는 <판단력 비판>을 아렌트는 자신의 정치사상을 배양시킬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로 생각했다.

우리는 취미판단을 내릴 때 다른 사람과 공통적이라는 느낌에 바탕을 둔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감각을 공통감각(common sens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달리 공동체 감각(community sense), 즉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에 어울리게 해주는 별개의 감각"을 의미한다. 이 공통감이 판단의 소통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되며, 우리로 하여금 의사소통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해주는 것이다.



아렌트에게서 정치문제에 대한 목적합리성의 작용은 거부되지만, 하버마스(1929- )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아렌트의 판단이론과 합치될 수 있다. 아렌트가 판단을 통해 타인의 동의를 구할 때 전제하는 요소가 하버마스가 설명하는 의사소통의 가능성의 조건과 겹치며, 아렌트가 판단의 소통가능성의 근거로서 얘기하는 공통감 개념은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타인과의 상호관계 속에서의 언어학습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간의 차이도 분명한데, 하버마스의 이론이 어떻게 합의가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개성의 표출과 복수성의 인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양자는 언어의 기능에 주목하여 의사소통 가능성에 착안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각각 공통성과 특수성이라는 정반대의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에서 드러나는 아렌트 정치사상의 특징은, 판단이론이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합의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21세기 문화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효과적인 접근법을 하버마스보다는 아렌트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핵심은 서로 다르면서도 소통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 자신은 문화개념과 판단이론을 적극적으로 연결하지는 않았으나, 문화적 차이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는 국제관계가 정치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 바 있다...

06.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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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3-24 18:50   좋아요 0 | URL
'늘'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가끔'만 기억해 주십시오.^^

이리스 2006-03-24 22:06   좋아요 0 | URL
에.. 그럼 이따금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앗.. ^^;;

마늘빵 2006-03-25 00:21   좋아요 0 | URL
로쟈님 또 퍼갑니다. ^^

2006-03-25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3-25 13:54   좋아요 0 | URL
**님/ 예, 들어오긴 했는데, 계속 버벅대서 (바이러스)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문의해주신 '예술공론장'은 말이 됩니다.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보다 구체적인 해명이 있어야 될 거 같구요. 다만, 맨마지막 문장 정도가 저에겐 좀 모호합니다. 예술의 사회적 실천모델이 '예술공론장'으로 규정된다고 해서, 그 규정가능성으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구원과 해방'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인지. 좀 건너뛰는 내용이 아닌가 싶은데, 요약문이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네요.^^

twoshot 2006-03-25 16:29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퍼갑니다~
 

작년에 내한한 바 있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관한 몇 가지 자료들을 인용-정리하고자 한다. 나의 관심은 조금더 문학적인 차원에서 러시아 민족주의 혹은, '러시아에서의 네이션과 소설(Nation and Narration)의 문제'란 테마에 놓여 있지만,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앤더슨의 민족주의 비판적 문제제기에 관한 국내외의 논란(민족주의 vs 탈민족주의)도 얼마간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 물론 그걸 일거에 정리할 만한 역량을 나는 갖고 있지 않으며 대신에 몇 가지 자료를 인용-정리해놓는다.

그러고 몇 시간... 집앞에 있는 PC방을 놔두고 볼일 때문에 나왔다가 5분쯤 거리에 있는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예상대로 초딩들이 진치고 있는지라 공기가 훨씬 낫다(집앞 PC방은 한 시간만 죽치고 있어도 옷에 담배 냄새가 밴다). 집에 인터넷을 깔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백수파보다는 초딩파에 붙어지내야겠다. 흡연/끽연 문제에 있어서 나는 백수들보다는 초딩들과 더 강한 연대의식, 공동체의식을 느낀다... 

 

 

 

 

갑작스레 베네딕트 앤더슨 얘기를 꺼내게 된 건(물론 작년봄 그가 강연차 내한했을 때도 몇 마디 거들려다가 그만두긴 했었다) 어젯밤에 문득 호미 바바가 편집한 'Nation and Narration'(Routledge, 1990)을 꺼내들고 서문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러시아 국민문학 발생의 문제에 관한 생각을 좀 진전시켜보자는 속내에서. 러시아에서도 이 주제와 관련한 책들을 한두 권 구해왔었다), 그런데 거기 제일 처음 인용되는 문장이 바로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가. 다행히 박스에 들어가 있지 않은 국역본을 바로 서가에서 꺼내들었다. 몇 년전에 개정판 원서(1991; 초판은 1983)를 구하려다가 못 구한 적이 있는데(대출중이었던가) 이 참에 구해서 읽어보기로 마음먹고(사실 앤더슨의 기본 아이디어 자체는 이미 제목 자체에 기입돼 있기도 하지만, 여러 소개/해설들을 통해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하다).

 

 

 

 

책을 열자마자 '감사의 말씀'에 나오는 첫문장. "독자들도 알아보겠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나의 사고는 에릭 아우얼바흐, 발터 벤야민 그리고 빅터 터너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5쪽) 그러니까 <상상의 공동체>를 읽기 전에 예비적으로 좀 읽어줘야 하는 책이 아우얼바하(아우얼바흐;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벤야민의 <일루미네이션>(<조명>), 터너의 <제의에서 연극으로>(현대미학사, 1996) 등인 것. 전공상으론 가장 가까운(아마도 개인적인 면식도 있을 듯한데) 문화인류학자 터너의 책으로 앤더슨이 참조하고 있는 책은 'Dramas, fields, and metaphors : symbolic action in human society'(Cornell University Press, 1974)이지만, <제의에서 연극으로>에서도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간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문장.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의 형인 페리 앤더슨과 안토니 바네트, 스티븐 헤더의 논평과 조언으로부터 크게 도움을 받았다." '뉴레프트지' 편집장으로도 유명한 맑스주의 이론가 페리 앤더슨은 사실 베네딕트 앤더슨보다 일찍 국내에 소개되었고 훨씬 잘 알려져 있다. 한데, 페리는 베네덱트의 형이 아니라 동생이다(베네딕트가 36년생이고, 페리는 38년생이다). 물론 영어 단어 brother는 형/동생을 가리지 않지만, 이 경우에 '나의 형'이라고 옮긴 것은 오역이다. 아주 사소하지만(앤더슨 집안 문제이니까), 번역본에 대한 신뢰에 약간 금이 간다(이런 건 그냥 사실 확인만 해보면 되는 것인데). 본문에서 이 금이 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밖에(한데, 그런 사소한 오역은 12쪽에서도 나온다. 홉스봄의 책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1788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로 잘못 옮겨졌다. *확인해보니까 원서 자체의 오타이다). 아래 사진은 앤더슨가의 형 베네딕트와 동생 페리. 

 

형 베네딕트가 훨씬 나이들어 보이는 것은 사진 자체가 비교적 최근의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봄 방한시에 찍은 것이니까. 그때의 인터뷰 기사 두 건을 옮겨온다. 동아일보와 한겨레의 것이다. 내가 더 집어넣은 이미지들도 있다.  

동아일보(05. 04. 26) “20세기 민족주의는 19세기 민족주의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1세기 민족주의는 기존의 민족주의와 전혀 다른 ‘돌연변이 민족주의(mutant nationalism)’가 될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근대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학설을 체계화한 베네딕트 앤더슨(69)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그가 1984년 발표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는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과 함께 민족 또는 민족주의가 근대에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재구성됐음을 정교하게 이론화한 저서로 꼽힌다.  

-앤더슨 교수는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서강대 동아연구소의 공동 초청으로 24일 방한해 26일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동남아의 부르주아 과두제’를 주제로 특별강연한 뒤 출국했다. 25일 저녁 그를 만나 최근 동북아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민족주의의 파고(波高)와 관련해 앞으로 민족주의의 전개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민족주의는 21세기에도 번성할 겁니다. 민족주의는 이제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피부 같은 존재가 됐어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공동체를 유지해주니까요. 문제는 국내외 갈등상황만 발생하면 이 피부가 벌겋고 크게 부풀어 오른다는 데 있습니다.”  

-동북아에서는 민족주의의 파고가 높게 일고 있는 반면 유럽연합(EU)에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통합의 움직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독일출신의 라칭거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교황이 됐을 때 영국신문에서는 ‘나칭거’(나치+라칭거의 합성어)라는 제목을 뽑을 정도로 민족주의는 모든 나라에 뿌리 깊게 잠복해 있습니다. 지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가 바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란 점도 이를 증명해요. 동북아의 민족주의 강화현상에도 자본주의화를 택함으로써 혁명의 정통성을 상실한 중국 정부의 국내 정치적 불안감이 깔려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베트남 유모에게서 자라고 아일랜드 국적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앤더슨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에 민족주의가 정복과 팽창의 형태로 나타났다면, 21세기 민족주의는 오히려 분열과 해체, 응축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족국가의 확립이 국경선의 성역화로 나타나면서 1960, 70년대 이후 영토를 넓힌 민족국가는 없지만 구소련이나 유고연방처럼 오히려 영토가 나눠지는 경우는 늘고 있어요. 중국 인도와 같은 다민족국가도 이런 움직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그는 지구화의 흐름 속에 본토가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민족구성원들에 의해 민족주의가 근본주의화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아일랜드의 세계적 축제인 ‘성 패트릭 데이’에 동성애자들의 참가를 진작에 허용했지만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아일랜드 인들은 전통에 어긋난다며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을 가장 거세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국 본토인이 아니라 미국의 화교들입니다. 힌두교 근본주의 본부가 있는 곳은 인도가 아니라 영국 런던이죠.”

-앤더슨 교수는 이러한 ‘원거리 민족주의’에는 과거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와의 행복한 동거를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05. 04. 27) “동남아시아에서 90년대 사회 개혁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동남아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는 화인들이 개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민족주의 연구의 권위자 베네딕트 앤더슨(69)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26일 오후 서강대에서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서강대 동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동남아의 부르주아 과두제’ 강연에서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말문을 열었다.

-앤더슨 교수는 70년대까지 군부나 우파의 독재정권이 집권해 온 동남아 나라들이 80년대 이후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했지만, 중산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인(거주국의 국적을 취득한 화교)들이 공적인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개혁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민주화나 개혁이 성공하려면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력이 중산층이 나서야 하는데, 동남아 화인들은 경제적 성공에만 치중할 뿐 정치나 공적 영역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주로 농사를 짓던 화인들은 자연재해나 아편전쟁 등의 정치적 변화를 계기로 동남아 각 지역에 정착했으나, 현지 문화에 동화하지 못해 현지의 사회·정치적 문제가 ‘내 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칸 영화제에서 <열대병>(2004년)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타이 영화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이 정작 타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이와 연관시켜 설명했다. 타이의 민족주의적 문화나 정신을 표현한 작품에 화인들이 동질감을 느끼지 못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동남아 화인들이 각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화인 인구는 3.5%에 불과하지만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73%에 이르는 지분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나 타이, 필리핀 등에서도 소수의 화인들이 전체 민간 자본의 50% 이상을 갖고 있다.

-화인들에게 부가 집중되면서 집권세력과 화인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 갔다. 화인들은 세금으로 집권층의 재정을 채워줬고, 집권층은 이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해 줬다. 화인들의 유교적 가부장 문화와 동남아 나라들의 압제적 권력구조가 비슷한 것도 이들이 정치 개혁에 나서지 않는 한 이유라고 앤더슨은 덧붙였다.

-앤더슨 교수는 대표적 저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1983년)에서 민족의 개념을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라고 규정해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 동아일보 게재됐던 신용하 교수의 탈민족주의론 비판. 신교수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이며, (당연하지만) 대표적인 민족주의 옹호론자이다. 그의 기본입장은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민족해방적 민족주의'를 구별하고 이 둘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일제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같지 않다는 것). 따라서 섣부른 민족주의 비판은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내다버리는 격이라는 게 신교수의 비판이다.    

동아일보(06. 03. 04) 민족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배우고 믿어 왔듯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근원이자 완성일까. 민족주의의 권력 지향성과 배타성 등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며 탈(脫)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학계에서 확산돼 왔다. 탈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은 상상에 의한 허구라고 주장한다. 반면 민족은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공동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하(愼鏞廈) 한양대 석좌교수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는 국내 학계의 탈민족주의 움직임에 대해 포문을 열고 나섰다. 일제하 독립운동사를 주로 연구해 온 신 교수는 한국사회학회 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 ‘민족의 사회학적 설명과 상상의 공동체론 비판’에서 탈민족주의 이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의 대표 저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1984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 교수가 최근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국내 탈민족주의 진영의 학자들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이들을 겨냥한 것은 분명하다. 신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 논문을 계기로 탈민족주의 진영의 학자들과 일대 논쟁을 벌이고 싶다”고 밝혔다. 앤더슨 교수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이란 개념이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 이주민의 후손(크리올료)들이 유럽 본토인과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발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민족 개념이 유럽과 제3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민족은 공동의 언어·혈연·문화공동체라는 객관적 요소에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더해져 공고해진 실체라고 반박했다. 객관적 요소들로만 형성된 민족을 ‘즉자(卽自)적 민족’이라고 한다면 주관적 요소인 민족의식이 더해진 민족을 ‘대자(對自)적 민족’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상상의 공동체론’은 주관적 요소인 민족의식에만 주목한 나머지 ‘즉자적 민족’을 부인하고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지적이다. 신 교수는 “앤더슨 교수가 ‘상상’이란 표현을 통해 민족을 허위의식, 허구,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몰고 갔다”며 “‘상상의 공동체론’을 약소민족의 해방 투쟁에 적용하면 실재하지도 않은 ‘상상물’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한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상상의 공동체론’은 오늘날 제3세계의 민족해방, 민족통일, 민족국가 건설과 발전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적 도구를 제공할 수 있으나 사실에서 이론을 정립하는 경험적 사회과학으로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맹비판했다. 신 교수는 민족을 ‘에스닉 그룹(ethnic group)’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비판했다. 에스닉 그룹은 다민족국가인 미국에 적용될 수 있는 ‘문화와 관습의 하위공동체’로서, 민족 형성 이후에 다른 지역에 이민한 탓에 민족의 특성이 많이 해체 소멸돼 가는 정태적 공동체라는 것. 반면 민족은 한 사회의 다수집단의 언어·지역·혈연·문화의 공동체로서 형성돼 발전되어 가는 동태적 문화공동체라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민족주의를 크게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로 구별해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과거 서구 제국과 일본처럼 다른 약소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빼앗고 억압하는 민족주의이고,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는 피압박 민족들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해 민족의 자유와 해방,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주의를 말한다. 그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의 기초인 유형화를 소홀히 한 잘못된 비판”이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제국주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자기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행동이 민족주의 문필가들의 선동에 속아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물’에 생명을 바친 어리석은 행동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실재(實在)의 공동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하는 기자의 보충기사로 탈민족주의론자들의 견해를 정리하고 있다.  

■ 脫민족주의자 주장은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견뎌내며 광복과 건국, 근대화와 통일이라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견인차였다. 최근에는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서 민족주의를 외치는 현상이 강화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더욱 번성하고 있다. 탈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족주의를 “현대의 신화”라고 지적하며 성역화된 민족주의의 이면에 감춰진 권력지향성, 배타성, 집단성, 가부장성 등을 폭로한다.

 

 

 

 

국내의 탈민족주의 담론을 주도하는 학자로는 임지현(林志弦·역사학) 한양대 교수가 첫손에 꼽힌다. 임 교수는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도발적 저서를 통해 이념으로 기능해 온 민족주의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식민시대 민족이 국가의 공백을 채워 주는 절대적 신화였다면 광복 이후에는 남북 양쪽에서 모두 권력 유지를 위한 대중 동원 수단으로 쓰였다고 주장하며 민족주의와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영훈(李榮薰·경제사) 서울대 교수도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이 교수는 ‘민족’이라는 말이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고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격화한 것도 근대의 산물일 뿐이라며 ‘민족주의는 반(反)지성적 신화’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박지향(朴枝香·서양사) 서울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는 논자. 탈민족 담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번역한 박 교수는 민족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내면화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고 비판한다.  

철학가 탁석산(卓石山) 씨도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에서 ‘민족’은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처럼 국가 건설이 불가능했던 시기 국가의 대체물로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였던 만큼 국가 수립 이후에는 ‘시민’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시위 모습이다. 끝으로 마지막 자료는 교수신문에 기고된 김봉률 교수의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비판"(05. 12. 21). 강조는 나의 것이다.

-이안 와트가 18세기 중엽에 '소설의 발생'을 강조하는 것은 18세기 중엽에 소설이 발생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1958년에 <소설의 발생>(열린책들, 1988)이 출간될 때 소설 발생이 제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영국을 능가하는 자본주의 진영의 종주국으로 짧은 역사와 전통의 부재라는 특유의 미국적 콤플렉스를 해소하고자 했는데 소설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장르정치학 역시 그 작업의 일환이다. 더 나아가 콤플렉스 해소에 멈추지 않고 근대 민족주의가 미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과 함께 소설 역시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의 기원을 전유하려는 전도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이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와 낸시 암스트롱과 레오나드 텐넨하우스의 <상상의 청교도>(The Imaginary Puritan)에서의 민족주의와 소설의 미국적 전유에서 잘 나타난다.

-근대 영국 자본주의에서 소설이 발생했다는 와트의 명제가 일단 미국에서 제도화되면 두 가지 현상이 생긴다. 첫째는 소설 기원의 문제가 일반 소설의 기원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과 서구 근대 소설의 기원이 과연 근대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은폐, 배제되고 당연히 소설은 근대 영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제된다. 둘째는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전도된다. 영국에서 기원이 되는 소설이 리얼리즘이고 미국에서 기원이 되는 소설이 로망스라는 전도된 관계는 언제든지 영국 기원설을 미국이 전유하게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암스트롱과 텐넨하우스가 1992년 '상상의 청교도'에서 주장한 ‘소설의 미국 기원설’은 미국적 예외주의를 논리로 내세운다. 소설의 근대영국 기원설이 유럽문학의 전통에서 하나의 예외라는 영국적 예외주의에서 출발했다면 미국적 예외주의 역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영국문화가 식민지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 반면 식민지의 글쓰기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영국으로 되흘러 갔을 때 일어났던 것을 탐색해보려고 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이 보기에 “소설은 무엇보다 최초로 유럽적 장르가 아니고 오히려 식민지 경험을 동시에 기록하고 기록했던 장르”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식민지에서 영어(English) 정체성의 새로운 토대를 창조했던 인쇄문화라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런 주장이 있기 위해서 그 전사로서 있어야 되는 것이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이다. 앤더슨이 강조하는 것은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보다 미국이 근대 민족주의가 최초로 기원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개정증보판 서문에서 자신의 이러한 주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주목받지 못한 것에 분개하면서 “현 세계의 모든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 기원하였다는 기만에 익숙한 유럽 학자들에” 반기를 들고 “민족주의가 신세계에서 발원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나의 원래 계획의 일부였다”(13-4)고 주장한다.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 특히 미합중국에서 발원한 민족주의가 유럽으로 건너가 언어 민족주의를 유발시켰다는 것은 소설이 미합중국에서 발생해서, 기원의 소설로 주장되는 영국의 <파멜라>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과 같은 논리구조를 이루고 있다.

-앤더슨의 쇼비니즘은 근대 서구소설의 기원과 관련해서 중요한 언문일치와 민족의 문제에 관한 고찰에서 잘 드러난다. 앤더슨에 의하면, 16세기에 서구사회에서 이윤을 위한 지방어 서적의 대량 출판은 다양한 방언들을 소수의 표준어로 활자화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일한 지방 활자어 서적을 읽는 독자들은 다른 지방 활자어를 읽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유대를 상상하고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언문일치가 종교개혁, 자본주의, 절대주의 시대의 지방행정어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하더라도 수많은 방언들이 난립해 있었고 이를 차츰 해소하여 민족의 경계를 정할 정도의 독점적 언어의 지위를 차지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활자어로 보고 있다. 이 활자어들은 신문과 소설을 통해 나타난다. 그는 “사회적 유기체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통해 달력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를 따라 앞으로(혹은 뒤로) 꾸준히 움직이는 견실한 공동체로 민족을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비유가 된다”고 하면서 민족의 기원과 소설의 기원을 동일시하고 있다. 앤더슨의 인쇄에 대한 강조는 민족과 소설을 함께 묶어 상상의 실재로 만드는데 있다.

-그런데 그에게 상상의 공동체는 민족만이 아니다. 중세 제국도 종교적 “상상의 공동체”이고 세계사적 조건에서 자본가도 “본질적으로 상상의 기반 위에서 결속력을 성취한 최초의 계급”이다. 자본가 계급을 결속시키는 것 역시 앤더슨에게는 활자어로 소설과 신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대로라면 근대적인 것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상상의 산물이 된다. 그런데 그가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을 형성하는데 활자어로 된 소설과 신문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놓은 것은 일종의 문화적 기술주의이다. 문화의 물질성을 밝힌다는 것이 문화가 물질성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전도된 분석방법을 쓰고 있다.

-앤더슨에 따르면, 초기 서적시장은 라틴어를 아는 소수 엘리트를 겨냥하였으나 인쇄술이 발달하여 16세기 초에 이미 ‘기계제 재생산’의 시대에 들어서서 인쇄자본가들은 대량출판에 눈을 돌렸다. 이미 16세기에 인쇄가 상상의 공동체를 매개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는데 왜 하필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인쇄만이 최초로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케 하여 민족됨(nationness)을 먼저 자각하게 했을까? 앤더슨은 인쇄된 자국어물들은 단지 “절대주의 전제정”을 중앙화의 도구로 제공했을 뿐이고 어떤 “원형적 민족적 충동”도 없었으며 “백성들에게 언어를 체계적으로 부과한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필자와의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무엇보다도 민족됨이 공화국의 문제임을 주장하기 위한 예비과정이다.

-그는 언어와 종교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쟁을 했던 크리올과 본토인의 차별의 문제로 전환한다. 앤더슨은 근대 민족국가의 구체적 형성이 결코 특정 활자어가 결정적으로 도래한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민족이나 공화국이라 정의한 1776년에서 1838년 사이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실체인 미국에서 최초의 민족됨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민족됨”의 주장은 민족과 국가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닌 nation을 혼용하여 반증 회피의 수단으로 삼는다. 사실상 이들이 자각한 것은 민족됨이 아니라 국가의 형성 필요성이었으며, 또한 북미 독립운동을 한 13개 식민주의의 많은 지도자들은 노예를 소유한 부자 농업가들로 사실상 인디언이나 흑인 노예 그리고 프랑스나 스페인계의 일반인들과는 다른, 거의 봉건시대 영주들과 비슷한 지위를 지닌 자들로 근대적 민족의 범주와는 다르다.

-그는 인도를 동인도회사령으로 삼은 것을 예로 들면서 17세기 이후의 해외영토 정복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는 민족주의 이전 시대의 것”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해외 식민지 정복은 선박의 건조나 군대, 엄청난 경비 등으로 인해 국가적 지원체계가 꾸려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따라서 절대주의 체제나 그 이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민족주의의 시원을 식민지 본국으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크리올의 반항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또한 그것을 모방하여 유럽이 민족주의체제로 나아갔다는 전제 아래 입헌군주제나 절대주의 체제에서의 민족국가의 문제를 배제하였다.

-암스트롱과 텐넨하우스가 제기하는 문제는 '파멜라' 이전에 글쓰기 능력만을 지닌 평범한 여성의 육체를 중요시하는 소설들이 영국 내에서 없다고 할 때 이런 󰡔파멜라󰡕의 전통은 어디서 왔는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귀족에 대한 담론과 보통 사람에 대한 담론이 소설에서 분기하는 지점은 영국적 미국인인 메리 롤란드슨(Mary Rowlandson)이 쓴 <되찾은 포로>(The Redeemed Captive)(영국판 1682)에 있다고 보고 영국 산문의 원천이 되는 것은 17세기 말과 18세기 동안 북 아메리카 식민지들에서 씌어진 포로 서사라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17세기 인디언 포로서사에서 장르가 증식되고 분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롤란드슨은 납치된 몸으로 신세계에서 영국을 대표한다. 그는 인디언 즉 비영국적 문화 가운데서 문자해독의 힘을 보여준 영국여성으로서 영국적 미국의 경험이 되는 원천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영국적인 것을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이들 포로서사가 독자들에게 영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길 요구하는 데 그것은 문자해독능력 곧 영어를 읽고 쓰는 능력의 문제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기 동안 프랑스 인들은 영국인 등장인물에 위협이 되었지만 후기의 포로서사에서 영국인 개인을 유럽 태생의 남녀와 구별해주는 것은 영어에 대한 문자해독능력이었다. 이렇게 해서 “영어”는 영국적인 것의 핵심이 되고 식민지에서 근대 국가의 탄생 문제와 결합한다.

-식민지 모국인 영국에서 독립할 때 민족의 문제에서는 언어를 배제했지만 독립한 이후 민족의 문제에서는 영어 활자어가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앤더슨과, 인쇄된 영어로 씌어진 포로서사가 최초의 소설이라는 암스트롱과 텐넨하우스는 소설과 신문을 통해 인쇄된 영어를 내세움으로써 유럽대륙과 아시아를 배제하고 급기야 영국을 배제하고 자신들이 민족주의와 소설의 기원을 전유하는 장르정치학의 놀라운 귀결을 보여준다.

김봉률 교수의 글은 '쇼비니스트' 앤더슨에 대한 흥미로운 비판을 담고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상상의 공동체>을 읽어본 후에 내리도록 하겠다(원서를 오늘 입수했다). 한데, '민족'이 비록 '상상의 공동체'라 하더라도 실감나는 공동체인 것만은 분명하다...

06. 3. 15 - 16.

P.S. 베네딕트 앤더슨 이전에 민족주의 연구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는 한스 콘(1891-1971)이었다. 국내에는 그의 <민족주의>(삼성문화재단, 1974), <민족주의시대>(박영사, 1975), <근대 러시아, 그 갈등의 역사>(심설당, 1981), <19세기 유럽 민족주의>(탐구당, 1990) 등의 번역/소개돼 있고, 내가 학부시절에 읽은 것도 그런책들이었다. 앤더슨이 내세우는 것은  이러한 민족주의 연구 접근법에 있어서 자신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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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3-15 11:02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제가 관심있게 보는 주제입니다. 요번에 <상상의 공동체> 구입했는데.

로쟈 2006-03-15 11:04   좋아요 0 | URL
예, 저도 필요 때문에 관련서들을 읽고 있습니다(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6-03-15 12:11   좋아요 0 | URL
저두 민족주의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계속 자료가 올라오면 좋겠네요.

기인 2006-03-16 17:41   좋아요 0 | URL
항상 로쟈 선생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신용하 선생님의 비판도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이라는 개념이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용하 선생님도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를 드셨지만, 혈연, 문화, 언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애매하다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는 '다른' 혈연, 문화, 언어로 볼 것이냐는 것이 '민족' 혹은 '국민국가'로 정해지는 면도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읽기만 하다가 주절주절 써 봅니다.
로쟈 선생님 글들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로쟈 2006-03-16 18:42   좋아요 0 | URL
'로쟈 선생님'이라고 하시니까 멋쩍네요. 그냥 '로쟈님'으로 해주십시오(저에게 수업료 내시는 것도 아니니까^^). 제가 알기에 '상상된 공동체'라고 할 때, 앤더슨이 염두에 두는 것은 (신문과 함께) 근대소설입니다(이에 대한 자료들을 그는 자세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설(허구)들에 의해서 매개된 민족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을 '객관적'인 것으로 봐야할지, '주관적'인 것으로 봐야할지는 저도 읽어보면서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요 며칠은 '야구공동체'라고 해야겠네요). 그리고, 말씀대로 '혈연, 문화, 언어' 모두 모호한 기준들이죠. 그것들이 우리를 '확실한' 민족-공동체로 만들어준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인정투쟁'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 주제의 원천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개인적으론 지젝 이전에, 읽히지 않는 헤겔을 그래도 읽어보려고 애쓰면서 자료들을 모으고 했던 건 순전히 이 테마에 관해서 뭔가 글을 써보기 위해서였다. '주인과 하녀의 변증법'이란 제목으로(조만간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유효한 프로젝트이다). 이 주제에 관한 가장 간명한 소개서는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동녘, 1996)이고, 이와 관련한 연구서 서너 권을 나는 갖고 있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1949년생이고, 하버마스의 수제자로서 현재는 프랑크푸르트 소재 사회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소위 3세대 프랑크프루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이다(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방한한 적이 있다). 물론 예전의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아니지만. '사회와 철학연구회'의 사회와 철학 시리즈 중 <한국사회와 모더니티>(이학사, 2001)에 그의 대담이 실려 있다. 내용 중 푸코와 하버마스를 종합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론적 기획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을 발췌하여 잠시 옮겨본다.

질문: 당신은 <인정투쟁>에서 인정투쟁 개념이 푸코의 이론적 성과를 의사소통 이론 속에 통합시키는 개념적 장치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인정투쟁 개념으로 하버마스와 푸코를 통합시킬 수 있는가? 하버마스와 푸코의 이론적 결함은 무엇인가?



 

 

 

답변: 나는 인정투쟁 이념을 통해서 하버마스와 푸코의 이론적 관심을 매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푸코의 관심사는 근본적으로 모든 형태의 공동체, 모든 형태의 사회를 항구적 투쟁의 일시적 휴전상태로 보려는 데 있다. 즉 푸코의 근본이념에 따르면 사회적인 것은 투쟁이며, 기존의 질서는 단기적인, 일시적인 휴전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푸코에게는 투쟁의 동기에 대한 납득할 만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 홉스와 니체의 유산을 이어받은 푸코는 사회에서 투쟁하는 이유를 자기본존을 위해서나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서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인간학적으로나 사회이론적으로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아마도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의사소통적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는 하버마스의 이념에 헤겔적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보다 분명한 투쟁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인간은 개별자로서든 집단으로서든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한 사회 속에서 투쟁한다. 이 점이 바로 하버마스와 푸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즉, 인정투쟁 모델은 의사소통이념과 투쟁이념을 결합시킨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모델을 갈등이론과 충분히 결합시키지 못했다. 하버마스는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나 상호작용 속에 존재하는 갈등이나 투쟁의 요소가 자주 사라지곤 한다. 하버마스는 부명 의사소통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빈번히 인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때문에 요구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푸코의 최대의 결함은 그가 투쟁의 동기를 너무나 홉스적으로 본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사회를 자기보존을 위해 싸우는 개인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니까 호네트의 이론적 기획을 요약하면 푸코(투쟁이념)과 하버마스(의사소통이념)를 접속시키는 것이겠다. 덧붙여서, 그의 학문적 '아버지' 하버마스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하버마스에게서 성장한, 이제 어른이 된 제자이다. 그러나 배신자이거나 살부를 감행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성장한, 그러나 자립적 사고를 감행한 그의 아들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생각은 계승발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보완은 아니다. 결코 보완이나 단절은 아니다. 나는 하버마스가 기초한 프로젝트를 자립적으로 계속해서 사고한 것뿐이다..."

호네트가 푸코나 하버마스보다 더 멀리 가기를 기대해보지만, 아직 '후속타'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아쉽다(우리 '통신원들'이 직무를 게을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주제에 관하여 내가 당장에 보탤 말은 없고, 대신에 작년에 여름 <한겨레21>(05. 08. 11)에 실렸던 '우리시대의 마당발' 강준만 교수의 기고문 "인정투쟁’ 민주화시대의 명암"을 옮겨놓으면서 몇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추려보겠다. 부제로 붙어 있는 건 "왜 간호조무사는 신생아를 학대했을까, 왜 사이버 삐끼들은 횡행하는가. 인정욕구가 매우 강한 한국의 네티즌들, 티티테인먼트로 흐를까 염려된다."였다(인용문에서의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한편 그의 책들이 예외없이 올해도 '행진'을 시작했는데, 첫타자로 나선 책은 <대중문화의 겉과 속3>(인물과사상사, 2006)이다. '사람들은 왜 인정투쟁에 빠져드는가"란 꼭지가 들어 있는데, 아마도 이 글과 관련된 것일 성싶다. 나머지 책들은 관련서들과 '인정'을 모티브로 한 처세서들.

 

 

 

 

-인간이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너무나도 깊고 근원적이어서 인류의 역사 발전에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그러니까 인정욕구는 생물학적 본성은 아니더라도 이차적 본성쯤은 되는 듯하다). 옛날에는 전쟁터에서 이러한 욕구가 발휘되었지만, 오늘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군사 영역에서 경제 영역으로 옮겨졌다. 우리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동기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경제생활이 물질적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명백해진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체제인바, 오늘날 사실상 모든 선진국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 사회의 폭넓은 진화라는 마르크스주의적·헤겔주의적 의미의 역사는 이제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리플’의 본질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해준 덕에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론을 요약해본 것이다. 후쿠야마는 좀 독특한 유형의 본질주의 함정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들 밥은 먹고 살잖아?” 사람 사는 걸 ‘밥’이라는 본질로 환원해버리면, 그 밥의 값이 천차만별이라는 건 사소해진다. 극심한 빈부 양극화 체제에서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도 그 세계에선 나름대로 ‘인정’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겠지만,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는데 부유층이 추구하는 ‘인정’과의 엄청난 괴리에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인정의 빈부격차’가 다시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정의 빈부격차’는 아직 심각한 화두로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아주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에 의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티티테인먼트’(tittytainment)라는 개념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겠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세계화’로 인해 ‘20 대 80’(부유층 20%, 빈곤층 80%)이 이루어진 세상에선 티티테인먼트가 판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entertainment’와 엄마 젖을 뜻하는 속어인 ‘titty’를 합한 말인데, 기막힌 오락물과 적당한 먹을거리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서 이 세상의 좌절한 사람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면서 흥분한 나머지 괴성까지 질러대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게 괜한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그렇게 말했다간 시대착오적인 인간으로 몰매 맞기 십상이다. 게임은 ‘국민산업’이 아닌가.(*내가 이 글을 치고 있는 PC방 옆자리들에도 초등학생들이 죽 늘어앉아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나 같은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나 백수들 외에 PC방에 죽치고 있는 아이들은 대개 저소득층 자녀들인 듯싶다. 집에서 오락을 할 만한 처지가 못되는 수준일 테니까. 해서 이들의 안쓰러운 유해환경은 '오락'이 아니라 오락실의 '탁한 공기'이다. 한번이라도 동네 PC방에 들러본 부모라면 담배 연기 자욱한 이런 곳에 아이들을 내돌리지 않으리라. 요즘 떠오르는 화두대로, 건강의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반복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인정투쟁’의 민주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아니 언제는 그런 시대에 살지 않았단 말인가? 이렇게 정색을 하고 전투적으로 묻는다면, 인류 역사 이래로 그랬다고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하겠지만, 겸손한 자세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간호 조무사가 신생아를 학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건으로 경찰서에 출두한 어느 간호 조무사는 “싸이월드에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영아들의 인상을 특색 있게 해 주변 다른 간호 조무사 또는 간호 관련 종사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이거 아주 중요한 ‘인정투쟁’이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연예인 누드 사진을 보고 싶으면 내 홈피로 오세요”라는 글을 올려 작은 소동을 빚었던 주인공도 자신의 홈피 방문자 수를 늘려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초등학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리플’의 본질도 인정투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의 ‘성기 노출’ 사건도 그랬지만,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삐끼’들이 나타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놀러 오세요. 보러 오세요. 화끈해요. 죽여준다니까요.” 아니다. 삐끼는 아니다. 삐끼는 돈을 벌기 위해 그런다지만, 우리 시대의 사이버 삐끼는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 조회 수를 올리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그러는 것뿐이다. 보여줄 것도 없으면서 거짓말로 유혹하는 삐끼들도 있다지만, 행여 화를 내선 안 될 일이다. 조회 수 올리는 걸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그 소박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몸부림에 감히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인터넷 이전과 이후가 이렇게 달라졌다. 과거 보통 사람들의 인정투쟁은 수단이 미비했다. 인정투쟁의 주요 수단이라 할 미디어는 엘리트의 독무대였다. 학생들의 경우 공부를 빼놓곤 기껏해야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이렇다 할 수단이 없었다. 운동을 잘하거나 주먹을 쓰거나 연애박사가 되는 길로 빠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돈질도 부유층 자제에 국한되었다.

유희주의에서 공동체주의까지

-인터넷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인터넷이 ‘규범 테크놀로지’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파급 효과가 인터넷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더 달라질 것이란 말인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보자면 ① 유희주의 ② 다문화주의 ③ 극단주의 ④ 공동체주의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첫째, 유희주의다. ‘유희주의’란 말은 없다고 시비를 걸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유희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찜쪄 먹을 수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상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좋겠다. 인터넷의 본질은 유희다. 사람에 따라 ‘오락’이라고도 하고 ‘엔터테인먼트’라고도 한다.

-‘엔터테인먼트 경제’는 이미 주류로 등극한 지 오래다. 인포테인먼트, 에듀테인먼트, 폴리테인먼트, 도큐테인먼트, 마켓테인먼트, 이터테인먼트, 처치테인먼트, 워크테인먼트, 쇼퍼테인먼트, 볼런테인먼트, 티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를 물고 들어가는 수많은 합성어들이 양산되는 게 그 위력을 잘 말해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미래연구소 소장 폴 사포는 “디지털 기술은 너무나 흡인력이 강해서 ‘모든 것’을 유희의 도구로 만들어버릴 위험성이 크다.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읽을 수 있듯이, 위대한 문명의 몰락은 모든 것을 유희화한 데서 비롯됐다”고 경고했다.

-그대로 믿을 말은 아니지만, 유희 아닌 것들이 이젠 유희와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지 않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해졌다. 유희는 인정투쟁의 주요 수단으로 등극하면서 전투성을 획득했기에 더욱 그렇다. 예컨대 정치가 무슨 수로 유희와 경쟁할 것인가. 하긴 그래서 정치가 자꾸 유희화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사주간지마저 유희와 타협하지 않고 이렇게 골치 아픈 이야기 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건가? 생각해볼 점이다.

-둘째, 다문화주의다. 최근 인터넷엔 “님의 노예로 부려주시옵소서” “어린 ‘주인님’을 찾습니다” “내 속옷도 팔아요” 등을 외치는 카페가 많아졌나 보다. 가령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발’이란 단어를 치면 발을 탐닉하는 카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한 포털 사이트에는 이런 카페가 600개 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런 카페를 ‘변태 카페’라고 이름 붙였지만, ‘변태’의 경계 설정은 이제 날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그간 다문화주의는 소수자의 권익 옹호라는 점에서 좋은 의미로만 여겨져왔다. 인터넷 이전엔 당당하게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소수자들 중심으로 소수자를 이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소수자’의 폭발을 몰고 왔다. 인터넷 이전엔 뭉치기 어려웠던 소수자들까지 대거 인정투쟁을 위해 독자적인 동아리 또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는 늘 보수파의 공격 대상이었지만 이젠 일부 진보파도 다문화주의 공격에 합세했다. ‘성향의 소수자’건 ‘취향의 소수자’건 이들의 특성은 자신의 열악한 위치를 타개하기 위해 ‘단일 이슈 정치’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슈 한 가지만을 보고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진보파는 이런 정치 행태가 소수 집단간 ‘연대’를 파괴해 진보 정치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게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점점 한국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사이즈’와 ‘주목’의 문제

-셋째, 극단주의다. 인터넷은 대중의 전폭적인 참여와 그들의 인정투쟁 욕구로 인해 전반적으로 보아 반지성주의로 흐르게 돼 있다. 지성주의는 좋고 반지성주의는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한겨레> 문화생활부장 이인우는 “반지성주의·반지식인 정서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 문화의 특징적 흐름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고 본다”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인터넷을 지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는데, 이게 중립적인 분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쇄술이 지식의 생산과 소유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과 같이 지식과 정보가 급속하게 전파되고 공유되고 가공되는 인터넷 문화가 지식과 정보의 평균화, 지성의 평등화가 가능한 것 같은 착각을 대중들에게 확산시키고 있는 것 같다.”

-화끈한 해결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반지성주의와 사이버 폭력이라는 극단주의가 상호 무관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정부는 사이버 폭력을 일소하겠다며 ‘인터넷 실명제’를 들고 나왔는데, 흥미로운 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반대하는 의견보다 최대 4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야후 조사에서는 찬성 79%, 반대 20%로 나타났으며, 20~30대 이용자가 많은 네이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5%가 실명제 도입에 찬성한 반면 반대 입장은 32%에 그쳤다. 이게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 심층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

-넷째, 공동체주의다. 지금은 무분별한 사용으로 오염된 단어가 되었지만 초기의 ‘해커’를 떠올리면 되겠다. 해커는 원래 ‘인정’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도덕성 수준도 높았다. 남들이 자신의 기술 수준을 인정해주는 기쁨 하나로 돈도 받지 않고 폐인이 될 정도로 자신을 혹사해가며 프로그램 개발에 헌신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사이즈’와 ‘주목’의 문제다. 누군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할 때에 남들이 얼마나 주목해주느냐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다. 내가 무슨 희생을 하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희생하고 싶은 마음도 약해질 것이다. 반면 나의 희생이 영웅적 행위로 널리 알려질 수 있다면 애초 마음먹었던 희생의 정도보다 ‘오버’할 수도 있다. 인터넷은 ‘사이즈’와 ‘주목’의 경계를 깬 열린 공간으로 이타성과 협동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주의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인터넷 강국론’은 정말 허구가 아닐까

-이렇듯 인터넷을 주요 무대로 삼은 인정투쟁엔 명암이 있다. 세계 각국의 인터넷을 두루 살펴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한국 인터넷 문화의 독특한 특성 중 하나는 네티즌들의 인정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간 한국은 보통 사람들의 인정 욕구 충족에 무심한, 아니 억압적인 사회였다는 점에 주목해보는 게 좋겠다. 대중의 인정 욕구 충족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한다. 인정 욕구 충족의 방식이 획일적이라면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많은 사람들의 인정 욕구가 충족되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사회는 인정 욕구 충족에서 일렬 종대로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유별난 문화를 갖고 있다. 돈,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명품, 골프 등 모두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한 가지 잣대만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데에 익숙한 문화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무지막지한 위계가 “한국에선 인간답게 살려면 어찌어찌해야 한다”는 수많은 속설들을 낳았고, 또 이것들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일하게 만든 동력이 된 게 아닌가 싶어, 과거의 민주화 투사들조차 자랑스럽게 뻐겨대는 ‘세계 10대 경제강국론’에 흔쾌히 박수를 치기가 어려워진다.

-인터넷이라는 축복이 인정 욕구 충족의 다른 출구를 열어준 것은 그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야 마땅하겠건만, 다문화주의의 일부와 공동체주의를 제외하곤 이것마저도 혹 ‘티티테인먼트’가 아닌가 싶어 주저하게 된다. 인터넷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는 많은 인터넷 기업가·전문가들이 한국 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유희 중심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른바 ‘인터넷 강국론’은 허구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그런 주저가 시대착오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인정투쟁 민주화의 내실화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끝)

 

 

 

  

전반적으로 시의적절하고 발빠른 진단이다. 더불어 또다른 숙제까지 떠맡게 하는. 내가 임의로 골라본 참고서들이 숙제 해결에 도움을 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티티테인먼트와 더불어 자라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염려하고 공부해야 할 주제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06. 01. 24.

P.S. 이렇듯 자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나대로의 '티티테인먼트'가 아닌가 문득 반성하면서, 이성복의 '서시(序詩)'를 떠올려본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류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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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과 물화
    from 파란딸기 2009-03-11 08:15 
    왜 이런 책을 거론하는데 강준만의 경우는 한국의 소비사회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에다가 사용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문제는 이런 집단행동이 어떻게 가능하느냐에 관계되어, 인정받지 못한 어떤 정체성을 인정받고자하는 행위로 분석될 즈음이라면, 이 때쯤 이런 책도 읽어줘야한다.인정투쟁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 이현재 옮김/동녘2000년에 이 책을 구입하여 세 번을 읽었지만, 뭔가 께름칙하게 개운치 않은 부분이 많다. 오늘 정리해보고 그 부분...
 
 
2006-01-3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1-31 15:02   좋아요 0 | URL
**님/ 감사합니다.^^
 

 

 

 




아침에 전철을 타고 오면서 작년 11월말 한겨레 대담기사로 '송건호언론상에 강준만 교수를 선정한 이유'를 읽었다. 언젠가 프린트한 걸 가방에 계속 넣고만 다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사실은 바삐 전철에 오르느라 매점에서 조간신문을 살 시간이 없었다) 읽은 것인데, 거의 두달 전 기사이지만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귀가하기 전에 인용/정리해두려 한다. 이런 기사도 저작권 보호를 받는 것이므로 전문을 퍼오진 않고 부분 인용/발췌를 하면서(사실 이런 '인용'을 가장 잘,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강준만 교수이다) 드문드문 몇 마디 덧붙이고 하겠다. 대담은 '강준만 입문'으로서 아주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6년 동안 122권의 책을 낸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상이 주어졌다면 과소한 듯도 한데, 이 기회에 '강준만의 시대'를 잠시 돌이켜보고 싶다(나는 강준만을 지지하지 않을 때라도 그의 작업만은 적극 지지한다). 비록 내가 적격자는 아니더라도.

나는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책을 한두 권 정도밖에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인물과 사상>만은 여러 권 사서 읽은 적이 있다. 그 자신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하지만, 내가 안티-조선에 동참하게 된 건 순전히 그의 '운동'  덕분이었다. 더불어, 아마도 그와 '인물과 사상'의 주도적인 문제제기에 따라 '문학권력'과 '주례사비평'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보기도 했다. 여러 모로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건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제목으로 붙인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는 그의 수상소감문이며, 나는 과중한 겸손을 오히려 경계하는 사람이기에. 기사/대담의 중반으로 건너뛰겠다(기자와 강교수의 주거니받거니이다).

 

 

 


 

-언론학자로서도 훌륭하지만, 사회과학자, 정치평론가, 행동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는데,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생각하나?

=언론인까지야. 대중적 글쓰기하는 언론학자지. 나를 언론인라고 하면 과찬이고, 전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언론인 역할 하면 좋겠지.(*언론학자 강준만의 대표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10년쯤 전에 보던 책들은 <언론플레이>나 <대중문화의 겉과 속> 같은 책들이었다. 과조교 시절이었는데, 과방에는 언론고시생들이 읽던 책들이 나뒹굴고는 했고 '강준만'도 그런 책들에 속했다. 고시에 뜻이 없었던 나는 그냥 훑어보는 걸로 충분했다.)   

-안티조선의 주요 활동가였는데 최근 언론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발언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글에서 조중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실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조중동에 대한 생각은 같은데, 싸운 뒤에 이유를 생각해봤다. 내 생각은 국민이 호응을 안했는데, 그것은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 때문이다(*나로선 적극 '호응'했지만, 원래 조선일보의 독자가 아니었으므로 실상 안티-조선일보 운동에 내가 보태준 건 별로 없다. 나는 주로 한겨레와 한국일보를 본다. 보다 정확하게는 김훈과 고종석의 독자였다. 두 지면의 사설들에 동의하는 건 아니므로. 강준만 교수는 요즘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언론학자 강준만은 한국사회에 조선일보의 해악을 폭로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맘때쯤 나는 강준만이란 이름과 다시 만났고, <인물과 사상>의 비주류 독자가 됐다. 매번 사읽은 건 아니었으니까).

 

 

 


 

유권자로서는 민주세력 찍지만, 신문은 안 바꾼다는 것이다. 어떤 민주 인사가 공직 들어서면 재산 공개했는데, 왜 돈이 그렇게 많은가(*다른 말로 하면, 좌파는 부유해도 되는가, 이다. 이건 일종의 '수행적 모순'이다. 기사가 달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일부 노조위원장들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네그리의 말대로, 혁명의 원천은 '가난'이고 '빈곤'이다. 결코 '의식'이 아니다. '부자 아빠'에의 유혹과 '자발적 가난' 사이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것을 감안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주류 영합주의가 강하다. 내 삶의 경쟁력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선택과 다르다. 주류 매체고 영향력 있다는 그 판단이 크다. 이것이 가장 세고 주류라는 것이 한국인 특유의 경쟁력주의를 부추긴다. 기러기 아빠가 일반 국민뿐 아니라, 개혁·진보 인사에서도 있다. 진정성 갖고 운동해도 신문 안 바꿨다.

이제 경제를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이재현씨가 어느 글에서 “진보적 진영에서 문화운동하고 그러면서 경제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말이다. 경제는 감시 대상일 뿐이고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겨레>같은 언론도 재벌들로부터 독립해 신문사를 꾸려가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치중한다. 한국 경제를 더 높은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탈·비리만 다루지 주도적 플레이 안 한다. 그러면 영원히 조중동에게 깨진다. 엉거주춤하지 말고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다(*때문에, 아직도 국민의 '어리석음'이나 탓하는 이들을 나로선 신뢰할 수 없다).  

-최근의 신문법이 시행됐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이 활동에 들어갔다. 이런 기구들이 신문시장 정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지만, 기대가 있다. 이런 기구들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왜냐면 한국 독자들이 가진 묘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광신도 노무현 광신도가 <조선일보>를 본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합리주의다. 왜? 노가 개혁한다고 나서도 주변 핵심 인사들의 재산 규모가 역대 정권 비해 적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는 보수고 진보고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경제가 중심이고 가외로 개혁을 이야기한다.

진보적 입장의 정통 좌파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한다. 한편으로 노 정부 요직 인사들도 자기 재산 다 챙기고, 국민들은 신문에서 아이들 논술과외 서비스도 받아야 하고, 부동산·증권 투자 정보도 얻어야 하고, 각종 광고도 봐야 한다. 그런 신문이 유리하다. 경제는 이렇게 간다.(*그러니까 생각도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이 아니라 '현실'에서부터.) 앞서 안티조선 운동 하면서 모멸을 가하는 공격도 해봤다. 소용없었다. 북·서유럽 복지 국가 모델? 나 죽을 때까지 안 된다고 본다. 자원 없고 수출로 사는 나라를 어떻게 북유럽 나라들에 비할 것인가?

 

 


 

 

우리 나라 사람 경제적 보수성을 낮은 곳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택시 타보면 운전기사들이 결코 무식하지 않다. 물론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지혜를 갖고 있다. 장하준 교수 글에 대해 여러 말 많지만, 그 정도 글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겨레>가 장하준 정도의 시각을 받아들인 것만 해도 대단하다(*그런 식으로 대단한 건 창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아는 체하는 인문·사회학도들이 경제를 모른다. 경제에 대해 뭘 알아야 국민들 마음 속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다.(*경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건 대개 '실물경제'에 대한 무관심이고 갈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부터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이르기까지 읽느라고는 읽었다. 가정경제에 도움이 안 됐을 뿐이다.) 

-<한겨레>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아직 창간 정신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초심을 갖고 있는 게 문제다. 창간 당시는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독재정권에게 대항했던 이들이 자체 매체 가진 감격이었다.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둘이나 나왔는데, <한겨레>가 비판을 넘어서서 의제를 스스로 만들고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저항세력이 가졌던 견제·감시·비판 수준이다. 반면 조중동은 의제 설정을 멋대로 하지만 한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고 독자들은 익숙해 있다.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 때 경호권 발동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본다. 유시민 의원·리영희 선생도 경호권 발동 반대했고, 열린당 그것을 망설였다. 당시 <한겨레>는 때묻히지 않으려고 원론 수준으로만 얘기했는데,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한겨레>가 경호권 발동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 마당을 펼쳤어야 했다. 경호권 발동 안 된다는 리영희 선생 얘기도 싣고, 또 예외적으로 경호권 발동해서 보안법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뤘어야 한다. 기사로 다룰 수 있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유시민 의원은 다 끝나고 국회 사망선고하면 뭐하나? 한겨레가 썼으면 여야가 심각히 고려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고급지로서 어젠다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전술·방식의 차이는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국가보안법 말고 다른 것에도 적극성이 없다. 진보세력의 문제점 안 다룬다. 조중동 따라서만 조금 다룬다. 그러다 보니 어젠다를 다 넘겨준다. 정권 주류가 비주류적으로 일관하듯 <한겨레>도 그런다. 나는 그걸 아웃사이더 체질이라고 본다. 아웃사이더는 고귀하다. 권력·부에 욕심 없고, 옳은 소리하고 저항하고 감시·견제한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집단을 어디론가 끌고가면서 궂은일, 더러운일 하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욕할 것 많지만, 인사이더는 어렵고 욕먹을 일이 많다.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인사이더는 책임져야 한다. 아웃사이더는 휘말리지 않고 옳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한다. 메이저로서 아웃사이더 하면 좋겠지만, 조중동 70%가 인사이더 하는데, 마이너만 아웃사이더 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정파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비판도 더 하고, 개혁진보세력을 더 세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사 쓸 때는 진보세력과의 유대도 끊어야 한다.(*2000년부터 격월로 간행되던 <아웃사이더>가 결국 폐간됐고, 나에겐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란 인터뷰집 두 권만이 남았다. 갖고 있는 책인 줄도 모르고 2,000원 떨이판매 하길래 또 산 것. 어쨌거나 '고귀한 아웃사이더'들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정의상 '아웃사이더'는 '소수'이며,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해서, 보다 더 많아져야 할 것은 '인사이드 아웃사이더'가 아닐까 싶다. 자신도 이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의식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건 기만이다.)     

-최근 칼럼에서 신문산업이 지식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신문시장은 지금 조중동이 문제가 아니다. 조선·동아는 그래봐야 거대자본의 소유는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터넷 언론 기업 성장하고 통신업체 중심으로 매체 융합 나타나면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 집권하면 케이비에스2·엠비시 민영화 안 할 것 같나? 신문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루퍼트 머독 식의 거대한 미디어그룹이 나오면 현재의 조중동보다 민주주의에 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당파적이니 편파적이니 해도 신문이 살아남아야 한다. 살 방법은 지식인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아직 기자에 대한 신화가 있다. 그것을 살려서 지식 산업쪽으로 힘을 펼쳐야 한다. 거대 기업들속에 편입되면 절대 안 된다. 비교 우위는 지식 산업인데, 신문업계 선두주자인 조중동은 정권 죽이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이건희·홍석현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최근 책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벼락공부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에 ‘홍수민주주의’가 있다. 지난 민주당 분당에 민주당의 책임만 있나? 삼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문제가 있으면 평소에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소에 잘못된 것을 잘 눈감아 주다가 건수 생기면 국민 모두 짱돌 하나씩 들고 나선다.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처리하는 홍수식이 화끈한 맛은 있다. 그런데 홍수 났을 때 사람들이 신중하게 하겠나. 우격다짐식이다. 아무리 우리 체질이어도 이제 와서 삼성만 죽일 놈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 평소에 대학 총장들도 삼성 포함한 재벌 돈을 끌어와야 한다. 재벌 은전 받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를 평소에 이야기하면 문제가 덜 할 텐데, 이벤트성이 강하다. 한 번 걸리면 홍수 맛좀 봐야 한다는 쏠림이 강하다.(*이 '홍수민주주의'에 대한 지적은 예리하며 유익하다. '한국의 민주주의' 교과서에 들어갈 만한 항목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중앙일보>는 또다른 삼성이자, 언론계의 실력자다.

=<중앙일보>가 조·동에 비해 개혁세력으로부터 덜 얻어맞는다. 유시민도 조·동은 독극물, <중앙>은 불량식품이라고 했던가? 남북문제에서 비교적 자본의 합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동은 자본의 합리성도 없이 생래적 거부감으로 접근했다. 한국사회에서 민족문제 다루면서 자본의 위험이 가려졌는데, 사실은 운동권도 그렇지만 민족문제와 자본문제가 쌍벽이다. 중앙의 잘못이 제대로 부각이 안 되고 있다. 조·동이 중앙을 키운 셈이다. 아마 조동이 남북문제 시각 바꾸면 중앙 입지가 위축될 수 있겠다.

-인물과 사상의 중단과 인터넷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나?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데?

=최근 <한겨레21>에 휴대전화 관련 글을 썼는데, 일종의 균형잡기 지적이었다.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본에 친화적이다. 새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과 관련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대중문화 자체를 좋아한다. 딴따라 끼도 있다. 영화도 엄청 좋아한다.

 

 

 

 


-전북 전주에 살고 전북대 교수를 하고 있다. 지방이라는 것은 언론사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또다른 문제라고 했는데?

=내부 식민지이론을 믿는다. 여기는 식민지 체제인데, 열이 나지 않는가? 서울서 국회의원하는 지방의 엘리트 계층이 여기 사람인가? 여기를 대변하는가? 여기 사는가? 아이들이 여기 있나? 다만 여기 근거로 제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이 신문 제목 좀 봐라. 지역 언론이 정말 이러면 안 된다. (전북 지역의 신문 두 개를 보이며) “노대통령 전북홀대 심각” “전북 홀대론 확산 분노” 언론은 이런 보도 좀 하지 말고, 중앙정부는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 지역 엘리트들이 이런 문제 생각하나?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 60년대 250만명이 넘었는데, 최근 190만명선이 무너졌다. 내가 처음에 전북대 와서 지역 문제 갖고 혈압 좀 올렸다. 그런데 나만 성격 이상한 놈으로 찍혔다. 가만 보니 이 곳 사람들에게는 체념의 지혜가 있었다. 괜한 소리 했다가는 “억울하면 출세해라” “서울 못 가서 배 아파서 그러냐” 그런다. 최근에 지역 신문 발전기금 나눠주는 것도 그렇다. 지방 언론사 사주가 토호라고 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 적용해 특정 지역 언론이 집중 지원받았다. 그런데 토호와 재벌이 다른가? 재벌은 선진적이라서 좋고, 토호는 비리 복마전이라서 나쁜가? 재벌처럼 토호도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지역기업이 잘 되면 악질로 본다. 그 시각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좋은 지역 신문은 경제력에 달렸다. 어느 지역에는 <한겨레>만한 매출을 올리는 신문사가 있고, 대부분 다른 지역에는 그런 신문사가 없다. 기업의 건전성은 경제력에 달렸다. 이렇게 기준 만들다 보니 지원이 일부 지역에 몰렸다. 사람도 같다. 빈곤층을 볼 때 게으르고 못난 사람이라고 봐야 하나.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양면을 봐야 한다. 지방을 썩어빠진 것으로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하면 지방에 오래 있어 물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방대 교수들도 지방언론사를 욕한다. 그리고 지방대에서 좋은 학생은 다 서울로 편입가고 교수도 서울로 떠난다. 지금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것이 경쟁력이다. 안면 몰수하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역안배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지역 안배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균형발전 정책, 행정도시, 기업도시, 공기업 이전 추진중이다.

=노 정부가 요만큼 지역 균형발전 하는 기미 보이더니 수도권을 풀었다. 지방에 공기업 이전 계획 발표하고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 허용한 것은 지방에 어음주고 수도권에 현찰준 꼴이다. 균형발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울쪽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신도시, 공장 신·증설 풀어줬다. 갑갑하다. 인구가 아무리 수도권에 몰려도 아직 지방이 다수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서울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또 본국(?)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지방은 묘한 이중 식민지 구조가 돼 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러면 당신 애는 공부 잘 해도 지방대 보내겠냐고 말한다.

-서울대 문제 책도 쓰고 해법 제시했는데, 잘 바뀌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국공립대 통합안을 제시했는데?

=국공립대 통합은 정말 좋은 안인데, 민주노동당 집권해야 된다. 손호철 교수가 민주노동당 쓴소리 강연 갔다가 이래서는 집권 못한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진보진영 쓴소리 경청 했는데, 손 교수가 2010년대에 집권 못한다고 그랬다. <한겨레 21>하고 서울대 문제 갖고 토론도 했는데, 서울대 개혁 얘기하는 사람도 학벌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나는 정운찬 총장처럼 서울대와 연·고대 비중 축소해서 가자는 것이다. 명문 일류대도 경쟁의 필요성이 있다. 주요 권력기관 출신대를 봤더니 3개 대학이 50%를 먹어버리는데, 이것은 안 된다. 적어도 수십개 대학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는 돼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서 공부한다. 대학들이 공부하는 데 드는 돈 아끼려고 고교등급제를 하는 것이다. 또 고교 등급제보다 대학 등급제가 더 큰 문제다. 기업에서 원초적 차별 가하니 명문대 아닌 대학생들 공부할 맛이 안 난다. 노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법고시 식으로 경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시 덕에 노 대통령도 나온 것 아닌가?

 

 

 


 

-강 교수가 펴낸 책을 검색해보니 122권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쓰는가?

=내가 창피해서 언제부터인가 권수를 세지 않는다. 나는 책을 작품으로 생각 안한다. 주위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역작을 내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책 내는 쪽으로는 디지털화돼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전에 책이 귀할 때는 밟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함부로 본다. 메모도 함부로 하고, 소모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철학과 같은 분야는 다르다. 이론 분야는 작품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 신방과 쪽에서 작품이 나오겠나? 흐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한 책을 오래 쓰다 보면 이미 낡은 것이 돼버린다. 내게 책 내는 데 불성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공을 들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다(*나는 다른 고종석, 김훈, 홍세화 등과 달리 강준만에게는 '문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문체없음'은 사실 그의 전략이기도 한 것. 더불어 '소모되는 것'을 자임하는 그의 미덕이기도 하다. 적어도 문체적으론 그는 나르시시즘으로부터 자유롭다.)   

내게 책 쓰는 것은 중독인 것 같고,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사명감 같은 게 없고, 누구는 내가 돈 때문에 많이 쓴다고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다. 자주 내는 것은 덜 팔려서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띄엄띄엄 내는 게 돈벌이로는 낫다. 나는 그냥 책 쓸 준비하고 책을 내는 게 취미다. 매우 재미있다. 요즘은 한국인의 특성을 범주화하는 책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쏠림, 홍수민주주의, 소용돌이 현상, 빨리빨리. 냄비 근성 등 한국 상황을 보여주는 개념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겐 책 쓰는 게 그 재미다.(*책을 읽고 쓰는 재미에 나도 공감한다. 책에 대한 구속 덕분에 나는 '온라인 게임'과 '드라마'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있나?

=무작위로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입력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한다. 또 신문 보다가 사례가 나오면 오려놓는다. 그런 것들을 각 주제별로 파일에 입력한다. 지금도 이미 쓸 책들이 정리돼 있다. 자료 입력을 미리미리 했기 때문이다. 보통 10~20권씩 진행한다. 주제별로 입력해놓은 것이 20권 정도 분량이 된다.(*이런 류의 페이퍼도 아니고 단행본들을 20권씩 진행하다니! 그나저나 그런 식으로 책이 쏟아지면 우리는 '강준만의 시대'를 언제쯤 면하게 되나?)

06.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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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1-20 21:56   좋아요 0 | URL
강준만의 의제설정 능력은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탁월합니다.

로쟈 2006-01-21 11:02   좋아요 0 | URL
가감없이 저는 한 10년을 '강준만의 시대'라 기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그만큼 많이 말하고 개입한 '인텔리겐치아'가 따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PC방에서 한 30분쯤 더 보탠 글이 날아가버려 허탈하군요...

2006-03-0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globebox 2006-11-28 11:32   좋아요 0 | URL
대중 수준에 맞춰, 뒤죽박죽 온갖 사건들로 혼란스런 시사를 보기 좋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지식인 또한 강준만 밖에 없죠. 집필 기동력과 적시성, 의제설정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리센코'란 이름을 검색하면 한달쯤 전 칼럼들이 몇 개 뜬다. 지난 12월 중순, 그러니까 황우석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무렵에 씌어진 칼럼들이다.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T. D. Lysenko; 1898-1976)는 스탈린시대 러시아의 농생물학자로서 멘델의 유전학설을 비판하고 소위 '리센코학설'(리센코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이 유전자라는 입자적인 것만으로 유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환경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생물체 내의 물질대사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유전성을 변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이해하기론 용불용설 같은 것이어서 환경조건에 따른 개체 변이가 유전된다는 식인 듯하다(이른바 획득형질 유전론). 문제는 그의 이 유사-과학이 멘델의 유전학 같은 '부르주아 과학'에 대항하여 스탈린시대에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공인받았다는 것. 

 

물론 이후에 그의 '정치적' 과학은 농업생산 분야에서의 부진으로 인하여 신뢰를 상실하게 되며 스탈린 사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모스크바 유전학연구소장 직에서 완전히 사임하게 되는 것은 흐루시초프시대인 1965년). 하지만, 그의 유사-과학은 유전학 분야에서 러시아가 서구에 최소한 10여 년 이상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게 20세기 과학사의 최대 스캔들의 하나인 소위 '리센코 어페어'이다.  

 

개인적으론 대학원 시절 언젠가 이를 풍자한 러시아 현대소설을 읽을 일이 있어서 리센코주의에 대한 자료들을 모으기도 해서(비록 거기에 대해 글을 쓰는 기획은 엎어졌었지만) '리센코'란 이름이 친숙한데, 그때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새길사, 1996)의 저자이자 얼마전 <인간복제논쟁>(지식의풍경, 2005)이 번역/소개된 도미니크 르쿠르의 <리센코, 프롤레타리아 과학의 실제 역사>였다(이 책은 얼마전에 지인의 도움으로 영역본을 구했다). <인간복제논쟁>의 부제는 '인간 복제 이후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이며 원제는 "Humain, Posthumain"(2003), 즉 '인간과 포스트인간'이다. 이미 '인간복제'의 기술적 가능성과 문제점에 관한 책들은 여러 권 출간돼 있으므로 이 책과 더불어 '테마 독서'를 해봄직하다.

 

 

 

 

흥미로운 건 르쿠르의 책 부록으로 '유나바머'론이 포함돼 있다는 것(*최근에 <산업사회와 그 미래>(박영률출판사, 2006)로 다시 출간됐다). 유나바머? 시사상식인데, 본명이 시어도르 카진스키인 그는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 천재로 버클리대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극단적인 문명혐오주의자로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지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6회에 걸쳐서 과학기술 관련인사들에게 우편물 폭탄테러를 감행해왔다. 초기에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공격해 대학(University), 항공사(Airline)와 폭파범(Boomber)의 Un+A+Bomber 를 조합, '유나바머'로 불렸다. 그는 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유력지에 과학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과학기술문명비판논문(=유나바머 선언문) 게재를 요구함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3만5000자의 논문이 실렸다. 동생의 제보에 따라 96년 4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이른바 '유나바머 어페어'이다. 르쿠르가 인간복제문제와 유나바머 문제를 어떻게 접속시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하에서 옮겨오는 칼럼들은 그런 궁금중과는 무관하며 (아마도 21세기 전반기 과학계 최대 스캔들로 기록될) '황우석 어페어'에 촉발되어 '리센코 어페어'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글들이다. 첫번째 칼럼은 한겨레신문(2005. 12. 13)에 실렸던 김환석 교수의 칼럼 "'영웅만들기'의 함정;이고, 두번째 칼럼은 동아일보(2005. 12. 12)에 실렸던 소설가 복거일의 칼럼 '과학윤리기준 과학자에 맡겨야'이다(복거일은 대표적인 보수주의 논객이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

섀튼의 결별선언 이후 한 달 동안 전국을 폭풍처럼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황우석 스캔들은 이제 서울대의 조사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따지고 보면 한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대한 논란일 뿐인데, 이렇게 ‘핵폭풍’에 비유될 만큼 국가적 재앙의 위기에 몰려 정부와 온 국민이 하루하루 불안과 조바심에 떨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과학계 내부의 자정 메커니즘으로 쉽게 처리되었을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경으로 사회적인 대혼란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지 한 과학자가 아니라 이른바 ‘국민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깊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계층과 지역과 성별과 세대 그리고 지지정당의 차이를 뛰어넘어 미래 과학한국의 비전을 또렷이 보여주며 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갈 어떤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지만 복제와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나타낸 과학영웅일 뿐 아니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그의 발언이 표상하듯 진한 애국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더구나 여기에 전세계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인류애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업적과 자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와 언론이 손을 맞잡고 이끌어 온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결과 때문이다. 그는 원래 생명공학에서는 주변적 분야에 속하는 동물복제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초기에 그는 복제 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갑자기 생명공학의 스타로 떠올랐고, 심지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복제한 백두산 호랑이 새끼를 대통령이 북쪽에 선물할 계획(결국 실패하였지만)에 관여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박기영 보좌관과 정동영 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및 여당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배아줄기세포 분야로 그의 영역을 확장하여 마침내 한국의 생명공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세계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를 국민영웅으로 만들려고 국가가 기획하고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행한 결과만을 낳았다.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기존의 유전학을 비판하고 획득형질 유전과 이를 이용한 농업증산을 주장하여 ‘사회주의 과학’의 영웅으로 떠받들던 리센코, 북한에서 1960년대 초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주장하여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한때 칭송받았던 김봉한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과학적 연구성과가 국가 개입에 의해 부당하게 부풀려져 과학계에서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를 못가졌던 것이 치명적 문제였다. ‘영웅 만들기’의 폐해는 또한 특정한 과학자 내지 그의 분야에 국가의 연구자원이 집중되어 과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를 통해 과학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야심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 스스로도 과학계의 검증보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영웅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발견 못지 않게 조작과 사기 논란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영웅 만들기’는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이고 결국 핵폭풍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

현대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충돌을 배경으로 삼아 나왔다. 종교와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서 다르다. 종교는 믿음에 의지한다. 과학은 검증에 의존한다. 믿음이 종교가 의지하는 방법론이므로 경전에 계시된 진리를 반박하는 사실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것들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검증에 의존하고 이론들 사이의 경쟁을 허용하므로 과학은 꾸준히 나아간다.

 

과학의 성취는 필연적으로 종교의 토대를 허물었다. 종교는 과학에 거세게 저항했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 이후 과학적 지식에 의해 자신의 신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불행하게도 과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과학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곧 줄였다. 과학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임을 보여 주었다. 이어 태양 또한 은하계의 뭇별 가운데 하나이고 다시 우리 은하 역시 수많은 은하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냈다.

 

반면에 종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만큼 중요한 존재며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안심시킨다. 과학의 성과들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엔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이번 줄기세포 논란에도 사람의 왜소화가 포함되었다. 진화생물학은 모든 생명체가 첫 생명체의 후손이고 외양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며 그런 뜻에서 혈연을 지녔음을 이론의 여지없이 밝혀냈다. 이런 발견은 사람은 다른 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우리의 통념과 어긋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구호로 흔히 포장되는 이런 통념은 모든 종교의 가장 근본적 신조다. 여기서 다시 종교와 과학은 부딪친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이 과학적 연구를 인도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그것이 환상임을 지적하면서 현대의 윤리는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 연구를 인도할 윤리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필요한 지식들은 과학자들만이 지녔기 때문이다. 과학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전문화가 가속되므로 윤리적 판단에 필요한 지식들을 일반 시민들이 지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과학이 경쟁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점이다. 검증을 통해서 이론들의 우열이 가려지므로 과학은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다. 자연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내용이 허술한 연구나 이론은 이내 밀려난다. 반면에 종교는 경쟁을 거부한다. 배교나 이단을 허용하는 종교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10여 년 전 미국 생물학자들이 황 교수의 연구에 선행적인 배자분할 실험에 성공했을 때 교황청 기관지는 ‘광기의 터널로 들어서는’ 과학자들을 규제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역사를 살피면 우리는 권력이 잘못 작용하면 과학이 사악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만난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교훈적인 사례는 공산주의 러시아에서 트로핌 리센코의 학설이 초래한 비극이다. 스탈린 시대의 농업생물학자인 리센코는 멘델의 법칙에 입각한 유전학설을 비판하며, 환경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자연과학마저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바라보던 스탈린 시대의 광풍(狂風)에 힘입어 “채소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공식 이론으로서 지위를 차지했지만 이로 인한 농업 실패로 수많은 농민이 굶어죽었다. 권력이 개입해 이론 사이의 경쟁을 배제하고 특정 이론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면 이런 폐해가 생겨난다.

 

소비자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에서 나오는 경쟁이다. 이런 이치는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나서서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윤리적 규정을 만든다면 걱정스럽다. 어떤 윤리나 법도 과학의 빠른 발전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그런 규정들은 윤리를 지키기보다는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 그저 경쟁하게 하라. 기업가들이든, 과학자들이든.(복거일/소설가)

 

 

 

 

두 사람 모두 황우석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 개입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초점은 약간 다르다. 김환석 교수가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을 문제삼고 있다면, 복거일씨의 경우는 '국가권력의 개입' 자체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유가 특이한데, 국가는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그런 연장선상에서라면 복거일의 본격적인 '종교비판론'을 기대해봄직하다! 더 나아가 지극히 종교 정향적인 미국식 정치 마인드에 대한 비판도!). 여하튼 나는 '인용'만 하며,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06. 01. 09.

P.S. '리센코 어페어'에 대한 참고자료로 '맑스 코뮤날레'에서 발표됐던 논문 "혁명기의 러시아 과학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옮겨놓는다(복거일과는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비록 '노동자-농민'이 이런 문제에서도 '해결사'가 되어줄 거란 전망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필자는 김해민(노동자의 힘 회원)님이다.

리센코 사건
1936년, 소련의 과학기술계에서는 특별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모스크바의 레닌 농학아카데미에서 발표된 "유전학에서의 두경향"이라는 논문에서 리센코(T. D. Lysenko)는 환경적 조작과 접목에 의해 유전이 변형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주류였던 멘델과 모건의 유전학을 반진화론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견해가 진정한 다윈주의에 기초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8년에 개최된 같은 회의 에서 우크라이나 농부의 아들인 리센코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멘델의 과학을 "반동적이면서 퇴폐적이다"고 규정하고 그들의 과학을 추종하는 자를 "소비에트 인민의 적이다"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학설을 사회주의 생물학 중 하나로 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은 이를 승인함으로써 과학기술계의 논쟁은 일단락 되었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 여파로 유전학 과목은 폐강되고 관련 연구소는 폐쇄되었다. 과학기술자들 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의 결정을 찬양하는 공개적인 '사상전향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내쫓기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곡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식물 육종학에 대한 기초를 세운 과학자 바빌로프도 이 과정에서 실각되고 볼가강 중류의 사하로프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에 맹위를 떨치던 리센코주의도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해 버렸다. 맑스주의 내에서도 리센코 학설은 '맑스주의와 정반대 되는 것' 혹은 '과학적 특성이 결코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아울러 소련의 사회주의 과학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과학운동은, 소련의 폐쇄적인 흐름과는 다르게 다양한 논의를 바탕으로 운동의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급진과학운동은 무려 10여 년 간의 소강상태에 빠져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물론 단편적인 사건으로 혁명기 러시아의 과학기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스탈린시기에 과학기술은 매우 큰 발전을 이룩한 것 또한 사실이다. 냉전이 살벌한 시기에도 미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해주는 사건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숙련노동자의 조직된 힘을 분쇄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도입해 왔고, 기계에 의한 노동의 대체로 줄곧 노동자들을 소외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혁명기 러시아에서 그것도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소련에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것도 20년이나 지속되었을까?

1917년 혁명 후 볼셰비키 혁명 정부 앞에 놓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레닌은 자국의 정세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연합군을 탈퇴하였다. 하지만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연합국측의 간섭전쟁과 국내 반-볼셰비키세력들에 의한 격렬한 내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내전은 혁명을 더욱 힘들게 했다. 산업 생산량은 극도로 하락하였고, 농촌은 황폐화되었다. 이 시기 볼셰비키 정부는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 복구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레닌은 생산력의 복구를 위해 내전동안 전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산업경영권을 중앙집권화하고 자주적 '노동자 관리'기구를 강제 폐지시켜 버렸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전된 과학기술 중에서 선진적인 부분 채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과학적 관리 기법이라는 테일러 시스템을 도입시켰다. "근로인민 자신들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현명하게 적용된다면 테일러시스템은 전 근로인민의 필요노동일을 훨씬 절감시키는 믿음직한 수단이 될 것이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른바 이 '소비에트 테일러시스템'은 스탈린 시대까지 이어졌다. 1921년 3월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였으나 노동부에서 차등임금제와 식량배급량 차별제, 노동카드와 성과급제 및 반-볼셰비키 성향의 부르주아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중용하였다. 이들이 당과 국가의 여러 정책들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위치로 상승하게 되었고 이들은 대개 산업행정, 고등기술교육, 연구 기관, 기획기관에서 최고의 기술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근거로 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려 하였고, 이러한 면들이 기술관료주의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924년 레닌이 죽은 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레닌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급격한 산업화를 주장하였다. 1929년에 스탈린은 집단농장화를 실시하고 대규모 산업화 정책에 착수하게 되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과학을 생산력이라기보다는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인식하였다. 모든 과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편할 것을 요구하였고 과학과 철학 모두에 대한 당성의 우위를 강조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기술관료들은 공산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붉은 전문가'로 교체되었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은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형식상으로 남아 있던 산업의 집단적 관리 원칙과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하는 노조의 마지막 권한을 모두 폐지해 버렸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 흘러온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혁명기 러시아가 리센코주의를 받아들이게 한 것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모두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박한 과제로 다가왔다. 레닌은 과학을 생산력으로 주요하게 파악했고, 부르주아의 선진 과학을 수용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레닌의 이러한 생각은 이후 과학기술에서 자본주의적 이용만 제거하면 순수한 기술만 남아 이를 사회주의적으로 이용하면 된다는 기술 중립론적 시각으로 비판받고 있다. 스탈린의 경우는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낙후된 경제의 복원과 반-볼셰비키 성향의 기술관료의 관료주의 폐지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당시 거의 쿠데타적 권력 쟁탈과정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과학을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스탈린처럼 과학기술을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은 과학기술과 사회관계를 잘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의 내재적 발전 경향을 지나치게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단지 누가 이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과학기술혁명이 수준 높은 생산력으로 되어 인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인간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과학기술 생산과정/이용과정(노동과정)속에서 주체와의 관계와 사회관계속에서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즉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소유관계의 문제와 아울러 과학기술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조직적 생산관계와 개발 생산단위들 간의 경제운영관계의 문제 그리고 사회관계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사고 해야한다. 결국, 당시 급박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공산당의 잘못된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은 소유문제가 해결된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과학기술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혁명기 러시아라면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어떻게 과학기술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맑스는 이러한 질문에 한가지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맑스에 따르면 진리를 파악하는 자는 관념적 몽상가들이나 학자가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계급, 즉 이론적인 수준에 한정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실천적 수준에서 진실을 증명코자 하는 계급, 즉 대다수 노동자 계급과 그 노동자 전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맑스는 인식에 있어 실천의 중요성, 그리고 가장 실천적인 계급적 관점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한번 상상해 보자. 레닌이 자주적 노동자관리기구를 폐지시키지 않고, 노동자-농민의 자주성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했다면, 그리고 스탈린이 그나마 남아있던 노동자들의 마지막 자주권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동자-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 의사 통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천적 주체인 노동자들은 테일러 주의를 사회주의에 적용하면서 테일러 주의의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폐기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새롭게 사회주의적 노동과정을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농민들은 리센코주의의 과학을 집단 농장에 적용하면서 리센코주의의 진실성을 적어도 20년보다는 빨리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강조는 나의 것) 

  

P.S.2. 이너파벨님이 알려주셨는데, 하인리히 야곱의 <빵의 역사>(우물이있는집, 2005)에도 리센코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러시아의 빵 - 1917년'이란 절에서인 모양이다. 재인용하자면,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한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자 바빌로프가 응수한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 분명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물적 토대는 새로운 인간을 형성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그 새로운 조건이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조건 없이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인간'은 어디서 굴러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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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09 23:1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전 황우석 사태 보다는 아직도 음모론 가지고 끝까지 황우석을 옹호하는

"황빠"들의 정신구조가 더 궁금합니다.


이네파벨 2006-01-10 10:1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가 번역한 책 <빵의 역사>에서 바빌로프와 리센코의 일화가 나옵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들추어보았어요.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지 바빌로프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역시...nature vs. nurture의 해묵은 논쟁이군요........

과학과 정치...정치와 과학...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쌍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섭고도 슬프게 느껴지네요....
(웰즈의 타임머신에 나오는...그 지하인과 지상인의 끔찍한 공존(상호의존)관계에 비유한다면 억지일까요?)

로쟈 2006-01-10 10:58   좋아요 0 | URL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저로선 nature vs. nurture의 해묵은 논쟁이라기보다는 과학 대 유사-과학의 해묵은 논쟁 같습니다. nature주의자나 nurture주의자나 토대는 '과학'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