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학 분야의 고전으로 얼마 전에 조르주 무냉의 <부정한 미녀들>(아카넷, 2015) 출간 소식을 전했는데, 그 사이에 두 권의 책이 더 나왔다. 하나는 번역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 서고 있는 조재룡 교수의 <번역하는 문장들>(문학과지성사, 2015)이고, 수잔 바스넷의 <번역의 성찰>(동인, 2015)이 다른 하나다.

 

 

<번역의 유령들>(문학과지성사, 2011)에 이어지는 <번역하는 문장들>은 번역에 관한 다양한 쟁점들을 '풀세트'로 모아놓은 듯한 책으로 이론과 실제, 양면으로 종횡무진의 모험을 보여준다(전체 4부와 보유로 구성된 책에서 제1부의 제목이 '번역/중역의 모험'이기도 하다). '중역의 인식론'이나 '예상표절', '의사번역' 등과 같은 흥미로운 개념과 문제를 제시하기도 하고, '번역 정글 잔혹사'로서 세계문학전집 번역 문제나 번역의 윤리에 대한 비판과 성찰도 담았다.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문학동네, 2013) 번역가로서의 소회 등은 책의 보너스이다. 앞으로 번역에 대한 담론은 저자가 펴낸 두 권의 번역론에 덧대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번역하는 문장들'이란 문장의 번역문들로 표지를 구성하는 데 거들었는데, 멋쩍게도 러시아어 문장에서 오타를 냈다.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다 빚어진 일인데, '번역'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가를 보여주는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겠다(일어 번역에도 탈자가 생겨서 2쇄에는 같이 수정될 예정이다. '희귀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빨리 소진되면 좋겠다).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저자인데, 수잔 바스넷은 영어권의 번역학 전문학자다. 국내에 소개된 것만 해도 <번역학>(한신문화사, 2004), <번역학 개론>(인간사랑, 1993) 등을 포함해 여럿 된다. <번역의 성찰>은 최신작. 원저까지 구하려다가 좀 비싸서 그만두었는데, 번역학의 동향과 쟁점을 확인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에 <번역하는 문장들>과 짝지어 읽어봐도 좋겠다...

 

15.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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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번역학 분야의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됐다. 조르주 무냉의 <부정한 미녀들>(아카넷, 2015). 원저는 1955년에 나왔으니까 60년만에 나온 한국어판이기도 하다. 저자는 프랑스의 언어학자로 소쉬르를 재발견한 인물 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는데(롤랑 바르트와 논쟁을 벌인 걸로도 유명하다), 번역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고.

 

언어학자 조르주 무냉은 프랑스 번역학의 토대를 구축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대 번역학이 “조르주 무냉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표현이 말해주듯, 그를 폄하하는 측에서건 치켜세우는 측에서건, 무냉이 현대 번역학의 시원(始原)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찾아보니 <번역의 이론적 문제점>(고려대출판부, 2002)도 출간됐었다. 절판된 책으로는 오래 전에 나왔던 <언어학 안내>(신아사, 1984)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 입문서. <부정한 미녀들>은 학술명저 번역으로 나온 책으로는 발레리 라르보의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아카넷, 2012)와 함께 '번역학 고전'으로 꼽힌다. 라르보의 책은 1946년에 나왔다. 제목의 '부정한 미녀들'은 번역사/번역학 책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책의 제목인 “부정한 미녀들(les belles infideles)”이라는 표현은 17세기 타키투스, 루키아노스 등과 같은 고전들을 번역하면서 아주 대담한 태도를 취했던 페로 다블랑쿠르의 번역을, 질 메나주가 다음과 같이 여자에 빗대어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가 한 번역들은 내가 투르에서 애지중지했던 한 여자, 아름답긴 했지만 정조는 없었던 그 여자를 생각나게 한다.” 이때부터 “부정한 미녀들”이라는 표현은 유려하긴 하지만 원작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단죄하기 위한 낙인으로 사용된다.

 

이 얘기는 쓰지 유미의 <번역사 산책>(궁리, 2001)에서 더 자세히 읽어볼 수 있고(<번역사 오디세이>(끌레마, 2008)가 재간본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녀냐 추녀냐>(마음산책, 2008)도 '부정한 미녀냐/ 정숙한 추녀냐'라는 번역학의 쟁점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정숙한 미녀'라면 가장 좋겠지만, 대개 번역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부정한 미녀냐, 정숙한 추녀냐, 라는 선택지다. 무냉이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궁금하다...

 

15.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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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F 시리즈가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소설의 새로운 얼굴(New Face of Fiction)이란 뜻이었다. 출판사는 '현대문학의 새로운 얼굴'로 옮기고 있다. 새로운 얼굴이라고 하기엔 이미 나이가 꽤 든 작가이지만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시공사, 2014) 덕분에 알게 된 시리즈다. 노르웨이 작가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의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시공사, 2014)도 바로 이 시리즈의 하나다.

 

 

사실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란 건 어제서야 알았다. 원고를 검토하다 읽어야 할 필요 때문에 손에 든 터였다. 일단 너무 장황한 작가의 이름을 그냥 성으로만 부르면 스콤스볼은 1979년생으로 2009년, 나이 서른에 발표한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한데 25개국에 번역될 정도로 '대박'을 쳤다. 이 정도로 세계독자들에게 어필한 작품이라면 한국 독자들에게도 뭔가 통하는 게 있어야 맞을 것이다. 소개대로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말이다.

 

 

소설의 독특함은 첫 단락에서부터도 느껴진다. 한데 뭔가 뜻이 통하지 않는 번역이다. 주인공 '나'는 어떤 일에서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소개되고, 사례들이 나열된다. 남편 옙실론에게서 난초를 생일 선물로 받은 '나'는 좀 당혹스러워한다. 이어지는 문장.

나는 생일 선물로 난초를 원하지 않았다. 사실 꽃을 선물로 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금방 시들시들해져 죽을 것이 뻔하니까. 내가 진짜 원한 건 엡실론이 직장 일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숨쉴 공간이 필요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엡실론은 이렇게 말했고, 나는 곧 그가 "같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대신 "발가벗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내가 물었다. "꼭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야." 그가 대답했다.

내가 뜻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 그 다음에 "그래서 나는 난초 대신 옷을 벗기 시작했다. 곧 꽃망울이 터지면 분홍색 꽃잎이 사방에서 머리를 내밀겠지. "당신이 내게도 그렇게 대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엡실론이 중얼거렸다."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남편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발가벗는 것을 원한다고 하니까 아내가 난초 대신 옷을 벗었다? 논리적으론 이어지는 것 같지만, (변태가 아닌 다음에야) 난초가 옷을 벗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다행히 영어본도 나와 있기에 찾아봤다. 남편 엡실론이 앞에서 한 말을 이렇게 옮겼다.

"But I need a refuge from all the..." -for a second I thought he was going to say "togetherness," but instead he said "nakedness."

인터넷에는 다른 영어번역도 떠 있는데, 거기에선 'togetherness'를 'twosomeness'라고 옮겼다. '같이 있는 것' 내지는 '둘이 있는 것'. 문제는 영어본에서 이 단어가 a refuge from의 목적어라는 데 있다. 한국어판에 따르면, "모든 것에서 벗어나 같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줄 알았더니 "모든 것에서 벗어나 발가벗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실상은 정반대다. "같이 있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할 줄 알았더니 "발가벗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했다는 것. 영어본과 한국어본이 정반대로 옮기고 있으니 둘 중 하나가 오역일 테지만, 문맥상 한국어본을 지지하기 어렵다(정황적으로도 어렵다. 작가가 영어본은 읽어봤을 테지만, 한국어본을 읽었을 리는 없으므로). 어떤 문맥인가?

그래서 나는 난초 대신 옷을 벗기 시작했다. 곧 꽃망울이 터지면 분홍색 꽃잎이 사방에서 머리를 내밀겠지.

이 부분의 영어 번역은 이렇다(다른 영어 번역도 대동소이하다). 

So I undressed for the orchid instead, and soon the buds began to blossom, little pink flowers were springing out everwhere.

무슨 뜻인가. 남편이 발가벗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니까(부부관계에 대한 완곡한 회피인가?) 아내는 남편 대신에 난초를 위해서 옷을 벗었다는 것이다. 난초 대신 옷을 벗은 게 아니라! 그러니까 난초가 여기저기서 활짝 꽃망울을 틔웠다는 것(한국어본의 미래시제도 과거시제로 바뀌어야 한다).

 

대번에 알 수 있는 건 번역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수십 번은 읽어봤을 첫 단락에서부터 오역하고 있다면, 게다가 문맥에 대한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다면,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어에 능통한 전공자나 전문가가 희소한 탓에 역자가 노르웨이어 책은 전담해서 번역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번역이라면 중역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역시나 노르웨이 작가로 스콤스볼보다 10년 윗 연배의 에를렌 루의 화제작 <나이브? 슈퍼!>(문학동네, 2009)가 국내에서 '찬밥'이 된 것도 혹 번역이 부실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지난 2004년 모스크바 체류중에 한 대형서점에서 69년생인 이 '젊은' 작가의 사인회가 있었고 우연이었지만 나는 줄을 서서 작가의 사인본까지 받은 적이 있다).

 

 

아무래도 언어적으로는 변방이기에(물론 노벨문학상 수상에는 차별받지 않겠지만) 노르웨이 문학을 우리가 자주 접하기는 어려운데, 정확한 중개가 어렵다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당장의 대책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다만 출간 과정에서 더 확실한 검증과 검토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15. 02. 22.

 

 

P.S. 외국소설 번역과  관련하여 최근에 또 한 가지 난감했던 사례는 더글러스 케네디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밝은세상, 2014)이다. 의도적인 누락이 너무 많다는 지적 때문이다(http://asnever.blog.me/220240921764 참조). 어쩌다 한두 줄 누락은 실수라 쳐도 이 번역본의 경우엔 (분량을 줄이기 위한 것인지) 터무니 없는 누락이 너무 많아서 몇 퍼센트 번역인지 밝혀주는 게 옳겠다 싶을 정도다(이렇게 되면 작품을 인용할 수가 없다). <빅 픽처> 등의 대표작도 다 이런 방식으로 번역, 출간한 것인지 역자나 출판사의 도의(저의?)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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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는 운문 번역을 표방한 새로운 셰익스피어 전집을 고른다. 최종철 교수의 번역으로 2019년까지 10권짜리로 나온다고 하고, 이번에 1차분 두 권이 출간됐다. 소개는 이렇다.

 

셰익스피어를 전공하여 꾸준히 그의 극작품을 연구해 온 최종철 교수(연세대 영문과)의 번역으로 선보이는 국내 최초 '운문 번역' 셰익스피어 전집. 셰익스피어 희곡들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며, 그 비율이 80퍼센트 이상인 희곡도 전체 38편 가운데 22편이나 된다. 따라서 이런 운문 형식의 대사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문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깊이와 감동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와 곧바로 연결된다. 1993년 처음으로 <맥베스>를 운문 번역한 데 이어 지난 20여 년간 셰익스피어 번역에 매진해 온 최종철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약강 오보격 무운시'라는 형식을 우리 시의 기본 운율인 삼사조에 적용하여 운문 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원문의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 여부는 역자나 출판사보다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여하튼 여러 번역본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번역 시도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더불어, 셰익스피어 일인 번역은 김재남, 신정옥, 김정환에 이은 시도로 의미가 있다. 현재 김재남본은 절판된 상태에서 몇몇 작품만 다시 나와 있고, 김정환본은 아직 완간되지 않은 상태다. 신정옥본은 너무 풀어서 옮긴 대목이 많아서 '운문성'을 감지하기 어렵다. 운문성을 살린 번역으로는 김정환 시인본과 경합이 되겠다. 한국일보의 기사를 더 참고해본다.

최 교수는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의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 그리고 음악성이 거의 사라진다면서 "시적 효과와 음악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확성을 확보하는 우리말 번역"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역자는 "두 언어가 여러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영어의 음악과 리듬을 우리말로 꼭 그대로 재생할 수는 없다"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오보'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자모 숫자와 우리말 12~18자에 들어가는 자모 숫자의 평균치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멕베스' 등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중 정수라 불리는 비극이 담길 4, 5권도 내달 출간된다.

 

4대 비극을 포함하여 2차분으로 나올 책들도 사실은 이미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태이므로 전집판으로 판갈이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최종철본은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에서 '시 형식'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연극 대사'라는 점은 간혹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모든 걸 충족시킬 만한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면, 각각을 만족시킨 번역본이 따로 나오는 것도 현실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막바지에 이른 김정환본도 조만간 완간되기를 기대한다...

 

14. 04. 27.

 

 

P.S.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이번 전집과 함께 가장 최근에 나온 건 펭귄클래식판의 <베니스의 상인>이다. 주요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와 있고 김정환, 신정옥 전집판으로 있기에 비교해서 읽어볼 만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강의에서 종종 다루곤 하는데(<햄릿>과 <맥베스>, <템페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주로 다뤘다), <오셀로>, <리어왕>과 함께 <베니스의 상인>도 기회가 되면 다루려고 한다. 그러자면 작품 연구를 먼저 해야하는데, 복수의 번역본만큼 요긴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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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책 홍보만 되는 듯싶어서 별로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새움판 <이방인>에 대해서 한마디만 보탠다. 어제 경향신문 기자와 전화 인터뷰한 것이 기사화됐기 때문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52119195&code=960205). 기사 내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가져왔다.

 

 

카뮈의 <이방인> 번역을 둘러싸고 번역자의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익명으로 원문 번역자를 과도하게 비판해 노이즈 마케팅이란 지적을 받기도 했던 <이방인>(새움출판사·사진)의 번역자 이정서(익명)가 책을 출간한 새움출판사의 이대식 대표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프랑스어 원문의 오독과 오역을 비판해온 이 대표가 정작 자신은 영어판 <이방인>을 갖고 번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대식 대표는 15일 새움출판사 블로그에 글을 올려 “이정서와 새움출판사 대표 이대식이 동일인인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필명을 써서 번역서를 낸 일을 두고 언론이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 이유를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같은 출판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출판사의 번역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우려스러워서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필명을 사용한 이유는)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이 책 <이방인>이 제대로 번역되었는지 아닌지 전문가들이 살펴달라는 취지였다”며 “우리 사회 문화계에 음으로 양으로 큰일을 해주신 김화영 교수님을 욕보인 결과가 되었고,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던 많은 후학들의 가슴에도 상처를 드리게 되었다. 그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썼다.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했던 기존 태도와는 달리 “김화영 교수님의 <이방인> 번역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이러한 미묘한 차이들을 찾아내면서까지 재번역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번역자가 실명을 밝혔지만 도덕성 논란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이 대표가 번역 과정에서 프랑스어판이 아니라 영어판을 번역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새움출판사 블로그 연재와 이를 묶은 <이방인> ‘역자노트’에서 프랑스어 원문을 제시하며 김화영 교수의 오독과 오역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복수의 출판계 관계자들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대표가 영어판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번역을 한 다음 새움출판사 편집자들이 프랑스어판과 대조하는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서평가 이현우씨는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사기 번역”이라며 “언제까지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편집자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은 이 대표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동안 이정서라는 필명으로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 번역을 비판하는 연재글(경향신문 1월25일자 17면 보도)을 올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후 문학계에서는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이 출판사가 기존 번역들을 “왜곡과 난삽”이라고 매도하는 출간 기념 고사를 지낸 사실까지 알려지며 논란이 증폭됐다. 급기야 서평가 이현우씨가 13일 밤 자신의 블로그에 이 대표의 정체를 폭로하며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책 판매를 위해 원로학자를 공격한 것”이라며 “상식에서 벗어난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알라딘 고전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2주 연속 2위를 지키고 있다.(경향신문)

다른 건 차치하고, 번역자를 자임한 이정서는 자신이 영어판도 참조했지만 그것도 일개 '번역판'에 불과하기에 그에 따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영어판의 오류들까지 들먹였었다. 영어판을 같이 껴서 판매한 '더클래식'판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일갈하면서 영어판 중역의 문제를 이렇게 꼬집었다(http://saeumbook.tistory.com/429).

그건 원본 번역이랄 수 없습니다. 그건 아마 역자가 자신이 번역에 정확성을 기했다는 걸 내세우기 위한 장치로서 사용한 것일 수도 있고, 불어를 모르는 독자들이 더 많을 테니 영어 원본이라도 참고하라는 좋은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하긴 내가 번역을 잘 몰랐을 때는 그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는데 실제 번역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불어 소설은 불어 원본을, 독어 소설은 독어 원본을 실어줘야 그나마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 다만 불어 번역을 말하면서 그에 실린 영어 문장을 가져다 설명하려다 보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자신은 영어본을 대본으로 번역했지만 편집자들이 불어본과 대조했기 때문에 '원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낭패'에서 벗어낫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이휘영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일전에 <이방인> 마지막 대목에서 사이렌 소리와 뱃고동 소리, 두 가지로 번역된 걸 제시하자(http://blog.aladin.co.kr/mramor/6966576) 이렇게 반응했다.

김화영의 이 오역의 시발은 어디서부터일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로쟈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휘영 교수의 번역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하면 김화영 교수 역시 자신의 스승인 이휘영 교수의 번역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언급하고 싶지도 않았다. 거기까지 가면, 정말이지 이 나라의 도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학문 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밝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로쟈라는 젊은 후학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았던,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이휘영 교수의 <이방인>을 끝내 보게 하고 말았다.

이런 반응에서 나는 역자가 얼마나 자기도취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방인>의 최초 번역자인 이휘영본이 문제의 시발점이라면 애초에 김화영본이 아니라 이휘영본을 문제삼았어야 논리에 맞다. 도제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기에 김화영본도 이휘영본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하고 싶은 말 아닌가(지나는 김에 말하자면 나는 이정서라는 선학을 둔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전 페이퍼에서 내가 인용한 대로 사이렌 대목은 이휘영본과 김화영본이 다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는 영원히 관계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이휘영본, 문예출판사)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김화영본, 민음사)

이정서의 근거 없는 예단에 어긋나게도 이 대목에서 김화영은 스승의 번역을 무시하고 감히 반역을 시도하고 있다. 내 식으로 분류하면 '사이렌파'와 '뱃고동파'가 그렇게 갈라졌던 것이다. 이정서가 이 대목의 '뱃고동 소리'를 '사이렌'으로 다시 번역한 건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맨 처음 번역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거기에 얹어 '밤의 경계'라는 어색한 말로 얼버무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문제 제기에 답하면서 이정서는 엉뚱하게도 거기에 이어지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김화영)는 문장에 대한 시비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내가 그 대목을 빼먹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서문(역자의 말)에 무얼 적어놓았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걸까? 그가 8-9쪽에서 문제삼은 건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두 문장이다. 반복이지만,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다시피 김화영은 여기서 limite를 '끝'으로, sirènes를 '뱃고동'으로 보고 저렇게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 하여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린" 게 아니라, "한밤의 경계선에서 (감옥의) 사이렌 소리가 울린"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다.(새움판, 8-9쪽)

이정서의 주장에 따르면 이 대목이 김화영 오역의 화룡점정이자 피날레다. 애초에 내가 이 대목을 문제삼은 건 그 때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결정적인 오역이라고 서문에서부터 표나게 윽박지르고 있는 이 대목이 사실은 오역이 아니라는 것. 마무리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리하자. 새움판 새 번역 <이방인>에서 역자는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는 문장을 근거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라고 '탄핵'했지만, 나는 '사이렌 소리' 대신에 '뱃고동 소리'라고 옮길 만한 근거도 있으며 그렇게 옮긴 번역본도 적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면,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뱃고동파'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번역은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고 단언할 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그런 번역이라면 구글이 더 잘할 수 있다). <이방인>의 인용 준거가 되려는 번역이라면, 좀더 많은 걸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더러 불어와 전공인 러시아어판을 비교해보라고 충고까지 했지만(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이런 거 비교한다고 '세계적인 대학자'의 반열에 오르거나 하지 않는다. 매우 단순한 일이라서), 그 페이퍼는 이미 러시아어판 외에 몇 개 국어판을 살펴본 다음에 쓴 것이다. 러시아어판에서도 '뱃고동 소리'(пароходные гудки)라고 옮기고 있어서 더 확신을 갖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옮긴 영어판이나 러시아어판 모두 엉터리이며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일까? 하긴 <이방인>을 유일무이하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역자에게 이런 식의 방증이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다른 이들이 그런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하하거나 모욕할 권리는 없다...

 

 

 

단순한 역자이기를 넘어서 야심찬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니까 이 정도 '스캔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캔들은 언제나 매출에 도움이 되므로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독자도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는 않는다. 이번 번역에 잔뜩 고무돼 <마담 보바리>까지 손봐주려는 듯한데, 이번 일로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건투를 빈다! <이방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간의 허접한 엉터리 번역본들을 '싹쓸이'해줄 명번역을 기대한다...

 

14.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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