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는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오늘은나 또한 거리 공연가니까. 나는 언제나 그들의 배짱, 재능, 뉴요커들의 걸음을 멈춰 세우는 그 장악력에 감탄하곤 했다. 지난밤 나는 이 도시의 대규모 행사장에서 강연을 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장벽이라는 주제였고 역시 동전을 받을 모자는 돌리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연설을 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술술 풀어냈고 관객들은 내 손안에 있었다. 물론 이런 행사를 하면 반응이 생각보다 안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제는 내 생각에도 매끄러웠다. 어젯밤에는 내가 그동안 온갖 일을 하면서 습득한 기술과 역량을 발휘했고 그러고 있다는 걸 나 스스로도 알았다. 알았기 때문에 정신은 맑았고, 생각은 명료했으며, 표현은 풍부했다. 관객들은 내 연설에 감동받은 것 같았다.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느낌을 확신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19

아주 단단한 돌덩이가 내 가슴 위에 내려앉아 자리를 잡았다. 몸을 빨리 움직일 때도, 꿈쩍없을 때도, 입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무슨 일인지 짐작한 스테판은 내 얼굴과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여러 번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다가 내 가슴이며 배며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렬한 성적 흥분이 찾아왔다. 우리는 격렬하고 거칠게 사랑을 나누었다. 끝난 다음 울음이 터졌다. 내 가슴에 올라앉아 있던 돌덩이가 치워졌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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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번 애비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했고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창가에 앉아서 온종일 이웃들을 바라보곤 했다. 매장 직원들은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누가 동네 사람이고 누가 외지인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의 등식은 간단하다. 익명성을 잃는 대신 보호를 받는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31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빛―남자들의 잔인함과, 여자들의 노여움―을 보면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네티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꼈다. 골목을 천천히 걷고 있는 네티는 내 어린 시절을 채운 불안의 한 조각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47

그는 프레임이 있는 공간에서 오브제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여자가 이 세계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자신 또한 세상 안에서 스스로를 배치하면서 드러냈고, 삶에서 얻어내고자 했던 모든 건 그 배치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배치 과정을 외운 다음 스스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바랐다. 자기를 모방하되 초월하기를.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67

나는 방 안에 앉아서 머릿속 생각들과만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다. 나는 마치 아직 말을 떼지 않은 아이 같다. 엄마의 거부는 강력하다. 나를 마취시키고 외경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나마저 포기와 굴복으로 끌어들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88

엄마는 당신이 이 생에서 얻고 싶은 것,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것을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느끼는 것 자체를 의무로 여기며 불행이라는 먹구름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시커먼 구름 밑에서 무력하게, 툭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동정과 연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으로 남아 있기로 한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88

처음으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내 몸에는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지 않았고 그에게는 모범 시민의 피가 흐르지 않았다. 나는 물리적인 환경의 부조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는 완벽하게 정리를 마친 듯한 단정한 방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명료한 사고를 섬겼고 그는 신비로운 계시에 끌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06

그제야 내가 요리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요리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왜 우리 두 사람 모두가 필요로 하는 이 서비스를 왜 번번이 내 쪽에서만 제공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그리하여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일부러 요리에 무심했고 무능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09

끊임없이 복도를 떠돌아다니면서, 창문이 뻥뻥 뚫린 방들을 들락거리면서 어딘가 다른 곳에 두고 온 듯한 연대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조화로움을 찾아 헤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11

"내가 뭘 하자고 하건 다 싫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싫거나. 어? 뭘 어떻게 해도 네 성에는 안 차잖아. 마음에 안 들잖아. 아니야? 넌 나를 그렇게 느끼게 해. 백날 그래. 지금만 그런 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그랬어. 넌 항상 불만족스럽고, 실망해 있어. 모든 것에 있어서 그래.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 노력은 요만치도 안 해. 그저 불만만 가득해서는 그 빌어먹을 흔들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잖아."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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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가끔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 말을 하며 태어난 것 같다. ‘말도 안 돼.’ 이 말은 ‘안녕 - 잘 잤니 - 잘 자 - 좋은 하루 보내 - 잘 지내’처럼 그냥 내 입에서 술술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동응답기처럼 나오는 고정 대사다. ‘말도 안 돼’ 소리가 뇌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상황이 어찌나 각양각색인지 나도 놀랄 지경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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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그의 저서 『배제와 포용』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섣부른 통합이나 단절이 아닌,
정체성을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신학자의 이 어려운 이야기를 저는, 나의 정체성 안에, ‘내가 지키는나‘를 확실히 함과 동시에 타인을 껴안을 여유 공간을 둔다는 그림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포용의 공간으로 햇살이 비치고, 신께서 주시는 신선한 공기가 잘 들어올 것 같습니다. - P205

저도 딸도, 좀 더 ‘쫄깃한 나‘로, ‘사적인 자아‘를 잘 다지면서 공적 연대로도 확장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많은 딸과 어머니들, 아니 관계로 인해 삶의 조건에 의해 도무지 나로 살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응원의 에너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 P205

너무 늦지 않게, 우리 사이의 가려진 꽃들이 계절의 향기를 누리며 가득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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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네티가 육아에 소질이라곤 전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사실 여자들은 대부분 육아에 소질이 없다. 이제 갓 엄마가 된 이들은 그저 어디선가 본, 배워야 한다고 주입받은 다른 여자들의 행동과 습관을 모방하면서 어떻게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4

네티는 침묵했다. 이 건물에 사는 여느 여자들과 다른 그만의 특징이었다. 이 건물의 다른 사람들은 뭔가를 모르거나 무엇이든 필요하면 일단 목청껏 소리부터 질러댔다. 네티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네티의 무지와 무능은 이 건물에 사는 다른 여자들과 친목을 다지고 유대를 형성할 다리가 되었을 것이며 잘만 활용했다면 그들의 세상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5

네티와 리처드는 엄마와 아들이라기보다는 난데없이 고아가 된 두 아이인 것처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7

하지만 나에게 그 아파트는 마치 네티라는 인물처럼 약속과 매혹이 숨 쉬는 공간이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77

우리 집 창문 아래로 보이는 누추한 다세대주택 앞 골목은 암흑과 침묵에 의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밤공기는 더 맑고, 온화하고, 밀도 높고, 설명할 길 없이 달콤하기도 했으며 그 공기는 내가 찾던 마법 같은 고립감을 더욱 증폭시켜주며 내 백일몽의 마침맞은 전달자가 되어주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84

나와 창녀와 네티, 우리 셋이 작은 레이스 조각을 어설프게 뺨에 대고 있는 이미지가 보였다. 우리 중 누구도 길고 풍성한 레이스를 갖지 못하고 그저 작은 자투리 조각 몇 개를 붙들고, 우리의 서글픈 얼굴을 그 자투리에 대고 있을 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87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매디.
한 차례의 질문과 대답이 오간 후 우리의 공통 화제는 바닥나고 말았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꼭 연락하자고 약속하고, 앞으로 서로 다시 만날 일은 없다는 것을 예감하며 헤어진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91

눈물은 바닥에 떨어지고 샘물처럼 솟아올라서 복도를 가득 메웠고 부엌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거실로 흘러들어 두 개의 침실 벽에 부딪혔고 우리 모두를 떠내려가게 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94

사력을 다한 엄마의 비탄은 다른 평범한 애도를 닦아세웠다. 우리 집의 비극은 며칠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99

그래도 부엌이 그나마 이 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소이긴 했다. 부엌에 늘 상주하던 여자들은 세라 이모와 지머먼 아줌마였다. 둘 다 남편에게 사랑과 애착을 느끼지 않는 편에 속하는 여자들로 결혼을 인생의 고난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두 여자는 우리 엄마의 경이로운 공연 옆에서 침묵을 지켰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1

네티의 눈은 고양이 눈처럼 홀연히 불투명한 색으로 변했고 목은 더 길어졌고 팔다리는 제자리로 거두어졌다. 나는 이제 식탁을 떠날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6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6

엄마는 말할 것이다.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니? 이 안에 내가 모르는 게 뭐가 있냐고? 나는 삶으로 다 살았어. 나는 다 안단 말이다. 작가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걸 말해줘야 할 거 아니니. 그런 게 하나도 없더라.너한테나 재밌었겠지. 난 어땠냐고? 그 책이 무슨 수로 재밌을 수가 있겠니?"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09

침묵, 길고 긴 침묵이 흐른다. 우리는 또 한 블록을 같이 걷는다. 침묵. 엄마는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허공을 바라본다. 나는 길을 인도하며 엄마의 걸음에 발을 맞춘다. 말을 하지도 엄마에게 말을 시키지도 않는다. 또 한 블록 침묵이 흐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1

마치 그날 저녁의 우울, 마지못해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엄마를 배신하지 않고 기다려준 이 절망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오는 사람처럼.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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