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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놓친 기사가 있어서 옮겨놓는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의 '번역비평'에 관한 제언인데, 덕분에 생각이 나서 지난달말에 열렸던 영미문학연구회(영미연)의 학술대회 자료집까지 홈피(http://www.sesk.net/board_focus/content.asp?num=174)에 가서 챙기게 됐다(학술대회에 가보려고는 했지만 여력이 되질 않았다). 한기호 소장은 학회의 발표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발표문('한국출판의 현황과 번역의 과제') 가운데 일부를 칼럼기사(한기호의 출판전망대)와 함께 옮겨놓는다. 많은 부분들에서 동의하며 공감할 수 있는 제안들이다. 

한겨레(07. 11. 03) '잡초’ 골라낼 번역비평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의 실제 번역자가 따로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다음 이 땅에서는 번역의 윤리를 질책하는 커다란 광풍이 불었다. 일주일이 넘게 수많은 매체에서 이에 대한 견해와 논평을 요구하는 바람에 전화로 ‘마시멜로’ 소리만 들어도 입에 단내가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리번역의 관행은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고 번역회사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하긴 요즘 번역회사에 번역을 맡기면 번역료가 싸고, 속도도 빠르며, 문장이 깔끔하다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단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문장이 깔끔하다는 것은 오역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번역회사가 문장 교열자를 따로 두어 원뜻과 관계없이 그럴싸하게 다듬어주고 있다나.

지난달 27일에 서울대 규장각에서는 영미문학연구회(이하 영미연) 주최의 <번역과 영미문학의 미래>란 주제의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영미연 회원들로 구성된 번역평가사업단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발간된 고전작품 71종의 번역물을 총점검한 성과인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1, 2권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에서는 번역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한 발표자가 인용한, 번역은 “터키 카펫의 뒷면”이라거나 “셰프의 요리를 운반하던 웨이터가 지독하게 진부한 대중적 취향으로 말미암아 위에다 케첩을 뿌려서 내놓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말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번역은 “배신자의 행위”일지도 모른다.

영미연의 작업에 대해서도 화초(잘된 번역)를 키울 것이냐 잡초(잘못된 번역)를 골라낼 것이냐는 논쟁이 벌어졌다. 극단적으로 잡초를 고를 시간에 화초를 키우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겠느냐는 지적마저 있었다. 하지만 영미연의 작업은 이 땅의 번역문화를 혁신하는 데 초석이 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인문학이 “과거의 텍스트를 상대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인문학 서적만큼은 최대한 원전의 뜻을 제대로 담은 번역서를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발터 베냐민이 ‘번역자의 사명’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원작이 의도한 것을 자세한 사항까지 애정을 갖고, 자신의 언어 속에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두 개의 깨진 조각이 하나의 항아리의 파편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다’의 본질은 누군가 ‘아니다’를 말했을 때 쉽게 드러난다. 영미연의 작업처럼 누가 잡초라고 말하며 호루라기를 불어줄 때에야 화초의 본질이 확실해지는 법이다. 물론 잡초로 지적받은 사람이 고의로 오역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 꾸준히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을 때 ‘이다’의 본질을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영미연의 작업이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계속해야 할 작업이다. 물론 그 일이 상시적으로 지속되려면 번역비평의 저널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 나는 내내 마음먹고 있던, 내년 2월에 계간 형태의 저널을 꼭 창간하겠다는 다짐을 그만 털어놓고 말았다.(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국출판의 현황과 번역의 과제

인문학의 위기와 번역

발표자가 서두에서 『마시멜로이야기』 사건이 터졌을 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 것은 그런 자기계발서에서는 번역의 질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심정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책은 읽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 외국의 자기계발서는 국내 현실에 맞춰 적당히 가감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요즘 회자되는 ‘인문학의 위기’와 대리번역을 연결시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삶의 길을 터놓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좁다란 길일망정 누군가 터놓기만 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지만 단지 몇 사람이 지나간 흔적 때문에라도 나중에 터널도 되고 고속도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길을 내고 누가 다닐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문학은 서유럽에서 장구한 세월 동안 길을 내기 위해 거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가져와 활용한 면이 크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를 두고 서양의 경험적인 것을 매우 선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조동일 교수는 온통‘지식의 수입상’만 넘친다고 일갈했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 길을 내겠다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인문학은 간단히 말해서 ‘과거의 텍스트를 상대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텍스트를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원전부터 충실히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계가 많다. 그래서 외국 원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 ‘언어가 되지 않는’ 대중이나 기초연구자는 번역서라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런 사람 중에 길을 내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신뢰할만한 원전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철학, 정치학 등에서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플라톤의 경우 일본에서는 기무라 다카타로木村鷹太郎가 1903-1911년에 걸쳐 완역작업을 했고 후잔보冨山房라는 출판사를 통해 전집이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주요 저작들만 중복 출판하다가 올해 4월에서야 전집 간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네 권 출간된 상태다. 팔릴 것 같은 책은 수십 종, 경우에 따라서는 1백 종이 넘게 변종이 생산되지만 꼭 번역되어야 할 책이 번역되지 않은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번역의 질은 또 어떤가? “번역은 배신자의 행위”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번역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인문서의 경우 더 그렇다. 나카야마 겐(中山元)의 『사고용어사전』(2000) ‘번역’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이 번역의 의미를 묻고 있다.

“저 쪽으로(trans) 이끈다(ducere)라는 동사에서 생겨난 말인 번역. 여기에 있는 것을 저쪽 물가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이 행위는 항상 배리背理에 시달린다. 언어로 표현되는 것을 완전히 같은 가치를 가진 언어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번역은 가능한 것이며 마땅히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언어로 말한 것을 별개의 언어로라도 거의 같은 의미와 가치를 가진 말로 바꾸지 못했다면, 철학의 보편성 자체를 보증할 수 없다. 하이데거는 독일어가 없었다면 철학은 불가능했다고 생각한 듯한데, 일본어로도 하이데거의 사고는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와의 커다란 차이이다.

시에서는 단어 하나가 그 작품 자체이고,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한다는 것은 그 작품을 이해할 가능성을 상당히 앗아가 버린다. 시인은 언어를 한 번 쓸 수 있는 생물처럼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개념을 사용해 사고하는 작업이다. 개념이라는 것을 번역할 수 있는 한, 철학 텍스트는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번역은 배신행위이며 늘 어떤 의심에 시달린다. 원작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완전히 표현하는 것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번역은 필터를 거친 전달에 지나지 않으며, 그 텍스트를 확실히 이해하려면 원문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번역된 텍스트는 항상 뒤떨어진 것일까? 번역으로 무엇인가가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을 것인가?”

나카야마는 이어서 “번역이라는 작업도 원작의 의미에 가장 유사하게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작이 의도한 것을 자세한 사항까지 애정을 갖고, 자신의 언어 속에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두 개의 깨진 조각이 하나의 항아리의 파편으로 인정받게 된다(발터 벤야민의 『번역자의 사명』). 번역을 할 때 원작자의 표현에 구애받지 않고 원작자가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생각하고 자신의 말로 바꿀 필요가 있다. 때로 번역자는 원작자가 사용하지 않은 표현도 덧붙인다. 그 쪽이 원작자의 의도를 잘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 번역자의 자의적 생각이 존재함은 피해갈 수 없다. 그렇지만 벤야민은 번역자가 애정을 갖고 자기 나름대로의 자의적 생각을 덧붙인다면, 원작자의 표현과 번역자의 표현은 ‘커다란 언어의 두 가지 파편’처럼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카야마는 “외국어로 표현된 텍스트를 읽는 최선의 방법은 원문 읽기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번역해보는 것이다. 번역해봄으로써, 원문의 텍스트에서 보고 지나쳤던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행위 속에서 어떤 보편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언어의 차이를 넘어선 무엇으로, 그리고 역으로 언어의 차이로 인해 처음으로 부각되는 것”이라며 인문학 연구자가 스스로 번역해보는 행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는 무엇인가?

사실 번역의 문제는 지금껏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다. 지난 몇 년간 학술진흥재단 등의 번역지원으로 적지 않은 책이 출간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출간비용에 비해 지원액이 매우 미미해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적지 않다. 국가의 지원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본다.

첫째, 텍스트 선정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보공학의 창안자인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에 따르면 정보편집의 중요한 용법 중에 ‘계통수系統數’가 있다. 계통수란 계보系譜이고 계열系列이며, 계도系圖다. 우리 눈앞에 있는 정보나 물건이 과거에 어떤 흐름을 갖고 있었는지 그림으로 그려서 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지식의 툴’이 계통수라는 편집용법이다.

모든 인문학 분야의 책도 계통수로 그려볼 수 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서 그 분야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큰 가지에 해당하는 책부터 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원 텍스트는 찾아볼 수 없는데도 그 텍스트에 대한 비판서는 출간된다. 이런 경우 원전은 보지 못하면서 비판만 접하는 이상한 경우가 된다.

따라서 출판계 전체적으로 시급히 번역되어야 할 책을 선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 전문출판사가 더욱 늘어나야 한다. 전문출판사는 학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책을 출간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1천 부의 수요도 잘 이뤄지지 않는 마당에 책을 펴내려는 출판사가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문학 원전의 경우에도 꼭 필요한 텍스트는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영미문학연구회 같은 단체에서 시급히 번역되어야 할 문학원전의 목록을 예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둘째, 전문번역가를 키워야 한다 
지난 5월 17일, 교육부는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교육 분야에서는 인문학 토대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논문형 작품만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온 관행을 바꿔 동서양 고전을 번역하더라도 박사논문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확대하고, 해마다 번역 전문가 1000명을 선발해 1인당 500만원씩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1년에 50억씩 10년 동안 5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안이 실행되는가의 여부는 차치하고 원전번역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은 우리 사회의 번역이나 번역자에 대한 인식이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실제로 실행된다고 해서 번역의 질이 올라갈 것인가? 게다가 1000명씩이나 선발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 인적자원이 있는가?

한 번역가는 번역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글을 읽고 소화하는 능력을 들었다. 영어번역의 경우 영한사전에 있는 단어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비우고 영영사전 등을 활용해 그 단어에 맞는 한국어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어를 잘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수한 소설가는 번역을 잘 할까? 소설가는 단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글을 쓰기 때문에 번역을 꼭 잘 한다고 볼 수 없다.

번역은 언어능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인문적 사유를 할 줄 알면서 폭넓은 상식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들의 독서습관이나 인문서가 팔리는 상황을 갖고 미뤄 짐작해볼 때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해마다 1천 명씩 선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설사 선발이 되었다 해도 번역문만 있으면 뭣하나? 그것이 실제 상품(책)으로 출간되어 독자와 만날 수 없다면 아까운 세금만 낭비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출판사와 연계해 책을 펴낸다는 계약서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500만원은 크게 부족한 돈이다. 돈만 던져놓고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정책을 내놓고 인문학을 살리겠다니, 이런 정책이 나오는 것은 결국 학술번역의 가치를 폄하하고 홀대하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전문번역가란 어떻게 키워질까? 2001년에 김선남(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발표한 「국내 번역 출판물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연구」(<한국출판학연구> 제43호)에서 “전문 번역가의 부족, 낮은 번역료, 오역 및 중복 출판, 출판사의 과도한 저작권 확보 경쟁 등과 같은 출판사 내‧외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번역출판이 활성화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번역인 양성 프로그램 개발, 번역활동 지원 단체의 확충, 번역 출판물 기획의 다양성 확보 등을 제시했는데 한국출판은 여기에서 한발작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앞에서 내놓은 방안은 대학(교육기관)과 출판현장과 번역가가 삼위일체가 되는 시스템에서 해결할 수 있다. 

지금 좋은 번역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실력 있는 번역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력 있는 번역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번역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상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번역료는 10년 전에 비해 200자 원고지 한 장당 1천 원 정도 오른 것에 불과하다. 영어번역의 경우에도 대부분 장당 2,500-4,000원 수준인데 8,000-10,000원 정도가 되어도 그리 높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2,500원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1만5천원 정가의 책인 경우 1천부가 다 팔린다 해도 매출액은 1천만 원 내외다. 이 금액 모두 번역료로 지급되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여기에 제작비, 인건비, 일반관리비 등을 부담해야 하므로 출간 즉시 적자가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니 대다수 출판인은 이런 출판을 기피한다.

또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번역자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있다. 출판사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지만 번역자에게는 처음 받은 번역료밖에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한 번역자가 한 소설시리즈의 번역 인세로 수억 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그 전에 몇 년간 매절 번역료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일을 하는 희생을 감수한 후에야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셋째, 전문편집자를 키워야 한다 
번역전문회사는 대부분 번역지망생과 출판사를 연결해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중간업자에 불과하다. 이 회사들은 보통 번역료의 30% 가까이를 챙긴다. 심한 경우에는 200자 원고지 1장당 1천원의 번역료로 적당히 눙치기도 한다. 출판사가 지급번역을 요청할 경우에는 원고를 여러 사람에게 쪼개서 번역을 맡기고 그것을 모아 한두 사람이 죽 읽어가면서 획일성만 기하게 되는데 이런 원고의 수준은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정도다. 일부 전문번역회사들은 출판사와 번역자가 만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해 번역자가 편집자와 만나 번역의 질을 상승시키는 길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고 번역자가 교열을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한다. 하지만 속도를 요하는 분야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출판사들까지 이런 전문번역회사를 애용하는 현실이다.

요즘에는 싼 번역료에 속도가 빠르고 깔끔하게 번역하는 번역전문회사들도 있다. 전문 ‘교열자’를 두어 거친 번역문도 깔끔한 문장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원문을 대조하며 일일이 교열하는 것이 아니어서 전혀 엉뚱한 문장으로 만들어버릴 확률도 높다. 편집자 또한 그런 문장은 기계적으로 책을 펴내는 경우가 많다. 

꼼꼼하게 공들인 번역으로 소문난 유명 역자들은 편집자가 거의 손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텍스트를 만들어 내지만, 그 밖의 경우 대부분 편집자가 ‘공역자’에 준하는 역할을 하거나 심지어 거의 ‘재번역’을 해야 하는 수준의 번역문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수많은 편집자는 번역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거의 ‘공역자’ 수준의 역할을 떠맡는다. 명목상의 역자는 결과적으로 고작해야 초벌 번역의 수고를 해주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게 되고 편집자가 사실상의 번역자 노릇을 하는 때도 많다. 국내 저작물에 빗대자면 거의 ‘새도 라이터’에 해당될 정도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만약 번역자가 이런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몇 권만 성실하게 번역해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편집자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상 대다수의 편집자는 원문대조도 하지 않고 오탈자나 잡아내는 수준의 교열에 머무른다. 그래서 전문편집자의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그런 편집자들이라도 ‘교수’의 직함을 달고 있는 학자 번역자의 경우 십중팔구 재번역해야 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교수들과 일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최근에는 ‘기획출판’이 강조되면서 기획 같은 ‘고상한’ 일은 내부에서 하고 ‘교정․교열 같은 하찮은 일은 아웃소싱으로 처리하는 일이 늘어나 전반적으로 텍스트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능력 있는 편집자를 키우자는 것이 공염불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그것은 우리가 꼭 걸아가야 하는 길임에는 분명하다.

넷째, 번역비평이 있어야 한다 
규칙의 본질은 비규칙적일 때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가 ‘아니다’라고 호루라기를 불면 ‘이다’라는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 간헐적으로 번역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개인 또는 단체가 있지만 이것이 이뤄지는 상시적인 저널이 있어야 한다.

영미문학연구회의 회원들로 구성된 번역평가사업단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발간된 고전작품 71종의 번역물을 총 점검한 것은 사업단이 스스로 밝혔듯이 “좋은 번역을 가려내는 길잡이이자 번역문화를 혁신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1-2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저널을 통해 항구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만 번역의 질이 올라갈 것이다.

다섯째, 도서관 등 공적 수요부터 키워야 한다 
출판시장이 갈수록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상황에서 상업성은 부족하지만 꼭 필요한 번역출판이 이뤄지려면 공공적인 지원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국가나 기업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근원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번역서뿐만 아니라 출판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도서관의 기본적 존립목적인 정보 접근 평등성을 위해 도서관 스스로 양서를 다양하게 구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공도서관은 너무 ‘빈약’하다.

따라서 소기의 성과를 빨리 이루려면 각급 학교도서관의 활성화가 시대적 소명이다.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고 이를 지역 주민도 이용하는 기초생활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다음 공신력 있는 기구가 선정한 우수도서를 학교도서관이 의무적으로 구비할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 양서의 경우 5천-1만 부 정도가 소비될 수 있다면, 출판사들은 구태여 시류에 영합하는 책을 만들지 않고도 안정된 경영을 해나갈 수 있다. 이것은 출판뿐 아니라 기초학문과 교육이 사는 길이고 결국 국가가 경쟁력을 갖는 일이다. 우수한 번역서를 여기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기에 번역출판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예산타령을 일삼지만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일 뿐이다. 

0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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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조 2007-11-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번역의 경우 영한사전에 있는 단어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비우고 영영사전 등을 활용해 그 단어에 맞는 한국어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대개의 철학책들은 이 능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듯한데, 니체의 텍스트는 유독 이 능력이 요구되는 듯해서요.

로쟈 2007-11-17 23:33   좋아요 0 | URL
니체가 보다 '문학적'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반조님의 번역은 내년쯤 나오는 건가요?..

반조 2007-11-18 19:37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저는 몇년 뒤 본격적인 번역준비작업에 착수한 뒤, 한 10년 뒤부터 출간해볼까 계획중입니다. 지금은 틈나는대로 니체 책을 읽고 있답니다^^ 아직도 니체에 대해 모르는 면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그리고 번역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적은 번역료, 성급한 번역, 니체에 대한 이해 부족"인 듯하여 그런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다음에 번역하려고요. 그러니까 니체에 너무 충성하는 꼴인데, 저로서는 딱히 다른 멋진 일도 없는 듯해서^^... 이거 말만 앞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7-11-18 20:54   좋아요 0 | URL
10년을 더 기다려야 되는군요! 좀 아쉽네요.^^;
 

단테의 <신곡> 새 번역본들이 나온 김에 <신곡> 번역비평에 관한 예전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교수신문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1, 2권에는 아직 실리지 않았다(올 4월에 나온 2권에는 왜 빠졌을까?). 번역 비평의 필자가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번역본을 낸 김운찬 교수이다. 적어도 지적된 내용들은 교정돼 있겠다. 그러니까 아래 기사는 이번에 나온 김운찬본과 박상진본에 대한 평가는 다루고 있지 않다(그건 당분간은 독자의 몫인 듯싶다).

교수신문(06. 12. 26) 고전번역 비평_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57) 단테의 『신곡』 

아마 ‘신곡’ 처럼 번역자를 시험하고 힘들게 하는 작품은 드물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 상당한 분량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곡’ 은 중세 유럽의 지식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에피소드들, 전설, 고전 신화, 중세의 철학과 신학, 천문학과 지리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단테의 저승 여행을 뒤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이든 번역본이든 대부분의 판본에는 많은 역주와 해설들이 덧붙여져 있다.

또한 ‘신곡’ 은 다양한 알레고리와 은유, 다의적인 표현들을 특징으로 한다. 거기에다 3행 연구(聯句), 각운, 11음절 시행(詩行) 등의 운문 형식과 음악성, 리듬까지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훌륭한 번역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 최대한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는 그런 번역본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

단테는 개화기에 이미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나 ‘신곡’의 완전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최민순 신부가 옮긴 판본(경향잡지사, 1957-59년)이다. 그 이전에 혹시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인 번역본이 나왔는지 필자로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최민순의 번역본에서 저본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탈리아어 원본이 아니라 영어나 스페인어 번역본에서 중역하였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후 1970년에 들어와서야 임명방의 번역본이 나왔고, 뒤이어 여러 가지 번역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세계문학 전집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 대략 열거하더라도 유영(1972), 하병호(1974), 허인(1975), 이영숙(1976), 한형곤(1978), 강인웅(1977), 정인섭(1982), 문병선(1983), 최현(1988), 구자운(1991), 김의경(1991), 정노영(1993), 김문해(1997), 최현(1997), 유한준(1998) 등의 번역이 있는데, 출판 연도는 판본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때로는 한 번역자의 작업이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부분 번역의 저본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단테의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긴 것은 임명방, 허인, 한형곤의 번역뿐이다(*그러고 보니 나는 이 번역본들을 모두 갖고 있다). 유영이 10여 종의 영어 번역본과 이탈리아어 원본을 참조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전히 모호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일부 번역본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똑같은 경우도 있다. 가령 강인웅과 정인섭의 번역본은 분명히 번역자가 서로 다른데도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그 외에 번안 작품들도 많다. 유한준(1998), 김혜니(1999), 정미옥(2005)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축약하여 번안하였다. 최요한(1994)은 아예 제목을 ‘소설 신곡’이라 붙였으며, 최근의 번안 작품으로 박상진(2005), 최승(2005)을 들 수 있다. 번역과 번안을 구별하는 잣대는 원본에 대한 충실함일 것이다. 번안은 원본을 임의적으로 줄이거나 덧붙임으로써 기본 골격만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을 자의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물론 ‘신곡’ 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번역과 번안을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지만 간단한 기준이 하나 있다. 번안은 바로 원본의 시행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의 숫자를 아예 표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기본적인 요건을 무시하는 상당수의 번역본들은 번안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다고 해서 언제나 중역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최민순의 경우처럼 중역본이 오히려 원본에 충실한 경우도 있다. 거의 모든 번역본이 드러내는 문제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단테의 텍스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 번역에 앞서 해석의 단계에서 이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신곡’ 을 읽고 어렵다고 말하는데, 원본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대부분 번역자의 이해 부족이나 미숙함이  원인이다. 그 결과 두 번째 문제점으로 우리말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민순과 한형곤의 번역본이 무난한 편에 속한다. 최민순 역은 멋들어진 우리말 용어들과 함께 시인으로서 번역자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시적인 표현들이 돋보인다. 한형곤 역은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자세하고 풍부한 해설과 역주를 자랑하며 단테의 저승 구조를 보여주는 도해와 그림들까지 제공한다. 둘 다 비교적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이따금 가독성이 떨어지는 표현들이 눈에 띄는 것이 흠이다. 원본의 자구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우리말 표현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본들의 경우 판본마다 차이가 있지만 번역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번역본에서 공통적인 실수나 오류가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전의 번역본이 이후의 번역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신곡’ 의 경우 그런 경향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지적하자면 ‘지옥’ 21-22곡의 에피소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역청(瀝靑) 속에서 삶아지는 탐관오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강둑에 있는 악마들이 고통을 가한다. 그런 악마들의 형벌 도구 또는 무기를 단테는 raffio, uncino, runciglio 등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하는데, 모두 ‘갈고리’ 또는 ‘갈고랑쇠’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거의 대부분 ‘(쇠)갈퀴’나 ‘작살’로 번역하고 있다.

최민순의 번역본은 ‘쇠갈퀴’, ‘작살’, ‘갈쿠리’로 옮기고 있는데, 여기에서 갈쿠리는 갈고리의 사투리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이 세 용어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한형곤은 주로 ‘쇠갈퀴’와 ‘작살’로 옮겼지만 뒤에 23곡 140행에서 ‘갈고리’로 표현하고 있다. 임명방은 ‘갈퀴’로 옮겼으며, 허인은 앞의 해설에서 ‘갈고리’로 설명한 다음 정작 본문에서는 ‘갈퀴’로 옮기고 있다. 유영은 ‘갈고리’로 번역하고 있지만, ‘쇠스랑’도 함께 사용한다. 또한 강인웅과 정인섭의 동일 판본이 ‘갈고리’로 옮기고 있지만, 지나친 생략과 축약으로 번역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 외에는 거의 모두 ‘(쇠)갈퀴’ 또는 ‘작살’로 되어 있다. ‘갈고리’와 ‘갈퀴’, ‘작살’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며 전체적인 흐름에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원본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때로는 사소한 차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영어 번역본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영어 번역본들은 여러 가지 용어로 옮기고 있는데, 롱펠로Longfellow는 rake, hook, grapnel, grappling-iron으로, 세이어즈Sayers는 prong, hook, grappling-iron으로 번역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 번역한 맨덜봄Mandelbaum은 prong과 hook으로, 코터Cotter는 여기에다 grappling-hook, fork, pitchfork 등을 덧붙여 옮겼다. 이탈리아어 원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단어의 사용을 피하기 위하여 다양한 표현을 찾았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갈고리’보다 ‘갈퀴’에 가까운 rake와 prong을 사용하였다. 참고로 ‘신곡’ 의 탁월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꼽히는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에서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 모양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21곡 100-101행에서 악마들 중의 하나가 두려움에 떠는 단테를 가리키며 자기 동료에게 “Vuo' che 'l tocchi in sul groppone(내가 저 녀석의 어깻죽지를 건드려 볼까)?” 하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에서 groppone는 ‘어깨’를 가리키는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하나같이 ‘궁둥이’나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 ‘어깨’로 번역한 판본은 하나도 없다. 악마들의 천박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런 저속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분명히 원본에서 멀리 벗어난다. 이것도 분명히 영어 번역본들의 영향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이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롱펠로, 세이어즈, 맨덜봄, 코터의 번역본도 하나같이 rump 또는 bottom으로 옮기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번역도 있다. 21곡의 137-138행에서 악마들이 자신들의 두목을 향하여 신호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드러낸 이빨 사이로 혓바닥을 내밀어 보이는 천박한 몸짓이다. 이상하게도 허인을 비롯하여 여러 번역본들에서 “신호로 눈까풀을 까뒤집어 보였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 연원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번역본들 사이의 상호 영향이나 모방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번역본에서 오역과 비틀린 문장들이 넘친다. 특히 ‘신곡’ 의 경우 기존 번역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좀더 원본에 충실하고, 아울러 우리말 표현에 보다 잘 어울리는 새로운 번역본이 절실히 요구된다.(김운찬/ 대구가톨릭대· 기호학)

07. 08. 12.

P.S. 겸사겸사 동아일보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중 <신곡>에 대한 해제도 옮겨놓는다.

동아일보(05. 06. 15)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62>신곡-단테

2004년 11월 4일은 유럽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모인 유럽연합(EU) 가입 28개국 국가원수들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EU헌법 초안에 서명했다. 이 헌법은 각국 국회나 국민투표를 거쳐 2006년 11월 1일에 발효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행사가 교황청에는 참으로 씁쓸한 날이기도 하였으니, 유럽이 그리스도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문구가 헌법 서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교황의 끈질긴 주장을 유럽 정상들이 묵살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 서문에 “유럽의 문화적 종교적 인문적 유산”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패권 다툼이 유럽 전체를 황폐하게 하던 중세에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정립한 인물이 다름 아닌 시인 단테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더불어 시성()이라는 월계관을 쓴 이탈리아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는 겔프당과 기벨린당의 정쟁으로 내란이 끊이지 않던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권위를 확립함으로써 유럽에 궁극적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려던 정치적 노력이 실패하자 역사의 지평을 넘어 세계사 전체를 종교철학의 시각으로 재정리하여 3부 100곡으로 이루어진 ‘신곡()’을 남겼다.

신곡은 단테라는 한 영웅이 육신을 입은 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종교적 서사시이다. 그가 탐험하는 명계의 처음 두 곳은 이성()의 상징인 로마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고 세 번째는 신앙()의 상징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는다. 단테가 아홉 살에 처음 보았고 18세에 다시 해후하였으나 딴 남자에게 시집가 불과 24세의 나이로 죽은 한 여인이 구원의 여성이 되어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된다.

서사시는 “여기 한숨과 눈물과 드높은 통곡이 별 없는 하늘에 메아리치는” 지옥에서 시작하여 “나는 보았노라. 조각조각 우주에 흩어져 있는 것들이 사랑으로 한 권에 엮여 있는 것을. 그리고 만사를 한결같이 움직이는 바퀴와 같이 해와 별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돌리고 있더니라”는 천국으로 끝난다. 인류사가 인간의 의지와 신의 사랑이 엮어내는 승리의 기쁨 속에 완성된다는 낙관적 역사관을 보여준다. 전의 중세인이 대자연()과 성서()라는 두 편의 책에서 인생과 신을 읽었다면 단테는 신과 인간이 함께 엮는 역사()라는 책으로 인생을 읽었다.

그래서 지옥의 멸망된 족속으로 드는 길은 인생과 자기 사회에 대한 역사적 태만과 해악이며, 실상 지옥은 인간 자유의지의 개별적 집단적 행사를 신이 영원히 존중함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정의는 내 지존하신 창조주를 움직이어 그 극한 지혜와 본연의 사랑이 나를 만들었으며 나는 영겁까지 남아 있으리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 그리고 “세계에서 세계로 이렇듯 내 길잡이의 자취를 따라 두루 찾게 해 주신 그 평화의 이름으로 나는 일을 하리라”는 시인의 동경대로 한반도에 평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의 시집을 펴든다.(성염 주교황청 대사·전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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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pus 2007-08-12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한 가지 의문이 들어서 여쭙습니다.
로쟈님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실어주신 서평 내용 가운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김운찬씨가 최민순 신부 번역본을 중역이라고 단정하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최민순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당장 확인을 할 수가 없어서 좀이 쑤시네요.
고 최민순 신부는 라틴어부터 로망스어 전반을 다 섭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중역을 해야 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싶네요.
김운찬씨가 단순히 '짐작'으로 중역이라고 단정한다면 고인과 독자들에게 굉장히 큰 실례가 아닐까 합니다. 어찌됐든 최민순본 이후로 그 판을 뛰어넘을 만한 번역은 (제 생각엔)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고로 최민순 신부의 다른 번역본들 <고백록> <시편과 아가> 등은 판본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죄송합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로쟈 2007-08-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민순본을 안 갖고 있어서(갖고 있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정은 모르겠구요, 김운찬 교수도 '짐작'을 적은 것이니 좀더 확인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쿠자누스 2007-08-1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에서 1987년 9월 10일 초판 인쇄한 최민순 본 <하>권에 한 형곤 교수의 해설이 붙어 있는데, "이탈리어를 모르던 때 단테의 문학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최 신부의 번역서 덕분"이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5년 한형곤 본은 " 1978년 처음으로 출판되어 1990년까지 널리 읽혀왔으나, 중간에 출판이 중단되어 독자들은 『신곡』을 이탈리아어판 완역본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번역판 외에는 이탈리아어판을 번역한 다른 책이 나타나지 않[았다]"( http://www.libro.co.kr/Product/BookDetail.libro?goods_id=0100006070202 )고 합니다. 최 신부가 중역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글은 이해할 수 없네요. 을유문화사 최민순 본은 원본을 밝히지 않았씁니다.

로쟈 2007-08-1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을유문화사본의 해설이라면 평자도 참조했을 텐데, 중역 얘기가 나오는 건 의문이군요...

쿠자누스 2007-08-1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이 '중역'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다른책에는 판본이 밝혀져 있는데 그 책에만 없으니까요. 중역이 아니라면 한형곤 본을 첫 번째 원전 번역이라고 소개한 글이 문제가 되겠고요.

로쟈 2007-08-1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스페인어본 얘기들이 나온 듯도 합니다...
 

내일 아침신문을 미리 훑어보려니까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우리 출판문화에서 번역서 갖는 비중(인문서의 경우 거의 절반 이상이지 않나 싶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뒤늦은 감이 들 정도이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번역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필요한 첫걸음이 내디뎌지기를 기대한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번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면서 번역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개선되고 번역 업적에 대한 학계의 인식도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찾아보니, 지난달초에 담비에도 소개기사가 게재되었었다.

   

한국일보(07. 03. 02) "번역 업그레이드” 학술적 비평 첫 시도

국내 발행 도서 중 번역서 비중이 30%를 훌쩍 넘었지만 번역의 질을 담보할 장치는 아직 미비하다. 최근 몇몇 교수와 연구기관이 국내의 낮은 번역 수준을 비판했고 일부 네티즌은 오역 사례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대체로 산발적·개인적 차원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번역 비평을 표방한 첫 학술 단체인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 고려대 교수)가 3일 창립학술대회를 열고 본격 출범한다.

◆ 단순한 오역 비평을 넘어

어문학 교수들이 주축을 이룬 번역비평학회는 번역학 체계 정립과,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반의 번역물 평가기준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번역 실무나 통번역 교육에 초점을 맞춘 기존 번역학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학회 이사인 이영훈 교수(고려대)는 “지금까지 번역은 학문적 활동보다 기술적 작업으로 평가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해묵은 오역시비의 덫에 걸린 번역비평 방법을 다양화·체계화해 번역 수준을 향상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회는 번역자의 주체적 해석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번역 이론 발표를 맡은 전성기 고려대 교수는 “번역자는 원텍스트를 정보 차원에서 읽는 것을 넘어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며 작품을 재구축하는 번역문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 번역가이자 또 다른 발표자인 정혜용 박사는 “(원문에 대한) 충실성과 가독성은 더 이상 번역의 규범이 될 수 없다”면서 “작품마다 지닌 고유한 논리를 읽어내 자신의 모국어로 되살리는 존재가 번역가”라고 주장했다.

국내 정상급 번역가들도 학술대회에 초청된다. 황보석(영어) 김난주(일본어) 이인숙(불어) 권미선(스페인어) 등 각 언어권 작품에서 손꼽히는 번역가들이 ‘번역 환경과 해결방안’ ‘번역의 어려움’ 등을 주제로 발표하고 참석한 학자들과 토론한다. 평소 번역 환경의 문제점을 비판해왔던 박상익 우석대 교수와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도 참석한다. 이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번역비평의 대상인 일선 번역자들에게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단 현장의 여건과 애로사항부터 살피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 번역비평 무크지 발행

학회는 한국퀘벡학회와 공동으로 11월2~3일 ‘퀘벡과 번역’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영어·불어가 공용어인 캐나다는 일찍이 번역 이론과 실무가 발달했고, 특히 퀘벡은 번역비평 부문에서 가장 선구적인 지역이다. 또 학회는 올해부터 1년에 두 차례 정도 번역비평 무크지를 펴낼 계획이다. 학술이사인 조재룡 성균관대 교수는 “번역 관련 대담, 번역비평 에세이 등 딱딱하지 않은 내용으로 꾸밀 예정”이라며 “유명 고전작품의 여러 번역본을 비교 평가하고 신간 번역서를 비평하는 코너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 현장 일각에서 학회가 공언한 비평 활동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난주씨는 “번역가의 언어 선별은 병아리 감별사의 작업과 닮았다”며 “번역가 개인의 감각적 역량에 획일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결과적으로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표정훈씨도 “학계에서 번역을 진지하게 다루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향후 학회의 비평 활동이 열악한 번역현장 여건을 도외시한 채 이뤄진다면 오히려 번역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훈성기자)

담비(07. 02. 05)  번역비평학회 창립 기념 학술대회

번역과 비평이 만난다? 늘 쏟아졌던 번역물이지만, 지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역 교양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시대다. 번역은 반드시 오역논란을 부른다. 번역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불성실하게 이뤄진다는 증거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가는 느낌이다. 출판계의 대필관행과 학계의 표절관행으로 우울한 이 시점에 번역비평을 본격적으로 표방하는 학자들이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오는 3월 3일 한국번역비평 학회가 공식 창립되면서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한국문학번역원, 고려대학교 언어문화연구원, 한국학술진흥재단 번역인문학 프로젝트 연구팀과의 공동 개최로 진행될 3월 3일 학술대회는 1부 ‘번역 이론’, 2부 ‘번역 실천’, 3부 ‘번역 현장’으로 구성되어, 국내 번역 현황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아가 번역이론의 필요성과 출판 현황 전반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회 창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학술원 회원이신 원로불문학자 정명환 교수와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된다. 번역이론 정립을 위하여 마련된 1부에서는 다년간 번역문법과 번역학 정립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전성기 고려대 교수와 파리 통번역대학원 박사로 번역 이론 및 실천에 왕성한 활동을 보여온 정혜용 박사의 발표가 마련되어 있다.

‘번역 실천’을 주제로 마련된 2부에서는 황보석, 김난주, 이인숙, 권미선 등, 국내 최고의 번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번역의 경험과 어려움을 함께 논한다. 한편 3부에 발표가 마련된 표정훈 출판평론가와 박상익 교수는 정확한 진단과 날카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번역 전반의 문제점을 숙고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논객들이다. 이와 아울러 분과별 발표가 진행되기 전, 한국불어불문학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학자로 평가받는 정명환 교수와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의 기조연설, 번역비평학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황현산 고려대 교수의 축사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에서는 학술대회와 동시에 학술발표회의 원고들을 수합하여 전문 무크지를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대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소장학자들의 번역전반에 관한 성찰을 중심으로 무크지를 운영할 것이며, 국내를 대표할 수 있는 번역가들과 번역이론가들의 대담도 기획 중에 있다.

11월 2일-3일 열리는 학술대회는 한국퀘벡학회와 공동으로 주관하여 국제학술대회로 규모를 확장할 예정이다. 인문학 위기 타개와 번역 비평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 해 10월 고려대학교에서는 번역인문학 국제 학술대회가 개최된 바 있으며, ‘퀘벡과 번역’이란 주제로 열리는 11월 국제 학술대회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다 폭넓고 다양한 국ㆍ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한 자리에 모을 예정이다.(리뷰팀)

학술대회 세부 일정

09:30-10:00 : 접수

1부 : 개막 행사 (10:00 - 11:20)  사회 : 한대균(청주대)
10:00 - 10:10 : 개회사 - 황현산(번역비평학회장, 고려대)
10:10 - 10:40 : 기조강연 1 - <번역에 관한 몇 가지 고찰>, 정명환(학술원회원)
10:40 - 11:10 : 기조강연 2 - <번역의 정치성>,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
11:10 - 11:20 : 휴식

2부 : 번역이론 (11:20 - 12:40)   사회 : 이영훈(고려대)
11:20 - 12:00 : <번역문학비평을 위하여>, 정혜용(서울대 불문과)
   토론자 : 김윤진(한국문학번역원)
12:00 - 12:40 : <인문학번역과 번역문법>, 전성기(고려대 불문과)
   토론자 : 송태효(고려대 레토릭연구소)

* 12:40 - 14:00 : 중식 (고려대 국제관 1층 교직원식당)

3부 : 번역 실천 (14:00 - 16:40)  사회 : 김재혁(고려대)
14:00 - 14:40 : <우리 번역의 현주소와 개선 방안>, 황보석(미국문학 번역가)
   토론자 : 정혜윤(기독교방송국 PD)
14:40 - 15:20 : <일본 문학번역의 함정들>, 김난주(일본문학 번역가)
   토론자 : 유숙자(일본문학 번역가)
15:20 - 15:30 : 휴식
15:30 - 16:10 : <한국문학 프랑스어 번역의 난점들>, 이인숙(한․불문학 번역가)
   토론자 : 고봉만(한길사 기획위원)
16:10 - 16:50 : <스페인어 문맥의 함축적 성격과 번역의 어려움>,
       권미선(스페인문학 번역가)
   토론자 : 송상기(고려대)
16:50 - 17:00 : 휴식

4부 : 번역 출판과 현장 (17:00 - 18:20)  사회 : 조재룡(성균관대)
17:00 - 17:40 : <번역자의 조건들>, 박상익(번역비평가)
17:40 - 18:20 : <출판제도 안에서의 번역>, 표정훈(출판평론가)

07. 03. 01.

P.S. 교수신문에 한국번역비평학회 초대회장 황현산 교수와의 인터뷰기사가 게재되었기에 마저 옮겨놓는다. 기사를 읽으면서 받게 되는 인상은 불문학자이면서 여러 권의 문학 번역서를 낸 역자답게 황교수의 고민은 상당히 고차원적이라는 것이다. '상투적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 번역서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투적인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번역의 미학이나 윤리, 철학을 따지기 이전에 일단 '번역' 자체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겪는 현실이다. 아마도 읽는 책들이 서로 다른 모양이다...   

교수신문(07. 03. 02) 한국 번역, 오역시비에 그쳐…상투적 번역이 더 문제”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가 지난 3일 고려대에서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창립 학술대회를 열었다. 번역에 관한 이론과 현장경험이 만난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지난달 27일 학술대회에 앞서 학회장인 황현산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사진)를 만나 우리나라 번역의 문제점 및 번역비평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황 회장은 지난해 9월 학회 창립 이후 초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번역을 이론화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학회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일반적으로 번역을 ‘우리말로 돼 있지 않은 텍스트를 우리말로 바꿔 소개하는 작업’ 정도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두 언어에 관해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이뤄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나 소설 같은 언어창작물 보다 오히려 번역이 담당하는 역할이 커요. 언어의 모든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번역은 인문학의 모든 주제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번역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은 번역비평의 한계로 이어진다. 황 회장은 ‘번역담론’의 문제를 꼬집었다. “한국의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통해 탐구하고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죠. 번역은 언어를 분석하기에 굉장히 좋은 재료인데, 아직 우리나라 번역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 했다고 봅니다.”

본지가 지난 2005년부터 연재한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를 언급하자 황 회장은 칭찬과 함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번역의 중요성은 물론, 번역을 객관화하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데 교수신문이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연재물을 보면서 “오역이 많다, 잘 읽힌다” 정도의 논의를 넘어 체계적인 번역 담론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오역시비에 앞서 우리나라 번역작업이 안고 있는 근본장애로 ‘상투적인 번역’을 지적했다. “우리말로 쓴 것보다 더 우리말 같은 번역들”은 번역의 중요한 힘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상투적이지 않다는 것은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뜻인데, 소설이나 시에선 낯선 말도 용납하면서 유독 번역에서 낯선 용어가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상투적인 번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번역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기 위해 학회는 갈 길이 멀다. 황 회장도 “공개적, 객관적으로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학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번역이론가와 현장번역가가 만나 번역에 관한 인식을 같이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 그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학술회의, 국제학술세미나, 월례발표회 등을 통해 번역에 관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성찰해 나가겠다”고 학회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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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에서는 논문 쓰는 것보다 번역이 훨씬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우리나라의 인식은 아직 한 참 먼 것 같아요. 미국의 명문대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절반이 고전텍스트 번역이라고 하던데..

로쟈 2007-03-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학계의 고질 같습니다. 대학원생들 시켜서 주로 대리번역들을 하다보니, '업적'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젠 좀 달라져야지요...

jouissance 2007-03-0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문제를 제일 앞서, 제일 줄기차게, 재기했던 사람이 김용옥이죠. 그래요, 이젠 달라지겠죠. 달라져야 하구요. 회장(황현산)은 제대로 뽑은 것 같네요. 황현산이 2005년에 출간한 말레르메 <시집>은 번역의 전범이라 할만하죠...

로쟈 2007-03-0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절차탁마 대기만성> 등에서부터 힘주어 강조했던 것이죠. 한데, jouissance님 전공이 불문학이신가 보네요.^^

jouissance 2007-03-02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문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공은 아니랍니다. 누가 전공을 물어보면 말하기가 조금 뭐해요. 하도 다닌듯 안 다닌듯 그럭저럭 다녀서 말입니다...^^

기인 2007-03-02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번역. 복잡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도발적인' 것은 뜻밖에도 가장 오래된 고전 <장자>의 재번역본이다. 한겨레의 기사 타이틀은 아예 "왜곡·오역의 ‘장자’는 불태워라"인데, 그간에 나온 <장자>의 번역들이 왜곡과 오역으로 도배돼 있으니 다 불태워 마땅하다는 것. 역자인 기세춘 선생의 일갈을 옮기면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장자는 장자가 아니다.” 나도 몇 권의 번역서를 갖고 있는지라(비록 지금은 다 박스에 들어가 있지만),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동양 고전인지라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내가 처음 접한 건 허세욱 선생이 옮긴 범우문고판 <장자>였다), '네가 읽은 건 장자가 아니다!'란 소리니까 더 없이 도발적인/충격적인 발언임에 틀림없다. 소위 '전문가들'의 신뢰할 만한 리뷰들을 읽어봐야 상황판단이 가능할 듯싶지만, 일단은 역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책은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아마도 내일자 신문에 게재되는 모양이다.

경향신문(07. 01. 27) ‘장자’ 재번역한 기세춘씨

“노·장자의 기본 ‘캐릭터’가 완전 변질됐습니다. 저항성이 사라지고 지배 담론으로 윤색됐어요. 그 본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고증학적 작업을 거친 재번역이 필요합니다.”

기존 학계에 기세춘씨(72)는 ‘불편한 존재’다. “시중의 동양고전 번역서를 모두 수거해 불살라 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동양고전 번역서가 왜곡과 변질, 오역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게 기씨의 주장. 그가 “칠십 노인의 망령기와 당돌함으로 만용을 부려” 나선 재번역의 첫 결실로 ‘장자’(바이북스)를 내놓은 건 이때문이다.



“학계에선 아무도 경종을 울리지 않습니다. 저야 강단학계의 학맥이나 스승이 없어 자유로우니까 욕 좀 하겠다는 겁니다.” 기씨에 따르면 노장사상은 도교가 일어나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으면서 신비학으로 왜곡됐고, 정치권력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는 은둔과 청담의 사상으로 변질됐다. 왜곡의 뿌리는 2~3세기 중국 위진(魏晉)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조에 의해 등용된 왕필이 당시 반란의 중심이었던 도교 세력의 민중성을 거세하기 위해 ‘노자 도덕경’과 ‘장자’에 나타난 반체제성과 저항성을 제거해 체제순응적이고 권력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기씨는 “국내에 출간된 노장 주해 및 해설서들은 왕필의 주해를 근간으로 삼은 탓에 이러한 왜곡을 답습한 것들”이라고 비판했다.

번역자의 오역도 ‘장자’의 본 모습을 훼손했다. 시대와 문화, 언어 등의 차이로 인한 변질과 오해 가능성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번역했다는 것이다. 기씨는 “은미하고 철학적인 담론이 치졸한 처세훈이 되고, 서사적인 우화는 그 핵심을 놓치고 초점을 그르쳐 다른 길로 빠져버린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그가 ‘장자’의 오역으로 꼽는 예를 살펴보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죽일 자를 풀어주는 것이오(綽乎其殺之)’로 해석해야 할 것을 ‘여유있게 죄인을 죽이는 것이다’로, ‘잘못을 행해도 형벌로 다그치지 말라(爲惡無近刑)’로 해석되는 부분을 ‘어쩌다 악한 일을 하더라도 형벌에 저촉되지 않게 하라’로 옮긴 게 대표적. “권력 저항적이고 무정부주의인 노장 사상에서 어떻게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분노 섞인 한탄이다.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혁명적 담론인 ‘동심론(童心論)’도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올 김용옥 교수가 동심론을 기공술(氣功術)로 해석해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꾸어 젊음을 되찾자고 한 것은 “한심하다”고까지 말했다.

기씨는 “중국 고전의 경우 수천년 묵은 고문자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뜻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전은 내용이 포괄적이므로 신학,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등 광범위한 소양이 요구된다”며 “자기 깊이가 그걸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밥술이라도 먹게 됐으니까 적어도 동·서양 고전은 우리가 제대로 번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문은 비판정신이 생명입니다. 그냥 그대로 답습하려면 왜 합니까.”(김진우 기자)

07. 01. 26.

 

 

 

 

P.S. 참고로, 교수신문에 연재됐던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서는 안동림과 오강남 역주의 <장자>가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표플 얻었지만 반론도 만만찮은 것으로 소개돼 있다. 지난 1963년 최초의 완역본이 출간된 이래 60여 종 이상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자와 종교학자의 번역이 가장 '읽힐 만한' 번역으로 추천되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거기에 '재야' 고전학자의 새 번역본이 보태진 셈이다. '정역본'으로 공인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장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하여 전문가의 조언을 같이 옮겨둔다.

교수신문(05. 07. 04) 장자,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장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고전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해석의 다양성은 모든 고전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자’의 경우 이 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따라서 ‘장자’를 펼칠 때는 먼저 어떤 시각에서 읽을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각박한 현실로부터 삶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번득이는 지혜로 가득 찬 우화집으로 읽힐 수도 있고, 특유의 도가적 상상력으로 포장된 신화적인 사유의 보고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또 그런 주제들을 탁월한 레토릭으로 버무려낸 한 편의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형형색색의 얼굴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들어 있는 문제의식들의 면면을 감안한다면 ‘장자’의 본령은 역시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자’의 뼈대를 이루는 사유들이 조형된 시기가 중국철학의 황금기인 ‘戰國’ 시대라는 점도 이런 판단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므로 ‘장자’에 대한 제대로 된 독법은 그것을 한 권의 철학서로 읽는 것이다.

‘장자’를 철학서로 읽고자 할 때 그 종잡을 수 없는 사유의 늪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한 선이해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첫째, ‘장자’에서 구사되는 언어적 표현들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통상 ‘장자’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구사 방식은 크게 ‘우언(寓言)’과 ‘중언(重言)’과 ‘치언(癡言)’, 세 가지로 나뉜다고들 말한다. ‘우언’은 말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른 말 속에 은폐시켜 전달하는 방식이고, ‘중언’은 사회적으로 그 권위가 이미 확립된 사람의 입을 빌리는 이중의 방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이며, ‘치언’은 마치 내용물이 일정 기준 이상 차오르면 저절로 기울어져 쏟아지도록 고안된 술잔처럼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고착되는 것을 시종일관 거부하는 표현법이다. 이와 같은 언어구사 방식은 언어의 본성에 대한 특유의 통찰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이런 까닭에 ‘장자’를 읽을 때는 언제나 이른바 ‘행간’을 읽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장자’는 연대기를 달리하는 복수(複數)의 저자들이 만들어낸 집단 저작물이라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현재까지 가장 일반화된 견해에 따르면, ‘장자’에는 적어도 너댓 가지의 사상적 성향들이 혼재되어 있다. 장자 본인의 사상에서부터 그를 비교적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자후학들의 사상, 한비자류의 법가적인 경향성이 강한 사유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아나키즘적 색채가 농후한 사유 그리고 이런 정치적인 관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탈속적인 개인주의적인 성향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장자’를 읽을 때는 이런 혼재된 생각의 갈래를 개략적으로라도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장자’는 고작해야 잡다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끌어 모아 놓은 단편들의 모음집에 지나지 않게 된다.

셋째, ‘장자’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의 성격을 간파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장자’에 담겨 있는 사유의 폭과 깊이는 ‘전국’이라는 시대가 제기한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나름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고뇌하고 소화해낸 결과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중국의 전국시대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함께 이후의 동서양 철학사에 등장하는 모든 철학적 주제들의 원형이 제시된 시기이다. ‘장자’는 바로 이와 같은 지적 분위기의 중심을 관통하며 형성된 고전이다. 장자 본인의 사상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 내편에서 다뤄지고 있는 문제만 보더라도, ‘자연’과 ‘인간’을 비롯해 ‘주체’, ‘타자’, ‘언어’, ‘소통’, ‘실재’, ‘몸’ 등 그야말로 현대 철학에서 거론되는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를 정도로 다양하다. ‘장자’는 이런 주제들이 특유의 탈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심미적 세계관 속으로 수렴된 결과다. 이점이 또한 현대의 포스트모던적인 지적 상황에서 ‘장자’가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자’를 읽을 때는 이런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먼저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장자’를 읽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얽히며 구축해내는 철학적 사유의 정수와 대면하는 작업이다. 몇 번의 두레박질로 모두 길어 올리기에는 그 사유의 깊이가 너무 깊은 책, 그것이 ‘장자’이기 때문이다.(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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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7-01-2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덕에 또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늘 신세만 지네요. 그래도 로쟈님이 계속해서 좋은 정보 퍼뜨릴 거라 믿으며 자주 들르겠습니다.^^

로쟈 2007-01-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 다 떠 있는 정보들입니다.^^;

승주나무 2007-01-2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저도 장자가 4종이나 있었군요. 안동림본, 오강남본, 김학주본, 서광사본.. 장자는 편린만 취해서 그 전체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코멘트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안동림본을 읽고 있는데(비싸고 두꺼운 것을 신뢰하는 편벽 때매) 옛날처럼 원문과 대조해가며 볼 수준이나 여건은 아니구요~~
장자의 정역본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모두 잡고 읽어보려구요. 근데 김학주본은 이제 애정이 식게 되더군요^^ 좋은 펌정보 감사합니다.

로쟈 2007-01-2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종을 갖고 있는데, 이게 문헌고증도 필요하지만 문학성도 옮겨줘야 하기 때문에 '난감한' 번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거 같습니다. 거기에 '내편'과 '외편', '잡편' 간의 차이(저자의 복수성)도 고려해야 하겠고. 연구서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가장 읽을 만한 번역(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번역?)이 먼저 확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biosculp 2007-01-2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물가물한데 동심론은 이탁오 애기하는것 같은데 김용옥교수가 그런식으로 해석을 한 기억은 없는데 다시 책을 뒤져봐야 겠군요.
그리고 김용옥 교수 책을 기준은로 노자철학이것이다에서 왕필의 필터로 본 노자이기에 그 왕필이 살던 시대 위나라지만 한나라가 붕괴된후라 한제국의 논리를 먼저 해부하고 노자로 가자 뭐 이런식의 논리였던것 같은데. 좀 심하게 애기하면 김용옥도 다 한애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쩝

로쟈 2007-01-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존 학계와 '불편한 관계'이면서 도올과도 생각이 다르다고 하니까 저도 뭐라고 덧붙이진 못하겠습니다. 전공자들끼리도 의견조율이 안되는 게 고전번역인지라...

기인 2007-01-2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는 아예 다른 텍스트도 있지 않습니까? 왕필 이전 텍스트도 있고, 그 해석에 대해서 김시천 선생님께서 숭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요. 벌써 그 텍스트 이름도 가물거립니다;; 저도 장자 가장 좋아하는 고전 텍스트였었거든요. 매우 법가적으로 해석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로쟈 2007-01-2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철학에서 이야기로>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마늘빵 2007-01-2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박원재씨 저 분한테 학부시절 장자를 배웠더랬는데;;;

기인 2007-01-2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출국하기 직전 떠오른 것.. 김시천 선생님은 장자가 아니라 노자 도덕경 새로운 텍스트였어요. ㅋㅋ 죄송합니다; 음. 집에와서 책장에 보니 '노자'아저씨의 책을 보고 두둥;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위지본 도덕경이었던가. 새로운 텍스트는요. 아니 근데 왕필 아저씨는 장자도 재해석 한 건가요? 스물몇살때 도덕경 주 달고 요절하신 천재로 기억하는데.. 돌이켜보면 6년 전쯤 기억이라 막막합니다.. 도는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기억할 수 업다... ^^;
 

'번역과 인문학'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 소식을 스크랩해놓는다. 번역과 번역학, 번역비평에 대한 관심이 더 고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수신문(06. 10. 10) '번역과 인문학' 국제학술대회 열려

고려대 문과대학이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오는 19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번역과 인문학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주최 측은 학술대회의 목표가 "우리의 인문학과 관련하여 현금의 번역 역량을 점검하고, 번역 원론과 각론에 걸쳐 학문 분야별‧언어별로 중요 주제들을 검토하여 바람직한 번역문화를 전망함과 동시에 우리의 학문 현실에 적합한 번역학과 번역비평론을 창도하는 데 있다"라고 밝혔다.

번역은 하나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언어 경험을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언어 경험으로 바꾸고, 한 시대에 한 지역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 사고에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적 형식과 가치의 시험을 부과하는 고도의 학술적 작업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또한 출발 텍스트와 그 문화를 객관화하는 가운데 목표 문화 속에 그에 대한 정신적‧언어적 터전을 준비하는 번역활동은 대상 문화를 존중하는 일이 자문화의 유연성을 높이고 폭을 넓히는 일과 통하는 고도의 윤리적 작업이라고 이번 학술대회 프로그램을 풀이한다.  

이번 학술회의는 이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일련의 개막강연과 네 개의 주제별 분과토론을 3일에 걸쳐서 진행한다. 첫날의 개막강연에서는 앙리 메쇼닉(사진) 파리8대학 교수, 金聖華 홍콩중문대학 교수, 전성기 고려대 교수 등 선도적 연구자들의 발제가 있고 이어서, ‘번역 일반론’ ‘문화 수용으로서의 번역’ ‘번역이론과 번역현장’ ‘한국작품의 외국어 번역의 문제’ 등 네 개의 큰 주제를 둘러싸고 펼쳐질 이틀간의 분과토론에는 30명의 국내외 관련 연구자들이 사회자와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특히 마지막 날 토론에서는 이연숙 히토츠바시대 교수, 파사레바 라리사 고려대 교수, 삐오 세라노 스페인 베르붐 출판사 대표, 노자끼 미츠히코 오사카시립대 교수 등 우리의 문학작품을 각기 해당 국어로 옮긴 바 있는 번역자들이 토론자로 참석하여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 실태를 살피고 향후의 전망을 논의하게 된다.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첫째 날 10월 19일(목) - 국제관 214호 국제회의실(국제대학원동)

개막식

사회:김재혁 교수

 (고려대)

3:30 ~ 3:40

개회사(조광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

3:40 ~ 3:50

축사(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3:50 ~ 4:00

감사의 말(대회준비위원장 황현산 교수/고려대)

개막강연

사회:김춘미 교수

     김양순 교수

 (고려대)

4:00 ~ 4:45

앙리 메쇼닉 교수(파리 8대학):번역의 의도는 언어이론을 통째로 바꾸는 데 있다

4:50 ~ 5:35

진성화 교수(홍콩중문대학):문화의 차이와 번역의 책략

5:40 ~ 6:25

전성기 교수(고려대):번역인문학과 번역비평

저녁식사 (6:30 ~    ) : 국제관 교직원식당

둘째 날 10월 20일(금) - 국제관 321호 원형강의실(국제어학원동)

주제발표 1

번역 일반론

사회:김승옥 교수

 (고려대)

9:30 ~ 10:15

발표-김응종 교수(충남대):번역은 제2의 창작인가

토론-김경현 교수(고려대)

10:20 ~ 11:05

발표-서지문 교수(고려대):사랑도 번역이 되나요? - 번역자의 이질적 언어, 문화권 간의 교량역할 -

토론-이성일 교수(연세대)

11:10 ~ 11:55

발표-박여성 교수(제주대):‘번역투’와 번역비평에 대한 텍스트과학적 접근 -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한국어 번역본을 중심으로 -

토론-장영준 교수(중앙대)

점심식사 (12:00 ~ 1:30) : 국제관 카페테리아

주제발표 2

문화 수용으로서의 번역

사회:황현산 교수

 (고려대)

1:30 ~ 2:15

발표-조성택 교수(고려대):번역과 오․이해: 한역불교용어를 통해서 본 동아시아불교

토론-박태원 교수(울산대)

2:20 ~ 3:05

발표-정광 교수(카톨릭대):개화기 시대의 성경번역에 대하

토론-전성기 교수(고려대)

3:10 ~ 3:55

발표-김용민 교수(한국외대):한국에서 루소 사상의 수용과 그 번역문제

토론-박홍규 교수(고려대)

※ 종합토론 (4:05 ~ 5:05) : 사회 최동호 교수(고려대)

저녁식사 (5:30 ~    ) : 인촌기념관 1층 귀빈홀

셋째 날 10월 21일(토) - 국제관 321호 원형강의실(국제어학원동)

주제발표 3

번역이론과 변역현장

사회:이재훈 교수

 (고려대)

9:30 ~ 10:15

발표-이연숙 교수(일본 히도츠바시대학):개념의 번역과 문체의 번역

토론-정병호 교수(고려대)

10:20 ~ 11:05

발표-황현산 교수(고려대):시와 번역

토론-김인환 교수(고려대)

11:10 ~ 11:55

발표-김동준 교수(동덕여대):한국한문문학작품 번역을 위한 제

토론-윤재민 교수(고려대)

점심식사 (12:00 ~ 1:30) : 국제관 교직원식당

주제발표 4

한국작품의 외국어 번역의 문제

사회:김양순 교수

 (고려대)

1:30 ~ 2:15

발표-피사레바 라리사 교수(고려대):한국시의 러시아어 번

토론-최선 교수(고려대)

2:20 ~ 3:05

발표-삐오 세라노(베르붐 출판사 대표):한국문학작품의 스페인어 번역: 성과와 도전

토론-이재학 교수(고려대)

3:10 ~ 3:55

발표-노자끼 미츠히코 교수(오사카 시립대학):일본에서의 한국 고전문학 번역

토론-최관 교수(고려대)

※ 종합토론 (4:05 ~ 5:05) : 사회 민용태 교수(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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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10-13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이런 '번역학'에 대한 세미나가 열리는군요. '번역'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학계 풍토에 대한 자책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번역에 대한 논의가 붐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번역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번역학 즉 번역'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현 상황은 안타깝습니다.

'번역'에 관한 세미나의 경우, 이제는 '번역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에 대해 기획의 방향을 섬세하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 세미나같은 경우, 개화기 성경번역이나 루소의 수용같은 논문은 역사학 계통의 논문이 나올 것입니다. 개화기 번역에 대한 논문은 동아시아학, 국문학의 제일 인기 분야입니다. '번역은 제2의 창조인가'와 같은 논문은 김효중의 <번역학> 한권만 읽어도 왠만한 것은 커버할 수 있을 것인데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하지만 문제는 이 세미나에서의 번역에 대한 여러 논의가 짬뽕이라는 것입니다. '번역학'이 있을 정도로 논의가 복잡한데도 원론, 각론 다 모아 한큐에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기획 자체가 아직도 번역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에 대해 세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일전에 번역과 관련한 리포터를 한편 쓰기 위해 KISS에서 '번역'키워드로 한글 논문 20여편을 찾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태반이 김효중의 개론서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거나, 번역학 개론과 자신의 분야를 적절히 배합한 것들이었습니다.
정말 한국에서 필요한 번역에 대한 논의는, 번역의 강국 일본의 경우 출판사들은 어떻게 번역관련 작업을 하는가, 일본이나 미국의 대학 출판사들은 어떻게 번역을 하는가, 출판물 선정, 필자 섭외, 섭외의 기준, 번역까지의 기간 선정, 편집자와 번역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등에 대한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연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찾아본 논문 중에는 외대 통번역 교수 두분이 연구비 받고 한국 출판사를 선정해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한 논문이 딱 한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한 대상이 출판사 단 네곳밖에 되지 않아 논문이라고 하기에 턱없이 그 기준이 모자랐습니다.

원래 각국의 번역 상황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했으나, 한국에 관한 위 논문을 제외하고는 단 한편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번역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지만 있을 뿐 번역 대국의 번역 상황에 대해 실질적으로 실증적인 취재, 연구가 치밀하게 되지 않는 한, 이러한 '번역학'세미나는 80년대 초반 김용옥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번역에 대해 그리도 강조한 것 이상을 뛰어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번역학' 교수들이 생기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요...

로쟈 2006-10-1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매님/ 유익한 코멘트를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이번 학술대회 조직위에서 열매님 같은 분을 초빙했어야 했는데요^^). 매달린 일들 때문에 제 의견을 본문에 자세히 적지는 못하겠지만, 제기하신 문제들에 공감합니다. '학술대회'란 건 그냥 '행사'이죠. 실질적인 변화를 누가, 어떻게 가져올 수 있고, 또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라이더 2006-10-1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좋은 댓글 이네요.

biosculp 2006-10-1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들렸다 을유문화사에 신복룡교수가 번역한 군주론이 이 책과 더불어 강정인교수가 번역한 까치판을 같이 사서 읽고 있는데, 같은 책 다른 번역으로 읽은적은 처음입니다. 갈수록 다른면이 많더군요. 술어부터, 강정인은 식민지라고 한곳을 신복룡은 이주민 정책으로 번역하고 각자 잘 이해되는 부분도 다르고. 역시 번역은 두권이상을 동시에 봐야 뭐가 다른지 알수있는것인지. 그러다 보니 이거 영어판이라도 같이 봐야 되겠다 이생각이 들더군요. 영어판도 두권이상(이탈리아어는 모르니)
번역, 읽다가 이해 안되는것은 한권읽었을때고 동시에 두권을 읽어보니 또다른 세상입니다.

로쟈 2007-12-02 10:16   좋아요 0 | URL
뒤늦은 답글인데, 맞습니다. 같은 곡을 각기 다르게 연주하는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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