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강의하고 귀가하는 길인데, 강의중에도 그리스어 원전 번역으로 새 <그리스인 조르바>(문학과지성사)가 나왔다고 공지했다. 유재원 교수의 번역인데(이미 예고돼 있었다) 원제인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이 부제로 붙었다. 이윤기 선생의 번역판을 비롯해서 그간에 나온 번역본이 모두 영어판(두 종이 있다)을 옮긴 것이기에 그리스어판 번역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바로 주문해놓았기에 주말에는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어로 여러 종이 번역되었으나, 그리스어에서 한국어로 직접 번역한 것은 이번 문학과지성사 판이 처음이다. 그동안 출간된 책들은 영어판을 중역한 것이거나, 그리스어-불어-영어-한국어를 거친 삼중 번역판이었다. 1946년 <그리스인 조르바>가 세상의 빛을 본 지 70여 년, 1975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지 40여 년 만에 최초로 중역이 아닌 그리스어-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것이다.

번역자 유재원은 그리스학에 정통한 전문가로, 그리스 아테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학과 명예교수이자 한국-그리스 협회 회장이다. 오랫동안 카잔차키스의 전 작품을 연구하고, 실제로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행적을 짚어 작품 속 공간까지 살펴온 번역자는, 평생 동안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숨결과 문화까지 담아 번역했다.˝

가장 많이 읽히는 건 이윤기판이지만 모두 근래에 나온 김욱동판, 이종인판과 함께 유재원판이 추가되어 <그리스인 조르바>도 번역의 전장이 되었다(이런저런 번역본을 포함하면 10종은 나와있는 듯싶다). 강의에서 읽어야 한다는 실제적인 요구 때문에라도 각 번역본의 장단점을 검토해보아야겠다. 누군가 대신해주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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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58회째를 맞은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개인적으로는 3년째 예심과 본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이번에도 번역 부분의 심사평을 맡아 적었다. 번역 부분은 올해 공동수상작이 나왔다. 심사평을 옮겨놓는다. 



번역 부문 심사평 "한국사회에서 갖는 현재적 의의에 중점 둬"


올해 번역 부문의 후보작들은 책의 의의나 번역자의 공력을 모두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두 권의 책이 자연스레 경합작으로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 세계사’다. 두 책의 역자가 모두 전문번역가이고 두툼한 분량의 역사서라는 점이 공통적이었다. 번역상인만큼 역자의 번역 경력과 번역 수준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지만, 토론의 중점은 두 책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현재적 의의에 두어졌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1950년대에 집필되어 196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현대사 분야의 고전이다. 저자는 유럽의 세속화 물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복음주의 운동이 반지성주의의 바탕이 되었고, 이것이 20세기 중반에는 반공산주의 열풍(매카시즘)으로도 이어졌다고 본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확장하면 오늘날 트럼프 시대를 낳은 것도 미국의 뿌리 깊은 반지성주의다. 이러한 반지성주의가 비단 미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미국식 복음주의의 세례를 강하게 받은 한국사회도 되돌아보게끔 한다.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라는 부제에 걸맞게 ‘실크로드 세계사’는 고대 종교의 탄생기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실크로드 지역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그렇다고 특정 지역사의 재조명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사’를 표방하면서 저자는 세계사의 중심을 유럽(서방)에서 동방, 정확하게는 서방과 동방의 중간지점으로 옮겨놓는다. 중심을 그렇게 이동시킬 때 세계사의 전개과정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초점 이동과 각도 변경의 효과이며, 이를 통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과 시야도 대폭 확장된다.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실크로드 세계사’는 그 풍부한 내용과 함께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교양서로서 매우 훌륭한 책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최종적으로 어떤 책을 수상작으로 선정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오갔지만, 두 권 모두 수상작으로 손색이 없기에 공동수상작으로 하자는 제안이 쉽게 동의를 얻었다. 두 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1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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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에 들어갈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번역의 탄생>의 저자 이희재의 신작 <번역전쟁>(궁리)이 나왔기에 지나는 길에 광화문 교보에 들렀지만 아직 입고되지 않아 헛걸음했다(헛걸음만 할 수는 없어서 다른 책을 몆권 구입했다).

‘첫단추 시리즈‘로 매슈 레이놀즈의 <번역>(교유서가)도 나왔기에 겸사겸사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이런 걸 묶어서 다루면 주제 서평이 될 텐데, 요즘 그런 글을 쓸 여력이 없다. 특별히 누가 대신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번역전쟁>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을 쓴 저자 이희재는 현재 런던대 SOAS(아시아아프리카대학)에서 영한 번역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에는 번역가로서 말이 제대로 옮겨지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차차 세상 자체가 제대로 옮겨지는지에 의문을 품으면서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번역·해석되고 가공되고 많은 경우 날조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개념도 넓은 뜻의 ‘번역’이라 이름지었다.

’다원주의, 포퓰리즘, 민영화, 인턴, 모병제, 핵우산, 독립국, 홀로코스트…‘ 등 저자가 <번역전쟁>에서 다룬 주제는, 바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한국 사회 전체가 ‘오역’하기 쉬운 키워드들이다. 영국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저자는 ‘말과 언어’를 대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국내외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그동안 꽤 자주 목격했다. 

다원주의를 바라보는 각 국가의 시선들, 진보와 극우의 진정한 의미, 평생직장과 인턴의 이면, 민영화의 진짜 속내, 한국과 그 주변국가의 미묘한 입장들, 카다피와 만델라 등 정치인들의 빛과 그림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마약전쟁과 테러전쟁 등 이 책은 다양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의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연말의 독서목록 가운데 앞자리에 놓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내년 2월의 인문특강 후보로도 다른 두어 권의 책과 함께 검토중이다. 혹은 서평강의에서 다루게 될지도 모르겠다. 교보에서 득템에 실패했으니 다시 알라딘에서나(에서나?)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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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제별 집중독서를 할 여유나 계기를 못 갖고 있지만 그래도 책을 사모으는 건 게을리 하지 않는 편이다. 번역 문제는 지속적인 관심분야의 하나인데 최근에도 챙겨둘 만한 책들이 나왔다. 아침에 식탁에 있는 안미현 교수의 <경계횡단으로서의 번역>(한국외대 지식출판원)을 뒤적이며 적는 얘기다(책의 구성이 탄탄해서 마음에 든다. 놀란 건 글자크기인데 큰글씨책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저자가 독문학자여서 주로 독문학에서의 번역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번역 일반론적인 주제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번역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흥미를 가질 만하다.

얼마 전에는 하야카와 아쓰코의 <번역이란 무엇인가>(현암사)도 나왔고 좀더 세분화된 주제인 번역과 젠더에 관한 책도 나왔다. 루이즈 폰 플로토우의 <번역과 젠더>(동인)이다(테크니컬한 책이 아닌가 싶어서 아직 주문하지 못했다). 안미현 교수의 책에서 한 장이 번역과 젠더에 할애되고 있다. 이 역시도 책을 모아서 읽을 만한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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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아마도 가장 유명한 텍스트일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도서출판b, 2017)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여러 벤야민 선집에 들어 있던 텍스트라 중복 번역이긴 하지만, 여러 이유에서 다시 번역되었으면 했던 텍스트라 반갑다. 지난해 말에는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전기가오리, 2016)이라는 제목으로 이 텍스트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너무 짧은 분량에다가 제목 번역이 번다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현재는 일시품절 상태다). 제목으로는 가장 간결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나는 선호한다.  



새 번역본의 역자 후기에서 역자가 밝힌 번역 동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벤야민 텍스트 중 3판(1939년판)을 정본으로 삼되, 1,2판과의 내용적 변화추이를 반영하고 싶었다는 것. 그래서 새 번역본에는 불어판까지 포함해 네 가지 판본 간의 본문 및 원주 대조표가 들어가 있다. 독자가 연구자들에게 꽤 유익한 참고가 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동기는 기존 번역서들에 대한 불만이다. "기존 우리말 번역본들 곳곳에서 불명료한 표현과 비문, 오역된 문장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데, 예전에 벤야민의 아벨 강스 인용문에 대해 몇 번 지적한 적이 있음에도 번역본들에는 반영되지 않던 터였다(태그의 '아벨 강스'를 클릭해보면 된다). 그 대목을 새 번역본에서는 이렇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아벨 강스는 2017년에 이렇게 열광적으로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도 (만약 그들이 현재 살아 있다면) 영화를 제작할 것이다... 온갖 전설과 신화, 온갖 종교의 창시자, 온갖 종교가... 스크린 위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고, 또 영웅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강스는, 스스로 자각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전면적인 청산 쪽으로 사람들을 권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목의 번역이 교정된 것만으로도 새 번역본의 의의는 충분하다. 기회가 되면 강의 때도 이 판본을 교재로 써야겠다...


17. 04. 23.


P.S. 앞서 언급한 전기가오리판의 번역도 대동소이하다.  

1927년, 아벨 강스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감독으로) 나타나 영화를 제작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신화적 인물,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가 (...) 감광된 필름을 통한 부활을 기다리며, 모든 영웅도 (영화의) 문전에 몰려든다"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물론 그럴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광범위한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영화감독 아벨 강스의 대표작은 <나폴레옹>(1927)이다. 사진으로 보건대 우리가 많이 보던 그 나폴레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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