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3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리더스북, 2013)을 읽고 쓴 것이다. 원제는 '낙관 편향'이지만, 망각이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임희택의 <망각의 즐거움>(한빛비즈, 2013)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주간경향(13. 07. 16) 인간은 왜 무의식적 낙관주의자일까

 

‘당신은 낙관주의자입니까?’란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관주의란 말이 낙관주의의 짝으로 항상 붙어 다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낙관적이고, 또 어떤 사람은 비관적이라는 게 우리의 통념이다. 하지만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에 따르자면, 그러한 통념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 ‘낙관 편향’이란 원제가 말해주는 건 낙관적 편향이 우리의 진화적 본성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핵심 논지는 간명하다. 첫째, 우리가 대부분 낙관적이라는 것.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뇌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 편향을 갖고 있다. 부정적인 결과를 염려할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긍정적인 결과를 따지며 보내는 시간보다 적고, 패배나 가슴앓이를 걱정할 때도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런 편향을 갖는가? 그건 물론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들은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재정계획도 더 잘 짜고, 더 성공한다.” 진화과정에서 낙관주의가 선택됐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여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곧 낙관 편향의 진화는 우리의 건강과 진보의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두 번째 주장이다.

뇌과학자들이 보기에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은 전두엽의 발달에 있다. 기억력과 사고력 등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이 전두엽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서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미래를 내다보고, 자기를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자각 능력과 전망 능력은 생존에 이익이 되지만, 문제는 그 부작용이다. 우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가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예견은 고통과 공포의 원인이지 결코 낙관의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과정에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정신적 시간여행은 그릇된 믿음을 동반할 때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은 긍정적 편향과 함께 발달해야 했다.” 저자가 보기에 인간 종의 비범한 성취는 바로 의식적 전망과 낙관의 결합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낙관 편향이 무조건 우리에게 유리한 건 아니다. 낙관주의에도 적정선이 있으며 과격한 낙관주의는 과도한 음주처럼 우리에게 오히려 유해하다. 일례로 한 설문에서 낙관주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살 것으로 생각합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대개는 기대수명보다 2~3년쯤 더 길게 보았다. 이들을 이른바 ‘온건한 낙관주의자’라고 한다면 한편에는 20년쯤 과대평가한 ‘과격한 낙관주의자’도 있었다. 자기 수명을 과소평가한 ‘비관주의자’는 아주 소수였다.

이들의 행동은 어떤 차이를 보여줄까? 온건한 낙관주의자들은 더 오랜 시간 일했고, 더 나이가 든 뒤에 은퇴하길 원했으며, 더 많이 저축했고, 담배도 덜 피웠다. 반면에 과격한 낙관주의자들은 적게 일하고, 덜 저축하고, 담배는 더 많이 피웠다. 우리 앞의 장애물을 적당히 과소평가하는 온건한 낙관주의가 우리의 지배적 본성이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낙관 편향은 인지적 착각이다. 우리의 낙관적 믿음은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에 대한 시각을 개조한다. 이런 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인 망각까지도 설계했다. 미래에 불운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을 낮추고 결과적으론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어서다.

반면 비관주의자들은 더 일찍 죽었다. 1000명의 건강한 사람들을 50년에 걸쳐 추적 연구한 결과라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 혹은 착각이 심지어는 돈도 더 많이 벌게 한다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은 알고보면 전혀 특이할 게 없다. 우리의 본성이 그러할 따름이다.

 

13.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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