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배송받은 책 가운데 가장 두툼하고 무거운 것은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랜덤하우스, 2010)이다. 책이 배송된 건 추천평을 썼기 때문인데, 나한테까지 청탁이 온 건 이탈리아 음식이나 문화에 내가 무슨 조예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자가 러시아인이어서다. 거기에 '이탈리아 문화와 풍속으로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라는 게 부제여서다.  

 

책은 초고 상태로 봤을 때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모양새로 나왔다. 표지도 영어본이나 이탈리아어본, 혹은 러시아어본보다도 더 나아 보인다. 


<영어본>


<이탈리아어본>  

 
<러시아어본>   

 
<장미의 이름>(러시아어판)

책의 서문은 움베르토 에코가 쓰고 있는데,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가 움베르토 에코의 러시아어 전담 번역자이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판 움베르토 에코가 대부분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작품이란 얘기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 러시아어판으로 '러시아 올해의 번역상'까지 수상한 이후에 에코와는 막역한 관계가 된 듯하다(번역에 까다로운 에코를 만족시킨 셈이니 실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에코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책의 주인공들에게 꼭 음식을 먹인다. 음식을 먹을 때, 독자도 함께 그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가면 다른 그 무엇보다 그곳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탁월한 안목을 갖춘 코스튜코비치는 그녀의 음식여행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가장 신비하고 오묘한 진짜 이탈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고 주저 없이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내가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내게 이탈리아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나라다. 물론 축구의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테의 ≪신곡≫을 읽고 세리에A의 경기를 즐기는 것으로 이탈리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는 그 무엇보다 “파스타와 피자의 나라” 아니던가? 이탈리아를 깊이 사랑하는 러시아 저자의 이 음식기행은 음식 코드가 이탈리아인의 삶의 핵심이자 영혼이라는 걸 알려준다. 이탈리아 지도를 펼쳐들고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성찬을 맛보고 나면, 아마 이탈리아 요리가 그저 단순한 음식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해봐야 피자와 스파게티, 파스타, 그리고 리조토 정도를 아는 처지이지만, 책은 음식만큼이나 음식 이야기를 즐기는 이탈리아 문화의 속살을 이모저모 알려준다.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인 박찬일씨는 이렇게 평했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복잡한 요리문화사를 이토록 감칠맛 나게 풀어낸 책은 없었다!" 하여, 이탈리아 음식 애호가라면 기꺼이 소장해둘 만하다.  

 

10.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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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나라는 아무리 파고들어도 배부르지 않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5-06 23:47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랜덤하우스, 2010)에 대한 소개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저녁 강의를 끝내고 돌아와 간단히 요식을 했는데, 문득 모스크바에서 시내에 나갈 적마다 자주 먹던 스바로 피자와 생맥주가 생각이 났다. 역시나 피자는 이탈리안 피자였는데...    연합뉴스(10. 05. 06)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이탈리아 문화탐방
 
 
로렌초의시종 2010-05-03 21: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나오자마자 주문했습니다~^^ㅋㅋㅋ 작가, 추천자, 주제 모두가 맘에 들어서요~ 일부 주요 지역만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각 지역의 개성을 하나하나 짚어나간 것 같아서 기대중입니다.

로쟈 2010-05-03 21:5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통이시네요.^^

Joule 2010-05-03 21:55   좋아요 0 | URL
이럴 때 괜히 좀 뿌듯해요. 우리나라 책표지가 제일 이쁘네요.

로쟈 2010-05-03 21:56   좋아요 0 | URL
편집도 잘 돼 있습니다.^^

Kitty 2010-05-04 00:03   좋아요 0 | URL
우와 책도 예쁘고 먹는거라(!) 관심이 가네요.
얼른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로쟈 2010-05-04 09:21   좋아요 0 | URL
네, 식욕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

푸른바다 2010-05-04 09:23   좋아요 0 | URL
스파게티도 파스타의 일종^^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서양식 레스토랑은 아메리칸 패스트 푸드를 제외하곤 이탈리아 식당이 유일한 것 같네요. 이탈리아 식당에 몇번 가보기는 했는데 저도 잘 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러시아 인들과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생활해 본적이 있는데 뭐랄까, 아무튼 제가 일상적으로 상상하는 조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돼지비게와 빵, 절인 대구 샌드위치, 구성물을 추측하기 어려운 스프들...^^ 전 그럭저럭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아래 사진의 주인공이 저자인가요? 에코를 만나고 있는 중간 사진 속 인물과 머리 색을 비롯해서 무척 달라 보이는 군요. 들고 있는 책 제목이 러시아 알파벳 세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의미도 궁금하군요.^^

로쟈 2010-05-04 09:22   좋아요 0 | URL
같은 저자입니다. 나이차가 좀 나지만. 러시아어 제목은 <음식: 이탈리아인의 행복>입니다. 이탈리아식당 메뉴에도 '스파게티'와 '파스타'는 따로 배열돼 있어서요.^^

stella.K 2010-05-04 11:17   좋아요 0 | URL
와우, 저도 이탈리아 음식 좋아하는데...
근데 저자가 러시아 사람이라니 흥미롭군요.
더구나 박찬일 셰프가 감수를 했다는 것도 끌리구요.
뭐 추천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근데 문제는 책값이 너무 비싸다군요.ㅜ

로쟈 2010-05-05 10:48   좋아요 0 | URL
저는 더 비쌀 줄 알았어요.^^;

세실 2010-05-04 22: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 표지가 참 세련 되었어요. 님의 추천사가 읽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불러 일으킵니다.
근데 저 분위기 있는 여인이 작가? 멋져요.
서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요~ 무용하셨나???

로쟈 2010-05-05 10:49   좋아요 0 | URL
그런 정보까진 안 나오던데요.^^

Mephistopheles 2010-05-05 11:14   좋아요 0 | URL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이야기라면야....^^

로쟈 2010-05-05 19:04   좋아요 0 | URL
한국도 음식을 즐기는 문화인데, '음식 이야기'는 이탈리아에 못 미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맛집 문화'만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