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교수의 시비평집 출간 소식을 전한 김에, 게다가 Sati님의 부추김에 힘입어 자작시 한 편을 옮겨놓는다. 예전에 마지막 '모스크바통신'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데, 모두 비공개로 돌리면서 지금을 읽을 수 없게 된 듯하다. 말하자면 '리바이벌'이다.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란 제목이 여러 번 반복되는 이 시를 실제로 나는 흥얼거리며 여기저기 걸어다니곤 했다. 자작시로 그만한 쓰임새라면 더 바랄 게 있겠는가.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mis71_300104_1%5B478452%5D.jpg)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잘 생긴 나무들과 눈이 동그랗던 꽃나무들과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던 삶의 품위와 가벼운 멜랑콜리와
그때마다 맛보던 가벼운 페이소스와
또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잘 익은 가지들과 울타리 덩굴장미들과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던 미래의 어느 풋풋한 오후와
그때마다 이마에 맺혀 오던 땀방울과
또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코스모스처럼 떠다니던 한 조각 사연들과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던 한때의 미련과 미련의 부피와
그때마다 붉게 물들어 떨어지던 낮은 탄식들과
또 어느새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마다에
소복소복 하얗게 쌓인 눈과 군데군데 뿌려진 연탄재와
그때마다 뽀얀 입김 속에 그려지던 추억들과
그때마다 눈물나게 아름답던 눈꽃들과
또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늙은 나무들과
비와 바람과 눈감으면 바람 속 숨죽인 먼지들과……
09.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