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코너를 (3주에 한번씩) 연재하게 됐다. 이번주에 첫 꼭지가 나갔는데(잡지는 나도 아직 못 받았다) 제목은 '천한 것과 돼먹잖은 놈의 진화'(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7/08/021162000200708090672010.html)라고 붙어 있다. 나는 '다윈주의 좌파' 정도의 제목을 적어 보냈는데 편집진에서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모양이다. 눈에는 더 잘 띄지만 칼럼의 내용은 그냥 '다윈주의 좌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단 옮겨놓고 분량 때문에 못 적은 말들을 '뒷담화'로 덧붙여놓는다.

한겨레21(07. 08. 09) 천한 것과 돼먹잖은 놈의 진화

다윈주의 좌파? 그렇다, 우파가 아니라 좌파다. 세계적인 윤리학자이자 동물해방론자인 피터 싱어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원제는 <다윈주의 좌파>)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다윈주의 좌파’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 남용과 오류에 대한 교정에서 성립한다. 남용은 ‘사회적 다윈주의’란 이름으로 불린 다윈주의 우파의 것이고 오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전통적인 좌파’의 것이다.

각기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다윈주의 우파와 전통적인 좌파는 다윈주의에 대한 이미지를 공유한다. ‘경쟁에 기초한 적자생존’이라는 이미지다.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란 관점이 공통적인 전제이다. 다만 다윈주의 우파가 보기에 그 이기성은 변하지 않는 본성으로서 구제불능이며, 전통적인 좌파가 보기에 그 이기성은 본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이 경우 그 사회적 관계들을 변혁한다면 본성이란 것은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며 심지어 개조해낼 수 있다). 즉 인간 본성은 변화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믿음을 기준으로 좌·우의 스펙트럼은 나뉘어왔다.

그러한 분류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은 진화생물학이 발전해감에 따라 확인된 새로운 ‘사실들’이다. 다윈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연의 도태 압력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본성에는 경쟁 성향뿐만 아니라 협동하려는 성향 또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개정판) 등에서도 자세히 설명된 것이지만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전략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라는 협력적 전략에 비해 덜 효과적이다(“나 죽고 너 살자”라는 이타주의는 진화되기 어려운 성향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가 아니라면 생존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협동의 진화론’을 주장한 로버트 액설로드 등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게 가장 효과적인 생존전략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휴가철을 맞이해서 피서지 바가지요금을 생각해보자. 피서지별로 ‘바가지요금 근절’을 내세우지만 피서객들을 ‘등쳐먹는’ 바가지 상술이 올해도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숙박업소 상인들은 ‘한철 장사’라는 생각에 화장실도 없는 방을 15만원이라고 내놓고 숙소를 구하지 못한 일부 피서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런 바가지요금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피서객은 봉인가? 적어도 한 해만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장사 한두 해 하는 것 아니다. 그리고 휴가철은 해마다 찾아온다(우리의 진화적 본성은 장구한 시간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차비나 숙박비 생각하면 차라리 비슷한 금액이니까 동남아시아나 해외로 가죠”란 관광객들의 푸념을 볼멘소리로만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윈주의 좌파는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그래서 다윈주의다). 그렇지만 그러한 바탕에서도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약자, 빈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설 수 있다고 믿는다(그래서 좌파다).

흔히 말하기에, 우파는 교양을 따지고 좌파는 품성을 논한다. 우파는 좌파가 무식하다고 욕하고(“천한 것들!”), 좌파는 우파가 돼먹지 않았다고 비난한다(“돼먹잖은 놈들!”).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적대적인 관계만 설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식하고 돼먹은 인간’으로 진화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파적 교양을 기본으로 갖추고 거기서 좀더 나가서 골고루 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평등의 문제를 고민하면 좌파인 거다”(강유원)란 정의를 이어받자면 “다윈주의라는 교양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거기서 좀더 나가서 상호 협력의 문제를 고민하면 다윈주의 좌파가 된다”.

07. 08. 10.



 

 

 

P.S. 시간관계상 '뒷담화'도 간추려놓는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다윈의 대답1>의 번역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윈주의 좌파의 숙제'에 관한 것이다. 이 숙제가 제기되는 것은 싱어의 책이 '다윈주의 좌파'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을 '풀스케일'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최소한 300쪽은 써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윤곽 정도만을 그려놓고 있기에 나머지는 독자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이 문제는 다소 견적이 나올 듯해서 나중으로 미루어놓고 번역 문제만을 언급해둔다.

 

이미 이덕하님도 지적한 바 있지만(http://blog.aladin.co.kr/718825194/1482017), 국역본은 이런저런 오역/오류들 때문에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준다. 바쿠닌의 책 <국가주의와 무정부성>(1873)을 마르크스가 이듬해인 1874년에 읽고서 코멘트를 붙인 대목들을 싱어는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국역본에서는 바쿠닌의 첫문장부터가 잘못 번역됐다.

"국가 지도자들과 대표들이 주장하는 전체 인민에 의한 보통선거권.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 진영과 민주주의적 진영에서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슬로건이다."(11-12쪽) 원문은 "Universal suffrage by the whole people of representatives and rulers of the state this is the last word of the Marxists as well as of the democratic school."(3쪽)

문제가 되는 건 'last word'의 번역이다. 이덕하님의 지적대로,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엉터리 번역이다. last word최종 발언, 유언, 결정적 발언을 뜻한다. 바쿠닌은 결국 마르크스가 내세울 것이 보통 선거권밖에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나대로 다시 옮기면, "전체 인민의 보통선거를 통한 국가 대표자와 통치자의 선출 - 이것이 민주주의 진영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끝마다 내놓는 구실이다."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이 주장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나 민주주의자나 '국가주의'라는 틀안에서는 똑같이 '대의제'를 명분으로 독재를 한다는 것이고(가령 북한의 정식명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들은 그걸 '보통선거'에 의해서 정당화한다는 것이다('대중독재'란 말이 이 경우엔 적절하겠다. 우리가 왜 독재냐? 대중이 우리를 뽑아줬는데?). 이런 식의 정당화에 대한 바쿠닌의 비판은 이렇다: "이 슬로건은 소수 지배자들의 전제정치를 교모히 은폐시키는 거짓말이며, 자신들의 지배를 소위 전체 인민의 의지의 표현인 것처럼 가장한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한 거짓말이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신랄하고 예리한 비판: "일단 국가라는 저 높은 곳에 안착하게 되면 그들은 노동자들이 사는 속세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인민을 대변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대변할 것이다. 그들은 인민들을 지배, 통치하려고만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12-13쪽)

이러한 바쿠닌의 우려에 대해 마르크스가 붙인 코멘트: "바쿠닌 선생이 노동자 협동조합에서 관리자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어떤 건지를 조금만 이해했더라도, 권력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과 악몽은 갖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저자 싱어가 바쿠닌이나 마르크스에게는 미래의 세기였지만 이젠 과거가 돼버린 지난 20세기를 돌이켜보며 내린 결론: "지난 한 세기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했던 정부들이 위의 논쟁에서 마르크스가 한 말이 틀렸고, 바쿠닌이 가졌던 '권력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과 악몽'이 섬뜩할 정도로 예언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13쪽) 당신 또한 이러한 판단에 동의한다면 <다윈주의 좌파>는 일독의 가치가 있다...


댓글(14) 먼댓글(2)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로쟈님? 저기 "한겨레21" 에...
    from 당신과 나의 침실 2007-08-12 17:39 
    어... 제가 이번 호 <한겨레 21>을 읽다보니 로쟈님 칼럼이 있어서요 ^^; 저만 모르고 있었나??? 축하드립니다. ^-^)/ 저는 언제쯤 <오마이섹스> 같은 칼럼 좀 연재하는 영광을 누려볼 수 있을까요? :)     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7/08/021162000200708090672010.html 로쟈님의 칼럼입니다. 저처럼 궁금
  2. [펌]다윈주의 좌파?
    from 영혼의 아까징끼 2007-08-13 14:17 
    '로쟈'라는 아이디는 눈에 익다. 예전에 그가 쓴 서평을 몇번 읽어본 적이 있었고 날카로운 시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에서 꽤 유명한 소위 '스타급' 서평자라는데, 공부하는 분인 듯(러시아문학 같다) 하다. 얼마 전부터는 『한겨레21』에 칼럼도 쓰나 보다. 아래의 글은 그가 『88만원 세대』에 대해 포스팅한 글인데, "저자들의 입장이 다윈주의 좌파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 흥미롭다"고 말한다. 그가  다윈주의 좌파에 대해...
 
 
2007-08-11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11 09:14   좋아요 0 | URL
숨은 공로자가 따로 있었군요.^^

2007-08-12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7-08-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21 정기구독 신청해야 되는건가요? 축하드립니다..^^

수유 2007-08-1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모로 좋은 일입니다^^ 축하해요~~~

nada 2007-08-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한겨레21 구독 안 해도 로쟈 님이 페이퍼 써 주실 거죠?
근데 3주에 한 번이라니.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좀 더 부지런해지세요. 딱! (채찍질! -_-)

philocinema 2007-08-1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구독해오던 한겨레21을 지난주를 끝으로 구독중지 했는데, 로쟈님이 혹시 그 사실을 아셨던가요? 절묘한 타이밍에 첫글이 실리셨군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고민이네요. 구독연장과 중지지속 사이에서...

허리우스 2007-08-1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카드립니다. 로쟈님 때문에 한겨레21을 다시 사보아야겠군요. ...ㅠㅠ 요즘 긴축경제인데 기대만땅입니다.

로쟈 2007-08-1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공연히 '부담'을 드린 건가요?^^;

비로그인 2007-08-1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 뒷북이네 -_-;;;

로쟈 2007-08-12 17:50   좋아요 0 | URL
지대로 뒷북이십니다.^^

마늘빵 2007-08-14 22:07   좋아요 0 | URL
난 더 뒷북. -_-

다락방 2007-08-1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쩐지 저도 정기구독을 해야할것 같은 느낌이 ^^
축하드려요 :)

로쟈 2007-08-12 23: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정기구독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