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당연히 국가를 상징합니다. 특히 외국에 나가서 우리의 태극기를 보면 왠지 모르지만 가슴속이 찡~해지면서 코끝도 덩달아 찡~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  국내에서는 저녁 6시만 되면 방송이나 공공기관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던 하기식 방송이 사라진지 오래이고 파출소나 공공기관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지는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던 태극기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운동장에서 또는 거리에서 흔하디 흔한 상품처럼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또는 이마에 태극 문양이 담긴 머리띠를 질끈 동여메고 우리 나라를 응원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대단한 애국자인듯 뿌듯한 가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 그런데, 한가지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녁 6시에 관공소에서 태극기를 내리던 행사는 왜 없어졌는지를 알아본다면....그리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해 태극기의 손상이 우려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시 계양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를 한번쯤을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묶었던 사슬에서 와장창 해방된듯한 기분에 젖어 들었을 때, 국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발생을 했습니다. 그것은 저녁 6시에 방송에 맞춰 시행되던 관공서의 하기식 행사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는 하기식에 참석을 했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아무런 꺼리낌없이 그냥 남의 집 개가 짖는 정도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3. 파출소에서는 방송에 맞춰 하기식을 하며 파출소에 있던 경찰들 모두가 국기봉 앞에 집결하여 하기식 동안 경례를 하던것이 이제는 시간만 되면 한사람의 경찰만이 태극기를 내려서는 접어들고 파출소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것이 자꾸 언론에 보도가 되자 정부에서는 이 판에 하기식이고 뭐고 그냥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속 게양을 하자! 라는 발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을 열창하던 국민들의 행사가 끝난 다음의 거리 풍경을 보면 과연 우리가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에 대해 얼마만큼의 존귀성을 부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행사가 끝난 후 그 바닥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널부러진 태극기의 잔해가 그득했습니다. 세탁을 해서도 사용하지 않도록 되어 있을만큼 그 존엄성을 인정받았던 태극기는 이제는 행사시에 잠시 사용되는 일회용 도구로 전락해 버린것이었습니다.

4. 저는 가끔 외국에 나갑니다. 그것도 개인 자격이 아니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인솔하고 말입니다. 왼쪽 가슴에는 우리 태극기가 달려 있고 뒷 등판에는 <KOREA>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츄리닝을 입고서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이던 우리는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각국의 선수가 다 모인 자리에서는 각 나라의 국가가 어느정도로 인식이 되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등의 국가들은 유니폼 자체를 자국기를 이용하여 디자인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국기에 담긴 색(주로 띠로 이루어진 국기에 들어간 색입니다)을 유니폼에 최대한 살려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자기나라 국기를 저렇게 함부로 사용하지?"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그런 디자인은 국기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훌륭한 활용사례인 것이었습니다.

5. 미국 국기는 옷에도, 그릇에도, 간판에에도 들어가는등 정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국기를 생활속의  용품에 다양하게 접목하여 디자인화 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조기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국기에 대한 모독을 가장 엄하게 다루는 나라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이듯이 정말로 국기에 대한 모독행위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분노하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기가 바로 국권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합중국이라고도 불리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하는 미국내에 어느인종을 막론하고라도 널리 퍼져있는 인식이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성조기를 불태운다던가 하는 행위는 그 행위 자체를 미국에 대한 도전이요 파괴 행위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6. 중부고속도로...  충무깃점 334km  상행선 우측편에는 3층 높이의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중부고속도로와 직각으로 놓여진 형태로 북쪽은 하행선이 잘 보이고 남쪽은 상행선이 잘 보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 옥상의 남쪽과 북쪽 면 한 가운데 우리의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낮에뿐만 아니라 밤에는 잘 보이도록 불을 밝혔는데 특히 밤에는 태극기가 마치 액자에 담겨있는 것 처럼 잘 보입니다. 건물에 태극기가 걸린 경우가 일반적이기에 이렇게 옥상위에 담과 같은 넓은 평면을 마련하고 태극기를 그린 경우는 저로서는 처음이기에 무척이나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말로만 애국을 부르짖으며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보도될때면 저는 이곳을 지나면서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자문을 하면서 이 태극기를 봅니다. 아마 정상 주행을 하는 차량이라면 길게는 2~3분 정도 볼 수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사간...태극기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가 궁금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런 태극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치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옥상에 태극기를 그릴 생각을 한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도 궁금해 집니다. 그분이 어떤 의도로 태극기를 그리게 되었는지 그 연유도 알고 싶고요...  일회성으로..또는 단순 행사용품으로 전락해버린 우리 국권을 상징하는 태극기...  그 태극기를 옥상에 그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든 분.... 과연 어느것이 정상인지...혼돈의 세상속을 살아가는 삶 속에서는 좀처럼 가늠하기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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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던 곳에서 도심속에 자리잡고 있는 봉원사(koex 앞의 절) 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곳의 2층이 제 사무실입니다. 12만 여평의 대지중에 유일하게 제 사무실 가는곳은 전북 부안의 내소사 입구처럼 양쪽으로 커다란 소나무, 플라타나스, 떡갈나무 등등이 늘어선 길을 따라 500m 남짓을 들어간 호젓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 여러 가지 마음이 아파야 했던 일들이 정리되고 이런 호젓한 곳에서 시간이 나면 책이나 볼 기회를 갖게 된것이 제게는 늘 원했던 일이라서 나름대로 만족을 하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보면 구리  판교간 고속도로의 남한산성 램프와 수서 분당간 도시고속 도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주 멋진 곳이지요. 단 한가지 흠이 있다면 창문을 열면 차량이 질주하는 소음이 조금 귀에 거슬리는 정도이지만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듯 하답니다.

3. 제가 이 사무실로 옮긴것은 지난 4월 26일 이었고 그날은 마침 비가 내리던 날이라 비록 약간의 흙이 차바퀴에 뭍어도 숲길은 새로운 생명의 보금자리인냥 그렇게 푸르게 가슴속에 다가왔었고, 흐느적 거리는 봄 비 마져 저를 반기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창문의 방향이 서남향이라 비교적 오후의 햇살을 많이 받을것 같았으나 비가 오는 창문을 통해 바라다 보는 도로의 모습은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4. 지난주중에는 정말 날이 좋았지요....  봄 날씨 치고는 덥다고 느낄 정도로 화창한 날이기에 두개의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습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사무실을 가득 메우는 느낌으로 왠지 상큼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제 일을 하며 시간이 조금 흘러가면서 저는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거름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나는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저는 단지 어디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거름을 주나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5.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러 가자고 사무실 직원이 왔길래 방문을 나서면서 " 참 좋다, 조용하고...서울 시내에 이렇게 절간 처럼 조용한 곳이 우리 부대속에 있었던것을 몰랐었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으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역시 예의 그 거름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무슨냄새지?  거름 냄새 같기도 한데??" 라고 일행에게 말하자 "아...그건 바로 저기 있는 밭에서 나는 계분 냄새입니다" 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5. 가만히 아래쪽 담장 넘어를 보니 도로와 사무실 사이에 담장을 벗하여 작은 밭이 있는데 고랑이 파여있고 열병하듯 비닐로 덮여있는 밭 이랑 가운데에 동그랗게 공간이 나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무슨 채소인지는 모르지만 봄이라서 파종을 하고 계분을 뿌린 모양이더군요. 제가 처음 창문을 열었을 때는 냄새를 느낄 수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후각이 마취가 되어 잘 느끼지 못했던 냄새는 바로 계분 냄새였던 것입니다.

6. "에고...어쩐지 경치가 좋다 했더니 망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맴돌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듯 " 봄에는 잠시 냄새가 나는데 채소가 자라고 풀이 무성해지면 냄새가 사라져서 괜찮아집니다" 하는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송화가루가 이리저리 날리는 봄 동안에는 맡아야만 한다는 말이겠지요.

  오늘은 서울 시청앞에 녹색광장이 마련되어 시민 누구나가 그 공간에서 마음껏 자연을 만끽하게 된 날입니다. 아직은 분수와 잔듸가 전부이지만 이제 나무도 심어 제대로 가꾸게 된다면 센트럴파크 처럼 아름다운 도심속의 공원이 되겠지요. 비록 계분 냄새가 난다고 해도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호젓한 숲길을 걸어 사무실에 이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길섶 좌우에는 할미꽃을 비롯하여 민들레가 하얀 덩어리를 만들고( 민들레중에는 흰색, 노랑색만 있는줄 알았는데 빨강색 민들레도 보았습니다) 산딸기가 노란 꽃을 피우고는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열매를 주마'고 이야기 하는 듯한 숲길...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릴수 있음은 제게는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제 사무실 지역을 <체육부대 속의 조계사>로 명명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독립건물이 호젓한 숲속에 있으니 마치 절과 같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깟 계분이야 자연에서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우리의 냄새이고 일부러라도 맡고자 하는 냄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손님이 제 방을 방문 했을 때 계분 냄새를 맡으며 커피건 녹차건, 생강차건 차를 마신다는것이 정말 잘 어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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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정말이지 누구를 초청하기 전에는 제 방에 들리는 사람들이라고는 결재를 위한 사무실 사람들 뿐이랍니다. 특히 독립건물로 입주 인원도 극소수인지라 막말로 도나 딲으면 될성 싶습니다. 계분은 바로 인근의 꽃단지에서 필요로 하여 만들고 있는 퇴비라고 하는데 자꾸 맡다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해 진것 같습니다. 어디...서울에서 이만한 공간을쉽게 갖을 수 있겠어요? 이마저도 제게는 행운이 아닐까 합니다.
 

1. 제가 거처하고 있는 곳은 소위 말하는 "원룸"입니다. 말이 원룸이지 침실과 거실, 그리고 주방이 분리되어 있는 "쓰리룸"이라 혼자 머물기에는 비교적 공간이 넓은 편입니다. 부대내의 독신숙소를 써도 되지만 공부하는 책이 많은지라 부득이 원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라야 주말은 집에가고 없고, 낮에는 사무실에 있어 없으니 결국은 저녁 시간부터 아침 출근시간 까지의 공간인 셈이지요.

2.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라선지 유난히 광고물이 많이 나붙습니다. 음식점 광고는 주로 자석식으로 성냥갑 크기만하게 만들어져 출입문에 덕지덕지 붙어 있어 퇴근하고 들어가면서 띠어서 들어 갑니다. 얼마나 많은 광고물이 들어오는지 계속 모아 보았더니 자그마치 한뼘 높이만큼이나 쌓였습니다. 물론, 같은 집도 수 차례씩 가져다가 붙이는 경우도 있답니다.

3. 그런데 진짜 골치가 아픈것은 열쇠수리점 광고 입니다. 열쇠 수리점 광고는 주로 은박에 인쇄된 부채모양인데 키 구멍 주변을 동그랗게 감싸는 형태부터 문 손잡이 부분을 둘러치는 광고등 다양한데 이 광고물은 제거를 해도 하룻만에 열 대여섯개가 새로 붙는다는 거입니다. 자석식과는 달리 접착식으로 되어있어 띠어 내기도 쉽지가 않아 매번 제거작업을 하다가 지금은 거의 무관심속에 놔두고 있습니다. 퇴근할 때 키를 열기위해 문을 보면 이런 광고지가 아파트의 층처럼 손잡이를 중심으로 아래 위로 층을 이루며 붙어 있습니다. 저는 원래 있던 손잡이에 보조키를 하나 더 달아서 두개의 잠금장치를 사용중이라 더 이상의 잠금장치가 필요없음에도 잠금장치를 더 달라고 광고물을 붙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겠더군요.

4.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경쟁이라고 이제는 상대 업체의 광고물 위에 자기네 가게의 광고를 붙이는 것입니다. 특히 문고리에는 먼저 붙어 있던 광고지를 제거하고는 떡~ 하니 자기네 광고를 붙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열쇠 가게가 있는지 자세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열쇠가게가 있는것 같고, 원래의 광고지 위에 덧붙인 덕에 제거하기는 훨씬 쉬워졌습니다. 문을 열 때 마다 바뀌는 광고지를 보면서 '오늘은 어느 가게가 안보이네...새로운 가게의 광고지가 붙었네...'라고 속으로만 느낍니다. 수도 없이 붙었다 사라지는 광고물...그 광고물을 이제는 제거하지 않으렵니다. 제거한다고 해도 어느새 자리잡고 있는 광고지들...그리고 제거하고 나면 오히려 붙이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광고지 붙이기가 더없이 좋아 보일것이 뻔하기에 차라리 매일 바뀌는 광고지를 감상하렵니다. 그러다가 몇 겹씩 위에 덧붙여지면 그 때는 제거하고....이 동네에서는 이것은 끊이지 않는 전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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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단은 절에서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조성된 단상을 이야기 합니다. 아무래도 숭배의 대상이다보니 사람의 눈이 조금은 올려다 봐야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불상은 단상에 올라 있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이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수미단은 약간의 조형성을 가지고 꾸며지고 있습니다. 그냥 밋밋한 널판지로 만든다면 조금은 불경스럽기도 하지만 원래 연꽃으로의 탄생(연화생)을 이야기 하기에 불단도 아름답게 장엄(장엄이란 존귀한 분을 모시기 위한 꾸밈을 말하는 불교적 용어입니다)하고자 합니다.

 1. "불교와 문화"라는 책을 발간하는 불교 진흥원에서 경북 청도시 하양읍에 있는 환성사의 수미단 촬영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잠시 쉬는 중이라 시간도 있고 널부러진 마음도 추스릴겸 혼쾌히 승락을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경산 I/C 에서 내려 하양읍에 도착 하였습니다. 출발전에 "環城" 이라는 의미를 곰곰히 새겨 보았습니다. 성이 빙 둘려져 있다는 의미인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절 입구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의 수미단은 우리 나라에서도 꽤나 알려진 아름다운 수미단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저도 20여년전에 찾았던 기억이 있던지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그 동안 집들도 들어서고 새로운 길도 뚫려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물어가면서 절을 찾았습니다.

2.  절은 마을 뒷산을 조금 더 올라가서 있었습니다. 매번 사찰을 찾을 때 마다 느끼는 것입니다만, 전국 대부분의 사찰은 아주 명당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에는 숲속에서 새가 노래를 부르며, 가끔 산 허리를 감도는 바람결에 수행승이 졸지 말라고 풍경이 댕강~ 댕강~ 울리는 곳....  이런 곳에 자리잡은 사찰이니 그 자리잡은 곳마다 명당이요 명당에 자리 잡으니 바로 명찰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절 앞에서 둘러진 산을 한바퀴 둘러보니 역시 산 능선에는 석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절을 둘러쌓고 있는 성을 환성이라고 했던 모양이며 마치도 그 한가운데 움푹 분지처럼 들어간 너른 마당에 절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3. 미리 이야기를 했는지 스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아직 초봄임에도 꽃은 왕벗꽃이 만개해 있었고 어디서 왔는지 요즘은 쉽게 볼 수 없는 호랑나비가 꽃위에 앉아 느릿느릿 날개짓을 하며 꿀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환성사는 오랜 옛적에 40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생활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사찰의 모습은 대웅전을 비롯한 몇개의 초라한 모습이지만 임진왜란 때 까지는 매우 번성했던 사찰이었음은 그곳에 남아 있는 많은 석축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절의 앉은 형태는 부석사의 형태를 그대로 옮겨 놓은것 같았는데 불행하게도 지금은 겨우 대웅전만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남아 있어 예전의 영화는 불에 그을린 장대석(집을 짓기 위해 축대 처럼 쌓아 올린 석축)으로만 느껴야 했습니다.  부석사와 형태가 같다는 것은 불교에서의 극락을 구품으로 나누어 맨 마지막에 극락에 이르는 형태로써 매 품마다 그 격을 달리하여 사찰을 계단식으로 지은것인데 부석사에는 이런 형태로 힘들게 계단을 올라 안양루 밑을 통과하면 극락인 무량수전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환성사도 이와 같은 형태로 지어졌음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4. 이곳의 수미단은 전면에는 12개의 목조각상이, 그리고 양 측면에는 각각 4개의 조각상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장식되고 있습니다. 높이 두 자, 길이 한 자 의 액자 형태에 들어가 있는 목조각은 원숭이가 과일을 바치는 형상, 극락조가 과일을 따는 형상, 연꽃 이나 연잎 밑에서 유유자적하는 물고기 등등 비교적 회화적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는 조각장식인데 그 조각의 세밀함이 무척 높은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끔 원숭이나 코끼리도 등장을 하는데 실제로 본적이 없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린듯 실물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런대로 제법 ~답게 조각되어져 있습니다.

5. 이 대웅전은 16세기에 지어진 대웅전으로 단청 또한 초기 건축 당시의 단청이 남아 있고 중간에 한번 보수를 했는데 "땜단청(이는 기존의 단청을 벗겨내고 새로 단청을 하는것이 아니라 퇴락되고 박락이 심한곳 위주로 원 그림위에 덧칠하듯 단청을 하는 일)"이었으며 시간이 경과하여 땜단청은 모두 퇴락하여 벗겨졌고 오히려 원래의 단청이 은은하게 도채되어 있었습니다.  기왕 이곳까지 온것이니 단청도 찍자고 하여 스님께 허락을 받고 수미단 위로 올라가서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경배의 대상이 되는 불상이 있는곳에 올라가는 것을 스님들은 매우 싫어 하십니다. 비단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 처럼 단상은 모두들 신성한 지역으로 여기지만 학술자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해 주시는 편이며 이런 경우에는 상당히 조심을 하여 작업을 하게 됩니다. 어느 경우에는 부처님 등판에 엉덩이를 기대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때는 힐끗 스님의 얼굴을 한번 처다보게 되는데 그 때 마다 스님들의 얼굴은 무척 곤혹스러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6. 우리 문화재는 70% 정도가 불교 문화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지정된 문화재의 경우이고 오랜동안 불교속에서 생활을 했기에 우리 문화재가 불교와 떨어져서 발전한 것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고 그러다보니 지정 비지정 문화재의 90%는 모두 불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술사학의 대부분도 이런 이유로 불교 조형물과 밀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데 그나마 다행인것은 대부분 방치될 수 있는 상황이었슴에도 사찰에서 관리하고 보존하여 오늘날 우리 문화재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석굴암에 갔는데 기독교 신자이신분이 우상이기에 관람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시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는 어떤 특정 종교의 이해관계와 관련지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냥 단순하게 문화재적 가치만 보시면 되는 것이기에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지정하는 사람은 바로 기독교인인 코쟁이 아저씨 였습니다. 종교를 대입한다면 당연히 지정에서 제외가 되었을것이 아닐까요?  문화재를 구태어 타 종교의 숭배의 대상이기에 관람을 거부하는 행위는 배타적이고 편협한 마음에서 나오는 무지의 소치가 아닐까 합니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문화재에 담긴 역사적 의미나 공예적 예술성을 위주로 감상하신다면 마음속에 담긴 거부감을 어느 정도 누그려 뜨릴 수 있을 겁니다.

7. 사진을 촬영하면서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원래가 실내에서 찍는지라 어두운것은 당연하지만 후래쉬를 사용하는것과 그냥 자연광에서 촬영하는 사진은 그 느낌이 완연히 다르기에 저는 주로 자연광을 이용하는데 이럴 때는 당연히 삼각대를 사용하여야 하는데도 평시에 2초 정도는 움직이지 않고 촬영을 해 왔던지라 맨손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는데 나중에 현상을 하고 보니 예닐곱장은 흔들린 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로 자만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시 촬영을 하려면 그 먼길을 또 다녀와야 하는데...   다행히 큰 카메라 말고도 35mm로도 찍어서 흔들린 사진은 작은 필름으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8.  산사에서 저녁 공양을 하고 가라는 스님들의 말씀을 뒤로하고 절을 떠나 하양읍에 접어드는데 비가 올것 같았던 하늘에서는 구슬 크기만한 우박을 던져대기 시작을 했습니다. 차 앞창에는 유리가 깨질듯 두두둑 거리며 우박이 쏟아지고...저는 우박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려고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갔다가 2대의 우박으로 어깨를 맞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더군요. 하늘 높은 곳에서 중력에 의한 가속도까지 더해서 떨어지니 맞은 어깨가 아플 정도로 충격이 심했습니다. 뉴스로는 여러번 우박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보았지만 실물을 본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런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하늘에서 쏟아지니 당연히 비닐하우스나 연약한 채소는 상처를 입게 되고 농민들은 매정한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불교와 문화" 5/6월 합본호는 6월 초에 발간이 됩니다. '테마가 있는 문화 산책'이라는 코너로 곽동해 교수가 글을 씁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나중에 참고로 하시기 바라며, 제가 찍은 사진은 나중에 스캐닝 작업을 마치면 이 글에 첨부토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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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처님 등판에 엉덩이를 기댈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셨네요. ^^

 

오랜동안 이곳에 들리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깊은 좌절도 맛보고 정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의 극치가 무엇인지도...또 그것을 여과없이 받아 들이는 사람의 행태도 느껴 보았습니다.

 단 하나 확실한것은 일이 종료되고 나서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고 사과를 한다해도 그 이전에 마음속 깊이 남겨진 상처....  갈갈히 찢겨진 가슴의 상처는 남는다는 점입니다. 사과는 단지 순간의 위로와 제대로 알게 된것에 대한 현실일뿐 이미 셀 수 없는 조각난 가슴의 상처는 다시 꿰맨다 해도 조각조각이 이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울분으로...그리고 나중에는 연민으로 변하는 제 마음을 보고 아직도 모질게 세상 살기에는 적합한 삶이 아니라는것을 느꼈고, 단지 쉽게 오지 않는 오랜 기간의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으며 그나마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도 된듯 합니다.  제가 오랜 잠행에서 돌아왔을 때, 잘못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며 "왜? 해명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릿속에...그것도 귀가 얇은 사람의 뇌에는 해명이 단지 변명으로 들릴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스스로 모든것을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 주변의 일이야 제 가슴이 찢어지든 아니든 저에게 국한된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어떤 연유로든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뭉개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답답함만 낳게 될 것이니까요....  오랜 잠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님들의 글을 읽으며 제 자신이 참 게으르다는것을 느낍니다. 이제 다시 활발하게 이곳에 오렵니다...많이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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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4-3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수수께끼님이 보이지 않아 걱정을 했습니다. 어째든 문제가 끝났다고 하시니, 좋은 모습으로 서재에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Smila 2004-04-3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행^^을 마치셨다니 기쁩니다. 마음의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랍니다!

가을산 2004-04-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이 많으셨나봅니다. 침잠 기간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서재에서 훌훌 털어버리세요.

저는 어떤 일을 당할 때 당장은 마치 마취된 것처럼 무감각하게 지나가는듯 하지만, 위기가 지나가면 마취가 풀린 것과 같이 비로소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통증'은 여러 가지 감정과 정서를 의미합니다.
군인처럼 남성다움과 인내, 감정의 억제 등의 덕목을 요구받는 것에 익숙해진 분들은, 겉으로는 회복되어도 속에 남는 상처는 오히려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꼭 '환기' 시켜버리시기 바랍니다.

프레이야 2004-05-0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보이지않아 바쁜 일이 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마음의 상처 훌훌 날리시기 바래요. 서재에서 님의 좋은 글 다시 자주 만나기 바래요.^^

비로그인 2004-05-0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님들의 격려 말씀에 마음의 상처도 씻은듯 다 나아지는것 같습니다. 언제까지고 머무를수 없기에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사무실이 2층이고 바로 창문 곁에는 소나무 가지가 손에 닿을듯 가까이 있는데 바람이 불 때 마다 약간씩의 송화가루를 날리는데 저는 한꺼번에 다 날려 버릴께요.. 걱정해주신 님들께 감사드리며 예전 처럼 제 자리에 정좌를 하고 차 한잔속에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