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 문화재를 대하면서 의문이 가는점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학설을 따르기에는 무언가 조금 석연치 않는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와 관련된 학설은 실증사료와 문헌사료가 일치 될 경우에는 그대로 누구나가 인정을 하는 편입니다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학파(학파라고 해야 특별한 것이 아니고 출신 학교에 따라 약간의 특색이 나타나는데 이런 경향은 주로 스승의 주장을 대체로 수용하기 때문입니다)에 따라 다소 다른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알쏭달쏭 문화재 이야기"에서는 기존의 정설로 알려진 학설에 대한 의문으로 출발하는 조금은 엉뚱한 접근 방법으로 접하는 문화재에 관한 이론(異論)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첫번째가 '정림사 5층탑이 먼저냐? 미륵사지 탑이 먼저냐?' 입니다.  정림사지 5층탑은 국보 제 9호로 부여의 정림사지에 있는 탑으로 일반적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재료가 변한 첫 번째의 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미륵사지 석탑은 익산에 있는 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하는 과도기적 탑으로 알려져 있는 탑입니다. 이 두 탑을 두고 학자들의 의견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돌을 나무처럼 다듬어서 만든 탑이 미륵사지 석탑이며, 정림사지 석탑은 이런 과정을 거쳐 확실하게 돌로 만들어진 탑이라는데 대체로 동의를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의 건립년대는 사비성으로 백제가 천도를 하면서 왕사(王寺)에 지은 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시기적으로 7세기 초반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나 미륵사지 석탑은 무왕이 건립하였는데 무왕은 서동왕자의 전설을 낳은 왕이며 그의 아내인 선화공주와 이곳을 지나다가 나타난 미륵사존을 보고 공주가 절을 세울것을 간청하여 절을 세우고 조성한 탑으로써 시기적으로는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인 7세기 중반에 건립 되었습니다.  우선 건립 시기를 놓고 봐도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보다 조금 앞서는 시기 입니다.  또 정림사지 오층탑은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정벌당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탑으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 탑에 백제를 평했다는 글(大唐平濟國碑銘)을 새겼기에 한동안은 이 탑이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세운 탑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이미 건립된 탑에 명문만 새긴 것입니다.

  이 탑이 목탑에서 석탑으로의 번안한 첫 번째 탑이라는 주장은 우리 나라 미술사학의 태두라고 일컬어지는 又玄 高裕燮 선생의 연구에 의해서 입니다.  8.3m의 거대한 이 5층탑은 백제탑의 기본이 되는 탑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 11호로 남아있는 층수는 6층인데 그 높이만 14.25m나 되는 우리 나라 최고의 탑입니다. 미륵사탑을 정림사지 석탑보다 앞 선 탑으로 보는 견해는 석재의 형태로 구분을 해서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석재를 나무와 같은 판석으로 만들어 탑을 조성하였고, 정림사지 석탑은 완전한 석탑의 형태로 조성을 하였기에 당연히 양식적으로는 목탑---->나무판 처럼 다듬은 석재로 만든 석탑--->완전한 석재로 만든 석탑의 순서이기에 미륵사지 석탑이 앞선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비 천도와 동시에 만들어진 정림사지 석탑이 그 후에 만들어진 미륵사지 석탑보다 후대의 양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모순이 되는 셈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부분에 의심을 가지면서도 뚜렷한 해답을 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는 제가 보기에는 양식적인 측면을 무시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분명,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앞선 시기에 건립이 되었으면서도 양식적인 면에서 후대의 양식이라고 나중에 건립된 탑으로 보는것은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는 견해는 두 탑은 그 용도에 따라 달리 만들어진것이지 결코 양식에 의해 건립시기를 따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단지 탑내에 사리만을 안치한 탑이라는 것이며, 미륵지사지 석탑은 분명 탑에 사람이 들어가거나 올라갈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륵사지 석탑은 가운데 기둥으로 삼는 심주(芯柱)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는 법주사의 팔상전 처럼 가운데 부처를 모신다거나 또는 상층으로 오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건립 시기가 앞서는 정림사 5층석탑은 분명 후대 양식인것이 분명함에도 먼저 만들어 졌고, 나무판처럼 석재를 다듬어 만든 미륵사지 석탑은 양식으로 보아서는 분명 정림사지5층 석탑보다 앞서는 양식임에도 건립 시기는 정림사지 5층석탑보다 나중에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단지 양식만을 가지고 따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 미륵사터에는 기존에 서 있던 서탑의 반대편에 서탑을 모방한 동탑이 나무를 다듬은 것 처럼 석재를 다듬어서 최근에 건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세월이 흘러 1천년이 지난 후, 단지 양식적으로 앞선다고 해서 새로 지은 석탑이 통일신라의 석가탑보다 앞선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양식만을 따진다면 새로지은 동탑이 지금보다 1400여년전에 만들어진 탑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처음 정림사5층 석탑을 연구한 우현 선생의 연구결과에 너무 심취하여 자칫 건립 목적을 망각하여 양식에만 치우친 판단으로 시기적으로 앞 선 탑을 발전 양식이 아니라고 하여 후대의 탑이라고 하는것은 마땅치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론은 정확한 문헌적 근거가 없는 정림사지의 건립연대에 의문을 가질수도 있지만 정림사지 5층석탑이 사비 천도와 동시에 건립되었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를 하는 편이기에 두 탑의 건립 시기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는 않지만 양식적으로만 학계에서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 후대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더 많이 이루어져 정확한 건립 순서를 밝혀야 하겠지만, 선학이 연구한 결과를 생각없이 받아들여 현재까지도 그 이론에 대해 다소 의문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이론을 펴지 못하는것은 아까 말씀드린 학파의 이해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은 다소 엉뚱한것 같지만 용도에 따른 건립이라는 문제도 좀 더 깊이 있게 받아들여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익산의 왕궁리에 있는 5층탑은 고려시대에 백제탑을 모방하여 만든 탑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 역시 일부에서는 백제탑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서로간의 이해 관계를 떠나 정확하게 학문적으로 판단을 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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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6-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한 마음에 선물 드립니다.



비로그인 2004-06-0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수수께끼가 빠지면 어때요? 정말...누구라도 이곳을 찾는 알라디너의 별명으로 그런 멋진 소설은 쓰지 못할것입니다. 사실...눈이 빠져라 "수수께끼"라는 4 글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조금은 서운하고, 역시 알라딘의 찬밥(?)이구나...라며 자조하고 있었는데, *^^* 수수께끼는 끝까지 수수께끼여야 더 재미있고 좋은것 같더군요. 그리고 절대 섭섭한 마음은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자주 찾는 서재가 아니라면 당연히 존재도 쉽게 떠 오르지 않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된다고 봅니다. 저도 이곳의 수많은 서재를 다 돌아다니지는 못하거든요. 겨우 100여개만 알방구리 드나들듯 돌아다닐 따름이랍니다. 님의 멋진 "알라딘 이야기"....정말 많은 노력을 하신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라딘을 이용하면서 제가 읽었거나 읽은 책에 대한 마이리뷰를 작성을 해 오면서 가끔은 뜻하지 않는 선물을 받게 되더군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주일의 마이리뷰"에 선정이 되었다는 개인 메일로의 연락과 또, 거금 5만원의 적립금이 지급 된다는 것입니다.  몇 차례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다보니 여기 서평의 성격을 갖는 마이리뷰를 올린다는 것이 자칫 적립금 지급과 연관이 되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업주인 알라딘에서야 자신들이 모든 책에 대한 검증을 하기가 어렵고, 그러다보니 알라디너로부터 도서에 관한 리뷰를 얻게 되고, 또 실질적으로 제 경우가 그렇지만 제가 구하고자 하는 책 이외에 '읽어봐야지...'하는 책은 리뷰가 많은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이리뷰는 도서 선정의 결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리뷰 작성에 상당한 주의를 하는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이렇게 적립금을 받게 되다니 많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마이리뷰를 살펴보면 반드시 권장할만한 마이리뷰가 아닌것도 많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 선택은 독자의 몫이기에 조금 소홀하게 올리는 마이리뷰에 대한 신뢰도는 당연히 알라디너들이 판단을 하고 배제를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옛 서부 영화 생각이 납니다. 서부영화의 총잡이 중에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는 사람으로 현상금이 걸린 사람들을 추적해서 상금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제 느낌으로는 "마이리뷰 사냥꾼"이 된것 같은 기분입니다. 물론, 알라딘에서야 좋은 의미로 배려를 하는 것이지만 이런 배려가 리뷰를 올리는데 하나의 장애요소로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넣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으로는 '이주일의 마이리뷰'에 선정이 되었다고 해서 찾아가 제가 작성한 마이리뷰를 다시 읽어보면 그리 잘 쓴 서평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어 하나 하나 리뷰에 신중과 정성을 다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마이리뷰 사냥꾼"이 아닌 진정한 평자로서 리뷰를 작성토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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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다 그렇지만 이곳 알라딘에서의 도서 구매와 병행하여 헌 책방을 기웃거리며 읽을거리를 찾으실 것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 군데의 헌 책방에 자주가는 편입니다. 물론, 저와 관련된 내용들은 새로운 연구내용을 담은 도서도 있지만 오히려 예전의 평가 내용이 중요한것이 많기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헌 책방을 찿습니다. 헌 책방에는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는 몰라도 듣도 보도 못한 책과 예전에는 비싸서 감히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책들도 가득하지요.

  작년 겨울....신림동의 헌 책방에 들렀을 때 였습니다. 몇 권의 도서를 고르고 또 그날따라 평시에 구하고자 했던 책들이 많아 이것 저것을 제법 많이 골랐습니다. 책에 "XXX선생 혜존" 이라는 저자의 서명이 담긴 책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는 책 주인은 많은 도서를 보유하고 있던 장서가였던것 같고 그 분이 유명을 달리하자 후손들이 필요치 않아 헌 책으로 처분하였던것 같습니다.  알라디너들은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책을 버린다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임에도 이유가 어떠하든 그 책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헌 책 취급을 받는다는 일은 가슴이 아픈 일로 여기실겁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집에서 헌 책으로 내다 처리한 책들은 대부분이 제가 필요로 하는 책이어서 제법 많은 책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책을 집어들고 펼치는 순간, 책 가운데 들어가 있던 작은 책이 툭~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少年>....녹색 월계관 테를 두른 글짜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집어들은 것은 분명 '第一年 第一券 ' 이라고 씌여진 <소년> 창간호였습니다.  책방 주인 아저씨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주인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그냥 기념으로 가지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海에게서 少年에게"라는 최남선의 시는 이미 어렸을 때 익히 들어왔던지라 국한문 혼용의 옛글로 찍혀진 <소년>을 손에 들게 된것만도 신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책을 구입하여 그대로 보존을 하였는지 새 책과 같은 상태로 귀한 책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된것입니다.  한동안은 창간호를 모으느라고 무척 고생도 했었고, 어찌 어찌 하다보니 "샘터"라는 월간지의 창간호도 열 댓권을 모으기도 하였는데 평시에도 <소년>을 갖고 싶었던 것이 정말로 우연치않게 제 손에 들어오게 된것입니다.

  "隆熙 二年 十一月一日 發行" 이라는 발행연도가 말해주듯 최초의 잡지인 <소년>은 제 손에는 오래 못 있게 될것 같습니다. 제 손에 들어 온것도 자랑이랍시고 몇 군데 자랑을 했더니 기증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사 타진이 있어 잠시 혼돈속에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저만의 <소년>이 되기 보다는 만인의 <소년>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에 적당한 시기에 기증을 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전시되었던 <소년>과 비교하면 한번도 앞장을 넘긴 자국도 없는 이 책이 단연 돋보이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보니 이런 귀한 책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된 것도 다 책을 좋아하다 생긴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908년 11월에 창간되어 1911년 5월까지 발행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월간지는 이제 어느 책 관련 박물관에서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기다리며 우리 나라 최초의 자부심을 가득 담고 전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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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6-0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이라도 보여주세요!!!
기증하기에는 너무 맘이 아플 것 같은데요?

비로그인 2004-06-0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캐닝을 해서 올리면 되겠군요.......작업을 좀 하겠습니다..제 노트북에서 수행불가(스캐너 인식을 못하는군요)로 사진은 나중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조선인 2004-06-0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6-05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컴퓨터에 대해 잘 몰라서인지 지난번에 노트북을 다시 깔았는데 그 때 아마 USB포트 설정을 잘못했나봐요. 드라이브는 A. C. D. E 로 설정을 했는데 스캐너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 CD를 넣으니 액세스 할 수 없다고 나오는군요.. 아마 F를 새로 설정을 해야 하는 모양인데...쩝~~ 좋은 자료 사진을 갖이 보여드리고 싶어도 알아야 뭘 하죠 -_-...

비로그인 2004-06-0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노트북에서 스캐너 관련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CD가 불량으로 오늘 사무실에서 스캐너 관련 프로그램을 새로 깔았습니다. 퇴근을 하면 관련 자료들을 스캐너를 이용하여 올려서 시각적인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상무의 '이춘헌'선수가 지난번의 개인전에 이어서 또 다시 단체 릴레이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마지막 1500m 계주를 남겨 놓고 3위에게 200여미터를 뒤지고 있었는데 '이춘헌'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결승점에 0.2초 빨리 들어와 단체 3위를 했다고 합니다. 귀족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근대5종에서 유럽세를 물리치고 개인 2위, 단체 3위를 한 '이춘헌'선수가 오늘 귀국을 했습니다.

  조금전 3시에 부대에 도착을 하고 군복으로 갈아입고 출전 복귀 신고를 했는데, 어찌나 늠름해 보이던지요...같이 출전했던 '한도령, 김인홍' 두 선수도 같이 왔고, 감독과 코치도 같이 부대에 왔습니다. 근대5종은 다 섯가지의 종목을 치뤄야 하는데 태능선수촌에도 근대5종을 위한 경기장이 없고 유일하게 승마장이 있는곳이 바로 상무부대인지라 근대5종 국가대표 남녀 선수단은 항상 훈련을 상무에서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귀족 스포츠라고 하지만 국내에서 5개의 종목을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상무입니다. 그러다보니 귀국을 해서는 바로 숙소인 상무로 와야했고, 겸하여 귀국 인사를 같이 하게 된것이랍니다.

 이 자리에서도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우리 나라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2위나 단체 3위를 한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복싱이나 태권도, 유도와 같이 일정한 범위를 체중으로 정해 둔 경기와는 달리 근대5종은 능력만 있으면 선수로 참가를 할 수 있기에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 속에서의 거둔 이번 성적은 정말 기적을 이룬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이춘헌'선수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번 세계대회는 프레올림픽의 성격이 짙어 선수들이 전력 탐색에 목적을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조금만 더 노력을 해야한다는 일종의 질책성이었지요. '이춘헌'선수는 공항에서부터 언론의 플래쉬를 받았는데, 이러한 일은 자칫 자만을 불러 올 수도 있기에 한 마디를 한것이랍니다.

  아직, 시차도 풀리지 않았고 경기에 참가하여 최선을 다하느라 무척 피곤할 것 같기에 귀국과 동시에 신고를 마치고 휴가를 보냈습니다. 이제 가족과 함께 세계대회 준우승의 기쁨을 누려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곳에 있다보니 감독이나 선수 모두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니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따기 위한 금전적 투자액이 자그마치 1인당 (10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고 가정할 경우) 19억원이라는 거금이 투입된다더군요. 더구나 오림픽은 그 출전 부터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하고,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은 신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정도로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노력은 좁게 보면 개인의 영광을 위한 노력이지만, 조금 더 넓게 본다면 바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피땀으로 이루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무언의 응원이라도 이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음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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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03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짝짝...

가을산 2004-06-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세~~!! (^-^)///

비로그인 2004-06-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습니다....제가 이춘헌 선수에게 격려하는 펜이 많다고 해 줬습니다. 그런데...가을산님과 조선인님이 격려를 해 줬다고 하니까 고개를 꺄우뚱~ 하더군요...하하하...고맙습니다...

민동기 2004-06-0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춘헌선수를 비롯한 상무 선수들의 건승과 화이팅을 기원합니다. 화이팅!!!!
 

  제 동생은 저보다 두 살 아래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일이 늦다보니 학교에 늦게 입학하는 바람에 학년은 한 학년 차이였습니다.  어머니는 늘 손수 재봉질을 하셔서 우리 형제의 옷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때 옷감의 종류도 많은 것이 아닌지라 늘 여유있게 옷감을 해 오셔서는 똑 같은 옷을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형제는 늘 쌍둥이로 오해를 받아 왔었습니다. 옛 사진을 보면 옷은 그렇다치고 어찌 신발도 똑같고, 책가방도 똑 같이 장만을 해 주셨는지....그나마 형제가 내거다 네꺼다..하며 싸우지 않은게 지금 생각하면 대견하게 여겨집니다.

  매년 새학기가 되면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나눠줍니다. 교과서를 나눠 주는 날은 빈 가방에 필통만 넣고 가서는 가방이 터질 정도로 책을 담아 옵니다.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 둘의 성격이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학교에서 새 교과서를 받아 집에 도아와서 다시 꺼내놓고 보면 저는 어디 구김 한군데 없는 새 책인데 제 동생 책은 헌책방에서 줏어 온 책 처럼 벌써 구겨지고 접어지고...그리고 속에는 낙서가 제법 담겨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죠.  아버님께서는 지금도 제 책을 서고에 보관하고 계신데 책에는 딱 세 글자만 남겨져 있었고, 한번도 펴 본적이 없는 새 책 처럼 깨끗했습니다. 세 글자란 바로 제 이름인데 몇 학년 몇 반 이라는 표시도 없이 달랑 이름 석자 뿐이더군요.

  제 동생의 교과서도 몇 권이 남아 있습니다만, 책이 말 그대로 너덜거리는 걸레 같답니다. 그리고 표지만 그런게 아니라 인쇄되고 남은 빈 자리에는 온통 만화같은 그림만 가득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척 잘 그린 그림 같아 보였는데 지금 다시 제 동생의 책을 들춰보니 그림도 형편없는 그림이지만 그림이 주는 이미지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속 가득 담겨있던 꿈을 글로 썼고, 제 동생은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꿈을 그림으로 그렸던 것이었죠. 교과서가 말해주듯 제 성격은 비교적 깔끔을 떠는 성격이었고, 제 동생은 조금은 지나간 자리가 어지럽고 주변 정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었던것 같습니다.

  얼마전...교과서 전시회가 열리는 곳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딱히 갈 이유도 없었지만 그 전시회에 전시된 교과서들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도 궁금함의 하나였기에 일부러 간 전시회 격이었는데, 지금 아버님의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제가 쓰던 교과서보다 훨씬 낡은 교과서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날...저는 본가로 가서 일부러 서고에서 교과서를 꺼내 보았습니다. 어느 귀퉁이 한 곳 떨어지거나 접어지지 않은 채 책을 넘기느라 접어진 자국만 남은 교과서....4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한글다음에 (  ) 속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아버님께서는 G펜으로 먹물을 뭍혀 동그랗게 한글을 지워버리셨습니다.  천생 한자를 읽기 위해서는 옥편을 찾아 그 음을 알아야만 했는데 그 덕분에 지금도 한자는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이며 한자의 부수나 획에 대해서도 또래보다는 훨씬 많이 아는 편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책을 깨끗하게 읽는 습관은 여전한것 같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도 중요한것은 밑줄을 그으며 머릿속에 넣으려는 노력들을 했음에도 여전히 제 책은 공부 안하는 학생이 한번도 뒤적인적이 없었던 책 처럼 깨끗하고, 요즘 구입하는 책들도 단 한번도 뒤적여본 적이 없는것 같이 깨끗한 편입니다. 그런 교과서를 두고 제 동생은 "형은 전혀 공부를 안하는 학생"이었다고 놀려댑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것은 책은 그렇게 깨끗하게 읽으며 관리를 하면서도 방은 늘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는 책상이나 침대에 다다르기까지의 공간이 마치도 최전방의 지뢰밭을 조심스럽게 지나듯 온통 바닥에는 책이나 다른 물건들로 팽개쳐져 있답니다. 읽는 책이 소설류가 아니어서인지 책장에서 책을 뽑아서 읽다가는 바로 옆에 두고 일어나고...또, 다른 책을 꺼내 읽고는 바닥에 팽개쳐 두고...그런 일이 반복이 되다보니 방바닥이 엉망이 되는 모양입니다. 겨우 컴퓨터 앞이나 깨끗할까, 책상 옆에 제가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긴 탁자를 두고 그 위에는 프린터와 스캐너가 놓여 있지만, 지금은 그 위를 온통 책을 비롯한 잡동사니가 덮고 있어 막상 프린터나 스캐너를 쓰는것은 곤란한 실정입니다.

  더구나, 아직 정리를 못한 슬라이드 필름은 필름 상자에 담기거나 필름 화일에 담겨 정리 될 날만 기다리며 어지러움에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치운다고는 하지만 겨우 책이나 책꽂이에 넣어둘 뿐, 필름은 정리가 되기까지는 그냥 그자리에 그대로 두고 맙니다.(제가 사용하는 35mm 필름 마운트가 수입품인데 아직 통관이 안되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늘상 퇴근할때면 "오늘은 기필코 정리를 해야지..."하고 문을 열지만, 저 자신이 제가 어질러 놓은것을 보고는 감히 치울 엄두를 못내고 스스로 질려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방바닥에 엉덩이라도 붙일 일이 있다면 최소면적은 확보를 하고 방바닥에 앉지만 그 치운다는것이 제대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이 널려 있는 위에다 위치 변경만 시키는 것이지요.

  제 초등학교 시절의 교과서는 언젠가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기증을 해야 하겠지요.  한동안 창간호를 열심히 모았었는데 이것까지 필요한 기관에 기증을 해야 그나마 제가 어지럽힐 수 있는 재료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게 아닐까 합니다. 이구....지금도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니 치울 일이 정말로 걱정이 되는군요.....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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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6-0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과서를 깨끗이 보는 편이셨군요. 전 꼭 그런 편은 아니었어요. 교과서 전시회, 옛생각이 나는 시간이셨겠어요. 북한교과서 전시회를 가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님의 아버님, 한자교육에 대한 철학이 지혜롭게 보입니다. 훌륭하십니다.

비로그인 2004-06-0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당시에는 속으로 많이 야속하게 생각하고는 했는데 나름대로의 방법이셨던것 같고, 지금은 그 때의 아버님의 방법에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민동기 2004-06-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깨끄ㅜㅅ하게 쓰라고 하고 지금은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도 한다던데 저는 지금생각해보니 책에 줄을 박박 그어가며 공부를 했던것 같아요. 그렇다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것도 아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