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생은 저보다 두 살 아래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일이 늦다보니 학교에 늦게 입학하는 바람에 학년은 한 학년 차이였습니다. 어머니는 늘 손수 재봉질을 하셔서 우리 형제의 옷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때 옷감의 종류도 많은 것이 아닌지라 늘 여유있게 옷감을 해 오셔서는 똑 같은 옷을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형제는 늘 쌍둥이로 오해를 받아 왔었습니다. 옛 사진을 보면 옷은 그렇다치고 어찌 신발도 똑같고, 책가방도 똑 같이 장만을 해 주셨는지....그나마 형제가 내거다 네꺼다..하며 싸우지 않은게 지금 생각하면 대견하게 여겨집니다.
매년 새학기가 되면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나눠줍니다. 교과서를 나눠 주는 날은 빈 가방에 필통만 넣고 가서는 가방이 터질 정도로 책을 담아 옵니다.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 둘의 성격이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학교에서 새 교과서를 받아 집에 도아와서 다시 꺼내놓고 보면 저는 어디 구김 한군데 없는 새 책인데 제 동생 책은 헌책방에서 줏어 온 책 처럼 벌써 구겨지고 접어지고...그리고 속에는 낙서가 제법 담겨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죠. 아버님께서는 지금도 제 책을 서고에 보관하고 계신데 책에는 딱 세 글자만 남겨져 있었고, 한번도 펴 본적이 없는 새 책 처럼 깨끗했습니다. 세 글자란 바로 제 이름인데 몇 학년 몇 반 이라는 표시도 없이 달랑 이름 석자 뿐이더군요.
제 동생의 교과서도 몇 권이 남아 있습니다만, 책이 말 그대로 너덜거리는 걸레 같답니다. 그리고 표지만 그런게 아니라 인쇄되고 남은 빈 자리에는 온통 만화같은 그림만 가득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척 잘 그린 그림 같아 보였는데 지금 다시 제 동생의 책을 들춰보니 그림도 형편없는 그림이지만 그림이 주는 이미지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속 가득 담겨있던 꿈을 글로 썼고, 제 동생은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꿈을 그림으로 그렸던 것이었죠. 교과서가 말해주듯 제 성격은 비교적 깔끔을 떠는 성격이었고, 제 동생은 조금은 지나간 자리가 어지럽고 주변 정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었던것 같습니다.
얼마전...교과서 전시회가 열리는 곳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딱히 갈 이유도 없었지만 그 전시회에 전시된 교과서들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도 궁금함의 하나였기에 일부러 간 전시회 격이었는데, 지금 아버님의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제가 쓰던 교과서보다 훨씬 낡은 교과서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날...저는 본가로 가서 일부러 서고에서 교과서를 꺼내 보았습니다. 어느 귀퉁이 한 곳 떨어지거나 접어지지 않은 채 책을 넘기느라 접어진 자국만 남은 교과서....4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한글다음에 ( ) 속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아버님께서는 G펜으로 먹물을 뭍혀 동그랗게 한글을 지워버리셨습니다. 천생 한자를 읽기 위해서는 옥편을 찾아 그 음을 알아야만 했는데 그 덕분에 지금도 한자는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이며 한자의 부수나 획에 대해서도 또래보다는 훨씬 많이 아는 편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책을 깨끗하게 읽는 습관은 여전한것 같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도 중요한것은 밑줄을 그으며 머릿속에 넣으려는 노력들을 했음에도 여전히 제 책은 공부 안하는 학생이 한번도 뒤적인적이 없었던 책 처럼 깨끗하고, 요즘 구입하는 책들도 단 한번도 뒤적여본 적이 없는것 같이 깨끗한 편입니다. 그런 교과서를 두고 제 동생은 "형은 전혀 공부를 안하는 학생"이었다고 놀려댑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것은 책은 그렇게 깨끗하게 읽으며 관리를 하면서도 방은 늘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는 책상이나 침대에 다다르기까지의 공간이 마치도 최전방의 지뢰밭을 조심스럽게 지나듯 온통 바닥에는 책이나 다른 물건들로 팽개쳐져 있답니다. 읽는 책이 소설류가 아니어서인지 책장에서 책을 뽑아서 읽다가는 바로 옆에 두고 일어나고...또, 다른 책을 꺼내 읽고는 바닥에 팽개쳐 두고...그런 일이 반복이 되다보니 방바닥이 엉망이 되는 모양입니다. 겨우 컴퓨터 앞이나 깨끗할까, 책상 옆에 제가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긴 탁자를 두고 그 위에는 프린터와 스캐너가 놓여 있지만, 지금은 그 위를 온통 책을 비롯한 잡동사니가 덮고 있어 막상 프린터나 스캐너를 쓰는것은 곤란한 실정입니다.
더구나, 아직 정리를 못한 슬라이드 필름은 필름 상자에 담기거나 필름 화일에 담겨 정리 될 날만 기다리며 어지러움에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치운다고는 하지만 겨우 책이나 책꽂이에 넣어둘 뿐, 필름은 정리가 되기까지는 그냥 그자리에 그대로 두고 맙니다.(제가 사용하는 35mm 필름 마운트가 수입품인데 아직 통관이 안되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늘상 퇴근할때면 "오늘은 기필코 정리를 해야지..."하고 문을 열지만, 저 자신이 제가 어질러 놓은것을 보고는 감히 치울 엄두를 못내고 스스로 질려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방바닥에 엉덩이라도 붙일 일이 있다면 최소면적은 확보를 하고 방바닥에 앉지만 그 치운다는것이 제대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이 널려 있는 위에다 위치 변경만 시키는 것이지요.
제 초등학교 시절의 교과서는 언젠가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기증을 해야 하겠지요. 한동안 창간호를 열심히 모았었는데 이것까지 필요한 기관에 기증을 해야 그나마 제가 어지럽힐 수 있는 재료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게 아닐까 합니다. 이구....지금도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니 치울 일이 정말로 걱정이 되는군요.....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