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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야생해당화 - 2. 밀물
누구나 야생해당화에 난 가시 같은 생의 송곳날에 찔리곤 하지. 해당화 덤불 무성하고, 흰 꽃 향기 진할수록 그 가시는 아프게 찔러대지. 케빈의 삶이나 올리브의 삶이나 그게 그거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아름답고 달콤하지만은 않지. 아픈 과거를 잊기 위해 케빈처럼 미치광이를 친구해 미치려 하거나, 올리브처럼 위악의 제스처로 자책을 포장하려 하지.
누구나 조금씩 정상이 아니지. 우울증을 대물림해준 올리브의 친정 아버지도, 세번이나 정신발작을 일으킨 시어머니도, 우울증을 대물림받은 올리브 아들도 조금씩은 비정상의 궤도란 일상을 돌지. 자살을 시도한 케빈의 엄마도, 자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케빈도, 마약쟁이 길거리인으로 전락한 케빈의 동생도 평범한 삶의 궤적을 가진 자들에겐 연민의 대상이지. 유산의 괴로움으로 들꽃다발을 만들어 위안받으려는 패티라고 별 다를 수 있겠어?
퉁면스런 이면에 슬픔을 간직한 올리브, 나긋나긋하지 못한 행동 뒤의 아픔을 누르는 올리브, 단호한 목울대 뒤에 숨은 진솔하고 인간적인 올리브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살다보면 누구나 올리브가 되어 가는 거지. 무심하게 보이는 일상엔 위악으로,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한 자에겐 팔 걷어 부치는 올리브를 그림처럼 떠올려보곤 해. 코끼리 같은 몸집의 올리브가 패티를 구하기 위해 화들짝 놀라 케빈의 차문을 열고 달려가는 걸 상상해봐.
바다끝 마리나 근처 절벽에서 코를 간질이는 야생해당화 향기가 스쳐와. 케빈은 그 흰 꽃 냄새를 맡다 말고 뾰족한 가시를 떠올렸을지도 몰라. 어쩌면 야멸차고 지리멸렬한 생이 지겨워 죽음을 선택한 엄마의 육신이 부엌 벽에 흩뿌려질 때, 테이블 위에는 야생해당화가 꽂혀 있었을지도 몰라. 슬픔이나 아픔을 간수하는데 꽃보다 나은 위안은 없잖아. 유산의 고통스런 기억을 잊으려 패티도 바닷가에 피어난 야생해당화를 꺾으러 발길을 옮겼잖아. 나리꽃도 좋았을 패티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생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 보였다는 건 여간 다행한 게 아니야. 패티도 살고, 케빈도 살리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보며 나지막히 말해 보는 걸. 작가는 올리브의 다른 이름이구나, 하고.
앞으로 펼쳐질 올리브, 아니 엘리자베스의 꽃 이름을 무엇으로 달까, 이런 짠하고 아린 생각을 해봐. 야생해당화처럼 가시로 찌르는 게 삶인 걸. 찔리지 않으면 그건 살아냈다고,견뎌냈다고 할 수 없어.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펼쳐도 무지 재미 없을 거야. 도무지 난감할지도 몰라.『올리브 키터리지』는 뭐,그런 소설이지. 다음 편 리뷰 제목은 꽃 이름이 아니어도 좋겠어.
2. 밀물 - 간단줄거리
케빈이 고향에 돌아왔다. 우울증을 앓던 엄마가 부엌에서 권총 자살을 한 이후 열세 살에 아버지와 동생과 이 마을을 떠났다. 바닷가 짠내가 찌르고 야생 해당화 덤불의 활짝 핀 흰 꽃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패티는 어릴 적 케빈의 소꿉 친구다. 카페에서 커피를 따라주다 창을 통해 케빈이 차안에 앉아 있는 걸 보지만 모른척한다.
케빈은 어릴 적 살던 집 근처 숲에서 라이플로 죽음을 선택하려한다. 엄마의 유전인자가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가 자살할 때 싱크대 벽면까지 육신의 잔해를 뿌린 것을 기억하고 현재 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발견할까 싶어 담요를 덮고 결행할 생각이다.
케빈을 발견하고 키터리지 선생이 조수석에 탄다. 케빈은 차창밖 양동이를 든 채 카페 안팎을 왔다갔다하는 여자를 바라본다. 패티라고 키터리지 선생이 전해준다. 결혼 뒤 유산이 잦아서 슬퍼하고 있다고도 말해준다. 케빈은 뉴욕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 중이지만 정신과 전문의가 되지는 않을 거라 말한다. 포말이 이는 바다쪽에서 야생해당화가 빛난다. 엄마처럼 소아과 의사가 되려했지만 불운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광기에 이끌린다. 미친 존재감의 클라라와 연애 경험도 있다.
키터리지 선생은 자신의 아버지도 우울증이었고 그 유전인자가 아들에게 유전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도 총으로 자살했다고 말해준다. 키터리지는 케빈을 공감하려 애쓴다. 묶인 요트 근처의 야생 해당화 꽃대가 누웠다 일어났다 다시 눕는다. 해당화를 꺾으러 간 패티가 그 가시에라도 찔린 듯 손을 턴다.
유산의 아픔을 잊으려 꽃을 꺾기 위해 패티가 마리나(요트 정박장) 근처 절벽으로 나선다. 케빈과 키터리지가 차 안에 있는 걸 보고 안심한다. 휘청대는 해당화에 손이 찔린다. 키터리지는 우울증 유전자를 아들에게 물려준 자신을 자책한다. 시어머니도 정신병 경력자였기 때문에 거기서 유전인자를 받지 않았다고는 말 못한다고 돌려 말한다. 케빈은 듣기 괴롭다. 광기는 광기를 불러온다고 자신의 몸을 칼로 긋던 미친 클라라를 떠올린다.
케빈의 동생은 마약 중독자로 길거리 인생이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죽었다. 의대 졸업식 때 들은 격려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란 말을 듣고 내면이 공포가 증폭되고 영혼이 조여오는 걸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이 <우리는 가정과 사랑의 세계에 속해 있고 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보니 엄마가 그립다. 키터리지 선생이 빨리 차안에서 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선생이 급하게 뛰쳐나간다. 꽃 꺾으러 갔던 패티가 암벽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진 것이다. 케빈이 패티를 구하러 뛰어든다. 케빈은 패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격렬하게 붙잡는 패티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를 알게된다. 오, 미친,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하고 되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