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세운 사람의 성공 여부는 부지런함에 달려있다. 참으로 고전적인 말이긴 하지만, 크고 작은 소망이 결실을 맺는 데는 근면·성실보다 나은 게 없다. 부지런한 뒤에 운과 재능을 빌려도 늦지 않다.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에 관한 책을 읽는데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이런 스승과 제자가 있을까. 깐깐한 스승과 우직한 제자는 찰떡궁합이다. 강진 유배 시절, 주막집 더부살이 신세이면서 서당을 연 일은 다산이 숨통을 틀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유배 18년 동안 다산을 거쳐 간 제자는 많았지만 끝까지 남은 단 한 사람이 황상이었다. 황상은 아전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다산의 제자가 되었다. 열다섯 더벅머리 황상은 외로운 다산에게 믿음직한 아들 같은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스승은 만난 지 이레째 되는 날 귀가하는 황상을 따로 불러 공부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황상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다. 자신의 세 가지 문제점은 둔하고(鈍), 막혔고(滯), 어근버근하다(戛)고. 그래도 문사를 닦을 수 있겠냐고 여쭤본다. 스승은 제자의 수줍은 질문에 이런 요지의 답글을 내린다. 재빠르고(敏), 날카롭고(銳), 빠른(捷) 게 전부가 아니라고. 재바른 천재보다 미욱한 둔재의 노력이 훨씬 무섭다고 깨쳐준다. 뚫으려면 어째야 하는가? 부지런해야 한다. 틔우려면 어떻게 하는가? 부지런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부지런해야 한다.
황상은 늙어 죽을 때까지 스승의 이 면학문을 몸과 맘에 새겼다. 세 번씩이나 부지런하라고 써준 스승의 말씀을 ‘삼근계’라 부르면서 그 친필을 평생 어루만지며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다산이 죽은 뒤 다산의 아들 학연은 너덜너덜해진 황상의 삼근계를 보고 다시 써주었다. 그 글씨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스승, 제자, 아들의 연결 고리 또한 애잔한 것 말고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어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부지런한 게 좋은 거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이든 정보든 내게 부지런하라고 말할 스승은 도처에 넘친다. 다만 내게 황상 같은 우직함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둔하고, 막히고, 어근버근한 그 우직함을 황상에게서 빌려오고 싶다. 스승 사랑 담뿍 받고 그 사랑 실천한 황상이 부럽기만 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