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두 자녀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도 많다. 결혼했다는 것과 남편이 있다는 것까지는 입력이 되는데 ‘엄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루 종일 얽힌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긴 하다. 그 복잡함들이 자식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에 관한 거면 좋겠는데, 나만의 영양가 없는 공상 때문이니 그게 문제다. 언제나 개별자로서의 자아가 모성을 가진 자로서의 나를 앞선다.

 

  보통 ‘엄마’라면 무슨 일을 하건 어떤 상황에 있던 자식 생각이 우선일 것이다. 오히려 그게 너무 족쇄처럼 느껴져 한 번쯤 아이들에게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는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나 아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그제야 아참, 내가 엄마였지, 하고 당혹해한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환절기라 감기에 걸렸단다. 아프면 가족 생각이 더 나기 마련이니 엄마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통화하는 순간은 엄마로서 최선의 모성을 발휘한다. 병원은 가봤나, 아파도 밥 굶지 마라, 심하면 수업 듣지 말고 잠 푹 자라 등 짠한 맘에 말이 절로 많아진다. 이 짠한 맘이 하루 종일 지속되면 좋으련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밤늦게 걱정하는 남편을 보고서야 아픈 딸내미가 떠올라 자책한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내게 모성이 없는 걸까? 모성은 본능일까, 아니면 사회화 과정의 산물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살갑게 챙기고 알뜰히 보살피는 모성지상주의파는 아니다. 방임을 가장한 허용적인 엄마이고, 권위적이지 않고 시쳇말로 쿨한 척하는 엄마다. 자식에게 밀착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엄마가 이래도 되나? 모름지기 엄마라면 그 무엇보다 자식을 최상의 자리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얻은 결론은 나 역시 모성이 없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다만 사회가 부여한 모성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왼종일 자식 생각으로 가득하지 않다고 해서 모성이 부족한 건 아니다. 모성을 천성이나 운명의 자리로 묶어두고 길들이는 사회 때문에 내 모성을 스스로 의심했을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성 신화를 버려야  다양한 모성 모델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도  단기기억상실증이란 마법에 걸리지 말고,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좀 더 자주 떠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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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2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개별자로서의 자아가 모성을 가진 자로서의 나를 앞선다."
- 이것, 공감합니다. 저도 그렇거든요.ㅋㅋ
한때 제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게, 왜 나는 자식들의 장래보다 내 장래가 어떻게 될지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가, 였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식들의 장래는 아직 멀리 있고, 또 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가 아닐까, 였어요. 그러면서 약간의 죄의식을 상쇄해 나갔죠.

그런데 큰애가 그러더군요. 저의 그런 점이 좋대요. 너무 자식에세 집착하고 간섭하는 엄마는 싫대요. 요즘 작은애도 비숫한 말을 하네요. 이것이 위안이 돼요.

또 하나의 위안은 내 자식들도 나중에 결혼해서 엄마의 자리에 있게 될 때 나처럼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 이에요. (나처럼 살기를 바란다는 것은 결코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요?) ^^

다크아이즈 2012-11-24 17:26   좋아요 0 | URL
앗, 페크님 공감해줘서 감사요.
모성보다 앞서는 자의식 때문에 당황할 때가 있는데, 저만 그런 것 아니었다는 위안이...

다행히 울 자식들도 이런 저를 마이(경상도 버전, 많이) 이해하는 듯.
대신 엄마한테도 애면글면하지 않으니 쌤쌤인가요? 크~
특히 딸내미는 엄마한테도 시크하옵니다. 그래서 서운하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스무 살 시절 나는 제법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도서기록카드로 대출인을 관리하던, 그야말로 아날로그 방식을 활용하던 때였다. 책 뒷면, 붙여진 봉투 안에 기록지가 있었다. 그 종이에는 책을 빌린 이의 이름과 빌린 날짜, 돌려주는 날 등이 적혀 있었다. 누가 어떤 책을 읽는 지 목록을 보면 훤히 꿰찰 수 있었다. 어느 날 공대생 친구 녀석이 말했다. 

  "도서 기록 카드에 니 이름 와 그리 많이 등장하노?" 

   독서 취향이 비슷했는지 아는 이름이 눈에 자주 뜨이니 그 친구는 반가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반색하는 녀석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녀석의 심정과 무관하게 도둑이 제 발 저렸던 것이다. 빌린 책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사진을 훔친 때문이었다. (고백하자면 카프카의 사진도 훔쳤다!)  혹시라도 도서대여 담당자가 추적 끝에 잘려나간 작가 사진들을 돌려달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또한 작가 사진을 오려 가진 이가 나라는 것을 친구 녀석도 알게 될까 찔렸던 것이다.

 

  ((이건 여담인데 오늘 우연히 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김두식의 <고백>코너에서 고종석의 적나라한 고백을 들었다. 나보다 더한 놈(!)께서 출현했다. 고종석 광빠 정도는 아니더라도 엄청 존경하는 글쟁이 중 한 분인데 살짝 실망했다. 그 왈 헌책방 가서 많은 책을 훔쳤단다. 겨울 외투 사이에 갖고 싶은 책을 찔러 넣고 왔다는데 한 두 군데가 아니고 세 군데 정도의 헌책방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았다. 솔직히 나는 놀라 기절할 뻔했다.당시엔 죄책감도 없었다니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인터뷰 뉘앙스를 보니 고종석은 헌책방 주인을 계급의식 관점으로 바라본 듯하다. 헐케 손에 넣어 비싼 값으로 되파는 주인이니 자신이 좀 장기 대여(평생 대여)(?)한들 어쩌리, 하는 맘이 있었던 것 같다. ))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자.  책 안에 깃든 주요 정보를 개인이 독점하는  행위는 부도덕하다 못해 파렴치하다. 하지만 그 치기 역시 책에서 배웠으므로 내 죄는 반감되어야 마땅하다! 그 시절, 내 설 익은 감성을 쥐락펴락했던 전혜린이란 에세이스트가 있었다. 너무 오래 돼 지금은 잊었지만 그미가 독일 유학시절 필요한 자료(아마는 어떤 작가의 사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를 도서관에서 슬쩍해왔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도 꼭 한 번 따라해보고 싶었다. 그 때 따라쟁이한 도둑질한 사진이 프루스트와 카프카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프루스트는 오래 간직하지 못했고, 카프카는 내 좁은 방 미니액자에 담겨 오랫동안 내 우수어린 친구가 돼줬다.  

  그 때 빌린 책이 아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변신'쯤이 되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내게 결국 제목만 원어로 외운 책이 돼버렸다.  '아 라 흐세흐쉐 뒤 땅 뻭뒤(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 A 철자 위에, 악상 그라브 넣는 법은 몰라요. 우쒸~). 어려운 건 용서할 수 있겠는데, 한 마디로 지겨웠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만큼이나 초반부터 질리게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었다. 나중에 그 원인을 알아냈다. 젤 큰 원인은 프루스트의 만연체 문체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불어인데, 헤밍웨이처럼 짧고 간략하게 써주면 누가 뭐라나? 끝날 줄 모르는 접속사로 이루어진 복문에 지쳐 버렸다. 독자를 배려해 깔끔하게 잘라서 번역해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니니 인내심 폭발하게 하는 책인 게 분명했다. 해서 누군가 잃어버린 시간~을 완독했다면 마구 안아주고 싶다. 다행인지 주변에는 아직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전문 연구자들조차 다 이해 못한다니 이 책을 못다 읽었다 해서 부끄러워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만화로 된 잃어버린 시간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4권까지 나온 걸 알고 주문했는데, 오늘 보니 5권도 출간되었단다. 배달된 만화책을 펼쳤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그 유명하다는 마들렌느 과자 부분이었다. 마들렌느 과자 모양이 너무 궁금했었다. 내 상상 속의 마들렌느 과자는 민무늬 타원형 모양이었다. 하지만 만화책 15쪽, 허겁지겁 찾은 마들렌느는 예상밖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작은 조개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많이 나는 꼬막 조개처럼 생겼는데 좀 더 커 보였다. 국내 제과점에서도 그 비스킷을 파는지는 모르겠는데, 프랑스에서라면 우리의 국화빵처럼 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개인적으로, 만화로 된 이 책의 매력은  마들렌느 과자를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감미로운 행복감이 나를 엄습해와, 어찌 된 영문이지 나를 고립시켜 버렸다. 지금 내 안에는 과자 때문에 되살아난 이미지, 시각적 기억이, 이 맛의 뒤를 따라 내 자아에까지 이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도대체 이 극도의 희열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나는 이 희열감이 홍차와 과자 때문에 생겨나긴 했지만,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달하려는 본질은 과자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홍차에 적신 과자가 뭔가를 일깨운 것이다. 그 후 연거푸 열 번은 더 마셔봐야 했는데...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 과연 내 의식의 표면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만화판 1권 콩브레 편 15쪽)

   

  만화 장면을 지상 중계해본다. 마르셀이 홍차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식탁 곁에 다가온다. 마들렌느 과자 하나가 담긴 접시 가까이 마르셀의 손이 다가간다. 스푼에 뜬 홍차에 마들렌느 과자 조각을 담근다. 왼쪽 손에 스푼을 든 마르셀은 콧수염 가까이 스푼을 들이대고 그 향을 음미한다. 다시 한 조각을 떼어 스푼 홍차에 찍는다.  

  내 설명으로도 감이 잡히지 않는, 마들렌느 과자 모양이 궁금한 프루스트 독자는 만화로 된 이 책을 사도 좋겠다. 아직 5권까지 밖에 안 나왔다는 게 아쉽다. 나도 나머지 한 권을 장바구니에 담을 생각이다. 원본이나 원본 번역서를 지겨워할 독자라면 이 책만으로라도 제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  

 

 

** 일 년 넘은 리뷰인데, 오늘 한겨레에서 김두식의 <고백> 코너에서

    고종석 인터뷰 한 것 보고 필이 꽂혀 재구성했다.  그나저나 고종석 작가 넘 강도 높은 

    고백이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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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에게 이런 기억이ㅎㅎㅎ 공소시효도 다 지난 일이죠.ㅋㅋ
저도 책을 훔친 기억이 있네요. 대학 도서관 앞 중고도서 가판대 비슷한 곳이었는데
두 권이요. 그냥 가져가도 될 정도로 싼 가격으로 내놓여 있었던 기억인데..암튼요.ㅎㅎ
카프카의 사진은 참 멋지지요. 훔치고 싶을 정도로..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얼마전 사놓고 아직이에요.
불어 읽다가 저 지금 너무 웃겨서 막 야단났어요. ㅋㅎㅋㅎㅋㅎ
악상 그라브ㅋ 고등학교 때 불어 배운 게 다인데 참 좋아했더랬는데...
근데 고종석은 절필을 왜 했을까요.

다크아이즈 2012-11-20 02:45   좋아요 0 | URL
팜님...그 시절 누구나 한두 번 겪음직한 일일 것 같아요.
고종석 작가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시간들에 대한 거부일 수도,
귀차니즘을 강조하는 작가답게 그냥 좀 쉬고 싶을 수도...
왠지 둘 다인 것 같아요..
 

 

 

 

  방과 후 문예교실에서였다. 기억에 남을 만한 선생님에 관한 단상 써오기를 숙제로 냈었다. 학생다운 재기발랄하고 감수성 풍부한 글들이 발표되었다. 남학생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게 한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 정신적 동질감을 주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감성적인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등이 주된 이야기였다.

 

 

  그 중 한 학생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머핀과 초콜릿을 준비했단다. 기회를 봐서 교무실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선생님이 안 계실 경우 다른 선생님을 후보로 새겨뒀다. 그냥 나오면 제 맘도 들키는데다, 다른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교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라던 선생님은 안 보이고 평소 무섭고 냉정하게 보이던 한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엉겁결에 ‘선생님 드세요.’ 하고 쫓기듯 선물을 드리고 나왔다. 맘에도 없는 일이라 그리곤 잊고 있었단다.

 

 

  한데 며칠 뒤 그 선생님께서 이름을 부르시더니 정성 깃든 편지와 작은 선물을 주시더란다. 놀람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오더란다. 냉정하게만 보이던 선생님이 제 이름을 기억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편지까지 주셨으니 눈물이 날 지경이더란다. 그 글의 제목은 ‘우연이 준 선물’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우연을 통해 한 사람의 진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현상일 뿐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 타인을 규정할 수 있는 명백한 객관성이란 인간 앞에서는 없다. 경험한 만큼만 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타자를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감성적 동물이다. 따라서 한 대상을 바라볼 때 제 삼자의 말에 휘둘릴 필요도 내 안의 편견에 내몰릴 이유도 없다.

 

 

  멀리서 본 높고 험한 산의 위용보다 가까이서 본 나무 잎새 뒷면의 떨림이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울 때가 많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그런 선물이라면 자주 주고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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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서 본 높고 험한 산의 위용보다 가까이서 본 나무 잎새 뒷면의 떨림이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울 때가 많다."
- 이 문장에 반하고 갑니다.
이런 글은 추천을 열 개쯤 누르고 싶어요. (백 개 아니라 열 개... 왜냐하면 제 스케일이 좀 작아서...)ㅋㅋ

다크아이즈 2012-11-18 22:24   좋아요 0 | URL
언제나 후한 페크님. ㅋ
저도 스케일이 좀 작습니다.
그래서 쪼잔하고, 미세하고, 예민하기도 하지만

일상에서는 터프하고, 무심하고, 흘리고 다녀서 쿠사리(!) 많이 먹습니다.
저는 페크님 글 편편마다 백만 송이 장미를 꽃는 걸요.

프레이야 2012-11-1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크님의 추천 열개에 더하기 열개 하고 싶어요.ㅎㅎ
간략하면서도 정곡을 시원하게 찌르는 글에 늘 반합니다.
우연이 준 선물! 정말 우리들의 삶은 우연이 90% 이상 작용하여 이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정확한 수치는 아니에요 ㅋㅋ)

다크아이즈 2012-11-18 22:2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마저 이러시면 저는 부끄러워 하산해야 할 판...
오래 버티고 싶은데 언제까지 일지 걱정하는 제게
용기 주는 말씀이라 생각할게요.
오늘따라 프님의 로고 장미꽃이 확 당깁니다.
당근 옆지기님의 작품이겠지요? 크~

2012-11-1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8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인 없이 살 수 없는 인간 특성 상 참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서로 챙기면서 믿음을 유지하는 관계도 있고, 가끔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경우도 있고,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얼굴도 있고,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우연한 만남도 있다.

 

 

  오전 일정을 끝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올랐다. 힘든 일을 마친 뒤라, 친구와 점심 겸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 생각에 기분이 최고조였다. 그것도 잠시,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시커먼 물체가 허공에 날리는가 싶더니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차를 멈췄다. 바로 옆 차끼리 접촉사고가 났는데 떨어져 나온 범퍼가 공중제비를 하면서 내 차 옆구리를 찍었던 것이다.

 

 

  날씨도 추운데 점심 약속마저 깨지게 됐다. 하지만 별 소소한 일이 생기는 게 인간사인지라 수습될 때까지 덤덤하게 기다리기로 한다. 한데 사고 당사자 두 사람의 대처 방식이 극명하게 달랐다. 그 재미난 사실을 관찰하느라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배고파도 배고픈 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게 귀찮다는 태도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싫은지 한쪽에서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치며 단박에 말을 잘라 버린다. 보험사 담당자들이 오면 그들끼리 알아서 하면 된단다. 오로지 어디 더 흠집난데 없나하고 자신의 차에만 눈길을 준다. 맞는 말이긴 하다. 당사자들끼리 이러쿵저러쿵 해봤자 입만 아프고 성과는 없을 테니.

 

 

  당사자끼리 말할 필요 없다는 택시 기사는 이런 일을 대처하는 확실한 매뉴얼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자꾸만 대화를 시도하려는 한쪽은 그 상황에서 누구나 하게 되는 일반적인 대처 방식이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 격인 내게도 전자는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후자는 내게 필요 이상으로 미안함을 표시한다. 남의 시간 뺏어서 어쩌나, 오늘 하루 일진이 안 좋다 생각해라 등 나름 인간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아무리 봐도 잘못은 ‘입 다물어’파가 더 큰 것 같은데, 배려는 ‘수다쟁이’ 파가 앞섰다.

 

 

  왠지 씁쓸했다.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배짱 좋게 뻗대는 노회함보다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진솔함이 훨씬 보기 좋았다.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따른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도 없고, 역지사지를 모른다면 그게 잘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집난 제 차를 살피는 것보다 맘 불편할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꽃보다도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 했거늘 차보다도 못한 게 사람이라면 어디 살 맛 나겠나.

 

 

 

 

  각설하고, 점심 약속이 한 시간이나 늦었다. 이미 주문해버려 물릴 수도 없는 음식은 뚜껑이 덮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일정이 촉박해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친구는 먼저 밥을 먹은 상태에서 걱정 반 초조함 반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춥고 배고픈 나머지 나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 자동차보다는 꽃, 꽃보다는 사람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플 땐 사람보단 역시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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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 차보다도 꽃보다도 사람이죠!! 차 운전 하다보면 별별일을 맞닥뜨리게 되는 거 같아요. 조심하거나 예방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경우요.
느와르님 오후는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시겠죠. ^^
청명한 초겨울 11월의 한허리에 있네요 오늘. ~~

다크아이즈 2012-11-15 22:10   좋아요 0 | URL
저 아무래도 후유증인가 봐요. 오늘 모 고등학교 특강 있었는데,
자료를 다른 것 갖고 가서 넘 당황했어요. 임기응변 대처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어제 범퍼 날아온 충격과 기계적 반응을 보이던 기사 아저씨 때문에
쇼크 먹은 게 틀림 없어요.

역시 프레이야님 위로가 필요한 밤이예요.
님도 감기 조심, 차 조심 하세요.

2012-11-15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8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8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11-1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2, 입니다.
"자동차보다는 꽃, 꽃보다는 사람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플 땐 사람보단 역시 밥이다!!"
- 이에 동의합니다요.^^

"흠집난 제 차를 살피는 것보다 맘 불편할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게"
- 이 말씀이 (당연한데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그만큼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2-11-18 02:22   좋아요 0 | URL
페크님 글치요?
인간에 대한 연민 없이 살 수도 있는데 그건 인간적인 게 아니잖아요.
근데 교통 사고 하도 많이 겪는 택시 기사 같은 경우엔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페크님 춥고 배고플 땐 역시 밥 맞지요? ㅋ

라로 2012-11-1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3 로 시작해야 할듯,,ㅎㅎ

근데 많이 놀라셨겠다. 떨어져 나온 범퍼가 날아온거에요???님의 차에???와~~~그만하기 천만 다행이라 해야할까요????ㅠㅠ

근데 님 글 잘쓰시는구나!!!!

다크아이즈 2012-11-18 02:25   좋아요 0 | URL
나비님, 날아온 범퍼, 유리에 안 맞고 그나마 차 옆구리 맞은 게 다행이지요?
덕분에 분수에 맞지 않게 요 며칠 보험회사에서 나온 대체차량,빵빵한 것 타고 댕깁니다.크~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순 없다. 거꾸로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바라는 만큼 사랑받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종교는 왜 필요하고 철학은 왜 생겨났겠는가. 심술 많은 창조자는 태초에 인간을 만들 때 그 형상을 빌려주었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인품까지 내어주지는 않았다. 불완전한 인간을 만들어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증명되니 그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건 생래적 인간 운명이다. 간사하고, 변덕스럽고, 던적스러울수록 신이 관장하기엔 좋은 인간형이다. 완전무결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신은 바라지 않을 것이기에.

 

 

 

 

 

 

 

 

 

 

 

 

 

 

 

이처럼 태초부터 예견된 인간 운명의 불완전성을 이해한다면 사람 사이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은 신과 달리 허술하고, 따라서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관계의 이해 방식이다.

 

신이 아닌 ‘인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나만의 몇 가지 원칙을 훈련하고 있는 중이다. 그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는 관심이 없다. 다면 살면서 나름 터득한 그 원칙들을 점진적으로 연마하고 실천하고 싶다. 언제나 실천이 어렵긴 하지만.

 

우선, 논쟁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소통하려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논쟁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한두 번 시도해보고 소통이 안 된다 싶으면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상대를 설득하려 해서도, 내가 양보해서도 안 되는 불통의 상황이 오면 그냥 놓아 버리는 게 최선의 평화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 양자택일할 경우 내가 손해나는 쪽을 택한다. 상대가 이익을 가져갔다고 결코 그 상대가 이긴 게 아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건 시간이 조그만 지나면 알게 된다.

셋째, 리액션이나 피드백은 필수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최대한 공감을 한다. 반대로 내 쪽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될까, 하고 상대의 진솔한 생각을 요청한다. 모든 타인은 나보다는 객관적이다.

 

넷째,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 리더를 맡아야 할 경우, 일은 무조건 타인에게 맡겨라. 리더는 일을 잘 하는 자가 아니라 멍석을 잘 까는 자여야 한다.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려하고, 의논하고, 믿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다섯째, 인정하고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시샘과 부러움 없는 사람이 있으랴. 하지만 타인의 장점을 높이 사고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절로 존경심이 인다. 어느 순간 그 장점을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몇 가지 사실만 맘에 새겨도 사람 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아직 만족할만한 실천 단계는 아니지만 노력 중이다. 가끔 인간사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다섯 가지 실천 사항 중 어느 하나가 삐걱댔기 때문이란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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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살기 아니고 잘지내기였네요. 그거나 그거나죠. ^^ 잘 지내요 우리♥

다크아이즈 2012-11-14 22:39   좋아요 0 | URL
넹 프레이야님, 잘 지내요 우리♥
따뜻하고 다사로운 님...
많이 의지할게요. 아프지 마세요, 멀리 가지 마세요...

라로 2012-11-1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즐찾 추가했어요!!헤헤~~
위에 프님이 제 글에 자주 다시는 '잘 지내요 우리'를 보니까 갑자기 훈훈해요!!^^
팜님~~잘 지내요 우리♥

다크아이즈 2012-11-14 22:43   좋아요 0 | URL
우리 프레이야님이 프님으로 통한다는 걸 나비님이 깨쳐주시는 군요.
나비님도 프님 더불어, 잘 지내요 우리♥
감히 나비님께 즐찾 클릭을 하게 하는 영광을 누리다니...
오늘 저는 밥 안 먹어도 만삭 같은 배 유지하게 됐네요~~

프레이야 2012-11-16 00:16   좋아요 0 | URL
아핫~ 팔랑나비님^^
저의 "잘 지내요"는 "잘 살고 있다가 만나자"는 뜻의
'잘 지내요, 우리'였어요. ㅎㅎ
그치만 여기선 그야말로 "잘 지내요, 우리!" 이 말도 유효해요.
나여사, 팜여사, 프야~~ 우리 모두*^^*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