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없이 살 수 없는 인간 특성 상 참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서로 챙기면서 믿음을 유지하는 관계도 있고, 가끔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경우도 있고,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얼굴도 있고,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우연한 만남도 있다.

 

 

  오전 일정을 끝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올랐다. 힘든 일을 마친 뒤라, 친구와 점심 겸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 생각에 기분이 최고조였다. 그것도 잠시,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시커먼 물체가 허공에 날리는가 싶더니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차를 멈췄다. 바로 옆 차끼리 접촉사고가 났는데 떨어져 나온 범퍼가 공중제비를 하면서 내 차 옆구리를 찍었던 것이다.

 

 

  날씨도 추운데 점심 약속마저 깨지게 됐다. 하지만 별 소소한 일이 생기는 게 인간사인지라 수습될 때까지 덤덤하게 기다리기로 한다. 한데 사고 당사자 두 사람의 대처 방식이 극명하게 달랐다. 그 재미난 사실을 관찰하느라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배고파도 배고픈 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게 귀찮다는 태도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싫은지 한쪽에서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치며 단박에 말을 잘라 버린다. 보험사 담당자들이 오면 그들끼리 알아서 하면 된단다. 오로지 어디 더 흠집난데 없나하고 자신의 차에만 눈길을 준다. 맞는 말이긴 하다. 당사자들끼리 이러쿵저러쿵 해봤자 입만 아프고 성과는 없을 테니.

 

 

  당사자끼리 말할 필요 없다는 택시 기사는 이런 일을 대처하는 확실한 매뉴얼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자꾸만 대화를 시도하려는 한쪽은 그 상황에서 누구나 하게 되는 일반적인 대처 방식이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 격인 내게도 전자는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후자는 내게 필요 이상으로 미안함을 표시한다. 남의 시간 뺏어서 어쩌나, 오늘 하루 일진이 안 좋다 생각해라 등 나름 인간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아무리 봐도 잘못은 ‘입 다물어’파가 더 큰 것 같은데, 배려는 ‘수다쟁이’ 파가 앞섰다.

 

 

  왠지 씁쓸했다.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배짱 좋게 뻗대는 노회함보다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진솔함이 훨씬 보기 좋았다.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따른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도 없고, 역지사지를 모른다면 그게 잘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집난 제 차를 살피는 것보다 맘 불편할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꽃보다도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 했거늘 차보다도 못한 게 사람이라면 어디 살 맛 나겠나.

 

 

 

 

  각설하고, 점심 약속이 한 시간이나 늦었다. 이미 주문해버려 물릴 수도 없는 음식은 뚜껑이 덮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일정이 촉박해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친구는 먼저 밥을 먹은 상태에서 걱정 반 초조함 반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춥고 배고픈 나머지 나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 자동차보다는 꽃, 꽃보다는 사람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플 땐 사람보단 역시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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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 차보다도 꽃보다도 사람이죠!! 차 운전 하다보면 별별일을 맞닥뜨리게 되는 거 같아요. 조심하거나 예방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경우요.
느와르님 오후는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시겠죠. ^^
청명한 초겨울 11월의 한허리에 있네요 오늘. ~~

다크아이즈 2012-11-15 22:10   좋아요 0 | URL
저 아무래도 후유증인가 봐요. 오늘 모 고등학교 특강 있었는데,
자료를 다른 것 갖고 가서 넘 당황했어요. 임기응변 대처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어제 범퍼 날아온 충격과 기계적 반응을 보이던 기사 아저씨 때문에
쇼크 먹은 게 틀림 없어요.

역시 프레이야님 위로가 필요한 밤이예요.
님도 감기 조심, 차 조심 하세요.

2012-11-15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8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8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11-1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2, 입니다.
"자동차보다는 꽃, 꽃보다는 사람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플 땐 사람보단 역시 밥이다!!"
- 이에 동의합니다요.^^

"흠집난 제 차를 살피는 것보다 맘 불편할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게"
- 이 말씀이 (당연한데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그만큼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2-11-18 02:22   좋아요 0 | URL
페크님 글치요?
인간에 대한 연민 없이 살 수도 있는데 그건 인간적인 게 아니잖아요.
근데 교통 사고 하도 많이 겪는 택시 기사 같은 경우엔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페크님 춥고 배고플 땐 역시 밥 맞지요? ㅋ

라로 2012-11-1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3 로 시작해야 할듯,,ㅎㅎ

근데 많이 놀라셨겠다. 떨어져 나온 범퍼가 날아온거에요???님의 차에???와~~~그만하기 천만 다행이라 해야할까요????ㅠㅠ

근데 님 글 잘쓰시는구나!!!!

다크아이즈 2012-11-18 02:25   좋아요 0 | URL
나비님, 날아온 범퍼, 유리에 안 맞고 그나마 차 옆구리 맞은 게 다행이지요?
덕분에 분수에 맞지 않게 요 며칠 보험회사에서 나온 대체차량,빵빵한 것 타고 댕깁니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