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순 없다. 거꾸로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바라는 만큼 사랑받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종교는 왜 필요하고 철학은 왜 생겨났겠는가. 심술 많은 창조자는 태초에 인간을 만들 때 그 형상을 빌려주었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인품까지 내어주지는 않았다. 불완전한 인간을 만들어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증명되니 그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건 생래적 인간 운명이다. 간사하고, 변덕스럽고, 던적스러울수록 신이 관장하기엔 좋은 인간형이다. 완전무결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신은 바라지 않을 것이기에.
이처럼 태초부터 예견된 인간 운명의 불완전성을 이해한다면 사람 사이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은 신과 달리 허술하고, 따라서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관계의 이해 방식이다.
신이 아닌 ‘인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나만의 몇 가지 원칙을 훈련하고 있는 중이다. 그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는 관심이 없다. 다면 살면서 나름 터득한 그 원칙들을 점진적으로 연마하고 실천하고 싶다. 언제나 실천이 어렵긴 하지만.
우선, 논쟁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소통하려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논쟁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한두 번 시도해보고 소통이 안 된다 싶으면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상대를 설득하려 해서도, 내가 양보해서도 안 되는 불통의 상황이 오면 그냥 놓아 버리는 게 최선의 평화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 양자택일할 경우 내가 손해나는 쪽을 택한다. 상대가 이익을 가져갔다고 결코 그 상대가 이긴 게 아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건 시간이 조그만 지나면 알게 된다.
셋째, 리액션이나 피드백은 필수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최대한 공감을 한다. 반대로 내 쪽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될까, 하고 상대의 진솔한 생각을 요청한다. 모든 타인은 나보다는 객관적이다.
넷째,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 리더를 맡아야 할 경우, 일은 무조건 타인에게 맡겨라. 리더는 일을 잘 하는 자가 아니라 멍석을 잘 까는 자여야 한다.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려하고, 의논하고, 믿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다섯째, 인정하고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시샘과 부러움 없는 사람이 있으랴. 하지만 타인의 장점을 높이 사고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절로 존경심이 인다. 어느 순간 그 장점을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몇 가지 사실만 맘에 새겨도 사람 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아직 만족할만한 실천 단계는 아니지만 노력 중이다. 가끔 인간사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다섯 가지 실천 사항 중 어느 하나가 삐걱댔기 때문이란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