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두 자녀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도 많다. 결혼했다는 것과 남편이 있다는 것까지는 입력이 되는데 ‘엄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루 종일 얽힌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긴 하다. 그 복잡함들이 자식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에 관한 거면 좋겠는데, 나만의 영양가 없는 공상 때문이니 그게 문제다. 언제나 개별자로서의 자아가 모성을 가진 자로서의 나를 앞선다.
보통 ‘엄마’라면 무슨 일을 하건 어떤 상황에 있던 자식 생각이 우선일 것이다. 오히려 그게 너무 족쇄처럼 느껴져 한 번쯤 아이들에게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는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나 아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그제야 아참, 내가 엄마였지, 하고 당혹해한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환절기라 감기에 걸렸단다. 아프면 가족 생각이 더 나기 마련이니 엄마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통화하는 순간은 엄마로서 최선의 모성을 발휘한다. 병원은 가봤나, 아파도 밥 굶지 마라, 심하면 수업 듣지 말고 잠 푹 자라 등 짠한 맘에 말이 절로 많아진다. 이 짠한 맘이 하루 종일 지속되면 좋으련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밤늦게 걱정하는 남편을 보고서야 아픈 딸내미가 떠올라 자책한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내게 모성이 없는 걸까? 모성은 본능일까, 아니면 사회화 과정의 산물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살갑게 챙기고 알뜰히 보살피는 모성지상주의파는 아니다. 방임을 가장한 허용적인 엄마이고, 권위적이지 않고 시쳇말로 쿨한 척하는 엄마다. 자식에게 밀착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엄마가 이래도 되나? 모름지기 엄마라면 그 무엇보다 자식을 최상의 자리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얻은 결론은 나 역시 모성이 없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다만 사회가 부여한 모성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왼종일 자식 생각으로 가득하지 않다고 해서 모성이 부족한 건 아니다. 모성을 천성이나 운명의 자리로 묶어두고 길들이는 사회 때문에 내 모성을 스스로 의심했을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성 신화를 버려야 다양한 모성 모델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도 단기기억상실증이란 마법에 걸리지 말고,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좀 더 자주 떠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