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문예교실에서였다. 기억에 남을 만한 선생님에 관한 단상 써오기를 숙제로 냈었다. 학생다운 재기발랄하고 감수성 풍부한 글들이 발표되었다. 남학생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게 한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 정신적 동질감을 주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감성적인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등이 주된 이야기였다.
그 중 한 학생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머핀과 초콜릿을 준비했단다. 기회를 봐서 교무실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선생님이 안 계실 경우 다른 선생님을 후보로 새겨뒀다. 그냥 나오면 제 맘도 들키는데다, 다른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교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라던 선생님은 안 보이고 평소 무섭고 냉정하게 보이던 한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엉겁결에 ‘선생님 드세요.’ 하고 쫓기듯 선물을 드리고 나왔다. 맘에도 없는 일이라 그리곤 잊고 있었단다.
한데 며칠 뒤 그 선생님께서 이름을 부르시더니 정성 깃든 편지와 작은 선물을 주시더란다. 놀람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오더란다. 냉정하게만 보이던 선생님이 제 이름을 기억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편지까지 주셨으니 눈물이 날 지경이더란다. 그 글의 제목은 ‘우연이 준 선물’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우연을 통해 한 사람의 진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현상일 뿐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 타인을 규정할 수 있는 명백한 객관성이란 인간 앞에서는 없다. 경험한 만큼만 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타자를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감성적 동물이다. 따라서 한 대상을 바라볼 때 제 삼자의 말에 휘둘릴 필요도 내 안의 편견에 내몰릴 이유도 없다.
멀리서 본 높고 험한 산의 위용보다 가까이서 본 나무 잎새 뒷면의 떨림이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울 때가 많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그런 선물이라면 자주 주고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