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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무능과 <국정브리핑>의 횡포

[프레시안 김재영/MBC <PD 수첩> 피디]  

지난 4일 MBC <PD 수첩>의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 한미 FTA' 편이 방영된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시청자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까? 프로그램의 방영을 전후한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 또한 점입가경이다.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정부의 공식 대변인인 국정홍보처장은 수많은 출입기자들 앞에서 방송의 공영성과 공정성을 운운하며 이 프로그램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정부는 언제든지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에 공식으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신청할 수 있고, 다른 여러가지 통로로 공식적인 반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영도 하기 전에 정부 고위 관계자가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도에서인지 알 수 없다. <PD수첩>은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사회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부는 구체적인 증거도 부족한 상태에서 한미 FTA에 대해 찬양 일색의 홍보를 펴면서 여론을 주도하려 해 왔다. 언론으로서는 정부의 이런 행태에 대해 당연히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대로 보지 못한 측면은 없는지, 정부의 논리에 문제는 없는지, 한미 FTA 추진과정은 민주적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몫이다.
  
  그 비판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는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다. 국정홍보처장이 "이 정도면 횡포 아니냐"라며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전에 비난한 것이야말로 시청자와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의 '횡포'다.
  
  방송이 나간 후 <국정브리핑>에는 'PD수첩의 외눈박이 보도'라는 제목의 반박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되묻고 싶다. 애초에 국민의 세금으로 엄청난 예산을 써가면서 '외눈박이 홍보'를 시작한 것은 누구인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수출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에 따라 고용이 증가하며, 심지어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마치 한미 FTA가 국내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선전한 것은 다름 아닌 '참여정부'였다.
  
  FTA와 양극화가 관계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PD 수첩>을 비판한 <국정브리핑>은 "우선 빈곤층의 증가나 사회양극화 현상은 세계화와 정보화, 고령화 과정에서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것으로, FTA 체결국과 미체결국 간에 특별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국정브리핑>의 주장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결국 FTA 체결국들도 세계적인 추세 중 하나인 사회양극화 현상이나 빈곤층의 증가와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미 FTA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FTA 체결로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정부의 홍보에 대해 여러 차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때마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 양극화가 해결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해 왔다. 언제는 대통령과 정부가 한 목소리로 한미 FTA로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는 FTA와 양극화 해소는 별 관계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정부의 논리인지 헷갈린다. <PD 수첩>을 비판하려다 보니 정부의 허술한 논리가 들통난 꼴이다.
   
  한미 FTA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한미 FTA가 고용을 증가시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미 FTA 찬성론자인 한 경제학자마저도 한미 FTA로 제조업 고용이 증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정부는 지니계수(소득 간 격차를 나타내는 수치)를 들어 캐나다, 멕시코의 사회양극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사회양극화를 드러내는 지표들은 지니계수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런 여러 지표들을 함께 살펴볼 때에야 비로소 사회양극화의 다양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멕시코의 경우 NAFTA 이후 상승한 노동생산성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반면에 국내총생산(GDP)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10%포인트 이상 상승해 70%에 육박했다. 즉 NAFTA의 실질적인 과실을 노동자들은 전혀 누리지 못했고, 그 대부분을 기업과 기업가들이 가져간 것이다.
  
  게다가 NAFTA 이후 멕시코 노동시장에서 비공식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로 확대됐다. NAFTA로 인한 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인해 이런 기형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통계들은 멕시코에서 NAFTA로 인해 노동자, 농민 계층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이들 계층의 삶의 기반이 붕괴하면서 사회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4대 선결조건'에 대한 구차한 변명
  
  <국정브리핑>의 구차한 변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방송에서 언급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회의문건에서 '4대 선결조건'이라는 어휘가 사용된 것은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로 진중하지 못한 표현이었다"며 "표현의 문제와는 별도로 이것은 한미 양국 간의 오랜 통상현안으로 존재해 오던 것이며, 정부는 우리의 기본원칙을 유지하면서 대응해 왔다"고 설명했다.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라는 궁색한 변명에 어이가 없다. 지금까지 참여정부는 '4대 선결조건'이라는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외교통상부의 고위 관리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4대 선결조건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한미 FTA 비판론자들의 잘못된 어휘 사용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 '4대 선결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4대 선결조건의 추진현황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 왔다는 것이 이번 <PD 수첩>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도 외통부의 통상교섭본부에서 직접 만들고 '대경위'라는 대통령 직속기구에 보고된 이 문건에 쓰인 4대 선결조건이라는 말이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였을 따름이란다.
  
  정부의 기본원칙? 문제의 문건에 의하면 4대 선결조건과 관련된 정부 부처들은 그 조건들의 해결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9월까지 각 부처의 기본원칙은 4대 선결조건은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기본원칙은 지난해 10월에 갑자기 사라졌다. 정부는 기본원칙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다.
  
  정부의 무지, 무능, 자료의 빈약에 놀랐다
  
  무엇보다 <PD 수첩>의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가장 놀란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무지함과 무능함, 그리고 자료의 빈약함이었다.
  
  NAFTA 11조에 의한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에 관련해 현재 가장 중요한 소송으로 꼽히는 것은 캐나다 포스트(캐나다 우체국)의 택배서비스에 대한 미국 운송회사 UPS의 제소 건이다. UPS는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캐나다 포스트의 택배서비스 때문에 자사 사업이 손해를 보았다며 국제분쟁조정기구에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이 소송에서 캐나다가 패할 경우 캐나다의 모든 공공서비스는 미국의 경쟁기업에 의해 제소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로서도 관심을 기울여 당연히 참고해야 하는 소송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재정경제부의 고위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은 바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정부-투자자 소송 제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준 후 그로부터 나온 반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UPS가 뭘 잘못한 거죠?"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 있어서 미국 쪽이 공공의료(건강보험)나 교육분야(영리법인 설립) 등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홍보한 바 있다. 하지만 NAFTA와 같은 수준의 한미 FTA가 성립되면 사회의 모든 분야가 투자의 대상이 되고 투자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국내의 규제 및 법률은 모두 다 제소의 대상인 될 수 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미국이 지금 관심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캐나다 포스트와 UPS의 소송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경부의 고위 관료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소송의 사회적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론스타가 왜 한미 FTA 로비를 했는지 정부는 아직도 모른다
  
  필자가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만난 모든 관련 공무원들은 한국의 기업 또한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까지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이런 제소에 있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걸까? 더 큰 문제는 투자자-정부 소송와 관련해 프로그램에서 예로 제시한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 캐나다의 에틸 사건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기업(투자자)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확신하는 것은 '참여정부'는 지금까지도 론스타가 한미 FTA와 관련해서 왜 거액의 로비를 했는지 그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브리핑>의 <PD 수첩> 반박기사조차 <PD 수첩>에서 제기한 론스타 관련 문제들에 대해 전혀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가 왜 미국과의 FTA에서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을 포함시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추천해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주어도 정부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미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과 합의를 해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무능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PD 수첩>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여러 차례 한미 FTA 협상의 주체인 외교통상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4대 선결조건에 관해, 투자자의 국가 제소권 제도에 대해, 그리고 1차 협상에서의 쟁점에 대해 묻고자 했다. 거절당했다.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한 김종훈 대표에게 직접 인터뷰를 요청한 적도 있다. 김종훈 대표는 국회 공청회에서
  만약 '4대 선결조건'이라는 단어가 정부의 공식문건에 나오면 책임을 지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서면으로 질문하라는 답변만 받았다. 서면으로 질의서를 만들어 전달하려 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했다. 외교통상부에 <PD 수첩>에서 확보한 취재내용들에 대해 질의를 하고 답변을 얻으려 했지만 모두 답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언론을 기피하는 이유를 필자는 알기 어렵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무능한 정부라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으면서도 하나의 미덕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 정부가 '참여'정부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참여'정부가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서는 시민사회의 참여를 완전히 배제한 채 무능한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더 불안하다. "무능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라는 경구가 어지럽게 머리에 맴돌고 있다.

김재영/MBC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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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이 정말 필요한 까닭은...

미군의 새로운 유연화 전략, 기동군 전략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그네들 입장에선 매우 복고적인 군사전략이란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짬 좀 나게 되면 미군의 신복고 군사전략에 대해 긴 글 쓸 일이 있으면(없다면 더욱 좋겠지만)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군사기지가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엔 그 이전 사회주의 블록 국가들이었던 곳까지 잠식해 들어가 사실상 전세계에 미군기지가 배치되어 있고, 미군이 배치된 곳들은 이유야 어쨌든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했을 때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We are the World."라고 노래하는 것이 레토릭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인 셈이지요. 냉전종식 이후 마땅한 주적을 찾아내지 못해 안달하던 군사국가 미국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미군기지를 전지구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 자체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 130여개국에 700여 개의 해외기지, 미국내에 만도 6,000여 개의 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전세계에 소유하고 있는 기지는 3천만 에이커로, 1에이커는 대략 1천2백20평이라니까 한 번 계산해보시면 미국이 아니라 미군 기지만으로도 웬만한 국가 하나 보다 큰 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미군은 그 땅에 모두 85만여 개의 시설을 관리하고 있지요. 어째서 미국을 제국, 그것도 군사제국이라고 부르는지 한 마디로 입증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런 군기지에 25만여 명의 해외 주둔군과 이들을 지원해주는 군속과 민간인, 현지 고용인들을 포함해서 다시 25만여 명이 있고, 현지 고용인이 4만 5천여 명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군사 기지 이외에도 4만 5천여 개의 각종 시설을 해외기지에서 운영하고 있지요. 또 이외에도 국방백서에 수록되지 않는 임시 기지를 잊어선 안 됩니다. 실제로도 얼마전 독일 내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던 임시기지에서는 포로 학대 및 테러용의자에 대한 납치 및 잔학행위가 벌어져 인권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종종 미국을 로마 제국에 비견하고는 했는데... 새롭게 바뀌는 미국의 군사전략, 기동군 전략을 살펴보면서는 그 생각을 약간 수정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가도를 건설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도, 그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평소에는 제국의 행정망으로 기능하는 가도를 통해 유사시에는 대규모 신속기동군(지원군)을 투입해야 하겠죠. 또 한 가지 사례로 비스마르크 시절, 독일군이 순식간에 프랑스를 유린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독일군이 철도를 이용해 신속하게 기동하여 프랑스군을 집중타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신속한 전개, 기동에 뒤이은 집중타격은 어제 오늘의 군사전략이 아니라 역사 이래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온 군사 전략이기도 합니다. 제가 앞서 미군의 이 군사전략이 복고적이라고 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합니다만, 최근 평택 미군 기지 확장 이전 계획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장면이 있어섭니다.

존 웨인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서부극들을 보면 쫓기던 인디언들이 결집해서 서부의 기병대 기지를 급습하는 장면이 나오고 뒤이어 이런 위기 상황을 본부에 알리러 가는 기병대 전령이 나오죠. 그러면 얼마 뒤에는 미군 기병대가 나팔 소리 드높이 울리면서 떼로 몰려옵니다. 그러면 이번엔 전세가 바뀌면서 인디언들은 모두 전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미군 기병대의 요새(port)들은 버팔로 떼와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삶의 방식 또한 멸망시키고, 이곳에 미국의 문명을 새롭게 널리 퍼뜨립니다. 원주민들이었던 인디언들은 요새 기지 PX에서 흘러나온 미국이 전해준 술에 취하고, 문명에 취해 그네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저급한 인종 취급을 받으며 삼류 민족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인천국제공항을 동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키우고자 하는 것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전세계 항공 승객과 화물을 집하시켰다가 다시 재배치해서 떠나는 것처럼, 사실상 평택 기지가 미군의 아시아 전초기지이자 아시아 군사전략의 허브기지로 키우고자 한다는 것은 미군이 평택 기지를 통해 미군을 재배치하고, 군수물자들을 분산 배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죠(음,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평소 2만 5천명도 안 되는 미군기지를 한국의 34개(36개던가)에 공허하게 분산배치 해두면서 비용이나 까먹고 있느니 평택 한 군데로 모아서 효율적으로 관리하다(어떤 분이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외국군 주둔 기지 있는 것보다는 평택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하던데,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용산을 떠나 평택으로 가는 것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해서가 아니란 건 잊으셨더군요.)가 유사시에는 전세계 곳곳에 있는 미군 기지로 자유롭게 보내는 기병대처럼 활용하겠단 말입니다.

평택 기지를 확장하는 이유는 한반도 혹은 아시아를 차세대 전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고, 평소에는 텅텅 비어있을 이 기지는 앞으로 유사시에 미 본토와 세계 곳곳의 기지에서 날아와 기동할 미군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슬픈 이유는 전세계 어디에도 이제 미국의 배후를 노릴 인디언이 없다는 거죠. 제발, 미국이 새로운 인디언들, 전멸시켜야 할 새로운 적들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해야 할 터인데, 대개의 깡패들이 그렇듯 눈길 한 번 잘못 줬다간 순식간에 이라크 꼴이 날 터이니, 어쩌면 우리의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분들이 국가안보의 대상으로서 진정 염려하는 대상이 그네들이 입에 달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분들조차 북한을 이제 우리를 위협할 만한 적이 아니라고 본다는 겁니다.)가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의 굳건한 동맹인 미국, 바로 그들이란 사실을 간파하고 계시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저도 차라리 이해는 됩니다. 이참에 우리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이 정말 필요한 까닭은 미국이 우리 친구라, 미국이 우리 동맹으로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까봐서가 아니라 미국이 혹시 우리를 적으로 생각할까봐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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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종교적 갈등을 넘어 다차원적 접근 필요
엄한진(성균관대) 
상대적으로 일국 차원의 현상이었던 프랑스 소요사태나 국제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었던 9.11테러와 달리 만평사태는 매우 많은 요인들이 연관된 현상이다. 우선 유럽-이슬람 관계의 역사, 유럽 내 무슬림들의 문제, 제2차 이라크전쟁 이후의 중동정세와 유럽-아랍의 정치적 관계, 극우주의 및 유대인문제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는 최근 유럽을 포함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사회의 갈등, 특히 “종교 관련 사항을 세속법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되짚어 보자. 2005년 9월 30일 덴마크 보수일간지 율란트-포스텐(Jyllands-Posten)에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마호멧을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그림 등 12장의 만평이 게재되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내에서만 문제가 되었다가 2005년 12월 경 중동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만평문제가 세계적인 사안이 되자 2006년 1월 10일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 매거지넷(Magazinet)이 12장 그림 전체를 게재하였고 주로 언론간 연대 차원에서 2월 1일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 수아(France Soir), 그리고 이어서 독일(Die Welt), 스위스(Tribune de Geneve, Le Temps) 등 여러 유럽국가들에서 신문 게재가 이어졌습니다. 아랍 등 이슬람국가들에서도 만평이 유럽처럼 몇몇 언론에 게재되었었다. 만평사건이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한 후에는 예상되었던 대로 각지에서 이슬람신자들의 격한 대응이 잇따랐고 그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작품,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의 개입 증대가

우리는 여기에서 이번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만평이 처음 게재된 지 2달이 넘게 지난 2005년 12월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는 마침 57개국 정상들이 모인 이슬람회의(Organis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가 사우디의 메카에서 열리고 난 직후였다는 점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이 회의를 결산하는 성명서에 덴마크의 만평문제가 언급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부 차원의 노력이 만평문제가 본격화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만평에 표현된 마호멧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은 이 만평이 있기 오래전부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말 속에, 심지어는 다양한 이미지들에 깊이 뿌리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인식은 9.11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사실 이번 12장의 그림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시한폭탄 형태의 터번을 쓴 마호멧 그림이 상징하는 테러리즘으로서의 이슬람이라는 표상은 세계정세에 어두운 우리에게조차도 너무 익숙한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우리를 놀라게 한 프랑스 소요사태 역시 무엇보다도 국가의 작품이었듯이, 이번 만평 파문 역시 다소 사소하고, 그리 새로울 것 없고 국지적인 사안이 위로부터, 즉 이번 경우에는 이슬람국가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정권들이 이렇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그 배경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상당수 아랍국가들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하는 등 아랍정치권력이 구가해 온 그간의 장기집권을 위협할 수 있는 최근의 정치변동을 떠올릴 수 있다. 즉 유럽 대 이슬람이라는 대립구도에 대중의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동원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권유지 전략에 '유럽'이라는 요인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번 사태에서의 아랍진영의 과도한 대응의 이면에는 점증하는 유럽의 중동개입이라는 현실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만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자신들에게 희생과 모욕을 준 미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아랍 국가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럽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의아하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게 적극적인 대응을 한 나라들이 공히 최근 유럽과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번 사태의 본질 중 하나는 3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와 달리 중동, 동유럽,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점차 미국에 협력하고 미국을 대체해가고 있는 유럽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주도적인 대응은 시아파의 예외적인 신앙심때문이라기보다 이란 핵문제에서 유럽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이 된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이란의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부당한 의심을 막아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5년 9월 갑자기 이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면서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 상정 등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이란은 이 의심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란의 핵관련 기술은 언젠가는 핵무기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는 미국의 억지를 이겨낼 수 없었고 그 와중에 2005년 9월 만평 게재문제가 덴마크에서 불거진 것이다. 결국 미국에 더해 유럽까지 가세한 최근의 압력으로 인해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던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만평사건은 유럽의 압력이 이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무슬림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유용한 논리를 준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나토군의 유럽병력이 점차 미군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 직접 싸우게 되는 것은 미국이기보다는 유럽이 된 것이다. 탈레반을 후원해 온 파키스탄이 이번 만평 사건에서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지역에서 유럽 대 탈레반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리아의 다마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격렬한 시위 역시 최근 프랑스가 시리아의 레바논 간섭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슬람을 모독한 자들에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슬람인들의 머리 속엔 만평의 작가보다는 유럽국가의 정부들, 그리고 아랍세계에 평화유지군으로, 엔지오로, 성직자로, 기업가로 와 있는 유럽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너무도 명백한 지배자가 된 미국과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좀더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제국주의 유럽의 악몽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이슬람 문제’가 두려운 유럽의 무슬림들

이번 사태와 연관된 사람들은 유럽 외부의 무슬림들만이 아니다. 지난 프랑스의 소요사태에서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만평과 만평이 대변하는 편견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오히려 유럽 사회 내의 무슬림들이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 이 두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유럽의 극우세력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유럽의 경우 극우정당의 주된 자원이 반이민정서이며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주된 이민집단은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슬람권 출신자들과 연관된 이민문제를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유럽의 극우세력에게 이번 사건은 이슬람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력 확장의 호기인 셈이다.

일찍이 만평이 게재되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 2005년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진보당이 22%의 득표로 제1야당이 되었는데 이번 사건에서의 노르웨이를 겨냥한 시위와 폭력은 극우주의의 기반인 반이슬람 정서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세력들은 만평 게재지인 프랑스 수아(France Soir)와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번 사건을 외부 이슬람인들에 의한 자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번 프랑스 소요사태에서도 그러했듯이 서유럽의 이슬람신자들은 이슬람국가들의 신자들에 비해 매우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이슬람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다“. 이민문제, 이슬람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이슬람문화권 출신의 유럽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들은 유럽의 주류 백인사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이나 아랍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니는 해악적인 효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 아랍인보다는 프랑스시민, 덴마크시민으로 남과 다름없이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시민으로 평등하게 대접해 주지 않으려는 주류사회가 그들을 아랍인, 이슬람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희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 우리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즉 진정한 프랑스인, 독일인이 될 수 없으며, 너희들은 다르니까 다른 대접을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유럽의 무슬림들을 주류사회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유럽사회뿐이 아니다. 알제리, 파키스탄, 터키, 이란 등 자신들의 모국 역시 대유럽 전략에 유럽에 있는 자국동포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이슬람이나 아랍과 관련된 논의를 매개로 유럽-이슬람 관계에 이용되는데 반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의 이슬람문화권 출신 후예들은 더 이상 유럽과 오리엔트, 중동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재중동포들의 경우처럼 유럽에 온지 매우 오래되었거나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의 문화와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인 것이다.

신앙의 존중 대 표현의 자유

“이번 사건에서 게재 당사자들이나 이들 편에 선 지식인, 언론이 주창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그들의 반이슬람적, 인종차별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신앙이 다른 집단, 특히 그간 강대국의 미움을 사온 무슬림들을 모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은 이슬람을 그 무엇보다도 적대시해 온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 종교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신중함,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아랍세계에서의 폭력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는 만평을 게재한 서방언론들에 대한 비판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만평 게재를 비판하며 언론에 책임성과 분별력을 요구한 코피 아난의 논평(2월 9일)이나 “표현의 자유의 실현이기보다는 점증하는 유럽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무감각, 그들의 거부감을 표현한 것“(2006년 2월 8일자)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일견 진보적인 해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론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사태 당시 국민의 68%가 자극적인 언사와 강경대응으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내무장관 사르코지(N. Sarkozy)의 행동을 지지(Le Monde 2005년 11월 17일자)했던 프랑스의 경우, 이번 경우에는 국민의 54%가 만평을 게재한 미디어들을 비판하고 있다.(Le Monde 2006년 2월 9일자)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사회통제의 강화, 그 속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약화라는 최근의 전지구적 경향이 놓여 있다. 즉 매우 폭력적인, 따라서 매우 격렬한 사회적 저항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특히 9.11테러 이후 노골화된 사회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이나 여론을 빌미로 약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종교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유대인 문제에 대한 견해표명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새로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사회적 논의나 글, 영화, 광고, 만평 등에서 종교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즉 교황을 풍자한 꼭두각시 인형에 대한 제재,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선정적으로 패러디한 광고에 대한 제재 등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모독’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만평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보면 기독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이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길에 동참하고 있다. 낙태문제, 동성애자 결혼문제, 생명윤리, 신성모독 등의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현 세계는 종교간 갈등만큼이나 종교와 사회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것이다. 이번 사안의 당사자인 유럽도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와 ‘차이의 존중’,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존중’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들을 조화시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의 주류사회 자신들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정체성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즉 단일한 유럽이라는 이상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데 유럽연합 내부에는 무수한 경제적, 종교적, 종족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종교적 신념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번 만평을 비판한 교황을 비롯해 각 종교의 대표자들이 이번 만평사건에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이러한 중요한 경향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매우 종교적인 부시가 이번 만평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형식적인 제스처만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비록 그 시발점이나 전개과정에 유럽국가들과 이슬람국가들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지만, 단지 정치적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전망

아직 진행중이지만 이번 사태가 초래할 결과를 예견해 보면, 우선 ‘이슬람’이라는 요인의 중요성,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이슬람과 서양, 이슬람과 민주주의, 이슬람과 인권과 같은 이분법이 다시금 활력소를 찾을 것이다. 이번 만평과 흡사했던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결과를 되새겨 보면 이러한 유형의 현상이 해당 사회집단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함을 알 수 있다. 살만 루쉬디 사건 이전에 영국의 파키스탄 이민자들 내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중시하는 만큼이나 주류사회에 통합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무슬림에 대한 낙인은 이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게토에 갇힌 폐쇄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다.

이 점과 관련해 아쉬운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 순 있지만 아랍세계 역시 이번 사태에 냉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이슬람’과 ‘민주주의’라는 오랫동안 상호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반대로 언제나 그러했듯이 서양이 끌고 가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세계해석을 더 강화시키는데 협력한 꼴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11이 우리에게 이슬람을 미국, 제국, 테러리즘, 세계화 및 반세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이슬람 과 아랍을 유럽, 종교 일반, 시민권, 이민문제, 극우주의 등 또 다른 개념들과 연관해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엄한진 님은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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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읽는 미술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박홍규 선생이 직접 쓴 것이든, 옮긴 것이든 박홍규 선생이 관여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상당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박홍규 선생의 팬이라서라기보다는 내가 원하고 있는 상당 부분의 지적 호기심, 관심 분야가 겹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지식이 앞서 길을 찾은 이의 길찾기 과정을 놓고 되밟거나 새롭게 찾아내는 일이라고 했을 때 이 책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는 언젠가 나로서는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미술 작품과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 펼쳐 보인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해석하는 작업이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자크 칼로"를 제외하고 고야, 도미에, 콜비츠, 루오, 오토 딕스 등등의 이름이 내겐 그리 낯설지 않다. 예전에 사카자키 오쯔로오의 "반체제 예술"을 읽을 때도 이미 익히 접했던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고야의 "카프리치오" 연작 판화들과 케테 콜비츠의 "농민전쟁" 연작 판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왜곡된 우리 교육 현장의 분위기 탓도 있었을 것이고, 당시의 척박했던 시대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이런 그림들을 찾아보도록 했을 것이고, 르누아르의 그림보다 더한 감동으로 전해지도록 했을 게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탓일지, 내가 변한 탓일지 모르겠으나 박홍규 선생의 이 책은 풍성한 컬러도판에 세련미를 더한 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사카자키 오쯔로오의 "반체제 예술"(이 책은 흑백의 좋지 않은 도판들로 구성)보다 감동은 적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내가 이미 접해왔으며 다른 책들을 통해 사전지식을 갖추게 된 탓도 있을 것이며, 그와 같은 점이 반대로 처음 이 방면에 대한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에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남는 아쉬움은 "반전과 평화의 미술"이란 공통점으로 묶이는 작가들의 나열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고야 편에서 훗타 요시에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재론하는 것은 박홍규 선생의 입장에선 충분히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었겠으나 대중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난이도의 책에서, 훗타 요시에의 "고야"론(論)은 한길사에서 4권으로 나온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과연 그 정도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점에서 지적할 만한 다른 한 가지는 반전과 평화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되 각각의 화가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갔더라면 최소한 나 한 사람의 입장만 놓고 보자면 좀 더 흥미진진한 책이 되었으리라 하는 것이다. 전체 페이지가 300쪽 이내인 이 책에서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미술사 속에서 찾아낸 예술가들을 쪼개어 다루는 일종의 평전과 유사한 구성이 반전과 평화란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책과 박홍규 선생이 추구하는 바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지만 그런 점들이 보강되었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방면에 관심이 있고, 첫 걸음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흡족한 체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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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3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바람구두 > 전쟁의원인과 책임을 지도자 개인에게만 물을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광고는 약간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책 자체는 괜찮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과장이냐 하면 우선 이 책의 표4에 나오는 문구 "히틀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A.J.P.테일러의 이 주장은 어느 경우라도 전면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고, 또 전적으로 틀렸다고 부정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이 지닌 의미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대해 "비스마르크는 최고봉의 정치적 천재였지만 그는 건설적인 정치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한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히틀러는 정치적 선동의 최고봉에 이른 천재였지만 그는 건설적인 정치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한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A.J.P. 테일러의 말을 빌어보자. "문명은 보통사람들의 문명화된 습관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통사람들이 통치자보다도 더 교양 있고 침착했다."고 그는 말한다. 이 말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란 어떤 존재인지 비록 명확하진 않지만 분명한 건, 고민없이 고착된 문명화된 습관이 합리적인 최종해결책으로서의 가스실로 이르는 고속도로를 닦았다.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니 A.J.P. 테일러와 이 책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에 대해 내가 상당히 부정적인 독서 체험을 한 것으로 오인할지도 모르겠으나 읽는 내내 상당히 재미있었고,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유럽의 외교 무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A.J.P. 테일러가 외교사를 주전공으로 한 역사학자란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유념해두어야 할 한 가지는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이 1961년의 일이며,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번역 출판된 것은 2003년의 일이란 사실이다. 이 역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1961년, 그리고 A.J.P. 테일러가 이 책을 저술할 무렵이었을 1950년대 중후반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지 불과 10여년 내외의 일이었을 것이란 점이다. 이 점을 간과한 채 이 책을 읽는 것은 최신 자료들과 새로운 연구로 무장된 결과물을 멀리 하고 과거에 규명된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읽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알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물론 A.J.P. 테일러가 처음 이 책을 출간했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은 매우 충격적인 내용과 주장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보통 사람들)은 "히틀러가 강력히 전쟁을 원했으며" 영국을 비롯한 당시 연합국들은 전쟁에 대한 거의 아무런 책임도 없는 존재들로(오로지 피해당사자)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주로 돌연변이 천재 히틀러와 그의 맹신적인 추종자들, 그 추종자들의 선전선동 정책에 사로잡힌 독일 국민들의 몫이었다. 
A.J.P.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에서 역사적 외교문서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당시 그에게 쏟아진 온갖 비난(?)들을 무릅쓰고 학문적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히틀러는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권력을 차지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계획(장기적인 전쟁 계획 수립은 물론 단기적인 경기 부양정책조차)을 갖지 못했다. 히틀러의 집권 이후 독일 경제의 부흥은 우리가 알고 있듯 히틀러의 여러가지 경제정책들(경제개발계획, 아우토반 건설 등 )에 힘입은 것이기 보다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이전에 이미 시작된 세계 경제 상황의 전반적인 호전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히틀러와 나치당엔 아무런 경제계획이 없었다. 최소한 초기에는... 제국의회 방화 사건 이후 벌어진 공산당 탄압 및 조직적 체포 행위에 대해서도 A.J.P. 테일러는 이것이 나치에 의해 사전에 준비된 명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괴링의 전임자였던 사회민주당원 제베링이 준비해 두었던 것(독일 사민당과 공산당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이상의 앙숙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할 만큼)을 이용해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그렇다면 A.J.P. 테일러가 생각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무엇일까? 전쟁의 원인이야 하나가 아니지만 최소한 이전에 감정적으로 혹은 전쟁 기간 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해내기 어려운 이들에게(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한국전쟁은 1950년에 발발해서 1953년에 끝났지만, 전후 50여년이 지나는 동안 지금까지도 전쟁의 원인과 성격을 합리적으로 규명하는 데, 얼마나 많은 감정적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는가를) 그는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라는 통치자 일인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우스운 일인가를 조목조목(주로 외교, 국제정치적인 차원에서) 따져서 분석해내고 있다. 그 결과는 조지프 S. 나이가 서구전쟁의 역사와 국제정치이론을 접목시킨 "국제분쟁의 이해(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한울"에서 출판)"에 이미 상당히 반영되고 있다. 나중에 이 책에 대한 리뷰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지만, 조지프 S. 나이는  A.J.P. 테일러에게 상당한 학문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따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1차 세계대전을 살펴보아야 한다. 서구 학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국주의 유럽의 민족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세력 균형 정책때문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독일 세력이 증대되는 반면,  동맹체제는 자만으로 인해 과거 비스마르크 시대의 정책적 유연함을 잃어버렸고, 당시 세력 균형의 구조가 파괴되었음을 간과한 결과라는 것이다. 세력 균형이 파괴된 가장 중요한 원인들은 독일의 세력 확대(이것은 특히 영국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대륙에서 독일이 강력한 경제력과 해군력을 증강시킨 것이 영국으로 하여금 강력한 견제 수단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와 동맹체제, 민족주의의 출현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게대전을 경험한 유럽과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세력균형을 대신한 평화 유지책으로 집단 안보 개념을 도입해 국제연맹을 결성한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독일에게 높은 배상금을 책정함으로서 도리어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을 잉태했고, 일본의 만주 침략과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침공에 무력하게 대처함으로써 집단안보에 대한 도전을 용인했다.

 A.J.P. 테일러의 주장을 역으로 말해보면 만약 1920년대에 서구 유럽의 민주(자본)주의 국가들이 독일에 대한 보복(주로 군사, 경제)적 응징 대신, 독일의 경제 부흥을 도왔거나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실시했거나,  1930년대 초반 소련을 고립시키는 대신에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과 동맹을 맺었다면 독일은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방식을 동원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지프 S. 나이는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에 패배하긴 했지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것이 비이성적인 행위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 까닭은 만약 당시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미국의 봉쇄 정책으로 고립될 것이고, 동남아시아의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의 냉혹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이런 부분이며, 전쟁의 책임을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에게만 돌리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문제는 A.J.P. 테일러와 조지프 S. 나이의, 이런 관점의 연속선상에서 전쟁과 그 원인을 파악할 때 우리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물을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종종 우리는 분노와 화해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전쟁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전쟁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문제는 다시 구조냐? 인간이냐?의 것으로 환치된다. 자,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너무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한국전쟁으로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전쟁의 원인을 김일성이나 이승만이란 당시의 정치지도자들, 한 개인에게만 물을 때, 화해와 평화는 멀고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란 사실이다. 때로 이런 인식은 마치 종교전쟁처럼 어느 한 쪽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절멸될 때까지(더군다나 한국전쟁은 내전으로, 작게는 서로 얼굴을 잘 아는 마을 단위로부터 멀리는 고공의 하늘로부터 내리꽂히는 익명의 폭탄에 이르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전쟁이었다) 증오를 부르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선 너무 늦게 나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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