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현대와 삼성의 배구 맞대결 기사를 읽다가 손가락 가는 대로 끌려들어가 읽은 기사는 한겨레의 '재모아빠' 혹은 구본준 기자(http://wnetwork.hani.co.kr/bonbon/)가 쓴 '필진네트워크' 기사이다. 지면에 게재되는 기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교수의 '거대한 자료실' 탐방기사인데, 얼마간은 부러운 마음으로 죽 둘러보았다(나는 내달 '고아원'에 있는 책들을 근처 다른 '고아원'에다 옮겨놓아야 한다). 저술가가 되면 이런 자료실을 갖게 되는지, 아니면 자료실을 마련해야 저술가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한 가지 '모델'로 창고에 넣어둔다(하긴 이웃나라엔 '고양이 빌딩'을 갖고 있는 저술가도 있다고 하니 '저술가의 서재'가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07. 02. 16)[필진]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2년쯤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를 만났는데, 근황을 묻자 “서재를 구해 책들을 옮겼다”고 하더군요. 새로 구한 서재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라고 했습니다. 임교수의 집이 직장인 이화여대 근처 아현동인 것을 알고있던 저는 왜 가까운 집 놔두고 그렇게 멀리 서재를 구했는지 궁금해 다시 물었습니다. 임교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20평짜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지경”이란 겁니다. 게다가 자기는 공기 좋은 곳이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료가 얼마나 되기에 집까지 옮겨야 하느냐고 말이지요. 임 교수는 집안 전체가 자료로 가득찼다고만 빙긋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일, 임석재 교수의 광주 아파트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동안 무려 28권의 책을 쓴 우리 시대 대표적인 건축글쟁이, 그 글쟁이의 서재를 찾아가는 제 연재 기사 <한국의 글쟁이> (한겨레 출판섹션 ‘18도’섹션 참조) 열아홉번째 초대손님으로 임 교수를 모시게 된 것이 제가 임교수 댁을 찾아가게 된 경위입니다(*그러니까 다음주 연재가 '임석재 교수' 편이겠다).

임교수의 집은 광주 시내를 살짝 벗어난 언덕 위에 잡은 비교적 대단지 아파트였습니다. 평수는 제법 넓었는데 방이 5개 짜리더군요. “서울에서 드는 비용으로 2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임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곳이 아닌 완전한 집필실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임교수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현관에서 보이는 집안 모습은 이 곳이 ‘거대한 자료의 바다’임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마루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 같은 공간부터 철제 책장이 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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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조금이라도 빈 공간에는 책장들이 열병하듯 서있었습니다. 마루는 그저 큰 방일뿐이었습니다. 마루 가운데에는 책상이 있고 나머지 모든 벽은 책장을 놓았습니다. 자, 마루 책상 앞에 선 임석재 교수입니다.

임 교수는 마침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임교수는 글쟁이이면서도 사진을 직접 해결합니다. 사진을 거의 전문적으로 찍는데, 내년도 이화여대 다이어리를 임교수가 찍은 우리나라 전통가옥들 사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52주별 그림으로 넣을 52개 전통가옥별로 좋은 사진을 고르던 차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슬라이드보관통과 사진을 살피는 도구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5개의 방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서재였는데,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 자료를 넣어놓는 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별 자료방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가, 미술가, 철학자 등 개인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또다른 방 2곳은 시대별 자료방입니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자료방, 그리고 19세기 이후 현대건축까지 자료방 등. 마루는 집필공간 겸 현대건축 자료들 공간입니다. 우선 근대건축 이전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카메라도 모두 이방에 놓았더군요.

조금의 빈 틈에도 책장을 넣을만큼 자료는 많았습니다.

각 자료들에는 찾기 쉽도록 종이로 항목을 붙여놓은 모습입니다. 임교수 자료실의 압권은 바로 슬라이드 사진을 모아놓은 방입니다. 물론 모두 임교수가 직접 찍은 필름들입니다. 부피가 나가는 책도 아니라 조그만 슬라이드 사진필름이 도대체 몇 개나 되기에 방까지 따로 만들었냐구요? 자그마치 20만개라고 합니다. 클리어파일처럼 생긴 두꺼운 파일철에 한 쪽당 20개씩 끼워 보관합니다. 자, 한번 보시죠.

보시면 낯익은 생활용품인 방습제 ‘물먹는 하마’가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습기흡수용품을 넣은 것은 슬라이드 필름이 습기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이 필름철 한쪽한쪽 사이에 넣기 위해 신문지를 크기를 맞춰 1만쪽을 잘라놓은 점입니다. 습기 빨아들이는데 신문지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임교수가 신문을 주워다 모은 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종이를 잘랐다고 합니다. 정말 자료 관리가 저술가에겐 생명과도 같구나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철에는 꼼꼼하게 필름 항목을 적어놓았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이름이 보이네요. ‘English Baroque, Christoper Wren'.

(#크리스토퍼 렌은 영국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갑니다. 원래는 자연과학자로, 뉴튼이 칭찬할 정도의 대단한 양반이었다는데, 옥스퍼드대 천문학과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놔두고 건축가가 되었답니다. 참 재주도 많은 분이죠? 대표작은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입니다. 이만틈 설명하고서 사진도 안보여드릴 순 없으니 세인트폴 성당 사진 첨부합니다.)

학자들의 일상은 자료와의 전쟁이자 동고동락입니다. 스스로 분류한 자료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하게 됩니다. 건축이란 분야 속성상 임교수의 도전은 다른 인문학자들보다 훨씬 돈이 듭니다. 왜냐구요? 건축책들은 비싸거든요. 사진들이 들어가면 책도 크구요. 보통 원서가 권당 10만원 가까이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거대한 자료실 속에서 임교수는 읽고 쓰고 자료를 정리합니다. 그의 삶을 보면 글쓰는 팔자가 따로 있다 싶습니다. 아니, 글쓰는 기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본인도 씨익 웃습니다. “참 미련하게 살지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 결과 28권의 책이 독자들과 건축을 이어주었으니, 보람은 클 것입니다.

임 교수는 방학이면 카메라를 짊어지고 해외로 떠납니다. 취재와 자료수집을 위한 출장인데요, 그 중간중간 사서 모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머그잔’입니다. 나라별 특색있는 기념품으로 하나씩 모은 것이 부엌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선반 위에도 한줄로 머그잔이 서 있네요. 건축학자라서 그런지 건축물 그림이 들어있는 머그잔들을 모아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술가들의 서재가 모두 임석재 교수의 서재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저술가들의 서재는 이렇게 자료실이 되고 맙니다. 얼마나 많은 자료에 투자하고 관리했느냐에 따라 저술의 양과 질이 바뀌기 때문에 오늘도 글쓰는 학자들은 모으고 또 모읍니다. 그게 저술가의 팔자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모으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에 모으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퀴즈! 책이 이 정도면 한 몇권이나 될까요?

임석재 교수에 대한 기사는 조만간 <18.0> 섹션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다음에는 다른 저술가의 서재를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절들 잘 보내세요.

참, 임교수 댁에 있는 책은, '1만권'입니다.

07. 02. 19.

P.S. 4-5년 뒤면 나도 1만권쯤의 장서를 갖게 될 터인데 이를 어이해야 할 것인지, 미리부터 걱정스럽다. '물먹는 하마' 정도는 미리미리 준비해둘 수 있겠건만...

P.S.2. 한편 아래는 지난 2000년 10월말 한겨레의 '인문학 데이트' 연재란에 실렸던 임석재 교수에 대한 소개이다. 저서가 그간에 훨씬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작년에 나온 책으론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 2006)과 '임석재 서양건축사 3'에 해당하는 <하늘과 땅>(북하우스, 2006)이 있다.

임석재는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1980~1987년:서울대 건축학과 및 같은 대학원

△1989:미국 미시간대 건축학 석사.

△1992: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건축학 박사

△1993년:원도시 근무

△1994년~현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저서:<추상과 감흥:비엔나 아르누보 건축>1·2(문예마당, 1995), <장식과 구조미학:불어권 아르누보 건축>1·2(발언, 1997), <형태주의 건축 운동:형태와 조형의지>(시공사, 1999), <생산성과 시지각:뉴 브루털리즘과 대중사회>(시공사, 2000), <한국 현대 건축 비평>(예경, 1998),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 1999), <물질문명과 고전의 역할:임석재 교수의 현대 건축 이야기>(북하우스, 2000), <한국적 추상 논의>(북하우스, 2000) 등 다수.

임석재가 말하는 임석재

철들면서 시작된 사춘기 때 나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조형 환경은 끝없는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시(詩)였다. 한국 현대시의 고전들을 암송하고 스스로 시작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관심이 합쳐져 나는 지금 건축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아직은 사춘기 때의 감성과 열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자평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사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일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고 책 쓰는 데 보낸다. 건축에 요구되는 실용성과 현실성은 골목길 탐방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얻고 있다. 요즘은 그 동안 공부해온 내용을 응용할 설계 작업도 시작하여 1~2년 후면 처녀작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연구는 20세기 서양 근현대 건축사, 한국 현대 건축사, 서양 건축사의 세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저서 시리즈를 기획하여 매일 열심히 공부하며 집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최종 목표는 나만의 건축 사상을 세우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금도 학생들 사이에 끼여 철학 강의를 듣는다. 혼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던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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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정말 책이 비싸서 책을 못 읽는 걸까?

책의 "가격" 때문에 독서를 마음껏 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책의 "무게" 때문에 아무데서나 펼쳐들고 읽지 못한다는 핑계보다도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만 따져보면 분명한 오류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재미있는", 또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구매하는 데에는 1만 원, 2만 원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없는", 또는 "본인이 원치 않는" 것을 구매하는 데에는 1백 원, 2백 원을 아깝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책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물건이나 서비스가 마찬가지다. 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1만 원짜리가 아니라 10만 원짜리라도 군소리 않고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사기 싫은 데 꼭 사야 하는 것, 또는 영영 사지 않으리라 작정하는 것은 1천 원, 아니 1백 원짜리라도 사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술값은 탕진해도 책값은 아끼게 마련이고, 또 어떤 사람은 차(車)값은 아깝지 않아도 술값은 아끼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은 책값은 아깝지 않아도 차값은 아까울 수 있다. 결국 만족감이란 상대적인 것이므로, 단순히 액면가만 놓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비해 "비싸다" 혹은 "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아무리 책값이 비싸다 한들, 한 달 교통비보다 비싸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한 달 휴대전화 요금만큼 비싸겠는가. 문제는 "책값은 비싸다"는 통념, 바꿔 말하자면 "책값은 당연히 싸야 한다"는 오해인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책값에 대한 불평은 단지 오늘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 영국 작가 조지 오웰도 "책값 대 담뱃값"이란 에세이(오웰의 에세이집인 <코끼리를 쏘다>(박경서 옮김, 실천문학사, 2003)에 수록되어 있다)에서 책값에 대한 일반의 잘못된 인식을 따끔하게 꼬집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의 서두에서 조지 오웰은 신문사 편집인인 자기 친구가 어느 공장 노동자들로부터 "당신네 신문은 1실링 6펜스씩이나 되는 그런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책 한 권에 그만한 돈을 쓸 수가 없어요!"라는 불평을 들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 책을 사거나 읽는 것은 값비싼 취미로, 일반 사람들의 경제 수준에 큰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 있어, 이에 대해 한 번 상세히 밝혀볼 필요가 있겠다. 독서비가 시간당 펜스 단위로 정확히 얼마가 되는지를 산출하기란 어렵지만, 내 책을 모두 세어 책값을 더해보겠다. 내가 지출했던 다른 다양한 비용을 감안해 보면, 나는 지난 15년 동안의 내 지출을 비교적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을 것 같다. (251-252쪽)

그렇게 해서 오웰은 자신이 구입한 책, 얻었거나 도서권으로 구입한 책, 서평용 도서 및 증정본, 빌려서 아직 안 돌려준 책, 대출한 책 등의 숫자를 센 다음, 그 가격을 모조리(구입한 책은 정가로, 서평용과 증정본 도서는 반값으로 등등) 환산한 다음, 그것 외에도 일간지 두 개, 석간지 한 개, 일요신문 두 개, 주간서평지 하나, 월간지 한두 개 등의 다른 비용까지도 모조리 환산해서 더해 본다. 결국 "15년 동안에 걸쳐, 1년에 약 25파운드"의 비용이 독서비로 지출된 셈이다. 그런데 오웰은 현재 영국의 성인 남성이 피우고 마시는 담뱃값과 술값만 쳐도 대략 1년에 40파운드는 족히 든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술, 담배나 영화 관람 같은 다른 오락에 비해 독서야말로 시간당 비용이 가장 값싼 오락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오웰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 나는 독서란 값싼 오락 중 하나라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어쩌면 가장 값싼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 대중이 책에 지출하는 실질적인 돈의 액수는 얼마일까? 분명히 어디엔가 있을 테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그 수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전쟁 전 우리나라가 연간 약 1만 5천 권의 책을 발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권당 1만 부가 팔린다면, 국민 1인단 직, 간접적으로 연간 약 세 권만을 사는 셈이 된다. 이 세 권의 가격을 다 합해도 1파운드, 혹은 그 미만일 것이다. 이 수치는 내 나름대로 계산한 것이며, 만약 틀렸다면 정정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의 계산이 어느 정도 옳다면 식자율 1백 퍼센트이며, 성인 남성 한 명의 평생 담뱃값이 인도 농부 한 사람의 평생 생계비보다 더 많은 이 나라에서, 이 수치는 결코 자랑스러운 기록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책 소비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계속 떨어진다면, 그것은 책을 사든지 빌리든지 간에 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독서가 개싸움 구경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술집에 가는 것보다는 더 재미있는 오락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257쪽)

하여간 문제는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들이려니까 생기는 것이다. 자꾸 옆에서 "읽어라, 읽어라" 하니까 책값이 비싸네 책이 무겁네 하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닥달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 부추기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사는 사람에게는 책값이 싸거나 책이 무겁거나 하는 불평이 나올 리 없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뻑하면 " OECD 국가에서 최저 수준의 독서율" 어쩌구 하는 요상한 잣대를 갖다대고 비교하면 무지막지 엄청난 "독서율 하락"처럼 보이겠지만, 다만 TV며 영화며 인터넷 같은 새로운 매체가 출현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니, 단순히 책 안 읽는 사회를 타박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책 읽는 사람이 많았을까? 단적으로 30년 전에는 출판사 수도 적었고 출간 종수도 적었던 반면, 지금처럼 "밀리언셀러"라는 폭발적인 판매고는 없었음을 고려해 볼 때, 단순히 지금이 옛날보다 못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무슨 "국민개병의 원칙"도 아니고, "4대 노선"도 아닌 와중에야, 자칭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책 읽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책 깨나 읽는다는 나로서는 오히려 지금이 좋다. 생산량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종수 하나만큼은 확실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벼라별 책이 다 나오는 요즘 같으면 솔직히 책 읽을 맛이 난다. 물론 옥석이 뒤섞여 있긴 하지만, 석이 많아지는 것만큼 옥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무슨 뜻이냐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책을 읽는" 사람은 불평할 틈도 없이 읽고 또 읽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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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naver.com/th3030/120003995291

- 역사상 최고소설, <돈키호테> -

중세 말 17세기 기사계급의 몰락을 풍자적으로 그린 <돈키호테>가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뽑혔다고 영국 BBC방송이 2002년 5월 7일 보도했다. 노르웨이의 노벨 연구소와 북 클럽스가 세계 50여개국 출신 100명의 유명작가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스페인 출신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50%가 넘는 득표율로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세르반테스는 문학에 맞는 문체를 완성했으며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의 첫번째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 설문에 참가한 작가는 살만 루슈디(인도)와 노먼 메일러(미국), 밀란 쿤데라(체코),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등 거장들이다. 노벨 연구소 등은 이들 작가에게 세계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소설 10편씩을 꼽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이를 토대로 최고작품 및 100대 작품을 선정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가운데 가장 많은 4편의 작품이 올랐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와 프란츠 카프카(체코), 톨스토이(러시아)가 3편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구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호머(고대 그리스), 토마스 만(독일), 버지니아 울프(영국) 등도 2편씩 포함됐다.

아래는 노벨연구소가 세계적인 작가에게 의뢰하여 선정한 100대 작품목록이다.

- 그리스 -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디세이>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이탈리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베르길리우스, <아에네이드>
단테, <신곡>
보카치오, <데카메론>
지아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집'
이탈로 스베보, <제노의 고백>
엘자 모란테, <이야기>


 

 

 

 

- 프랑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몽테뉴, <수상록>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
스탕달, <적과 흑>
발자크,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감정교육>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밤의 끝으로 여행을>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사무엘 베케트, <삼부작 : ­몰로이 · 말론 죽다 · 이름붙일 수 없는 것>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 영국 -

초서, <켄터베리 이야기>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리어왕> <오델로>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의견>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조지 엘리어트, <미들마치>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찰스 디킨즈, <위대한 유산>
로렌스, <아들과 연인>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조셉 콘라드, <노스트로모>
조지 오웰, <1984>
도리스 레싱, <황금 노트>
살만 루시디, <한밤의 아이들>

 

 

 

 

 

 

 

- 아일랜드 -

<니알의 사가(saga)>
할도어 렉스네스, <해방된 민중>

- 독일 -

괴테, <파우스트>
토마스 만, <붓덴부르크 일가> <마의 산>
카프카, '단편', <심판> <성>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파울 첼란의 '시집'
귄터 그라스, <양철북>



 

 

 

 

- 러시아 -

고골리, <죽은 혼>
레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외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안톤 체호프, <단편선>

 

 

 

 

 

 

 

- 포르투갈 -

페르난도 페소아, <근심의 書>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 스페인 -

로르카, <집시의 노래>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 미국 -

허만 멜빌, <모비딕>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가 앨런 포, <단편전집>
월트 휘트먼, <풀잎>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 <음향과 분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랄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토니 모리슨, <당신>

 

 

 

 

 

-북유럽 -

안데르센, <동화집>(덴마크)
입센, <인형의 집>(노르웨이)
크누트 함순, <굶주림>(노르웨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피피>(스웨덴)

 

 

 

 

- 아시아 -

루쉰, '소설집'(중국)
<마하브하라타>(인도)
발미키, <라마야나>(인도)
칼리다사, <사쿤탈라>(인도)
시키부 무라사키, <겐지 이야기>(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일본)


 

 

 

 

- 아프리카 -

타예브 살리흐, <북쪽으로 가는 계절>(수단)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은 무너진다>(나이지리아)

 

 



 

 

 

- 라틴아메리카 -

후안 룰포, <페드로 마라모>(멕시코)
보르헤스, <단편집>(아르헨티나)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콜롬비아)
호아오 귀마레스 로사, <오지에서의 곤경>(브라질)


 

 

 

 

- 아랍권 -

<길가메쉬 서사시>(메소포타미아)
<천야일야>(페르시아)
<욥기>(이스라엘)
자랄 앗-딘 루미, <마트흐나위>(이란)
세이크 무스하리프 웃-딘 사디, <과수원>(이란)
나지브 마흐푸즈, <우리 동네 아이들>(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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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인터넷 서평꾼

아침에 내가 자주 들로는 카페에 들렀다가 나와 무관하지 않은 펌글을 읽었다. 여기에 다시 옮겨놓는다. '책의 오피니언 리더'로 다음카페 '비평고원'과 알라딘서재를 소개하고 있는 기사인데, 쑥쓰럽게도 '로쟈'란 이름의 그 '리더'의 하나로 거명되고 있다. 물론 그 리더는 '책벌레'들의 리더이다.

한겨레(07. 01. 05) 책의 오피니언 리더 ‘인터넷 서평꾼’

밥을 먹듯 책을 파먹고 숨을 쉬듯 문자를 호흡하는 이들. 인터넷상을 어슬렁거리는 책벌레들이 있다. 새 책에 관한 정보를 재빨리 잡아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책의 내용을 평가하며 책의 허점을 일러준다. 열렬히 옹호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냉정히 외면하는 책도 있다. 책에 관한 한 이들은 인터넷상의 안내자이며 파수꾼이고 정보의 허브다. 책에도 여론주도층이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익명의 바다에서 등대 노릇을 하는 책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집합처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 포털 다음의 카페 ‘비평고원’이다. 책의 숲이라 할 이곳은 저마다 무림의 고수를 자처하며 갈고 닦은 내공으로 일합을 겨루는 공간이다. 일본의 최근 소설에서부터 프랑스 현대 철학까지 막 출간된 책들이 품평의 대상이 된다. 서슬 퍼런 칼날이 책의 허점을 찌르고 오래 쌓은 지식으로 책의 특장을 증명한다.

지난 2000년 문을 연 이 카페의 회원은 줄잡아 3천명에 이른다. 매일 500여명이 이곳에 들어와 책의 정보를 얻어간다. 이 무림에서 돋보이는 고수는 30~40명 정도다. 대다수가 문학·철학·정신분석학 등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박사과정이다. 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서 매번 새로운 초식을 선보인다.

이들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사람이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 알려진 필명 ‘로쟈’다. 로쟈의 강점은 문학·역사·철학·사회서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 나온 책은 거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개해준다는 점이다(*한때는 그랬다). 로쟈의 순발력은 전광석화급이다. 책이 나오면 즉각 해당 책의 내용과 배경을 설명해주고 저자의 다른 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중요한 서평을 끌어다 덧붙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 책과 관련이 있는 해당 분야의 다른 책들도 성격별로 정리해 소개해준다. 말하자면 로쟈는 최근에 나온 책의 지도를 그려주는 사람이다. 로쟈의 지도는 오차가 적을 뿐더러 군더더기가 없고 신속한 편이어서 책 정보 전달꾼으로서 그의 지위는 확고하다. ‘비평고원’의 초기화면에는 로쟈가 운영하는 코너 ‘책의 바다’가 떠 있다.

비평고원 회원인 최성희(37·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씨는 “로쟈처럼 책에 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올려주는 회원도 있지만, 회원들의 다수는 책 자체를 놓고 평가하고 토론하는 일을 주로 한다”고 이 카페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글 쓰는 이들이 주로 대학 박사과정급 이상이기 때문에 전공 지식이 풍부하고 그러다 보니 논쟁이 일며 격렬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한번 싸움이 붙으면 몇 달씩 진행되기도 하고 논쟁에서 졌다 싶으면 아예 카페에서 탈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논쟁은 저자의 주장에 대한 평가가 많지만, 외서의 경우 번역의 질을 놓고 벌어지기도 한다. 잘못된 번역을 문제 삼아 품평이 오고가는데, 때때로 번역자가 직접 들어와 항의하다가 일대 격전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최성희씨는 “비평고원은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좋은 번역서를 추천하고 질 나쁜 번역서를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 곳”이라며 “대학에서 강요하는 답답한 논문식 글쓰기의 대안을 찾아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상에서 필명으로 교류하지만 1년에 한두 번씩 오프라인 모임도 연다. 지난 연말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10여명이 서울 종로 맥주집에서 모여 송년회를 열기도 했다. 이 카페를 만든 운영자 조영일(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씨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많다”며 “책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을 원하는 네티즌들이 물어물어 이곳으로 찾아들다보니 지금은 인문학 책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곳으로는 가장 다채로운 곳이 됐다”고 말했다.

비평고원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자생적 모임이라면,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나의 서재’는 서점에서 북마니아들을 위해 만들어준 방이다. 로쟈를 포함해 비평고원의 주요 필자 가운데 일부가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 글을 쓰는 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알라딘의 인문서 담당 김현주씨는 “‘나의 서재’는 서점을 찾는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해줄 수 있는 필자들이 주로 사용한다”며 “2003년 8월에 문을 연 뒤 3만~4만명이 서재에 필자로 가입했고 그 가운데 40여명이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현직 일간신문 기자로 알려진 필명 ‘딸기’, 대학 3학년 때부터 3~4년째 활약하고 있는 ‘평범한 여대생’, 계간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서평을 쓰는 ‘바람구두’, 단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마태우스’ 등이 알라딘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대표급 필진이다. 김현주씨는 “이분들은 책이 서점에 깔린 직후에 번역이나 내용을 꼼꼼히 따져 품평하기 때문에 일종의 검증장치로서 기능한다”며 “특히 인문서의 경우엔 이들의 평가가 초반 판매량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 말했다.

알라딘은 이들이 쓴 글을 읽고 책을 구입할 경우 책값의 1%를 적립해주는 인센티브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장 영향력 있는 필진은 한달이면 1만원 이상의 적립금을 받기도 한다고 김현주씨는 말했다. 적어도 100명의 독자가 필자의 글을 읽고 책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이들의 의견이 책을 선택하는 데 기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데, 말 그대로 책의 오피니언 리더들인 셈이다.

또다른 인터넷서점 예스24도 알라딘과 유사한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리뷰를 전문으로 쓰는 사람들을 위해 독자칼럼란을 두고 있는데, ‘시라노의 주책잡기’는 한동안 인기를 끈 난이었고, 요즘 가장 조회수가 많은 칼럼난은 ‘정군의 책 대 책’이다(*이 분은 우리의 '정군' 아닌가? 양다리를 걸치시다니). 이 칼럼의 필자인 ‘정군’은 1주일에 한두 번씩 두 권의 책을 선정해 비교 분석해준다. 예스24에서 블로그 관리를 담당하는 심현숙씨는 “40명 정도가 개인 블로그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적으면 1주일에 한두 편, 많으면 하루에 한 편 정도 책 리뷰를 올린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필자들 가운데 특히 인기가 있는 필자에게 따로 코너를 마련해주기도 하는데, 정군의 코너가 바로 이 경우다. 심현숙씨는 “주목도 높은 필자들의 글에는 적어도 열 건 정도의 댓글이 달린다”며 “대다수 댓글이 좋은 정보를 고맙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교보문고도 알라딘·예스24처럼 서평자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터넷 책 오피니언 리더의 시대다.(고명섭 기자)

07.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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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0 1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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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바람구두가 선정한 2006년의 책

바람구두가 선정한 2006년의 책
(2005. 10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우리에게 2006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그 질문에 답하기 전, 우리는 잠시 20년 전의 오늘을 떠올려보는 것이 좋겠다. 1986년은 아시안게임이 있던 해이고, 한동안 “86, 88”은 번영을 이룩해줄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 시대의 우리들은 지금보다 암울했을까? 이 무렵 한국의 노동자들은 주당 52.4시간 노동으로 세계1위를 차지했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미국의 전폭기들은 리비아의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폭격했고, 소련에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7월에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터졌다.

과거를 기억하는 서로 다른 방식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양산, 정치개혁실패가 잇따르면서 권위주의 독재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현실인식은 극단을 달린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1.2』(책세상, 2006)은 지난 시대의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대한민국이 성취한 결과를 부정하는 좌파 민족주의 진영의 자학사관을 담은 책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의 편집위원들은 엄밀한 고증에 입각한 학문적 성과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론 노 대통령이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했다는 발언과 그런 분위기에서 과거사 청산 법안들이 만들어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가 다 가기도 전에 대한민국이 성취(?)한 또 하나의 결과를 보여주는 두툼한 책 『야만시대의 기록 - 고문의 한국현대사』(역사비평사, 2006)가 출간되었다. 앞의 책이 노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발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면, 이 책은 지난 2004년 12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열린우리당의 이철우 의원에 대해 “지금도 조선노동당 간첩이 국회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말한 사건을 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올바른 청산과 정의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해서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과거사는 언제라도 정치의 중심에 부각될 수 있는 뇌관이다. 그 이유는 과거사가 단 한 번도 깨끗하게 청산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철우의 경우에도 과거 재판기록만 놓고 보자면 자백한 간첩이다. 권인숙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당시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믿거나, 그 재판기록이 “한 번 들어오면 대통령도 무사히 나갈 수 없다”던 고문 기술자들의 고문과 용공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본주의, 성장과 시장 논리가 제압한 도박판에서 살아남는 법

언제인가부터 우리 사회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조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좌파 신자유주의’, ‘인권을 위한 전쟁’, ‘평화를 위한 핵실험’이 그것이다.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르포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 2006)을 통해 핵발전소를 책임진 성실한 한 가장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온가족을 잃는 참사를 피할 수 없었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확히 20년 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 발생한 체르노빌 참사는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발표하지 않았고(대략 13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 지금도 체르노빌에는 192톤의 핵연료가 미봉된 채 잠들어 있다. 우리가 북한의 공포와 미국의 증오 사이에서 벌어진 핵실험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난 해 우리는 한 과학자가 벌인 언론플레이에 얼이 빠졌던 경험이 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도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태연자약하게 벌어지는 것일까? 도로시 넬킨과 로리 앤드루스는 『인체시장 -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궁리, 2006)를 통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동안 우리 몸의 생체(유전자) 정보에 특허권이 부여되고, 이를 상품화하여 이익창출의 도구로 삼는 시장과 생명기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황우석의 숭고한(?) 연구를 위해 몸 바친 이들에게 난자체취의 위험성은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황우석의 생명공학이 가져다 줄 풍요의 도마 위에서 우리의 몸(유전자, 생체정보)은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했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일들에 둔감한 걸까? 얼마 전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TV광고는 미인선발대회를 코믹하게 엮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47%는 주가지수연동정기예금에, 48%는 환매조건부 채권에 투자하며 5%는 부족한 미모에 조금 더 투자”하겠다는 미인의 소감 뒤엔 좀더 긴 뒷이야기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할 말이 있으면 더 이야기해보라는 권유에 참가자는 “얘들아!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고 외친다. 젊은 세대는 언제나 기성사회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갖기 마련이지만, 오늘의 젊은 세대는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자기경영, 자기혁신에 전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그런 논리를 담고 있는 경영처세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당연하지만 정말로 개처럼 벌어도 좋은 걸까? 지난 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마시멜로 이야기』(한경BP, 2005)의 이중번역 논란은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는지 잘 보여준다.

만화 『타짜』(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는 대중적 호응에 힘입어 영화화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대 배경을 갖고 있는 만화 『타짜』에서 자전거를 갖고 싶었던 곤이의 소박한 욕망은 결국 그의 청춘을 도박판에 저당 잡히도록 한다. 빨치산과 국군이 밤낮으로 번갈아 출몰하던 지리산에서, 살벌한 승부가 펼쳐지는 도박판에서 주인공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 다른 타짜들처럼 죽거나 손가락이 잘리지 않고, 몸성히 살아남는 방법으로 깨우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멈췄다. 그것만이 돈을 위해 체면도, 염치도 없이 벌거벗은 욕망들이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도박판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

1986년엔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라는 <아, 대한민국>의 노래가사처럼 유람선이 정말 한강 위로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아~ 대한민국”을 외친다. 다만 지금의 “아~”는 풍요와 번영을 상징 조작했던 그 시절의 외침과 달리 한숨이다. 지금 우리는 민주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집권 세력은 이른바 민주화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째서 한숨짓고 있는가? 다가오는 2007년 새해는 개인적으로는 87년 시민‘혁명’이라 규정하는 87년 민주화운동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우리는 바로 그 시민혁명이 만들어냈던 87년 체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고비에 서 있다.

박태균의 『우방과 제국』(창비, 2006)이나 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2006)는 모두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체제와 직접적인 관계 속에 살펴야 하지만, 문제의 복잡성을 따지자면 후자가 훨씬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한미FTA'라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우석훈은 크게 세 가지 층위의 각기 다른 고민거리를 제기한다. 첫째는 생산력 중심, 발전 중심의 패러다임은 결국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폭주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기존의 87년 체제에 의해서는 어떤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궁극적으로 체제를 개혁하거나 보수하기 어렵고, 호민관으로 선출된 대통령 자신의 폭주를 국민직접행동 이외에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것, 셋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제라도 새로운 시스템을 상상해 내고, 그것을 국민적 합의에 의해 도출해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즉, 우석훈은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느닷없는’ 한미FTA 폭주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 국가시스템 전반에 걸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폭주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박태균은 그간의 한미관계가 대등할 수 없었던 것은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집권한 정권들의 태생적인 한계에도 있지만 ‘국가안보’를 빌미로 ‘정권안보’에 치중한 정권을 경제성장 혹은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승인해온 우리들 자신에게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한다. 만약 한국에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되어 있었다면 한미관계는 좀더 정상적인 관계로 나아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무엇인가? 87년 혁명 이후 어느새 20여 년간 지속된 절차적 민주화에 의해 수립된 민주주의 정부 아래에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한미관계의 불평등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박태균은 이것이 지속되는 독재의 유산이며,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사회진화론적인 약육강식 담론을 우리들이 내면화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통해 누렸던 경제적 ‘특수’를, 미국과의 동맹으로 덩달아 우리도 ‘제국’이 될 수 있다는 음험한 욕망이 왜곡된 한미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가 꿈꾸셨던 대한민국입니다.”라는 CF가 있었다. 이 광고에 대해 반감을 품은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 광고가 호명하는 아버지들이 우리들의 아버지였던 것은 사실이고, 분명 그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은 배고픔을 극복하는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를 저당 잡히긴 했지만 분명히 성공했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가. 우리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 할 때이다. 이제 소개하려는 두 권의 책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 해답의 단초가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순홍 유고전집 1. 2 - 생태학의 담론, 정치생태학과 녹색국가』(아르케, 2006)과 슬라보예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 - 레닌에 대한 13가지 연구』(길, 2006)가 그것이다. 책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지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목이 이미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합리적이고, 급진적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는 말로 책 소개를 가름하고자 한다.

<출처 : 함께사는길, 2006. 12월(통권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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